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청주의 젖줄인 무심천의 발원지나 옛 문화가 남아있는 산길과 논밭 길을 직접 걸어다니며 청주사랑을 몸으로 실천하는 모임이 청주삼백리다. 청주삼백리 회원들이 청주, 청원의 중심산줄기인 한남금북정맥을 8구간으로 나눠 답사를 시작한 게 3월 4일이다. 그로부터 4개월 후인 6월 17일은 이번 답사의 피날레인 마지막 구간을 답사하는 날이다. 8구간 답사를 밤티재에서 시작하기 위해 지난번 답사를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만났던 새왕이마을로 갔다. 2주 전에는 보이지 않던 '황새서식지 조성을 위한 실험방사' 환영 플래카드가 마을입구에서 회원들을 반긴다.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일손이 달리는 게 농촌의 현실이다. 논두렁에서 일을 하고 있거나 연모를 챙겨 일터로 나가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노인이다. 주름살 더 많은 노인들 몇이 아침부터 정자에서 마을을 지키고 있는 새왕이마을의 아침풍경이 한가롭다. 강남에서 돌아온 제비들이 계량기와 연결된 전깃줄에 앉아 졸고 있는 모습도 평화롭다. 배추와 인삼을 많이 경작하는 마을을 막 벗어나면 오염물이 없어 다슬기들이 살을 찌우고 있는 냇가를 만난다. 이곳에 오래전에 놓였지만 규모가 작지 않은 다리가 있다. 답사 전에 갖는 만남의 시간을 다
2007-06-22 17:18'아버지의 사랑전'에서 우수작으로 선정된 이일주 학생의 초상화 '아버지의 사랑전'을 알리는 현수막 보통 어머니의 사랑은 많이들 칭송하고 기리지만, 아버지의 사랑은 상대적으로 소홀히 생각하는 편이다. 아버지라는 말은 '파드레스'라는 어원에서 나왔고, '파드레스'라는 말은 'Parent'라는 말에서 파생했다. 히브리말로는 아버지를 ab(아브)라고 부르고 일상에서는 abba(아바)라고 부르는데 이는 우리말의 아빠처럼 친근하게 부르는 명칭이라고 한다. 여기에 '지'라는 말만 붙이면 우리말의 아버지가 되니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자신의 아버지를 그려 전시한 모습 아버지는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자녀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다. 자녀에 대한 사랑이 결코 어머니보다 못지 않다. 본교에서는 이러한 아버지의 사랑을 다시금 되새겨보고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재확인하기 위해 '아버지 사랑전'을 열었다. 미술 수업시간을 이용해 학생들에게 아버지의 초상화를 그리게 한 것이다. 아버지의 초상화를 그리는 동안 학생들은 평소에는 느끼지 못했던 아버지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깨닫는 소중한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사랑전에 초상화을 거는 아이들과 관람객 옛날 중국에 아들
2007-06-20 15:45지난 10일 청주삼백리 회원들과 괴산군 청천면의 화양구곡을 답사하며 노론의 영수였던 우암 송시열의 발자취를 돌아봤다. 이날 회원들은 화양구곡에 있는 화양서원과 만동묘, 청천의 매봉산에 있는 우암의 묘, 묘의 지형과 연관이 있는 청천장을 돌아보며 우암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는 기회를 가졌다. 80이 넘는 일생을 살며 크든 작든, 좋든 나쁘든 항상 사건의 중심에 있어 조선왕조실록에 이름이 삼천 번 이상 나온다는 분이 우암 송시열이다. 또한 자신의 주장이 강했던 인물로 당대 최고의 유학자이자 정치가이고 문인이었다. 우암은 1607년(선조 40년) 11월 12일 충북 옥천군 이원면 구룡리의 외가에서 출생했다. 올해는 우암 탄신 400주년을 맞이하는 해라 다른 해보다 여러 가지로 뜻이 깊다. 푸른 물은 성낸 듯 말이 없구나/ 청산은 찡그린 듯 말이 없구나/ 조용히 자연의 뜻을 살피니/ 내 세파에 인연함을 싫어하노라 인조11년(1633년) 27살이 되던 해 시험관인 대제학 최명길로부터 '이제 중국의 도학은 우리 동방으로 왔다'는 칭찬을 들으며 생원시에 1등으로 합격한 후 여러 번 벼슬길에 나섰지만 항상 산천에 뜻이 있어 74세 되던 해에 모든 벼슬을 버리고 화양구곡에 은
2007-06-20 13:19유익한 정보, 참신한 비판, 더불어 발전이란 구호아래 올해로 36호 판을 발간하고 있는 우리학교 신문 '서령고학보'를 소개합니다. 우리 학교 신문은 학생 중심의 자율적인 신문을 지향하고 있답니다. 계획단계부터 아이디어 회의 및 최종 편집 단계에 이르기까지 학생 기자들이 제작에 직접 참여하고 있죠. 특히 신문의 일반적 특성이라고 할 중요 기사, 칼럼, 만평, 독자 참여 등을 분명하게 구분하여 지면별로 분류하여 반영하고 있습니다. 또한 일반적인 사실 전달보다는 의견과 관련된 기사도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학생과 교사가 함께 만들어 가는 신문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학교 신문답게 학교생활과 관련된 내용이 중심이지만 교양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내용을 담는 데에도 적극 노력하고 있습니다. 학생신문으로서 기성신문을 모방하기보다는 학생다운 순수함과 창의성이 잘 나타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고 있답니다. 이번에 발간한 '서령학보' 제36호의 구성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2007-06-20 08:44이란의 북서부 라시트(Rasht)까지 가서 이란의 알프스 마을 마슐레를 찾기로 했다. 세이오 사파리 정류장에서 오후 5시에 출발하는 버스에 올랐다. 테 헤란에서 라시트(Rasht)까지는 350㎞ 정도 된다. 그러나 알보르즈 산맥 일부를 넘어야 되니 시간은 생각보다 많이 걸린다. 한 7시간 정도 걸리는 적당한 거리이다. 테헤란에서부터 가즈빈(Qazvin)까지는 시원한 편도 3차선 고속도로다. 일직선 고속 도로 로 제한 속도만 없다면 성능이 괜찮은 자동차는 한 200㎞는 달리겠다. 땅이 넓으니 도로 하나 시원하다. 가즈빈에서 라시트 까지는 거의 산길이다. 산길이라 해도 그렇게 험한 산길이 아니다. 나즈막한 산길이다. 이 산길 옆으로 펼쳐진 평야가 장관이다. 이 평야는 땅이 무척이나 기름진 그야말로 흑토대이다. 어림잡아 250㎢(8억평)은 되겠다. 이란 어디서에서 벼농사를 지을까 하고 생각했는데 이곳 라시트를 오면서 이곳이 벼농사 곡창지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온 천지가 논이다. 정말로 넓다. 이렇게 끝없이 펼쳐진 벼농사 평야는 처음이다. 마침 가을 걷이가 끝난 모습이다. 전부가 기계화 벼농사 이고 그 수확량이 엄청나 쌀 값 또한 무척 싸다. 질 좋은 10㎏ 포
2007-06-19 21:47‘호국의 다리’로 불리는 ‘구 왜관철교’ 6.25를 앞두고 한번쯤 찾아가 보아야 하는 다리가 있다. 경북 칠곡군에 자리한 ‘호국의 다리’로 불리는 ‘구 왜관철교’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왜관읍 왜관리와 칠곡군 지산면을 연결하는 낙동강을 가로지르는 철교는 일본이 대륙침략을 목적으로 가설한 경부선 철도의 일부분이었다. 칠곡군의 관광홍보자료에 따르면 이 철교는 1901년에 착공되어 1905년 1월에 개통되었다고 한다. 철골 콘크리트조로 만들어진 이 다리는 길이가 469m였으며, 폭 4.5m, 높이 8m였다. 경부선 423㎞가 복선화되면서 1941년에 507m의 새로운 복선철교를 상류쪽에 가설되면서 이 철교는 인도교가 되었다. 6.25 전쟁이 일어나면서 왜관철교는 슬픈 운명을 맞이한다. 1950년 8월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 낙동강 저지선에 있던 다른 교량들과 함께 그만 폭파되고 만다. 피난민들이 밀려내려오는 가운데 다리가 폭파되어 민간인 희생자도 속출했다. 하지만 왜관이 북한군에게 넘어갈 경우 대구까지 함포 공격의 사정거리 안에 들어가기 때문에 필사적인 저항으로 막는다. 이후 북한군은 낙동강에다 모래 가마니를 깔아 전차 도하를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아군의…
2007-06-19 11:39가까이에 있는 송면이 아내의 고향이라 내가 남다르게 느끼는 여행지가 화양구곡이다. 지난 10일 청주삼백리 회원들과 괴산군 청천면에 있는 화양구곡으로 충북사랑 답사를 다녀왔다. 남들보다 추억거리가 많아서일까? 자주 들렸던 곳을 가는데도 다른 날과 달리 마음이 들떴다. 처가가 그곳을 떠난 게 벌써 20년이 넘었지만 화양구곡에 가면 옛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화양구곡으로 가면서 아이들이 어린시절 처가에 들릴 때마다 캠핑 오는 대학생들로 찜통이 된 직행버스 안에서 고생하던 일을 떠올렸다. 여름철이면 푸른 산과 맑은 물이 어우러져 피서지로 많이 알려진 화양구곡은 주변에 이름난 산과 계곡이 많다. 화양구곡은 화양동에 은거하던 우암 송시열이 중국의 무이구곡을 본받아 9곡에 경천벽, 운영담, 읍궁암, 금사담, 첨성대, 능운대, 와룡암, 학소대, 파천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화양구곡 입구에 있어 제일 먼저 만나는 곳이 제1곡 경천벽이다. 깎아지른 층암절벽이 마치 하늘을 떠받치듯 높이 솟아 있어 경천벽이라 한다. 곧게 뻗은 기암들을 보고 있노라면 자연의 신비를 느끼는데 여름철에는 무성한 나뭇잎이 층암절벽을 가린다. 주차장 전에 있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1곡이 있다는 것을
2007-06-18 11:55삼척항에서 죽서루로 가다보면 왼쪽 바닷가 방향으로 야트막한 육향산을 만난다. 이 산위에 강원도유형문화재 제38호인 척주동해비와 평수토찬비가 있다. 남인의 영수로 삼척 부사를 지낸 미수 허목이 비문을 지은 척주동해비(陟州東海碑)는 현종 2년(1661)에 건립되었다. 척주동해비는 '퇴조비(退潮碑)'라 불리듯이 조류의 피해를 막기 위해 정라진의 만리도에 건립되었다가 비가 풍랑으로 파손되자 1710년에 모사하여 현재의 위치인 육향산 산정에 세웠다. 삼척의 옛 지명인 척주는 폭풍과 해일피해가 잦아 고기잡이배가 부서지고 파도 때문에 고기잡이를 나갈 수 없었다. 당시 해일이 일면 30리 떨어진 관아 앞까지 물이 들어와 농사도 지을 수 없었고 어민들이 굶어 죽는 상황까지 직면하였다. 이때 신임 부사로 부임한 허목이 비석에 동해송(東海頌)이라는 문장을 새겨 바닷가에 세우자 물이 들어오지 않는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농민들이 논밭에 농사를 짓고 어민들이 고기잡이를 하게 되면서 척주동해비는 영험한 비석으로 알려졌다. 평수토찬비(平水土讚碑) 역시 허목이 임금의 은총과 수령인 자신의 치적을 글로 짓고 쓴 것이다. 목판에 새긴 48자를 읍사(邑司)에 보관해 오다가 240여년 후인 1
2007-06-17 08:01국립민속박물관은 끊임없는 새로운 기획전으로 늘 새로운 정보와 볼거리를 만들어 가고 있어서 생기가 넘친다. 우리나라 민속이 가장 잘 보존 되어 있는 제주는 민속박물관에서는 가장 귀한 민속의 보고인 셈이다. 사실 새마을 운동 이후 많은 민속자료들이 쓰레기로 처리되어 버린 뒤 이제는 찾기가 힘든 상태에서 그나마 옛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제주는 늘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해주고 있는 셈이다. 지난번에는 제주 해녀들의 삶을 조명한 해녀 사진전이 열렸는데, 이번에는 섬이 만든 그릇 이라는 주제 아래 [허벅과 제주 질그릇]을 모아서 특별전을 열고 있다. 이 행사는 국립민속박물관과 제주특별자치도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2007 제주민속문화의 해 사업의 하나로 추진되고 있으며, 이 특별전을 통해서 제주 사람들의 독특한 생활양식을 엿볼 수 있게 마련되었다. 이번 전시회를 통해서 독특한 자연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제주 사람들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의 모습을 짐작하게 될 것이다.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토기 문화와 그 이용, 용어들을 통해 제주의 고유성을 살펴볼 수 있도록 마련된 전시회이다. 물을 퍼 나르기 위한 물구덕과 허벅, 각종 질그릇의 이름들에게 우리가 이미 잊혀져…
2007-06-17 08:00추암해수욕장 맞은편 바닷가로 백사장과 정자가 보이는데 증산해수욕장과 해가사 터에 있는 '임해정'이다. 삼척시내에서 4km 거리의 증산해수욕장은 조용하고 아담하며 수심이 낮아 가족끼리 수영을 즐기기에 좋다. 60여 호의 작고 아늑한 증산마을은 일출로 유명한 추암의 촛대바위를 한눈에 감상할 수는 최적의 장소로 알려졌다. 증산해수욕장 바로 옆 해가사 터에 수로부인공원이 있다. 공원에 있는 작고 아담한 정자 임해정에 앉으면 푸른 바다와 추암의 촛대바위가 어우러지며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해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이 왜 다시 찾아오는지를 알게 한다. 수로부인전의 설화에 의하면 성덕왕 때에 강릉태수로 가던 순정공의 부인 수로의 자색과 용모가 절대가인이어서 깊은 산이나 큰 못을 지날 때 여러 번 신에게 잡히었다. 이곳에서도 용이 부인을 바다로 끌고 들어갔는데 한 노인이 나타나 '여러 사람의 입은 쇠도 녹인다'며 부인을 볼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공이 노인의 말대로 백성들에게 노래를 부르며 몽둥이로 언덕을 두드리게 하니 용이 바다에서 부인을 데리고 나왔다. 이때 부른 노래가 '해가'다. 정자 아래에 설화 '해가'를 바탕으로 직경 1.3m, 높이 1.67m, 무게 4톤의 드
2007-06-15 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