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1950년대 도입됐던 지방자치제는 1990년대 다시 시행돼 이제는 어느 정도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고 있으나 지방교육자치제는 아직도 초기 단계에 머물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시행되는 교육감 선거는 주민직선제를 통해 주민 전체에게 교육문제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공론화시켜 교육발전을 도모하겠다는 취지로 시작됐다. 그러나 애초 취지를 무색케 할 정도로 저조한 투표율과 주민들의 무관심으로 선거 비용 및 정책 부재 선거 문제 등이 대두됐고, 선거 과정에서 정당이나 단체 등의 음성적인 지원 문제로 교육감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또 관련 공무원들의 사전선거운동이라든가 이해관계자로부터 모금된 부당한 정치자금 등의 문제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심지어 교육감 입후보자들이 교육현장을 찾기보다는 교육과 무관한 일반 행사나 이벤트에 참석해 얼굴 알리기에 전전하는가 하는 등 궁극적인 교육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토론이나 연구는 사라지고 포퓰리즘 정책에 의존한 선거운동만 남게 됐다.
게다가 2010년 2월 개정된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이하 ‘지방교육자치법’)은 교육경력이 5년 이상 돼야 교육감이 될 수 있도록 한 규정을 2014년 6월 30일까지만 적용하도록 했다. 또 당적 보유 금지 기간을 2년에서 1년으로 완화했다.
이에 따라 내년 6월 4일 전국동시 지방선거부터는 교육경력이 없어도 교육감 후보로 나설 수 있다. 교육의원은 일몰제(일정 기간이 지나면 제도 효력이 자동 상실되는 제도)에 따라 더는 선출하지도 않는다. 교육경력이 전혀 없는 사람이 정치적인 의도만으로 교육감에 출마하고 이를 견제할 시·도 교육의원은 없어진다면 이것이야말로 지방교육자치의 후퇴가 아니고 무엇인가?
물론 다양한 경력을 가진 사람이 교육감에 선출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지만 과연 국가의 백년지대계라고 하는 교육을 그런 논리로 풀어간다면 우리나라의 교육이 어디로 흘러가게 될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할 것이다.
교육감의 자격 기준은 이미 여러 번 완화됐다. 1991년의 초기 지방교육자치법을 보면 교육감의 자격을 ‘교육경력 또는 교육전문직원 경력이 20년 이상 있거나 양경력을 합해 20년 이상 있는 자여야 한다’고 규정했다. 그 이후 1995년 개정 시 15년, 1997년 개정 시 5년으로 완화했다. 아울러 당적 보유 금지 조항도 애초 ‘정당원이 아니어야 함’에서 2000년 정당원 경력제한은 과거 2년으로, 2010년에 다시 1년으로 완화했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교육감의 자격 기준을 완화하긴 했으나 왜 굳이 교육감의 자격을 규정했는가이다. 교육감은 지방교육행정의 독립적 집행기관으로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교육 및 교육행정의 전문성과 정치적 중립성이 요구될 수밖에 없다. 과연 어느 정도가 그 역할의 전문성을 보장하는 최소한인가는 별도로 논의되어야하는 문제이지만, 문제는 그마저도 없앤다면 교육의 전문성 및 정치적 중립성을 어떻게 확보하겠느냐는 것이다.
교육계가 지방교육자치 실현을 부르짖고 있지만 중앙정부에 집중된 권한으로 교육정책의 독립성도, 재정권도 충분히 확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교육감의 자격 기준마저 없어져 버린다면 교육전문성을 상실한 교육감은 지역의 특성이나 지역민의 요구에 맞춘 독창적이고 다양한 교육정책을 수립하기는 커녕 정당의 요구에 부응하여 교육 현실은 외면하는 정당의 시녀로 전락할 것이다. 이제 교육감의 전문성과 중립성이 훼손된 소위 ‘정치교육감’의 탄생을 앞두고 있는 셈이다.
교육 현장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에게 전문성과 현장성은 결코 저절로 얻어질 수 없다. 그 지역의 특정한 교육현실을 잘 알고 그에 맞게 적절한 정책을 수립해 전문적으로 실행해 나갈 수 있는 교육감이 우리에겐 필요하며, 그런 교육감이라면 당연히 교육경력이라는 엄청난 무기를 보유한 사람일 것이다.
우리는 경제 논리로 교육 및 복지 문제를 풀어갈 때 어떤 상황이 발생했는 지 직접 봤고, 정당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행정가의 정책이 우리를 얼마나 힘들게 하는 지 경험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정치 논리로 교육을 계획하는 오류를 범하여 우리나라의 교육자치를 크게 후퇴하게 할 기로에 서 있다. 적어도 교육만큼은 외부의 세력으로부터 부당한 간섭을 받지 않고 멀리 보며 바른 방향으로 나갈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