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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이야기> 선생님의 벼루


나는 지금 조그마한 벼루에 먹을 곱게 갈고 있다. 이 벼루는 내가 가장 아끼고 소중하게 여기는 것으로 항상 진열장에 놓아두고 있다. ‘진품명품’에 나오는 것처럼 오래된 골동품은 아니지만 이 벼루는 선생님의 추억을 선명하게 떠오르게 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일이었다. 학년초, 담임선생님께서는 공책 글씨를 잘 쓴다고 하시면서 시내에 가서 붓과 먹, 그리고 벼루를 사다주셨다. 이것은 내가 지금까지 붓을 잡은 계기가 되었다.

그 후로 선생님은 수업 시간 이후에도 매일 붓글씨를 가르쳐주셨고 나는 항상 제일 나중에 하교를 했다. 밖에 나가 뛰어노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선생님이 자리를 비우시면 몰래 운동장에 나가 공을 차고 들어오곤 했다. 선생님은 모르는 척하시며 내 머리의 시큼한 땀 냄새를 맡으시면서 손수 손을 잡아 붓글씨를 가르쳐주셨다.

몇 년전 내가 충남 미술대전 서예부문에서 대상을 받았을 때 선생님은 신문기사를 보시고 누구보다 좋아하셨다. “청출어람이다. 내가 너한테 배워야겠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하셨다.

자식이 부모가 되기 전엔 부모의 진정한 마음을 헤아리기 어려운 것처럼 내가 교사가 되지 않았더라면 선생님의 그 큰 은혜를 모르고 살아갔을 것 같다.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지금 컴퓨터 자판에서 줄줄 뽑아 나오는 글씨의 편리함에 젖어 손글씨의 따스함을 모르고 생활했을 것이다.

선생님은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 않고 제자의 소질을 찾아 계발해주셨다. 그때는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들이 이제 그 자리에 서보니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알게 됐고, 그래서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교사가 되어 그리워하는 은사님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르겠다. 나는 ‘내가 가르친 아이들도 나를 그리워할까’ 하고 자신에게 물어보고 반성한다. 선생님께서 사주신 벼루의 검은 먹물 속에는 선생님의 사랑과 정성, 열정이 모두 녹아들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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