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자부에서 만든 공무원 연금법이 드디어 입법예고 됐다. 그렇게 입만 열면 `안 한다. 기득권을 보장하겠다'는 말을 대통령을 위시해 말할 만한 자리에 있는 사람은 다 했는데도 말이다.
이 나라 교원들이야 지난 정년단축 때도 그런 속임을 당했으니 정부를 믿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최고 통치권자가 직접 약속한 말이라 설마 하는 마음으로 지냈다. 그런데 이제 그 분들의 말과 행동이 모두 연극으로 드러나 버렸다.
도대체 교원과 공무원들이 국가 정책이나 통수권자의 말을 믿지 않게 만들고서도 어찌 복지 국가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국가는 대통령이나 일부 측근에 의해서 통치되는 것이 아니다. 많은 공직자들이 헌신적인 봉사와 사명으로 일해 나갈 때, 가능한 일이다.
연금은 국가의 돈이 아니다. 그 돈은 박봉의 공무원들이 내일을 생각하며 적립한 돈이다. 그러므로 그 돈을 관리하는 연금관리공단은 연금을 불입하는 전 공무원에게 고용된 자금 관리인이다. 그들은 주인의 재산을 최선의 방법으로 운용해 안정된 연금혜택을 누리게 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연금기금이 바닥났다는 것은 그들이 성실히 책임을 다하지 않고 또 국가도 상당 부분 책임을 면키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데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머슴이 맡았던 주인의 재산을 다 탕진하고 이제 와서 주인에게 결손된 만큼 더 내어놓으라고 억지를 부리고 있으니 정말 황당하다. 그런 정책을 입안하는 정치가나 경제관료들은 어찌된 셈인지 모두 재산이 몇 십 억씩 되니까 그까짓 연금이 조금 적어져도, 또 더 부담해도 아무 관계가 없을 지 모른다. 하지만 평생을 봉직한 공직을 떠날 때, 오직 그 연금만 믿고 산 말단 공무원에게 이 같은 처사는 한마디로 배신행위다.
우리는 단돈 백 만원이라도 융자받으려면 온갖 서류를 다 요구받고 문턱이 닳도록 다녀야 하는 그런 은행이 어떻게 모두 부실이 됐고, 그걸 메우려고 국민이 공적자금을 몇 십조 원이나 부담해야 하는지, 왜 잘못 운용된 연금에 대해서는 책임질 사람이 없고 공무원이 희생해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과거든 지금이든 이 나라의 지도자로 군림하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마찬가지다. 그들의 잘못으로 생긴 일을 이런 식으로 해결하려 하지 말아야 한다. 최고 통치권자가 약속한대로 기득권을 보장하고 공무원의 사명감을 흔들지 말라. 공무원의 사기가 떨어진 국가를 누가 붙들고 일으킬 수 있단 말인가. 책임 있는 생각과 행동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