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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2002 교원문학상> 동화 가작- 돼지불고기

"야! 오늘 점심 끝내주겠는데……"
"메뉴가 뭔데?"
"너 오늘 메뉴가 뭔지 급식소에 적힌 것도 안 봤냐?"
"넌 그런 것만 보고 다니냐? 배고프면 아무거나 먹는 거지."

점심 시간이면 항상 곱빼기로 먹는 영재는 급식 메뉴에 관해서는 줄줄이 꿰고 있었다. 하긴 오늘은 3교시부터 급식소에서 맛있는 냄새가 솔솔 바람을 타고 활짝 열어놓은 교실창을 널름거리고 있었다.

"오늘 불고기야! 돼지 불고기!"
'아, 그 냄새였구나.' 하고 생각하는 순간,
"진영재. 일어 서."

선생님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아이들의 눈이 영재에게 모였다.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냐?"
"예. 돼지 불고깁니다."

영재에게 모인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어디 불고기 파티라도 벌어졌냐? 갑자기 불고기 타령이게?"
"아닙니다. 오늘 점심 메뉴에 돼지 불고기가 나오는 날이거든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교실을 한바탕 흔들어 놓았다.

"영재야, 먹는 것 생각하는 시간에 공부를 해서 이름값 좀 하자. 그러다가 둔재 되면 어떡하니?"

다시 교실에 웃음 폭탄이 터졌다.

"좋아요. 점심 시간이 거의 되었으니 아직 못 푼 문제는 숙제로 해오기로 하고, 손 씻고 복도에 모이도록 하세요. 돼지 불고기를 먹으러 갑시다."

돼지 불고기라는 말에 힘을 주어 말씀하신 선생님께서 빙그레 웃으셨다.

"만석이니? 공부 잘 하고 왔니?"

돼지우리 쪽에서 내가 돌아온 것을 확인한 엄마는 큰소리로 외치셨다.

"네."

여느 때 같으면 돼지우리로 달려가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며 엄마와 시간을 보냈겠지만 곧바로 안으로 들어섰다.

잠시 후 엄마는 수돗가에서 손을 대충 씻으시고는 마루로 올라오셨다.

"오늘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니? 친구들하고 싸웠니?"

컴퓨터 앞에 앉은 나에게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씀하셨다.

"아니에요. 아무 일 없었어요."
"그런데 왜 그냥 안으로 들어왔어? 우리 아들이 어디가 아픈가?"

엄마의 축축한 손이 머리를 짚는 순간 그만 말을 해 버릴 뻔했다.

"아뇨. 그냥 좀 피곤해서요."
"그랬구나. 어서 씻고 숙제해야지."

주방으로 들어가시는 엄마를 잡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입술을 꼭 물었다.

'엄마, 그게 아니에요. 그런 게 아니에요.'

가슴이 더욱 조여왔다.

아버지께서 집 마당에 돼지우리를 짓고 돼지를 키우기 시작한 것은 재작년의 일이었다.

"만석아, 넌 열심히 공부해서 출세해야 한다. 이 애비는 배운 것이 없어 농사밖에 할 줄 아는 것이 없어. 내 말 명심하고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늘 입버릇처럼 하시는 말씀이었다. 그 말 때문은 아니지만 고등학교에 다니는 큰누나는 항상 반에서 1등, 작은누나도 3등 안에 들고, 나 역시 반장을 맡아 열심히 생활하고 있다. 공부는 중간 정도지만 아이들은 나를 많은 표 차이로 반장으로 뽑아 주었다.

"만석이는 친구들 사이에 의리가 있고, 정의감이 강합니다. 그래서 반장으로 추천합니다."

영재가 나를 반장 후보에 추천하면서 하던 말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정의감이 있으면 뭘 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데……."

얼마 안 되는 논농사와 밭농사로는 우리들의 학비를 대는 일이 어렵다고 생각하신 아버지는 동네에 새로 생긴 목재소에 다니시며 틈틈이 농사를 지으셨다. 그러던 중 쌓아놓은 나무들이 쓰러지면서 아버지를 덮쳐 허리를 못쓰시게 되었고, 결국은 목재소 일도 그만 두게 되었다. 그 해 가을에 집 마당에는 지금의 돼지우리가 자리를 잡게 되었다.

"만석아, 오늘은 엄마하고 둘이 저녁 먹어야겠구나."
"아버지는 어디 가셨어요?"
"그래. 읍내에 나가셨는데 늦을 거라고 전화를 하셨구나. 누나들은 8시가 넘어야 올 테니까 둘이 먹자꾸나."
"읍내에는 왜요?"
"돼지 때문에……."

다른 때 같으면 힘든 밭일에, 돼지우리 청소하는 일에 힘이 드셔서 저녁 식사를 맛있게 드실 엄마가 오늘은 반찬도 드시지 않고 물에 말은 밥을 멍하니 드시고 계셨다.

"엄마, 어디 아프세요?"
"응? 아니, 아니다."

내 말에 정신을 차리신 듯한 엄마는 다시 오늘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으셨다. 더 이상 마음을 감추고 싶지 않았다.

"돼지 불고기 때문에 그랬어요."
"뭐? 돼지 불고기? 불고기가 먹고 싶었구나."

엄마의 얼굴에 잠시 어둠이 깔렸다.

"만석아, 내일은 학교 끝나면 곧바로 집으로 오거라. 불고기 파티를 해야겠다."

'그게 아니에요, 엄마.'

더 이상 엄마의 얼굴을 바라볼 수가 없었기에 밥상에서 일어섰다.

"아니, 왜 더 먹지 않고……."
"그만 들어가 숙제하고 쉴래요."

엄마가 자꾸 물어오는 말을 피하기 위해 거짓말로 둘러댔다.

"선생님, 질문 있습니다."
"반장, 무슨 질문인지 말해 보세요."

점심을 먹고 난 5교시 사회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뱃속을 채워준 든든한 점심 식사와 남쪽으로 난 창으로 내려 쪼이는 햇살에 졸음과 씨름을 하는 듯 눈을 껌뻑이고 있었다.

"선생님, 우리 나라도 이제는 다른 나라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처지가 되었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런데요?"
"다른 나라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돼지고기 값이 오른다고 고기를 수입해서 가격을 떨어뜨리면 돼지를 키우는 사람들은 살아가기가 어려워지는데 이게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까?"

한참을 대답하지 않고 계시던 선생님께서 천천히 입을 여셨다.

"반장의 생각이 어떤 것인지는 잘 알았어요. 지금부터 왜 우리 나라가 다른 나라에서 고기를 수입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에 대해 이야기를 할 테니 잘 들으세요."

졸음과 씨름하고 있던 아이들의 눈동자가 커지기 시작했다.

"몇 년 전 우리 나라는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함께 모인 국제 회의에 참석한 일이 있었어요. 그 때 그 회의에서 결정된 내용 중에는 우리 나라의 고기 시장을 조금씩 개방한다는 것도 있었어요"
"고기 수입을 개방하면 우리 나라의 축산농가는 살 길이 어려워지는 것 아닌가요?"
"맞아요. 하지만 우리가 고기와 쌀의 수입 시장을 개방하지 않으면 우리 나라는 많은 수출품을 외국에 내다 팔 수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 의견에 따르게 된 것이에요."
"그럼 농민들은 희생해도 된다는 말씀 아닌가요?"

아이들의 눈동자가 나와 선생님을 번갈아 바라보며 호기심에 찬 얼굴로 변해 가고 있었다.

"그 일은 정부로서도 어쩔 수 없었던 일이었나 봐요. 물론 정부에서 그 일로 인한 우리 나라 농가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여러 가지로 애를 쓰고 있어요."
"선생님, 이제 그만 설명하세요.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했습니다."

나는 선생님의 말씀을 끊으며 자리에 앉았다.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싱겁게 끝났다는 듯 아이들은 이내 자기들끼리 수군거리고 있었다. 잠자리에 누워서도 사회 시간의 일들이 또렷이 떠올랐다.

"여보, 군청에 돼지를 끌고 가 항의해 보았지만 그게 어디 내 힘으로 될 법이나 한 일이요. 그래서 생각인데 내일은 동네 어르신들 모시고 사람 노릇이나 한 번 해 봅시다."

아버지의 술에 취하신 듯한 목소리를 아련하게 들으며 잠 속에 빠져 버렸다.

"동네 어르신들, 어서 오십시오. 이 놈이 못나서 변변히 약주 대접 한 번 못해드렸습니다. 오늘은 그동안의 제 허물을 용서하시고 즐겁게 드시고 노시다 가십시오."

마당에 자리를 펴고 그 위에 펴놓은 상에는 많은 음식들이 놓여 있었다. 아버지는 동네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에게 술을 따라 주시며 바쁘게 다니셨다. 엄마가 동네 아주머니들과 음식들을 나르시다가 나를 발견하셨다.

"만석이도 어서 안으로 들어가 불고기 먹어라. 오늘은 그동안 엄마가 해주지 못한 불고기 실컷 먹게 해 주마."
하는 수 없이 방으로 들어왔다. 방 한가운데에는 잔칫상과 다름없는 음식들이 차려져 있었다. 그 많은 음식들 중에 오직 나의 눈을 끄는 것은 다름 아닌 돼지 불고기였다. 다른 나라와 함께 어울려 살아가기 위해서 나라의 문을 열어준 그 돼지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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