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중순 백두산 천지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내려오는 길. 5분 정도 풀과 관목만 자라는 초원 지대가 이어지더니 드디어 키가 큰 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해발고도 2,744m인 백두산에는 키가 큰 교목이 더 이상 자랄 수 없는 한계 지점인 수목한계선(timber line)이 있는데 약 2,000m 정도다. 이 수목한계선을 지난 것이다.
이때 나타나기 시작하는 나무가 바로 사스래나무다. 수목한계선에서 백두산 북파 코스의 중심점인 운동원촌 환승지로 내려올 때까지 가장 많이 보이는 나무는 사스래나무였다. 사스래나무는 추위와 바람에 강해 높은 산 정상 부근에서 잘 자란다. 사스래나무는 한라산·지리산 등의 고지대에서도 볼 수 있다. 이 나무도 수피가 흰색 계열이어서 자작나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스래나무라고 불러야 정확하다.
현재 백두산 천지에 오르는 방법은 동파·서파·남파·북파 등 4개 코스이다. 이 중 동파 코스는 북한에서 오르는 코스이고,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코스는 북파 코스다. 북파 코스 내부 명소는 중국 정부에서 운영하는 셔틀버스로만 이동할 수 있다. 운동원촌 환승지에서 천지는 물론 장백폭포·부석림·빙수천·녹연담 등 폭포와 지하산림 등 협곡에 가는 방식이다.
자작나무는 1,600m 이하 지역에서 자란다. 그 이하 지역에 자작나무가 참 많긴 했다. 그러나 숲이 자작나무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고 가문비나무·종비나무·분비나무·잎갈나무 등과 섞여 자라고 있었다. 물론 노랑만병초·들쭉나무는 물론 조그만 월귤·린네풀 같은 작은 식물도 엄연히 나무이긴 하지만 여기서는 키 큰 나무 중심으로 소개하겠다.
자작나무 3형제
우리나라 산에는 참나무 6형제와 소나무가 주종을 이룬다. 반면 백두산 숲에는 자작나무·사스래나무에다 침엽수인 종비·가문비·잎갈·분비나무가 무리를 지어 자라고 있었다.
자작나무·사스래나무·거제수나무는 흰색 계통의 수피와 잎 모양이 비슷비슷해 구분이 쉽지 않다. 많은 사람이 식물을 공부할 때 이 3형제를 구분하느라 골머리를 앓는다. 우선 자작나무 수피는 흰색이고, 종이같이 옆으로 벗겨진다. 수피가 피부처럼 매끈하면 자작나무라고 볼 수 있다.
자작나무엔 또 가지 흔적인 ‘지흔(枝痕)’이 군데군데 있다. 나무가 자라면서 아래쪽 가지가 불필요하면 스스로 가지를 떨어뜨리고 남은 흔적이다. 어떤 사람은 이를 눈썹 모양이라고 한다. 남한에서 자라는 자작나무는 다 심었다는 것을 이제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 ‘어, 내가 분명히 산에서 자작나무 보았는데?’ 하는 사람들은 ‘심은’ 자작나무를 보았거나 사스래나무나 거제수나무를 본 것이다.
사스래나무와 거제수나무는 자생하는 나무다. 사스래나무 껍질은 회색에 가깝고, 화상으로 피부가 벗겨지듯 얇게 벗겨져 지저분하게 보인다. 사스래나무 이름 유래는 알려지지 않았다. 일반인들은 그냥 수피가 흰색이면 자작나무, 은색(또는 회색)이면 사스래나무라고 기억해도 무방할 것 같다.
거제수나무는 수피가 약간 붉고 두꺼운 종이처럼 벗겨진다. 사스래나무는 능선, 거제수나무는 물이 풍부한 계곡 근처에서 잘 자란다. 거제수나무라는 이름은 거제도와는 무관하고, 재앙을 물리치는 물을 가졌다는 뜻의 ‘거재수(去災水)’가 변한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잎까지 있으면 보다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자작나무잎은 거의 삼각형이고 측맥이 6~8쌍으로 가장 적다. 사스래나무잎은 삼각형 모양이지만 계란형이고 측맥이 7~11쌍, 거제수나무잎은 타원형에 가까운데 측맥이 9~16쌍이다.
가문비·종비·잎갈 등 고산 나무 많아
백두산 고도가 낮아짐에 따라 가문비나무·분비나무·종비나무·잎갈나무 등 침엽수와 황철나무 등 활엽수가 나타났다. 가문비나무는 지리산·덕유산·설악산 등 해발 1,200m 이상의 고산지대에서도 자라지만, 평지에서는 잘 자라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나라 공원이나 정원에는 흔히 유럽에서 들여온 독일가문비나무를 심는다. 독일가문비나무는 가지와 열매를 아래로 축 늘어뜨린 모습으로 구분할 수 있다.
종비나무는 가문비나무와 같은 속(屬)인 나무로, 가문비나무에 비해 잎의 횡단면이 마름모꼴이고, 솔방울 열매도 2배 이상 큰 것이 특징이다. 우리 산에 흔한 일본잎갈나무(낙엽송)와 비슷한 잎갈나무도 정말 많았다. 그냥 잎갈나무는 북한 등 추운 지방에서 자라지만, 일본잎갈나무는 중부 이남에서 잘 자란다. 가을에 잎이 떨어진다고, 잎을 간다고 잎갈나무다. 황송포 습지엔 잎갈나무 고목이 특히 많았는데, 형태가 특이한 나무마다 장사수(壯士樹)·선녀수(仙女樹) 등과 같은 푯말을 붙여 놓은 것이 재미있었다.
일본잎갈나무는 1960~1970년대에 우리나라에서 정책적으로 많이 심은 나무다. 줄기가 곧게 자라 전봇대나 철도목, 나무젓가락을 만드는 데 쓰였다. 그러나 그런 수요는 점차 줄어들었다. 더구나 이 나무 원산지가 일본이고 숲의 다양성을 해친다는 이유에서 국립공원에서 일본잎갈나무를 베어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잎갈나무는 남한에선 국립수목원 광릉숲과 오대산·가리왕산 등에서 극소수만 자생한다고 하는데, 오대산 상원사 입구에 가면 수령 250년이 넘은 잎갈나무임을 알리는 안내판을 볼 수 있다.
백두산 일대 계곡 근처에서 황철나무도 많이 만났다. 같이 간 나무 전문가 한 분은 “우리나라엔 황철나무가 귀한 나무인데, 백두산 일대에 정말 많다. 황철나무가 이렇게 많을 줄 몰랐다”고 말했다. 황철나무는 버드나무과 나무로 포플러 비슷하게 생겼고, 수피에 살짝 노란색이 들어 있다.
백두산 관광의 관문 도시인 이도백하(二道白河)에서 인상적인 것은 가래나무를 가로수로 쓰고 있다는 점이었다. 주변에서 자생하는 나무라 아무래도 가로수로 적응도 수월하게 할 것이고 도시의 특색을 나타내는 데도 도움을 줄 것 같았다. 은행나무·플라타너스·왕벚나무·메타세쿼이아 등 외국에서 들여온 나무를 주로 가로수로 심고 있는 우리가 좀 배울만한 점인 것 같다.
지난번 쓴 ‘백두산에서 만난 어여쁜 꽃들’과 이번엔 쓴 ‘백두산에서 만난 나무들’ 이야기는 모두 중국 연변과 이도백하를 거쳐 올라가면서 본 것이다. 중국에서 부르는 정식 명칭도 백두산이 아니라 장백산이다. 우리 땅인 북한을 통해 꽃과 나무를 관찰하면서 백두산 천지에 오르는 날은 언제쯤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