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광식 / 충남 서산 부석초 교사 초등교육에 입문한지 20년이 훌쩍 넘어버렸다. 광주의 아픔이 미처 가시기 전인 82년 5월 아카시아향기가 무척이나 진하게 느껴지는 어느 날 남도의 끝자락 해남에서 아이들과 만났다. 지금은 희미한 기억이 되었지만 겨울이면 조개탄 난로 위에 도시락을 올려놓고 그렇게 점심시간을 기다렸다. 손등이 다 터서 피가 나던 아이들은 아침 등교시마다 불쏘시개로 사용하기 위해 새끼줄에 매단 소나무 곁가지며 솔방울들을 들고 이고 학교에 왔다. 그때 그 아이들은 모든 것이 부족하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참 열심이었는데…. 지금 그들은 30대로써 이 사회를 지탱하는 큰 축이 되어 여러 곳에서 한 몫 단단히 하고 있으리라는 확실한 믿음이 있다. “애들아 잘하고 있지? 어렵지는 않니. 너희들은 잘 할 수 있을 거야." 추억은 마냥 아름다운 것이라 그럴까? 그때 그 아이들은 요즈음 아이들은 보다 훨씬 더 근성도 있고, 씩씩하고, 예의바르고, 남을 배려할 줄도 알고 그랬던 것 같다. 어떻게 가난한 나의 언어로서 그들을 다 칭송할 수 있으랴. 그런데 요즈음 아이들을 보면 20년 전의 아이들에 비해서 도대체 믿음이 가지 않는다. 좀스럽지, 활동적이지 못하지,
2005-11-01 09:00글 | 박하선/사진작가·여행칼럼니스트 캄보디아 밀림 속의 수수께끼 이 지구상 곳곳에서는 일찍이 수많은 문명들이 피어나 전성기를 누리다가 어느 틈엔가 사라지곤 했다. 그 문명들은 모두가 나름대로의 특색을 갖고 있었으며, 오늘날까지도 어떤 것들은 신비의 베일에 싸여 많은 수수께끼를 남긴 채 깊은 관심의 대상이 되곤 한다. 그 대표적인 문명의 하나가 캄보디아의 밀림 속에서 피어난 '앙코르(Ankor)'다. 앙코르는 고대 크메르 왕국 앙코르 왕조시대(9∼15세기)의 유적군 소재지로 1431년 크메르 왕조의 수도가 남동 메콩강 본유역에 천도된 것을 계기로 버려져 그 존재가 잊혀져 있었으나, 현재는 캄보디아의 대표적 관광지이다. 기심으로 발견한 역사의 신비 19세기에 '앙리 무오'라는 프랑스 박물학자가 있었다. 그는 이 밀림 지대를 다니면서 나비를 채집하다가 원주민들로부터 전해오는 이상한 소문을 들었다. 이 밀림의 한쪽에는 악마의 저주가 내리는 곳이 있다는 것. 그래서 조상 대대로 어느 누구도 그 근처에는 얼씬도 해오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 소문에 호기심이 당긴 박물학자는 원주민들의 간곡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어렵게 설득하여 그 악마의 숲을 찾아 나선다. 밀림은 그야
2005-11-01 09:00서혜정 / 한국교육신문 기자 존 테일러 개토 지음/ 민들레 국가가 주도하는 학교라는 교육 체제는 언제 만들어진 것일까. 1806년 프러시아가 나폴레옹 군대에 패한 뒤 철학자 피히테는 ‘독일 국민에게 고함’이라는 글을 통해 대프러시아 통합을 위해 의무 학교교육 제도를 만들자고 촉구했다. 그로부터 20년 뒤, 1826년에 프러시아는 복종할 줄 아는 신민(臣民)을 기르기 위해 국민 학교 제도를 만들었다. 이 제도를 유럽·미국·일본이 받아들였고 제국주의 확장과 함께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이렇듯 200년의 역사를 지닌 학교교육을 ‘바보를 만드는 교육’이라고 비판하는 책이 있다. 26년간 공립학교 교사로 일했던 존 테일러 개토라는 미국의 교육 운동가가 쓴 ‘바보 만들기’는 오늘날의 공교육이,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사람보다는 남의 생각을 자기 생각인 양 착각하며 살아가는 사람, 국가 혹은 지배 계층이 유도하는 대로 생각하는 사람을 길러낸다고 비판하고 있다. 명령에 복종하는 군인, 단순하고도 힘든 노동을 견뎌낼 줄 아는 노동자,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관료 등을 길러내는 학교 교육은 결국 바보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자신을 바보로 알고 좌절하는 수많은 실패자와
2005-11-01 09:00중국 동북지방의 고구려 유적을 찾아서① 조현호 l 울산 옥현초 교사 고구려로, 고구려로 지난 8월말 중국 동북지방을 다녀왔습니다. 심양을 기점으로 해서 백암산성이 있는 요양, 고구려 첫 도읍지 환인, 두 번째 도읍지 집안, 한민족의 성산 백두산, 용정과 연길 등 연변지역을 둘러보았는데요, 이번 답사의 최대 성과는 바로 고구려가 우리 역사라는 확신을 갖게 된 것입니다. '정신없는 사람 같으니, 그 당연한 이야기를 꼭 그곳까지 가서야 알았냐'고 핀잔을 주실지 모르지만, 저는 현장에서 직접 확인하고 발자국을 남기기 전에는 확신을 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래서 사회과 부도나 역사책에 있는 역사지도를 보고는 혹 '정확한 근거 없이 실제보다 좀 더 과장하여 국경선을 그어놓지 않았을까' 하는 불순한 생각을 갖는 때가 많지요. 하지만 백암산성을 시작으로 연변으로 올라갈수록 우리 땅과 가까워지는 거리만큼 우리 역사가 더 가까워졌고 고구려의 위상이 분명해졌습니다. 아울러 세 국가 국민으로 각각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민족의 현실이 마음 아팠습니다. 우리 땅, 우리 유적들이 중국 땅에 있다는 이유로 중국의 역사로 편입되는 실상을 확인하고는 분노 이전에 국력을 안타까워 해야 했습니다
2005-11-01 0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