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장 교사들에게 던져진 과제
지난 1월 교육부가 ‘모든 학교에서의 사회정서교육 확대를 위한 맞춤형 현장 지원 강화’를 발표했다. 사회정서교육의 효과를 인정하여, 이를 학교교육과정 전반으로 활성화한다는 것이다. 지난 1년은 교육 당국이 사회정서교육에 대한 공감대 형성을 위해 고군분투한 한 해였다.
사회정서교육 교사연구회와 중점학급 운영은 교육부의 지난한 노력을 보여준다. 그러나 ‘사회정서교육이란 무엇이고, 이를 수업에서 어떻게 구현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현장에 여전히 남아있다. 교과수업·창의적체험활동·생활지도 전반에 걸쳐 사회정서교육을 실천하라는 지침과 달리 현장의 교사들은 당장 매일의 수업과 업무를 소화하기에도 하루가 벅차다.
정책 입안자는 지침이 가져올 변화를, 현장은 지침이 불러올 현실적 부담을 먼저 고민하기 마련이다. 사회정서교육의 활성화는 이 둘의 괴리를 좁혀나갈 때 비로소 가능해질 것이다. 이 괴리가 좁혀지기를 희망하며, 사회정서교육 수업 구현을 위해 필요한 몇 가지 실천적 단서를 제시하고자 한다.
사회정서교육 수업 구현의 세 가지 키워드
● 첫 번째 키워드 _ 기술의 체화
사회정서교육의 첫 번째 키워드는 기술의 체화(體化)이다. 사회정서교육은 사회정서역량이 요구되는 영역과 각 영역별 세부 기술을 제시한다. 사회정서교육이 기술을 강조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지식·이해, 과정·기능, 가치·태도의 총체로서의 기술 체화를 궁극적 목표로 삼기 때문이다. 즉 학습자는 학교에서 배운 사회정서기술을 실생활에서 능동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사회정서교육 수업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명확한 가이드라인 제시’와 ‘충분한 연습 기회 및 피드백 제공’이다. 이 두 가지가 충족되지 않는다면 사회정서교육 수업은 그 특색을 잃고 만다. 따라서 교수자는 학생들에게 ‘사회정서기술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는지’와 ‘기술을 연습할 시간적·공간적 기회를 충분히 제공하고 있는지’를 점검해 보아야 한다.
사회정서교육 수업은 일상 수업과 분리된 거창한 기획을 의미하지 않는다. 한 차시의 수업 속에서 한 가지 사회정서기술을 반복적으로 연습하고 피드백 받는 구조를 만드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수업 초반에 활동 목적과 흐름을 소개하고, 활동 과정에서 교사와 또래의 짧은 피드백을 반복적으로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학생들의 사회정서기술은 점진적으로 정교화될 수 있다.
● 두 번째 키워드 _ 친(親)사회정서교육적 수업 만들기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고 할지라도, 한정된 학교 일정 속에서 학생들에게 충분한 연습 기회를 제공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현장 교사들에게 사회정서교육이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는 ‘별도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 해치워야 하는 숙제’처럼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미 가르쳐야 할 내용이 산적한 상황에서 사회정서교육은 또 하나의 낯선 과제로 인식되기 쉽다.
이를 위해 필자는 ‘친(親)사회정서교육적 수업 만들기’라는 다소 완화된 시선을 제시하고 싶다. 사회정서교육을 학교교육과정 전반으로 확장하기 위해서는 교사의 심리적·물리적 부담을 덜어 적극적인 수업 구현 시도를 격려해야 한다. 다음은 교과수업 속에 사회정서기술 연습을 자연스럽게 배치한 하루의 예이다.
- 6학년 담임인 교사 A는 아침 활동으로 ‘수직선 위에 기분과 강도 표시하기’를 한다. 이는 학생들의 심리 상태를 파악하고 ‘감정 인식 기술’을 연습시키기 위함이다.
- 국어 발표하기 단원에서는 발표하기에 앞서 다 함께 경청 구호를 외치고, 한 학생의 발표가 끝나면 다른 학생이 발표 내용을 자신의 말로 바꾸어 다시 말하게 한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지식을 선언적으로 외치는 데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활동을 통해 ‘타인의 관점 이해하기 기술’을 실습하게 된다.
- 표와 그래프를 배우는 수학 시간에는 반 학생들을 대상으로 온라인 언어 사용 실태조사를 한 뒤 그 결과를 표와 그래프로 나타내게 한다. 그리고 동일한 소재로 바람직한 디지털 시민의 자세에 관해 이야기해 봄으로써 ‘바람직한 의사결정하기 기술’을 연마한다.
위 이야기는 교과수업의 짧은 활동 또는 소재를 활용해 사회정서교육을 수업에 녹여낸 구체적인 예시이다. 핵심은 다양한 교과수업 속에서 ‘충분한 연습을 통한 사회정서기술의 체화’라는 사회정서교육의 지향점을 녹여내는 것이다. 이처럼 사회정서교육은 기존 수업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이루어지고 있는 수업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고 정밀하게 다듬는 데서 시작될 수 있다. 더 나아가 국어·체육·도덕 등 여러 교과수업과 연계한 주제 중심 수업이나 프로젝트 형태로 설계한다면 교사의 부담은 줄이면서도 교육적 효과는 한층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교육 당국 역시 이러한 현장의 맥락을 충분히 고려하고 존중하는 방향으로 교사들을 지원해야 한다. 단순히 별도의 사회정서학습 프로그램을 제시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의 성공적인 활용 및 내실화 사례를 적극적으로 발굴해야 한다. 학교마다 사회정서교육을 앞서 시도하는 교사가 있기 마련이다. 이들의 경험과 후기에 귀 기울여 작은 성공 사례들을 찾아내고, 앞선 프로그램의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정비하는 방향으로 사회정서교육의 현주소를 업데이트해 나가는 후속 작업이 필요하다.
● 세 번째 키워드 _ SAFE 원리와 수업설계의 나침반
적극적으로 사회정서교육 수업을 실천하더라도 ‘내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나?’라는 물음이 들기 마련이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SAFE 원리이다. SAFE란 효과적인 사회정서교육의 기준으로 계열성(Sequenced)·활동성(Active)·초점화(Focused)·명시성(Explicit)을 의미한다. 이는 사회정서기술이 학생의 발달 수준에 맞게, 학생의 실제 활동 속에서,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지도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사회정서교육 수업 구현 활성화를 위해 교육 당국에 제언하고 싶은 점은 SAFE 원리처럼 현장 교사들이 나침반으로 삼을 수 있는 실질적인 틀을 마련해 달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서울형 사회정서교육은 수업 흐름을 ‘배우기 - 익히기 - 나아가기’ 3단계로 제시하고 있다. 이는 사회정서기술을 인지적으로 이해(배우기)하고, 반복적으로 연습(익히기)하며, 실제 삶과 수업 속 적용(나아가기)하여 숙련해 나가는 수업 흐름이다.
교사들에게 필요한 나침반은 수업 흐름이 될 수도, 수업모형이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현장이 스스로 점검하고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기준을 갖는 것이다. 이러한 기준이 현장에 공유될 때, 사회정서교육 수업은 개인의 열정에 의존하는 시도를 넘어 학교교육과정 속에서 지속 가능한 실천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정서교육 수업을 위한 앞으로의 과제
정리하자면 사회정서교육 수업 구현의 단초는 기존 수업에 사회정서교육의 키워드를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친사회정서교육적 수업’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중요한 것은 완성도 높은 하나의 수업이 아니라, 교실의 맥락에 맞는 작은 시도를 꾸준히 지속하는 것이다. 현장 교사들은 사회정서교육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떨치고 적극적으로 시도해 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나아가 교사의 손이 닿지 않는 영역은 교육 당국이 지원해야 한다. 특히 사회정서교육의 성공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가정 연계이다. 사회정서교육의 성패는 결국 교실 안과 교실 밖이 얼마나 유기적으로 연결되는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사회정서교육 연수에서 많이 들은 피드백 중 하나도 ‘이렇게 좋은 교육을 학교에서 실천하고 있다고 한들 가정의 협조 없이는 교육의 선순환이 불가능하다’라는 것이었다.
가정 연계는 단순한 홍보를 넘어, 사회정서교육의 성패가 학교 못지않게 가정의 태도와 실천에 달려 있음을 공유하고, 그 책임을 함께 나누는 단계까지 나아가야 한다. 홍보에만 머무르다 보면 자칫 ‘학생의 마음건강에 대한 책임이 오롯이 교사 개인이나 학교에만 있다’는 오해를 야기하기 쉽다. 나아가 적극적인 수업 재구성 및 생활지도가 가능하도록 교사의 수업권과 생활지도 권리를 보호하는 방안 또한 제도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이는 사회정서교육을 개별 교사의 헌신이 아닌, 공교육의 책임 있는 실천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현장 교사들의 노력과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적 인프라가 차근차근 갖추어질 때, 사회정서교육은 일시적 유행이 아닌 학교교육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