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공약과는 관계없이 집권 중반기에 들어서면서 MB 정부가 화두로 내세우는 ‘공정사회’는 그 외형적인 매력에도 불구하고 여러 잠재된 문제가 있다.
우선 정치적인 계산에 따라 설정된 것이기 때문에 ‘공정’이 분배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러나 공정은 일차적으로 분배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적 덕목과 행위의 문제이다. 고대 희랍의 정의의 개념이 그러했고, 동양에서도 상고시대부터 그러했다. 따라서 공정의 룰은 황금률의 준수와 같은 것에서 찾아진다. 그러나 황금률은 너무 형식적인 것이기 때문에 공정한 사회, 정의로운 사회를 설명해 주는 충분조건이 되지 못한다. 같은 맥락에서 보편성 문제의 한계를 들 수 있다.
일반성(generality)과는 달리 보편성(universality)은 예외나 정도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영어로 ‘universal suffrage’라고 하는 ‘보통 선거권’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보편성 개념은 적용의 예외나 정도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절차적인 형식원리이지 그 자체가 행위의 선악이나 정책의 옳고 그름을 정당화해주는 근거가 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편성 개념을 절대 선으로 보고 적용대상의 보편성을 확대해석하는 경우 크나큰 오류를 범하게 된다. 대표적인 경우가 좌파 교육감들이 주장하는 무상급식 전면 실시이다.
모든 사람은 생존의 권리가 있다는 보편적 명제는 ‘모든 사람은 굶지 않을 권리가 있다’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이 명제가 ‘국가는 모든 사람에게 무상급식을 해야 한다’는 명제를 정당화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은 굶지 않아야 한다는 보편성은 자력으로 생존을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예외 없이’ 국가가 돌보아야 한다는 당위로 해석해야 옳다. 그렇지 않고 전면 무상급식을 주장하는 것은 보편성의 원리를 그릇되게 해석하는 논리적 결함과 함께 재정낭비와 효율성과 같은 사실적인 문제를 드러낸다.
이와 같은 왜곡을 방지하고 보편성을 바르게 해석하려면 적어도 다음 두 가지를 유념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보편성의 소극적 의미로서 이를테면 모든 사람의 최소 생계를 보장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보면 좌파 교육감들의 무상급식 전면 시행은 보편성을 잘못 적용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보편성을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으로 보면 보편성은 최소 생계 수단의 제공을 넘어서 모든 사람이 자생력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교육적으로 보면 모든 학생에게 무상급식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학생이 자생력을 갖도록 기본능력과 개인 나름대로의 창의력을 갖출 수 있게 하는 일이다. 바꿔 말하자면, 교육을 통하여 보편성을 증진시키는 일은 아이들의 기초학력을 향상시키는 일이지, 잣대를 잘못 적용하여 무상급식 전면 실시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시교육청은 무상급식의 무리한 확대에 그치지 않고 이른바 ‘3무(無)학교’ 프로젝트 중 하나로 ‘학습준비물 없는 학교’라 하여 학용품 비용을 무상 지급하는 방안까지 추진하고 있다. 학생 1인당 연간 6만원씩 지급하여 약 330여억 원의 예산이 추산된다. 이 프로젝트는 무상급식과는 달리 서울시장도 적극 동조하고 있어 실행에 행정적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여유 있는 집안 아이들에게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이 조치도 보편성을 잘못 적용하는 것에 불과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보편적 복지를 명분으로 시행한 정책들을 국가재정이 허락하지 않을 경우 철회하기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최근 일어난 프랑스 연금개혁안과 영국의 예산 삭감에 대한 심각한 저항을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보편적 복지의 의미를 명확하게 파악하는 일이 중요한 것은 여기서도 확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