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대학 교육의 내용을 세부적으로 간섭하고 재정적 지원을 해 주는 유럽의 사회민주주의식 대학 교육 모델이 대실패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고 영국의 시사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최신호가 주장했다.
잡지는 '유럽이 어떻게 젊은 세대를 실패하게 하고 있는가"라는 제목의 기획기사에서 유럽의 낙후된 고등고육체제가 유럽의 장기적인 경쟁력을 저하시키고 있다고 진단했다.
유럽은 근대적인 대학교육의 발상지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지도에 나타나기 훨씬 이전부터 프랑스의 파리와 볼로냐, 영국의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에 대학이 설립됐다.
하지만 2차대전을 계기로 주도권은 미국으로 넘어갔다.
지금은 세계 20대 대학 가운데 17개가 미국에 있고 노벨상 수상자의 70%가 미국 대학에 근무하고 있다.
과학 및 공학 분야의 유명 학술지 게재 논문 30%, 가장 많이 인용되는 학술논문의 40%가 미국 대학 소속 학자들의 작품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코노미스트는 유럽이 주도권을 상실하게 된 가장 큰 이유로 '국가의 역할'을 지목했다.
미국 대학들은 정부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지만 그밖에도 많은 다양한 곳으로부터 운영자금을 조달한다.
학생들로부터도 많은 학비를 받지만 박애주의자, 기업가, 성공한 졸업생 등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한다. 당연히 교수들의 연구비, 학생들의 교육비에 더 많은 예산을 쏟아붓는다.
반면 유럽의 대학들은 정부의 지원에 거의 전적으로 의지한다. 정부는 재정 지원을 하는 대신 학교 운영에 세세하게 간섭한다.
정부는 대학들에 대해 더 많은 학생에게 고등교육의 기회를 부여할 것을 종용하고 정부의 재정 지원에 의존하는 대학들은 학생들에게 제대로 투자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학위증을 양산하는데 주력했다. 이러는 사이에 대학 교육의 질은 추락했다.
반면 정부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운 미국의 대학들은 더 좋은 교육을 제공하고 대신 더 많은 돈을 받았다.
모자라는 돈은 기업과 사업가들의 기부로 충당하고 교육의 질을 개선하는데 주력했다. 이런 유연성을 가진 미국의 대학 및 교수들과 공무원인 유럽 대학이 경쟁하는 것은 처음부터 어려운 것이었다.
유럽인의 사고는 대학이 많은 학비를 받으면 고등교육은 부자들의 독점물이 될 것이라는 것에 고착돼 있었다. 그래서 정부 재정 지원을 통해 학비를 낮추고 더 많은 국민에게 교육의 기회를 확대하는 사회민주주의식 모델의 실현에 노력해 왔다.
하지만 지난 수십 년 실험은 정반대의 결과를 불러왔다. 유럽의 대학생들은 노동계층보다는 중산층 이상 출신이 더 많다. 반면 미국 대학생의 3분의 1은 인종적 소수그룹 출신이며 4분의 1은 빈곤층 자녀들이다.
유럽이 꿈꿔온 고등교육의 기회 확대라는 이상이 오히려 경쟁과 자율을 중시하는 미국에서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유럽의 대학이 미국에 뒤처진 것은 물론 아시아로부터도 엄청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싱가포르는 나라 전체를 '지식의 섬'으로 만들기 위해 대학에 지속적으로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다. 인도에는 세계 수준의 과학ㆍ기술 대학들이 무더기로 설립되고 있고 중국에서는 대학생의 수가 2배로 증가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지식사회'를 이뤄 적게 일하면서도 높은 생활수준을 유지하겠다는 유럽의 꿈은 고등 교육 시스템이 미국과 아시아에 완전히 뒤지게 되면 '헛된 꿈'으로 끝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