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것만 혁신이 아닙니다. 시대가 변해도 유지·계승할 것을 찾아 지키는 것도 중요합니다. 다들 간판을 고쳐 다는데 우리만 옛것을 고수한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결국 모두가 떠난 이곳(상업)이 블루 오션이 됐습니다.”
올해로 개교 100주년을 맞은 서울여자상업고 김상기 교장은 “서울여상이라는 이름과 여성 직업교육의 설립 이념을 지키는 것이 우리의 ‘혁신’”이라고 강조했다. 다른 학교가 조리, 관광, 프로그래밍 등 다른 길을 찾아 떠나는 와중에도, 간판을 바꾸는 대신 교육 내용을 다듬고 교육 시스템을 고쳐 금융·통상·회계 분야 전문가 육성에 주력했다.
학교에 대한 세간의 판단 기준이 변하는 가운데에서도 서울여상은 묵묵히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 2018년 이후 8년간 취업 희망자 1520명 전원이 합격했고, 이들 중 절반 이상이 대기업과 공공기관에 들어갔다. 2024년 취업자 기준 평균 연봉은 성과급을 제외하고도 3400만 원을 넘겨 여느 대학 부럽지 않다. 또한 한 세기 동안 서울여상이 배출한 4만 2000여 명의 동문은 사회생활의 든든한 조력자다.
졸업 후 바로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은 소수다.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선취업 후학습’ 제도를 통해 더 나은 진학 기회를 가질 수 있어서다. 3년의 재직기간만 채우면 학업계획서, 고교생활기록부 등 서류 심사와 면접으로 대학에 진학할 기회가 주어진다. 정원 외 선발이라 합격 가능성도 상대적으로 높다. 퇴근 후 또는 주말에 수업을 듣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경력과 학력을 동시에 쌓는 이점은 크다. 일·학습 병행이 부담스럽다면, 재직 상태를 반드시 유지하지 않아도 되는 대학을 선택하면 된다.
2026학년도 서울 소재 4년제 대학 합격 인원은 중복 포함 총 614명으로, 241명이 등록까지 마쳤다. 주요 18개 대학에만 최근 3년간 1439명의 합격자를 배출했다. 범위를 수도권으로 넓히면 4년제 대학 합격자는 중복 포함 712명, 등록 인원은 278명에 이른다. 학년당 인원이 150명 안팎이니, 뒤늦게 진학을 선택한 기 졸업자를 감안해도 대단한 수치다.
서울여상은 금융투자과와 글로벌경영과 2개 학과를 운영 중이다. 1학년 때는 학과 구분 없이 공통 과정을 이수하고, 2학년 진급 시 전공을 선택한다. 금융투자과는 금융의 기본 원리를 이해하고, 경제 현상을 분석해 정부 정책이나 기업전략에 응용할 능력을 갖춘 금융 경제인을 육성한다. 졸업 후 진로는 정부 투자기관, 금융기관, 기업 금융 관련 담당자 등이다. 글로벌경영과는 실무 중심 교육으로 글로벌기업이 요구하는 실무 역량과 국제 감각을 갖춘 전문가를 배출하는 것이 목표다. 회계사, 세무사 등 전문직을 비롯해 인사·노무 전문가, 공무원 등 취업 분야가 다양하다.
서울여상은 지난달 22일 서울 대치동 포스코센터에서 열린 제20회 포스코청암상 시상식에서 교육상을 수상했다. 1926년 국내 최초의 여성 실업교육기관으로 설립된 이래 지난 100년간 시대에 맞춘 특화교육으로 여성전문인력 양성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특히, 산업체가 필요로 하는 실무형 인재를 길러내는 ‘선취업 후학습’ 모델로 학생들이 취업 이후에도 학습을 이어갈 수 있는 환경과 문화를 정착시킨 점을 높이 평가 받았다.
김상기 교장은 “서울여상은 지난 100년간 수많은 학생의 삶을 일으켜 세우며 여성 직업교육의 등불을 지켜왔다”며 “앞으로도 그 빛을 꺼뜨리지 않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