
해마다 광복절이 되면 해외에 있는 한국교육원을 비롯한 재외 소재 한국교육기관은 광복절 행사를 지역 동포들과 함께하게 된다. 지역의 실정에 따라 기념식과 더불어 강연회, 민족 문화 예술, 음악 공연 등 다양한 행사를 개최한다. 이국땅에서 태극기를 걸고 애국가를 부르면 남다른 감회를 느끼게 된다.
한국 현대사의 흐름을 보면 숨 가쁜 드라마의 연속이라 할 수 있다. 지리적으로 우리 나라 주변에 위치한 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강대국이라 할 수 있는 미국과 중국, 소련, 일본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지금까지 멸망되지 않고 나라의 명맥을 유지한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보통이 아니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다 고유의 전통과 고유의 문자를 가지고 이래도 이만큼 살게 된 것은 민족의 강한 정신력의 뒷받침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1894년 동학 농민운동이 일본 제국주의에 의하여 쓰러짐으로 사실상 일본의 지배가 시작된 때로부터 1945년 해방을 맞이하기 까지 50년의 역사 동안에 우리의 궁극적 관심은 민족의 자주적 해방이었고, 이러한 지상의 과업을 위해서 많은 지사들이 알게 모르게 민족의 제단에 몸을 바쳤다.
어쩌다 한 시대의 선조들이 정신을 못 차려 1910년에는 한일합방이 되고, 그 후 일제의 침략하에서 우리 민족이 당한 수모는 참으로 입으로 담기 어려울 정도로 부끄러운 것들이었다. 이시대의 사람들에게는 칠흑같은 밤길을 걷는 한 많은 세월의 연속이었다. 그러므로 일제의 지배하에 신음하던 선한 백성들은 해방만 되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될 수 있었던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상록수를 쓴 심훈은 <그날이 오면>이라는 시에서 <조국의 독립이 오는 날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듯 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 서리라>며 조국의 독립을 부르짖었던 것이다. 이처럼 해방 이후의 최대의 감격은 역시 해방이라 생각된다.
우리의 해방 61년의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그것은 만장 절벽위의 오솔길을 걸어온 것만큼이나 아슬아슬한 것이었다. 이제 다시는 그러한 수모를 겪지 않기 위하여 우리 후손들에게 떳떳한 한국인이 되도록 후손을 가르치는 일이다. 어느 한 어린 꼬마가 서투른 한국말로 <나는 한국인이야!?하는 것을 보았다. 이것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교육의 힘이다. 나라를 속이면 양심이 허락을 하지 않는다. 출신을 당당히 밝혀야 한다. 이러한 자존심을 지키는 민족교육을 시키는 일이 우리의 과제이다. 때를 놓치면 안 된다. 이제부터라도 재일동포의 역사를 새롭게 쓰는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