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했던 2001년 한해가 저물어 간다. 자유시장 논리에 맞춘 교육개혁이 현장교육과는 동떨어진 위험한 논리임에도 현장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정부를 바라볼 때, 한 해를 바라보는 교원들의 마음은 정말 암담하기만 하다.
주체와 객체가 뒤바뀐 교육개혁은 출발부터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입이 있는 사람이면 한결같이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진정 교사가 존경받는 풍토는 뿌리내린 적 없는 이 사회에서, 일신의 영광은 애당초 접어버린 교원들은 말 그대로 묵묵히 일해 왔다. 오직 아이들을 사랑하고 그들이 자라 훗날에야 돌려주는 존경과 사랑, 그리운 마음을 갖는 것을 보람으로 여기며 살아왔을 뿐이다.
그런데 우리를 어떻게 매도했나. 촌지와 폭력이 교사의 전유물인양 떠들었고 경력교사를 무능교사와 동일시해 땅에 떨어진 교권을 더 이상 추스를 수 없이 만들었다. 얼마만큼 더 추락해야 하나. 그렇게 용감하게(?) 단행한 교육개혁으로 오늘날 얻은 것이 무엇인가.
합리적 교원 수급대책도 세우지 않은 가운데 단행된 교원 정년단축은 혼란만 가중시켰다. 경력교사 한 명을 몰아내면 젊은 교사 셋을 얻을 수 있다는 계산이 참으로 그럴싸하다. 젊고 박력 있는 교사만이 교육현장의 필요충분 조건이라고 생각한다면 50∼60세의 경력교사 또한 쓸모 없는 사람일텐데 이것이 과연 교육의 본질을 꿰뚫어 본 논리라고 할 수 있는지….
교육이 그런 것인가. 경쟁력 제고를 위한다며 5만여 명의 교원을 교육현장에서 내몰더니 이제는 교원이 부족해 65세 넘은 퇴직교원을 다시 교단에 세우고 검증되지 않은 미경력 교사, 기간제 교사를 단기 양성해 충원하려는 현실을 바라볼 때, 참으로 개탄을 금할 수 없다. 국가 공교육을 얼마나 가볍게 생각했으면 감히 땜질식 충원으로 해결하려 하겠는가.
우리가 진정 두려워하는 것은 개혁이라는 미명하에 추락된 교권만큼이나 수업권이 무너지고 공교육이 붕괴되고 교육이 황폐화되는 것이다. 이것은 진실로 자녀를 둔 우리 모두의 희망이 절망으로 변하는 엄청난 대란일 것이다. 이 나라 교육을 위해 교원의 정년이 연장되고 환원돼야 한다. 11월 21일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처리된 정년연장법은 교육개혁의 후퇴라며 일부 학부모단체에서 반대 의견을 제시하고 있지만 교육은 교육의 본질을 생각하는 논리일 때만 정당한 것이다. 교원의 지위향상을 위해 제정된 특별법이 무엇인가. 그것은 교육의 특성상 교원의 전문성을 고려한 법안이 아닐 수 없다.
경력 있는 전문 의사에게 진료 받는 것은 당연하고 운 좋은 경우라고 생각하면서도 경력 있는 교사가 학생들을 지도하고 교육하는 것은 참을 수 없다면 아직도 교육을 시장경제논리와 동일시하는 무지한 소치임을 분명히 지적하고 싶다.
이제 내년부터 제7차 교육과정이 고등학교까지 확대 실시된다. 하지만 준비도 안되고 충분한 관련 연구도 부족한 7차 교육과정을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것에 대해 학교 현장은 반발하고 있다. 7차 교육과정은 `무엇을 왜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교육철학이나 교육내용에 대한 고민보다는 교육과정 운영의 세련화에만 신경을 쓴 것 같다. 교육을 연구하는 학자나 현장 교사들에 의해 마련된 것도 아니고 현장의 의견이 반영될 기회마저 충분치 못했던 7차 교육과정은 또 얼마나 교육계를 흔들어 놓을지 걱정이다.
교육부의 어떤 책임자는 이 제도를 연구하는데 이미 소요된 비용이 100억 단위가 넘어 지금으로서는 돌이킬 수 없다고 말한다. 교사나 교육학자들이 가야할 해외유학을 교육행정가들이 가고 그들이 본 단편적 미국식 교육이 백년대계를 위한 유일한 대안인 양 행세하고 생떼를 쓰고 있으니 참으로 개탄스럽다.
산적한 교육문제는 교육주체인 우리가 풀어가야 한다. 강제로 밀어붙이는 쪽의 힘이 더 세다면 좀 더 단합된 힘으로 현장 개선을 위해 발벗고 뛰어야 한다. 우리의 교육 선배들이 피땀과 눈물로 지켜 온 교단을 교육 주체인 우리가 지켜가야 한다.
현실은 우리의 목소리가 묵살되는 참담한 상황이지만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능가할 수 없다'는 만고의 진리가 공교육을 반석 위에 올려놓는 길임을 가슴에 새기며 절망보다는 희망의 싹을 피워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