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들어왔나? 서경희! 니가 반장 맡아라. 자, 출석 부른다. 지각한 사람은 나중에 종아리 걷을 각오해라."
이달 말 44년 11개월의 교직생활을 마감하는 경기도 성남 분당중학교 최길시(崔吉時.62) 교장이 11일 옛 제자들을 불러 '마지막 수업'을 했다.
"딱딱한 정년퇴임식보다는 옛 제자들과 재회를 통해 지난 교직생활을 반추하면서 옛날의 그리움을 어루만져 보는 것도 뜻있다 싶어 마련한 것으로 '묵은 정(情) 위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는 심정'으로 준비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3시간 가까이 진행된 이날 수업에는 최 교장이 개인 홈페이지에 올린 공지사항을 보고 초임발령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국어교사 때까지 30-50대 나이의 제자 60여명이 참석했다.
멀리 울산에서 비행기편으로 참석한 제자, 20여년전 빛바랜 앨범을 들고 찾아온 제자, 일본 나고야한국교육원 파견교사 시절 만났던 재일교포 일본인 제자도 있었다.
최 교장은 '나'라는 주제를 칠판에 적으며 시작된 수업에서 인기 전공을 마다하고 흉부외과 전공의 과정을 밟고 있는 아들 얘기, 다섯살에 초등학교에 들어가 17살 때 초임교사가 됐던 사연, 의대 등록금이 없어 의사 꿈을 접은 아픈 기억, 전교조가 결성되기 전 참교육 활동을 하다 전출됐던 일들을 회고했다.
그는 또 오사카대 언어문화학 박사라는 노하우로 영어교육 열풍 속에 언어습득의 신비에 대해서도 의미있는 견해를 던지기도 했다.
최 교장은 "요즘 세태에선 '돈벌라'고 해야 했는데 '공부하라'만 말한 것을 반성한다"면서도 "그래도 정직하고 후회하지 않게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제자들에게 주문했다.
최 교장은 '따분한 수업의 양념'이라며 수업 도중에 색소폰으로 '마이 웨이(My Way)'를 연주하기도 했고 중간중간에 투박한 강릉사투리로 "마카(모두) 이리나와 쫄러리(줄지어) 서라"며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가요 '만남'을 함께 부르며 수업을 끝낸 최 교장과 제자들은 최 교장이 준비한 포도주가 곁들여진 점심을 하며 추억을 되살렸다.
초임발령 학교였던 강원 묵호초등학교 제자였던 서경희(51.여)씨는 "학문적으로나 인격적으로 정말 존경했고 열심히 가르치시고자 했다"며 "오늘 반장까지 맡아 정말 기억에 남을 수업이었다"고 말했다.
최 교장은 "재미있고 뭔가 가져갈 것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수업을 진행했다"며 "40여 년만에 만난 제자들 앞에서 수업 중에 눈물을 보일 뻔 했는데 잘 참았다"고 감회를 밝혔다.
최 교장은 1961년 강원 묵호초교 교사를 시작으로 강릉상고, 강릉고, 철원고 국어교사를 거쳐 일본나고야한국교육원 교감, 홍콩한국국제학교 교장 등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