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처물의 거장으로 불리는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재해석한 ‘프랑켄슈타인’은 어떤 모습일까? 넷플릭스에서 1,600억 원을 투입한 영화 프랑켄슈타인이 11월 7일 공개 예정이니 곧 확인할 수 있다. 극장산업과는 척지고 있던 넷플릭스가 이례적으로 10월 22일 일부 극장에서 개봉하면서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프랑켄슈타인에 대한 극장 관객의 기대감을 충족시키기도 했다. 지난 9월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로 첫 내한하여, 프레젠테이션 부문에서 한국 관객을 최초로 만난 바 있다. GV에 참석한 관객 380명에게 일일이 사인을 해주는 퍼포먼스로 그의 내한을 고대해 온 팬들에게 잊지 못할 감동적인 순간을 선사했다. 모두 알다시피 영화 프랑켄슈타인은 1818년 출간된 메리 셸리의 소설이 원작이다. 정식 교육을 받지 못한 18세 소녀가 쓴 이 공포 소설은 당시 사회 정서상 익명으로 출간됐지만, 무분별한 과학기술 개발에 대한 비판부터 연구자의 윤리 문제, 창조자와 피조물 간의 관계, 어린 여성 작가라는 자전적 요소까지 투영되면서 대중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1931년 개정판에서 메리 셸리가 저자 본명을 밝히면서 평론가들의 혹평을 받았지만, 오늘날…
2025-11-05 10:00
윤정은의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는 김호연의 불편한 편의점, 황보름의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등과 함께 근래 유행하는 ‘힐링 소설’ 중 하나다. 소설은 주인공 ‘지은’이 ‘메리골드’라는 바닷가 마을에서 ‘마음 세탁소’를 운영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루고 있다. 주인공은 마음속 얼룩을 지울 수 있는 마법을 갖고 있다. 그래서 옷에서 얼룩을 빼듯 마음 세탁소에 찾아오는 사람들의 아픈 기억을 잊게 할 수 있다. 소설 등장인물들이 아픈 기억을 잊으면 마음의 평온을 얻는 것처럼 상당수 독자가 이 책을 읽으며 마음의 위안을 얻는 것 같다. 소설 제목에도 나오는 메리골드(marigold)는 팬지·페튜니아·베고니아·제라늄 등과 함께 도심을 장식하는 길거리꽃 중 하나다. 노란색 또는 황금색 잔물결 무늬 꽃잎이 겹겹이 펼쳐진 모양의 꽃으로, 봄부터 가을까지 꽃이 피고 독특한 향을 가진 것이 특징이다. 꽃 이름에 익숙지 않은 사람도 메리골드 사진을 보면 “아, 이게 그 꽃이야?”라고 할 정도로 길거리에 흔한 꽃이다.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 많은 꽃 중 왜 메리골드일까 궁금했는데 메리골드가 주인공의 ‘엄마가 좋아하던 꽃 이름과 같은 이름의 도시’여서 고른 동네라는 대목…
2025-11-05 10:00
프롤로그 _ 왜 여름, 왜 홋카이도인가 여름휴가 계획을 세우며 여러 곳을 고민했지만, 결국 홋카이도(Hokkaido, 北海道)를 선택했다. 일본의 여러 지역 중에서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는 거리감이 오히려 매력으로 다가왔다. 뜨거운 열기로 가득한 한국의 여름에서 잠시 벗어나, 조금은 다른 공기를 마시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흔히 홋카이도를 떠올릴 때 삿포로(Sapporo, 札幌)를 가장 먼저 생각한다. 삿포로 맥주, 삿포로 라멘, 겨울철 눈 축제가 유명한 바로 그 도시 말이다. 그러나 홋카이도는 삿포로 하나로는 결코 설명되지 않는다. 일본 전체 면적의 약 20%를 차지할 정도로 광활한 영토를 자랑하며 지리적으로는 혼슈(Honshu, 本州) 북단에서 훌쩍 떨어진 북쪽의 큰 섬이다. 바다와 산, 광활한 평야와 들판이 이어지며 일본 본토와는 사뭇 다른 풍경을 빚어낸다. 무엇보다 이곳에는 저마다의 개성을 지닌 도시들이 흩어져 있다. 신선한 해산물이 쏟아져 들어오는 항구 도시 오타루(Otaru, 小樽), 농업과 낙농업이 발달한 도카치(Tokachi, 十勝) 평야, 그리고 여름의 화려한 색채로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비에이(Biei, 美瑛)와 후라노(…
2025-11-05 10:00
핸리 오사와 태너의 The Banjo Lesson 핸리 오사와 태너(1859~1937)의 1893년 작품 The Banjo Lesson(밴조 수업)은 흑인 가족의 다정한 모습을 묘사한 장르화이다. 조용한 실내에 퍼지는 빛과 음악이 따뜻한 느낌을 주는 시간을 담고 있다. 목사인 아버지와 노예였던 어머니의 가정환경으로 핸리 오사와 태너(Hanry Osawa Tanner, 1859~1937)는 흑인의 삶을 그렸다. 그의 작품은 세대 간 사랑을 담고 있어서 당시 흑인 이미지를 희화화하던 경향을 과감히 극복한 것이다. 그는 펜실베이니아 미술 아카데미(PFA)에서 토머스 이킨스에게 배웠고, 1891년 파리로 건너가 아카데미 줄리앙에서 장폴 로랑에게 사사 받은 후, 프랑스에서 활동했다. 미국의 사실주의와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풍의 영향을 받았다. 그 외 그의 대표 작품은 프랑스 정부가 매입하여 오르세 미술관에서 소장하는 라자로의 부활과 백악관의 소장품 중 최초의 흑인 작가 작품으로 샌드 듄즈, 애틀랜틱 시티가 있다. 흑인 음악과 깊게 연결된 밴조는 원래 카리브와 북미 식민지의 아프리카 디아스포라 공동체가 만든 악기에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19세기 미국에서는 블랙페이…
2025-11-05 10:00
우리나라에서 내 집 마련의 의미 한국 사회에서의 ‘내 집 마련’은 단순히 거주 공간을 확보하는 차원을 넘어선다. 집은 일상을 이어가는 삶의 기반이자 자산을 축적하는 수단이며, 동시에 사회적 지위를 상징하는 표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집은 실거주의 안정성을 보장한다. 전세나 월세로 거주할 때는 계약 만료라는 불확실성이 따라붙고, 아이 학군이나 생활권을 유지하는 데에도 늘 제약이 생긴다. 반대로 자기 집을 가진 순간, 최소한 거주만큼은 안정이 확보되고 삶의 흐름이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이 안정감은 가족의 생활을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토대가 된다. 그러나 집은 단지 편안한 거주의 수단으로만 머물지 않는다. 한국에서 부동산은 전통적으로 가장 확실한 자산 축적의 수단으로 인식되어 왔다. 장기적으로는 가격이 오른다는 믿음이 강하게 작동하고, 실제로 부동산 보유 여부가 세대 간 자산 격차를 크게 갈라놓았다. 내 집을 갖는다는 것은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노후와 미래를 위한 필수적인 투자로 받아들여진다. 여기에 사회적 가치까지 덧붙여진다. 집을 가졌다는 사실은 사회적으로 안정된 사람이라는 신호로 받아들여지기도 하고, 결혼을 앞둔 청년 세대에게는 중요한 선결…
2025-10-02 10:00
어쩌다 리더가 된 당신에게 (최재천 지음, 창비 펴냄, 100쪽, 1만 3,000원) 학교폭력, 경계선 지능, 발달장애, 우울증, 은둔형 외톨이 등 다양한 이유로 사회와 학교에 적응이 힘든 아이들을 어떻게 도울 것인지를 다룬다. 저자는 현장 경험을 토대로 노력할 수 없는 이들에 대한 섣부른 응원이나 무분별한 위로는 오히려 역효과를 낸다고 지적한다. 그들 개개인이 처한 복잡한 환경과 심리 구조를 이해하고 의욕과 동기를 끌어낼 구체적 방식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지리 (최준영 지음, 교보문고 펴냄, 304쪽, 1만 8,800원) ‘경제·주택·에너지·인구·기후’ 5개 키워드를 중심으로 지리적 조건이 국가의 운명을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직관적인 데이터와 스토리텔링으로 소개한다. ‘경제·주택’ 편에서는 오스트리아의 주택 가격 안정 비결과 최저임금·퇴직금·상속세가 없는 스웨덴의 사례 등을, ‘에너지’ 편에서는 수소·셰일·희토류 등 핵심 자원을 둘러싼 국제 관계를, ‘인구·기후’ 편에서는 인도·카자흐스탄·플로리다의 인구정책과 중국·호주의 기후 위기 사례를 살핀다. 머리 좋은 아이는 이렇게 키웁니다 (에일린 케네디 무어·마크 S. 뢰벤탈 지음,…
2025-10-02 10:00
어쩔수가없다에서 전 세계가 공감한 ‘해고’ 사태 9월 24일 개봉한 박찬욱 감독의 열두 번째 장편영화 어쩔수가없다는 국내 개봉 이전부터 전 세계 영화제의 러브콜을 받으며 주목받았다. 먼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영화제이자 칸국제영화제·베를린국제영화제와 함께 3대 영화제로 꼽히는 제82회 베니스국제영화제(8.27~9.6) 경쟁 부문에 공식 초청돼 월드 프리미어로 상영됐다. 박찬욱 감독이 20년 전 원작소설(액스,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 저)을 읽고 영화로 만들 기획을 했다. 이번에 완성한 어쩔수가없다가 아쉽게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2005년 친절한 금자씨 이후 베니스를 꼭 20년 만에 다시 찾은 박찬욱 감독은 “내가 만든 어떤 영화보다 관객 반응이 좋아서 이미 큰 상을 받은 기분”이라고 담담한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9월 4일부터 14일까지 열린 제50회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는 주목할 만한 화제작을 소개하는 부문인 갈라 프레젠테이션 섹션에 초청됐고, 9월 26일부터 10월 13일까지 열리는 제63회 뉴욕영화제의 메인 슬레이트(Main Slate)에 초청됐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2019)이 초청됐던 가장 주요한 부문이다. 9월 17일부터 26일까지 개최된 제…
2025-10-02 10:00
정지아 장편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고향에 내려와 빨치산 출신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며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을 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조문 온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간 몰랐던 아버지의 삶을 알아가는 내용이다. 전직 빨치산이자 ‘순수한 사회주의자’인 아버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늘 ‘혁명을 목전에 둔 혁명가처럼 진지’한 태도로 살아갔다. 겨울 어느 날 소쿠리를 팔러 왔다가 나갈 때를 놓친 방물장수 여인을 재워주려고 데려오자, 어머니는 “베룩(벼룩)이라도 옮으면 워쩔라고”라고 타박했다. 어머니도 빨치산 출신이었다. 그러자 아버지는 “자네, 지리산서 멋을 위해 목숨을 걸었능가? 민중을 위해서 아니었능가? 저이가 바로 자네가 목숨 걸고 지킬라 했던 민중이여, 민중!”이라고 반박했다. 이런 일화도 있다. 어머니는 당신 딸은 절대 담배 태우고 그런 애가 아니라고 계속 항변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넘의 딸이 담배 피우먼 못된 년이고, 내 딸이 담배 피우먼 호기심이여? 그거이 바로 소시민성의 본질이네! 소시민성 한나 극복 못헌 사램이 무신 헥명을 하겠다는 것이여!”라고 했다. 화자는 ‘환갑 넘은 빨갱이들이 자본주의 남한에서 무슨 혁명을 하겠다고 극복 운…
2025-10-02 10:00
프롤로그 다채로운 매력을 가진 네팔은 여행객들 사이에서 ‘한 번도 안 가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가본 사람은 없다’는 평을 듣는 곳이다. 나는 대학 시절 네팔에 세 번 방문했고, 그중 한 번은 8개월 넘게 머무르며 도시·산촌·평야는 물론, 깊은 계곡까지 다양한 네팔의 지형을 느끼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주민들과 어울려 지내는 동안 네팔 사람들의 순한 성품과 향신료 가득한 음식, 그리고 히말라야의 풍경에 자연스럽게 빠져들었다. 아주 오랜만에, 10년이 넘는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네팔에 가게 되었다. 동행인은 네팔이 처음이었기에 대표적인 여행지인 카트만두와 포카라를 중심으로 일정을 계획하였다. 1월의 네팔 여행은 어디로 가면 좋을까? 따뜻한데 추운 곳? 수공예 장인들의 나라에서 쇼핑은 못 참지! 네팔은 우리나라보다 낮은 위도에 위치하여 카트만두는 서울에 비해 낮 기온은 약 15℃ 정도 높고, 밤 기온 역시 다소 온화하다. 대체로 한국 초봄 날씨보다 조금 더 따뜻하다고 할 수 있다. 출국 당시 기모 맨투맨과 패딩 점퍼를 입은 채로 트리부반 공항에 도착하면 후텁지근함을 느낄 수 있다. 나는 경량패딩으로 갈아입은 뒤 여행을 시작했다. 그러나 낮 기온만 고려해 인…
2025-10-02 10:00
프롤로그 어릴 때 쓰던 학용품 중 ‘루니툰’이라는 캐릭터가 그려진 것들이 있었다. 토끼·병아리 캐릭터와 함께 많이 등장하는 캐릭터 중 ‘짓궂은 표정을 하면서 늘 화가 나 있는 모습의, 곰 같기도 하고 강아지 같기도 한, 알쏭달쏭한 캐릭터’가 있었다. 바로 ‘태즈(Taz)’이다. 태즈는 곰도 강아지도 아닌, 오스트레일리아에 사는 ‘태즈메이니아데빌’이다. 2024년 1월, 오스트레일리아 여행은 ‘태즈를 찾아가는’ 여행이었다. 여러 사람들이 주로 여행하는 시드니·멜버른·골드코스트 등이 아닌, 루니툰 태즈의 모델이 사는 오스트레일리아 본토의 남쪽에 있는 섬 ‘태즈메이니아’ 일정을 여행 중 가장 많이 할애했다. 호바트에서 가장 높은 산, 웰링턴산? kunanyi? 태즈메이니아는 섬의 명칭이기도 하고, 오스트레일리아 연방을 구성하는 주(state)의 명칭이기도 하다. 태즈메이니아주의 가장 큰 도시이자 주도는 호바트(Hobart)이다. 시드니 다음으로 오래된 도시이지만, 인구는 약 20만 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유럽계 이주민들은 남반구에 새롭게 발견된 거대한 땅인 오스트레일리아에 ‘새로운 영국’을 만들고 싶어 했고, 그 결과 호바트 도심은 19세기 어느 영국 도시…
2025-09-08 1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