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평생 나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지고 사랑하며 혹은 미워하며 살아왔다. 그중 양정고보에서 만나 뵙게된 김교신 선생이야말로 오늘의 내가있게 된 결정적 만남의 장본인이시다.
나는 양정고보에 입학해 일본의 명문고인 동경고등사범을 졸업하고 양정에 부임한 김교신선생을 담임교사로 만나게 되었다. 김교신 선생은 지리와 박물을 담당해 강의했다. 지리는 일본 지리와 세계지리였는데 조선 지리는 일본 지리교과서 끝에 겨우 몇 쪽이 삽입되어 있을 정도여서 일반적으로는 두 세시간 강의로 끝나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김교신 선생은 조선 지리만을 계속 가르치고 일본지리는 다른 학교와는 반대로 몇 시간으로 끝냈다. 조선지리를 배우는 동안에 젊은 우리들은 우리 국토인 한반도가 세계 최선의 국토이며 옛날에는 만주 일대가 우리조상들이 다스린 땅이란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
지리강의 중에 간헐천에 관해서는 열 번 이상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었다. 당시에는 그 까닭을 모르고 같은 내용의 강의를 거듭거듭 되뇌이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했었다. 한국이 현재로는 땅속 깊이 고여있는 온천물 같아서 별로 세상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지만 큰 힘이 축적되었다가 한번 터지면 웅장한 물줄기가 수십미터 하늘로 치솟는 간헐천처럼 될 것이라는 것. 간헐천을 우리 민족의 장래의 상징으로 인식시키려 했던 것을 나는 나이가 들어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김교신 선생은 언제나 머리를 박박 깍고 이마는 거울처럼 번득였는데 별명은 양칼로 통했다. 옳은 이야기를 들으면 하찮은 일에도 눈물을 흘리고 불의에 대해서는 주저없이 한칼로 잘라버리는 의지형이기도 하셨다.
스승과 제자. 선생과 학생. 이 두 가지를 구별 못하는 세상이 되었다. 선생은 모두 스승이 아니다. 인생을 가르치는 이는 스승이고 지식이나 기능만을 가르치는 이는 선생이다. 인생을 배우는 사람이 제자이고 지식과 기능만을 배우는 사람은 학생이다.
나는 어는 잡지에 "오늘 이 사회에는 선생은 많으나 스승은 없고 학생은 많으나 제자가 없다"라고 탄식한 글을 발표한 일이 있다. 스승과 제자, 사도의 길을 가고있는 사람은 제자다운 제자를 만나는 것이 인생의 큰 보람일 것이며 제자 역시 스승다운 스승을 만나는 것이 삶의 엄청난 복락이 될 것이다. 나는 김교신 선생 같은 스승을 만난 인생의 행운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