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릇푸릇한 신록의 계절, 6월이 되었다. 교정의 나무들은 어느새 짙은 녹음을 드리우고, 교실의 학생들은 여름방학을 향해 조금씩 시계를 앞당기기 시작한다. 교사들에게도 6월은 특별한 달이다. 새 학년의 긴장감은 다소 누그러지고, 교육과정 운영은 본격적인 궤도에 오른다. 그래서일까? 6월은 “무엇을 더 가르칠 것인가?”보다는 “나는 지금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를 되묻게 하는 성찰의 계절이라 할 수 있다.
최근 학교 현장에는 디지털 전환, 인공지능(AI) 활용 교육, 기초학력 보장, 학생 맞춤형 교육, 정서·심리 지원 등 수많은 정책이 쏟아지고 있다. 모두 어느 것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과제들이다. 그러나 6월의 학교가 잠시 멈춰 서서 성찰해야 할 것은 정책의 숫자가 아니라 교육의 방향이다.
한 초등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교사가 학생들에게 “AI가 글을 써주는 시대에 가장 중요한 능력은 무엇일까?”라고 물었다. 학생들은 “컴퓨터 잘하기”, “코딩”, “영어” 등을 답했다. 그런데 한 학생이 손을 들고 말했다. “선생님, 질문하는 능력이요.” 순간 교실이 조용해졌다. 생각해 보면 요즘 모두가 흔히 말하는 그 말이다. AI가 답을 찾는 시대일수록 인간은 더 좋은 질문을 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학교는 여전히 정답을 맞히는 데 많은 시간을 쓸 뿐이다.
얼마 전 한 중학교 교사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학생들이 시험 문제는 잘 푸는데, 친구와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은 잘 모릅니다.” 다시 말하면 성적은 올랐지만 관계 맺기는 어려워졌다는 말이다. 이는 단지 한 학교의 문제가 아니다. 오늘날 학교가 더욱 주목해야 할 교육활동은 학력과 함께 시민성, 공감 능력, 소통 능력을 키우는 일이다. AI가 정보를 제공할 수는 있어도 친구의 눈물을 닦아주지는 못하지 않는가?
6월은 우리에게는 호국보훈의 달이다. 이는 학생들에게 국가와 민족을 위해 희생하신 영령들의 역사를 가르치는 시간이어야 한다. 단지 기념일을 암기하는 수업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이 땅에 수립한 자유와 민주주의, 평화가 얼마나 값비싼 희생 위에 세워졌는지 성찰하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대형 아파트 단지에서 현충일에 조기를 거는 태극기 게양은 찾아보기 힘들다. 일상이 바빠 잊었다고 말하기에는 궁색한 변명이다. 너무도 흔한 모습이다.
한 고등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만약 여러분이 1950년 그 시대를 살았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학생들은 가족의 입장, 지역의 상황, 당시의 사회적 조건 등을 조사하며 역사를 ‘외우는 대상’이 아니라 ‘생각하는 대상’의 수업으로 만나게 되었다. 이는 교육은 지식을 전달하는 일을 넘어, 삶을 이해하도록 돕는 일임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또 하나 6월에는 학교가 주목해야 할 것이 학생들의 마음 건강이다. 교사들은 종종 “요즘 아이들은 왜 이렇게 힘들어할까?”라고 말한다. 그러나 어쩌면 학생들도 같은 질문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어른들은 왜 우리가 힘든지 잘 모를까?”라고 말이다. 한 학생은 상담 시간에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제 이야기를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
그렇다. 놀랍게도 교육의 출발점은 가르침이라기보다 경청일 수 있다. 학교는 때때로 학생들을 성장시키기 위해 수많은 프로그램을 만든다. 그런데 학생들이 가장 기억하는 것은 거창한 프로그램보다 자신을 이해하고 믿어준 한 사람의 교사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평생 잊지 못하는 은사로 남기도 한다. 단지 내 말을 잘 들어주었다는 이유만으로도 말이다.
교육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미래 사회 핵심 역량을 이야기하지만, 사실 학생들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나를 존중해 주는 사람에게 배우고 싶다.” 이 단순한 진실을 우리는 자주 잊는다. 그래서 6월의 학교에서 교사들은 이런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한다. “우리는 학생들에게 얼마나 많은 지식을 가르쳤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용기를 주었는가?”, “얼마나 많은 문제를 풀게 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깊이 생각하게 했는가?”, “얼마나 높은 점수를 얻게 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따뜻한 사람이 되도록 도왔는가?”
교육정책은 시대에 따라 변한다. 평가 방식도, 교과서도, 기술도 변한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교육은 결국 사람을 향하는 과업이라는 사실이다. 6월의 햇살이 짙어질수록 학교는 더 바빠질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속도를 늦추어야 방향을 확인할 수 있다. 교육은 학생들을 미래로 보내는 일이 아니다. 학생들이 미래를 스스로 만들어 갈 힘을 길러주는 일이다.
그런데 그 힘은 첨단 기술보다도, 화려한 정책보다도, 한 사람을 존중하는 학교문화에서 시작된다. 6월, 우리 교육이 다시 한번 기억해야 할 것은 “학생은 교육의 대상이 아니라 교육의 이유이다”라는 사실을 잊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다. 이는 일찍이 철학자 칸트(Kant)가 “인간은 최고의 목적 그 자체이지 어떠한 수단도 아니다”라고 한 말과 같음이다. 다시 한번 6월을 맞으며 우리의 가슴에 죽은 이, 산 이 모두를 존중하는 자연스럽고 당당한 초록의 시간으로 가꿀 수 있기를 기대하고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