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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시묘살이와 대통령의 눈물

우리의 孝교육, 어디로 가고 있나
교단위기 극복 해법은 ‘근본’교육

반가운 전화였다. 삼 년 만에 소식을 전해온 범수 씨는 효행 장학금을 받을 아이들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 주말에 인근 마을에서 백수연 잔치를 하는데 주인공인 할머니께서 장학금을 내놓겠다는 것이다. 불현듯 삼년 전 범수 씨가 산중(山中)에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탈상을 마치면 개심사 골짜기에서 홀로 기거하는 노인을 돌봐드릴 예정입니다.”

당시(2007년)는 무심코 흘려들었던 말이다. 범수 씨는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던 시묘살이의 주인공이다. 그러니까 2002년 가을부터 2007년 봄까지 5년 가까운 세월을 부모님 묘소를 지켰다. 폭풍이 몰아치고 거센 눈발이 휘날리는 추위에도, 살갗이 델 것 같은 뜨거운 무더위에도 그는 언제나 산중의 부모님 묘소 곁에 있었다. 생전(生前)에 잘하지 돌아가신 후에 묘소를 지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입방아 찧는 주변 사람들의 비아냥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냥 자식 노릇을 다할 뿐이라고만 했다.

3년 전 시묘살이를 마친 범수 씨는 산중에서 “효를 가르치는 교육이야말로 진짜 교육이다.”라고 했던 말을 실천으로 옮기고 있다. 효 관련 자료를 모아 책을 집필하고 효 교육을 담당할 기관(서천어버이대학)을 설립하여 활동하고 있다.

장학금을 받을 학생들과 함께 행사장으로 들어섰다. 안내를 맡은 분께서 연세가 99세에 이를 만큼 장수하신 어른이 있어야 가능한 잔치이기에 매우 보기 드문 행사라고 귀띔을 했다. 잔치 마당에는 인조공단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할머니의 화사한 모습이 푸른 가을 하늘 속에 동화처럼 담겨있었다.

정말 고왔다. 일제 때 청상이 되어 지금까지 홀몸이었기에 옷을 해줄 가족도 없을 터였다. 아마도 범수 씨의 따뜻한 마음이 할머니의 고운 한복에 담긴 듯 했다. 꽃가마에 올라탄 할머니의 행복한 미소가 잔치의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켰다. 이날 행사에서 가장 의미 있는 순서가 시작된다는 사회자의 멘트에 장내가 숙연해졌다. 평생 농사일로 잔뼈가 굵은 할머니께서 효행이 뛰어난 학생들에게 직접 장학금을 전달한다는 것이다.

사회자의 호명에 따라 장학금을 받을 학생들이 할머니의 꽃가마 앞에 섰다. 참석한 열 명의 효행 학생들은 할머니께서 직접 쥐어주시는 장학금을 받고 깍듯하게 인사를 올렸다. 효행이 뛰어나니 예절도 바르다는 말이 곳곳에서 들려왔다. 가슴 뭉클한 장면이었다.

효행심으로 가득한 이날 행사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큰 배움을 얻는 귀한 시간이었다. 평소 교육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는 범수 씨는 “효 교육이 살아나야 가정이 바로서고 학교의 위상이 높아지며 덩달아 국운(國運)도 상승한다.”라며 힘주어 말했다.

세월이 흘러도 영원히 변치 않는 가치가 있다. 그것은 바로 인륜이고 그 핵심은 효에 있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효행을 인간됨의 근본이고 가정과 나라가 바로서는 주춧돌이라 했다. 효의 가치와 실천은 교육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런데 효 교육이 어는 틈엔가 학교현장에서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학교는 오로지 학력신장에만 매달리고 인성교육은 제쳐 둔지 오래다. 인륜의 근본을 가르쳐야할 도덕이나 윤리 과목도 입시의 굴레에 갇혀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자. 도대체 지금 우리의 효 교육이 어떤지를. 당연한 말인지는 몰라도 가정에서 부모를 공경할 줄 아는 사람이 이웃을 사랑하고 국가를 위해서도 큰일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조금만 관심을 갖고 주변을 둘러보면 감동적인 효행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 효행을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으면 누가 배울 것이고 또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

교육현장은 지금 위기 상황이다. 교원평가제, 체벌 금지, 학업성취도 평가, 수능 성적 공개 등 밀어붙이기식 교육정책이 쓰나미처럼 몰려오고 있다. 이 위기를 극복할 해법은 무엇일까? 물론 정책입안자들을 탓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 발짝 물러나 생각하면 결국 교육 본연의 목적으로 돌아가야 하고 그것은 바로 효를 가르치는 데 있지 않나 싶다.

얼마 전 텔레비전에 출연한 대통령께서 생전의 어머니를 회고하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고생하신 어머니께 살아생전 고운 한복 할 벌 해드리지 못한 자식으로서의 깊은 회한이 담겨있었다. 대통령을 비롯한 세상의 모든 자식들에게 부모님은 가슴으로 떠받들어야 할 영원한 안식처나 다름없다.

백수를 맞은 어르신을 꽃가마에 태운 범수 씨와 마을 주민들 그리고 증손주뻘 되는 아이들에게 금쪽같은 장학금을 쥐어준 서현순 할머니를 보면서, 지금 우리의 효 교육이 바른 길로 가고 있는 지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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