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교육부는 지난해 9월 대도시 근교 열악지구 중 `교육우선지구'(ZEP) 내 고교(우리로 따지면 `기피고교'쯤 된다) 교사, 고교생, 학부모의 학습의욕을 높이고 사회계층간 교육 불평등을 타파하는 획기적인 시도를 단행해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바로 교육우선지구 내 7개 고교에서 17명의 학생을 선발해 프랑스 최고 명문대학인 `시앙스 뽀'(Sciences-po : 13개 정경학교의 통칭)와 계약을 체결해 무시험 입학시킨 것이다.
특히 프랑스 최고 권위의 파리 정경학교(IEP)는 이 시책에 호응해 2001년에 열악지구의 몇몇 고교들과 무시험 입학을 골자로 한 `우선교육협정안'까지 체결했다. 파리 시앙스 뽀는 장래 프랑스 정경계의 최고 엘리트를 배출하는 명문 중의 명문이다. 따라서 입신을 꿈꾸는 전국 최고의 두뇌들이 몰려 시앙스 뽀의 입학 꽁꾸르는 경쟁이 치열하기 짝이 없다. 그러한 학교에 환경이 너무 열악해 정상적인 교육이 불가능하다는 교육우선지구 고교생들을 교사 추천에만 의거, 입학 꽁꾸르를 면제해주고 전격 입학시킨 것은 모든 관념을 뒤엎는 사건이었다.
이 같은 조치로 학년초 교육계는 크게 술렁거렸다. 반대론자들은 "특정지구 학생에 한해 공정해야 할 입학시험을 면제해주는 것은 평등의 원칙을 파괴하는 것이며 국가 엘리트를 양성해온 시앙스 뽀의 공신력과 질을 저하시킬 것이다" "경쟁을 뚫고 들어온 학생들의 명예를 떨어뜨리고 심지어 우수 학생들을 다른 곳으로 유출시키는 조치"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더욱이 이번 시책에 적극 호응한 파리 정경대학교 총장도 "시험 면제로 입학한 학생들이 우수 학생들 사이에서 자연도태 될 경우 새로운 계급편견을 촉발시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런 우려 속에 6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현재 모든 이의 관심은 교사 추천만으로 입학해 최고의 엘리트들과 함께 경쟁하고 있는 열악지구 학생들의 학업이수 결과에 쏠리고 있다. 완전한 결산이야 이들이 5년간의 학업을 끝마칠 때 가능하겠지만 지난 3월 20일 파리정경학교가 공식 발표한 이들 특혜입학생들의 학업성취에 대한 1차 결산은 매우 긍정적이다.
이에 따르면 교육우선지구 출신 대학생들은 시앙스 뽀에서 순조롭게 적응하고 있다. 17명 중 5명은 학급대표위원으로 선출됐고 학업이수 성적도 다른 학생들과 견줄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17명 중 14명은 취득한 이수학점이 충분해 1학기(9월∼다음해 2월) 수업을 성공리에 마친 것으로 발표됐다.
또 파리 정경학교 측은 "애초의 우려와는 달리 2002학년도 입학 경쟁률이 오히려 20%나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에 성공적으로 첫 입학생을 낸 파트너 고교의 교사들도 자축하는 분위기다. 파리북쪽 근교의 Aulnay-Sous-Bois에 있는 Jean-Jay고교의 Samuel Hadjouel 교장은 "시앙스 뽀에 들어간 우리 학생들이 성공적으로 적응하면서 학교 생활에 아주 만족하고 있습니다. 무시험 추천 입학 정책이 자리를 잡았다고 봅니다"라고 평가했고, Blanqui de Saint-Quen고교에서도 "우리 학생들이 아주 경쟁력이 있어요"라며 자랑스러워했다.
한편 Fameck 지역의 Gilbert Lang 교장은 "이러한 시책의 성공은 학생들을 발굴하고 지도한 교사들이 훌륭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현재 각 계약 고교에서는 올 9월 신 학년에 추천 입학시킬 학생들을 선발하는 시험이 한창 진행중이다. 프랑스 교육부는 엘리트주의의 상징인 시앙스 뽀가 ZEP 계약의 실천을 통해 `학교구성원의 계층적 다양화'라는 학교정책을 계속 강화해 주길 촉구하고 있다. 더욱이 프랑스 정부는 이런 시도를 확대하려고 정부-대학간 4년차 계약체결을 진행 중인데 2002년 신 학년도에는 이러한 프로모션을 파리 근교와 프랑스 동부지역에 한해 44개 ZEP 군에 속한 13개 고교로 확대할 방침이다.
하지만 기타 지방의 정경대학들은 이 시책을 `불합일치를 강요하는 과격한 정책'이라며 반대하고 있어 정책 확대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런 이유로 프랑스 정부는 올해 엑스 마르세이유와 보르도 정경대학과의 계약체결을 원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고 릴르, 몽펠리에, 루앙 지역의 정경학교들과도 2003년 9월에나 계약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 교육부가 단행한 `무시험 추천 입학'은 이민으로 사회 저층계급이 급증하면서 계층간 불평등과 각종 사회문제가 파생되고 있는 현 상황을 극복하려는 하나의 시도로 평가된다. 사회 저층계급의 몇몇 우수 학생들에게 사회적 상승의 실질적인 기회를 제공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러한 시책에 민감하게 반응한 중산층의 학부모들이 시앙스 뽀 특혜입학을 노려 자녀들을 평소 기피하던 ZEP 군 학교에 입학시키는 지역 선호 역류현상이 나타나고 있어 사회 계층간의 원활한 혼합과 공존이라는 부수적인 효과도 기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