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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학생에게 할 수 있는 최대의 징계는 퇴학이다. 퇴학은 의무교육과정인 초·중학교는 허용되지 않고 고등학교에서만 허용된다. 하지만 퇴학처분을 받은 학생이 소송을 제기하면 법원은 “학생의 신분관계를 소멸시키는 퇴학처분은 징계의 종류 중 가장 가혹한 처분으로서 학생의 학습권 및 직업선택의 가능성을 제한할 수 있는 중대한 처분이다. 따라서 객관적으로 학생 신분을 유지하게 하는 것이 교육상 필요와 학내질서 유지라는 징계목적에 비추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합리하다고 인정될 수 있을 정도로 중한 징계 사유가 있을 뿐만 아니라 학생이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행실을 고칠 가능성이 없어 다른 징계 수단으로는 징계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경우에 한하여 예외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라고 판시하면서 재량권 일탈·남용으로 대부분 취소를 한다. 이에 학교가 학생에게 내릴 수 있는 가장 높은 징계는 현실적으로는 전학이다.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제17조 제1항 제8호,「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제18조 제1항 제6호에는 처분의 이름이 ‘전학’이라고 규정되어 있다. 그런데 통상적으로 학생이나 학부모는 징계로 받는 전학을 ‘강제 전학’, ‘강전’이라고 부른다. 징계 전학이 아닌 일반적인 전학은 거주지 이전을 할 때 학생 측이 관련서류(등본 등)를 제출하면서 신청하여 절차가 진행된다. 징계 전학이 도입되고 나서 초창기에는 징계 전학이 이행되는 과정에서 학생이 등본을 제출하고 서류에 서명을 해야 배정이 되고 전학이 이루어졌다. 이러다 보니 징계 전학을 거부하는 학생 측에서는 등본을 제출하지 않거나 서명을 하지 않아 전학이 집행되지 않는 사례가 발생했다. 이에 징계로 인한 전학은 강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등본 등 별도 서류를 받지 말고 자동으로 학적을 옮기라는 교육부 지침이 나왔고, 이것을 언론에서 ‘강제 전학’이라고 표현하면서 징계 전학은 통상적으로 ‘강제 전학’으로 불리게 됐다. 1. 징계 전학의 형식적 요건 징계 전학을 할 수 있는 형식적(법적인) 요건은 학교폭력은「학교폭력 가해학생 조치별 적용 세부기준 고시」별표에 따른 누적 점수가 16점 이상이 되거나 심의위원회 과반수가 찬성하는 경우이다. 위 별표는 ①학교폭력의 심각성, ②학교폭력의 지속성, ③학교폭력의 고성의, ④가해학생의 반성 정도, ⑤화해 정도를 0점부터 4점까지 점수를 주게 되어 있다. 누적 점수는 최대 20점까지인데 16점 이상이면 전학 또는 퇴학처분이 가능하다. 또는 점수는 16점이 되지 않더라도 심의원회회가 선도 가능성 및 피해학생 보호를 고려하여 출석위원 과반수가 찬성하면 전학이 가능하다. 교육활동 침해행위(통상 ‘교권침해’라고 함)로 인한 징계 전학은 요건이 조금 복잡하다. 「교육활동 침해행위 고시」별표에 따른 누적 점수가 17점 이상이면 전학이 가능한데, 피해교원이 임신하거나 장애가 있는 경우에는 1단계 가중하여 전학을 할 수 있다. 또한 전학은 교육활동 침해행위로 출석정지 또는 학급교체 처분을 받은 학생이 재발하는 경우에만 가능한데, 예외적으로 상해와 폭행, 성폭력 범죄의 경우에는 최초 발생한 사안이라도 전학을 할 수 있다. 2. 징계 전학의 실질적 요건 징계 전학이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법에서 정한 요건 이외에 불가피한 사유가 인정되어야 한다. 불가피한 사유는 ①교육환경 변화 필요성, ② 피해학생(교원) 보호를 위해 불가피한 경우이다. 교육환경 변화 필요성은 학교가 해당 학생을 선도하기 위하여 모든 노력을 다하였으나 학생이 개전의 가능성이 없는 경우를 말한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제31조 제2항은 ‘학교의장은 제1항의 규정에 의한 징계를 할 때에는 학생의 인격이 존중되는 교육적인 방법으로 하여야 하며, 그 사유의 경중에 따라 징계의 종류를 단계별로 적용하여 학생에게 개전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라는 규정이 있다. 이는 학교가 처음부터 센 징계를 하지 말고 약한 징계를 하여 개전의 기회를 주라는 의미이다. 「학교폭력예방법」이나 「교육활동보호법」에는 징계를 단계적으로 적용하라는 위와 같은 명시적인 규정은 없으나 징계는 교육적인 목적 즉, 선도를 위하여 하는 것이므로 단계적 징계는 학생징계의 대원칙이다. 따라서 학교가 학생을 선도하고 지도하기 위하여 단계적 징계를 포함한 모든 방법을 강구하였으나, 학생 선도가 되지 않으면 그때는 징계 전학이 정당화될 수 있다. 하지만 학교가 문제학생을 지도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손쉽게 다른 학교로 보내려고 징계 전학을 한다면 이는 선도가 아닌 ‘폭탄 돌리기’이므로 재량권 일탈·남용으로 취소될 수 있다. 두 번째 피해학생(교원) 보호를 위해 불가피한 경우는 학교폭력 또는 교육활동 침해의 정도가 매우 심하고, 서로 화해가 되지 않아 피해학생(피해교원)의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위해서는 가해학생의 전학이 불가피한 경우를 말한다. 이는 단순히 피해학생(피해교원)이 함께 있기 싫다거나, 화해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는 인정되기 어렵고, 침해의 정도가 매우 심해 누가 보더라도 가해자가 옮기는 것이 타당하다고 인정되어야 한다. 단순히 피해학생이나 피해교원이 원한다고 하여 경미한 수준의 학교폭력 또는 교육활동 침해행위인데 전학을 한다면 이 역시 소송이 제기됐을 때 재량권 일탈·남용으로 취소될 수 있다. 3. 징계 전학 판례 가. 수원지방법원 2019구합69842 전학처분 등 취소 사실관계 ● 2019. 6. 10. 월요일 점심시간 13시경 원고와 피해학생이 학교 본관과 별관 사이 주차장에서 이야기하다가 원고가 피해학생에게 겁을 주면서 벽으로 밀쳤고 피해학생의 뺨을 때린 듯한 모습을 보임. ● 이를 보고 주변에 있던 학생들이 달려와 둘을 말렸고 학교 3층 매점 쪽 창가에 있던 학생들과 본교 교사가 이를 목격하여 두 학생을 학생인권안전부로 가게 함. ● 피해학생의 얼굴 왼쪽 구레나룻 쪽에 0.5cm 정도 긁힌 상처와 목덜미에 붉은 자국이 군데군데 부어올라 있는 것이 발견되었고 사안 조사를 하였으나 서로 장난이었을 뿐 때리거나 맞지 않았다고 끝까지 진술함. ● 하지만 CCTV 영상 확인 결과 원고가 세 차례 정도 피해학생을 때리는 장면이 포착되었고, 관련 학생 모두 지속적인 거짓말을 한 것이 드러남에 따라 학교폭력임이 인정되어 전학 조치를 내리게 됨. 판단 다음과 같은 사정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처분 중 전학처분은 이를 통하여 달성하고자 하는 피해학생의 보호, 가해학생의 선도 및 교육 등의 공익 목적에 비하여 원고의 불이익이 지나치게 과도하여 재량권을 일탈・남용하였다고 봄이 타당하므로, 이 부분 전학처분은 위법하여 취소되어야 한다. ① 원고는 피해학생과 초등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사이로 이 사건 당시 화를 주체하지 못한 채 우발적으로 피해학생을 때린 측면이 커 보인다. 원고가 피해학생이나 다른 학생들에게 계속적·반복적으로 학교폭력이나 괴롭힘을 가하였음을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고, 피해학생 역시 그동안 원고로부터 학교폭력을 당한 적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② 원고와 피해학생은 사건 발생 당일 서로 화해하였고, 피해학생과 그 어머니는 지금까지도 원고에 대하여 악감정이 없음을 강조하며 원고에 대한 선처를 탄원하고 있다. 이러한 피해학생과 그 어머니의 의사는 진정한 것으로 보인다. ③ 세부기준 고시 [별표]에 따라 이 사건 학교폭력의 심각성과 고의성을 ‘높음’ 또는 ‘매우 높음’으로 판정하고, 전학처분 당시의 원고의 반성 정도 역시 ‘없음’ 또는 ‘낮음’으로 판정한다고 하더라도 앞서 본 바와 같이 학교폭력의 지속성이 인정되지 않고 당사자 사이의 화해 역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위 [별표]에 따른 원고에 대한 판정 점수 합계가 전학처분의 기준이 되는 16점 이상에 이른다고 보기 어렵다(이 사건 자치위원회는 구체적인 판정 점수 부여 내역과 그 합산 점수를 밝히지는 않았다). 또한 원고가 평소 학교폭력이나 그 밖에 비행을 저지른 적이 있는 등 선도 가능성이 낮다고 볼만한 사정을 찾아볼 수 없고, 원고와 피해학생이 이미 화해한 상태였다는 점에서 위[별표]의 부가적 판단요소에 따라 선도 가능성 및 피해학생의 보호를 고려하여 원고에 대한 조치를 가중할 필요가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나. 서울행정법원 2017구합1803 전학처분취소 사실관계 ① A, B는 2016. 9. 20. 점심시간에 교실에서 피해학생의 어깨 부위를 주먹으로 폭행하였고, 그중 A가 피해학생을 가격하는 장면을 C가 촬영하여 D, E에게 카카오톡으로 전송하였으며, D는 그 후 다른 곳에 있는 친구 2명에게 위 동영상을 전송함. ② 원고는 2016. 9. 22. 남산과학관 학급체험활동 중 점심시간에 피해학생의 머리에 라면을 뿌리고 폭언과 욕설을 동반하여 주먹과 발로 폭행하였고, 이 상황을 C가 중계하듯 촬영하여 E에게 카카오톡으로 전송함. ③ 위 학교폭력을 행사하였다는 이유로 원고 등 5인에 대하여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가 개최되었고, 원고는 전학처분을 받음 판단 이 사건 처분은 이를 통하여 달성하고자 하는 피해학생의 보호, 가해학생의 선도 및 교육 등 공익 목적에 비하여 원고의 불이익이 지나치게 과도하여 재량권의 범위를 일탈하거나 남용한 것이라고 봄이 상당하다. 따라서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므로 원고의 주장은 이유 있다. ① 교육전문가인 학교의 장이 교육목적과 내부질서 유지를 위하여 징계조치한 것은 최대한 존중되어야 하나, 징계사유와 징계조치 사이에 사회통념상 허용되는 적절한 균형이 요구되므로 피고의 징계조치도 그 한도에서 재량권의 한계가 있다. 피고는 피해학생과 가해학생 모두를 지도 · 교육하는 지위에 있으므로, 피해학생을 보호하여 더 이상의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할 의무가 있을 뿐 아니라 가해학생을 선도 · 교육하여 건전한 사회구성원으로 육성할 의무가 있으므로, 원고와 같은 가해학생에 대해서도 인격적으로 성숙해 가는 과정에 있는 학생임을 감안하여 최대한 교육적인 방법으로 선도할 책무가 있다. ② 원고가 행한 학교폭력과 피해학생이 입은 신체적 · 정신적 피해가 결코 가볍다고 할 수 없으나, 당시 원고가 아직 사리분별이 미숙한 중학교 1학년 학생이었는바 원고가 교정이 불가능한 학생이라고 단정하기 어렵고, 피고가 적절한 방법으로 원고를 교육하고 선도해 나간다면 원고가 성숙한 인격을 갖춘 학생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 ③ 원고도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반성하고 있고, 원고의 부모도 원고를 잘 지도하겠다고 다짐하고 있으며, 피해학생의 부모도 원고가 피해학생과 친구로서 학교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다. ④ 이 사건 처분은 「학교폭력예방법」 제17조 제1항이 가해학생에 대한 조치로 규정하고 있는 9가지 조치 중 두 번째로 무거운 조치로서 의무교육과정에서는 가장 무거운 조치인데, 위 조항은 그보다 가벼운 조치로 제7호의 학급교체 등을 규정하고 있으며, 위와 같은 조치를 하더라도 가해학생인 원고를 선도하고 교육하고자 하는 「학교폭력예방법」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 충분한 것으로 보이고, 실제로 원고는 출석정지 5일의 조치를 받았고 그에 따라 「학교폭력예방법」 제17조 제3항 소정의 교육감이 정한 기관에서 특별교육 40시간도 이수하였다. ⑤ 학교폭력 가해학생 조치별 적용 세부기준 고시에 의한 판단 점수에 관하여 원고는 18점, A는 17점, B는 19점이었는데, 원고와 위 점수가 비슷하거나 원고보다 위 점수가 더 높은 A, B는 최초 이 사건 자치위원회에서 전학 조치를 받았다가 재심절차에서 학급교체 조치로 감경되었는바, A, B와의 조치상의 형평이 고려되어야 한다. 다. 서울행정법원 2015구합76957 전학처분취소청구의 소 사실관계 ① 원고는 A, B와 함께 2015. 7. 4. 20:45경 ○○고등학교 2층 식당 앞 파라솔에 앉아 있었고, 피해학생은 그 옆에서 줄넘기를 하고 있었다. 피해학생이 자신들 옆에서 줄넘기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원고는 ‘줄넘기 잘한다’며 비꼬듯 말했고, 이에 피해학생은 원고에게 ‘왜 지랄이야. 돼지새끼’라고 욕설을 하였다. 그 후 원고가 피해학생의 팔을 붙잡자 피해학생이 팔을 뿌리치는 과정에서 서로 넘어졌고, 원고가 넘어진 피해학생의 몸 위로 올라가 주먹으로 피해학생의 얼굴을 폭행하여 피해학생에게 3주간의 치료가 필요한 폐쇄성 비골 골절, 기타 머리 부분의 열린 상처 등을 가하였다. ② 주위에 있던 학생의 신고로 경찰이 현장에 출동하였고, 원고와 피해학생은 경찰에서 조사를 받았다. 원고 측은 피해학생 측과 합의를 시도했으나 잘 되지 않자 피해학생을 모욕・상해 등의 혐의로 고소하였다. ③ 서울동부지방검찰청은 2015. 9. 30. 피해학생이 ‘양손으로 원고를 밀어 바닥으로 넘어뜨려 2주간의 치료가 필요한 좌측 슬관절부 타박상 및 열상 등을 가하였다’는 혐의사실에 대하여 증거불충분하여 혐의가 없다고 판단하였으나, “왜 지랄이야, 돼지새끼”라고 욕설하여 원고를 공연히 모욕하였다는 피의사실은 인정된다고 판단하여 기소유예처분을 하였고, 원고가 피해학생에게 상해를 가하였다는 피의사실에 대하여 서울가정법원에 소년보호사건으로 송치하였다. ④ 이후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가 개최되어 원고에게 전학처분이 내려졌다. 판단 다음의 사정들을 종합하여 보면, 원고가 주장하는 사정만으로 이 사건 처분이 원고에게 지나치게 가혹하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원고의 이 부분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① 피해학생의 보호, 가해학생의 선도・교육 및 피해학생과 가해학생 간의 분쟁조정을 통하여 학생의 인권을 보호하고 학생을 건전한 사회구성원으로 육성하려는 「학교폭력예방법」의 입법취지 등을 고려할 때 학교폭력에 대해서는 단호하고 엄정한 대처가 불가피하다. ② 이 사건 학교폭력은 줄넘기를 하고 있던 피해학생에게 원고가 시비를 건 것이 발단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말싸움에 그치지 않고 폭력으로 나아갔으며, 쓰러져 있는 피해학생의 얼굴을 발로 가격하여 피해학생의 코뼈가 부러지고, 얼굴이 찢어져 흉터가 남게 되는 중한 결과를 낳았다. 그럼에도 원고와 원고의 부모는 피해자에게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거나 원만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등 반성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 아니라 목격학생에게 유리한 진술을 부탁하고 피해자를 고소하는 등 현명하지 못한 비교육적 · 감정적 대처로 사태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③ 더욱이 원고는 이 사건 학교폭력 직전에도 체육관 기물을 파손하는 등 폭력적인 행동을 하였다가 선도위원회로부터 사회봉사 5일의 처분을 받아 그 처분이행이 예정된 상태였음에도 근신하지 않고 이 사건 학교폭력을 일으켰다. ④ 이 사건 학교폭력 이후에도 원고와 피해자 사이에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서로 간의 감정의 골이 깊어져 있는 상태이고, ○○고등학교의 건물구조 상 같은 학년의 교실이 한 층에 배치되어 있어 원고와 피해자를 격리하지 않을 경우 또 다른 불상사가 생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전학 조치는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징계 전학은 문제학생을 다른 학교로 보냄으로써 본교의 내부질서 유지, 면학분위기 조성, 엄격한 생활지도를 위한 손쉬운 수단이다. 하지만 해당 학생을 받는 학교는 전혀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며, 새로운 학교에서 조금이라도 문제를 일으키면 다시 전학이 반복되는 폐단을 낳는다. 징계 전학은 결국 학교 전체로 볼 때는 제로섬 게임이며 대증적 효과만 있을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따라서 학교는 학생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책임지고 선도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1, 징계 전학은 최후의 수단으로 불기피한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활용되어야 한다. 징계 전학이 ‘전가의 보도’처럼 남발된다면 결국 그 피해는 학교에 돌아갈 것이다.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모든 사람이 같아 보이지만 남자와 여자, 어른과 아이는 다르다. 동양인과 서양인은 다르고, 부자와 빈자의 삶은 디킨스의 표현처럼 믿을 수 없이 다르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윤리적 정초에도 흑인과 백인의 갈등은 주기적으로 반복된다. COVID-19 시대를 맞아 21세기 경제의 패러다임으로 간주되었던 아웃소싱, 공유경제, 경제블록 등의 사회체제 대신 각자도생의 시대가 다시 열린 것처럼 보인다. 온라인 시대를 맞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더 단절되는 것처럼 보이고, 서로를 이해하기에 물리적 공간 자체가 부족해지는 인상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의 교육은 어떻게 될 것인가. 서로를 헤아리고 이해하는 능력 없이 과연 제대로 된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온라인 수업이 정보전달 수준을 넘어서 진정한 교육이 되려면 무엇을 추구해야 할 것인가. 인간의 보편적 감정인 ‘사랑’을 표현한 여류시인, 사포 공감(sympathein)은 같은 것을 겪고 느낀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서로가 온전히 같은 것을 겪을 수는 없다. 남자와 여자는 인간이라는 종의 측면에서는 동일하지만, 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상이하다. 그런 면에서 남자는 온전히 여자를 이해할 수 없고, 여자는 남자를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남자가 여자보다 여자마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여자가 남자보다 더 사내다움을 헤아릴 수 있다. 사포(Sappho)는 여류 시인이다. 여성들의 사회적 역할이 제한되어 있던 시대에 여성의 작품이 남아있는 것은 당대부터 대단한 재능을 인정받았다는 뜻이다. 사포는 사랑을 주제로 많은 시를 남겼다. 사랑의 감정은 누구에게나 보편적이다. 언제 어느 때나 그의 시를 읽더라도 어색하지 않다. 산속 떡갈나무를 휘몰아치는 / 폭풍처럼 사랑은 / 내 마음을 흔들어 놓네. - 사포, 사랑의 폭풍 사포의 감정에 가슴이 울리는 경험을 부정하는 것은 어색하다. 남자라고 해서 여자의 시를 읽지 못하는 것은 아니고, 여자라 해서 남자의 노래를 즐기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사랑의 감정은 남자의 내면에는 여성성이 있고 여자의 내면에는 남성성이 있다. 사랑의 마음을 표현하는데 남자가 적극적이고 여자가 소극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남자가 여자가 되고, 여자가 남자가 된다. 그런 면에서 보면 사랑을 표현하는 데 생물학적 성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때 나는 아름다운 처녀를 보며 말했지. 네가 늙으면 / 우리 젊어 함께 지낸 그 화려했던 많은 날들을 / 기억할 수 있을까? (중략) - 사포, 이별 사포는 레스보스(Lesbos)섬에서 살았고, 동성 여인들을 사랑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람과 사람 간의 사랑이 성에 따라 달라질 것처럼 느껴지지만, 본질은 다르지 않음을 사포는 보여준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겪어봐야만 아는 것은 아니다. 대단한 통찰력과 지혜가 드러나기도 하고, 아이들의 무심함이 어른들의 복잡한 생각을 넘어서기도 한다. (중략) 키프리스여, / 고통의 늪에 빠진 저를 보시고 구해줄 수 있다면 / 제게 말하십시오. 망설이지 말고. 제가 사랑을 위해 인내할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 사포, 아프로디테의 송가 사포는 서정의 방식으로 가장 높은 수준의 지혜를 보여준다. 그것은 철학의 형태와는 거리가 멀다. 칼카스나 테이레시아스와 같은 예언자의 권위에도 의존하지 않는다. 사포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사랑의 힘으로 모든 사람에게 희망을 전한다. 사포의 시는 단순히 동성 간의 사랑을 그린 것으로 치부될 것은 아니다. 시인의 재주는 읽는 사람이 자신의 내면에 숨어있는 감정을 끄집어내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데 있다. 플라톤이 사포를 10번째 뮤즈라고 말하는 것은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촌철살인의 한방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그려낸 아르킬로코스 사포가 사랑의 감정을 노래한다면, 아르킬로코스는 촌철살인의 한방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그려낸다. 평범한 군인이자 시인이었던 아르킬로코스는 귀족들의 세계관을 조롱하고, 자신에게 파혼의 모욕을 줬던 귀족 리캄베스를 시를 써서 복수한다. 아르킬로코스에게는 호메로스 헤시오도스가 보여줬던 영웅 중심의 세계관도 보이지 않는다. (중략) 잘 가져가라 해. / 다시 더 좋은 것을 구하면 되지 뭐. - 아르킬로코스, 방패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전투에서 등을 돌리고 도망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로 여겨진다. 스파르타의 어머니들이 전투를 떠나는 아들들에게 ‘차라리 방패에 누워서 돌아오라’고 말했던 것은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아르킬로코스는 고대인들 역시 자신들의 목숨을 소중히 생각했음을 보여준다. 고대인들의 모습이 근대인들과 의외로 다르지 않았음을 느끼게 한다. 죽고 나면, 어떤 사람도 / 주변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칭송을 얻지 못한다. 우리 모두는 살아 있는 동안 / 살아있는 다른 사람들과 호의를 주고받을 뿐이다. 죽은 자는 가장 나쁜 것을 받을 뿐이다. - 아르킬로코스, 죽음 이후 명예는 기본적으로 평판(doxa)이다. 그 평판은 평판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대대로 전승해서 내려주어야 하는 것이니, 실제로 큰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다. 당연하게 이 평판은 사람들이 공통의 가치관을 지속적으로 전승해야 유지된다. 하지만 그런 일이 쉽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늘 그렇듯이 평판은 내가 어떤 삶을 사느냐와는 별개로 다른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인간의 삶에서 유일하게 가능한 것은 내 마음과 감정을 컨트롤하는 것일 뿐이다. 오, 가슴이여, 나의 가슴이여, 감당할 수 없는 불행으로 심하게 상처 입었구나. 어서 일어나 너의 적들을 똑바로 보고 싸워라. 꿋꿋하게 서서 너를 둘러싼 그들을 맹렬하게 쫓아 보내라. 승리한다 해도 너무 드러내놓고 자랑하지 말고 패배한다 해도 집안에 틀어박혀 비탄에 빠지지 마라. 행운에서 얻는 기쁨, 고통에서 얻는 슬픔에 중용을 지켜라. - 아르킬로코스, 중용 인간의 삶에서 과연 중요하다고 여길 만한 것은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보면 그렇게 많지 않다. 부와 명예는 대표적인 기준이 되지만, 그것 또한 삶에서 결정적인 것은 아니다. 아르킬로코스는 생존을 제일 중요한 것으로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시를 봐서는 또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 많은 사람은 무엇을 목표로 살고 있는가. 그 판단의 기준은 무엇인가? 무엇을 가장 훌륭한 교육으로 삼아야 하는가.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우리는 쉽게 말하기 어렵다. 사람의 태도는 그가 무엇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르지. - 아르킬로코스, 시선 금이 넘치는 기게스 왕의 인생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네. 신이 가진 능력을 부러워하지도 않고 / 왕이 가진 위대함을 열망하지도 않네. 그 모든 것들은 나의 시야 바깥 멀리 있네. - 아르킬로코스, 나의 관심 부와 명예가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내가 부와 명예에 연연하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더 불행하게 만든다. 외적조건이 내 삶과 무관하다는 뜻이 아니다. 외적조건은 분명 내 삶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준다. 하지만 외적조건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또 다른 불행을 낳는다. 아르킬로코스의 호기로움은 돈이나 명예를 부러워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내가 나 자신의 삶에 대해 최소한의 기준과 원칙, 그리고 애정과 자존감을 가지고 있어야 함을 시사한다. 코로나 시대를 맞아서 온라인에 의존하는 교육환경의 변화는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대면수업으로의 복귀를 원하는 교사들과는 달리 학생들은 훨씬 더 빠르게 온라인에 의존하고, 오프라인의 변화를 불편하게 생각하는 모습도 감지된다. 여러 이유 때문에 교사와 학생의 접점이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서정적 감성을 통해 우리는 심리적 거리두기를 극복하고 같은 길을 함께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온라인 매체가 교육공간의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는 데 기여한다면, 서정시는 교육공간의 심리적 거리를 회복하는 데 유용할 것이다.
노아의 스마트폰 (디나 알렉산더 지음, 신수진 옮김, 나무야 펴냄, 80쪽, 1만3000원) 누군가 지켜보지 않는 인터넷에서의 ‘나’와 실생활에서의 ‘나’는 다른 사람일까? 생일선물로 스마트폰을 갖게 된 한 아이의 일상과 어느 날의 극적인 사건을 통해 ‘디지털 시민’이 된다는 것의 참뜻을 전하는 이야기이다.
나는 놀고 창조하고 상상할 권리가 있어요! (알랭 세레 지음, 오렐리아 프롱티 그림, 이경혜 옮김, 고래이야기 펴냄, 44쪽, 1만3000원)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 아이로서 누릴 권리를 아름다운 그림과 함께 알려주는 책. 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가입한 UN아동권리협약의 주요 내용을 담았으며, 그 권리들 하나하나가 아이들 삶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감동 깊게 전달한다.
카페, 공장 (이진 지음, 자음과모음 펴냄, 216쪽, 1만3000원) 해마다 인구가 줄고 있는 지방 소도시를 배경으로 우연히 버려진 공장에서 카페를 운영하게 된 네 소녀가 우정을 나누고, 서로를 이해하며, 이상과 한계를 오가면서 좌충우돌하는 과정을 그려낸 장편 소설.
십 대를 위한 쓰담쓰담 마음 카페 (김은재 지음, 사계절 펴냄, 296쪽, 1만4800원) 현직 교사로 청소년의 ‘진로, 공부, 독서, 관계, 연애, 자존감’을 주제로 활발한 강연활동을 하고 있는 저자가 십 대라면 누구나 겪을 만한 고민과 그 고민에 대한 따뜻한 힐링과 시원한 코칭을 담았다.
지금까지 이런 수학은 없었다 (이성진 지음, 해나무 펴냄, 276쪽, 1만5000원) 한때 ‘수포자’였던 현직 수학교사가 10년에 걸쳐 발견한 중학 수학의 새로운 접근법을 소개한 책. 학생들이 어려워하는 개념을 쉽게 설명하고, 자신만의 창의적인 풀이를 이끌어내도록 유도한다.
국제 바칼로레아 IB가 답이다 (김나윤 · 강유경 지음, 라온북 펴냄, 267쪽, 1만5000원) 최근 국내에 관심을 끌고 있는 IB(International Baccalaureate) 교육과정의 장점은 무엇일까? 해외 국제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고 있는 저자가 IB 교육과정의 모든 것을 알기 쉽게 설명한다.
나는 87년생 초등교사입니다 (송은주 지음, 김영사 펴냄, 332쪽, 1만5000원) 10년 차 초등교사인 저자가 한 인간으로서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는 솔직한 고백을 담은 책. 새로운 세대의 아이들과 후배교사와는 어떻게 소통해야 할지 등 앞으로 30년 이상을 교사로 살아남기 위해 꼭 생각해보아야 할 고민이 담겨 있다.
행복한 교사가 세상을 바꾼다 (틱낫한 · 캐서린 위어 지음, 정윤희 옮김, 해냄 펴냄, 436쪽, 2만2800원) ‘마음다함(mindfulness)’을 전 세계에 소개하고 있는 틱낫한 스님이 교사와 학생을 위한 교실 속 명상 안내서를 소개한다. 교사가 자기조절을 통해 교실 속에서 학생들이 보다 행복하게 몰입하며 성장해 갈 수 있도록 안내한다.
남평문씨 삼우당 문익점 선생을 찾아 경남 산청군 신안면 신안리 도천서원을 찾았다. 1351년 왕위에 오른 제31대 고려 공민왕은 고려의 중흥을 꾀하기 위해 개혁정치를 실시했다. 원나라 앞잡이로 고려 왕실을 괴롭히던 신하들을 내치고, 고려 땅의 쌍성총관부도 폐지했다. 그러자 원나라는 공민왕을 폐하고 충선왕의 셋째 아들 덕흥군을 새로운 고려왕으로 임명했다. 공민왕은 원나라에 외교사절단을 보내 자신의 개혁정치를 설명하며, 고려왕으로 복위를 꾀했다. 문익점이 가져온 ‘밭에 피어난 백설 같은 꽃’ 문익점 선생은 35살(1363)에 외교사절단 일행으로 원나라에 갔다. 원나라 황제는 고려 외교사절단에게 덕흥군의 명령을 따르고, 충성할 것을 명령했다. 그해 덕흥군은 군사를 이끌고 고려를 공격하였으나, 크게 패하여 원나라로 쫓겨 갔다. 고려에 돌아온 문익점 선생은 이런 이유로 벼슬에서 물러났다. 조선 성종 때 남효온이 쓴 목면기에는 ‘원나라 사신으로 간 문익점은 덕흥군의 미움을 받아 중국의 남쪽 걸남으로 귀양을 갔다. 그곳에서 3년이나 떠돌 때, 밭에서 백설 같은 꽃을 발견했다. 이것이 옷감을 만드는 면화임을 알고 붓두껍 속에 씨앗 세 개를 지니고 왔다’고 기록했다. 조선 태조실록에는 ‘문익점이 원나라에서 돌아올 때, 면화를 보고 씨앗 10여 개를 따서 주머니에 넣어 가져왔다. 문익점은 이듬해 고향인 산청으로 돌아와 장인 정천익에게 면화 씨앗 5개를 주어 기르도록 하였다. 처음에는 네 그루가 죽고 한 그루만 살아 열매를 맺었다. 이듬해 다시 심는 등 3년간의 노력 끝에 면화재배에 성공했다. 그러나 면화에서 씨를 빼고, 실 뽑는 방법을 몰라서 궁리할 때 원나라 스님 홍원의 도움으로 씨를 빼는 씨아와 실을 뽑는 물레 만드는 법을 배워 옷감을 짤 수 있게 되었다. 곧이어 전국에서 면화를 재배하게 되었다’고 기록하였다. 세종대왕은 ‘문익점이 원나라 사신으로 갔다가 가져온 면화 종자와 목면업 보급으로 모든 백성이 솜 넣은 옷을 입을 수 있을 정도로 면화재배 기술이 크게 향상되었다. 이는 조선 백성들의 의생활에 있어 혁신적인 변화였다. 솜을 넣은 옷으로 겨울을 따뜻하게 지내는 일은 이전에는 감히 생각하지 못한 일로 의복문화의 일대 혁신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또 급격한 생산량 증가로 조선은 그 무렵부터 일본에 면화제품을 계속 수출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되었다’고 문익점을 칭송했다. 첫 면화재배에 성공한 ‘산청목면시배유지’ 문익점 선생은 고향 산청에 정자를 짓고, 삼우당 현판을 걸었다. 나라의 힘이 부족함과 성리학이 널리 알려지지 않음과 자신의 학문이 부족함 등 세 가지를 걱정한다는 뜻이다. 문익점 선생이 처음 면화재배에 성공한 단성면 사월리 산청목면시배유지(山淸木棉始培遺址)에서는 지금도 매년 면화를 재배하고 있다. 산청목면시배유지에는 다음과 같은 주련이 걸려있다. 東溟開國幾千秋 衣被生民自有田 (동명개국기천추 의피생민자유전) 可惜文公襄底物 飜成泉貨長繆悠 (가석문공양저물 번성천화장무유) 忠臣孝子果何耶 不見先生只觀花 (충신효자과하야 불견선생지관화) 衣是木棉綿不絶 朝鮮億載富民家 (의시목면면부절 조선억재부민가) 충신과 효자가 어찌 아니 나올까? 선생을 뵙지 못했으나 마치 꽃 보는 것 같네. 옷을 짜는 면화는 면면히 끊어짐이 없어 조선의 긴 세월 내내 큰 부자가 될 것이라네. 면화를 처음 심은 것과 관련하여 문익점 선생의 남평문씨 문중과 장인 정천익의 진주정씨 문중의 이해관계가 대립하고 있다. 남평문씨 문중에서는 옛날 해설판의 내용을 지키기 위해 문화재청과 지루한 행정소송을 거듭하였고, 현재의 해설판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진주정씨 문중과 생긴 갈등이 아직 가라앉지 않고 있다. 문화재청의 옛 해설판과 현재의 해설판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문화재청의 옛 해설판 : ‘고려 말 공민왕 때 문익점이 면화를 처음 재배한 곳이다. 문익점은 35살(1363) 때, 원나라에 가는 사신의 일원으로 갔다가 원나라 관리의 눈을 피해 붓대에 면화씨를 넣어 가지고 귀국하였다. 그 뒤 이곳에서 처음 면화를 재배하여 국민 생활과 경제발전에 큰 공헌을 하였다.’ ● 현재의 해설판 : ‘고려 말기에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면화를 재배한 곳이다. 문익점은 35살(1363) 때, 중국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귀국하는 길에 면화 씨앗을 구해왔다. 그 뒤 문익점은 장인 정천익과 함께 면화재배에 성공했다. 면화로부터 얻어지는 포근한 솜과 질긴 무명은 옷감을 향상시켜 백성들의 생활에 혁명적인 공헌을 하게 되었다.’ ‘존경하는 마음을 보인다’는 의미의 시경당 문익점 선생을 모시는 도천서원(道川書院)에 들어서면 존경하는 마음을 보인다는 시경당(示敬堂)과 마주한다. 시경당에는 스승에게 가르침을 배우는 집이라는 취정당(就正堂), 공부하는 곳이라는 학이재(學而齋), 문익점 선생을 사모한다는 앙지헌(仰止軒) 등의 현판과 함께 특이하게도 각기 다른 서체의 주련을 걸었다. 詆斥異湍 倡明正學(저척이단 창명정학) 大節蘇卿似 偉功后稷同(대절소경사 위공후직동) 注蘭佩於釰南扶持宗社(주난패어걸남부지종사) 播綿種於海外衣被生靈(파면종어해외의피생령) 見逐南荒艱苦三秋(견축남황간고삼추) 節義巍聳不願偩軀(절의외용불원부구) 紫陽徴眞學 又得断誦中(자양징진학 우득단송중) 정통에서 어긋나는 것을 꾸짖고 성리학을 분명하게 나타내는구나. 굳고 곧음은 한나라 소무 같고 공적은 후직 같네. 걸남에 귀양 가서도 고려를 근심하여 종묘사직을 지켰고 우리나라에 면화씨를 퍼뜨려서 백성에게 옷을 입혔구나. 황량한 남녘으로 쫓겨가서 삼 년을 고생하였고 절개와 의리는 높이 솟았으나 자랑하지 않는구나. 성리학은 참 학문이라 하며 끊임없이 글을 외우는구나. 시경당 주련에 나오는 ‘소무’는 소무목양(蘇武牧羊)에서 나온 것으로 ‘소무가 양을 기른다’는 뜻이다. 소무는 한나라 사람으로 흉노에 사신으로 갔다가 붙잡혔다. 큰 움 속에 갇혀서 혹독한 추위와 굶주림에도 굴복하지 않고, 한나라의 신하로서 굳건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자 흉노의 추장이 숫양 댓 마리를 주면서 말하였다. “이 양들이 새끼를 낳으면 너희 나라로 보내주마.” “어찌 숫양이 새끼를 낳을 수 있습니까?” “그것은 네가 알아서 해라.” 그러면서 현재 몽골의 북쪽에 있는 얼음의 땅 바이칼 호수 근처로 귀양을 보냈다. 소무는 먹을 것이 없어 땅속을 파헤쳐 들쥐들이 모은 풀과 열매를 먹으며 19년을 살다 한나라로 돌아오게 된다. 이때부터 소무는 충직한 신하의 상징이 되었다. ‘후직’은 땅의 성질에 따라 알맞은 작물을 심어 수확량을 증대시킨 중국의 전설적인 인물로 ‘농업의 신’으로 받들고 있다. ‘자양’은 성리학 체계를 완성한 송나라 주희를 이른다. ‘신안을 늘 생각한다’는 신안사재 시경당 뒤에 선생의 호를 딴 삼우사(三憂祠)가 있고, 선생의 고향인 이곳 신안을 늘 생각한다는 신안사재(新安思齋)가 자리하고 있다. 신안사재는 제사에 참석하는 사람들의 잠자리로 사용되고 있으며, 다음과 같은 주련이 걸려있다. 臣事恭愍不貳其貞 焚書諫院言動天潢 (신사공민불이기정 분서간원언동천황) 正學倡明素復剛確 波頹見柱歲寒知栢 (정학창명소복강확 파퇴견주세한지백) 豊功難酬表以鐵券 嘉種始來解吾民慍 (풍공난수표이철권 가종시래해오민온) 고려 공민왕의 신하로서 충정을 바쳐 다른 마음을 품지 않았고 사간원 좌정언으로 책을 불사르고 임금의 옳고 그름을 깨우쳤네. 성리학을 분명하게 나타내고 굳은 의지로 검소한 생활을 하였으며 세상이 물결처럼 무너짐 보았으니 날씨가 추워야 잣나무 푸르름을 알겠네. 드높은 공적은 갚기 어려우나 공신록에 기록되었고 면화 씨앗을 처음으로 들여오니 우리 백성들의 근심을 풀어주었네. 동재와 서재에 걸린 주련 학생들의 기숙사인 서재와 글을 읽던 동재에도 문익점의 업적을 기리는 주련이 걸려있다. 서재의 주련에 나오는 ‘화폐’는 무명이 우리나라에서 돈과 같은 구실을 하였다는 것을 알려 준다. 一介前朝諫大夫 衣民功與泰山高 (일개전조간대부 의민공여태산고) 歸來日飮杯三百 醉臥乾坤氣象豪 (귀래일음배삼백 취와건곤기상호) 고려 왕조 때 간의대부 벼슬을 하였고 백성에게 옷 입힌 공은 태산처럼 높구나. 이곳에 돌아와 날마다 삼백 잔의 술을 마시고 술 취해 자연 속에 누우니 그 모습 활달하구나. - 동재의 주련, 정여창 東溟開國幾千秋 衣被生民自有田 (동명개국기천추 의피생민자유전) 可惜文公囊底物 飜成泉貨長繆悠 (가석문공낭저물 번성천화장무유) 고려가 나라를 세운 지 얼마나 되었던가? 백성들이 옷과 이불을 자기 밭에서 생산한다네. 안타깝게도 문익점이 주머니 속에 넣어 온 면화 도리어 화폐로 사용하다니 늘 허망하구나. - 서재의 주련, 음애집
우크라이나 말로 11월이 ‘낙엽(Листопад ; 리스토빠드)’이란 걸 알았을 때, 너무 예쁜 말이라고 연신 말했던 기억이 있다. 어쩌다 11월, ‘잎 떨어지는 달’에 우크라이나를 여행하고 있었고, 실제로 가는 곳마다 잎이 떨어지고 있었다. 우크라이나 언어를 만든 사람은 시인이거나 감성을 지닌 국문학자이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이른 아침 커튼 사이로 우중충한 날씨가 들어왔다. 더 자고 싶기도 했지만, 저녁에 떠나게 될 도시를 둘러봐야 할 숙제가 남아 있었다. 숙소 건너편에 보이는 노란빛 공원으로 들어섰다. 공원 이름은 우크라이나 위인 ‘쉐브첸코’의 이름을 붙였다. 노랗게 물든 쉐브첸코 공원을 거닐었다. 평일 오전이라 공원은 아주 한적했다. 이른 아침 공원에는 유모차를 끄는 젊은 엄마들과 온종일 시간이 남아도는 어르신들이 드문드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때 한 청년이 눈에 들어왔다. 청년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아주 빠른 걸음을 걸으며 공원을 촬영하기 바빴다. ‘이런 공원에도 유튜버가 존재하는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이면서 공원 끄트머리를 향했다. 절벽 아래로 널찍한 강이 흐르고 있었다. 검색해보니 유럽에서 4번째로 긴 강으로 도시 이름과 같은 드니프로 강이다. 강변을 따라 걷다가 청년을 다시 만났다. 그는 백수거나 근처 대학교에서 수업을 땡땡이치고 나와 공원을 담고 있는 유튜버인 듯 보였다. 하지만 그의 전화기는 매우 허술해 보이고, 가을 색이 바랜 공원은 조금 을씨년스러워 보였다. 유튜브에 올려도 조회 수가 그리 많을 것 같지 않았다. 그는 그대로, 나는 나대로 걷다가 다시 청년을 만난 곳은 서커스 단원들이 연습 중인 곳이었다. 사람도 별로 없는 공원이다 보니 뭔가 눈요깃거리가 있으면 발길이 절로 그곳으로 향했다. 세 번째 그를 만난 자리에서 말문을 열었다. “뭘 그렇게 열심히 찍어요?” “처음 이 도시를 왔는데 다 신기하네요. 다 담아서 어머니 보여드리려고요. 제가 사는 곳은 좀 삭막하거든요.” “어디에서 왔어요?” “크리보이 록(Krivoy Rog)이라고 산업 도시예요” “삐뚤어진 뿔? 도시 이름이 참 희한하네요.” “왜 이름이 그런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당신은 드니프로에 일하러 왔나요?” “아니요. 저는 어제 하리코프에서 기차를 타고 이곳에 여행 왔어요.” 여행이라는 말에 어이없어하는 청년의 표정을 보니 어제 새벽 기차를 타고 드니프로에 온 나 스스로가 좀 안쓰럽기도 했다. “음, 이 도시에 볼거리가 전혀 없지는 않아요. 당신도 나도 드니프로가 초면인데 나를 따라서 드니프로 탐험을 다녀볼래요?” “마침 잘됐네요. 내일까지 이 도시에서 뭘 할지 고민했거든요.” “내 이름은 콴(Quan)이라고 해요.” “저는 보그단입니다. 콴은 어느 나라 사람이에요?” “한국인입니다. 그런데 보그단은 어쩌다 이 도시를 처음 왔어요?” “크리보이 록에서 공부하다가 취업과 군대 중 선택을 해야 했는데 운 좋게 취업이 됐어요. 군대 면제받을 길이 있어서 정밀 진단받으러 드니프로 국립병원에 왔어요.” 그가 한국에 대해 아는 거라곤 현대, 기아, 쌍용뿐이었다. 보그단은 자동차 정비를 공부했고 첫 직업 또한 자동차 정비와 관련된 회사에 다니기로 되어 있다고 했다. 젊은 나이에 진로를 잘 잡은 듯했다. 보행 중에 지나치는 자동차를 그냥 보내지 않았다. 자동차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마구 쏟아냈다. 보그단을 위해 준비한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오전 목적지가 드니프로 자동차 박물관이었다. 평소에 교통시설에 관심이 많은 나는 그의 지식에 맞장구치며 꽤 먼 거리를 걸어갔다. 그에게는 목적지를 말하지 않았다. 점점 박물관이 가까워지고 바깥에 주차된 오래된 자동차들이하나둘 보이기 시작하자 그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콴, 내가 자동차를 정말 좋아해요. 아주 고마워요!” 심심할 거라 생각했는데, 보그단이란 젊은 친구가 나타나서 나 또한 즐거웠고 그 시간에 대한 보답이었다. 내가 다 뿌듯해서 한참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요즘 보기 드문 6형제 집안에서 보그단은 차남이다. 쉬고 있는 부모님을 대신해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부담이 있음에도 부모님을 생각하고 어린 동생들을 챙기는 스무 살 답지 않은 청년이었다. 길에서 어르신을 돕고 엄마와 동갑인 나를 배려하는 모습에서 참 바른 청년이란 것을 느꼈다. 한국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다고 해서 점심은 한식당으로 정했다. 젓가락을 처음 잡아 본다는 그에게 어떤 음식을 먹을지 고르라는 건 큰 숙제 같아서 외국인이 잘 먹는 김밥과 잡채 그리고 비빔밥을 시켰다. 음식이 나오는 동안 연신 누군가와 메신저를 주고받길래 ‘혹시 엄마?’하고 물으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엄마는 이스라엘 사람으로 여섯 자식을 똑같이 사랑하고 스무 살인 아들을 아직도 어린애처럼 대하신다고 한다. 집에서 드니프로까지 3시간 걸리는데 그의 엄마는 그 거리를 아들과 함께 와서 병원에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갔다고 하니 그 사랑이 얼마나 큰지 가늠이 된다. 보그단은 군 면제를 받게 되면 직장생활을 열심히 해서 그동안 뒷바라지해준 엄마와 누나에게 보답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나에게도 그런 누나가 있는데 첫 월급을 받아서 무슨 선물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걸 보면 나는 누나에게 선물을 하지 않았나 보다. 일상 같았던 드니프로를 떠나야 할 시간. 보그단이 기차역까지 배웅해줬다. 기차에 오르기 전, 두 가지 바람을 이야기했다. 첫째는 군 면제를 받게 되길 바란다는 인사. 하지만 내심 현재 러시아와 전쟁을 치르고 있는 우크라이나에는 1명의 군인이라도 절실한 게 아닐까 싶은 안타까움도 들었다. 두 번째는 다음 여행에서 그가 사는 크리보이 록을 여행하고 싶다는 바람. 비록 공장 가득한 도시지만 분명 그 도시만이 가진 매력이 있을 것이다. 하루 여정이었지만 다분히 심심할 것 같았던 도시에서 인연을 만들었다. 우크라이나 여행을 또 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긴급재난지원금이 나왔습니다. 4인 가구 100만 원입니다. 액수는 시도별로 조금씩 다릅니다. 특이한 것은 기부할 수 있습니다. 자발적 기부를 통해 재정(정부의 예산 곳간)도 채우고, 또 ‘코로나19’라는 드라마 같은 상황에서 공동체의식 발현도 기대해봅니다. 기부의 경제학 시장경제는 필연적으로 ‘격차’의 문제를 불러옵니다. ‘샤넬 클래식 미디엄 백’은 715만 원이었습니다. 며칠 전 846만 원이 됐습니다. 120만 원이 올랐습니다. 이 핸드백을 알뜰하게(?) 사려는 줄이 매장마다 길게 이어졌습니다. 코로나19로 최악의 불경기라지만, 우리 주변에 715만 원짜리 핸드백을 쉽게 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살짝 드러난 순간입니다. ‘기부’는 그래서 중요합니다. 빌 게이츠(Bill Gates)는 기부를 ‘시장경제의 분배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도구’라고 했습니다. 빌 게이츠 부부는 지금까지 30조 원이 넘은 돈을 기부했습니다. ‘코로나19’ 백신개발에도 큰 관심과 함께 수천억 원을 기부했습니다. 그는 죽는 날, 빈손으로 떠나겠다고 약속한 바 있습니다. 미국의 부자들에게 기부는 당연한 것입니다. 뉴욕 맨해튼 한가운데에 있는 UN 본부 땅도 록펠러 가문이 기부한 겁니다. 이렇게 기부된 돈은 시장을 돌고 돌아 소비를 일으킵니다. 돈은 많이 유통될수록 모두를 부자로 만듭니다(중요!). 돈은 유통되면서 스스로를 증식합니다. 그렇게 우리 모두를 부자로 만듭니다. 예를 들어 이런 식입니다. 마이클의 부인 세라는 시어머니 제시카에게 10만 원권 백화점상품권을 선물했다. 어머니 제시카는 그것을 큰며느리 앤에게 다시 줬다. 앤은 자신의 남편 빌에게 넥타이를 사라며 그 상품권을 선물했는데, 한 달 뒤 그 상품권은 동생 마이클의 지갑에서 발견됐다. 형 빌이 동생 마이클에게 선물한 것이다. 발행된 상품권은 10만 원권 1장인데, 3번 유통되면서 제시카의 가족들은 모두 40만 원의 효용을 체감했다. 만약 상품권이 화폐라면 본원통화는 10만 원이지만 시중 통화량은 이제 40만 원이 됐다. 시장에 풀린 돈은 이렇게 ‘거래’를 통해 부를 만들어냅니다. 정부가 시장에 재정을 공급하는 이유도 물론 여기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중간에 시민 용팔 씨가 재난지원금을 받아 저축을 해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돈이 은행에 잠깁니다. 제가 어릴 적 학교에서는 이렇게 배웠습니다. 그때는 1)시중에 돈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2)국민들이 돈을 벌어 은행에 저축을 하면 3)기업이 그 돈을 대출받아 공장을 세우고 투자를 합니다. 이렇게 경제가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돈이 넘칩니다. 10여 년 전까지 우리 기업들은 투자(I)한 돈이 저축(S)한 돈보다 많았습니다. 이제는 저축(S)이 투자(I)한 돈보다 많습니다. 그러니 용팔 씨가 저축을 더 한들 이 돈이 모두 기업으로 옮겨가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은행창고에 잠겨버립니다. 저축보다 소비가 미덕인 시대가 된 것입니다. 기부보다 과세? 유럽은 기부보다 ‘과세’로 격차문제를 해결합니다. 개인의 선한 의지에 의존하는 ‘기부’보다 시스템으로 부를 나누는 ‘과세’를 더 믿습니다. 유럽의 소득세율이 더 높은 이유도 이런 배경이 작용합니다. 공통점은 과세에 우리만큼 부정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세금은 ‘비정한 세상을 넘어서는 위대하고 간단한 도구’라고 믿습니다. 2016년 3월 뉴욕에 사는 재벌 3~4세들이 쿠오모주지사(코로나19로 유명해진 바로 그!)에게 청원문을 보냅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뉴욕 주민들이 경제적으로 고통 받으며, 뉴욕주의 부실한 인프라에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이런 문제를 모른 척할 수 없습니다. 뉴욕의 일부 지역에서 아동의 빈곤율이 50%를 넘는다는 사실에 우리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오늘도 8만 명이 넘는 노숙 가족들이 뉴욕주 전역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칩니다. 지금은 우리 뉴욕의 친구들이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다리에 오를 수 있도록 장기적인 투자를 해야 할 때입니다.” 뉴욕주는 빈부격차 해소를 위해 지난 2009년에 공정과세(Tax Fairness)를 도입했습니다. 기본 소득세와 별도로 상위 0.1% 정도 되는 부자들에게 최고 8.8%의 세금을 추가로 걷는 일종의 백만장자세입니다(대신 그만큼 저소득층의 세금을 인하해주도록 설계됐다). 이 과세제도는 2017년 말까지 한시적으로 도입됐는데, 정작 그 세금을 내는 백만장자들이 이 과세제도를 연장해달라고 청원을 한 것입니다. 그야말로 ‘부자들의 품격’입니다. 그 청원문은 ‘우리는 세금을 더 내야하고, 더 낼 수 있다’는 말로 마무리됩니다. 물론 과세와 기부를 모두 실행해온 부자들도 많습니다.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은 죽기 전에 자신의 재산 85%를 기부한다고 약속(the Giving Pledge)했고, 지금까지 28조 원 이상을 기부했습니다. 그는 2011년 뉴욕타임스에 자신의 직원들이 내는 소득세율이 최고 36%나 되는데, 자신처럼 자본투자(주가나 주식배당금 이익을 위한 투자)로 번 소득은 평균 17%만 과세가 된다며, 자본소득에 대한 세율인상을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시장경제가 안고 있는 격차문제를 위해 다양한 시도가 이어집니다. 과세제도의 개선과 함께, 시장 참여자의 선한 의지 역시 중요합니다. 코로나19 같은 위기상황에서는 더욱더 그렇습니다. 긴급재난지원금에 ‘기부’형식이 도입된 것도 같은 취지일 것입니다. 그 작은 움직임은 위기를 이겨내기 위한 공동체의식의 척도입니다.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바이러스를 이겨내기 위해 빌 게이츠 등 전 세계 부자들의 손길이 이어집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궁핍으로부터 벗어날(freedom from poverty)수록 소비가 늘어납니다. 테슬라의 앨런 머스크 회장이 ‘소비자들의 주머니가 두둑해져야 내가 돈을 번다’며 재난지원금을 찬성한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코로나 위기시대. 인류는 ‘과세와 기부’라는 신이 주신 발명품으로 이 위기를 또 극복해나갈 것입니다.
‘한 여자가 앉아 있다. 가시리로 가는 길목, 협죽도 그늘 아래’ 성석제 단편 협죽도 그늘 아래에 열 번 이상 나오는 문장이다. 소설은 이 같은 문장들로 인해 한 편의 시를 읽는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결혼하자마자 6·25가 나서 학병으로 입대한 남편을 기다리는 70세 할머니 이야기다. 스무 살에 결혼했으니 50년째 남편을 기다리는 것이다. 대학생 남편은 전쟁이 나자 합방도 하지 못한 채 학병으로 입대할 수밖에 없었다. 여자는 시댁 식구와 함께 전쟁을 겪었다. 피난길에 시아버지는 친정에 가 있으라고 했지만, 여자는 ‘피가 흘러내리도록 입술을 문 채 고개를 흔들었다.’ 전쟁은 끝났지만,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다. 행방불명이라는 통보도 받았다. 하지만 여자는 여전히 남편을 기다렸다. 10년쯤 지났을 때 여자의 오빠가 찾아와 “개명천지에 이 무슨 썩어빠진 양반 놀음이냐”고 소리를 질렀지만, 누이를 데려가지는 못했다. 그렇게 50년을 기다린 여자가, 그의 칠순 잔치에 찾아온 친척들을 ‘가시리로 가는 길목’에서 배웅한 다음, 치자빛 저고리와 보랏빛 치마를 곱게 차려입고 남편을 기다리는 것이다. 일부종사(一夫從事)라는 전근대적인 관습으로, 6·25라는 민족적 비극으로 설명하기에는 너무 애잔하다. 소설은 ‘여자는 자기의 일생을 위해 일생을 바쳤다’라고 표현했다. 협죽도라는 꽃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할머니가 사는 가시리는 남부지방 어느 곳이다. 협죽도는 노지에서는 제주도와 남해안 일대에서만 자라는 상록 관목이기 때문이다. ‘가시리’는 제주도 서귀포시 표선면에 실제로 있는 지명이기도 하다. 그러나 소설에서 여자의 친정인 몽탄(전남 무안에 있는 면)에서 ‘백 리 길을 걸어’ 가시리에 도착했다는 대목이 있는 것으로 보아 제주도에 실재하는 마을이 아닌, 상징적인 장소인 것 같다. 녹의홍상(綠衣紅裳)을 입은 새색시 같은 꽃, 협죽도 협죽도(夾竹桃)는 대나무잎 같이 생긴 잎, 복사꽃 같은 붉은 꽃을 가졌다고 이 같은 이름을 얻었다. 잎이 버드나무잎 같다고 유도화(柳桃花)라고도 부른다. 꽃은 7~8월 한여름에 주로 붉은색으로 피고, 녹색 잎은 3개씩 돌려나고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이처럼 협죽도의 꽃과 잎은 신부들이 흔히 입는 한복, 녹의홍상(綠衣紅裳) 그대로다. 할머니는 잠시나마 남편과 함께한 신부 시절을 그리워하며 협죽도 그늘 아래 앉아 있는 것일까. 협죽도는 비교적 아무데서나 잘 자라는 편이고 공해에도 매우 강하다. 꽃도 오래가기 때문에 제주도나 남부지방에서는 가로수로 쓸 만한 나무다. 베트남 등 아열대 지역이나 제주도에 가면 가로수로 길게 심어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서울에서도 협죽도를 분에 기르는 경우를 보았다. 어쩌다 연한 노란색 꽃이 피는 노랑협죽도를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이 협죽도가 강한 독성을 갖고 있는 것이 알려지면서 수난을 당했다. 이 나무에 청산가리의 6,000배에 달한다는 ‘라신’이라는 맹독 성분이 들어 있어서 치명적이라는 것이다. 부산시는 2013년 부산시청 주변에 있는 200여 그루 등 협죽도 1,000여 그루를 제거했다. 제주도에서도 많이 베어내 눈에 띄게 줄었다. 협죽도의 맹독성이 나올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제주도에 수학여행 온 학생이 협죽도 가지를 꺾어 젓가락으로 썼다가 사망했다는 보도가 있다’는 내용이다. 2012년 KBS ‘위기탈출 넘버원’이라는 프로그램에서 협죽도를 독성이 강한 식물 1위로 소개하면서 협죽도는 제거해야 할 식물이라는 인식이 더욱 굳어진 것 같다. 협죽도에 유독 성분이 들어 있는 것은 맞다. 그러나 베어내야 할 정도로 위험한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은 상당히 부정적이다. 협죽도 가지를 젓가락으로 사용하다 사망했다는 것도 정확한 내용을 알아보려고 신문 등을 검색해보았으나 원문을 찾을 수 없었다. 전부 그런 보도가 있더라는 전언이었다. 상당수 식물학자는 “독성 때문이라면 베어낼 나무가 한둘이 아니고, 일부러 먹지 않으면 위험하지 않은데 굳이 제거하는 것은 코미디 같은 일”이라는 의견을 보이고 있다. 치명적 맹독 성분 함유 … 잘 쓰면 약, 잘못 쓰면 독 유독성 식물하면 떠오르는 것이 협죽도 다음으로 투구꽃이다. 꽃 모양이 로마 병정 투구를 닮은 투구꽃은 뿌리에 아코니틴이라는 맹독성 물질이 들어 있다. 소량의 아코티닌은 진정 효과가 있지만, 과잉 섭취하면 입술 마비와 구토, 경련을 일으키고 호흡 곤란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3년 한 여성 무속인이 사망 보험금 28억 원을 타내려고 지인에게 협죽도와 투구꽃을 달인 물을 꾸준히 마시게 해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 조사 결과 이 무속인은 인터넷을 통해 협죽도와 투구꽃의 독성을 파악하고 이 같은 일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투구꽃과 함께 진짜 사약의 원료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이 천남성(天南星)이다. 천남성에는 옥살산 칼슘 성분이 들어 있어서 얼굴과 기도, 복부에 부종을 일으키고 심한 경우 호흡장애로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꽃은 마치 뱀이 고개를 들고 있는 것처럼 독특하게 생긴 불염포 안에 있다. 생김새가 독특해서 한 번 보면 쉽게 잊기 어렵다. 가을에는 열매가 빨갛게 익는다. 천남성은 상황에 따라 성(性)전환을 하는 식물이다. 꽃을 피울 무렵 뿌리에 남아있는 양분이 충분하면 암꽃, 그렇지 않으면 수꽃으로 피는 것이다. 팥꽃나무와 디기탈리스도 독성이 강한 식물이다. 팥꽃나무는 주로 남쪽과 서쪽 바닷가에서 자라는데, 이른 봄 잎이 나기 전에 가지를 덮을 정도로 많은 꽃이 달린다. 팥과 비슷한 색깔의, 연한 보라색 꽃이 피는 데 향기도 좋다. 그러나 꽃에 호흡 억제와 경련을 일으키고 낙태를 유발하는 유독 성분이 들어 있다. 옛날에 임신한 여성들이 팥꽃나무꽃으로 낙태를 시도하다 목숨을 잃는 일이 많아서 나라에서 이 나무를 베도록 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슬픈 사연을 가진 나무이기도 하다. 여름에 도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원예종 디기탈리스는 꽃 모양이 손가락(라틴어로 digitus) 같다고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 이 식물도 과다 복용하면 중추신경 마비로 사망할 수 있는 유독 식물이다. 이밖에 흰독말풀, 미치광이풀, 은방울꽃, 동의나물 등도 독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한 식물들이다. 그러나 이들 독성 식물들도 소량을 적절하게 쓰면 약용으로 쓸 수 있다고 한다. 잘 쓰면 약, 잘못 쓰면 독인 것이다.
대한민국 교육 1번지 강남에 위치한 대청중학교는 학업성취도가 높기로 소문이 자자하다. 교육열이 높은 만큼 학부모 민원도 끊이지 않고, 학원과 비교당하기 일쑤다. 교사들의 스트레스가 높을 법도 한데, 시대 흐름에 따른 교육변화에 물러섬이 없다. 최근엔 기존 입시위주의 교육과정을 탈피해, 학생의 창의성을 높이는 과정중심평가로의 연착륙에도 성공했다. 청출어람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수한 학생 뒤엔 더 우수한 교사가 있었다. 대청중학교의 새로운 도전 이야기를 들어본다. “답이 틀려도 과정이 올바르다면 옳은 길로 갈 수 있다는 생각을 심어준 평가다.” “노력을 중시하기 때문에 모두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 과정중심평가를 도입한 서울대청중학교 학생들의 이야기다. 1987년 개교한 대청중학교는 함께 성장하는 민주적인 학교문화를 만들고 있다. 학생들의 실력 또한 출중해 명문 중의 명문으로 손꼽히는 학교다. 특히 2018년 백미원 교장이 부임한 이후, 학생·교사·학부모 3주체가 학교 교육활동에 대해 소통하고, 의견을 수렴해 결정하면서 학교 교육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졌다. 또한 교사들의 전문성을 키울 수 있는 맞춤형 연수를 적극적으로 운영해 과정중심평가 도입과 창의적인 수업혁신을 이뤄내기도 했다. 이를 바탕으로 대청중은 지난해 자유학기제 교육부 장관상과 진로교육 우수학교 표창을 받았다. 아울러 과정중심평가 도입 등의 교육활동은 우수사례로 소개되기도 했다. 백 교장은 “학교는 배우고 가르치는 기쁨이 중요한 곳”이라며 “학생은 창의적 역량을 길러 세계민주시민으로 성장하고, 교사는 전문성 향상을 통해 수업혁신을 이뤄내며, 학부모는 신뢰를 통해 학교 교육활동을 지원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생 77%가 만족한 온라인 수업 코로나19 사태로 ‘온라인 수업’을 통해 개학을 맞이한 가운데, 대청중은 체계적인 준비를 통해 성공적인 온라인 수업을 이뤄냈다. 가장 먼저 매년 2월 진행하는 신학년 연수주제를 ‘구글 클래스룸’으로 정했다. 교사들에게 각 플랫폼의 장단점에 대해 토론하도록 했으며, 대부분 구글 클래스룸이 중장기적으로 온라인 수업을 운영하기에 적합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이전부터 영상편집 등 미래교육을 위한 연수에 적극적이었던 대청중 교사들은 온라인 수업영상을 직접 제작했다. 토크쇼 형식으로 학생들이 흥미 있게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하는 등 각 과목별 특성에 맞는 영상을 구성했다. 수업 중간에는 랜덤으로 퀴즈를 제시해 수업내용을 수시로 확인하도록 했다. 온라인 수업 전에는 ‘온라인 수업 이렇게 합니다’라는 OT를 진행해, 과제 제출 방법과 수업 듣는 방법 등을 영상으로 안내했다. 학부모 설문조사를 통한 의견수렴도 빼놓지 않았다. 설문조사 결과 학부모들은 자녀의 얼굴이 비치는 쌍방향 수업을 부담스러워했다. 그래서 수업은 교사들이 직접 제작한 영상을 보는 일방향으로, 출결과 수업내용 확인은 과제와 댓글을 통해 진행했다. 온라인 수업 후 일주일 뒤, 중간평가를 통해 학생과 학부모 만족도를 분석하여 개선점을 찾으려 노력한 점도 차별성으로 손꼽힌다. 평가 결과, 학생 77%가 원격수업에 대체로 만족했다. 구글 클래스룸 접속도 원활했다고 평가했다. 수업 난이도 역시 보통 수준, 학습량도 절반 이상의 학생이 적당하다고 답했다. 학부모 만족도 역시 높았다. 한 학부모는 “자녀의 학습 정도를 알 수 있고, 언제든지 수업을 다시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선생님들의 아이디어가 돋보였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민주적 학교문화를 통한 수업혁신 백 교장이 학교경영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수업혁신’이었다. 창의적 민주시민으로 학생들을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수업혁신이 가장 필요했다. 그는 부임 이후부터 모든 교사를 대상으로 수업컨설팅을 진행했다. 과목별로 수석교사를 초빙해 연수는 물론 토론을 통해 교수·학습방법과 평가방법을 개선할 수 있도록 했다. 매년 2월 신학년 집중준비연수와 수업공개를 통해 단계적으로 교사들이 수업혁신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고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했다. 또한 교사 수업나눔방 ‘on수방’을 운영해, 온라인상에서도 수업내용을 공유토록 했다. 교장과 교감은 교사들이 공개수업을 하면 항상 참관해, 수업자료에 대해 학생들이 쉽게 수용할 수 있도록 화면 구성·내용·글씨색까지 세세하게 평가해 해당 교사에게 전달했다. 피드백을 들은 한 교사는 “더 나은 수업을 할 수 있는데 도움이 된다”며 “한발 앞서서 좋은 연수를 듣는 기회가 생겨 감사하다”고 말했다. 백 교장은 “교사는 수업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민원이 줄고, 학생들도 따라올 것”이라며 “학교장은 전문성 지원을 위한 연수, 수업을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정중심평가 도입으로 줄어든 사교육 대청중이 수업혁신을 통해 이룬 가장 큰 성과는 ‘과정중심평가’를 도입했다는 것이다. 학생들의 창의력 향상은 물론 시대 변화에 맞는 교육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요구를 반영했으며, 교사들 역시 이에 동의했다. 물론 강남이라는 지역적 특성상, 중간·기말고사 대신 과정을 중시하는 평가방법을 도입하기는 쉽지 않았다. 이를 위해 학생·교사·학부모가 모두 참여하는 학교발전협의회를 5차에 걸쳐 진행했다. 구성원과의 협의를 통해 1학년 수학과 기술·가정, 2학년 영어와 한문, 3학년 기술·가정 등 5개 과목에 과정중심평가를 도입했다. 교사들이 전문성을 키울 수 있도록 교과별로 2~3명의 멘토단을 구성해 수시로 컨설팅을 받도록 했으며, 관련 예산을 편성해 원활한 운영을 지원했다. 또한 과정중심평가를 도입한 과목 교사들이 업무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수업시수를 감축하고, 전보시기에 해당 교과교사를 보충하기도 했다. 2019년 과정중심평가를 도입한 후 1학기 중간평가를 진행한 결과, 2학년 학생 64.7%가 매우 만족 또는 만족이라고 평가했다. 가장 돋보이는 평가결과는 사교육이 줄었다는 점이다. 학생 61.2%, 학부모 50% 정도가 긍정적으로 답했다. 학원가에서도 “단순히 교과서 내용을 토대로 익히고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기본 원리를 이해하고 있는지를 묻는 좋은 문제”라는 평을 남기기도 했다고 한다. 학부모의 높은 교육 신뢰도 대청중이 수업혁신을 이룰 수 있는 배경에는 학부모 소통도 한몫했다. 교사들이 수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학부모들의 다양한 교육 민원을 교장이 나서서 해결한 것이다. 백 교장은 학년별, 보안관 학부모 등을 대상으로 4회에 걸쳐 수업공개와 학부모 간담회를 진행해, 학교 경영 방안에 관해 설명했다. 그는 학교의 다양한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전담 변호사를 채용하기도 하는 등 교육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뜻을 적극적으로 표출했으며, 학부모들에게 교육에 대한 신뢰를 심어줬다. 백 교장은 “소통을 통해 학교경영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를 통해 민원이 줄어들었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학년말 학교평가에서 학부모들은 창의적 경영, 민주적 학교경영, 학생참여, 의사소통, 학부모교육 참여 등에서 좋았다며 긍정적 평가를 남겼다. 또한 등·하교, 점심시간 교통안전지도 등을 담당하는 대청보안관, 시험감독 명예교사, 급식검수단, 급식모니터링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앞으로 계획에 대해 백 교장은 지난해 교내에 마련된 메이커스페이스인 ‘강남 아올(our all)학교’를 더욱 활성화시켜, 학생들이 로봇·드론 등을 체험하며 혁신적인 창작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또한 노후화된 학교 인프라를 더욱 적극적으로 개선해 학생과 교사들의 수업의 질을 높이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그러면서 “학생과 교사가 교육하는 데 필요한 도움을 적시에 줄 수 있도록 판단하고 지원하는 역량이 필요하다”며 “늘 공부하는 교장이 되겠다”고 말했다.
“딴다 딴다 딴딴다~ 이렇게 전주가 네 번 나오면 다섯 번째 마디에서 들어가자.” “알았어, 박자가 헷갈리니까 하영이가 시작 큐를 줘.” “그럼 이때 컵을 내려놓고 손을 올리면 되는 거지?” “맞아, 근데 그냥 올리면 밋밋하니까 웨이브를 넣어볼까.” “오, 좋은데, 다시 시작하자. 하나, 둘, 셋, 넷~.” 해거름녘 찾은 서울선사초등학교 5학년 3반 교실. 초등교사 유튜버 ‘301room’의 정예멤버가 모였다. 오늘은 이들의 최대 히트작 ‘컵타’의 업그레이드 버전을 촬영하는 날. 요즘 인기 있는 가수 비의 깡(GGANG)이 흘러나온다. 힙합 분위기를 내려는 듯 검정색 티셔츠에 모자를 눌러쓴 4명이 컵을 탁자에 딱딱거리며 손뼉으로 리듬을 탄다. 벌써 두 시간 째, 창밖엔 이미 어둠이 내려앉았지만, 연습과 촬영이 반복된다. 한 주일의 피로가 몰려오는 금요일 저녁, 지칠 법도 한데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깔깔댄다. “자, 이제 녹화 들어간다”란 말이 떨어지자 4명이 호흡을 척척 맞춘다. 딴다 딴다 딴딴다~, 빠른 비트를 타고 경쾌하게 움직이던 컵들이 어느 순간 딱 하는 소리와 함께 멈췄다. “와~ 성공이다.” 까르르 웃음보가 또 터졌다. 서울교대 14학번 동기 ... '학교극장' 등 유튜브 화제 최근 ‘컵타’를 비롯 ‘학교극장’, ‘정글에서 살아남기’, ‘부모님께 칭찬을 드려보았다’ 등 잇달아 히트작을 내면서 주목받는 유튜브 채널 ‘301room’. 서울교대 14학번 동기들로 교직 1~2년 차 새내기 교사들이 만들었다. 박지언(서울가주초), 김효진(서울선사초), 정윤지(서울용동초), 김하영 교사 등 모두 4명이 주인공. ‘301’은 대학시절 함께 생활했던 기숙사 방 번호. 그만큼 우정은 각별하다. “교대 다닐 때 가졌던 열정이 조금씩 식어가는 것이 아쉬웠어요. 그래서 뭔가 더 즐거운 수업, 재미있는 교육, 새로운 교육적 시도를 해보고 싶었죠.” 리더를 맡고 있는 박지언 교사는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마음에 유튜브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갓 시작한 교직생활, 배울 것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았지만 ‘301 멤버’들은 의기투합했다. 각본, 연기, 편집에 연출까지 1인 4~5역을 담당해야 했지만 힘든 줄 몰랐다. 주말도 잊었고, 밤샘작업도 일쑤였다. 무엇보다 제작비가 없었다. 십시일반 갹출했지만, 장비구입조차 못할 형편. 한 푼이라도 아껴보려 무료제작 서비스를 전전했다. 그러다 달콤한 제안에 속아 돈을 떼일 뻔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거침없이 나갔다. 2월 출범한 이래 지금까지 제작한 유튜브 편수만 70여 건. 6월 현재 조회수는 2백만 건을 넘었고 구독자만 2,050명에 이른다. 화제작 ‘학교극장’은 코로나19로 교문이 닫힌 뒤 학교에서 벌어지는 교사들의 일상을 날카롭고 재치있게 그려 호평을 받았다. 출근부터 퇴근까지 교사의 하루를 다양한 에피소드에 담았다. 카메라가 들어간 곳은 긴급돌봄교실, 아이들과 음악에 맞춰 관광버스에서 본듯한 막춤을 신나게 춘다. 마스크를 쓴 탓에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지만, 반응이 좋자 헉헉 대면서도 “또 출까?” 호기를 부려본다. 또 다른 교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 뒤편 사물함을 옮기려 하지만 꿈쩍 않는다. ‘아빠를 불러야 하나, 선배교사에게 도움을 청해야 하나’ 고민하다 결국 끙끙대며 혼자 해낸다. 방역이 교사들의 주된 업무가 된지 이미 오래. 학생들 책상을 소독제가 담긴 스프레이로 하나하나 열심히 닦는다. 그러다 장난기가 발동한 듯 “난 허리디스크 있는데…” 하더니 카메라렌즈에 스프레이를 촤악 뿌려버린다. 마스크 쓰기 교육하는 장면에선 ‘교사들이 왜 잔소리가 많은 줄 아시겠죠’라는 자막이 깔리면서 웃음을 자아낸다. 이번엔 온라인 음악 수업시간. 혼자 노래를 부르다 아무도 없는 것을 알고는 머쓱한 듯 큭큭 거린다. 코로나19에 교문은 닫혔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대한민국 교사들이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교육당국이 던지는 수많은 말의 성찬보다 훨씬 가슴에 와 닿는 한편의 동영상이다. 어버이날 특집 ‘부모님께 칭찬…’ 편 뭉클 ‘정글에서 살아남기’도 유튜브에서 인기를 모았다. 코로나19로 야외체육활동이 금지되자 실내에서 손쉽게 하는 운동을 흥미진진하게 구성한 작품. 뱃살로 고민하던 주인공이 동화 백설공주 속 마녀의 꼬임에 정글로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개구리와 호랑이 등 동물 포즈를 따라하며 자연스레 운동하는 내용을 코믹하게 그렸다. 어딘가 어설프면서도 깜찍한 연기, 묘하게 빠져드는 내레이션, 초등생 눈높이에 딱 맞는 개구진 동작들은 보기만 해도 즐겁다. 어버이날을 기념해 제작한 ‘부모님께 칭찬하기’는 철부지로만 여겼던 딸아이의 깊은 속내에 가슴 뭉클해진다. 주인공은 김효진 교사. 저녁밥상이 차려지자 맛있다며 엄마를 치켜세운다. 낯선 반응에 “평소에도 잘 먹으면서…”라는 말로 툭 받아넘기지만 싫지 않은 모습. 이때 지나가던 남동생이 팩폭(팩트폭격)을 던진다. “누나, 왜 그래.” 이후 화면은 모녀간 야간산책으로 이어지면서 훈훈하게 마무리된다. 그리고 엔딩 크래딧. ‘자, 이제는 영상을 본 여러분의 차례입니다’라는 자막에 잠시 먹먹해진다. 세계적 거장들의 명화를 코믹하게 재연한 ‘방구석 미술관’. 20대 교사들의 발칙한 재기가 넘쳐난다. 폴 세잔의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 편에서는 파이프 담배 대신 막대사탕을 문 장면이, 밀레의 ‘이삭 줍는 사람들’에서는 토시를 본뜬 분홍 고무장갑이 압권이다. 데이비드 호크니의 ‘조지 로슨와 웨인 슬립’ 패러디에 출연한 정윤지 교사는 옷핀으로 치마를 말아 올려 바지를 묘사했다. 황당한 장면에 웃음을 참지 못하는 출연진들의 모습이 유튜브 동영상에 고스란히 실려 있다. 이를 기획한 정윤지 교사는 “미술관에 가지 않고도 작품을 감상하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 직접 미술작품을 만들어 보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시도했다”고 말했다. 작품이 공개되자 반응은 폭발적이다. ‘기발하다’, ‘미술시간에 아이들과 해봤더니 너무 재미있어하더라’, ‘디테일한 묘사가 놀랍다’, ‘수업자료로 활용하고 싶다’는 댓글들이 이어졌다. 선배교사들 도움 큰 힘 ... "교장선생님 감사합니다" 초임교사 중 일부는 임용 직후 일종의 번 아웃 현상을 겪는다. 임용시험 통과를 위해 모든 것을 쏟아 부은 탓에 급격한 무기력증에 빠진다. 하지만 ‘301room’ 교사들에겐 먼 이야기. 이들은 왜 치열한 도전을 시작했고 멈추지 않는 것일까? 김하영 교사는 “아이들에게 배움의 즐거움을 알려주고 싶어서”라고 말했다. “교사가 즐거워야 아이들도 즐겁죠. 그래서 배움을 즐기는 교사, 그 즐거움을 기억하는 제자들이 찾아오는 교사가 되고 싶어요.” 친구들과 함께 만드는 유튜브는 그에게 즐거움의 원천인 셈이다. 선배교사들에게 동영상 수업자료 연수까지 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은 김효진 교사. 그는 “처음 해보는 영상편집에 스트레스도 많았지만, 지금은 질적인 수준을 걱정할 정도로 발전했다”며 “모방하고 답습하기보다 스스로 창조하고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박지언 교사는 “코로나19 이후 교육현장에 요구되는 새로운 변화를 미리 체험해 보는 좋은 기회가 됐다”면서 “앞으로도 다양한 시도를 통해 배움의 기회를 넓히는 교사가 되겠다”고 말했다. 이들은 또 자신들의 활동을 믿고 격려해준 교장선생님을 비롯 선배교사들께 감사하다고 입을 모았다. 새내기 교사들의 분투에 아낌없이 지원해준 그분들이 없었다면 엄두도 못 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생의 출발점에 선 4명의 교사. 오늘도 묵묵히 현장을 지키며 살아간다. 남들이 보기에 별다를 게 없는 평범한 삶이지만, 들여다보면 치열하게 살고 있는 그들이다. 인터뷰를 마칠 무렵, 문득 오늘 만남이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지하고, 솔직하고, 기발한, 그러면서도 교사다운 품격을 키워가는 모습에서 ‘우리 아이들 믿고 맡겨도 되겠구나’ 하는 희망을 봤다. 기특한 마음에 물었다. “지금 가장 원하는 게 뭐에요?” 속사포처럼 대답이 돌아왔다. “우리 유튜브 구독 많이 눌러 주세요.” “코로나 빨리 끝나 아이들과 맘껏 뛰어놀았으면 좋겠어요.” “가수 비랑 콜라보 하고 싶어요. 꼭이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rona virus disease 19, 이하 COVID-19) 유행으로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해야했던 초·중·고등학교가 마침내 개학을 했다. 하지만 일부 학교에서는 개학 첫날부터 확진자 발생이나 확진자 동선이 파악되지 않는 등 수십 개 학교가 등교 첫날부터 다시 문을 닫아야만 했다. 나머지 학교는 정상적 등교가 이루어졌으나, 자가격리자와 발열검사에서 귀가 조치되는 학생들이 있어 여전히 앞으로 어떻게 될지 조심하며 지켜보아야 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먼저 COVID-19가 일반적으로 우리 사회에 심리적으로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고, 학교환경에서는 특히 어떤 특성을 주의 깊게 보아야 할지, 그리고 학생들의 안녕을 위해 어떻게 대처하는 게 좋을지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우리에게 엄청난 공포를 일으키는 신종감염병 신종감염병의 일종인 COVID-19는 2019년 12월 중국 우한에서 처음 발생한 이후 중국 전역과 전 세계로 확산된, 새로운 유형의 코로나바이러스(SARS-CoV-2)에 의한 호흡기 감염질환이다. COVID-19는 감염자의 비말(침방울)이 호흡기나 눈·코·입의 점막으로 침투될 때 전염된다. 감염되면 약 2~14일(추정)의 잠복기를 거친 뒤 발열(37.5도) 및 기침이나 호흡곤란 등 호흡기 증상, 폐렴이 주증상으로 나타나지만 무증상 감염 사례도 드물게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미 2015년도에 중동호흡기증후군(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 이하 MERS)이라는 일종의 신종감염병을 겪은 적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유행하지는 않았지만 2002~2003년 사이에 나타났던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 이하 SARS)도 신종감염병의 일종이다. COVID-19는 현재(2020년 6월 12일 기준) 국내 확진환자 12,003명 대비 사망 277명으로서 치사율은 약 2.3%이며, 전 세계적으로 약 5.7%로 추정하고 있다. COVD-19의 치사율은 MERS 치사율 약 30%와 SARS 치사율 약 10%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고, 사망자는 건강했던 사람보다는 고령이나 기저신체질환이 있는 경우에 취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신종감염병의 공통된 특성은 우리에게 엄청난 공포를 일으킨다. 즉, 이 병이 새로운 병원체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다 보니 병의 특성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유행이 일어났고, 아직도 명확한 치료제가 개발되어 있지 않고 있으며, 백신이 없는 가운데 병에 걸릴 수 있다. 또한 일단 감염이 되면 음압병실이 있는 곳에서 음성으로 판정될 때까지 격리치료를 받아야 하고 일부 환자들은 안타깝게도 치료 중에 사망할 수도 있다. 그래서 불안·공포를 느끼는 사람은 단지 확진자뿐만 아니라 자가격리자, 일반 국민들도 해당될 수 있다. 치사율이 낮은 반면 전파력은 큰 COVID-19 COVID-19에 대한 감염 불안·공포도 문제이지만, 생각지 않았던 다양한 2차 사건들도 생길 수 있다. COVID-19가 무증상감염자도 있고 상대적으로 경증인 상태에서 활동을 할 수 있는 여지가 크다 보니 치사율이 낮은 반면 전파력은 크다는 면이 있다. 그래서 발생한 지 한두 달 내에 지역사회 감염과 전 세계 유행으로 진행이 되었고, 전파력이 강한 만큼 민첩하고 강박적인 방역노력을 해야만 감염병의 전파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압력을 받게 된다. 예를 들어 확진자 발생을 인지하면 바로 동선을 공개해서 밀접접촉자를 찾아내고, 자가격리 및 감염 여부 검사 등을 시행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사회적 비난, 죄책감, 스티그마(낙인)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개인적 사생활의 하나인 동선이 공개되고 그 가운데 “왜 거기에 갔느냐”, “솔직하게 말하지 않아서 다른 사람이 피해를 본다”는 등 비난의 말을 듣게 되거나, 직접 그런 말을 듣지 않아도 스스로 자책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확진자 가운데 본인 때문에 직장이 폐쇄되었다던 지 업소가 문을 닫게 되었다는 미안함으로 퇴원 후 사람들을 어떻게 볼지 걱정이라는 사람도 있다. 최근 학술지에 발표된 MERS 감염자 정신건강연구에 의하면 감염병 종식 1년 후 우울증이나 외상후스트레스장애와 관련된 요인이 감염 당시 불안, 스티그마, MERS 유가족, 정신과 과거력 등으로 나타났다. 여기서 스티그마를 많이 느낀다는 것은 본인이 감염되었었다는 것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같이 있으면 불편해하거나, 그런 반응으로 인해 본인이 마음의 상처를 입거나, 그래서 감염되었었다는 사실을 비밀로 해야 될 것이라고 느끼는 것과 같은 인식을 말한다. 그래서 확진자들이 감염 당시 느끼는 스티그마를 줄이도록 노력하는 것과 불안과 같은 심리·사회적 어려움을 갖는 사람들이나 감염병으로 사별을 경험하는 유가족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것이 장기적인 정신건강의학적 후유증을 줄여줄 것으로 보인다. 학교 역시 비슷한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다 개학을 하였으니 학교 역시 비슷한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다. 감염에 대한 불안과 아직 발달 중이라는 아동 청소년의 미성숙함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나 소문의 영향을 잘 받을 수가 있다. 예를 들어 헛소문을 쉽게 퍼 나르기도 하고, 특정 대상에게 극도의 혐오나 비난을 쏟아 내거나 또래를 왕따시키기도 하는 등 서로 상처받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우리는 누구든지 무증상 감염자나 자가격리자가 될 수 있다. 감염되는 것은 무엇을 잘못해서가 아닌데 신종감염병의 특성상 항상 불안·공포심리와 스티그마·비난과 같은 현상이 쉽게 동반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경계하고 예방할 필요가 있다. 아동·청소년이 심리적으로 안정되어야 하는 것은 학업 수행 능력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사람은 적절한 긴장 속에서 학습능력이 극대화된다. 너무 불안한 상태에서는 이성적인 뇌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감정에 압도되어 집중력이 떨어지기 마련이고, 일이나 공부가 손에 안 잡히고 괜히 안절부절 할 수 있다. 학생들은 학업이나 진로 결정이 이루어지는 중요한 시기를 지나고 있다. 또한 입시 등을 앞둔 수험생들은 특히 예민한 시기이므로 학생들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부정적 영향을 너무 많이 받지 않아야 할 것이며, 부모와 교사들은 학생들을 도와야 할 것이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마스크 착용, 신체적으로 적절한 거리두기, 청결 유지와 손 씻기와 같은 감염병 예방을 위한 노력을 꾸준히 하도록 격려하고, 어른들이 모범을 보여야 한다. 또한 신종감염병 재난과 같은 위기상황에서 학부모와 가정통신문·전화·메시지 전달 등으로 원활한 의사소통체계를 이루는 것도 필요하다. 특히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고위험군 학생들이 있으면 빨리 알아채고 도움을 줄 필요가 있다. 안 좋은 일은 예방이 가장 좋고, 발생하였더라도 미리 알아채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그런 학생들이 인지되면 담임교사는 문제가 무엇인지 학생의 이야기를 경청해야 한다. 이때 선입견 없이 학생의 이야기를 관심 있게 듣고,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교사들은 도움을 줄 수 있는 자원이 무엇인지 미리 파악하는 등 정보를 충분히 가지고 있어야 한다. COVID-19와 관련된 정보는 학생정신건강지원센터 홈페이지(http://www.smhrc.kr/web/index)에 잘 나와 있으니 참고하여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불안하거나 상담이 필요한 학생들은 주로 학교 내 상담교사나 위(wee)센터와 같은 곳으로 의뢰하겠지만, COVID-19 확진자의 경우는 불안 고위험군인 동시에 신상정보 노출을 극도로 꺼릴 수 있기 때문에 학생정신건강지원센터로 연락(02-6959-4638)하여 COVID-19 학교정신건강서비스 지원단의 전화상담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 이 지원단은 대한신경정신의학회와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소속 전문의로 구성되어 있고, 교육부와 협의하여 이번 COVID-19 사태를 계기로 전화로 심리적·의학적 상담을 해주기 위하여 조직하였으며, 이미 생활치료센터 입소자들을 대상으로 상담을 한 경험이 있다. 특히 확진자나 자가격리자들을 대상으로 전문적인 상담을 제공할 수 있다. 꼭 COVID-19 관련해서가 아니라도 진료가 필요할 정도로 심각한 정서행동문제나 자·타해위험이 있는 학생은 병원에 데리고 가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COVID-19 사태 등의 이유로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면 급한 대로 학생정신건강지원센터로 의뢰하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전화상담을 받는 것을 추천한다. 신종 감염병은 언제든 또 온다 신종감염병 유행 시기에 등교 연기, 학교 폐쇄의 사태 속에서 간과되어서는 안 되는 문제가 하나 더 남아 있다. 학교는 단지 학업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대인관계, 성장과 발달을 돕는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다. 학교에 가기 싫어해서 등교가 스트레스가 되었던 일부 학생은 등교가 미루어지는 것이 오히려 안도감을 주었겠지만, 많은 학생은 학교생활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즐거움을 얻기도 한다. 특히 맞벌이로 부모가 바빠서 아이들 돌보기 어려운 가정이나, 가족들끼리 갈등이 심한 가정에서는 COVID-19로 등교가 미루어지고 폐쇄가 될 때 가정 내 갈등이 증폭될 수도 있다. 만약 이번 감염병 사태로 가장이 실직하였거나 경제적으로 타격을 입게 된 경우 부모의 스트레스가 가정폭력이나 아동학대의 방식으로 표출될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대부분의 가정과 학생들은 건강하게 이 위기를 잘 극복해 내겠지만, 일부 취약한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어려운 학생을 조기에 알아채고. 문제를 파악하여 도움을 주거나 도움을 청하여야 할 것이다. COVID-19 사태로 인해 미래 우리의 생활방식이 크게 바뀔 수도 있다고 한다. 이번 유행이 종식되더라도 또 다른 신종감염병의 출몰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예를 들어 이미 비대면 강의나 모임이 활성화되고 있고 단점도 많지만, 오히려 장점들도 이야기되고 있다. 이에 따라 화상회의 플랫폼에 쌓이는 자료는 엄청난 지적자산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자료의 권한 갈등에 대한 대책도 필요할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엄청난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는 속에서 우리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불편과 위험을 최소화하면서 어려움을 다 같이 힘을 합해 극복해 나감으로써 이번 COVID-19 유행이 긍정적으로 마무리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행정부가 입법부를 통제하고 지배하는 ‘행정국가’ 형태를 하고 있었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거치면서 입법부의 독립이 빠른 속도로 이루어졌고, 그 결과 교육정책 결정에서 국회의 역할은 점차 커지게 되었다. 그러자 국회가 구성될 때마다 교육계의 요구가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이중에는 서로의 의견이 일치하여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기 용이한 요구도 있지만, 상충하는 것들이 더 많다. 현대 한국 사회에서 국회의 존재 의의는 이러한 갈등을 풀어 우리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서 ‘식물국회’를 벗어나 보다 ‘생산적인 국회’가 되어 달라는 요구는 대화와 타협을 통해, 그리고 국민들과의 충분한 소통과정을 거치면서 교육의 막힌 곳을 뚫어주고, 교육이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데 필요한 기반과 지원책을 마련해달라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교육계 요구 봇물 ... 국회 입법 영향력 갈수록 커져 집권여당과 행정부의 당정협의에서도 정부 측이 주도하는 의제에 대해 정당이 대정부 견제 역할을 함으로써 양보안을 이끌어 내는 등 정당의 역할이 더욱 강력해졌다. 그 결과 교육분야에서 의원입법 제안 건수만이 아니라 비중 또한 크게 늘고 있다. 제15대에서는 교육입법안 88건 중 의원 제안이 50건(56.8%)이었는데 제18대(714건 중에서 의원 제안이 644건, 90.2%)부터는 그 비중이 90%를 넘어서고 있다. 의원발의 교육법률안이 증가한 요인 중 국회 외 요인은 민주주의 체제로의 정치체제 변화, 교육계의 위기와 갈등 증가 등 교육환경의 변화, 15대 국회에서부터 시작된 시민단체의 의원 평가 및 감시활동 강화, 언론 및 이익단체의 영향력 증가 등을 들 수 있다. 국회 내 요인으로는 국회의 입법기능을 충실히 하려는 방향으로의 국회의원 인식 변화, ‘일하는 국회’와 ‘정책중심 국회’를 표방하는 입법문화의 변화, 정당관계 변화, 입법제도 및 지원조직의 개선 등을 들 수 있다. 이와 함께 국회의 정부법안에 대한 비우호적 태도도 정부발의 법안이 줄어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정부법안이 국회 교육위와 법사위 울타리를 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지자 교육부가 정부발의대신 의원발의를 추진하는 ‘우회로’를 택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학력차별및 임금차별금지법 제정 서둘러야 이렇게 강해진 국회가 입법활동과 행정부 감시역할을 제대로 한다면 우리의 교육 미래는 밝아질 것이다. 국회가 그 역할을 제대로 하는 데 필요한 두 가지 바람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하나의 바람은 국회가 교육의 얽히고 맺힌 곳을 풀어주는 조정자가 되는 것이다. 집단 간의 갈등이 더욱 첨예해지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갈등 조정자로서의 국회 역할은 더욱 중요해지고 커지게 될 것이다. 정부와 국회 사이에 의견의 불일치가 발생하고 사안이 복잡하여 쉽게 조정되기 어렵고 시간 낭비의 소지가 있는 경우, 국민 여론이 양분되어 국민대표의 집합체인 의회가 일정한 판단을 행하는 것이 바람직한 경우에는 의원 입법이 대안이다. 21대 국회에서 여당이 특히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힘에 기댄 입법이 아니라 야당 및 사회 각 집단과의 갈등을 조정하며 평형상태를 이끌어 내는 것이다. 우리 교육계가 바라는 것은 국회가 그러한 역량을 발휘하는 기관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법이 아닌 시행령(때로는 입법 취지와 상치하는)에 의해 행정을 하는 ‘시행령 행정’ 추세가 지속되는 것은 여당의 책임이다. ‘시행령 행정’은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 법 개정을 시도했으나 야당의 반대로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입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갈등 조정의 기능을 수행하여 관련법을 개정할 때 교육계가 에너지를 보다 생산적인 방향으로 사용하게 될 것이다. 여러 교직단체와 시민단체가 21대 국회에 요구하는 입법 이슈 중에는 교육복지기본법 제정, 학력차별과 임금차별을 법적으로 금지하는 것 등 어느 정도 의견이 일치하는 것들이 있다. 만 18세 선거권 관련 보완 입법 주장을 비롯하여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된 이슈에 대해서는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하기를 기대한다. 이번에 여당이 내세운 총선 교육공약 중에는 사립학교법 개정 등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찬반이 극명하게 갈리는 예민한 사안이 포함되어 있다. 민감한 사안일 경우 거대여당의 힘을 바탕으로 강행하기보다는 전 국민 대상 토론회, 혹은 공론화과정을 포함한 국민들과의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추진하기 바란다. 만일 공감대 형성에 실패한다면 포기할 줄도 아는 것이 정치력임을 기억하기 바란다. 교원들에게 높은 국회 문턱 ... 50만 대표성 반영을 이러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데 필요한 전제 조건의 하나는 교원들의 국회진출 길을 적극적으로 개방하는 것이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직군별, 배경별 국회의원 구성비를 보면 법조인 비율이 절대적으로 많다. 법조인 출신 국회의원은 43명(19대), 49명(20대), 46명(21대) 등으로 거의 15%대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에 의사나 교원 등의 다른 전통적인 전문직 종사자의 비율은 과하게 낮다. 의사 출신 국회의원은 8명(19대), 3명(20대), 2명(21대)이다. 교사출신은 19대 2명(정진후, 도종환), 20대 2명(도종환, 박경미), 21대 2명(강민정, 도종환) 등이다. 도종환, 박경미, 강민정 의원 모두 초·중등교직에 있다가 출마한 것은 아니다. 참고로 해당 전문직종 종사자 수를 살펴보면 2020년 기준 법조인은 약 3만 명, 의사 약 13만 명, 초·중등교원 약 50만 명이다. 교원의 경우 그 숫자가 극히 적고, 법조인 및 의료인과 달리 해당 전문직종에 종사하면서 국회의원이 된 경우는 거의 없는데 그 이유는 현행법 때문이다. 공직선거법[53조 1항 1호(공무원), 7호(사립학교 교원)]에 따르면 초·중등학교 교원은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의원 선거에 입후보하려면 선거일 90일 전까지 그 직을 그만두어야 한다. 현직을 포기하고 입후보해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국회의원만이 아니라 지방의회의원 선거에도 나서는 것이 거의 어렵다. 이는 비전문가의 교육지배라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국회 교육위원 절반 초·중등 교원 출신으로 채우자 교육행정은 교육경력을 가진 교육전문가가 맡아야 한다는 믿음 아래 지방의 교육위원과 교육감 출마자격에 교육경력을 포함시켰었다. 이제는 제주도를 제외하고는 교육위원을 별도로 선출하지 않기에 지방 교육위원에 대한 그 제한은 무의미해졌다. 교육감만 교육(행정)경력 3년 이상인 자가 출마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제24조). 하지만 국가 차원의 교육입법권을 가진 국회 교육위원이나 교육부장관 모두 교육(행정)경력에 제한이 없다. 초·중등교원 출신만이 초·중등교육의 방향에 대한 전문적 식견을 가진 것이 아니며, 오히려 폭넓은 시각을 가진 사람이 국민의 대표로서 교육관련 입법 과정을 주도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따라서 굳이 초·중등교원 출신의 국회의원을 확보할 필요가 없고, 교육위원에 교원 출신이 없어도 관계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20대 국회를 되돌아보면 아쉬움이 크다. 경제나 국방 못지않게 교육도 전문성을 요하는 분야이다. 전문성 부족은 교육의 정치화, 교육정책 방향 혼란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문제를 완화시키는 하나의 방안은 국회 교육위원의 절반 정도는 교육경력을 가진 교사 출신으로 채우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동일한 교원으로 분류되는 교수의 경우처럼 초·중등교원도 공직 당선 후에 사표를 내도록 법을 바꿀 필요가 있다. 그리되면 교직경험을 바탕으로 교육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입법활동을 하는 교원 출신 지방의원과 국회의원 수가 지금보다는 더 늘어나게 될 것이다. 더 바람직한 것은 각 정당에서 지역구나 비례대표를 추천할 때 법조인 출신을 줄이고 대신 교원 출신자를 일정 비율 영입하도록 내부 지침을 마련하는 것이다. 덴마크와 독일 등 몇몇 선진국에서는 교사들이 지방의회나 국회에 상당수 진출하여 의정활동을 하고 있는데, 독일의 경우에는 심지어 교사 출신 의원이 81명(13%)이나 된다(김형태, 2020.01.21.). 법조인 출신의 국회의원 비율이 높은 국가보다는 교원 출신의 국회의원 비율이 더 높은 국회를 생각해볼 수는 없을까? 물론 교원의 자질에 따라 다르겠지만 우리 교원의 수준이 세계적임을 감안할 때 법조인보다는 교원의 비율을 높인다면 대화와 타협이 가능한 더욱 선진적인 국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21대 국회가 입법을 통해, 그리고 각 정당의 내규를 통해 이 부분을 해결한다면 교육관련 제반 이슈가 더욱 원활하게 해결되는 대한민국이 되리라 확신한다.
01 천마산 자락에 사는 H가 30년 전 옛 동료들을 초대했다. 해마다 모임이 있었지만 나는 참여를 하지 못했었다. 이번에는 꼭 좀 같이 오라는 H의 당부가 있었다. 아침에 C에게서 연락이 왔다. 자기 차로 다섯 사람이 가기로 했으니, 그 차를 이용하라고 한다. 약속 장소에 와서 차에 오르니 뒷좌석에 정말 오랜만에 보는 옛 동료들이 셋이나 앉아 있다. 나를 보고서 누군가 말한다. “세월이 그냥 지나가는 게 아니네.” 늙어 보인다는 말이다. 다른 한 여자 동료가 나를 달랜다. “박 교수, 하나도 안 변했어요. 그대로야. 세월이 거꾸로 가는가 봐요.” 나는 잠시 기분은 좋지만, 이내 이렇게 말한다. “고맙습니다. 근데 하하, 그 거짓말이 사실입니까?” 어쨌든 옛 동료들은 솔직하다. 오늘은 솔직함이 지배한다. 차가 서울 도심을 출발하면서, 우리는 30년 전 함께 일했던 시절의 추억담으로 돌아갔다. 추억담이란 자유스럽다. 그때의 그 시간 그 공간, 그 모든 관계에서 이제는 구애받을 게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늘은 솔직하기까지 하다. 차 뒷자리의 J 여사가 내 주변 사람에 관해서 묻는다. “아, 그 기획부 K 씨는 잘 있나요?” 나도 K를 본 지 오래이어서 딱히 아는 바가 없다. 그냥 잘 모르겠다고 말해 놓고 보니, 너무 건조하게 답한 것 같아서, 한 마디를 덧붙인다. “아, 그 친구, 그때 그랬잖아요. 무언가 물 흐르듯 유창하게 이야기할 때는 훅하고 빨려들었다가, 나중에 집에 와서 생각해 보면 살짝 속은 느낌이 들곤 했었는데….” 별 악의 없이 우스개처럼 말했지만, 그렇게 뱉어놓고 보니 나야말로 K에 대해서 살짝 미안해지는 마음이었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모두 동감이라는 듯 호응의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맞아! 맞아! 어쩜 그렇게 딱 맞아떨어지는 표현이지요.” 나는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의 적극적 반응에 고무되어, K에 대한 말 하나를 덧붙인다. “한때 교육자료 사업을 했던 모양인데, 잘 안 됐던가 봐요.” 여기까지만 하고 말았어야 했다. 근데 뒷자리 사람들이 무언가 K에 대한 부정적 이야기를 즐기고 싶어 한다는 걸 눈치채었다고나 할까. 좌중의 화제를 내가 주도한다는 도취감 같은 것이 작용했다고나 할까. 나는 또 한 마디를 덧붙인다. “처음에는 잘 되었다는데, 믿음을 주지 못하니까 결국은 접었다지요.” 어라! K를 흠잡겠다는 생각이 아니었는데, 어쩌다 이야기가 이렇게 되어버렸지. 나는 속으로 나를 쥐어박았다. 그런데 사람들은 내 말에 크게 고무되었다는 듯이, 그동안 참고 있었다는 듯이, 말을 터놓는다. 추억담을 빙자하여 K에 대한 험담을 꺼낸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하다. 서로 맞장구로 화답하며 K의 허물을 들추어, 함께 즐긴다. 나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당사자가 없는 자리에서 험담은 권장할 일이 못 된다. 이럴 때 험담은 그걸 맨 먼저 꺼낸 자의 책임이 크다. 그런 생각이 묵직하게 내 마음자리에 차고 올라왔기 때문이다. 불가에서는 사람의 죄업(罪業)을 입으로 짓는 구업(口業), 몸으로 짓는 신업(身業), 마음으로 짓는 의업(意業) 등, 세 가지로 구분하여 말한다. 오늘 나는 구업 즉, 입으로 짓는 죄업을 쌓았다. 그뿐인가 사람들을 유혹하여 그들도 나쁜 구업을 짓게 한 죄까지 있다. 02 이 대목에서 ‘진언(眞言)’이라도 외워서 마음 안의 나쁜 기운들을 몰아내고 싶었다. ‘진언’은 불교 용어이다. 글자 뜻 그대로는, ‘참될 진(眞)’에 ‘말씀 언(言)’이니, ‘참된 말’이다. ‘참된 말씀’이니 이는 곧 ‘부처님의 말’이라는 뜻으로 통하게 되었고, 불자들은 이 진언을 외면 술법을 부릴 수 있고 귀신을 쫓아내는 신통한 법력이 생긴다는 믿음을 갖는다. 진언은 ‘주문(呪文)’과 같은 뜻의 말이 되었다. 진언이라면 불교 천수경의 첫머리에 나오는 ‘수리수리 마하 수리 수수리 사바하’를 누구나 기억할 것이다. 나는 이 진언(주문)을 초등학교 때 만화책에서 접했다. 선한 주인공이 악한 상대를 물리치려 할 때, 주문을 거는 장면이면, 어김없이 ‘수리수리 마하 수리 수수리 사바하’라가 등장했다. 발음하기도 쉽고 리듬감도 있고, 묘한 중독성도 있다. 그래서 놀이를 하거나 장난을 칠 때도 이 주문을 자주 사용하였다. 그러나 그때는 아무 뜻도 모르고 장난처럼 중얼거렸으니, 일종의 ‘무의미 철자’인 셈이었다. ‘수리’는 ‘길상존(吉祥尊, 좋은 조짐을 주실 존자)’을 뜻하고, ‘마하’는 ‘크다’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마하수리’는 ‘대길상존’이라는 뜻이 된다. ‘수수리’는 ‘지극하다’, ‘사바하’는 ‘원만한 성취’의 뜻이다. 즉,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는 ‘길상존이시여 길상존이시여, 지극한 길상존이시여 원만 성취하소서’가 된다. ‘길상존’에서의 ‘존(尊)’은 부처님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길상스러운 말을 하라’는 의미도 된다. 타인을 이롭게 하는 말, 아름답고 훌륭하고 멋진 말, 남이 듣기 좋은 말, 칭찬하는 말을 함으로써 나쁜 구업을 씻으라는 의미도 되는 것이다(불교신문 http://www.ibulgyo.com 2016.6.29.). 그래서 이 진언을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이라 한다. ‘구업(입이 지은 죄업)을 깨끗이 하는 진언’이라는 뜻이다. ‘길상스러운 말’의 핵심은 축원과 찬탄이다. 상대가 잘 되기를 축원하고, 그의 사람됨을 찬양하여 높여주는 말을 하는 것, 이것이 이 진언의 참된 의미이다. 상대를 축원하는 말이라면 모두 수리의 뜻이 된다. 예컨대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를 외면서, 상대의 건강을 축원한다면, ‘건강하세요, 건강하세요, 많이 건강하세요, 지극히 건강하세요, 그 건강이 영원하세요’라는 뜻을 빌어드린 것이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내가 입으로 범했던 죄업을 장하게 하는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드는 불자는 경전을 독송할 때, 먼저 이 정구업진언을 외운다. 경전에 담긴 참뜻을 알고, 거짓이 아닌 진정한 깨달음을 얻고, 어리석음을 넘어서 진정한 해탈을 향하기 위해서는, 먼저 입으로 지은 죄업을 씻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구업진언을 외움으로써 그 동안의 잘못된 습관, 더럽혀진 언어생활을 깨끗이 씻어 내리는 것이다. 나는 여태까지 이 진언의 뜻도 제대로 감득하지 못하고 살았으니 내 무지와 어두움(未明)도 참으로 아득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내가 쌓아 온 내 구업의 아득함도 돌아 보였다. 03 대부분의 나쁜 구업은 분노나 질투를 다스리지 못하는 데서 생긴다. 설령 그 분노가 공적인 분노라 하더라도, 증오를 선동하고, 미움을 ‘학살의 심리’로 몰고 가게 하는 것이라면, 나쁜 구업을 천지에 쌓는 일이다. 이 다스림이 쉽다면 누군들 위대한 지도자가 되지 못할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가상한 인간적 노력을 보여 주는 인물들이 없지 않다. 링컨이 죽고 40년 뒤 1905년경, 링컨 관련 문서들이 공개되었을 때, 그가 쓴 이상한(?) 편지들이 세상에 알려졌다. 링컨은 동료에게 화가 나면 ‘뜨거운 편지(hot letter)’라는 걸 쓰곤 했다. 자신의 분노를 솔직하게 토로한 편지였다. 다 쓴 편지는 책상 한쪽에 두고, 분노가 가라앉아, 사태를 냉정하게 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렸다. 링컨은 자신의 편지 하단에, ‘발송 금지 서명 금지’라고 써 놓았다. 분노를 인정하지 않을뿐더러, 전달하지 않으려는 노력이었다. 한번은 국방부 장관 스탠턴이 휘하의 장군에게 격노의 감정을 품고 있음을 링컨이 알았다. 스탠턴이 장군을 호출하려 하자, 링컨은 “그런 생각을 편지로써 질책하면 어떻겠습니까?”라고 제안했다. 스탠턴이 편지를 쓴 후 링컨에게 읽어 주었다. 링컨이 말했다. “멋진 편지입니다. 스탠턴 장관, 이제 그 편지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떻게 하기는요, 지금 바로 보내겠습니다.” 링컨이 말했다. “나 같으면 그냥 쓰레기통에 집어넣겠습니다.” 스탠턴은 편지 쓰는 데 이틀이나 걸렸다며, 링컨을 쳐다보았다. 링컨이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장관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까! 기분도 훨씬 좋아졌고요. 그럼 된 게 아닐까요. 그러니 편지는 버리자는 것입니다.” 스탠턴은 잠시 투덜거렸지만 결국 편지를 쓰레기통에 버렸다(Doris K. Goodwin, Leadership: In Turbulent Times). 링컨의 ‘뜨거운 편지’는 일종의 ‘진언 효과’를 내었다 할 수 있다. 나쁜 구업 짓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고 있지 않은가. 혼돈의 시대, 리더의 탄생(Leadership: In Turbulent Times)의 저자 도리스 컨스 굿윈(Doris K. Goodwin)은 이를 링컨의 남다른 리더십으로 평가하였다. 나만의 진언 하나씩은 품고 살아야겠다.
예기치 않은 바이러스로 인해 4차 산업혁명 시대가 갑작스럽게 눈앞에 다가오게 되었다. 도서관 사서교사도 마찬가지로 조금 빠르게 다가온 현실에 적응하여 독자에게 독서의 재미와 창의적 사고를 키울 수 있도록 수업을 통해 안내하는 것이 필요하다. 맨 처음 ‘0과 1로 이루어진 디지털 이진법의 세계에서 어떻게 재밌게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다. 학생들이 독서의 감을 잃지 않도록 ‘0과 1의 세계’에서 책으로 정보를 접하고 집에서도 정보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독서법을 소개한다. 온라인 수업 준비하기 온라인 수업을 준비하면서 가장 걱정되는 것은 어떤 방법을 사용하여 녹화할 것인가, 어떤 편집 프로그램을 사용할 것인가이다. 온라인 수업이라는 처음 만나는 수업방식에 적응하기 위해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알아보았다. 그중 가장 대표적으로 사용되는 프로그램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수업 녹화하기 ● 수업 편집하기 [PART VIEW] ○ 온라인 수업하기 온라인 수업을 위해서는 수업에 알맞은 책을 선택하고, 그에 맞는 계획을 체계적으로 세워야 한다. 영상을 촬영하고 편집하는 것이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들기 때문에 계획을 체계적으로 세우지 않으면 1시간짜리 동영상을 촬영하는데 5배 이상의 시간이 들 수 있다. 따라서 수업계획을 세운 뒤, 약간의 콘티를 짜면 더 좋다. 수업 진행을 위해 17차시 계획을 먼저 세운 후, 매주 그에 맞는 활동지와 수업을 촬영했다. 촬영시간은 20분 정도 영상을 만들 때 보통 1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생각보다 설명이 부실하거나, 발음이 잘 들리지 않으면 다시 촬영해야 하는 수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간을 넉넉하게 잡고 촬영을 시작하는 것이 좋다. 책은 학생들에게 구입하도록 안내해 주고 교사가 직접 낭독하면서 학생들과 함께 읽는다고 생각하고 수업을 진행했다. 낭독 시에는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책을 천천히 읽어주어야 한다. 책마다 낭독해도 저작권에 위반되는 분량이 다르기 때문에 반드시 출판사에 확인해 보아야 한다. ● 수업 계획안 ● 과제 평가 과제는 주로 활동지를 작성하도록 하거나, 자료를 조사하는 것 위주로 제시했다. 온라인 수업의 장점은 넉넉하게 시간을 갖고 학생 스스로 자료를 조사하여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을 연습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수업시간 내에 조사하도록 하는 것보다 개인차에 맞게 시간을 사용하여 보고서를 쓸 수 있기 때문에 학생들은 여유를 가지고 과제를 해결을 할 수 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학생들이 다양한 정보자원을 모르기 때문에 다양한 정보자원을 함께 소개해주지 않으면 흔하게 사용하는 정보자원에서만 조사가 이루어져, 편협한 시각을 갖게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반드시 집에서 활용할 수 있으면서 다양한 정보자원을 함께 소개해주어야 한다. 과제 제출은 이메일이나 오픈 카카오톡 채팅방, 구글 공유드라이브, e-학습터 게시판 등 다양한 방식을 사용해 온라인으로 과제를 제출하도록 할 수 있다. 혹은 등교해서 한 번에 제출할 수 있도록 학생들에게 과제 목록을 안내하여 과제를 빠트리지 않고 챙길 수 있도록 하면 더욱 좋다. ○ 0과 1의 세계에서 책 읽기를 진행하며 갑작스러운 온라인 수업 상황에서 당황스러운 것은 교사나 학생 모두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적응해서 또 다른 새로운 교육방법을 찾아 학생들을 생각하게 하고 바른길로 이끄는 것 또한 교사가 해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 사서교사로서 학교 안에서뿐만 아니라 학교 밖에서도 책을 통해 세상과 만날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을 고민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우리 앞에는 늘 새로운 위기가 다가왔다. 하지만 그런 위기 상황에서도 임기응변의 능력을 발휘하는 좀 더 유연한 학교도서관이 될 수 있다면 4차 산업혁명도, 바이러스도 언제든 우리는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도서관은 성장하는 유기체라는 말이란 그런 의미가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언제나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래왔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