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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2014 교단수기공모 은상>이것만이라도 꼭

며칠 전 “수업 시간에 떠들거나 방해하는 학생이 있으면 다가가 두 손을 잡고 선생님 수업준비 열심히 했고 준비한 만큼 열심히 할거 거든, 그러니 잘 들어줬으면 고맙겠다”고 했다. 한 학생이 묻는다.

“그래도 떠들면요?”
“그러면 또 다가가 꼭 껴안고 또 한 번 똑같이 말하겠다.”
“그 다음은요? 키스? 그럼 그 다음엔 빠구리?”

할 말을 잃었다. 이정도까지인가? 이 학생들 데리고 수업을 할 수 있을까?

문득 작년 일이 떠올랐다. 첫 동아리 시간에 여학생 다섯 명이 늦게 들어왔다. 보통은 늦게 들어오면 미안한 마음에 조용히 자리에 앉는데 그 학생들은 달랐다. 계속 하던 얘기를 하면서 교실 이곳저곳을 배회했다. 앉으라고 했는데도 소용이 없다. 급기야 큰 소리를 냈다. “앉아!” 그러자 “왜 소리를 지르고 그러세요? 참 이상한 사람이야.”

그 소리를 듣고 오만 정이 다 떨어졌다. 충격에 다른 수업시간에도 완전히 손을 놓아버렸다. 교실은 죽은 교실이 돼버렸다. 뒤늦게 바로잡으려 해봤지만 이미 속수무책, 전혀 수업을 할 수 없었다. 교사의 생명은 수업인데 수업을 못하니 도저히 살 수가 없었다. 패배감, 절망감, 자괴감이 나를 짓눌렀다. 그렇게 1년을 보내면서 반전을 꿈꿨다.

먼저 학생들에 대한 규정이었다. 결코 큰소리치고 다그친다고 될 일이 아니다. 따뜻하게 손잡고 안아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수업에 있어서는 교실 구조를 바꾸고, 핸드폰은 절대 눈에 띄지 않게 하고 필기할 수 있는 자료를 만들어 나눠주자, 그리고 매시간 하나라도 숙지하게 만들자고 결심했다.

그런데! 이렇게 다짐하고 들어간 첫 시간에 ‘빠구리’ 소릴 들었으니…. 그러나 수업에 실패한 지옥을 경험했던 터, 결코 여기서 물러날 수는 없었다. 내가 살아야 하니까. 또 수업을 못하게 되면 내가 죽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먼저 핸드폰, “수업 시간에 내 눈에 띄면 1주일간 압수다”라고 했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책상 밑에서 사용하고 있었다. 학생에게 다가갔다. “이리 줘” “왜요?” “수업시간에 못쓰게 돼 있잖아” “그런게 어딨어요 못줘요” “줘!” “못줘, 씨발!”

결국은 교무실에 가서까지 실랑이를 벌여서야 기어이 내 손에 핸드폰을 쥘 수 있었다. 그렇게 두 번하고 나니 수업 시간에 핸드폰 사용하는 학생이 없어졌다. “아, 되는구나!

교실에서 자는 학생들은 등 두들기기, 손잡고 깨우기 등의 방법을 동원해 일단 다 깨워놓았다. 100%를 목표로 했다. 한명이 고개를 처박고 있다. 가까이 다가가 손을 잡았다. 손을 뿌리친다. “나 좀 내버려둬 귀찮게 하지 말고.” 화가 머리끝까지 올랐지만 참았다.

“난 너를 공부시킬 의무가 있어. 그러니까 널 공부 시켜야 겠어.” “그딴 거 필요 없으니까 저리 가버려요.”

한 학생은 “선생님은 작년엔 이렇게 안 했잖아요”라고 볼멘소리를 했다. “그래, 작년에 그렇게 잘못했으니까 올해는 열심히 해보려고 한다”고 답했다. 결국 실랑이 끝에 한 시간에 하나만이라도 알고 지나가자고 합의하기도 했다.

수업 내용을 프린트해 매 수업시간 나눠줬으나 학생들은 보관하지 않고 버렸다. 마침 교과교실제 지원금에서 교재 제작을 해준다고 해서 프린트물을 묶어 한 학기 분 공책을 만들었다. 이름 하여 ‘재미있는 수업을 위한 공책’. 죽어라 공부하기 싫어하는 학생들에게 죽어라 뭔가를 알려 주려고 만들었기 때문에 취지와 과정을 소개하는 것이 의미 있을 것 같았다.

수업의 처음은 ‘TV동화 행복한 세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대신했다. 학생들에게 따뜻한 인간성을 키워주는데 최고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용을 중심으로 수업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책상을 큰 네모 형태로 배열했다.

나도 한쪽 자리에 앉아 학생들과 같이 대화하며 수업을 진행하고 싶었다. 그러나 학생들의 입은 얼어붙었다. 궁여지책으로 생각한 게 초코파이다. 학생들은 항상 배가 고프다. 그래서 매시간 4, 5개를 상품으로 걸고 발표를 하는 학생들에게 줬다. 입만 벙긋해도 줬다. 지금은 초코파이에 눈 먼 학생들이 나름대로 자기 견해를 발표하고 있는 상황이다.




공부란 무엇인가. 많은 학생들이 교과시간에 교과서로 하는 것만이 공부라고 착각하고 있다. 하나에 대해 다양한 관점에서 접근하며 앎을 넓혀가는 것이 진짜 공부다. 가장 좋은 방법은 신문이다. 기사를 스크랩하든지 1면을 소개하는 시간을 통해 학생들과 다양한 얘기를 주고받고 싶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활발한 대화가 오가지는 못했다. 그래도 관심 있는 이야기가 나오면 호기심을 드러냈다. 그것으로 만족했다.

본격적인 수업에 들어가면 학생들은 정말 관심이 없다. 그래서 내용에 치중하기보다 꼭 알아야 하는 것만을 집중적으로 강조하고 반복해 익힐 수 있게 하려고 노력했다. 수업준비에 공을 많이 들였다. 마인드맵을 활용하고 한글과 PPT를 연결해 집중도를 높였다.

수업은 비교적 일찍 끝내고 남는 시간엔 일일이 돌아다니며 공책에 서명을 했다. 그리고 오늘 이것만은 꼭 알자고 강조했던 내용을 물어봤다. 졸았던 학생들도 기어이 한두 가지라도 대답할 수 있도록 반복해 질문했다.

학년 초에 학생 중 하나는 “나는 공부 해본 적도 없고 해도 몰라요. 그러니까 가만 놔두 세요”라고 했다. 그래서 “좋다. 네가 자도 상관 안할 테니 매 시간 한 가지는 알고 가자”고 제의했고 마지못해 하면서도 따라했다. 그 학생이 이번 2학기 1차 시험에 90점을 넘겼다. 그 좋아하는 얼굴! 이것이 바로 교사로서의 보람이 아닐까.

교사의 역할 중 담임도 매우 중요하다. 지난해 충격을 준 여학생 5명 중 2명을 담임하게 됐다. 걱정이 컸다. 애들을 내쳐야 하나 끌어안아야 하나. 그 사건 후 한 번도 얼굴을 마주치지 않고 피했는데 담임을 맡았으니. 명단을 집어든 순간부터 고민이었다. 그런데 그 중 한 명이 먼저 전화를 걸어왔다. “선생님이 담임선생님이 되셨네요. 한 해 동안 잘 부탁드려요.” 얼마나 감사하고 기쁘던지. 버려도 될 학생은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작년에 맡았던 아이들 반절이 다시 우리 반이 됐다. 가정환경을 조사하며 많은 아이들이 비극의 주인공처럼 어려운 상황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어찌 이 학생들에게 문제가 많다고 돌을 던질 수 있으랴. 어찌 무기력하다고 비난할 수 있으랴. 담임인 내가 곁에 있어야지. 끌어안아야지.

해마다 몇 번씩은 가던 출장을 끊었다. 주말 활동을 다 접고 아이들에게 전념하기로 마음먹었다. 올해 아들 둘이 수술을 했는데 공교롭게도 아내도 수술실 입회를 못할 사정이었다. 내가 가야 했지만 반 아이들을 놓고 갈 수가 없어 참관을 포기했다. 물론 학교에 있다고 해도 애들 얼굴 한 번 더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같은 울타리에 있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였다.

또 최소 하루 두 번은 손을 잡자했던 약속을 꾸준히 지키고 있다. 조회에 들어가면 쓸데없는 잔소리 대신 한명 한명에게 돌아다니며 손을 잡는다. 종례 때도 일일이 손 한번 부딪치며 하교 시킨다. 손을 잡자는 것은 학생들과 나 사이에 끈끈한 정과 믿음을 심어주는 방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교사다. 최소한 학생들 앞에서 당당해야 한다. 완벽한 인간이어야 당당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실수는 많을지라도 노력하고 마음 속 깊이 학생들을 사랑하는 교사가 당당한 교사다. 비록 아직 무능하지만 그래도 ‘나는 교사다!’라는 생각으로 학생들과 나 자신에게 당당한 교사가 돼야겠다. 그리고 그런 교사가 되는 것을 내 인생의 목표로 삼고 있다.

수업시간에 두 개씩이라도 각인시키고 조‧종례 시간 두 번만이라도 손을 잡아주며 지내다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인생 최고의 목표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오늘 하루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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