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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전인적 인재 양성 위해 상생교육 해야

21세기 사회가 도래하면서 우리는 크나큰 교육적 과제에 직면하게 됐다. 이른바 ‘인류사회가 지속가능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인가?’라고 하는 근원적 물음 앞에서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는 현실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성만능에 바탕을 둔 근대 사회의 합리성과 과학성은 인류의 삶을 물질적으로 보다 더 풍요롭게 해줬지만 동시에 인류의 삶을 정신적으로 보다 더 황폐화시킨 것도 사실이다. ‘과연 근대적인 삶의 방식이 인류의 삶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현대인은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왜냐하면 산업화와 근대화의 이면에 누적된 후유증은 가치의 불균형 문제, 심화되는 양극화 현상, 과학적 진리와 일상생활의 진리 간의 불일치 문제, 정신문화와 물질문화의 격차(cultural lag) 문제, 인간과 자연 간의 갈등, 합리성과 비합리성의 충돌, 빈부격차의 문제 등등으로 이제는 더 이상 방관할 수만은 없는 이른바 인류의 장래를 위협하는 요인들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속가능한 인류의 삶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떠한 교육을 중점적으로 강조해야 할 것인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여기서는 세 가지로 압축해서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인간과 자연 간의 공생교육이다. 근대화와 산업화의 과정에서 인간은 자연을 무자비하게 파괴했다. 즉, 인간은 이성과 과학의 힘으로 자연을 얼마든지 지배하고 통제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자연은 인간의 파괴대상이 되었고 그 결과는 부메랑이 되어 인류에게 기상이변 등과 같은 감당하지 못할 재앙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인간이 자연을 동반자(partner)로 보지 않고, 인간과 자연의 구도를 주종의 관계 내지는 상하의 관계로 설정하면서 자연을 가볍게 보고 파괴한 결과 자연도 파괴되고 인간도 파괴되는 상호 공멸(dying together)을 초래하고 있다.

이른바 노장철학에서 말하는 “逆天者亡 順天者興(자연에 거역하면 망하고 순응하면 흥함)”의 논리이다. 그렇다면 해답은 간단하다.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려 들지 말고 자연을 상생의 동반자로 보아야, 인간도 살고 자연도 사는 상호공생(living together)이 가능하다. 따라서 인류의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 가정과 학교와 사회에서 인간과 자연의 공생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둘째, 종교와 종교 간의 공생교육이다. 전쟁사학자들에 의하면 지구상에 유사 이래로 2만 6000여 회의 전쟁이 있었는데 그 중의 90% 이상이 종교전쟁이라고 한다. 실로 아이러니컬하기 그지없다. 종교가 인간 개인의 구원과 인류평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막연히 믿어왔던 사람들에게는 실로 충격적으로 들릴 얘깃거리이다.

하지만 잠시 생각해 보면 그럴듯하게 들리기도 한다. 왜냐하면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 곳곳에서는 종교분쟁이 도처에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각 종교가 지나치게 종교절대주의에 사로잡혀 타 종교를 배타시 내지는 적대시하기 때문이다.

내 종교가 귀중하고 소중하다면 다른 종교도 귀중하고 소중하다. 십수 년 전 불교사찰과 신학대학원이 함께 있는 서울의 어느 동네에서 있었던 일이다. 크리스마스 때가 다가오니까 사찰 명의로 골목 입구에 “우리도 예수님 오신 날을 축하합니다”라고 플래카드를 붙였더니, 다음 해 초파일이 다가올 무렵에 신학대학원 명의로 골목 입구에 “우리도 부처님 오신 날을 축하합니다”라는 플래카드를 붙였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속담처럼 타 종교를 존중하고 배려하니까 타 종교도 화답하게 되는 법이다. 이른바 동성상응(同聲相應)의 이치이다. 따라서 가정과 학교와 사회에서 올바른 종교교육을 행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인류 전쟁의 90% 이상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이성과 감성의 공생교육이다. 이른바 앎과 삶의 조화를 이루는 교육이다. 근대사회는 이성만능에 사로잡혀 지식주입교육에만 치중하여 머리만 크고 가슴이 메마른 반쪽 인간(half man)을 양산했다. 그 후유증은 현대사회의 각종 반도덕적 사건들이 입증하고 있다. 21세기 사회가 감성중심의 사회로 이행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더 이상 반쪽 인간을 양산하는 근대사회의 전철을 되풀이 말고 이성과 감성이 조화되는 이른바 전인적 인간(whole man)을 길러야 할 것이다.

이상의 것들은 특정교과목 시간에 특정교사가 가르쳐야 할 것이 아니다. 모든 교사가 모든 시간에 모든 방법으로 가르쳐야 할 범교과적인 교육내용이다. 왜냐하면 인류의 지속가능을 담보하는 교육에는 성역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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