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의 한 중학교에선 50대 여교사와 여학생이 서로 머리채 잡고 싸우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경기도 어느 중학교에선 말 듣지 않는 학생을 교사가 112에 신고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런 학교의 살풍경스런 모습은 경기도 교육청의 학생인권조례 제정에 이어 11월 1일부터 서울시교육청이 모든 초·중·고에서 체벌을 전격 금지한 후 벌어진 일들이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 ‘학급전체 웃통 벗기기 사건’이 벌어져 체벌금지 찬성론자들에게 빌미를 주고 있다. 11월16일 청주의 어느 남고에서 아무개 교사가 창문을 연 채 떠든다며 남학생 28명의 웃통 벗기기 체벌을 가한 것. 나 역시 전문계고에 근무하며 말을 잘 듣지 않는 학생들을 왕왕 보고 있다. 그로 인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는 화와 혼내고 싶은 충동을 더러 겪어온 터라 그 교사를 이해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만약 10월에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이렇듯 언론에 노출돼 온 세상이 다 아는 사건으로 비화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문제가 되지 않았을 체벌이 지금은 기사 가치가 충분한 사건으로 ‘변질’된 세상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대응해야함을 강조하고 싶다.
또 그 교사만의 잘못인지, 그로 하여금 그런 체벌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공부하는 기계’ 만드는 입시지옥 등 우리 사회의 유·무형 압력은 없었는지 다 같이 생각해볼 때이다. 그 교사뿐 아니라 교원 전체가 체벌금지라는 ‘악덕환경’ 속에서 말 듣지 않는 학생들을 대하고 지도해야 하는 것이 지금의 학교 현장이다.
체벌금지는 시대착오적이거나 십분 양보해도 시기상조다. 과거 무너진 학교의 원인중 하나는 김대중 정부가 섣불리 발표한 체벌금지 조치였다. 이제 겨우 안정을 찾아가고 있는데, 다시 그런 빌미가 제공되어선 안 된다는 것이 많은 교사들의 바람이다. 그렇다고 교사 편하자고 체벌 허용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알다시피 경제적 수준 향상과 함께 민주주의가 신장되는 과도기에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사회현상은 자유보다 방종이다. 체벌금지는 그런 사정을 간과했던 실패한 정책의 사례로 꼽히고 있다. 초등학생마저 선생님에게 손바닥 몇 대 맞은 걸 경찰에 신고하는 일이 벌어진 것을 벌써 잊었단 말인가?
학생들 인권보호차원에서 접근한 체벌금지로 보이지만, 착각은 금물이다. 그렇지 않아도 인성교육을 통한 ‘인간육성’보다 성적 올리기에 매몰된 학교현실에서 생활지도마저 손 놓는다면 무너진 학교 재현은 시간문제다. 그것은 누구 책임인가?
물론 당연히 학생의 인권도 소중하다. 그렇게 학생의 인권을 생각한다면 오히려 수능시험 부정사건이후 전국 각 급 학교로 확산된 교내시험 2인 감독 제도부터 없애야 맞다. 또 지금과 같이 성적지상주의의 ‘공부하는 기계’ 양산을 목표로 하는 학교시스템을 바꾸는 게 선결과제이다. 극히 일부 때문 전국의 대다수 학생들을 범죄자 취급하는 것처럼 심각한 인권침해가 또 어디 있겠는가! 학생들이 맘껏 뛰놀거나 이런저런 하고 싶은 일들을 원천적으로 못하게 하는 것처럼 인권침해가 또 어디에 있겠는가?
서울시교육청이 ‘문제 학생을 교실 뒤로 보내 서서 수업시키기’ 같은 체벌대체방안 등 매뉴얼을 함께 제시했지만, 그 실효성에 의문이 든다. 급진적인 조례안 제정이나 체벌금지 같은 교칙 시행보다는 운영의 묘를 살리는 것이 대안으로 보인다.
예컨대 이미 시행중인 ‘체벌 3수칙’ 같은 지침이 철저하게 지켜지는지에 대한 철저한 지도 감독이 그것이다. 폭행 따위 학생인권을 침해하는 학교의 장과 해당 교사에 대한 일벌백계의 징계도 병행되어야함은 말할 나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