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직사회는 매년 말 교원평가의 일종인 근무성적평정이 이루어진다. 이는 승진 등을 위한 자료로 직접 활용되기 때문에 교사들의 초미의 관심사항이 되고 있다. 교원평가는 교원 개개인의 근무수행능력과 실적에 대한 모종의 가치를 판단하는 활동이기 때문에 좋든 싫든 간에 평가자의 주관이 개입될 소지는 언제나 열려있다.
작년에는 교원성과상여금을 지급하는 과정에서 평가체계의 문제점들이 그대로 노출돼 교원들간의 반목과 갈등을 초래하기도 했다. 교원평가 과정을 왜곡하는 문제는 어느 사회 어느 조직을 막론하고 있을 수 있는 보편적인 현상이기도 하지만 우리 교직사회의 경우는 사회·문화적 풍토에 기인하는 점이 상당하다. 따라서 올바른 교원평가를 위한 첫걸음은 교원평가 논의에 앞서 아래와 같은 교원 평가과정의 왜곡요인을 분석하고 제거하는 노력이 시급하다.
첫째, 교직사회의 평등주의적 의식구조다. 나눌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똑같이 나누고, 나누기 어려운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차례가 올 때까지 돌아가며 주고받는 것이 공평하다는 인식이 확산돼 있다. 평가자가 이러한 현실을 무시하고 승진 목전에 있는 교사를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평가해 승진후보에서 탈락시킬 경우, 상하좌우로부터 각종 저항과 비난이 쏟아지게 될 것은 자명하다. 이러한 풍토는 평가자로 하여금 관행을 따르도록 하는 압력요인이 되고 있다.
둘째는 만연한 온정주의 정서다. 평가자들은 특정 교사가 승진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그의 근무성적이 다소 부족하다고 하여 내가 좋지 않은 평점을 주어 남의 앞길을 가로막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인 정서다.
셋째는 평가자의 책임의식 결여다. 교직사회에서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한다는 것 자체는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통일성과 획일성이 중시되는 관료주의 행정체계에서 남과 다르게 행동하는 것은 매우 힘들뿐만 아니라 자칫 사회적 물의가 빚어질 경우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평가자는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함으로써 다수로부터 비난받거나 소수라 하더라도 비난의 정도가 심하여 자칫 물의라도 빚어지게 되면 그런 일을 하지 않은 것만 못한 것으로 판단하여 관행적으로 처리하게 된다.
넷째는 평가결과에 대한 비밀보장의 취약성이다. 교원평가는 평가과정에 평가자와 피평가자 간의 의사소통을 요구하지도 않고 그 결과 또한 비밀에 부치도록 하고 있다. 평가 결과의 비공개는 사회·문화적 관습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잡음을 제거하기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이다. 그러나 현실은 정의적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문화풍토상 비밀보장이 어렵다. 교사가 자신의 평가결과를 알려고 한다면 쉽사리 알 수 있어 교감과 교장은 교사의 기대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다섯째는 평가개념에 대한 합리적인 인식 및 전문성 결여다. 교원평가제도의 합리적 운영을 위해서는 평가자뿐만 아니라 피평가자도 평가 개념에 대해 바르게 이해해야 한다. 평가의 개념과 전문 지식이 제대로 정립돼 있지 않다면 평가에서 정작 중요시돼야 할 요소보다 그렇지 않은 요소들을 더 많이 반영하게 할 가능성이 높다.
여섯째는 교원평가의 변칙적 운영을 용인하거나 조장하는 시스템이다. 현실적으로 평가자는 법규상의 원칙보다 기존 방식대로 평가하는 것이 개인적 합리주의와도 부합된다. 평가자는 이러한 변칙적 운영의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고, 그 결과와 관련한 아무런 불이익이 생기지 않는다. 평가자가 교사의 근무성적평정의 결과가 어떻든 그로 인해 누가 승진을 하든 평가자와는 별 상관이 없는 일이다. 연공서열상 승진을 기대하는 교사들에게는 평점은 사활의 문제이다. 교감과 교장이 이러한 상황을 모른 체 한다는 것은 온정주의가 통용되는 우리의 정서상 칭송보다는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따라서 교원평가가 평가로서 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평가방법론상의 요건을 구비하는 것 못지 않게 평가과정을 왜곡하는 요인들을 제거하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 아울러 교원평가가 교직사회에서 올바로 자리매김 할 수 있도록 교원평가체제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교원평가 인프라 구축에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