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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걷고, 보고, 듣고”… 농업의 역사에서 수원의 오늘을 만나다

서수원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축만제·국립농업박물관 현장탐방
이경희 역사 강사와 함께 ‘농업도시 수원’의 220년 역사를 따라 걷다

 

책장에서 시작한 인문학이 도서관 문을 나섰다. 그리고 시민들은 직접 역사 현장을 걸으며 수원의 또 다른 얼굴을 만났다. 서수원도서관이 운영하는 2026년 ‘길 위의 인문학-10번의 걸음으로 만나는 수원의 어제와 오늘’ 참가자들은 2일 국립농업박물관과 축만제 일대를 찾아 우리 농업의 변화와 수원의 역사적 의미를 살펴보는 현장탐방 시간을 가졌다.

 

이날 탐방의 주제는 ‘농업개혁과 축만제’였다. 참가자들은 박물관 전시와 역사 현장을 직접 걸으며 오늘날 첨단산업과 대도시의 이미지가 강한 수원이 사실은 200년 넘는 농업도시의 전통을 지닌 곳이라는 사실을 새롭게 발견했다.

 

이번 탐방을 맡은 이경희 역사 강사는 “오늘 현장탐방의 가장 큰 목표는 정조가 수원화성을 건설하면서 백성들이 풍요롭게 살 수 있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 농업을 어떻게 발전시키려 했는지 현장에서 확인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조가 꿈꾼 수원은 단순히 성곽과 건물이 들어선 새로운 도시만은 아니었다. 그곳에 사는 백성들이 안정적으로 먹고살 수 있도록 농업 기반을 갖춘 자립적인 도시를 만들고자 했다는 것이다.

 

 

이날 오전 9시 50분, 참가자들은 국립농업박물관 북문 입구에 하나둘 모였다. 서수원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이라는 이름 아래 모인 시민들의 발걸음은 평소의 견학과는 조금 달랐다. 단순히 전시물을 둘러보는 것이 아니라 ‘수원의 어제와 오늘’을 이해하기 위한 역사 여행의 한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참가자들은 (구)농촌진흥청과 항미정, 축만제, 농민회관, 국립농업박물관 일대를 직접 걸으며 수원의 농업 발전 과정과 우리 농촌의 변화상을 살펴봤다. 강의실에서 듣는 역사와 달리 실제 공간과 유물, 기록을 함께 마주하자 역사는 훨씬 가까운 이야기로 다가왔다. 이경희 강사는 “강의에서 배운 정조의 농업개혁 이후 220년이 넘는 수원의 역사를 실제 공간과 연결해 보면, 역사가 먼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장소의 이야기라는 것을 직접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농업은 우리 사회의 근간이었다. 한 해 농사가 백성들의 삶을 좌우했고, 물을 확보하고 땅을 잘 활용하는 일은 국가의 중요한 과제였다. 정조 역시 새로운 도시 수원을 건설하면서 성곽을 세우는 데만 관심을 둔 것이 아니었다. 백성들이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농업 생산을 늘리고 농촌 경제를 안정시키는 일에도 힘을 쏟았다.

 

 

이경희 강사는 “정조는 농업을 발전시켜 수원이 스스로 먹고 살 수 있는 모범적인 도시가 되기를 바랐다”며 “이를 위해 농업 기반시설을 마련하고 축만제를 조성했으며 주변 농지를 활용해 안정적인 농업 생산을 뒷받침했다”고 설명했다. 축만제는 단순한 저수지가 아니었다. 농사에 필요한 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해 가뭄이나 흉년에 농사가 크게 흔들리지 않도록 하기 위한 중요한 농업시설이었다. 결국 ‘농업개혁’이라는 다소 무거운 역사적 말 속에는 백성들이 어떻게 하면 더 안정적으로 먹고살 수 있을지를 고민했던 당시의 정책과 노력이 담겨 있었다.

 

이날 탐방의 핵심 장소 가운데 하나인 축만제에서는 물과 농업, 그리고 도시의 관계를 생각해 보는 시간이 이어졌다. 농업에 필요한 물을 확보하고 생산량을 안정시키는 일은 당시 백성들의 삶과 직결됐다. 정조가 축만제를 조성한 것도 농업을 기반으로 안정적이고 풍요로운 도시를 만들기 위한 노력의 하나였다.

 

이경희 강사는 “축만제를 중심으로 한 농업 기반은 정조 이후에도 수원의 농업 전통을 이어가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수원의 농업 역사는 이후에도 계속 변화했다. 근대에 들어 농업 관련 연구와 시험시설이 들어섰고, 해방과 한국전쟁 이후에는 농촌진흥청이 자리하면서 우리나라의 식량 문제 해결과 농업 발전을 위한 연구가 이어졌다.

 

 

한 장소에서 시대에 따라 농업의 역할과 모습은 달라졌지만, 수원은 오랜 기간 우리나라 농업 발전의 중요한 현장 가운데 하나였다. 이 강사는 “오늘날 우리가 보는 수원의 모습만 기억할 것이 아니라, 그 바탕에는 농업을 발전시키고 농민들의 삶을 안정시키려 했던 역사적 노력이 있었다는 사실도 함께 기억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참가자들에게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익숙한 수원에서 미처 알지 못했던 새로운 역사를 발견하는 순간이었다. 이경희 강사는 “참가자들이 ‘수원에 이런 농업의 역사가 있었느냐’, ‘농업은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재미있는 줄 몰랐다’고 말할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며 “익숙한 장소에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가 숨어 있었다는 사실을 새롭게 발견하는 순간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한 참가자도 “평소 수원에 살면서도 우리 지역이 농업과 이렇게 깊은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은 많지 않았다”며 “직접 현장을 찾아 설명을 들으니 수원의 역사가 훨씬 가깝게 느껴지고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바로 이것이 ‘길 위의 인문학’이 가진 힘이다. 책 속의 지식을 외우는 데서 그치지 않고 직접 걷고, 보고, 질문하며 자신이 사는 지역을 새롭게 발견하는 것이다.

 

 

이날 탐방은 참가자들에게 역사가 특별한 사람들만 연구하는 어려운 학문이라는 선입견을 깨는 시간이기도 했다. 우리가 매일 지나치는 길과 건물, 저수지와 지명에도 수백 년의 이야기가 담겨 있을 수 있다.

 

이경희 강사는 수원시민들에게 “익숙한 공간을 그냥 지나치지 말고 ‘왜 이곳에 이런 것이 남아 있을까’라고 한 번쯤 질문해 보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는 축만제뿐 아니라 만석거와 축만제로 이어지는 수원의 농업 역사 현장을 함께 살펴보며 수원이 어떻게 농업도시로 성장했는지 관심을 가져보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서수원도서관의 ‘10번의 걸음으로 만나는 수원의 어제와 오늘’은 오는 10월 21일까지 강의와 탐방, 체험을 통해 이어진다. 성인 시민들을 대상으로 운영되는 이번 프로그램은 익숙한 수원의 공간을 인문학적 시선으로 새롭게 바라보도록 기획됐다.

 

 

국립농업박물관과 축만제를 따라 걸은 이날의 발걸음은 화려한 역사적 사건이나 유명 인물만이 역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물을 가두고 땅을 일구며 한 해 농사를 준비했던 수많은 사람의 삶 역시 우리 역사의 중요한 한 페이지였다. 도서관에서 출발한 인문학은 이제 시민들의 발걸음을 따라 수원의 거리와 역사 현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10번의 걸음으로 만나는 수원의 어제와 오늘.’ 그 열 번의 걸음이 모두 끝나는 날, 참가자들이 가장 크게 달라질 것은 아마도 수원을 바라보는 눈일 것이다. 늘 지나던 길에서 역사를 발견하고, 익숙한 공간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나는 것. 9월 2일 국립농업박물관에서 시작된 이날의 걸음 역시, 그런 새로운 발견으로 이어지는 의미 있는 한 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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