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전국의 중 1학년을 대상으로 10년 만에 실시된 진단평가 결과가 공개되면서 교육현장이 온통 들끓고 있다. 강남과 강북의 학력차가 어떻고 지방과 대도시의 학력차가 크다는 등의 뉴스가 연일 계속 되고 있다.
자녀의 학력 신장을 위해 우리 사회가 지출하는 비용은 이미 천문학적인 숫자를 넘어선지 오래다. 비단 이런 비용 문제 이외에도 자칫 가족해체로까지 이어지는 기러기 아빠를 양산하는 등 사회적 병폐도 더욱 심해지고 있다. 이런 교육에 함몰되는 시대·사회적인 흐름을 보면서 40여년을 교육현장에서 살아온 필자는 맥을 한참 잘못짚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온통 ‘학력, 학력’이라고 여기저기서 이야기들을 하는데 그 문제가 되고 있는 학력 향상의 방안에 대해서는 오진을 해도 엄청난 오진을 하고 있다. 그래서 처방이 잘못되고 잘못된 처방 탓에 너무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학력 평가의 객관적 지표로 인정을 받고 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학업성취도 국제비교연구(PISA)가 있다. 이 연구는 60여 개국 15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이 조사를 보면 20년 뒤 그 나라의 미래를 어렴풋이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이 PISA에는 학력 증진을 위한 키워드가 있다. 읽기, 수학, 과학 능력을 평가해 나라별로 순위를 매기는데 읽기 능력이 발표 항목의 맨 앞을 차지한다. 글을 정확하고 빠르게 이해하는 읽기 능력을 가장 중요한 학력(學力) 지표로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학력 증진을 위한 해답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선진국들이 읽기 능력을 중시하는 이유는 읽는 능력이 부족하면 다른 공부를 잘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많이 읽으면 두뇌활동이 촉진돼 사고력, 비판력이 커진다. 바로 읽기 능력이 제대로 될 때 학력 향상이라는 열매는 저절로 거둘 수 있게 된다는 것이 오랜 교육현장에서 얻은 결론이기도 하다.
요즈음 청소년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아니 태어나기 전부터 GUI(Graphic User Interface, 사용자가 컴퓨터와 정보를 교환할 때 그래픽을 통해 작업할 수 있는 환경)에 적응된 아이들이다. 모태 속에 있을 때부터 초음파 등을 이용한 사진으로 부모들에게 첫 선을 보이고 그래픽을 위주로 한 비디오 환경 속에서 나고 자라는 아이들이다. 그러다보니 컴퓨터 게임이나 비디오, 영화 등의 시청은 하루 종일이라도 가능해도 책을 읽는 것은 20, 30분을 힘겨워하고 있다.
읽기 능력이 해가 갈수록 현저하게 떨어지는 것을 교육현장에서는 실감할 수 있다. 집중력을 가지고 활자를 대하고 활자를 대하면서 사고의 폭을 넓히는 것에 대하여 중요하게 생각지 못하며 그런 것에 대하여 노력을 집중하고자 하지도 않는다. 아이들이 읽는 동화책도 글자만 있는 것보다는 만화로 되어있는 동화책이 훨씬 더 많이 팔리고 읽힌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다. 학력 향상을 가로막고 있는 주범이 바로 이 GUI(Graphic User Interface)환경이다.
일찍이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 게이츠는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것은 동네의 작은 도서관 이었다”라고 말하면서 매년 2개월 정도는 경영 구상을 위한 시간을 갖는데 그 시간은 외부와의 접촉을 끊은 채 오로지 책 읽기에만 집중한다고 한다.
학력 향상을 위해서는 우리 아이들이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가정은 가장 고전적이면서 가장 효율적인 교육의 장이다. 부모들이 책을 멀리하면 아이들도 책을 멀리하게 된다. 책 읽는 부모가 책 읽는 아이를 만든다. 우리의 미래인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부모들이 먼저 책을 읽어야 할 것이다. 어려서부터 책 읽는 습관이 몸에 배인 아이들은 심야학원을 찾을 이유가 없어진다. 조기 유학의 필요도 없어진다. 영어를 가장 쉽고 가장 완벽하게 정복하는 길은 영어로 된 책을 읽는 것이라는 많은 연구결과가 나와 있다. 우리 아이들에게 책을 돌려주어야 학력향상도 외국어 정복도 이루어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정에서부터 책을 읽고 그 책의 논리에 대하여 가족 간에 토의하고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