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만대장경'이 해인사에 보존되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1251년 완성되어 지금까지 남아 있는 목판은 총 1513종, 6844권, 8만4685매로서 국보 111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표적인 대장경판 한 장의 크기는 가로 72.6㎝, 세로 26.4㎝, 두께 3㎝ 정도인데 양끝에는 나무 조각을 붙이고, 네 귀퉁이에는 구리 장식을 달았다. 글자는 대개 23줄로 각 줄마다 14자씩이다.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대장경판전(국보 제52호)은 조선 초기 개수한 그대로 보존돼 있다. 이 건물의 중요 기능은 경판을 보호하고 장기간 보존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적절한 환기와 온도 및 습기 제거를 위해 건물 외벽에 붙박이 살창을 두었다. 특히 벽면의 상단과 하단, 건물의 앞면과 뒷면의 살창 크기를 달리함으로써 공기가 실내에 들어가 상단과 하단부를 돌아 나가도록 절묘한 건축기술을 발휘했다.
이 간단한 차이가 공기의 대류는 물론 적정 온도를 유지하게 한다. 경판전 안에서 향을 피워보면 향이 각 전체를 한바퀴 돈 뒤에야 사라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또 판고 전체의 온도도 1.5도 차이밖에 나지 않으며 더구나 가장 추울 때와 더울 때의 차이가 10∼15도를 넘지 않는다. 정밀 조사에 의하면 해인사주변 습도는 연중 인근지역에 비해 6∼10% 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건대로라면 경판은 썩기 쉽다.
그럼에도 경판이 온전히 보존돼온 것은 해발 645m에 있는 판고가 지역 특성상 3개의 계곡이 만나는 지점으로부터 1㎞쯤 북쪽에 위치, 바람이 항상 불어 자연적 습도조절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또 경판각 시설 자체가 기막히게 조절 기능을 하고 있다. 현재 경판은 5단으로 된 판가 각 단에 빼곡이 세워져 있는데 이 때문에 밑에서부터 맨 위까지 경판 사이 틈을 통해 바람이 지나면서 골고루 습도를 조절해 준다. 목재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자라는 나무를 골라 3년 동안 바닷물에 담가 놓았다가 꺼내어 소금물로 경판을 삶은 후 그늘에 말렸다. 소금물은 벌레나 곰팡이 서식을 막아주고 나무진이 목질 내부에 골고루 스며들도록 해 뒤틀림이나 갈라짐을 줄여준다.
경판에 옻칠을 한 것도 장기 보관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 일반적으로 글자를 새기고 교정작업을 마친 목각판은 표면에 먹물을 칠하거나 콩의 전즙과 송연으로 처리한 뒤 판가에 보관하는 것이 보통인데 특별히 옻칠을 했다. 목각판에 옻칠한 것은 세계적으로 유일하다. 옻칠이 벗겨진 마구리 등이 다른 부분보다 훼손이 심한 것으로 보아 옻칠 자체가 경판 보존에 큰 역할을 하였음을 증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