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9 (월)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오피니언

[교사 에세이, 한 페이지] 급훈: 지혜로운 눈 따뜻한 마음

2019년 말 이름도 생소한 ‘코로나 바이러스감염증’이 전 세계를 휩쓸기 시작했다. 2020년 새 학기를 맞이한 학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 담임인 난 그 변화에 발맞추느라 힘들었다. 신입생인 1학년에게 교과서 배부, 학교 소개를 해야 하는데 모든 게 멈춰버렸다. 학교는 바뀐 교육부 지침에 따라 하나, 둘 준비했다. 나는 날짜, 시간 차이를 두고 학생들을 교문 앞에서 맞이했다. 교과서를 배부하면서 간략하게 가정환경 조사를 했다. 원격수업을 할 때 필요한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다.

 

원격수업 준비를 하는 동안 원격수업 담당 선생님은, 우왕좌왕하는 나를 위해 차분하게 설명해 주셨다. 그래도 어려웠다. ‘나도 이렇게 힘든데 아이들은 오죽할까’라고 생각했는데 아이들은 능숙하게 잘 따라왔다.

 

코로나 1년, 우리가 가까워진 시간

 

원격 개학식 후, 학급 조회 시간 ‘컴퓨터 화상캠’으로 출석 체크를 했다. 아이들에게 화면으로 얼굴을 보이면서 대답하라고 했다. 아이들은 천장이나 책상, 심지어는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로 대신했다. 대부분 쑥스러워 얼굴을 못 보여준다고 했다.

 

아이들과 거리감을 좁혀보기 위해, 학급 메시지 단체방에 ‘학교 구석구석 안내와 담임선생님 소개 영상’을 만들어 올렸다. 우리 학급 20명 아이에게도 ‘자기소개 영상’을 일주일 동안 올리라고 했다. 서로 쭈뼛거리며 영상을 올리지 않아, 학부모님들 도움으로 보름 만에 완성했다.

 

학급 단체방에서 각자 만든 영상을 보고 난 후, 같은 반이라는 친근감에 아이들은 조금씩 변했다. 조회, 종례 때도 ‘컴퓨터 화상캠’에 본인들의 얼굴을 서서히 보여주기 시작했다. 아직 중학생 모습이 남아있는 푸릇푸릇한 고등학생들이 즐거워하면서 자신들을 보여줬다.

 

아이들과 더 친해지기 위해, 쉬는 시간에도 ‘컴퓨터 화상캠’으로 만나자고 했다. 컴퓨터가 능숙한 아이들은 쉬는 시간뿐만 아니라, 수업받는 중에도 자신 핸드폰으로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모습, 혼자 라면 먹는 모습, 춤추는 모습 등을 보여줬다. 그 모습이 마치 교실 수업 중 딴짓하는 아이들 같아 웃으면서 혼내기도 했다. 아이들은 무엇이 그렇게 신나는지, 점점 더 재미있는 표정들을 보여주면서 서로 웃고 떠들고 즐거워했다. 비대면이 아닌 대면 출석을 그리워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4월 중순쯤 아이들과 색다른 기쁨을 나누기 위해 ‘교복 데이’를 만들었다. 막 자고 일어난 부스스한 모습이 아닌, 단정한 교복 차림으로 조회에 참여하는 날을 만든 것이다. 원격으로 시작한 신입생이라 아직 한 번도 입어보지 못한 교복을 입게 했더니 의외로 설레는 듯했다. 당일 아침엔 면도까지 깔끔하게 한 모습으로 고등학생임을 자랑했다. 원격수업 시작일부터 매일 지각하거나 수업 참여도가 낮은 녀석도 있었지만, 우리 학급은 대체로 출석률이 높아 힘들지 않았다.

 

드디어 5월 일주일 간격으로 한 학년씩 등교 개학을 했다. 3학년부터 시작했다. 보건교사인 난 정부가 정한 방역 수칙 교육에 바빴다. 그래도 학생들이 없어 조용하기만 하던 학교가 북적거려 기뻤다. 선생님들은 잔뜩 긴장한 채 수시로 방역 수칙을 강조하는데, 오래간만에 만난 아이들은 천방지축 날뛰었다. 2주 후 1학년이 등교하던 날, 1학년 담임선생님들은 낯설어하는 아이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지만, 나는 우리 학급 아이들을 한눈에 알아봤다. 담임선생님을 만난 아이들도, 마스크 속에 숨겨진 입을 샐쭉거리면서 웃어줬다.

 

그렇게 생소하기만 한 ‘코로나 바이러스감염증’과 함께 조심스럽게 1년을 보내고, 나는 담임을 마무리했다. 2학년으로 진학한 녀석들은 수시로 보건실에 들러 근황을 알려왔다. 그리고 올해 2월 무사히 졸업한 후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에 취업, 대학 진학, 입대, 아르바이트, 취업 준비 중이다. 그들이 가끔 학교로 찾아오거나 문자를 보내온다.

 

“낯설었던 신입생 시절 쌤 잔소리와 함께해서 좀 컸습니다.”

“지긋지긋한 B4 반성문이 그립습니다.”

“사회생활이 힘들고 서럽지만 쌤의 미소를 떠올리며 견디고 있습니다.”

“교실 소독은 제가 최고였죠?”

“교실 바닥 광희 나게는 바로 저죠?”

“그냥 보고 싶습니다.”

 

라면서 수줍게 ‘하트’를 보내오기도 한다.

 

너희가 애틋한 이유

 

담임으로 3년을 함께하다 졸업했던 졸업생들보다, 1년간 함께했던 이 아이들에게 난 살가운 정을 느낀다. 엄격한 방역 수칙으로 야외활동이 금지된 그해, 2주 간격으로 한가지씩 늘려가며, 교실에서 함께 했던 것들이 추억이 돼서인 듯하다.

 

‘보호자님들께 감사 편지 쓰기, 어버이날 노래 가사 쓰기, 스승의 은혜 노래 가사 쓰기, 오늘 하루 욕 없이 지내기, 수업 태도 지적받으면 무조건 B4 반성문 양면으로 쓰기, 어디서든 담임이 보이면 뛰어와 활짝 웃기, 15도 고개 숙여 인사하기, 원격수업 시 지각하면 등교 후 일주일간 교실 청소하기, 교실 바닥은 항상 담임 얼굴이 비칠 정도로 광희 나게 닦기, 교실에서 음식을 먹으면 20배로 사 오기, 교복 미착용 시 B4 반성문 양면으로 쓰기, 흡연 적발 시 담임과 함께하기, 방학엔 2회 이상 담임께 생존 문자 보내기, 오늘 하루는 무조건 담임만 좋아하기 등…’ 아이들은 “우리가 초딩입니까?”라며 투덜거리면서도 잘 따라왔다.

 

‘코로나 바이러스감염증’은 이제 2급에서 4급으로 전환됐다. 전환됨에 따라 여러 가지 방역 수칙과 학교에서 해야 할 일도 변경되었다. 덕분에 이젠 조금 편한 호흡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생소했던 감염병으로 노심초사하던 그해, 나는 우리 반 아이들이 있어 힘듦을 모르고 잘 견디었다. 아이들과 함께 엄격한 방역 수칙을 지키면서, 서로 의지하며 한 걸음 더 성장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잊지 않고 소식을 전해오는 아이들이 참 고맙고 예쁘다. 내년 2월 정년퇴직을 앞둔 지금, 마지막 담임을 했던 그해 급훈인 ‘지혜로운 눈 따뜻한 마음’을 떠올리며 청년이 된 아이들에게 문자를 보내본다.

 

“서로 방역 도우미를 하겠다며 1년 동안 쌤을 사랑한 1학년 전기과 2반 아이들아! 너희들 덕분에 쌤은 즐겁고 행복했다. 우리 지혜로운 눈과 따뜻한 마음으로 쭈욱 광희 나게 살자. 내년 2월 이후엔 너희들이 그토록 원하던 맥주 한잔 살게. 그때까지 안녕”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