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년 전, 여러 형제들을 다 교육시키기 어려우셨던 아버님께서는 나를 청주교대에 가기를 권유하셨다. 서울의 미술대학에 가는 것이 꿈이었던 나는 아버님의 뜻을 거역할 수 없어 꿈을 접어야 했다. 청주교대 1학년 때부터 미대에 가지 못한 것이 한이 되어 나는 거의 모든 여가 시간을 미술실에서 지냈다. 아무도 없는 텅 빈 미술실에서 혼자 그림을 그리곤 했었다.
그런데 그 때마다 미술실 칠판에는 "심안(心眼)으로 보라!"는 커다란 분필로 쓴 문구가 거의 매일 쓰여져 있었다. 그때는 별로 나와 상관없는 문구려니 하고 지나쳤다. 그런데 1학기가 지나고 2학기가 개강되던 9월 초순 어느 날 미술과 안승각 교수님께서 교수실로 부르셨다. 그 이유인즉슨 내가 지난 1학기 동안 너를 지켜보았더니 너무나도 열심히 그림에 몰두하여 너를 위해 매일 오후마다 "심안(心眼)으로 보라!"는 문구를 써놓으셨다는 말씀이셨다. 너무도 감사한 말씀에 눈시울을 붉혔다.
안승각 교수님은 충북 서양화의 선구자이셨다. 그러나 교대에 몸담으시다보니 뚜렷한 제자가 없으신 차에 저를 어여삐 여기셔서 남달리 지도해 주셨다. 그분의 가르침은 기(技)가 아닌 심오한 정신으로 참된 미술의 세계에 눈을 뜨게 인도 해 주셨다. 나는 안승각 교수님의 가르침으로 초등교사로 있으면서도 얼마든지 작가의 길을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고 1977년부터 한국미협회원으로 활동, 지금은 한국미술교육학회 충북지부장, 충북초등미술교육연구회장 등 초등미술교육에 힘쓰고 있다.
졸업후 교수님은 바로 정년퇴임을 하시고 청주에서 작은 화실을 운영하시면서 작품활동을 활발히 하셨다. 그러나 서울로, 미국으로 가신 후 연락을 할 수가 없었다. 지금은 워낙 많은 세월이 흘러 이 세상 분이 아니실 것이다.
교단에서 아동미술을 지도 할 때마다 나도 제자들에게 심상표현을 중요시하면서 보람을 만끽하고 있으니, 아! 훌륭하신 나의 스승, 안승각 교수님! 당신은 영원한 나의 등대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