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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과학으로 보는 문화유산-13> 수중대왕릉

현재 수면높이로 볼 때 석관 주장 타당성 없어

1967년 7월 24일 신라시대의 문무왕릉이 경북 월성군 양북면 봉길리 앞바다인 동해에서 발견됐다. 토함산 석굴암으로부터 일직선상에 있는 수중에 십자형 암석이 석관 형태로 놓여 있다는 것이다.

가운데 못에 깔려 있는 거북이 등 모양의 큰돌은 길이 3.7m, 두께 1.45m, 너비 2.6m로 그 밑에 문무왕의 납골을 모신 용기가 있을 것으로 추정됐다. 이 석관은 주위의 돌과 판이하게 다른데다 동해의 맑은 물이 30㎝ 정도로 덮여 있어 물 밖에서도 잘 보인다. 한국일보사가 주관한 신라오악학술조사단의 결론을 토대로 곧바로 사적 158호로 지정됐다.

그러나 이 대왕암은 문무대왕의 수중릉이 아니고 산골처라는 주장이 학자들로부터 계속 제기돼 왔다. 바위가 인공이 아니라 천연석처럼 보인다는 주장이 가장 큰 논제의 주안점이었다.

그들은 해중릉침의 복개석으로 주장된 돌은 사리장치(舍利藏置)를 덮은 인공적인 석관 덮개가 아니고 자연석임이 틀림없다고 재차 확인했다. 복개석 밑바닥은 돌과의 사이에 공간이 뜨고 그 일부분만 접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왕암이 역사적으로 유서가 깊은 장소라고 할 수는 있을지언정 능침 구조는 아니며 그 일대의 바다에는 대왕암에 버금갈 전설과 신비에 싸인 바위들이 많다고 주장했다.

대왕릉이 문무왕을 화장한 후 유골을 바다에 뿌린 산골처임을 주장하는 이유 중 하나는 문무대왕비문에 '나무를 쌓아 장사 지내다(葬以積薪', '뼈를 부숴 바다에 뿌리다(硏骨鯨津)' 등이 "삼국사기"의 내용과 똑같이 적혀 있기 때문이다. 백 번 양보해 대왕릉이 수중릉이라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복개석'이라고 주장하는 거북 모양의 돌을 들어내고 그 밑에 납골장치가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1991년 '기후 변화의 환경 및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국제 회의(CIES)에서 지구는 과거 100년 동안 해면이 1년 평균 1.0∼1.5㎜의 속도로 상승하고 있으며 최근 50년간은 상승속도가 가속되어 1년에 2.4㎜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서울대학교의 박용안 교수는 탄소동위원소 연대 측정법으로 조사한 결과 빙하기 직후인 7000년 전에는 해수면이 지금보다 6.5m, 4000년 전에는 3m, 2000년 전에는 2.5m 낮았다고 했다.

이렇게 볼 때 대왕암이 수중릉이라면 지난 1300년 동안 수심이 적어도 2m 가량 높아졌으므로 현재 수중릉으로 알려진 덮개석을 덮고 있는 수심은 최소한 2.5m는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현재 석관 위로 물의 깊이는 30㎝밖에 되지 않는다. 즉 현재 수면의 높이로 판단해 볼 때 당시의 석관이라고 주장하는 덮개석은 수면보다 최소한 2m이상 높은 곳에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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