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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아카시아꽃 향기 시처럼 날리는 길섶에 형형색색 들꽃들이 향기를 뿜어낸다. 고개 들면 연초록의 물결이 높은 산으로 달려가며 윤기를 진하게 발한다. 부드러운 오월 훈풍의 푸른 날갯짓! 계절은 약속처럼 꼭 그 시간에 닮은 모습으로 다가온다.

 

 

이맘쯤 오월 하면 떠오르는 말이 있다. 오월은 막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의 청신한 얼굴이라는 피천득의 말로, 이 오월 앞에서는 나이란 아무 의미가 없어진다.

 

유년의 오월을 돌려본다. 마냥 좋은 명주바람이, 신록이 좋아 공부하기도 싫어지는 시기다. 오월이면 토끼풀이 무성한 들판을 헤집고 토끼풀 시계를 만들고 네 잎을 찾았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런 날들은 청춘에서 먼 이야기가 되었지만, 그리움은 여전히 현재형이다.

 

오월은 윤이나는 달인 만큼 사랑과 행복, 감사의 마음이 넘치는 날이다. 슬픔이라는 말은 꽃으로 피어나고 외로움이란 단어는 바람으로 다가오며 절망이란 손짓은 푸른 잎으로 돌아와 오월 하늘 가득하다. 신록은 이런 가난한 마음에 희망을 품게 하고 향기를 불어넣어 준다. 너무 여리지도 않고 강하지도 않은 부드러운 색감의 나뭇잎, 차지도 덥지도 않은 바람결, 맑은 하늘의 몇 점 뜬구름은 빈 마음을 행복으로 채워주고 시드는 꿈까지 깨운다. 사랑과 행복을 불러온다.

 

 

햇빛 찬란한 청잣빛 하늘이 좋은 날 선글라스 너머 짙게 드리우는 신록을 보면 보드랍고 탐스럽고 쓰다듬을 수 있는 감성을 가질 수 있음에 감사한다. 그리고 두 발로 걸으며 하늘을 보고 깊은 봄 내음을 들이마실 수 있음을 또 한 번 감사한다.

 

아침 시간 동쪽에서 비스듬히 달려 나온, 맑고 깨끗한 햇볕을 받으며 학교로 종종걸음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귀한 사랑의 마음이 더 싹터 오른다. 아이들은 현관을 나서며 부모님께 사랑받고 기쁨을 주며 열심히 달려왔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 또한, 소소한 감사가 아니겠는가?

 

우리는 행복하고 감사해야 한다. 하지만 말처럼 일상은 그렇지 않다. 언제나 일상에 바빠서 고개를 못 드는 시간의 뜨개질에 얽매어있다. 마음 한 편엔 여전히 욕망의 늪이 아귀처럼 입을 벌리고 있다. 결국 모두 향하는 곳은 하나인데 계절의 청춘인 오월을 만끽하지 못하는 이유가 된다. 나 자신조차 하루하루 생활에 지쳐 오월의 신록을 맑은 눈으로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이 몇 번이나 되던가를 생각해 보니 계절조차 잊고 살아온 젊은 날의 시간이 새삼 아파진다.

 

 

바람이 한결 지나간다. 그 바람결에 아카시아꽃 향기가 실려 온다. ‘동구 밖 과수원길 아카시아꽃이 활짝폈네 하얀 꽃 이파리 눈송이처럼 날리네~’ 이 노래를 부르면 지나는 오월이 자꾸만 아쉬워진다. 내 감성을 자극하여 가슴 떨리게 하는 색감으로 물들고 있는 오월의 신록, 그 최고의 절정은 불과 한 주일의 시간에 불과하다.

 

오월은 밤도 부드럽다. LED 가로등 불빛에 이팝나무 하얀 꽃이 달빛에 서성이다 바람에 눈꽃처럼 날릴 때, 긴 머리를 찰랑거리는 목이 하얀 소녀의 모습이 겹친다. 사랑의 유혹이, 그 누구나 붙잡고 말을 걸고 살짝 걷고 싶은 마음이 어둠 속 달빛처럼 번져온다. 한결같이 수수만년 빛을 발하는 별, 그윽한 빛으로 마음을 유혹하는 달은 변함없이 충실하게 쉴 자리를 비워두니 참 좋은 벗이다.

 

그러나 이 오월의 신록도 한정된 시간이란 한계가 있으니 아쉽다. 오늘의 좋은 날은 지나간 시간과 살아갈 시간을 저울질해야 하는 이율배반을 업고 휑한 벌판에 서 있어야 한다. 어떤 사람은 권력이 있다고, 돈이 많다고, 아름답다고 뽐내지만, 그 또한 유한한 삶 속에서 헛되고 헛되니 자랑 할 것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영원을 사모하고, 청춘을 흠모하며, 신록을 예찬하고 동경하며 살아가고 있다.

 

다시 시선을 아래로 내린다. 푸른 초원의 꽃잔디는 땅 위에 바짝 엎드려 열심히 기어가며 제 영토를 넓혀간다. 온통 핑크빛으로 주위를 물들이며 초경을 한 소녀의 수줍은 붉은 얼굴처럼 주위를 환하게 밝힌다. 어쩌면 오월 속을 저들 사랑으로 세상을 꽉 매워 버릴 기세다. 그리고 나지막이 줄지어 선 관목은 때를 놓치지 않을세라 초록빛 옷으로 야무지게 갈아입는 중이다. 연파랑 하늘을 배경으로 훨훨 날아오르고 싶어지는, 청명한 오월의 창공을 숨 쉬고 있다.

 

 

벚꽃이 진다고 아쉬워하던 마음이 언제였던가? 머리 위에는 유리성같이 맑은 하늘이 있고, 차갑지도 덥지도 않은 공기의 감촉이 피부에 닿는다. 촉촉한 공기 속에서 흘러나오는 긍정의 기운이 내 안으로 천천히 스며든다. 아! 이런 오월은 신록의 연초록이 몇 날 되지 않지만, 술찌게미처럼 은근하고 달다. 우리는 여전히 이곳 오월 속 어딘가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나는 삶을 반추하며 신록처럼 푸르고, 다시 푸르고 싶은 마음으로 맑디맑은 청춘 같은 생동하는 푸르름에 마음을 빼앗긴 채 오월의 길 위에 서 있다. 세상 모든 것을 아름다운 창으로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을 뜨는 게 사소한 일에서 사랑과 행복, 감사를 찾는 지름길이다.

 

우리는 이 좋은 오월, 마음의 짐과 욕망을 잠깐 내려놓고 찬물로 세수한 얼굴로, 신록의 색깔로 마음을 채색하여 세상을 환히 볼 수 있는 눈과 귀를 한껏 열어야겠다. 오월은 언제 어디서든지 혼자 있어도 충분히 푸르고, 청신하고, 담담하면서도 가슴 부풀어 오르는 계절이다. 나는 어떤 오월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고 있다. 오늘의 행복을 이어 해마다 맞을 푸른 오월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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