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 내내 꽃길로 단장되는 섬진강길! 섬진강에서 태어나 섬진강에 기대어 살며 아름다운 글로 노래하는 한 시인에 의해 더 널리 알려진 이 길은 봄에는 매화꽃, 벚꽃, 그리고 배꽃이, 여름에는 밤꽃과 코스모스가, 가을에는 산국과 쑥부쟁이를 포함하는 국화꽃과 단풍꽃이, 겨울에는 차나무꽃과 눈꽃이 피는 아름다운 길이다. 전북 진안군 백운면에서 길을 떠난 섬진강물이 남해바다에 몸을 풀기 까지 212.3킬로미터를 굽이쳐 달리는데 이는 나라 안에서 아홉 번째로 길게 달리는 물길이다. 대체로 강폭이 좁고 강바닥이 많이 노출되어 있어 뱃길로 이용하는 데는 불편하나 화개장터에서 하동읍까지의 강변 고운모래는 전국에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다. 이 금빛의 모래밭에는 금빛의 껍질을 가지는 재첩이라는 조개가 살고 있어 하동하면 재첩으로도 유명하다. 섬진강의 이름에도 이야기가 들어 있어 두꺼비섬(蟾)에, 나루진(津)을 사용하여 ‘나루터에 두꺼비가 나타난 강’이라는 의미이다. 고려 말 하동에 침입한 왜구들이 강을 건너려 하는데, 다압면 섬진마을의 나루터에 수만 마리의 두꺼비들이 모여들어 울부짖자 왜구들이 놀라 도망쳤기에 붙여진 이름이란다. 섬진강물길은 좌우로 산길을 가지는데, 이는 하동에
2007-05-01 09:00
전국 방방곡곡의 산야를 즐기는 많은 사람들은 짙어가는 녹음을 즐기면서도 은연중에 우리 것에 대한 흥미를 가지곤 한다. 이런 속마음을 표현하듯 혹시라도 도회지 생활에서 멀어져버린 옛 생활 용품을 만나면 호들갑스러울 정도로 흥분하며 좋아한다. 그 중에서도 사람들의 시선을 멈추게 하는 것은 담 밖 야트막한 언덕과 어울림 한 시골 장독대와 그 속의 옹기일 것이다. 복잡한 일상을 잊게 하고 어머니 품 속 같은 편안함을 더해주는 옹기를 보는 즐거움은 우리 민족의 특혜인지도 모른다. 땅 색과 닮은 옹기를 본 사람들의 입가에는 어느새 웃음이 묻어 있고 얼굴에 화색이 돈다. 어느 마을 낯선 길목의 한옥 마당 한 켠에 겸손하게 앉아있는 옹기가 정겨운 것은 우리 민족성을 그대로 빼 닮아 있기 때문이다. 자연에 순응할 줄 알면서 잘난 척 하지 않고 은근한 아름다움을 가진 모양은 우리 민족의 속내를 가장 잘 표현한 물건임이 분명하다. 얼마 전 나는 어른 키보다 큰 옹기를 보며 고향에 계신 어머니 생각을 했다. 큰집이던 우리 집 장독대에는 아주 큰 장독이 여러 개 있었는데, 몇 년씩 묵은 장맛이 좋다며 이웃 아주머니들이 간장과 된장을 얻으러 왔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최근 일본사람들
2007-05-01 09:00
덴마크의 외진 시골 마을에 청교도적인 신앙의 목사와 그의 딸들인 ‘마르티나’와 ‘필리파’ 자매가 살고 있었다. 세속을 멀리하고 다만 구제와 말씀 그리고 예배 모임만을 삶의 전부로 알았던 자매의 아버지는 신앙을 이유로 딸들의 사랑이나 결혼을 허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가르침에 자발적으로 순종했던 자매는 오히려 이를 기쁨으로 받아들인다. 여성으로서의 삶이 전해주는 일체의 즐거움이나 기쁨도 경험해 보지 못한 채, 평생을 신에 대한 헌신과 이웃에 대한 봉사 속에 살아온 두 여인의 일상에 어느 날 작은 파문이 일어난다. 1871년 비바람이 몰아치던 어느 밤, 초라한 몰골의 지쳐 쓰러질 것 같은 한 프랑스 여인이 그들을 방문한 것이다. ‘바베트’라는 이름의 그녀는 필리파가 젊은 시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랑의 감정을 느꼈던 오페라 가수 ‘아킬’의 편지를 가지고 있었다. 내용인즉 프랑스에서 내전이 일어나 남편과 자식을 잃은 여인이니, 부디 그녀를 받아들여 달라는 것이었다. 모든 재정을 봉사하는 일에 써야 했던 자매는 바베트를 요리사로 고용할 여력이 없었지만, 아무런 조건 없이 다만 머물기를 간청하는 그녀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한다. 인간은 결국 이기적 욕망의 노예일 뿐
2007-05-01 09:00“고구려, 7년여의 격전 끝에 나·당연합군에 대승해 나라를 보전하다.” 안타깝지만 사실은 정반대로 전개되었다. 고구려는 당과 신라에 패해 668년(보장왕 27)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더불어 넓은 만주 또한 우리 민족의 생활무대에서 거의 벗어나 버렸다. 고구려가 나·당연합군을 물리쳤을 경우 오늘날 동북아시아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동북공정(東北工程, ‘동북변강역사여현상계열연구공정(東北邊疆歷史與現狀系列硏究工程)’의 약어)’이란 낱말은 무슨 공업화 프로젝트를 연상시키지만 실로 무서운 작업이다. 중국은 근래에 해괴하기 이를 데 없는 엉뚱한 일을 벌이고 있다. 5만여 고구려 유민이 세운 발해를 슬금슬금 자국 역사에 편입시키더니 급기야 고구려까지 자국 역사로 만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중국은 우리나라가 강릉 단오제를 유네스코 ‘인류 구전(口傳) 및 무형문화재 걸작’으로 등록하려 하자 단오절이 중국의 전통 명절임을 내세워 문화약탈이라 비난하고 나섰다. 2004년 7월 1일 중국의 쑤저우[蘇州]에서 열린 28차 세계유산위원회(WHC)는 결국 중국과 북한의 고구려 유적을 나란히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켰다. 평양 동명왕릉 등 진파리 고분 15기, 평양 호남리 사신
2007-05-01 0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