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심리학자 겸 작가인 로렌 슬레이터(Lauren Slater)가 쓴 루비레드라는 심리동화집이 있다. 백설공주의 이름을 원래는 ‘루비레드’로 짓고자 했던 공주의 아버지와 엄마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 동화집에는 모두 15편의 창작심리동화가 실려 있다. 이 가운데 중국의 전족과 신발 이야기가 나온다. 너무도 작고 예뻤던 왕비의 발, 그 발을 사랑하는 왕. 이야기는 메이 왕후로 불리는 엄마의 전족을 당한 발, 늘 붕대로 칭칭 동여매고 악취를 감추기 위해 갖은 향료를 뿌려대던 발 이야기가 나온다. 왕후였던 엄마는 여섯 살 어린 나이에 처음 발을 동여매며 전족을 당하고 평생 그 작은 발로 살아간다. 넓은 들판을 마음껏 가로지르던 어린 발은 붕대 속에서 뼈가 부러지고 섬유조직이 끊어지며 여성으로서의 자기 삶 또한 부러진 나무처럼 고정되는 것을 감내해야 했다. 후에 왕인 아버지를 만나 딸을 낳지만, 엄마는 전족을 하던 서쪽 방이 아닌 북쪽 방으로 딸을 데려간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주인공인 딸의 발은 전족을 당하지 않았지만 결국 자기의 왕국, 자기의 삶터를 떠나 농부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가진 것 모두를 잃는 희생을 하고 나서야 겨우 마음껏 나무에 오르고…
2017-04-01 00:0001지하철을 타는 순간 사람들이 품는 소박한 소망은 무엇일까. 아마도 앉을 자리를 바라는 마음이 아닐까. 당장 빈자리가 있으면 좋겠지만, 그것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내가 앉을 자리가 곧 나기를 바란다. 설마 내릴 곳까지 죽 서서 가지는 않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를 한다. 고매한 인품과 교양을 가진 사람이라도 지하철을 탈 때, 자리를 기웃거리는 것은 조금도 흠 될 것이 없다. 승용차 없이 버스나 지하철로 출퇴근을 하는 나 역시도 기왕이면 편하게 앉아 갈 수 있기를 매일 아침저녁으로 기대한다. 그런데 자리에 대한 이 소박한 기대가 그냥 소박하게만 끝나지 않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기대는 그냥 잠시 품었다가 자기도 모르게 어느새 잊어버리는 것이 돼야만 ‘소박한 소망’으로 남는다. 그래야 행복할 수 있다. 여기서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달리 달콤한 쾌감이 있어서 행복하다는 것이 아니라, 끔찍하고도 유치한 ‘불행의 마음’으로 빠지지 않는다는 뜻에서 행복하다는 것이다. 빈자리에 대한 기대를 마음에 두고 있다 보면, 그것이 은근한 ‘집착’으로 슬며시 변한다. 물론 자리에 집착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는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일종의 자기기만(自己欺瞞)인 셈이다. 아
2017-04-01 00:00렌터카를 타고 떠난 우리 부부의 유럽 여행은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된다. 남편은 첫 방문이고, 난 대학생 때 떠났던 배낭여행 이후로 두 번째 방문이었다. 처음 파리를 방문했을 때는 한 손엔 자전거 손잡이를 움켜쥐고, 다른 한 손엔 진한 아메리카노를 든 채 바쁘게 출근하는 파리지앵이 먼저 눈에 띄었다. 학창 시절, 그 모습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자전거와 아메리카노는 쏙 뺀 채 그저 바쁘게만 보낸 10여 년이 지난 후 다시 찾은 이번 여행에서는 전혀 다른 것들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바로 프랑스 특유의 여유와 평화움이다. 샤를 드골 공항에 내린 후 복잡한 파리 시내를 벗어나자 그토록 원하던 조용하고 아름다운 진짜 프랑스가 그곳에 있었다. 몽생미셸 천 년을 넘어 그 자리에 파리에서 차를 몰아 서쪽으로 한참을 달렸다. 소문으로만 듣던 환상의 성을 찾아 3시간쯤 달렸을까. 끔뻑끔뻑 해 질 녘 피곤이 몰려와 눈을 크게 떴다 감기를 반복하다 잠시 한 손으로 눈을 비비던 찰나, 붉게 빛나는 천공의 성 몽생미셸이 눈앞에 나타났다. 몽생미셸은 ‘성 미카엘의 산’이란 뜻으로 1984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문화유산이다. 몽생미셸이 있던 자리는 원래 시시(Forêt de
2017-04-01 00:00중학교 때 목련을 소재로 시를 쓴 적이 있다. 방과 후 2층 교실에 혼자 남아 화단을 내려다보면 자주색 목련이 보였다. 털로 덮인 겨울눈을 깨고 자주색 목련꽃이 올라와 개화하는 과정이 정말 신기했다. 그걸 관찰해 ‘뾰족이 찌르더니 / 어느새 피가 맺힌 목련입니다’라는 시를 쓴 기억이 있다. 마무리는 ‘고운 내 물감을 / 뿌리 옆에 고이 묻어 / 화려한 앞날을 기다리고 싶습니다’라고 쓴 것 같다. 시로 써본 소재여서인지 지금도 목련을 보면 친근감을 느낀다. 필자가 평소 관심을 갖는 일은 꽃이 등장하는 문학 작품을 찾는 것이다. 그 결과물로 ‘문학 속에 핀 꽃들’이라는 책을 낸 적도 있다. 우리 소설에서 목련이 주요 소재 또는 상징으로 나오는 작품도 꼭 찾고 싶었다. 그런데 필자가 목련에 대해 가장 문학적인 묘사를 만난 것은 소설이 아니라 김훈 작가의 에세이에서였다. 에세이집 자전거여행에서 목련이 피고 질 때를 묘사한 글은 압권이다. 목련이 피는 모습을 “목련은 등불을 켜듯이 피어난다. 꽃잎을 아직 오므리고 있을 때가 목련의 절정”이라고 했다. 이어 “꽃이 질 때, 목련은 세상의 꽃 중에서 가장 남루하고 가장 참혹하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누렇게 말라비틀어진…
2017-04-01 00:00예쁘고 잘생긴 외모와 음악적 재능을 가지고 가수 활동을 하는 이들을 흔히 아이돌(Idol)이라고 부른다. 아이돌은 우상(偶像)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인간에게, 그것도 보통 나이가 아주 어린 이들에게 우상의 권위를 부여하고 있는 셈이다. 그 아이돌을 추종하는 팬들은 팀별로 마치 올림픽처럼 팬덤을 구성해 ‘멜론 실시간 차트’라는 전쟁에 참전한다. 전쟁 중인 이들의 표정은 매우 진지하다. 아이돌의 승리가 곧 그들 자신의 승리이고, 자기 정체성에 대한 공인인증서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아이돌보다 더 높은 차원으로 올라간 사람이 있다면 그때부터는 우상 정도가 아니라 아예 신(神) 취급을 해준다. 요즘 들어 사람 이름 앞에 ‘갓’을 붙이는 장면을 자주 목격했을 것이다. 갓재석(유재석), 갓우성(정우성), 갓석희(손석희) 뭐 그런 식이다. 여기서 갓은 ‘오얏나무 밑에서 갓끈을 고쳐 쓰지 말라’고 할 때의 그 ‘갓’이 아니다. 신(God)을 의미하는 ‘갓’이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도달하기 힘들어 보이는 ‘넘사벽(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 저 너머로까지 상승한 인류를 한국인들은 ‘갓○○’이라고 부른다. 사소해 보이지만 이 조어법에는 일말의 시대정신이 들어 있
2017-04-01 00:0001 속담이 바뀌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속담의 변이(變異)가 아주 역동적이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가는 말이 고우면 오는 말이 곱다.” 이것이 원래의 속담인데, 요즘은 “가는 말이 고우면 얕본다”로 변이돼서 쓰인다. 원래의 속담 표현을 비틀어서, 그 의미까지도 풍자적으로 비틀어 버리는 것이다. 원 속담이 지닌 품격 있고 교양 넘치는 의미를 저렇게 비틀어 버린단 말인가. 삭막하고 발칙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가는 말이 고우면 얕본다.” 바뀐 속담이 보여주는 현실 풍자는 가히 기가 막히다. 생활 현장의 현실을 치열하게 살아 본 사람이라면, 누가 이걸 말도 안 된다고 무시할 수만 있겠는가. 운전을 하다가 접촉사고가 생겨, 차를 세우고 대로에서 상대방과 시시비비를 벌여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바뀐 속담의 뛰어난 현실적 호소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층간 소음 문제로 여러 차례 위층을 찾아가 항의할 때도 “가는 말이 고우면 얕본다”는 속담이 정말 적실하다고 믿는 한국인이 의외로 많다. 그러니까 이렇게 바뀐 속담의 뜻풀이는 ‘부드럽고 좋게 말해선 되는 일이 없음을 나타내는 말’, 뭐 이쯤 되는 것이 아닐까. 속담(俗談)이란 원래 고상하기보
2017-03-01 00:00필자가 꽃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2003년 봄 무렵이다. 당시 예닐곱 살 먹은 큰딸은 호기심이 많아 아파트 공터에서 흔히 피어나는 꽃을 가리키며 “아빠, 이게 무슨 꽃이야”라고 물었다. 당시 나는 그것이 무슨 꽃인지 알 길이 없었다. 얼버무리며 “나중에 알려주마” 하고 넘어갔지만 딸은 나중에도 계속해서 같은 질문을 했다. 어쩔 수 없이 야생화에 대한 책을 사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꽃은 씀바귀였다. 그렇게 시작한 꽃 공부는 하면 할수록 재미가 붙었다. 주변에서 흔히 봤는데 이름을 몰랐던 꽃들을 하나하나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하지만 이건 벌써 14년 전 일이다. 지금 내가 다시 꽃 공부를 시작한다면 다른 방식으로 할 가능성이 높다. 스마트폰으로 꽃 이름을 알 수 있는 방법만 두 가지나 있기 때문이다. 다음 꽃검색과 모야모 앱이 그것이다. 인공지능 딥러닝을 활용한 다음 꽃검색 카카오는 지난해 5월 “앱에서 꽃 이름을 알려주는 꽃검색 서비스를 추가했다”고 발표했다. 인공지능(AI) 기술인 ‘딥러닝(Deep Learning)’을 활용해 이용자가 촬영한 꽃의 특징을 자체 꽃 사진 데이터베이스와 비교해 꽃 이름을 찾는 방식이라고 했다. 꽃
2017-03-01 00:002016년 SBS 연예대상은 신동엽에게 돌아갔다. 그는 SBS에서 데뷔해 최고의 스타가 됐지만 SBS에서 대상을 받는 건 25년 만에 처음이라고 한다. 그에게 대상의 영예를 안기는 데 큰 공헌을 한 것은 지난여름부터 방송된 ‘미운 우리 새끼’다. 단연 2016년 최고의 화제작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미운 우리 새끼’는 두 개의 축으로 구성된다. 김건모, 박수홍, 토니안, 허지웅과 같은 (노)총각 아들들의 일상생활을 카메라가 따라다닌다. 그 아들들의 나이는 생후 000개월과 같은 식으로 표현된다. 다시 말해 그들을 낳은 어머니의 시선인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그 어머니들은 스튜디오에서 신동엽, 서장훈, 한혜진 등의 진행자들과 함께 아들들의 모습을 지켜본다. 방송이라 과장된 부분도 없지는 않겠지만 때때로 상상도 하지 못한 비밀들이 드러나 어머니들을 당혹스럽게 만든다. 예를 들어 가수 김건모는 소주병 약 300개를 집안에 모으는 모습이 드러나 모두를 경악하게 했다. 그의 어머니조차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었겠지만 김건모의 어머니는 “전부 다 건모가 마신 술은 아닐 것”이라며 아들을 두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당신은 ‘생후 몇 개월’이십니까
2017-03-01 00:00어느 해 봄 결혼식을 치렀고, 그 해 가을 필자는 집과 예단, 혼수 대신 남편과 414일 간의 세계여행을 떠났다. 사진작가로 잘나가던 여자에서 멀쩡히 잘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운 여자가 됐다. 떠나기 위해 집과 자동차를 정리했고, 쓰던 가구와 물건을 모두 팔아 치웠다. 한국에서 우리의 흔적을 찾을 수 없을 거라는 말만 남긴 채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갔다. 배낭 두 개 달랑 메고. 한국을 떠난 지 132일 째, 우유니로 향하는 우리의 발걸음엔 가속도가 붙었다. ‘세상에서 가장 큰 거울’ 또는 ‘지상 위의 천국’이라 불리는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 사막. 때는 3월 말, 우기가 거의 끝나가는 시기였기에 운이 좋아야 물 찬 우유니를 볼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혹여나 물 찬 우유니를 보지 못하게 될까 불안 초조해 하는 우리의 마음과는 다르게 그곳으로 향하는 버스는 느릿느릿 속 터지게 더디기만 했다. 버스로 10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다던 라파스에서 우유니까지 가는 구간은 울퉁불퉁하고 질척한 비포장 도로 위를 가다 서다 반복하더니 14시간 만에야 끝이 났다. 게다가 히터 하나 없는 고물 버스 속에서의 긴긴 14시간이 어찌나 춥고 배가 고프던지……. 그렇게 고생, 고생
2017-03-01 00:00세상에는 많은 이야기가 존재한다.신화, 전설, 민담, 구전 동화 등에는 인간 심리의 기저를 밝힐 수 있는 비밀과 집단 무의식그리고, 오늘날까지 이야기가 흘러올 수 있는 상당한 이유와 배경이 들어 있다. ‘김정금의 옛날 옛날이야기’에서는 그 비밀들을 한 꺼풀 벗겨볼 것이다.왜 동화 속에는 새엄마와 친엄마의 대립구조가 들어 있는지,여자 아이들의 성공담에는 어째서 간난신고의 고생길이 마치 하나의 ‘과업’처럼 열거되고,남자 아이들이 영웅으로 성장하기 위해선 반드시 집을 떠나는 과정이 들어 있는지 등우리 주변의 이야기 속에 숨겨진 ‘진짜 이야기’를 살펴볼 것이다. 이렇게 세상의 많은 이야기의 비밀들을 열어봄으로써 인간 사회가 면면히 쌓아오고 있는집단 무의식은 무엇이고 어느 부분에서 그것들이 발견되는지, 오늘을 사는 우리 각자의사고와 심리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함께 고민해 볼 것이다. 재투성이 소녀, 고양이 신데렐라, 상드리용(프랑스)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던 동화 신데렐라는 전 세계에 다양한 형태의 판본이 존재할 만큼 널리 알려진 대표적 ‘이야기’다. 특히 신발 모티브로 인해 중국에서 먼저 시작됐다는 뒷이야기부터 한국의 콩쥐팥쥐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유사한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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