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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사람들] 우리가 기대했던 낙원 그 이상의 풍경 갈라파고스

 

화산이 만들어낸 고립의 세계
찰스 로버트 다윈은 1831년 영국 플리머스 항을 출발해 5년간 영국 해군의 측량선인 비글호를 타고 세계 각지의 섬을 탐사하게 된다. 브라질·우루과이·칠레를 거쳐 1835년 9월 15일, 에콰도르의 갈라파고스 제도에 도착한 다윈은 이곳에서 섬마다 등껍질이 다른 거북과 부리의 생김새가 다른 새를 발견하면서 종이 영원히 고정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는 <비글호 항해기>에서 ‘갈라파고스 제도의 박물학에서 가장 뚜렷한 현상으로 섬마다 어느 정도 다른 생물이 산다는 사실’을 꼽았는데, 이것이 진화론의 단초가 된다.


19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갈라파고스 제도는 에콰도르 본토에서 약 965km 떨어져 있다. 전체 육지 면적은 제주도의 4배가 조금 넘고, 가장 큰 이사벨라섬은 제주도의 2배 크기다. 갈라파고스는 화산 폭발에 의해 만들어졌다. 어느 날 바다 밑에 있던 땅이 바다 위로 솟아올랐고, 머나먼 남아메리카 대륙에서 식물의 씨앗이 날아들어 와 뿌리를 내렸다. 갈라파고스에는 산호초도 없다. 적도에 위치하지만, 해저에서 솟아나는 차가운 물과 남미 서해안을 따라 북상하는 한류의 영향으로 수온이 15도 정도로 낮기 때문이다. 강수량도 1,000mm가 채 되지 않아 야자수도 자라지 않는다. 나무열매를 먹을 수 있도록 목이 길게 진화한 갈라파고스 거북과 푸른발부비(Blue-footed Booby)·바다이구아나 등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고, 오직 갈라파고스에만 살아가고 있는 희귀 동식물들은 수백만 년 전 해저에서 솟아올라 바다 한가운데 고립된 환경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갈라파고스에 발을 내딛기 전, 갈라파고스에 대한 이미지는 다윈의 진화론과 <종의 기원>에서 비롯된 학술적인 이미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산크리스토발섬에 내리자마자 갈라파고스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이미지는 완전히 바뀌었다. 아, 이런 낙원이 아직 지구상에 남아 있다니! 이런 비현실적인 현실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니! 공항에서 약 10여 분 동안 버스를 타고 섬의 주요 마을인 푸에르토 바케리소의 선착장에 도착했을 때, 이방인을 반긴 건 현지인의 따스한 미소가 아닌 ‘끄으윽 끄으윽’하는 바다사자의 울음소리였다. 선착장에는 마을 사람들과 바다사자들이 모여 보랏빛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벤치에 누운 커다란 바다사자는 ‘어서 와, 갈라파고스는 처음이지?’하는 표정을 지으며 콧수염을 찔끔거렸다.  


때 묻지 않은 시원 속으로
많은 사람이 갈라파고스를 여행할 때 크루즈를 선택하곤 한다. 섬으로 이뤄진 지형 특성상 독립적으로 여행하기 힘들 뿐만 아니라, 섬마다 특이한 동물을 볼 수 있는 포인트가 있어 크루즈로 섬을 돌아보면 시간도 절약할 수 있고, 보다 많은 희귀동물을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자들이 가장 먼저 찾는 곳은 산타크루즈섬이다. 거북이 번식센터(Tortoise Breeding Center)를 비롯해 갈라파고스 국립공원 본부가 있다. 또한 이 섬을 세상에 알린 세기의 과학자 찰스 다윈의 연구센터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현재 이곳에서 태어난 거북이 중에서 유일하게 한 마리만이 생존해 보호받고 있는데 ‘창시자’를 뜻하는 ‘제네시스’라는 이름까지 붙여졌다. 느릿느릿 움직이면서 나무열매를 씹던 거북은 인기척이 느껴지자 힐끗 시선을 주기도 한다. 센터 내 거북이들은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고 있다. 가이드에 따르면 한때 이 거북은 멸종될 뻔했다고 한다. 사람들이 기름을 짜고 잡아먹었고, 쥐와 개가 거북이 알을 깨트렸기 때문. 지금은 원래의 규모를 회복해가는 중이다.


산크리스토발의 또 다른 절경은 세로 부르호(Cerro Brujo)와 푸에르토 치노(Puerto Chino)다. 화산 협곡 사이로 난 트레킹 코스를 따라가며 갈라파고스의 희귀 동식물들을 관찰한다. 수풀 사이를 걷고 있는데 가이드가 갑자기 쉿 소리를 내더니 한쪽을 가리킨다. 푸른발부비다. 갈라파고스에 살고 있는 다양한 종류의 새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새이자 사랑받는 새다. 이름 그대로 발이 푸른색을 띈다. 마치 푸른 장화를 신은 것 같은 오묘한 느낌을 준다. 알을 품고 있는 암컷도 있고, 짝짓기 놀이를 하는 커플도 있다. 사람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 이 새를 처음 본 뱃사람들이 너무 쉽게 잡을 수 있어 ‘멍청이’라는 뜻의 ‘부비’로 불렀다는데,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하지만 사냥하기 위해 날개를 쭉 펴고 비행하는 모습은 근사하다.

 

 

산크리스토발섬을 빠져나와 찾은 곳은 에스파뇰라섬의 푼타 수아레즈. 갈라파고스 알바트로스와 바다이구아나를 관찰하기에 좋은 곳이다. 이곳에 사는 알바트로스는 몸길이가 90cm가 넘고, 날개를 펼치면 그 길이가 2m에 달한다. 익사한 선원의 영혼이 깃들어 있어 죽으면 재앙이 찾아온다고 생각해 불길한 징조의 새로 취급되기도 하였으며, 배를 따라 나는 습성으로 인해 배에서 버리는 쓰레기를 치우는 청소부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하지만 알바트로스가 유명한 진짜 이유는 그 거대한 크기와 나는 모습 때문이다. 알바트로스는 날 수 있는 새 중에서 몸집이 가장 크다고 한다. 하늘을 날 때면 긴 날개와 바람을 이용해 날아오르는데, 수천 km의 거리를 날갯짓 한번 하지 않고 날 수 있다. 해안 절벽을 따라 이어지는 탐방로를 따라가다 보면 갈라파고스 알바트로스가 알을 품고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알바트로스가 둥지를 튼 바닷가 옆 바위는 온통 바다이구아나 천지다. 바닷속에서 생존할 수 있는 바다이구아나는 전 세계 유일하게 갈라파고스에만 있다. 갈라파고스로 건너와 불모의 화산지대에서 살아남고자 바닷속 해조류를 먹기 시작하면서 현무암 바위처럼 검은색 피부를 갖게 됐다고 한다. 겉모습은 공포영화에 나오는 괴물과 비슷하지만, 성격은 순하기만 하다. 사람이 다가가면 눈을 끔뻑이며 지그시 바라보다가 이내 등을 보이고는 사라져 버린다. 산란기에는 해변가에 땅을 파서 알을 낳는다.


푼타 수아레즈 반대편 가드너 베이는 갈라파고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 중 하나다. 갈색 펠리컨과 순진한 표정의 바다사자를 원 없이 만날 수 있는 곳이다. 해변에 도착하면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내지르고 만다. 밀가루를 뿌려놓은 듯한 순백의 모래사장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 그리고 그 위에 떼를 지어 누워 잠자고 있는 바다사자들. 가끔 기지개를 켜기 위해 몸을 일으킬 뿐 사람이 나란히 옆에 누워 기념사진을 찍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아이들을 보면 먼저 다가가 장난을 걸기도 한다.  

 

크루즈에서 보내는 여유로운 시간
갈라파고스 여행의 또 다른 매력은 크루즈에서 한없이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하루 종일 동식물 탐방만 하는 것은 아니라, 아침 일찍 일어나 가까운 섬으로 트레킹 겸 탐방을 다녀온 후 오전에는 스노클링이나 수영 등 해양 액티비티를 즐긴다. 


갈라파고스의 동물들은 사람들을 믿는다. 경계하거나 두려워하지도 않고, 자신들을 해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동물들은 인간을 손님 정도로만 인식한다. 스노클링을 하다 보면 이걸 알게 된다. 필리핀이나 하와이 등에서 즐기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헤엄치다 보면 육지에서 지겹게 보던 바다사자들이 옆구리 가까이 다가와 바싹 붙는다. 가끔 툭 건드릴 때도 있다. ‘따라올 테면 따라와 봐’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힘겹게 쫓아가다 보면 기다려주기도 한다. 


일주일 동안의 여행을 마친 후, 크루즈는 산크리스토발섬으로 돌아가기 위해 뱃머리를 돌렸다. 바다 위 우뚝 솟은 바위인 키커락 뒤로 노을이 내리고 있었다. 어디선가 나타난 펠리컨은 배와 나란히 날았다. 공기 속을 헤쳐 가는 펠리컨의 부드럽고 가벼운 날갯짓을 바라보고 있자니 여행은 분명 좋은 일이고,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갈라파고스는 영원히 갈라파고스인 채 남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 여행정보  
갈라파고스에서의 크루즈 여행은 일정에 따라 행선지와 요금이 다양하다. 메트로폴리탄 투어링(www.metropolitan-touring.com)에서 다양한 크루즈 상품을 운영하고 있다. 일정과 예산에 맞춰 적당한 것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라 핀타(La Pinta)호는 3박 4일 일정으로 산크리스토발섬(San Cristobal Is)을 비롯해 산타크루즈섬(Santa Cruz Is)과 이사벨라섬(Isabela Is) 등을 돌아본다. 
현지 여행사인 수트랙(www.surtrek.com)을 통해서도 다양한 상품을 살펴볼 수 있다. 갈라파고스는 에콰도르 본토에 비해 1시간 늦다. 대한민국 여권 소지자의 경우 관광목적으로 비자 없이 90일간 체류할 수 있다. 에콰도르는 지난 2002년부터 미국 화폐인 달러화를 사용하고 있다. 갈라파고스는 자외선이 강하다. 모자·선글라스·선크림 필수. 수영복과 트레킹화, 해변에서 신을 신발도 챙겨야 한다. 전압은 110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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