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1년 2월 NTTP 학습연구년제 오리엔테이션과 함께 연구년제가 시작되었고, 몇 발짝 걷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8개월이라는 긴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나는 학교를 다니는 사이에는 분주하여 미루어 두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정리해 볼 수 있었고, 학교 밖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기웃거리며 세상 사람들을 좀 더 이해하게 되었으며, 여러 가지 일들을 경험하는 사이 세상과 소통의 폭을 넓히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스스로 만들어 가는 ‘나 홀로의 시간 속에 세상으로의 진입’을 비로소 시도할 수 있었다.
봄(春), 미지의 세계가 열리다!
2011년 2월 개학 후 봄방학에 이르기까지, 학습연구년에 들어가기 전 나는 마치 출산을 준비하는 임산부처럼 단 하루도 빠짐없이 학교에 출근해서 1년 동안 비워 두어야 할 학교 업무에 대한 준비와 뒷마무리를 하였다. 몇 년 간 맡아왔던 학년부장 및 기능부장 업무 자료를 모두 인계하고, 새로운 연도의 작업을 계획하고 추진하는 일을 돕기도 했다. 또 이전에 해 왔던 모든 자료들을 정리하여 2011년 2학기에 있을 학교 평가 대비를 위한 2년간의 담당 업무 결과물도 만들었다. 해당 자료들을 컴퓨터 파일 자료와 문서 파일들로 정리하고 내가 쓰던 교실의 자료들을 정리한 후 교실까지 비워 주려니 매일 밤 자정 가까운 시간에 퇴근하여도 시간이 부족하여 토요일과 일요일도 시간만 나면 학교에 나왔다.
그렇게 해서 3월 2일, 새 학년 새 학기를 시작하는 첫날 새벽에 마지막으로 정리한 자료를 학교에 가져다 놓고서야 나는 겨우 학습연구년제 수행을 위해 마음 놓고 집으로 퇴근할 수 있었고 드디어 1년간의 학습연구년제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한 동안 나는 마치 불안증세가 있는 환자처럼 아침마다 학교를 가야 하는데 집에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마음에 달력을 수도 없이 확인하고, 심지어 학교에 전화를 걸어 내가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지를 확인하기도 하였다. 수십 년 전,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한 이후 방학을 제외하고 늘 눈만 뜨면 학교로 가던 인생이었기에 1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학교라는 울타리 밖에 나와 있게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좀체 믿어지지 않고 불안하기까지 하였다. 3월 내내 구름 위에 둥둥 떠 있는 듯한, 마치 외국 여행 후 긴 비행으로 인한 시차 적응을 하는 것과 같은 증세가 계속되었다.
학습연구년제에 나의 멘토가 되어 주신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교수님(장경숙 박사)께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자기주도적인 연구 계획을 세워 보라고 조언을 하신 후에야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었고, 나는 우선 십여 년 이상 끌어안고 다니던 케케묵은 교수 학습 자료들을 모조리 꺼내 놓고 용도와 쓸모를 조목조목 따져 분리해 넣고, 버리고, 온 집안을 가득 메운 책들을 항목별로 정리하는 일부터 하였다.
나를 위한 보상으로서 2004년도부터 바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어 두었던 치과 가는 일도 감행하였다. 임플란트 수술을 받던 날, 이제 더 이상 말을 하다가 또는 밥을 먹다가 혀를 깨물거나 하는 일은 없겠다 싶어 몹시 기뻤다. 3월 첫 주에는 그렇게도 가보고 싶었던 도서관에 가서 책도 빌려 보고, 3월 둘째 주부터는 한 낮에 열리는 구민회관의 세미나에도 참석해 보았다. 세상 사람들은 이렇게도 사는구나 싶었다. 내가 살아왔지만 속할 수 없었던 세상은 참으로 넓었다. 나에게는 평일의 한낮에 학교가 아닌 곳에 있거나 버스나 지하철을 탄다는 그 자체가 일탈이었고 신기한 경험이었다.
서서히 연구년제에 대한 내 몸의 시차 적응이 되어가면서 나는 내 연구년 주제인 ‘초등영어 수업에서의 ICT 도구의 활용과 효율성에 대한 연구’와 관련한 서적들을 모으고 그 속에 파묻히기 시작했다. 이 연구 분야는 그 동안 내가 즐겨 관심을 가져 온 분야와 사뭇 다른 것이었기에 사실 이 연구 자체가 나에게는 개척지였고, 혁신이었으며, 새로운 세계에 대한 탐험이었다. ‘본인이 잘 알고 있는 것, 자신 있는 것만 연구할 것인가?’라는 명제와 함께 멘토 교수님께서 던져주신 숙제이기도 했기에 나는 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도전을 시작하였다.
구체적인 연구에 앞서 해당 분야에 모르는 것들에 대한 배경 지식을 얻는 것 자체부터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기에, 책꽂이를 쳐다보면 한숨부터 절로 나왔다. 어디를 가든 관련 서적을 가방에 넣어가지고 다니면서 자투리 시간이라도 나면 읽었고, 밤샘 공부를 하면서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연구와 관련해서 좋은 생각이 날 때마다 메모를 하다 보니 1월 초 동생이 선물한 다이어리 하나 가득 깨알 같은 메모가 자리 잡았다.
5월과 6월에는 인근의 국제영어대학원대학교의 영어 연수에 참여하였고, 영어연구회 동료 선생님들과 뜻을 같이 하여 영어 문법책의 공동 집필도 시작하였다. 동시에 밤마다 온라인으로 여러 가지 직무연수에 참여하면서 다시 학교로 돌아갔을 때는 더 잘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나의 연구년제 미지정 위탁 기관인 평가원과 관련한 일들이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하였고 나는 이 모든 일들을 해내기 위해 다시 예전처럼 작은 시간까지 놓치지 않기 위해 애써야 했다.
여름(夏), 시간과의 다툼이 계속되다!
봄부터 EBS 교육방송 영어 관련 자료 집필 일을 맡게 되었다. 4월까지의 영어 검정 교과서 일을 막 끝난 상태에서 맡게 된 일인데다 관심 있는 분야의 작업이라 의욕을 가지고 참여하였다. 교과부의 영어과 교육과정 개정 관련 작업에도 일부 참여하게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연구년제의 주제와 관련된 연구도 진행해야 했기에 작은 시간도 아껴가며 공부해야 했다.
십여 권 이상의 관련 서적과 오륙십 편 이상의 국내외 학술 저널을 읽어가며 나의 연구와 연관된 이론적 배경을 정리하였다. 멘토 교수님의 방향 설정과 끊임없는 지원을 통해 개인 연구 과제를 위한 설문지 초안을 마련하였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계속된 협의와 서울과 대전, 그리고 경기도에 근무하는 교사들에게 설문지 의뢰 검토 결과를 토대로 최종 설문지가 만들어졌다. 이렇게 만들어진 설문지를 전국 단위로 영어 교사들에게 연구 목적을 밝히고 설문지를 송부하였고 회신을 요청하였다. 설문지를 보내고 회신지를 수합하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였다. 거의 한 달 정도는 며칠에 한 번씩의 기간을 두고 설문지를 보내고 정리하면서 하루를 열었다. 개개인에게 설문 회신을 요청하는 글을 쓰고, 회신한 선생님께 감사의 답 메일을 하다보면 서너 시간 이상씩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곤 했다.
그와 동시에 평가원에서의 외부공동연구원으로서의 일과 그 밖에도 성격이 다른 여러 가지 일들에 참여해야 했기에 이제는 여유 있게 밥 먹을 시간도 없었고 집 안에서도 시간을 아끼기 위해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다시금 예전처럼 밤샘 작업을 불사할 수밖에 없었다. 평가원에 출근하지 않는 날에는 컴퓨터와 씨름을 하면서 지냈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연일 장대비는 내리고, 나도 일 속에 파묻혀 날마다 컴퓨터를 끌어안고 살았다. 밤새 빗소리를 들으며 천둥이라도 치고 번개가 번쩍일 때는 컴퓨터에 낙뢰라도 맞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에 떨면서도 작업을 멈출 수 없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흘러가던 7월 말 경에는 갑작스런 서울의 물난리로 차량 침수라는 예상치 못한 피해를 겪기도 하였다. 그칠 줄 모르는 비와 끊이지 않는 일 속에서 나의 삶도 깊고 깊은 물속으로 침수되는 듯했다. ‘이러자고 연구년제에 참여한 것은 아닌데……. 나를 찾아보자고, 오랫동안 수고한 나에게 시간을 좀 주자고 시작한 것인데 내가 왜 이러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긴 장마의 끝자락이 보일 즈음, 어느 새 나의 지치고 힘들었던 여름도 끝나 있었다.
가을(秋), 결실이 맺어지기 시작하다!
하루도 쉴 새 없이 쏟아지던 장대비 대신 따가운 가을 햇살이 오래도록 계속되었다. 시골에 계시는 부모님께서는 여름철 폭우로 걱정하던 알곡이 튼실하게 익었다고 기뻐하셨다. 그 사이 지인의 추천으로 K대 초등영어교육과에 출강하게 되었다.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일이 천직인 줄은 알았지만 하루 3시간 강의를 위해 일주일 이상 자료를 정리하고 공부하면서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가르친다는 것 이전에 내가 좋아하는 분야를 같은 고민을 가진 현장의 동료교사들과 공유한다는 점에서 더 큰 만족감과 보람을 가져다주었다.
추석을 하루 앞둔 날, 나는 연구년제 주제로 삼았던 개인 연구 과제의 최종 보고서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비록 작은 결과물이었지만 수개월 간 나와의 싸움을 이겨낸 노력이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기에 나는 하늘이라도 날 것 같은 희열감을 맛보았다. 끊임없는 지도와 도움을 주셨던 멘토 교수님께서는 마치 당신의 일처럼 기뻐해 주셨다. 기쁨을 되새기며, 통계자료 작업을 맡아 도움을 주신 C선생님, 바쁜 시간을 쪼개어 연구 설문지 검토를 도와 준 동료와 후배 선생님들, 그리고 부지불식(不知不識)의 연구자를 위해 설문에 회신해 주신 전국의 수백 명의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세상은 내가 살아가는 것이지만 사실은 나 혼자 사는 곳이 아니고 함께 살아가는 곳이라는 진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고 나도 도움이 필요한 연구자들에게 앞으로 힘을 보태어 주리라 마음먹었다.
다가오는 겨울(冬), 학교로 돌아갈 막바지 채비를 하다!
벌써 11월이다. 올해는 가을 단풍이 몹시도 울긋불긋 제 색을 뽐내고 있고 산과 들이 유난히 더 아름답다는 생각을 해 본다. 1993년 교사로 교육 현장에 발을 내딛게 된 이래 이렇게 편안한 마음으로 자연을 대해 본 적이 대체 몇 번이었나 싶다. 아니, 계절의 변화에 한번이라도 눈길을 줄 마음의 여유나 제대로 있었나 싶다. 실로 연구년제는 나를 돌아보고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어 주었고, 동시에 나 자신을 찾는 기회가 되어 주었으며, 삶의 전환점이 되어 주었다.
이제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겨울을 위해 나는 이미 만반의 준비를 해 놓았다. 이미 눈 깜짝할 사이에 8개월이라는 긴 시간이 흘렀고, 여전히 분초 단위로 시간을 재며 처리해야 할 크고 작은 일들이 계속되고 있지만 나는 이전보다 더욱 강인해진 나 자신을 느낀다. 올 1년 간 학습연구년제를 통해 얻은 다양한 나의 경험들과 연구의 결과물들이 앞으로 학교 현장으로 돌아갔을 때는 10년 이상 가치 있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는 확신도 든다.
아이들을 더 사랑하며 가르칠 것이고, 연구년제 내내 연구에 몰두할 수 있도록 암묵적인 응원을 해 주신 교장․교감선생님과 동료선생님들과 더욱 협력하여 맡은 일을 더 잘 해 나갈 것이라는 다짐도 해 본다.
지난 11월 1일, 경기도교육청이 교사들의 수업 혁신을 위해 ‘2012 연구년제 교원’을 올해보다 두 배 가까이 늘려 총 300명을 선출하게 되었음을 발표하였다. 초등교사 134명, 중등교사는 137명, 교감 6명 등 277명과 혁신학교 운영 부서에서 따로 선발되는 정책 리더과정 23명을 포함하여 모두 300명이 그 수혜자들이라 한다. 이와 같은 경기도교육청의 정책은 경기도 소속 교원들의 교육 전문가적 소양을 배양하는 데 큰 기여를 할 것이라는 확신과 함께 연구자로서의 교사들의 자질을 믿어 준 결과였으리라는 점에서 실로 반갑지 않을 수 없다.
학습연구년제가 단기간의 제도가 아닌 교육계의 장기적인 제도로서 고착되고, 일정 자격을 갖춘 교사라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균등한 기회로서 제공되며, 교사들이 학교 현장에서 겪는 각종 고민과 연구 과제에 대해 시간을 두고 연구하며 체계를 세우는 과정에서 더 큰 전문가로서 도약할 수 있는 계기로 정착될 수 있도록 제도적인 뒷받침이 전국적으로 계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21세기의 디지털 세상의 혁신을 주도했던 고(故) 스티브잡스의 스탠포드대학 졸업식 축사에서의 'Stay Hungry, Stay Foolish!'라는 명구가 생각난다. 그의 외침 속에 담긴 메시지처럼 나는 교사이기 이전에 평생에 걸쳐 끊임없이 학문에 대한 열정을 가진 학습자이자, 더 잘 가르치는 교사로서의 책임감을 가진 창의적인 초등 교육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 나 스스로 정진하는 일을 두려워하거나 멈추지 않으리라 다짐해 본다. 이처럼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어준 NTTP 학습연구년제는 앞으로도 수많은 대한민국의 교사들에게 교사로서의 열정과 창의성을 되찾아 줄 원동력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