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찰텐(El Chalten)으로 향하는 길은 흡사 지구를 떠나는 것 같았다. 인간의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황량함이 끝 간 데 없이 펼쳐지더니 굽이를 도는 순간 옥빛 호수가 펼쳐진다.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메마른 땅이었다가 어느 순간 거대한 설산이 툭 하고 튀어나온다. 하늘은 또 어떤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구름 사이로 해가 지고 달이 뜨고, 달이 지고 해가 뜬다. 한 치 앞을 종잡을 수 없는 풍경 속에서 버스는 달린다. 그렇게 아르헨티나의 바릴로체(Bari loche)에서 쉬지 않고 30시간을 달리면 엘찰텐이라는 마을에 도착한다. 힘들게 이곳을 찾은 이유는 트레킹 때문이다. 남미 여행 중 딱 한 군데에서만 트레킹을 할 수 있다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엘찰텐에서 하는 트레킹을 꼽겠다. 안데스 산맥을 경계로 칠레와 아르헨티나 양국에 걸쳐 있는 파타고니아(Patago nia)는 한반도 면적의 5배 크기다. 3000m가 넘는 설산과 끝이 보이지 않는 평원, 푸른 빙하와 붉은 사막, 다양한 동식물과 기이한 화석까지 만나볼 수 있는 이곳에는 범접할 수 없는 신비로움이 가득하다. 이 신기롭고도 거대한 자연은 엘찰텐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시작된다. 이곳은 파타고
2017-07-01 00:00옛 동화 속에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연상시키는 장면들이 은근히 많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프로이트가 소포클레스의 비극의 주인공을 빗대 이 표현을 사용하기 전에 이미 옛이야기 속에 수없이 재연, 재현되고 있었다. 우리가 모르고 지나갔을 뿐. 오늘은 그 동화들을 살펴보기 전에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내용이 무엇인지 조금 상세히 알아보겠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고 하면 그저 막연히 아들은 엄마를, 딸은 아빠를 더 좋아한다는 정도로 생각하는데 사실 그렇게 단순하게 끝나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콤플렉스 흐름에 따라 딸이 엄마를, 아들이 아빠를 더 좋아하는 심리성적 변화의 시기가 있는데 이는 아이들의 성장 과정 중 엄마와 아빠 가운데 누구에게 더 강하게 동일시하는가의 문제로 접근할 수 있다. 이후 프로이트의 제자인 분석심리학자 융은 이를 여아의 경우에 ‘엘렉트라 콤플렉스’로 부르기도 했는데 최근의 현대정신분석에서는 용어를 구분치 않고 여아와 남아의 구분을 둘 뿐 그대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통칭하고 있다. 이번에는 먼저 라캉의 제자로 프랑스에서 활동 중인 아르헨티나 출신 나지오의 이론과 정리에 근거해 남아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발달 과정을 한 번 들여다보자.…
2017-07-01 00:0019대 대선의 가장 큰 특징으로 지역구도에서 ‘세대구도’로 대결 양상이 변했다는 점을 꼽는다. 대한민국의 2030 다수가 보수우파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대한민국의 6070 다수가 진보좌파를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생각하면 정신이 암담해진다. 차라리 지역구도가 낫지 않았나 싶을 정도의 골치 아픈 갈등이 본격적으로 그 마각을 드러낸 것이다. 이 논쟁이 유독 골치 아픈 이유는 한국 사회의 독특한 사회구조와 관련이 있다. 구세대와 신세대는 서로를 미워하면서도 도저히 따로 떨어져서는 살아갈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안 보고는 살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 서로를 미워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자식세대가 부모세대를 놓지 못하는 이유의 상당수는 물질적인 측면에 기인한다. 이제 어느덧 일반명사가 돼버린 ‘금수저 논쟁’을 보면 부모세대의 경제적 능력이 자식세대의 ‘등급’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연재에서 여러 차례 말하고 있지만 한국 사회는 이미 역동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부모세대의 경제수준이 자식세대로 대물림되는 것은 어느 정도 진실이다. ‘결혼’이라는 이름의 리트머스 시험지 수저가 시원치 않다고 자기 부모를 바꿔버리고 싶은 자식이 그렇게
2017-06-02 15:31당시에는 그랬다. 고교 졸업 후 통과 의례처럼 치르는 행사 중 하나가 부산으로 가는 밤기차에 오르는 것이었다. 기차에서 밤을 지새운 후 부산 앞바다에서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는 것. 20대의 시작을 낭만의 아침으로 시작하는 것. 20대를 눈앞에 둔 어린 고교생에게 이만한 유혹적 낭만이 또 어디 있을까? 하지만, 그곳에는 낭만이란 건 없었다. 몸 하나 편히 앉기 힘들 정도로 좁은 자리, 그 공간마저도 옆자리 아저씨에게 반 이상 점령당하기 일쑤였고, 담배에 찌든 냄새와 쉼 없는 코골이를 애써 이겨낼 만하면 들려오던 갓난아기의 울음 섞인 칭얼거림에 그나마 억지로 청하던 잠마저 이내 달아났다. 거기다 몽롱해져 가는 의식과는 반대로 너무나도 선명하게 열차 안을 메운 형광등 조명은 얄미울 정도로 밝았다. 잠듦과 깨어남을 반복하던 그 순간, 열차 안의 모든 불이 갑자기 사라졌다. “정전입니다. 금방 다시 켜집니다.” 승객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돌아다니던 역무원의 다급함과는 어울리지 않는, 정전이 만들어 낸 정적 속에서 그동안 숨죽이고 있던 밤하늘의 빛들이 하나둘 열차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지막이 빛나는 달빛이 먼저 열차 안을 돌아다니며 밤 기차에 매달려있던 사람들의…
2017-06-02 15:2801박 선생이 이번에 어떠어떠한 공적으로 상(賞)을 받는다는 이야기가 좌중에 나온다. 그때 누군가 불쑥 진지한 표정으로 말한다. “나도 상을 많이 받아 봤지요.” 옆에 있던 사람이 묻는다. “선생님은 무슨 상을 받으셨는데요?” “아, 나는 아침저녁으로 밥상을 받습니다.” 옛날에 유행했던 ‘아재 개그’ 중 하나다. 이 썰렁한 개그 안에도 상 받는 사람에 대한 부러움이 은연중에 숨어 있다. 누구나 상 받고 싶다는 욕구가 있음도 드러난다. 상(賞)은 잘한 일이나 우수한 성과를 칭찬해 주는 표적이다. 그래서 상은 명예의 증거품이다. 상금이 많으면 금상첨화(錦上添花)지만, 상금에 이끌리는 상은 그저 그렇고 그런 상인지도 모른다. 상금의 가치가 명예의 가치를 넘어서지 못하기 때문이다. 상금은 사라져도 상의 명예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노벨상이 그렇다. 그런데 참, 세상이 어지럽다 보니 돈으로 상을 사려는 사람도 있다. 상이 타락한 것인지, 돈이 타락한 것인지 모르겠다. 흔히 ‘상을 탄다’고도 말한다. 곗돈을 타다, 배급을 타다, 봉급을 타다 등과 같은 쓰임이라고 보면 된다. 복이나 운명 같은 것을 태어나면서부터 가지는 것을 ‘타고난다’고 하는데, 이것도 ‘상을 탄다
2017-06-02 14:31이금이의 장편동화 ‘너도 하늘말나리야’는 미르, 소희, 바우 등 세 아이가 성장 과정에서 느끼는 아픔을 극복해가는 이야기다. 미르는 아빠, 소희는 부모, 바우는 엄마가 없지만 이들이 서로의 상처를 감싸주며 커가는 얘기를 그렸다. 1999년 나온 책이라 필자가 클 때는 없었던 책인데, 아이들 방에서 우연히 보고 빠져들었다. 할머니와 함께 사는 소희는 바우에게 누나 역할을 해주는 등 셋 중 제일 조숙한 아이다. ‘부모가 없고 예쁘고 비싼 옷을 입지 못해도’ 언제나 당당하다. 바우는 이런 점 때문에 소희가 하늘말나리 같다고 생각한다. 바우는 하늘에 있는 엄마에게 이렇게 말한다. “엄마 이 꽃 이름이 뭔 줄 아세요? 하늘말나리예요. 진홍빛 하늘말나리는 꽃뿐만 아니라 수레바퀴처럼 빙 둘러 난 잎도 참 예뻐요. 다른 나리꽃 종류들은 꽃은 화려하지만 땅을 보고 피는데 하늘말나리는 하늘을 향해서 피어요. 마치 무언가 간절히 소원을 비는 것 같아요.” 소희는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도시의 작은아버지 집으로 가야 했다. 바우는 소희에게 하늘말나리를 그린 그림을 주면서 ‘소희를 닮은 꽃.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꽃’이라고 쓴다. 그러자 소희가 “너희들도 하늘말나리야”라고 말
2017-06-02 14:21프로이트가 처음 아이들의 성(性)을 들고 나왔을 때 사람들의 당혹감은 상상외로 더 컸을 것이다. 무성의 존재, 아니 아예 성 자체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무슨 금단의 구역을 밟은 것 마냥 쉬쉬 두려워하던 이들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니 그 놀라움은 더 컸을 것이다. 20세기를 코앞에 둔 시점에 프로이트는 후에 성욕에 관한 세 편의 에세이라는 묶음으로 불리는 논문들을 들고 나와 ‘유아의 성’까지 말한다. 그가 유아의 성에서 핵심으로 다룬 것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다. 이 개념은 반대되는 성의 부모를 아이들이 따르고 좋아한다는 단선적 의미 외에 동성 부모에 대한 사실상의 적대감과 이성 부모에 대한 심리성적 변화의 측면까지 포함하고 있다. 잠깐 신화를 살펴보자. 오이디푸스 신화는 테베의 왕 라이오스가 신탁을 받으며 시작된다. “당신의 아들이 당신을 죽일 것이다.” 두려운 라이오스는 양치기를 시켜 아들을 죽이라 명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아기는 코린토스의 왕에게 맡겨져 자란다. 후에 청년이 된 오이디푸스는 역시 자신이 아버지를 죽일 것이라는 신탁을 접하자 바로 집을 떠난다. 길러준 부모를 친부모로 알았기 때문이다. 길을 가던 그는 라이오스의 일행을 만나 시비 끝에 자신의 진짜
2017-06-02 11:40우리에게 잘 알려진 ‘빨간 모자’ 이야기는 17세기 프랑스의 샤를 페로의 ‘작은 빨간 두건(Le Petit Chaperon Rouge, 1697)’과 19세기 독일의 그림 형제가 채록하고 작성한 ‘작은 빨간 모자(Rotkäppchen, 1812)’ 두 가지 판본에서 시작됐다. 샤를 페로는 궁정에서 시를 낭독하고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었다. 이때 청중으로 궁정의 아이들이 참여하는 일도 적지 않아 페로는 어떻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잘 모아서 전달할까 생각하다가 당시 민간에서 구전되는 민담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궁정이라는 분위기를 고려해 부드럽게 순화해 이야기를 개작, 재화(再話)했다. 대표적으로 손 본 작품 중 하나가 ‘작은 빨간 두건’이다. 당시 남프랑스와 북부 이탈리아 쪽에서는 ‘가짜 할머니(La Finta Nonna)’ 등 할머니 이야기가 구전되고 있었는데 이 이야기를 가져와 ‘작은 빨간 두건’으로 만든 것이다. 이 두건은 그냥 모자 하나를 쓴 것이 아니라 우리로 치면 일종의 후드 망토 같은 것이다. 소녀는 사춘기에 막 들어서는 아이지만 여전히 ‘아이다운’ 순진함을 담고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장치가 이 후드 망토다. 그 후 독일에 사는 그림 형제가 첫 동화집
2017-05-01 00:0001일곱 시간에 걸쳐 공연하는 연극을 보러 갔다. ‘일곱 시간’이나 공연을 하다니,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만하다. 그 관심을 두고 특별히 예술적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세상에, 그렇게 긴 연극이 있단 말이야? 어떤 건지 한번 봐야겠다’ 하는 정도의 호사가적 관심에 가까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일곱 시간’에만 집중하는 관심은 대중적인 관심(popular issue)에 머문다. 나도 저 공연을 보고, 누구에겐가 ‘일곱 시간 공연을 보았노라’고 말하고 싶은, 일종의 ‘지적인 허영심’ 같은 것에 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는 이 공연을 보리라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무대에 올리는 작품을 확인하는 순간, ‘아! 인내심이 필요하겠구나. 짜릿한 재미 같은 것은 기대하지 말아야지. 지루해서 졸면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 작품은 도스토옙스키 원작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었다. 젊은이들에게 관람을 권유해 봤다. 재미없으면 책임지라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진한 관심을 갖고 응하는 사람은 그 분야 전공자 외에는 그리 많지 않았다. 원작을 읽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 일곱 시간짜리 연극 관람을 선뜻 결정하기 어려우리라. 난해한 내용에 일곱…
2017-05-01 00:00장미는 5월부터 피는 대표적인 꽃이다. 이번 대선을 ‘장미 대선’이라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기 소설 속에 핀 두 송이 장미가 있다. 한 송이는 신경숙이 베스트셀러 소설 ‘엄마를 부탁해’에서 엄마에게 최고의 찬사를 보내며 쓴 장미이고, 다른 송이는 정이현이 소설 ‘달콤한 나의 도시’에서 불타는 사랑을 표현할 때 쓴 장미다.‘엄마를 부탁해’ 표지는 강렬한 빨간색에 밀레의 ‘만종’에 나오는 듯한 여자가 기도하는 그림이다. 그런데 이 소설의 일본어판 표지는 장미 사진으로 뒤덮여 있다. ‘엄마를 부탁해’가 장미와 무슨 연관이 있어서 이런 표지를 쓴 것일까. 일본 출판사에 문의해본 것은 아니지만, 소설에서 장남이 서울에 처음 집을 장만했을 때 엄마가 담장 옆에 장미를 심어주는 내용에서 착안한 것이 확실하다. “그가 집을 갖게 되고 처음 맞이한 봄에 서울에 온 엄마는 장미를 사러 가자고 했다. 장미요? 엄마의 입에서 장미라는 말이 나오자 그는 잘못 듣기라도 한 듯 장미 말인가요? 다시 물었다. 붉은 장미 말이다, 왜 파는 데가 없냐? 아뇨 있어요. 그가 엄마를 구파발에 쭉 늘어서 있는 묘목을 파는 화원으로 데리고 갔을 때 엄마는 나는 이 꽃이 젤 이뻐야, 했다. 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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