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하지만 의미 있는 몇 가지의 변화가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듯하다. 기대와 우려 속에 시작된 2002학년도 대학입시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서 얼른 눈에 보이진 않지만 긍정적으로 평가될 만한 큰 변화들이 있다.
올 입시의 특징 중의 하나는 수시 입학제도였다. 특기와 적성 그리고 각자의 개성을 바탕으로 선발하려는 기본적인 목표가 우리에게 계속적인 기대를 갖게 하고, 심층면접이나 구술 또는 논술을 통한 인성과 적성에 따른 선발 방식도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앞으로도 발전적으로 정착시켜 나갈만한 입시 방향이라 하겠다.
전문대학이 일반 대학과 동시에 학생 모집을 하며 자신감을 드러냈고 높은 경쟁률로 위상을 높였다. 청년 실업의 위기 속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취업률이 자신감의 원천이었다. 또한 보다 전문화된 학과와 실질적 교육과정이 학생들의 선호를 받고 있다. 국가적으로 보아도 다행스러운 변화로서 높이 평가될 대학입학시험 양상의 변화인 것이다.
언론의 입시 보도에서 수석합격자를 찾아내서 낯간지럽게 찬양해대던 입시 풍토가 사라졌다. 수능에서 총점이 폐지되고 대학별 시험에서 한 줄 세우기를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들어지기도 했지만, 언론 스스로가 자제를 하고 있는 점도 높이 사야 할 조용하지만 커다란 입시 문화의 변화다. 향후의 대학 입학을 위한 학생 선발 방식에서 이러한 긍적적인 점은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3학년도와 2004학년도 입시 및 새 교육과정에 따른 2005 학년 도 이후의 입시를 위해서는 지금부터 보다 확실한 원칙에 합의하고 예측이 가능하도록 입시 관계자들이 함께 개선해 나가야 할 점들이 많다. 왜냐하면 입시의 변화가 생길수록 학생들의 고통은 비례하여 커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최근의 전반적인 경향은 대학의 자율적인 학생 선발권 확대이다. 교육당국이나 고등학교는 물론 학부모 모두가 당연한 것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대목에서 선발의 대상이 되는 학생들이 느끼는 입시의 고통을 줄여주고 가장 편안한 마음으로 수험준비를 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할 책임과, 나아가서 공교육을 중심으로 보다 창의적인 학생을 교육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할 책무가 대학 당국에 있다는 것도 분명히 인식하기를 바란다. 편안하고 창의적인 교육이 가능한 입시 문화-이것이 입시 관계자 모두가 우선적으로 고려할 입시 문화의 대원칙이다.
이러한 원칙을 바탕으로 입시에 관련된 각 교육주체들에게 요구되는 점은 무엇인가?
먼저 수시 입학에서 대학들이 개선해야 할 점이 있다. 올 입시에서 각 대학이 우수 학생을 유치하겠다는 생각만으로 입도선매 방식으로 산만하게 시행했던 모집시기를 간결하고 경제적으로 조정해야 한다. 당장 코 앞에 닥친 2003학년도 입시를 위해서 대교협이 우선적으로 나서야 할 일이다.
2005학년도 수능시험 개편 안은 각 대학이 영역이나 교과를 예고하는 공시제를 채택하여 2002년 중에 발표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새 교육과정은 이미 현 중3 학생이 3월에 입학하면 곧바로 실시되고 금년 상반기 중에 내년도의 선택중심 교육과정을 학생 스스로 만들어 가도록 되어있다. 2002년 6월쯤까지는 대학별 예고가 되어야, 고등학교에서는 학생들의 희망 조사를 하고 이에 따른 교과서 주문과 신학년도 교사 수급 및 시설 준비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대학에서는 특정 교과를 위주로 한 지정보다는 영역을 중심으로 공시해 주어야 고교교육이 입시에 의해서 파행되지 않도 록 돕는 길이 될 것이다.. 이 또한 대교협이 시기를 잃지 않고 해야 할 일이다.
다음으로 고등학교에서는 소위 내신 성적이 부풀려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근시안적인 일부 학부모나 학생들의 요구에 영합하여 시험문제를 쉽게 출제하여 동 석차를 양산한 고등학교들은 금 학년도 수시 입학 결과가 신통치 못했던 점을 절감했을 것이 다. 엄격한 평가가 신뢰 획득과 면학 분위기 조성은 물론 노력하는 학생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진학 준비를 하도록 돕는 길이다.
또한 토론이나 발표식 수업 등으로 학생들이 깊이 있게 사고하고 창의적인 발상을 하도록 이끌어야 할 책무가 고등학교 선생님들에 게 주어져 있음이 분명하다. 그 길만이 암기 위주의 지식을 주입하는 사교육의 질곡에서 학생들을 해방하여 편안하게 공부할 수 있도록 하는 공교육의 진정한 역할이 될 것이다.
아직도 우리의 일부 언론은 대학입시를 일 년 내내 생중계 하듯이 보도한다. 그 자체도 그리 칭찬 할 일은 못되지만, 무엇보다 그러한 관행이 입시 분위기를 과열시키고 학생과 학부모의 불안감을 필요 이상으로 증폭시키며 때로는 잦은 입시제도의 변경을 부채질 하는 면도 있다. 최근 수도권의 전반적인 부동산 가격 상승의 원인을 마치 특정지역 입시 학원과의 관련만인 것처럼 보도한 점은 사실 면에서도 어긋나지만 그 심리적 파장이 전국의 학부모와 학생에게 박탈감을 심어주고 나아가 공교육의 위상을 흔들 수 있는 신중치 못한 것이었다.
입시철이 되면 사교육의 소위 입시 전문가 를 등장시키는 방송등도 분명히 부정적인 입시문화의 한 예로서 이제는 필요하지도 않고 의미도 없어서 사라져야 할 입시 병폐임 이 분명하다. 차라리 프랑스처럼 그 해의 바깔로레아 최우수 논술 답안을 발표하여 자국 학생들의 논리적이고 지적인 성장의 척도로 써 온 국민이 자랑스러워하고 공유하는 성숙된 입시 문화가 부럽기도 하다.
끝으로 우리의 일부 학부모들이 맹목적인 학벌주의와 이로 인한 효과도 없는 사교육 맹신주의에 빠져 학생들을 고통스러운 입시 지옥에 밀어 넣고 있는 점도 짚어야 한다. 공연한 불안감에 사로 잡혀 학생들을 육체적, 정신적으로 고통받게 할뿐만 아니라 자신들도 천문학적인 사교육비에 허덕이고 있는 것이다. 좀 더 심히 말하면 자녀들을 늦은 밤까지 길거리로 내몰아 놓고 가정에서 해야 할 인성 교육의 몫은 팽개쳤는지도 모른다. 오래 두고 보아 온 일이지만 분명한 것은 학교에서의 정상적인 교육과 가정에서의 자상한 훈육만이 아이들의 장래를 담보하고 격려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어차피 대학엘 가려면 어느 정도의 경쟁은 불가피하다. 그렇다면 학생들이 보다 편안하게, 학부모들이 덜 고통스럽게, 그리고 공교육이 더욱 활성화되게, 입시 당국이나 대학 측에서는 대국적인 관점에서 성숙된 입시 문화를 만들어 가려는 노력이 필요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