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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창가에서> 작은 학교가 아름답다

달안초. 평촌 신도시 중심부에 위치. 16학급. 전교생 540명. 5층짜리 아담한 校舍와 넓은 운동장. 조용한 주변환경….

작년 3월 전보 돼 근무하는 우리 학교의 프로필이다. 처음 출근해 조회대에 섰을 때, 난 `신도시에 이렇게 작은 학교가 있다니…'라고 생각하며 시골학교 부임인사를 하고 있다는 착각이 들었었다. 그리고 걱정이 앞섰다. 첫 발령지였던 충북 제천의 6학급 학교에서 쏟아지는 업무에 주눅들어 3년을 보낸 경험이 있어서였다.

하지만 걱정은 잠시. 아이들의 차분한 발걸음과 한 달만에 익숙해진 전교생의 얼굴, 뛰지 않아도 되는 여유로움은 대규모학교였던 전임교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어린이날 소체육대회의 가족 같은 민속놀이, 두 반 밖에 안 되는 5학년의 느긋한 체험학습, 그리고 무엇보다 즐거운 건 쓰레기 없는 쾌적한 근무여건이었다.

물론 나름대로의 고충은 피할 수 없었다. 3, 4월만 지나면 바쁜 일도 자리가 잡혀 아이들 학습 및 생활지도에 전념할 수 있었던 큰 학교에서의 근무여건과는 참으로 달랐다. 쉴새없이 내려오는 업무와 문서처리, 행사준비 등등 할 일이 넘쳤다. 교사가 적으니 1인당 업무량이 많은 게 흠이지만 어디 우리 학교만 그렇겠는가.

달안초의 가을운동회는 마치 시골 잔치집 같았다. 잔칫집에 모여든 구경꾼과 손님, 일손들이 모두 하나 되어 사람 사는 정을 흠뻑 느낄 수 있는 달안골의 작은 잔치마당이었다. 시골 학교 운동회처럼 구수한 분위기에 신도시 학교라 행사 수준도 높고 참여도도 높으니 이석이조가 아닌가. 전교생이 500명이라 아이들의 무용과 재주가 파묻혀 빛을 내지 못하거나 자녀를 찾으러 아이들 속을 누비는 학부모도 없다.

작아서 소박하고 정감 있는 학교. 그것은 작은 학교 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다. 그런 우리 학교가 요새 급격히 학생수가 줄고 있다. 이웃 큰 학교와 공동학구로 지정돼 전학을 가 버리기 때문이다. 큰 학교에 보내야 큰물에서
노는 큰 인물로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안타깝다. 작은 학교에선 배울 게 없다고 생각하니 씁쓸하다.

2003년부터 학급당 35명을 맞추기 위해서는 더욱 많은 학교가 거대학교가 될 것이다. 이미 경기도 신도시 학교의 대부분은 커질 대로 커져 통제가 어려운 상태인데 학급수가 더 늘어나면 공룡학교들이 무더기로 생길 것은 불 보듯 뻔하다.

80학급이 넘는 신도시 학교에서 4년을 근무했었다. 교사 수가 많아 1인당 업무량은 달안초와는 비교할 수 없이 적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넘쳐나고 학교는 너무도 커 교사도 학생도 정신없이 돌아가곤 했다. 게다가 생활지도는 가장 힘든 교사의 업무가 돼 버렸고 아이들의 안전에 대해선 책임지기가 불가능했다.

초등 3학년인 아들이 다니는 학교도 70학급이 넘는 거대학교다. 교감선생님이 두 분이고 교사만도 100명에 가깝다. 한 층에 한 곳밖에 없는 화장실은 뛰어가야 10분내에 볼일을 볼 수 있고, 좁은 복도는 통로라기 보다는 시장골목을 연상시킨다. 도서실은 물론 없고 교사 연구실은 더더욱 기대하기 어렵다. 급식실도 만들지 못해 위탁급식을 하는 형편이라고 한다.

그리고 2003년 35명 정원을 맞추려면 이 학교는 20학급이 더 늘어나야 한다. 오로지 학급당 정원을 줄이기 위해 비껴서 다녀야 하는 복도와 뛰어서 다녀야 하는 화장실, 도서관 없는 학교, 운동장이 없어 체육시간에 타 학교 운동장이나 공설운동장으로 차를 타고 가서 체육을 하는 초등학교가 생길 것이다.

이런 학교에 자녀를 보낼 학부모가 몇이나 될 것이며, 90학급이 되는 학교에 교감이 3분이 되고, 교장이 2분이 된 들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급당 인원이 35명으로 줄면 공교육의 질이 극대화 될 것으로 언론이 기대하고 그래서 학부모들은 무조건 찬성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학교교육은 학급 교실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효과만을 생각하며 부작용을 보지 못해 고통을 안겨준 교육개혁 사례가 얼마나 많은가.

꼭 2003년이 아니면 어떤가. 1년에 1명이라도 줄여보는 노력은 어떨까. 조금은 늦춰보는 `느림의 미학'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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