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0년 전 동양의 스승 공자는 논어(論語) ‘위정편’에서 아주 완곡한 표현으로 교육의 정석을 밝혔다. “법률과 형벌로 백성을 인도하면 형벌만 면하려 할 뿐 부끄러움을 모른다. 덕과 예로써 인도해야 부끄러움을 알고 스스로 바르게 된다(導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 導之以德 齊之以禮 有恥且格).” 이 고결한 도덕 교과서적 말씀에 2026년 글로벌 시청자들이 돌연 환호하는 대반전이 일어났다. 바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전 세계에 공개되어 2주 연속 글로벌 TV쇼 1위를 차지하고 美포브스가 “올해 최고 드라마중 하나”라고 극찬을 한 참교육 열풍 때문이다. 웹툰 원작을 바탕으로 제작된 이 넷플릭스 시리즈는 무너질 대로 무너진 교권을 회복하기 위해 교육부가 신설한 가상의 기관, ‘교권보호국’의 활약을 담아낸 판타지 액션물이다. 극 중에서 특전사 출신의 베테랑 감독관과 현직 교육부 장관은 무법지대가 된 교실을 바로잡기 위해 그야말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빌런들을 처벌한다. 촉법소년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교사를 폭행하고 친구를 괴롭히는 불량 학생들에게 법보다 빠른 ‘매운맛의 물리력’과 물리적인 정의 구현을 펼치는 것이다. “어른이 애들을 무서워하면
우려하던 교육 현장의 붕괴 징후가 결국 차가운 숫자로 증명되고 있다. 최근 종로학원이 발표한 학교알리미 공시 자료 분석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2025년) 전국 일반고에서 학업을 중단한 고교생 1만8661명 중 고교 1학년생이 무려 1만450명(56%)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고1 자퇴생 수가 1만 명을 돌파한 것은 우리 교육 역사상 최초이자, 대단히 충격적인 신호탄이다. 학교에 입학해 새로운 교복을 입은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수많은 아이가학교 울타리 밖으로 스스로 걸어 나가고 있다. 더 절망적인 것은 이들의 자퇴가 학업을 포기하기 위함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는 점이다. 과연 이대로 우리 교육은 괜찮은 것인가? 이러한 기현상의 중심에는 교육부가 내신 부담을 완화하겠다며 전면 도입했던 ‘내신 5등급제’가 자리 잡고 있다. 제도의 취지와 달리 입시 현장에서는 상위 10%인 ‘1등급’을 확보하지 못하면 서울 주요 상위권 대학이나 의대 진학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공포 마케팅이 작동했다. 첫 중간고사에서 삐끗해 2등급(상위 34%)으로 밀려난 아이들은 미련 없이 학교를 떠나 검정고시와 수능 올인이라는 각
선거철마다 찾아오는 ‘거리의 유세 음악’의 소음이 걷히고 마침내 성적표가 나왔다. 지난 6·3 지방선거를 통해 향후 4년간 우리 아이들의 교실을 책임질 대한민국 교육 수장들의 면면이 확정된 것이다. 선거 결과를 한 줄로 요약하자면 “진보 성향 교육감들의 강한 귀환, 그리고 곳곳에 심어진 중도·보수의 견제구”라고 할 수 있다. 각종 언론은 이를 10:6의 구도로분석하고 있다. 서울과 경기·인천 등 수도권을 비롯한 대다수 지역에서 민주·진보 성향의 후보들이 깃발을 꽂으며 이른바 ‘진보 교육감 시대의 부활’을 알렸지만, 대구·경북·충북 등 보수의 텃밭은 건재했고 세종과 제주에서는 역사상 첫 여성 교육감이 탄생하는 이정표를 세우기도 했다. 특히 여성 교육감 출신이 이전의 1명에서 이제 3명으로 늘어난 것은 여성 특유의 더욱 섬세한 교육행정을 예측하기에 이른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거리와 교문 앞에 서서 “내가 적임자”라며 손을 흔들던 당선자들은 이제 교육청 집무실에 앉아 날카로운 예산서와 산적한 현안들을 마주해야 할 것이다. 이 묵직하고도 치열한 교육 전쟁의 서막에서, 우리는 무엇을 기대하고 무엇을 감시해야 할까? 이 글에서는 주요 언론의 관점을 반영
푸릇푸릇한 신록의 계절, 6월이 되었다. 교정의 나무들은 어느새 짙은 녹음을 드리우고, 교실의 학생들은 여름방학을 향해 조금씩 시계를 앞당기기 시작한다. 교사들에게도 6월은 특별한 달이다. 새 학년의 긴장감은 다소 누그러지고, 교육과정 운영은 본격적인 궤도에 오른다. 그래서일까? 6월은 “무엇을 더 가르칠 것인가?”보다는 “나는 지금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를 되묻게 하는 성찰의 계절이라 할 수 있다. 최근 학교 현장에는 디지털 전환, 인공지능(AI) 활용 교육, 기초학력 보장, 학생 맞춤형 교육, 정서·심리 지원 등 수많은 정책이 쏟아지고 있다. 모두 어느 것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과제들이다. 그러나 6월의 학교가 잠시 멈춰 서서 성찰해야 할 것은 정책의 숫자가 아니라 교육의 방향이다. 한 초등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교사가 학생들에게 “AI가 글을 써주는 시대에 가장 중요한 능력은 무엇일까?”라고 물었다. 학생들은 “컴퓨터 잘하기”, “코딩”, “영어” 등을 답했다. 그런데 한 학생이 손을 들고 말했다. “선생님, 질문하는 능력이요.” 순간 교실이 조용해졌다. 생각해 보면 요즘 모두가 흔히 말하는 그 말이다. AI가 답을 찾는 시대일수록 인간
오늘날 우리가 교육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사자성어 중의 하나가 바로 ’청출어람(靑出於藍)’이다.이 말은 원래 중국 고전 《순자(荀子)》의 「권학편」에서 나왔다. “푸른빛은 쪽에서 나왔으나 쪽빛보다 더 푸르다”는 뜻이다. 이는 제자가 스승을 넘어서는 일이야말로 배움의 완성이라는 선언이다. 놀라운 점은, 2000년 전의 이 문장이 오늘 대한민국 교실에 다시 소환해야 할 교육 철학이라는 사실이다. 왜냐면 우리는 오랫동안 ‘뒤처지지 않는 교육’에는 익숙했지만, ‘넘어서는 교육’에는 아직도 서툴기 때문이다. 우리 교육은 종종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해 왔다. “틀리지 마라.” 그러나 미래는 틀리지 않는 사람보다, 새롭게 질문하는 사람에게 기회가 주어진다. 인공지능(AI)이 계산을 대신하고, 검색엔진이 기억을 대신하는 시대에 교육의 핵심은 더 이상 “얼마나 많이 아는가”가 아니라, 오히려 “어떻게 다르게 생각하는가”, “누구와 함께 성장하는가”가 중요해졌다. 이제 학교는 정답을 보관하는 저장고가 아니라, 가능성을 실험하는 연구소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흔히 “요즘 아이들은 버릇이 없다”고 말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아이들은 이전 세대보다 훨씬 더 많은 질문을 한다. 그
오는 6·3 전국 교육감 선거를 앞두고 곳곳에서 벌어진 후보 단일화와 경선 과정은 우리 교육자치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언론 매체 역시 온통 이런 사실만을 경쟁하듯이 들추어 내고 있다. 본래 단일화의 목적은 가치와 정책을 공유하는 세력이 교육 비전을 하나로 모으기 위한 정치적 선택이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단일화는 교육철학의 통합이 아니라 세력 결집의 기술로 변질되었고, 경선은 정책 경쟁보다 조직 동원력과 절차 시비의 장으로 흐름에 유감을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서울과 경기 지역에서 나타난 갈등은 심각하다. 서울 진보 진영 단일화 과정에서는 일부 후보들이 “선거인단 등록이 의도적으로 배제되었다”고 주장하며 경선 결과에 불복했고, 각각의 지지 단체를 빌미로 출마를 선언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실제로 경선 과정에서 중복 등록과 대납 의혹, 선거인단 검증 문제 등이 제기되며 경찰 수사 요구로 이어졌다. 경남에서도 단일화를 외치던 진영이 오히려 다자 구도로 갈라지면서 “교육은 사라지고 정치 셈법만 남았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한 선거 갈등으로 그치지 않는다. 교육감 선거가 정당 공천은 금지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진영 정
금년 초 동아일보(2026.1.13.) 이진영 논설위원의 횡설수설난에 올라온 글을 소개한다. “금값이 치솟는 가운데 한국주얼리산업단체총연합회가 전국 귀금속 제조 업체의 40%가 모여 있는 서울 종로 귀금속 거리 일대에 ‘함량 미달 금 척결을 위해 모두 나서 주세요’라는 제목의 긴급 담화문을 게시한 적이 있다. 연합회는 지난해 9월 9%의 이물질을 섞은 도매용 가짜 금이 유통된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가짜 금을 은이나 주석을 이용해 만드는데 요즘은 금과 성질이 비슷한 텅스텐에 두껍게 도금해 적발하기 어렵다고 한다.” 서두에 웬 뜬금없이 그야말로 지나간 금 이야기로 횡설수설하는가? “반짝인다고 해서 다 금은 아니다(All that glitters is not gold).” 이 오래된 서양 속담은 오늘날 겉은 화려하게 빛나지만 그 이면에는 알곡, 즉실속이 없는 우리 교육정책을 바라보는 데 유난히 묵직한 울림을 주기 때문이다. 매번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화려하게 포장된 교육 슬로건이 등장한다. 고교학점제, 인공지능(AI) 교육, 디지털 교과서, 유보통합, 국가 과학자 육성, 창의 융합, 개별 맞춤형 학습, 서울대 10개 만들기 등각 단어나 표현들은 그 자체
“나는 왜 글을 쓰는가?” 이 질문은 늘 필자의 마음속에서 조용히 파문을 일으킨다. 지난 세월, 중등교육 현장에서 수십 년을 보내며 숱하게 남의 글을 읽기만 했지 직접 작성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중견 교사와 관리자의 위치에 오르면서부터는 타인의 글을 읽으며 동시에 조금씩 교육활동을 글로 쓰기 시작했다. 2017년에 이르러서 중고등학교 관리자(교감, 교장)에 명단을 올리면서 본격적으로 교육칼럼을 중심으로 에세이, 수필, 현실 비평, 교육 연구 등 글쓰기에 도전을 시도했다. 그리고 이제는 현직에서 은퇴했지만 여전히 이 물음 앞에 더욱 겸허한 자세로 사유를 하면서 글 쓰는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단지 생각을 기록하는 행위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교육자로서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이며, 교육자의 사명감을 다시 새기는 길이다. 1980년대 중반, 청운의 꿈을 안고 입문한 교직은 그 후 시대의 변화와 함께 속도의 차이는 있지만 항상 변화와 도전의 한복판에 있었다. 중견 교사가 되면서 조금씩 더 강한 책무성을 느꼈고 학교관리자가 되어서는 학교의 교육활동 중심에서 직접 교육의 방향과 비전을 공유하고, 구성원의 마음을 모으며, 때로는 묵묵히 감정을 제
오늘의 7080 중장년층은 과거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했던 MBC ‘대학가요제’와 KBS의 ‘우리들의 세계’ 방송 프로그램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 시절 우리는 가창력이나 기술을 넘어, 청춘들이 뿜어내는 날 것 그대로의 순수한 열정과 배움의 과정에 있는 학생들의 판단력, 사고력, 창의력 등 성장의 과정을 보여주는 메시지에 열광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청춘들의 재능은 입시와 취업이라는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한 인위적인 ‘스펙’으로 크게 전락했다. 과거처럼 우리는 청춘들의 관심과 참여, 순수한 열정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를 벤치마킹할 좋은 프로그램이 방송을 타면서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있었다. 그것은 호주에서 벌어지는 ‘스쿨-스펙터큘러(Schools Spectacular)’ 대축제다. 이는 호주의 세계적인 교육 모델로 발전한 것으로 재호주 한국인이 그 프로그램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참여하는 모습이 소개됨으로써 국내에서 관심 폭발의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에 필자는 ‘스쿨 스펙터큘러’라는 행사의 포용성과 한국 특유의 문화적 역동성을 결합하여, 우리 교육 현장에 획기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킬 한국형 ‘K-스쿨 스펙터큘러
필자는 매년 4월이 되면 과거 근무했던 학교들의 교정에 흐드러지게 활짝 피던 목련이 떠오른다. 이 꽃은 단순한 꽃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특히 7080세대에게 테너 엄정행의 가곡 ‘목련화’는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 속에 나오는 민태원의 수려한 수필 ‘청춘 예찬’과 같은 바로 그 청춘을 연상하는 정서적 감응을 유발한다. 이 글에서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목련의 서사와 예술적 감응, 그리고 '기다림'과 '치유'의 교육학적 성찰을 담아 보고자 한다. 올해도 하얀 함박눈이 가지 위에 내려앉은 듯, 거주지 인근 학교의 4월 교정에서 목련의 독무대를 보고 있다. 잎보다 먼저 꽃을 피우는 목련의 기개는 겨우내 움츠렸던 생명력을 가장 먼저 선포하는 부활의 메시지와 같다. 7080세대에게 4월은 앞서 언급한 엄정행 교수의 우렁차면서도 서정적인 가곡 '목련화'의 추억이 되살아난다. 어찌 그리도 고음의 감동적인 목소리의 울림이 청춘의 가슴 속을 파고 들던지... "오 내 사랑 목련화야, 그대 내 사랑 목련화야~"라는 구절을 반사적으로 읊조리며, 어느새 점심시간 교정의 목련 나무 아래 서 있던 청춘의 시간으로 회귀한다. 경희대성악과 명예교수인 테너 엄정행의 '목
요즘 극장가에 난해하지만 매우 유의미한 우주 과학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 이는 SF 작가 앤디 워어가 쓴 동명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화한 프로젝트 헤일메리(Project Hail Mary)가 그것이다. ‘헤일메리’의 원래의 뜻은 미식축구 경기 막판에 역전을 노리며 낮은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에 신의 뜻에 맡기며 던지는 무리한 롱패스, 즉최후의 승부수를 의미한다. 이 영화는 제작 초기부터 영화의 전체를 이끌고 갈 단독 주연 배우로 라이언 고슬링을 염두에 두었을 정도로 그의 연기력은 마치 차력쇼를 보는 듯한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보기 쉽지 않은 신비로운 우주의 장면들은 진짜 매력적인 요소로 시선을 흠뻑 빨아들이고 있다. 이 영화는 언뜻 보면 복잡한 천체 물리학과 미생물학의 나열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인류의 생존을 건 ‘적 사투’와 종(種)을 초월한 우주의 '우정', 그리고 무엇보다 '배움과 가르침의 본질'에 대한 뜨거운 메시지가 담겨 있어 과학적 지식과 정보에 많은 보탬을 주고 있있다. 필자는 이 글에서 난해해 보이는 우주 서사시를 쉽게 풀이하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미래 교육에의 방향을 짚어보고자 한다. 잠시 영화 속으로 들어가 보
매일 아침 8시 30분경이면 모든 초중고의 학교로 행하는 아이들의 발걸음이 빨라진다. 대부분아이들이 묵직한 책가방을 메고 삼삼오오 짝을 지어 왁자지껄하면서 걷는 모습은 하루의 시작을 알리지만 한편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어른들의 눈과 마음은 부디 행복한 하루가 그들에게 활짝 열려 배움이 즐거운 하루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게 된다. 어른들의 기억에는 학교가 그리 즐겁지만은 않다. 그래서 아이들의 ‘행복 교육’에 간절한 바람을 갖는지 모른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아이들이 수업 종을 기다리며 뛰어 들어가는 수업이 있다. “오늘은 국어 시간에, 우리가 직접 시를 쓸 거예요!”, “수학 수업인데, 마트에 가서 예산을 짤 거예요”, “사회 시간에 마을 어르신들을 모시고 이야기를 들어볼 거예요!” 이처럼 국어 시간에 동시를 쓰고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해 교실 벽을 전시관으로 꾸민다. 수학 시간에는 반 친구들과 ‘어린이 마트’를 개설하고 가짜 화폐로 실제 예산을 짜보며 계산 능력과 경제 감각을 동시에 배운다. 이런 수업을 통해 아이들은 단순한 지식 암기가 아니라, ‘살아있는 배움’의 기쁨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어느 중학교에서는 진로 수업 시간에 아이들이 지역 기업을 방문하
필자는 직장 생활하는 아들 부부를 돕기 위해 두 손주를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등하원 시키는 일과 하원 후에 일정 시간 동안 아이들 돌봄에 기꺼이 참여하고 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스러운 손주들을 위해 가족의 어른으로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자부심에 뿌듯한 감정으로 충만하다. 더불어 이에 부응하듯 날로 건강하고 씩씩하며 지혜롭게 성장하고 있는 손주들에게도 고마움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 이전에 분명하게 놓치지 쉬운 것이 있으니 바로 어린이집과 유치원 교사들의 봉사와 헌신, 아이 사랑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다. 최근 경기도 부천 지역의 한 사립유치원에서 발생한 교사의 비극적인 죽음은 학부모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의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나아가 우리 사회의 교육 시스템이 지닌 민낯을 처참하게 드러내고 있다. 독감에 걸려 고열이 나는데도 대체 인력을 구할 수 없어 출근해야만 했던 교사는 결국 출근 3일 만에 응급실로 들어갔고 안타깝게도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이다. 그 젊은 교사의 이야기는 단순한 개인의 비극이 아니다. 이는 대한민국 유아교육을 지탱하는 ‘사립유치원’이라는 거대한 축이 얼마나 위태로운 모래성 위에 서 있는지를 보여주는 통렬한 경고음이라 아니
한국의 세계적인 기업 삼성, 국가 발전의 중추인 이곳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인정하는 기업 철학이 있다. "의심나면 쓰지 말고, 썼으면 의심하지 말라(疑人勿用 用人勿疑)." 이는 故이병철 삼성 창업 회장의 인사 원칙이다. 이 짧은 문장은 단순한 회사 경영 원칙을 넘어 삼성을 세계적 기업으로 키워낸 거대한 경영 철학의 뿌리였다. 알려진 바와 같이 면접장에 관상가를 동석시킬 만큼 인물의 됨됨이와 그릇을 파악하는 데 집요했다. 이러한 정성은, 아들 이건희 선대회장에 이르러 "1명의 천재가 10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S급 인재론'으로 진화했다. 사장단 평가의 40%를 인재 양성에 배정하고, 전 세계를 저인망식으로 훑으며 인재를 영입했던 삼성의 집념은 오늘날 '두뇌 천국 삼성'을 만들었다. 이제 이 철학은 국가 인재 양성의 정책으로 돌려야 할 때가 되었다. 기업이 인재를 찾아 삼고초려(三顧草廬)할 때, 우리 대한민국은 과연 인재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현재 글로벌 무대는 총성 없는 '인재 전쟁' 중이다. 미국은 파격적인 비자 정책과 자본으로 전 세계 석학을 빨아들이고 있으며, G2 국가 중국은 '천인계획'을 통해 해외 인재를 싹쓸이하고 있다. 현재
오늘날 대한민국의 교육 현장을 빗대는 표현은 일부 절대평가의 방식으로 나아가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큰 틀에서는 거대한 ‘성적(成績)의 요새’와 같다. 이는 더 높은 등급을 받기 위해 친구를 잠재적 적군으로 간주하고, 정답만을 찾아 헤매는 오랜 전통 속에서 아이들의 눈동자는 배움의 희열 대신 소진(Burn-out)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대적 결핍 속에서 하버드 대학 출신의 생물학자 최재천 교수가 건네는 『희망수업』은 단순한 석학의 회고록을 넘어, 어쩌면 우리 교육의 방향에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비추는 어두운 밤하늘의 북극성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간직한다. 이에 이 글에서는 저자가 추구해 오는 우리 교육에의 애정 어린 쓴소리와 방향 제시에 깊은 공감을 표하고자 한다. 최재천 교수는 우리 교육계에 ‘통섭(Consilience)’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도입한 학자다. 또한 평생 자연을 관찰하며 깨달은 생태적 지혜를 교육이라는 틀 안에서 거침없이 풀어내고 있다. 이 책의 전반을 관통하는 핵심은 '공생(Symbiosis)'이다. 그는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ce)가 만물의 영장이 된 비결은 강인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