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수원에서 어제, 오늘처럼 이른 봄기가 내리는 날이면 보통날보다 생각이 더욱 깊어진다. 하루는 봄비가 촉촉이 내리고 있는 아침 6시 체조 시간에 현관 앞마당에서 체조를 하고 나서 현관에 서면 마음이 어두워진다. 그러나 바다의 검은 물 너머에 보이는 작은 불빛 하나가 희망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대왕암도 그 자리에 외로이 지켜있으면서 그래도 나는 내 자리를 지키노라 하면서 희망의 메시지를 보내준다. 그러면 생각나는 대로 읊조리게 된다. ‘봄비는 촉촉이 마당 적시고 둘러 선 소나무 눈을 가리네. /듬성듬성 사이로 눈-빛 주니 구름은 먹물 머금어 입으로 토해 내고 바다도 순식간에 먹물 되었네./ 자그마한 불빛 하나 희망을 싣고 먹물로 얼룩진 天海사이로 한 줄기 힘이 되어 비추고 있네./ 대왕암 발(廉)에 가리어 윤곽만 희미하나 제 모습 지닌 채 자리 지키네./머리 녈 구름 먹물 지우니 작은 불빛 하나 삼형제 되었네./‘ 하루는 연수원 숙소에서 신석정의 시 ‘산수도(山水圖)’를 읽었다. 그리고 나서 그 다음날 아침 산책길이 이 시와 너무 흡사하여 여기에 옮겨 본다. 숲길같이 이끼 푸르고/나무 사이사이 강물이 희어.... /햇볕 어린 가지 끝에…
2007-02-14 09:02요즘 고향 생각이 잦다. 연어가 태어난 곳으로 되돌아가는 것처럼 회귀본능인가. 친구들과 뛰어 놀며, 한걸음에 내달리던 그 산길, 그 골목길이 그립다. 나이를 먹을수록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다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버렸다. 따뜻한 마음의 안식처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7살까지 시골 외가에서 자란 탓인지 어린 시절 외가의 추억이 더 아련할 때가 있다. 그때 외갓집 뒤에는 논 50마지기에 해당하는 큰 대밭이 있었다. 사시사철 푸르름을 자랑하는 대밭의 풍경과 그 속에서의 놀이, 그리고 정서가 그리워진다. 그 때 그 대밭엔 까마귀가 참 많았다. 겨울철이면 먹이를 찾아나서는 낮 동안을 제외하고는 까마귀의 무리 항상 대밭 주위에 머물러 있었다. 그래서인지 어른이 된 뒤에도 대나무와 까마귀는 항상 어린시절 상상화 속에서 동반 등장했다. 외롭게 서있는 대나무보다 까마귀가 대나무 가지에 앉아있는 풍경이 훨씬 더 낭만적이고 아름답다. 먹을 것과 단백질 공급이 부족했던 그 당시에는 밤이면 외가 아저씨와 친구들이 어울려 까마귀 포획작전에 나선다. 전등과 긴 마당 빗자루를 들고 대밭으로 살금살금 들어가 대나무 밑의 배설물을 촉감으로 확인한다. 배설물이 말
2007-02-13 09:49연수원 숙소 생활에서 나에게 관심거리가 하나 생겼다. 정성을 쏟을 만하다. 마음을 집중시킬 만하다. 객지생활에 외로움을 달래주기에 안성맞춤이다. 99년 5월 10일 함께 근무했던 행정실 직원 한 분이 선물로 준 ‘라벤더’이다. 지금까지는 식물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조그만 화분에 심겨져 있는 라벤더에는 관심이 많이 갔다. 사랑을 하게 된다. 정을 주게 된다. ‘라벤더’는 햇빛을 잘 받는 남향 모래땅에 비옥하지 않는 알칼리성 땅에 잘 자라는 다년생이다. 색깔은 연두색 보단 진하고 녹색보다 약간 연하다고 할까? 내 숙소에 있는 ‘라벤더’는 뿌리가 넷이고 한 뿌리에 서너 줄기가 나 있고, 줄기마다 양 톱니처럼 생긴 잎이 여남은 개 나 있고, 귀엽게 생긴 새끼 잎이 출현을 예고하고 있다. 어린 잎 줄기 끝은 고기요리, 찌개, 소스에 쓰이며 허브차, 방향제, 정유는 화장품, 향유, 비누, 향수, 목욕제, 포푸리로 옷장, 방안에 두면 곰팡이가 잘 끼지 않는다고 한다. 이 좋은 ‘라벤더’를 아리따운 이로부터 선물로 받았으니 얼마나 좋으랴? 한편 기쁘기도 하지만 걱정도 되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내 손에 든 식물을 제대로 살려낸 적이 없기…
2007-02-13 08:54요즈음 우리 공직 사회에는 ‘민원인이 왕’인 것 같다. 요즈음 민원인들은 자기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화를 내고 반말과 욕설을 쏟아내는 사람도 있다. 하긴 경찰관서에 기물을 파손하는 성질 급한 사람들이 많은 걸 보면 업무 담당자에게 큰소리 좀 치고 욕설 몇 마디 한 것은 별 것 아닐(?) 수도 있다. 어느 때부터인지 우리사회에는 ‘떼법이 모든 법을 우선한다’는 말이 회자되고 있으니 어쩌면 그리 야속하게만 생각할 일도 아닌지도 모른다. 어느 사이에 우리들은 사회적 합의가 존중되지 않는 사회, 원칙과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에서 방황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요즈음 우리 사무실에는 중학교 배정과 전입학 관련 민원이 잇따르고 있다. 관내 학교가 모두 교육적 여건이 잘 갖추어져 있거나 분위가 고루 균등하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학교별로 차이가 있기 때문에 민원이 계속적으로 발생한다. 따라서 가급적 학부모나 학생이 원하는 학교에 배정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으고 있으나 모든 학생과 학부모를 만족시키지는 못하고 있다. 2월 12일, 한 주일을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에도 예외 없이 두 건의 민원을 듣게 되었다. 하나는 중학교 배정과 관련한 것이었고 또 하나는 전학과 관련한
2007-02-13 08:50졸업식 날 아침부터 비가 내립니다. 모처럼 만의 비에 겨울가뭄이 해소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집에서 학교까지 걸어갔습니다. 걸어서 20분 남짓. 겨울이지만 차갑지 않은 날씨에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듣기 좋습니다. 등교하여 강당으로 졸업생들과 재학생들, 학부형들이 앉을 의자를 2학년 아이들과 나릅니다. 비가 내리는 관계로 한 손엔 우산을 받쳐 들고, 다른 한 손엔 의자를 들고 강당과 교실을 오가는 아이들의 얼굴이 해맑습니다. 조금은 귀찮을 터인데도 그런 표정이 없는 아이들을 보니 떠나보내는 선배들을 위한 아이들의 마음이 보입니다. 수정아 졸업 축하한다 강당의 의자를 정리하고 교무실에 앉아 있는데 졸업생인 수정(가명)이라는 아이가 찾아와 인사를 합니다. 겉옷도 입지 않고 얇은 옷차림입니다. “선생님, 저 왔어요.”“수정이구나. 졸업 축하한다. 그런데 추운데 옷이 그게 뭐니?” “봄인데요. 안 추워요.” 춥지 않다며 피식 웃던 수정이가 짐짓 진지한 표정을 짓더니 고맙다는 말을 합니다. “저 졸업하게 도와주셔서 고마워요.” “뭐가 고마워. 다 네가 참아줘서 한건 데. 암튼 너 졸업하는 모습 보게 되니 좋구나.” “아니에요. 안 도와주었으면 졸업하지 못했
2007-02-13 08:50안녕하십니까? 공정택 교육감님. 연세를 보아하니 저희 시골에 계신 아버지와 갑술년 동갑이신데, 어른에게 얼굴 한번 뵙지 못한 채 이렇게 글로써만 인사를 드리게 되어 송구하게 생각합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이렇게 생면부지의 공교육감님께 글을 드린 이유는 얼마 전 서울특별시교육청에서 진행된 월례조회에서 지방공무원을 무시하는 발언을 교육계 원로답지 않게 하셨다는 말씀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교육행정직 동료들이 주축이 되어 운영하는 교육행정전문사이트홈페이지(upow.org)와 한교닷컴의 孔 교육감 ‘공무원 폄하 발언’ 논란 (2007.2.12. 기사참조)에서 전하는 말에 따르면 아래와 같습니다. '교장 중심으로 똘똘 뭉쳐야 하는데 서무직원, 용인아저씨들도 뭉쳐야 한다. 말 안 듣는 직원은 내신 내야하고, 안 내면 총무과장이 해야 한다. 교장 말 안 듣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아가씨들 교장이 특히, 초등이 바르게 하지 않는다 해서 존경을 못하겠다는데 안된다. 지방공무원들은 교장이 발발 떨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교장 출․퇴근때 현관에 나와 도열해서 인사해야 한다. 그리고 노조때문에 일이 안된다. 노동조합 소용없다.' 공교육감님! 위에 실린 말들이 교육계
2007-02-12 11:34연수원 숙소에서의 밤은 더욱 쓸쓸하다. 보통 집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다. TV도 없다. 전화도 없다. 컴퓨터도 없다.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라디오나 전축도 없다. 단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책 읽는 것밖에는 없다. 아니면 누워서 이것저것 생각만 하게 된다. 정말 외로운 곳이다. 정말 답답한 곳이다. 정말 한심한 곳이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고 보니 그곳만큼 좋은 것이 없는 것 같다. 지금은 돈 주고 그런 곳에 가려고 해도 힘들다. 그곳만큼 생각을 깊게 해준 곳은 없다. 그곳만큼 자신을 다듬어줄 수 있는 곳도 없다. 나처럼 그곳은 아니더라도 비슷한 환경에서 고생하는 분들을 생각하면서 좀 더 빨리 그런 곳이 좋은 환경이라는 깨달음이 있었으면 한다. 하루는 박두세(朴斗世)의 ‘요로원야화기(要路院夜話記)’를 읽었다. 읽다가 산책을 갔다 온 후 마무리하여 읽었다. 그 중에 아홉 가지 생각하는 글자를 써 항상 눈에 보고 외운다고 하는 박 선생님의 내용이 공감이 되었다. 이분처럼 이 아홉 가지 글자를 가슴속에 심어두고 항상 외우고 생각하면서 행동에 옮기면 위대한 사람, 인품이 좋은 사람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박 선생님의 삶이 어떠했다는 것을…
2007-02-12 08:49“우와, 선생님이다!” “숙쌤이 오셨다~” 교실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일제히 울리는 함성이다. 그것도 모자라 순식간에 아이들이 와라락 안겨든다. 구름같이 에워싼 아이들. 눈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내가 문을 열 때만 해도 삼삼오오 모여서 수다를 떨거나 딱지치기를 하던 아이들이었는데 순식간에 내게로 몰리니 이 무슨 과반김인가 싶다. 이 때만큼은 내가 연예인 부럽지 않은 스타 중의 스타가 된다. 발빠른 여학생들이 먼저 오그르르 내 품에 안겨서 주위까지 선점하다보니 남학생들은 끼일 자리가 없다. 저만치서 자기네들끼리 껴안고 눈은 내 쪽으로 향하고 있다. 겨울방학 40일 동안 못 만난게 무슨 이산가족 상봉이라도 되는 모양인지. 그 동안 나는 아이들에게 무지무지하게 무뚝뚝한 선생님이었다. 다른 선생님들처럼 그 흔한 손 한 번 잡아주지 않았고, 머리 한 번 제대로 쓰다듬어주지 않았다. 이 놈이 예뻐서 안아주면 다른 놈들이 슬퍼할까를 염려해서 저 아이를 칭찬하면 또 다른 아이가 속상해할까를 염려해서 함부로 애정표현을 하지 않았다. 아무리 예쁜 짓을 해도 겉으로 드러내어 표현 못하고 ‘어 잘했어’하는 단말마의 칭찬으로 끝나곤 했다. 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2007-02-12 08:47연수원 숙소에서 생활을 하게 되면 무엇보다 새소리를 항상 듣게 된다. 생기 있는 봄이 다가오면 새벽부터 들려오는 게 새소리이다. 그러니 자동 일찍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일어나면 세상의 잡다한 것 보지 않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먼저 보게 된다. 그래서 일어나면 먼저 마음의 문을 연다. 숙소에 있는 라벤다를 보게 된다. 한참 동안 보게 된다. 그리고 나서는 커텐을 연다. 창문을 연다. 아직 어둠이 깔려 있다. 새소리는 여러 가지로 들린다. 특히 미끄러지는 연음과 끊어지는 절음도 들린다. 옛날 유명한 작곡가들이 새소리를 먼저 연구했음직하다. 유명한 작곡자들이 미끄러지듯이 이어지는 음을 연결음으로 처리하는 것이라든지 음의 강조를 위해 스타카토로 끊어 강조하는 것이라든지 하는 것은 오늘 아침에 들은 새소리와 다를 바 하나도 없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 특히 음악을 연구하는 분들은 자연과 더불어 친했음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든다. 유명한 작곡자들은 분명 깊은 산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지내면서 새소리를 많이 접했으리라. 거기에서 악상을 얻어 아름다운 선율을 창조해내었으리라. 그렇지 않고는 맑고 고운 음악을 만들어 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산책도 매일 하는 것이 좋지만…
2007-02-11 09:46
요즘 각급 학교의 졸업 시즌이다.'슬픈 졸업식'을 보았다. 독자들은 '아하, 헤어짐에 아쉬워 우는 학생들이 많았구나! 옛날 졸업식 모습이 아직도 남아 있나?'하고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게 아니다. 눈물을 글썽이며 훌쩍거리는 학생은 졸업생 답사할 때 맨 앞줄에 있는딱 한 명정도였다. 먼저 학교의 반성이다. 졸업식을 축제로 승화시켜 즐거움과 기쁨 속에서 새출발을 다짐하게 해야 하는데 아이디어, 기획력 면에서 그러하지 못했다. 학사보고, 각종 시상, 축사, 회고사, 송사와 답사, 졸업가와 교가 제창등 과거 내용을 답습했다. 졸업생 한 명 한 명을 주인공으로 만들었어야 하는데아이디어가 빈약했다. 기껏한 것이 현수막에 도입한 "졸업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 정도가 고작이었다. 교감과 교장의 혁신적인 마인드가 아쉬운 순간이다. 교육력의 부재다. 졸업식날 강당을 제외한 타 건물 출입구가 봉쇄되었다. 졸업생들이 마지막으로학교를 떠나면서학교 기물 파괴를 우려한 조치였다. 아예 교실을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다. 추억의 교실을 둘러 볼 수 없게 한 것이다. 밀가루 뿌리기는 사전 압수 조치로 어느 정도 성과는 거두었지만 졸업생들이 학교에 대해 가지는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 교육
2007-02-10 1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