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월 2일, 무더운 대기를 뚫고 치솟은 비행기는 6시간 반의 비행 뒤에 체온만큼 따뜻한 쿠알라룸푸르에 우리를 데려다 주었다. 하늘을 향해 도열한 거대한 손바닥 같은 팜나무 사이 길을 달려 시내 중심가를 지나 여장을 푼 호텔 주변에는 음식을 파는 노점들이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술 안 마시고, 담배도 안 피우는 무슬림이 대부분인 나라에서 손님들은 무슨 이야기를 하느라 저리 즐거운 밤을 보내고 있을까.
아침 일찍 만난 NUTP(말레이시아 교원조합)의 전 수석부회장님 Lim Cheng Uo씨는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중국계 전임 교장선생님이었다. 반가운 첫 인사를 나누고, 이어 속속 도착한 말레이시아 측 일행과 함께 우리는 첫 번째 방문지인 공립 잘란 이포(Jalan Ipoh) 여자고등학교로 출발했다. 인도계, 중국계, 이슬람계 각각 생김새가 다르고 종교에 따라 교복모양도 다른 여학생들이 “안녕하세요”라며 반겨주는 그 곳에서 교장선생님의 브리핑도 역시 영어로 진행되었다.
말레이시아의 학제는 6년제 초등학교 졸업 후 6년제 중등학교 진학, 4년제 대학 진학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의무교육은 아니지만 중등학교까지의 학비는 무료라고 했다. 문자가 없어 영어로 표기하는 말레이어와 중국어, 영어는 모든 학생들의 기본언어였다.
정부정책은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수학과 과학을 영어로 강의하게 하는 것이 큰 특징이었고, 우수학생들이 많아 교과 외 활동을 대학입시에 반영하며 독서프로그램과 리소스 센터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했다. 프로젝터를 이용한 ICT수업 참관과 무선 인터넷 교실과 넓은 도서관과 정보센터를 거쳐 매점과 간단한 차 대접에 이르기까지, 또랑또랑한 눈망울로 질문에 대답을 해주었던 학생들의 모습과 활기찬 여교장님 이하 다정하고 열정적인 선생님들이 떠오른다.
이어서 우리 일행은 NUTP본부 빌딩을 방문하였다. 30여명의 상근 직원이 근무하는 두 채의 빌딩을 둘러보고 회의실에서 NUTP에 관한 간단한 브리핑과 질의응답을 주고받았다. 이렇게 시작된 열띤 분위기는 오후의 세미나에서 그 절정에 달하였다. 무려 네 시간이 넘도록 자리를 뜰 줄 모르고 두 나라의 ‘교원자격·승진제도’ 에 대해 정보를 나누는 보람찬 자리였다. 첫 만남인데도 서로를 향한 호감과 호기심이 번쩍였고, 특히 통역보다 더 유창하신 우리 대표단 선생님들의 영어실력에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교육개혁의 회오리바람 속에서 진정한 교육경쟁력을 갖고자 애쓰는 우리 대한민국의 교사들의 고민은 말레이시아 교사들과도 흡사하였다. 그들도 우리처럼 각종 잡무에 치이고, 학생들과 같이 호흡할 시간이 부족하고, 게다가 교사평가시험에도 시달리고 있었다.
수업으로 인정받고 교수-학습에 관한 전문적 학습공동체를 이끌어 간다는 면에서 우리의 수석교사제와 비슷한 제도를 이미 시행하고 있지만 전국 110여명에 불과한 수석교사들이 어떻게 32만7천명에 달하는 동료교사들의 활동지원을 해 줄 수 있을지는 답답한 숙제로 남아있는 그들의 현실이었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통하는 공감 속에서 세미나 폐회 선언 후에도 계속된 정보교환과 우정은 말레이시아의 밤을 잊게 했다.
치렁치렁한 히잡과 차도르 속에서 눈만 내놓은 여성들, 스카프와 긴치마로 얼굴만 내놓은 여성들, 아주 검은 인도계, 거무스름한 말레이계, 우리와 비슷한 중국계, 피부도 다양한 사람들, 새벽에도 마이크로 기도시간을 알리며 울려 퍼지는 이국적인 이슬람 성가, 밥을 먹지만 공공건물에서 돼지고기는 절대로 안파는 다양성의 사회 말레이시아. 인적자원 하나로 정보통신 강국이 된 우리 대한민국과 달리 말레이시아는 세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부유한 자연자원의 나라이다. 그들은 다민족 다인종을 봉합하고 화합해 내며 대한민국을 공부하여 발전의 모범으로 삼는다. 낯설었지만 우리와 같이 고민하고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애쓰는 말레이시아 교사들은 우리의 과거, 현재와 미래가 녹아있는 우리의 진정한 이웃이었다. 내년에는 말레이시아 선생님들과 서울하늘 아래에서 다시 만나 역지사지의 지혜를 서로 나누는 기회가 있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