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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칼럼> 소도시 아이들에게서 희망을 찾다

인사이동으로 새 학교에 방문한 올 2월의 어느 날, 운동장 가장자리를 따라 서 있는 키 큰 미루나무들 위에는 까치집이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이 운치가 있어 참 좋았다. 하지만 분위기 있는 경치보다는 이 곳 학생들이 보여주는 순수함과 나이에 맞는 태도가 교사로서 생활하는 순간순간을 행복하게 하고 있다.

예전 학교의 학생들 중 몇몇은 교사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데 희열을 느끼는 것 같았다. 복도를 지나가는데 바닥을 닦고 있던 대걸레로 교사의 슬리퍼를 더럽히기도 하고 실수인 척 어깨를 치고 가는 학생도 있었다. 그런 행동을 지적하면 왜 화를 내냐며 오히려 당당하게 굴기까지 했다. 더 문제인 건 옆에 있던 다른 학생들이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이런 광경을 구경한다는 것이었다. 아무튼 버릇없는 이런 학생들을 엄격하게 다룰 수 없고, 큰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니기에 선도위원회에 회부할 수도 없다. 상․벌점 시스템에 벌점을 올려도 봉사활동을 해 감점시키면 그만이기 때문에 교사는 무력감을 느끼며 서서히 지치게 된다.

그러다 지금의 학교에 발령받아 왔다. 모든 학생들이 신발을 복도의 신발장에 놓아둔다는 것에서 처음으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대도시 학교에도 복도 신발장이 있긴 하나 분실의 염려 탓에 학생들은 신발주머니를 가지고 다닌다. 이곳 학생들은 이렇게 남의 것을 탐내지 않을 뿐 아니라 교사가 주는 자그마한 선물에 감사할 줄 안다.

대도시의 학생들은 교사에게서 물질적인 보상을 받기만을 바라며 그걸 당연하게 생각했다. 선생님과 학습하며 정신적인 유대감을 느끼는 게 아니라 교사의 지갑 속 지폐에서 유대감을 느끼는 듯했다. 그런데 이곳 아이들은 학교 뒤편으로는 산이 자리하고 있고 앞으로는 냇물이 흐르는 자연환경 속에 있어서인지 매우 순수하다.

“아이들이 착하긴 한데 대도시보다 성적은 안 좋다”고 말하는 교사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세상엔 진정으로 ‘착한’ 사람들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에서 온갖 사건을 일으키는 사람들은 머리보다는 성격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저하된 학습 의욕은 교사의 열정으로 북돋워줄 수 있지만 이미 틀어진 마음은 치료하기가 너무 어렵고 그 오염된 마음이 다시 주위를 변질시킨다.

대도시 학생들이 과격하고 불손한 행동을 확대재생산하는 이유를 분석하고 그 아이들을 위한 효과적인 지도 방법 계발이 필요하다. 각 반에 세 명 이상까지 존재하는 검은 마음의 학생들을 교사 개개인의 지도에만 맡겨서는 심각해져가는 교실 상황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다. 그리고 그 학생들과 교사의 대결을 흥미롭게 관망하는 다른 학생들도 문제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그냥 구경이나 하고 즐기자는 아이들도 치유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더불어 소도시의 학생들이 지니고 있는 소중한 자질을 지켜주기 위해 그 학생들의 자긍심을 높이는 교육정책이 실시돼야 한다. 규모가 작은 학교의 학생들의 온화한 마음가짐이 어디서 왔는지 파악해서 대도시 아이들을 선도할 때 활용할 필요가 있다.

성적 위주의 훈육 방식과 부모의 과한 욕심, 현란한 주위 환경으로 인해 대도시의 아이들은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 그 조짐이 교사에 대한 온갖 폭력, 왕따 현상, 학생들 사이의 심각한 갈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선생님을 신뢰하는 마음가짐은, 궁극적으로 사회에 대한 적대적이지 않고 친화적인 태도로 이어진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문제는 결국 언젠가 집에서 혹은 사회에서 터질 문제인 것이다. 그러기에 학교의 고민에 온 사회가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언론에서도 대도시 학교의 잘못된 문제 양상이 모든 학교의 모습인 듯 보도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또 미래를 위한 교육 모델로 삼을 수 있도록 소도시 학생들의 우수한 인성을 널리 알려야 할 것이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란 책은 우리 미래의 열쇠가 사실 과거의 순수함에 있다는 주제로 적지 않은 충격을 줬다. 우리 교육의 미래도 과거에 있다. 다시 말해 예전처럼 타인의 마음을 배려하는 모습을 간직한 지방 학교의 학생들에게 해답이 있는 것이다. 이 아이들에게서 우리 교육의 희망을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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