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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2014 교단수기공모 금상>쾌쾌한 냄새에서 향긋한 미래로

‘쾌쾌한 냄새, 지저분한 매트, 먹다 남은 음식물 쓰레기, 담뱃재 냄새….’

우리 반 학생 기적(가명)이의 집 원룸의 모습이었다. 도저히 사람 사는 곳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상태였다. 지금도 뇌리에 선명한 끔찍한 모습을 다시 그리자니 마음이 좋지 않지만, 우리 기적이의 ‘기적’ 같은 삶을 그리고자 할 때에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2011년 3월. 새학기가 시작되고 신입생들의 입학식 날이었다. 아직 날씨가 풀리지 않아 쌀쌀했지만 학생들은 부푼 꿈을 안고 등교했음에 틀림없다. 우리 반에 배정된 아이들 중에는 복학생이 2명 있었고 옆 반에도 2명이나 됐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들은 인문계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자퇴한 아이들이었다.

처음부터 기적이가 내 눈에 띈 것은 아니었다. 그동안 맡았던 학생들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다. 눈은 컸고 아주 귀여웠다. 선생님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 아이 같기도 했다. 이 아이에게 엄청난 시련이 있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모든 학교가 그렇지만 학년 초 담임교사는 학급 아이들의 가정환경을 파악하고 학비지원을 받아야 할 아이가 있는지 확인하느라 일이 바쁘다. 가뜩이나 수업시수가 많아 힘든데 그런 일들로 더욱 바빠져야만 마음은 바빴고 늘 정신이 없었다.

수업이 없는 시간에는 수업준비를 해야 하지만 그렇게 되면 학생들의 하교 시간이 늦어지기에 비는 시간을 이용해서라도 학생들과 상담을 계속했다. 몇 몇 아이들이 학비지원을 받아야 하는 실정에 있었다. 우리학교는 특성화고로서 수업료는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지만 급식비와 운영회비 등 나머지 학비도 만만치 않았다. 사각지대에 있는 학생들이 있었다. 가정환경은 어려운데 신청할 상황이 안 되는 학생들, 그리고 기적이 같이 신청해 줄 부모님이 없는 경우도 있었다.

기적이는 초등학교 때부터 부모님이 별거했다. 서류상으로 이혼을 할 정도로 한가한 집안 분위기는 아니었고 기적이와 형제들이 부모님 없는 집을 지키며 살아야 했다. 아버지의 알코올 중독과 어머니의 가출, 누나의 가출이 이어졌다. 아버지도 일을 찾아 어디론가 가셔서 생활비만 겨우 부쳐주신다고 했다. 직접 연락은 할 수 없었고 아버지가 가끔 연락을 취해오는 형편이었다. 아버지는 나중에라도 만나고 싶었지만 만날 수 없었다. 일용직으로 하루하루 살아가시는 모양이었다.

이런 와중에 형은 고교를 중퇴하고 일을 다니고 있었으며 동생인 기적이만큼은 학교를 무사히 마치도록 도와주고 싶어 했다. 기특했다. 그러나 고졸학력도 갖고 있지 않은 청소년에게 얼마나 좋은 직장이 기다리고 있을까. 거의 막노동에 가까운 일들이었다. 서류상으로 정리가 안돼서 그런지 기적이는 학비지원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행정실 직원도 안타까워하면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담임추천이라도 넣어보라는 메시지만 남겼다.

이제 기적이를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은 심도 있는 상담을 통해 과거사를 기록하고 선처를 구하는 것이었다. 우여곡절을 담은 추천서를 작성하게 된 것은 기적이가 사는 집을 다녀온 뒤였다. 조그마한 원룸이었고 학교근처였다. 앞서 말한 대로 정말 폐허였다. 그 곳에서 형과 단 둘이 살고 있는 기적이는 의지도 없고 지원도 못 받는 불쌍한 아이였다. 더욱 안타까운 상황은 이제는 담임추천으로도 학비지원을 받을 수 없게 된 것이었다. 학비지원금 예산이 줄어들었다는 것이었다. 기적이보다 더 어려운 학생에게 이미 배정된 것이다.





이대로 1년 동안 학업을 하기에는 너무 힘들게 뻔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기적이는 1년 내내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을 정도로 일을 하기에 바빴다고 했다. 만 16살도 안된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정해져 있다. 공부를 하는 것 자체가 사치에 불과할 정도였을 것이다. 학교에 다닐 수 있는 것만으로도 정말 다행이었다.

기적이는 한동안 학교생활에 별 일 없이 지냈다. 체험활동 때면 응원을 적극적으로 했고 반장보다 더 열심히 반을 위해 노력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자신감이 생겼는지 학생들을 이끌려는 모습도 많이 보았다. 그런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러다가 옆 반 담임선생님에게 상의할 일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기적이가 자신에게 대들었다는 것이다. 또 한 번은 우리 반 복학생과 싸우는 일까지도 있었다.

1학년으로서는 있을 법한 일이지만 이런 일이 연속으로 한 사람에 의해 일어난다는 것은 심각한 일이었다. 기적이는 남을 용서하는 법이 없다. 또한 자기 안의 분노를 다스리지 못해 스스로를 억압하기도 했다. 그 이후에도 여러 번 교과 선생님에게 버릇없게 행동했고 심지어 담임인 나에게도 그렇게 했다. 무엇보다 자존심이 상했던 것은 기적이가 여러 아이들 앞에서 나를 그렇게 대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믿지 못했는데 막상 나에게 이런 일이 벌어지고 나니 기적이가 괘씸했다.

2학기가 되자 기적이는 더욱 심해졌다. 자신이 좋아하는 선생님에게는 깍듯이 예의를 다하는 장면을 여러 번 봤다. 하지만 자신이 싫어하거나 무시해도 된다 싶은 선생님에게는 오히려 그 반대로 했다. 친구들에게도 하지 못할 폭언을 교사에게 서슴지 않고 발설했다. 기적이 때문에 학급운영에 어려움을 겪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기적이는 이런 일의 원인을 상대방에게만 돌렸다. 어차피 부모님과 연락도 되지 않아서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해야 했다. 그런데서 분노가 더욱 일었던 것 같다.

1학년 말, 기적이의 학교생활은 중학교 시절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 등 자유시간이 오면 무조건 급우들과 놀기에 바빴다. 공부와는 담을 쌓은 듯 했다. 자신을 건드리는 사람에게 폭언을 일삼는 것이 비일비재했다. 그런 상황에서 면담을 하는 것도 힘든 일이었다. 오늘은 어느 선생님이 나에게 상담을 요청할까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따끔하게 하지 못하는 내 자신이 한심하게 여겨졌다. 기적이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 알고 있기에 더욱 그랬다. 만감이 교차했다.

그러는 중 2학년 반배정이 있었다. 기적이는 부담스러운 존재가 돼버렸다. 기적이 때문에 다른 학생들에게 신경 써 주지 못했던 것이 못내 아쉬웠다. 계속 데리고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불행 중 다행인지 성적순으로 반배정이 된 것을 확인한 순간 안심이 됐다. 기적이가 옆 반으로 배정됐던 것이다. 그렇게 1년을 헤어져서 보냈다. 어차피 같은 계열에서 공부를 했기에 내가 가르치는 수업시간에는 잘 따라하는 모습을 봤다. 우리 반이 아니었고 나에게 반항을 했던 아이었지만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내가 너무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었다.

3학년에 기적이는 다시 우리 반에 배정됐다. 기적이는 지난 1년 동안 학교에서 하는 방과 후 반에는 모두 들어가서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보았다. 목표가 생겼는지 여러 가지 책도 들고 다녔다. 다행인 것은 기적이를 방해하는 아이들이 없었다. 기적이가 어떤 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더욱 다행인 것은 기적이가 자신의 미래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다른 학생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기분이 더욱 좋았다.

3학년 초 기적이는 반장선거에도 출마했지만 아쉽게 부반장이 됐다. 다른 아이들보다 더욱 열심히 하라고 격려도 많이 해줬다. 다행히 담임추천으로 학비지원을 해줬다. 급식도 지원받을 수 있었다. 혹시나 해서 시에서 주는 ‘생활장학금’도 신청했고 이 혜택도 누릴 수 있게 됐다. 기적이는 이 장학금으로 공무원시험 때까지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었다.

기적이는 대기업 및 공기업에 지원했다. 자신이 그만큼 준비됐다고 생각했던 것 같았다. 하지만 거듭되는 낙마 속에 기적이는 공무원시험에만 올인하기로 했다. 잘 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내신이 많이 안 좋아서 부족한 부분을 빨리 보완하고 다른 학생보다 두 배는 노력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선생님, 어제 3시에 잤어요. 지금 정신이 몽롱해요.” “선생님, 알람을 못 들어서 늦었어요. 죄송해요.”

이렇게 말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기적이는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잘 알고 있었다. 다른 학생들보다 배의 노력을 해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선생님, 다 외워버리는 게 편해요. 어제도 2시간밖에 안 잤어요.”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었지만 여전히 기적이는 내면의 분노와 싸워야만 했다. 자신이 왜 그런지도 잘 모를 것이다. 3학년 때에는 형이 군대에 갔기 때문에 누나와 같이 살게 돼 누나와만 여러 번 통화를 해야 했다. 교사로서 더욱 걱정이 됐다. 공무원이 될 아이가 아직도 사람들과의 관계를 해결할 마음자세와 정서가 갖춰지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래도 계속 격려했다. 그리고 하는 말, “겸손하자, 겸손해야 사회에서 인정받는다.”

“선생님, 제 이름이 있어요. 제가 합격했어요. 엉엉~”

“기적아, 장하다. 정말 자랑스럽다. 그동안 수고 많았다. 네가 열심히 한 덕분이야. 알지? 끝까지 겸손하자.”
“네, 선생님!”

기적이는 기적처럼 기적을 일궈냈다. 솔직히 나도 기대하지 않았다. 시험 직후 부장선생님, 옆 반 선생님과 나는 아이들을 교문 쪽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학생들은 먼저 나왔는지 집에 가고 우리 아이들은 다 같이 나오는 모양이었다. 만나서 어땠는지 물어보니 아무 말이 없었다. 당황스러웠다. 기적이는 그 아이들 틈에서 머릿속으로 계산을 하는 모양이었다. 이미 기적이는 밤낮을 가리지 않는 공부 덕분에 집중력이 많이 향상됐고 기억력 또한 뛰어났다. 점수를 맞춰보더니 가산점까지 해도 0.2점 정도 부족하다는 말을 했다.

“아직, 발표하기 전까지는 시간이 있으니 기다려보자.”
“네, 선생님”

기적이는 결국 간소한 차이로 합격의 영광을 누렸다. 모두가 기대하지 못했다. 놀란 것은 당연했다. 중학교에서 가장 낮은 점수로 입학한 아이가 정말 기적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기적이는 이러한 과정 때문인지 아이들의 롤 모델이 되고 있었다. 교육청에 가서 발표도 했다. 발령을 받은 후에는 모 여성잡지에 기사도 나왔다. 최근에는 해당 구청에서 우수공무원에 뽑히는 영광도 누리기도 했다.

기적이가 기적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과거의 모습 때문이었지만 지금은 향긋한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다. 나는 기적이를 믿는다. 그의 소박한 꿈은 아빠, 엄마, 누나, 형, 그리고 기적이 모두 한 집에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고 한다. 나는 그 꿈이 이뤄지길 소원한다. 기적이는 이제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위해 기부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의 삶이 향긋해 보인다. 아니, 더욱 찬란해지길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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