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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한국교육신문 한병규 기자] 충북교총(회장 서강석)은 충북도교육청이 교육전문직원 중 일부 인원을 전국 단위로 모집하겠다고 밝힌 것과 관련해 “지역 인재들에 대한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라고 규탄했다. 충북교총은 3일 성명을 내고 “교육전문직원의 선발은 교육의 중요 정책에 관여하는 책임자를 채용하는 중요한 일”이라며 “일부 인원의 전국 단위 확대 모집은 충북에서 근무해 온 교원들의 자존감 손상과 사기 저하를 초래하는 일이라 판단한다”고 철회 및 재발방지를 촉구했다. 도교육청은 이번 전문직 선발에서 교육통계 분야 1명, 교육평가 분야 1명, 진학지도 분야 2명 등 4명을 전국 단위로 확대해 모집하겠다는 계획을 공개한 상황이다. 이에 대해 충북교총은 “도내 학생 수 감소, 신규 교사채용 감소, 타 시·도 전출 희망자 증가 등 교원들의 사기 저하 문제와 맞물려 장기적으로 볼 때 충북교육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면서 “도내에 근무하는 많은 교원 중 교육통계, 교육평가, 진학지도를 맡을 선생님 1~2명이 없어 해당 장학사·연구사를 전국단위로 전형해야 할 정도로 충북의 인재가 없다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지역 실정을 잘 아는 교육 전문 인재가 지역 특성에 맞는 교육시책을 추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지역교육 실정을 전혀 모르는 외부 인사, 또는 기회주의적 성격의 외부 교원이 충북교육 현장에 투입된다고 할 때 현장의 적응은 물론 호응도 어려울 것이고 기대하는 성과 보장도 어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도교육청이 수년 전부터 이 같은 예외적으로 선발된 인원들이 당초 선발 목적과 방침에 부합하지 않는 업무에 종사하고 있는 부분이 있기에 ‘특혜인사’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충북교총은 “교육청은 선발된 인원과 선발되는 인원이 선발 목적에 맞게 적재적소에서 임무를 수행하도록 즉각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1. 8월 퇴직자 성과상여금 지급 결정 1) 인사혁신처「공무원 보수 등의 업무지침(인사혁신처 예규 제84호, 2020.1.22)」의 ‘성과상여금업무 처리 기준’ 개정으로 8월 퇴직 교원에 대한 성과상여금 지급 기준 마련 □ 기존 - 8월말 퇴직 교원의 경우 성과급 미지급(6개월 근무에 대한 성과급 수령 불가) - 2월말 퇴직 교원의 경우에만 1년치 성과급 지급 □ 개정 이후 - 8월말 퇴직 교원의 경우 6개월 근무에 대한 성과급 지급 - 2월말 퇴직 교원은 기존과 동일하게 1년치 성과급 지급 「공무원 보수 등의 업무지침」(493쪽 참고) 안내사항 ○ 지급기준일 이전 평가대상 기간 중 퇴직한 공무원에 대한 성과 정보 관리 - (행정사항) 지급기준일 이전 퇴직한 공무원 중 실제로 근무한 기간이 2개월 이상인 자에 대해서는, 퇴직 시점에 해당 기관의 성과상여금 지급 등급 평가를 위해 필요한 자료 일체를 작성·관리 필요 ※ 2020년 1월 1일 이후 퇴직하는 공무원을 대상으로 2021년 성과상여금 지급 시부터 지급대상에 포함 예정 2) 교육부 ‘2020년도 교육공무원 성과상여금 지급 지침’ □ 지급기준일: 2020. 2. 29 (평가 대상기간: 2019. 3. 1 ~ 2020. 2. 29) □ 지급 시기: 2020. 3월 중(시·도별 상이) □ 전년 대비 주요 변경사항 - 2020. 1. 1 이후 퇴직하는 공무원 대상, 2021년 성과상여금 지급 시부터 지급 대상에 포함 2. 기간제교원 계약기간 내 봉급 재산정 가능 1) 「기간제교원의 봉급 지급에 관한 예규」제정 (2020. 2. 24) -「공무원보수규정」[별표11] 개정(2020. 1. 7)으로 기간제교원의 봉급 지급 기준의 대강을 정하고 구체적인 기준은 교육부장관에게 위임함에 따라 해당 예규를 제정해 구체적 기준을 정하게 됨. 2) 주요 제정 내용 □ 기존 - 기간제교원은 계약기간 중에는 호봉 재획정 사유가 발생하더라도 재획정하지 않고 계약 당시 호봉으로 고정 지급 - 퇴직 교원이 기간제교원으로 채용될 경우 봉급은 최대 14호봉으로 제한 □ 제정 이후(2020. 1. 1부터 시행) - 기간제교원이 1급 정교사 자격취득에 따라 자격 변동이 있는 경우, 계약 기간 내 봉급을 재산정할 수 있도록 제정 - 새로운 경력의 합산을 신청한 날이 속하는 달의 다음달 1일에 합산해 재산정한 봉급을 고정급으로 지급(※1급 정교사 자격을 취득했으나 2020년 1월 1일부터 2020년 1월 31일까지 새로운 경력의 합산을 신청하지 못한 사람이 이 예규 시행 후 1년 이내 ‘자격취득에 따른 경력 합산신청서’를 작성해 제출한 경우에는 2020년 1월 31일에 자격취득에 따른 새로운 경력의 합산을 신청한 것으로 간주) - 연금수령과 보수의 이중 수급 가능성이 없는 기간제교원에 대해 14호봉 제한 해제 제4조(봉급의 제한) 기간제교원의 봉급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공무원보수규정」[별표11]의 14호봉을 넘지 못한다. 1. 10년 이상 근무하고 퇴직하여「공무원연금법」,「사립학교교직원 연금법」및「군인 연금법」에 따라 퇴직연금 일시금을 지급받거나, 연금수급이 가능한 개시 연령에 도달하여 퇴직연금을 지급받게 되었을 때 2. 「국가공무원법」제74조의2,「지방공무원법」제66조의2,「사립학교법」제60조의3에 따른 명예퇴직을 하였을 때 3. 「국가공무원법」제74조,「지방공무원법」제66조,「교육공무원법」제47조에 따른 정년 으로 퇴직하였을 때
나는 ‘응팔(응답하라 1988) 세대’이다. 사회는 우리를 ‘X세대’라고 불렀다. 더 이상 대학에서 ‘사상논쟁’을 하지 않았고, ‘데모’도 하지 않았다. 그저 워크맨으로 ‘서태지와 아이들’의 노래를 들으며 우리가 살아온 시대적 모순에 공감했다. 막내딸은 2000년 이후에 태어난 ‘Z세대’이다. 놀이문화도, 사고방식도 완전 딴판이다. 때론 당황스럽고, 때론 부러우며, 때론 걱정되기도 한다. 하지만 어쩌랴. 시대가 변했고, 그 변한 시대에서 우리 아이는 지극히 ‘평범’한 보통 아이이며, 그 변한 시대를 살아내야 하는 것을. 지금 학교 현장에는 2000년 이후 태어난 ‘Z세대’ 아이들로 빼곡하다. 올해 고등학교 3학년은 2002년생, 초등학교 입학생은 2013년생이다. 게다가 ‘Z세대’의 출발 주자인 1995년 이후 출생한 교사도 교단에 발을 디디고 있으며, ‘자유분방함’의 끝판왕인 ‘이해찬 1세대’가 30대로 진입하면서 왕성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학부모 역시 역사상 가장 진보적 세대라고 불리는 ‘X세대’가 주도권을 쥐기 시작했다. 가끔 보이던 60년대 후반 학부모는 자취를 감추고 있다. 매일 ‘Z세대’와 섞여 생활하고 있는 교사가 ‘Z세대’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아마도 학교생활의 만족도가 낮아질 것이다. 나 역시 최근 몇 년 사이 학생들 만나는 것에 극도의 피로감을 느낄 때가 많았다. 아이들이 이상해진 것인지 아니면 내가 갱년기 증상이 온 것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학교생활이 힘들었다. 하지만 곧 알게 되었다. 대한민국에서 함께 살고 있지만, 나와 아이들은 전혀 다른 세상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것을. 언제까지 “쟤네 왜 저래? 맘에 안 들어”라고 ‘마땅치 않은 눈빛’으로 볼 수만은 없는 노릇임을. 이해하고, 품으며 ‘공존의 길’을 찾아야 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Z세대는 어떤 특성이 있을까? 어디까지 이해하고, 교육자로서 지도해야 할까? Z세대, “도대체 누구냐, 넌?” Z세대를 잘 묘사하고 있는 책 90년대생이 온다에는 유명한 구절이 나온다. B스타트업의 부장은 매일 정시에 딱 맞춰 출근하는 신입사원을 불러 10분 일찍 다니는 것이 좋다고 충고했다. 그러자 신입사원은 반문했다. “10분 일찍 오면 10분 일찍 가도 되나요.” ‘버릇없고 개념 없어’ 보이는 이 말속엔 ‘Z세대’의 여러 가지 특성들이 잘 나타난다. 우선 개인주의적이다. ‘자신의 삶’이, ‘자신의 취향’이, ‘자신의 가치’가 ‘집단의식’이나 ‘협력’보다 더 소중하다고 여긴다. 전체를 위해 개인의 희생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기성세대는 물론 ‘열정페이’로 희생을 강요당했던 ‘N포세대’와도 사고방식이 다르다. 열정페이는 부당하다고 당당히 거부하는 그들이다. 또한, 개인의 취향을 존중하기 때문에(일명 ‘개취존중’) 타인의 취향도 존중할 줄 안다. 이들에게 취향은 단순히 호불호가 아니다. ‘자신의 정체성’이다. 그래서 자신의 취향을 저격한 것에는 시간과 비용을 아낌없이 투자한다. 온·오프라인에서 끊임없이 탐색하며 ‘자신만의 취향’을 갖기 위해 노력한다.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 음료)’, ‘얼죽숏(얼어 죽어도 숏패딩)’ 등 남들과 똑같은 것을 거부하고, 나만의 것을 추구하고 싶어 한다. 태어나지도 않았던 시대인 7080에 열광하는 것도, BTS(방탄소년단) 멤버나 노래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도 모두 자신의 ‘취향 저격’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대신 ‘나와 다른 그들’과는 더 이상 사회적 관계를 맺지 않는다(일명 ‘손절’한다). 굳이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불편함을 참아가며 자신의 시간과 감정을 투자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과 같은 취향을 가졌다면 SNS를 기반으로 온·오프라인을 구분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취향을 공유하거나 소통한다. 하지만 ‘끈끈한 모임’은 거부한다. 살짝 발만 담갔다가 아니다 싶으면 미련 없이 발을 뺄 수 있는 느슨한 관계를 선호한다. ‘가취관(가벼운+취향 위주의+관계)’이라는 신조어가 Z세대의 대인관계 방식 기준을 제시해준다. 학생들에게 친구 관계의 소중함, 우정과 화합 등을 이끌어내기 위해 준비한 학급운영방법이 먹혀들어 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펭수도 ‘Z세대’, 거침없이 솔직하다 두 번째는 솔직한 감정표현과 소신 발언이다. 더 이상 ‘좋은 게 좋은 거니까, 내가 참는다’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기성세대가 ‘모난 돌이 정 맞을까 봐’ 앞에서는 웃으며 ‘Yes’라 말하고, 뒤에서는 ‘뒷담화’를 했다면 ‘Z세대’는 눈치 보지 않고 ‘No’라고 말한다. 감정표현도 솔직하다. 타인을 배려한다는 이름으로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슬프면 울고, 기쁘면 환호하고, 기분 나쁘면 분노를 표출하는 등 이성보다 감성에 충실하다. EBS 연습생 ‘펭수’에게 열광하는 가장 큰 이유 역시 ‘거침없는 솔직함’에 있다. ‘펭수’는 자기감정을 드러내는 것도 거리낌 없다. 왕따 가해자를 지구 끝까지 쫓아가서 한 대 때려주겠다고 상담해주는가 하면, “화해했습니다. 하지만 보기 싫은 건 똑같습니다”라고 말한다. “눈치 챙겨!”를 외치며, ‘눈치 보지 말고 원하는 대로 살아라’라고 조언한다. 거침없는 솔직함에 유쾌함과 통쾌함을 넘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이러한 의식은 Z세대의 도덕성과도 맞닿아 있다. 이미 미투, 최순실 게이트, 불법 이민자 강제 추방 금지, 조국 사태 등 굵직굵직한 사회적 이슈에서 보았듯이 ‘공정’하지 못한, ‘부당한’ 것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의식이 꽤 높으며, 국민청원에 적극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낸다. 이른바 ‘소피커(所(바 소)/ 小(작을 소)+Speaker(말하는 사람)이라는 뜻)’가 되어, ‘다수의 의견과 다른 생각’을 당당하게 말하고 있다. 하지만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은 서툴다. 그들을 이해하기보다는 ‘손절’하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 아이들의 솔직한 감정표현이 우리에겐 당황스럽고 불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들의 감정표현에 익숙해져야 한다. ‘개념 없고, 버르장머리가 없는 것’이 아니라 ‘아닌 걸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는’ 복잡함을 벗어던지고 나의 소신을 거리낌 없이 말하고 있을 뿐이라고 주문을 외우면서. 비싼 배달료? 직접 가는 시간이 더 아깝다 세 번째는 합리성이다. ‘정시 출근 정시 퇴근’은 당연한 권리이다. 오히려 정해진 근무시간이 8시간이라면, ‘10분 일찍 오면 10분 일찍 가는 것’이 합리적 계산법이다. 10분을 먼저 와야만 하는 ‘합리적 이유’ 없이 ‘신입사원이기 때문에 상사보다 먼저 출근해야 한다’는 ‘비합리적 이유’라면 받아들이기 어렵다. 비효율적이고 비합리적인 것을 싫어하는 ‘Z세대’ 사고방식은 이미 우리 생활 속에 자리 잡았다. 바로 ‘가성비’이다. 이제 무조건 싸다고, 유행한다고 소비하지 않는다. 가격·시간·트렌드·순간의 즐거움 등 다양한 조건에서 만족을 느끼는 합리적 선택을 한다. 한마디로 다양한 정보력으로 짧은 시간에 ‘최고의 결과’를 얻어내려고 하는 ‘가장 똑똑한 세대’인 셈이다. 하지만 가짜뉴스와 광고성 정보가 넘쳐나면서 무조건 정보를 받아들이기보다는 ‘팔로인(Follow(따른다)+人(사람)이라는 뜻의 신조어)’하기 시작했다. 시간을 낭비하며 정보를 검색하기보다는 전문성 있고 진정성 있는 정보를 주는 사람을 믿고 따르는 것이다. 배달앱이 인기 있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시간을 투자해서 맛집을 직접 가는 것보다 검증된 맛집의 메뉴를 편하게 먹는 편이 가성비가 높다는 것이다. 비록 비싼 배달비를 주더라도 말이다. Z세대는 결코 집단생활을 싫어하지도 적응 못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집단 내에서 ‘핵인싸’가 되기 위해 노력하며, 집단의 정해진 규칙에서 벗어나는 이기적인 행동을 싫어한다. 그래서 학급에서 민폐를 일으키는 행동이나, 한 사람의 잘못으로 학급 전체가 페널티를 받는 상황을 못 견뎌 한다. 즉, 집단생활을 못 하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이지 못한 상황을 싫어하는 것이다. 따라서 시대의 흐름에 맞게 교사와 학생이 서로 상생할 수 있는 대안적 학교문화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 ‘꼰대’로 기억되지 않기 위해 어느 시대에나 ‘신세대’는 존재한다. 그리고 그들은 늘 ‘골치 아픈’ 존재들이다. 그중에서도 최근 등장한 ‘Z세대’는 좋게 말하면 ‘똑 부러지는 합리성’을 지녔고, 나쁘게 표현하자면 ‘공감 능력이 부족한 개인주의적 성향’을 보인다. 가장 뚜렷한 특징은 ‘우리’보다는 ‘자신’의 삶을, ‘미래’보다는 ‘현재’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하지만 ‘Z세대’가 원하는 삶 역시 기존 세대가 바라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Z세대’ 역시 모든 세대가 그러했듯이 ‘공동체적 삶’을 꾸리고 싶어 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고 싶어 하지 않으며, ‘안정적’이고 ‘행복한’ 삶을 살기를 원한다. 오히려 급변하는 사회·경제 상황에 맞서 ‘살아남기 위해’ 그 어떤 세대보다도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기존 제도와 사회가 강조하던 ‘가치’로는 도저히 살아가기 불가능해졌기 때문에 말이다. 안타까운 것은 포털사이트에 ‘Z세대 특징’을 검색하면 수없이 많은 정보가 쏟아져 나오지만, 대부분 광고성 정보이거나 너무나 단편적이어서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 교사 앞에 놓인 시대적 과제인 것 같다. 기업들이 최대 소비자인 Z세대를 잡기 위해 다양한 연구를 하는 것처럼, 우리도 매일 만나는 Z세대를 이해하기 위해 심호흡하고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이해하지 못한다면 영원히 ‘꼰대’로 남아있을 수도 있다.
영화 ‘베테랑’에서 유아인이 연기한 조태오는 “문제 삼지 않으면 문제가 안 되는데…. 문제를 삼으니까 문제가 된다 그랬어요”라고 했다. 학교폭력 관련 민원이 그렇다. 문제를 안 삼으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데 문제를 삼으면(민원이 제기되면) 문제가 된다. 교육청 감사에서 지적을 받은 학교폭력 사안처리 부적정 사례를 살펴보자. 학교폭력 선도위원회 처리 및 학교생활기록부 삭제 부적정 ● 인성교육부장 교사 ○○○은 2014년 3월 17일에 접수된 학교폭력사안(건명: ‘장난으로 시작된 괴롭힘’, 대상자: 2학년 ○○○, 2학년 ○○○)을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에서 심의하지 아니하고 선도위원회를 개최하여 ○○○는 교내봉사 5일, ○○○은 교내봉사 3일로 징계처분한 사실이 있고,(선도위원회 회의록 없음, 징계대장에서 징계처분내용 확인) ● 2015년 2월 9일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를 통해 2014학년도 졸업생에 대한 학생부 학교폭력조치사항[대상: 3학년 ○○○(제3호, 제5호, 제6호 처분), 3학년 ○○○(제8호 처분)] 기록 삭제여부를 심의받으면서, 학생부 학교폭력 조치사항 삭제를 위한 심의 필수자료(학급담임교사 의견서, 가해학생 특별교육 이수증, 학부모 특별교육 이수증, 자기의견서)를 구비하지 않았고, 심의보고서도 작성하지 아니하고 담임교사 및 해당학생, 해당학생 학부모가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에 참석하여 진술한 내용만으로 심의를 받은 후 학교폭력조치사항을 삭제 처리한 사실이 있다. ● 교장 ○○○, 교감 ○○○은 위와 같이 인성교육부장 교사 ○○○이 학교폭력 관련 업무를 소홀히 하였음에도 이를 지도·감독하지 못한 사실이 있다. 학교폭력 사안은 반드시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에 따른 절차대로 처리하여야 한다. 학교폭력 사안을 선도위원회에서 처리하는 것은 「학교폭력 사안처리 가이드북」에서도 금지하는 사안처리 절차 위반 사항이다. 특히 특목고나 자사고에서 학교생활기록부 기재를 회피하기 위하여 학교폭력을 선도위원회에서 처리하는 사례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법률 개정으로 학교장 종결 절차가 생겼으며, 2020학년도부터는 1, 2, 3호 조치는 1회에 한하여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하지 않도록 「학교생활기록 작성 및 관리지침」이 개정될 예정이므로 학교폭력 사안을 선도위원회에서 처리하는 사례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위 사례에서는 학교폭력으로 접수된 사안을 선도위원회에서 심의하여 관련 학생들에게 각각 교내봉사 5일, 교내봉사 3일의 징계를 하였다. 아마도 쌍방폭력이라 서로 상대방에 대한 조치를 원하지 않아 선도위원회에서 처리한 것으로 보인다. 2019학년도까지의 관련 지침에 따르면 학교폭력 가해학생 조치사항은 모두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된다. 다만 1, 2, 3, 7호는 무조건(횟수·시기와 관계없이) 졸업과 동시에 삭제되며 4, 5, 6, 8호는 졸업 2년 후 삭제가 원칙이나, 요건을 충족하면 자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졸업과 동시에 삭제 가능하다. 심의 요건은 ①졸업 전까지 6개월이 경과되었을 것 ②학교폭력 재발이 없을 것 ③필수제출자료(담임교사 의견서, 가해학생 특별교육 이수증, 보호자 특별교육 이수증, 자기의견서)의 누락이 없을 것이다. 위 사례에서는 필수제출자료를 구비하지 않고 심의보고서도 작성하지 않고 학교생활기록부 기재사항을 삭제하였다. 위 학교는 두 가지 사항으로 교장, 교감, 인성교육부장이 ‘주의’ 처분을 받았다. 학교폭력 축소·은폐 및 무고 ● 평소 장애를 가진 자녀가 같은 학급 학생들로부터 지속적인 괴롭힘 피해를 입은 것에 대하여 해당학교 교사이자 학부모인 피해여교사(이하 ‘피해여교사’라 한다)는 교장에게 학교폭력 신고의사를 표명하였으나, 교장의 만류로 신고를 하지 못했다. ● 하지만 자녀의 고통이 지속되자 피해여교사가 더 이상 견디지 못해 공식적으로 학교폭력을 신고하자 학교폭력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교장·교감이 부적절한 영향력을 미친 사실은 물론 일부 동료교사들도 교장·교감의 눈치를 보고 학교폭력 조사를 소홀히 하였으며, 심지어 피해여교사를 성희롱·성추행 가해자로 무고하여 학교폭력 신고를 무마하려고 한 정황까지 모두 확인하였다. ● 특히 피해여교사를 성희롱·성추행 가해자로 무고한 것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담임교사와 연인관계로 지내는 남자 A 교사는 자신의 연인인 담임교사가 피해여교사의 학교폭력 신고로 인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분노하여 교장에게 피해여교사를 대상으로 성고충을 거론했다. ● 이에 교장이 ‘교장은 성희롱 신고의무자다. 교장이 인지하면 접수된 것이다. A 선생님의 의견을 존중한다’며 남자 A 교사에게 피해여교사를 대상으로 성고충 신고를 하게끔 부추기는 것을 시작으로 교장·교감 등 관련자들이 조직적으로 가담하여 남자 A 교사는 3차례에 걸쳐 자신에게 유리하게 목격자를 변경하며 고충신고서를 만들었다. ● 또한 담임교사는 교장·교감의 지시에 따라 고충신고 접수기안을 무려 4차례에 걸쳐 회수하거나 재작성하였으며, 사실과 다른 허위 상담일지를 작성하여 근거자료로 이용했다. ● 결국 이러한 과정을 거쳐 교감이 피해여교사에게 전화하여 피해여교사가 성희롱·성추행 가해자로 접수되었음을 통보하여 피해여교사가 학교폭력 신고를 취하하게 하거나 합의를 하게 할 목적으로 사건이 전개된 사실을 확인하였다. ● 해당 학교는 교원이 모두 12명으로서, 이중 피해여교사와 이 사건이 처음부터 비정상적으로 전개되는 것을 의심하고 이를 규명하기 위해 노력한 3명의 교사 등을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의 교원들은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이러한 무고의 성고충 신고에 관여하거나 최소한 이를 알면서 방조 또는 외면하였던 것으로 파악되어 강원도교육청은 핵심혐의자인 교장·교감·A 교사 등 3명을 중징계 요구하기로 했고, 나머지 가담자 또는 방조자 3명은 경징계 요구하기로 했다. ● 이와 관련하여 민병희 교육감은 “피해자의 억울함이 추가감사로 인해 진실이 규명되어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피해자에게 치유가 되는 계기가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며 “교원이라는 신분이 사회적으로 더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는 신분인 만큼 혐의자들을 엄중문책 할 것”이며, “진실규명을 위해 함께 버텨온 3명의 선생님들께도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한다”고 했다. ● 한편 해당학교는 피해여교사의 학교폭력 신고를 학생들의 놀이과정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며 ‘학교폭력 아님’으로 결정하였고, 이에 피해여교사가 재심을 청구하자 강원도학교폭력대책지역위원회는 2017. 9. 11. 피해여교사의 자녀를 ‘학교폭력 피해자’로 인정한 사실이 있다. 일반적이지는 않은 사안이다. 해당 학교의 교사이자 학부모(학생은 장애를 가지고 있음)가 학교폭력 신고를 했다. 학교가 조직적으로 이를 은폐·축소하기 위하여 담임교사와 연인관계에 있는 남교사가 학부모인 교사를 성희롱·성추행으로 신고하였다. 해당 학교는 이를 무기로 학교폭력 신고를 철회할 것을 종용하였다는 것이다. 이 사안은 언론에 보도되어 감사로 이어졌으며 감사 결과 교장 등 3명은 중징계, 가담자 또는 방조자 3명은 경징계가 요구되었다. 교육적 해결과 학교폭력 은폐·축소·화해종용은 어떤 시각에서 바라보느냐의 차이이지 행위는 동일하다. 학교 입장에서 교육적 해결을 위한 노력이 피해학생 학부모 입장에서는 학교폭력 은폐·축소·화해종용인 것이다. 따라서 학교폭력 사안은 반드시 사안처리 절차에 따라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처리하여야 한다.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조치사항 미이행 ● ○○중학교에서는 2015학년도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결과에 따라 학교장에게 사회봉사 5일 처분을 받은 가해학생이 실제로 ○○복지관에서 4일만 봉사활동에 참여하여 처분이 이행되지 않았음에도 사회봉사 처분 이행 여부를 확인하지 않는 등 학교폭력 관련 업무를 소홀히 한 사실이 있음 ● 서울특별시교육청 교육감은 국립서울농학교 학교폭력대책자치위윈회 심의결과에 따른 가해학생에 대한 전학조치 요청을 2회 받고도 학교 배정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아 해당학생이 전학 조치되지 않음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가 피해학생 보호와 가해학생 선도·교육을 위해 가해학생에 대하여 서면사과·교내봉사·사회봉사·특별교육 이수·학급교체·전학 등의 조치를 할 것을 학교의 장에게 요청해야 하고, 학교의 장은 14일 이내에 해당 조치를 해야 하며, 가해학생이 조치를 거부하거나 기피하는 경우 자치위원회는 추가로 다른 조치를 할 것을 학교의 장에게 요청할 수 있다. ‘학교의 장이 14일 이내에 해당 조치를 해야 한다’는 의미는 자치위원회 요청에 따라 통지(처분)하는 것을 의미하며, 해당 조치를 완료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법률이나 지침에 학교의 장은 며칠 이내에 해당 조치를 완료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지만,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학교의 장은 통지 후 해당 조치 이행을 위해 노력하고, 조치가 이행되지 않으면 이행을 독촉하고, 최종적으로는 추가 조치를 위한 자치위원회를 개최해야 한다. 위 사례에서는 사회봉사 5일을 받은 학생이 사회봉사 기관에 4일만 출석하여 사회봉사를 하였음에도 이행 여부를 확인하지 않았고, 전학 조치를 받은 학생에 대한 전학 조치를 시행하지 않아 업무담당자 및 관리자들이 주의 등의 조치를 받았다. 위 사례들을 통해 알아본 바에 따르면 학교는 ①신고에 따른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개최, ②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결과를 반드시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하고, 삭제 절차를 준수하여 삭제, ③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결과에 따른 가해학생 조치 이행을 잘한다면 감사에서 절차 위반으로 조치를 받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레트로(Retro)'에 주목하는 독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디지털 환경에 지친 현대인들이 아날로그 감성을 찾고 있다. 다시, 인문학을 찾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작은 동네 서점들에서 인문학 도서가 인기를 끈다. 아마도 인간만이 지닌 ‘온기’를 다시금 느끼고 싶은 까닭일 듯하다. 교육현장에서 오랫동안 인문학 발전에 힘을 쏟아온 우한용 서울대 명예교수가 교육현장의 감각을 살려 인문학을 소설로 조명한다. 첫 회는 ‘우주적 존재인 인간’의 의미를 추구했고, 제2화 접촉하는 인간, 제3화 희망하는 인간을 주제로 엮어냈다. 이번 호는 이야기하는 인간을 주제로 흥미있게 풀어냈다. 내가 서 있는 이 자리에서 내 존재를 인문학적으로 성찰하는 소설을 만나보자. 편집자 태안고등학교 박민경 선생이 조부상을 당했다. 박민경 선생은 태안군 혁신학교 추진을 맡고 있어서 이웃 학교 선생들과 다양한 교분을 가지고 지냈다. 특히 이인문 교감선생과는 사제간이기도 했다. 박민경 선생은 신천강 선생의 고등학교 선배였다. 교사들 사이에 문상을 갈 것인가 말 것인가 가벼운 논란이 있었다. “아버지라면 몰라도, 할아버지면 아버지의 아버지인데 우리와는 거리가 있잖나?” “문상을 어디 죽은 사람 위해 간답디여, 산사람 위로하러 가는 거지....” “문상을 한다고 위로가 될까, 죽음은 근원적으로 위로하고 위로받고 할 성질이 아닌 거여....” 우리가 애도의 형식에 익숙하지 못해서 그렇지, 아무리 근원적이라도, 아니 근원적이면 근원적일수록 위로의 대상이 되는 게 아닌가, 신천강 선생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간 애경사에 서로 연락하고 지내는 이들만 함께 참여하기로 했다. 그런데 교감선생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두고는 의견이 달랐다. 함께 가자는 이들과 따로 알아서 가게 하자는 편으로 의견이 갈렸다. 그런데 차편이 마당칠 않았다. 교감선생은 잠시 무얼 생각하는 듯 서 있다가, 박창덕 선생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박 선생은 본래 술을 않던가? 운전은 하지?” 박창덕 선생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교감선생이 새로 구입한 SUV ‘알바트로스’에 같이 타고 초상집으로 향하게 되었다. 차는 이름처럼 날아갈 듯 매끄럽게 달렸다. 문상 온 선생들은 향을 피우고 제단에 꽃을 바쳤다. 몇은 서서 묵례를 하고, 교감선생을 비롯한 몇은 재배에 반절을 올렸다. “가슴 아프시겠소. 그래 조부께서 가시는 길에 고생은 안 하셨는지?” 교감선생은 손을 모아 공수한 자세로 조용히 목청을 낮추어 말했다. “식구들 다 둘러보시고 나서는, 주무시려는 것처럼 조용히 눈을 감으셨어요.” 박민경 선생이 말했다. “오복 가운데 고종명을 하셨으니 복인이오.” 교감선생이 낯선 어투로 말을 받았다. 신천강 선생은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말을 음미하고 있었다. 음미라기보다는 교감선생이 말한 ‘고종명(考終命)’이 너무 고투이기는 하지만, 말하자면 천명을 다 산 생애의 끝이 좋다는 뜻으로 새겨들었다. “몇 수를 하셨나?” 교감선생이 물었다. “팔십오세를 사셨어요.” 박민경 선생은 아쉽다는 듯 멈칫거리고 서 있었다. “팔십오세라, 개띠시구먼....” 교감선생이 실눈을 뜨고 손가락을 짚어나갔다. “교감선생님, 말하자면 그게 육갑하시는 거지요?” 신청강 선생이 깔깔 웃으면서 교감선생을 올려다보았다. “육갑? 그렇지요. 음양오행이 거기 들어있는 것이니까, 동양철학의 근간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천간지지, 거기에 하늘과 땅의 이치가 다 들어 있어요. 사람은 땅에 사는 존재니까 지상의 동물과 대응되는 간지를 타고난다고 보는 거고. 말하자면, 박민경 선생의 조부는 개띠인데, 개는 충성스런 동물이지. 충견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헌데 그 연세면 군대에 갈 여건은 아닌데... 어떻게 충성스런 일을 하셨나?” 교감선생이 박민경 선생에게 이야기를 해보라는 표정으로 앉아 있을 때, 신천강 선생은 ‘주구, 충견’ 그런 말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인간은 관계적 존재라서 절대선과 절대악을 고정된 개념으로 설정하기 어렵다던 윤리학 교수의 말이 떠올랐다. ‘토사구팽’ 그 고사성어가 그러한 예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냥을 나갔다가 토끼를 잡을 때까지는 사냥개를 부려먹었는데, 토끼를 잡고나니 사냥개가 필요없어 삶아먹는다는 이야기는 한고조 유방과 그의 충신 한신 사이에 충성과 배반을 상징하는 고사로 널리 알려져 있다. 상황윤리를 인정하면서도 윤리의 절대성에 대한 신념 혹은 이념은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교수는 ‘자네들이 가르치는 자리에 섰을 때 공부하던 기억을 가끔 상기하란 말씀이야.’ 진중하게 이야기했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 한다’는 격언을 들추면서였다. “우리는 개구리가 아니거든요!” 신천강이 그렇게 응대하는 바람에 학생들이 낄낄대고 웃었다. 신천강은 생각이 너무 멀리 튄다 싶어, 자세를 가다듬고 교감선생에게 물었다. “박 선생 조부께서 어떻게 충성스런 삶을 사셨는지, 교감선생님은 혹시 아세요?” “하긴 그렇군. 6.25 때 열다섯 소년이었는데.... 그러면 4.19세대에 해당하는 연령댄데...” 문상객 없으면 박민경 선생더러 잠시 만나잔다고 얘기하라면서, 교감선생은 소주잔을 채워주고는 이야길 시작했다. “자연시간 팔십오 년이면, 거의 백년인 데, 그거 대단한 거요. 문제는 자연시간 속에는 이야기가 없다는 거겠지요. 시간에 이야기가 입혀져야 역사가 되는 겁니다. 역사화된 시간이라야 해석의 가능성, 가치평가의 가능성이 생겨요. 우리 이야길 하자면, 교사로 삼십년 산 사람과 조폭으로 그만큼 산 사람은 이야기가 애초에 달라요.” 교감선생은 소주잔을 비우고는 신천강 선생에게 잔을 내밀었다. 신천강 선생이 아무 말 없이 잔을 채웠다. “박 선생 조부 같은 분은 이야기가 길기도 하겠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서 열 살에 해방을 맞고, 열다섯에 6.25 나고, 그리고 스무살에 4.19 혁명, 이듬해 5.16 군사정변, 군사정권 지나서, 88 올림픽 때 그 양반이 오십대 중반, 그리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런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존재라는 점만 하더라도 그양반 삶의 가치가 있는 거겠지.” 노인은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기만 해도 집안의 믿음이라던 할머니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할아버지가 세상을 떴을 때 할머니는 그런 이야길 했다. 병수발을 하느라고 허리가 휘어졌지만, 먼저 떠나간 남편을 아쉬워하는 눈치였다. 신천강 선생은 꼭 그럴까, 속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젊은 사람 피곤하게 하는 노인들이 쌔이고 쌔인 거 아닌가.... “좌우간 오래 살고봐야, 이야기가 만들어져요.” 교감선생은 자신의 이야기론을 마무리하듯 그렇게 말했다. 신천강 선생이 나섰다. “꼭 그럴까요? 백 년 산 사람의 이야기 값이 오십 년 산 사람의 이야기 값의 배가 된다는 논리는 무리인 것 같습니다. 일제강점기를 살았어도 항일을 한 것과 친일을 한 것이 같은 값으로 평가될 수 없을 건 당연하고요. 그리고 이야기의 밀도랄까 이야기의 강도 같은 것도 고려해야 될 테고요. 항일을 했다면 목숨걸고 했는지 그저 시늉으로만 했는지했는지... 그런데 그 이야기는 누가 값을 결정해 주지요?” 교감선생이 난감한 표정으로 종이잔을 뱅뱅 돌리고 있을 때 박민경 선생이 상복으로 갈아입고 왔다. 까만 치마저고리에 머리에는 하얀 나비 매듭을 달고 있었다. 평소 나락나락한 몸매와는 달리 설명하기 어려운 위엄이 서려 보였다. 그러나 얼굴에는 피곤한 기운이 역력했다. “거 뮈시냐, 할아버지 살아계실 때 군대 이야기는 안 하시던가?” 교감선생이 물었다. “할아버지께서는 군대는 안 가셨어요. 대신 학도의용군에 나가셨다고 해요. 다부동 전투 이야기를 자주 하셨는데요. 조지훈 시인의 ‘다부원에서’라는 시를 손수 써서 액자에 넣어 벽에 걸어놓고 읊곤 하셨는데, 옆에서 보면 그 시를 읽을 때 눈자위가 젖어들곤 했어요.” 박민경 선생의 눈가에 물기가 어렸다. “그럼 국가유공자셨겠군.” 교감선생이 그렇게 받았다. “맞아요. 언제던가 훈장을 받으셨는데, 그 훈장을 방바닥에 던져놓고는, 통일이 아득한데 이딴 훈장이 뭔 소용이야, 화를 돋구시던 기억이 나요. 할아버진 왼팔을 거의 못 쓰셨어요.” 박민경 선생이 오른손으로 왼쪽 어깨를 주물렀다. “저런, 어쩌다가?” 교감선생이 쯧쯧 혀를 찼다. “왼쪽 견갑골 아래, 흉곽 뼈 어딘가 총탄이 박혔는데 하도 깊어서 그걸 빼낼 수 없어서, 평생 통증에 시달리며 지내셨어요. 그래서 결혼도 늦어지셨대요. 할아버지 윤기나는 생애는 학도의용군에 나가셨던 걸로 끝났는지도 몰라요.” 평생 무얼 하며 지냈는지 묻기는 사뭇 망설여졌다. 생애 이야기가 일그러졌다는 건데, 그 디테일을 듣고 싶다는 것은 일종의 가학취미로 비칠지도 몰랐다. 그러나 디테일 없는 이야기는 추상적이라서 실감이 적었다. “어떤 사람의 한 생애를 몇 가닥 이야기로 정리하는 것은 지난한 일이지요.” 교감선생이 이야기하는 맥락이 선명하게 부각되어 오지 않았다. “이야기는 생애에 완결성을 부여하지요. 레퀴엠이라는 음악, 레퀴엠이란 말은 안식이라는 뜻인데, 죽은 사람이 저승세계에서 안식을 취하라는 뜻이지 않겠어요? 저승세계는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는 세계, 이야기로 만들어지는 세계라고 할까. 그런 세계가 필요한 까닭은 곤고한 이승의 간난을 그대로 떠안고 죽음의 세계로 간다면 얼마나 억울하고 원통하겠어. 그 원한을 풀고 안식하자면 저승세계를 만들어야 하겠지. 그래서 종교마다 내세를 이야기하는 거고. 불교처럼 전생과 이생과 다음 세상을 이야기하기도 하는 것이지요. 이승에서 짓는 업에 따라 어떤 존재로 환생되는가 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존재의 상승을 도모하는 일종의 서사전략일지도 모르는 일이라오.” 교감선생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질 조짐이었다. 신천강 선생이 말머리를 거머잡았다. “박 선생 할아버님이 개띠라면, 저승에도 개가 되어 간다는 뜻인가요?” “저런, 불교와 유교는 상징체계가 달라요. 이야기는 문화적 상징체계에 따라 내용이 달라집니다.” 하기는 상징이 의미의 극단적 대립성을 지닌다는 점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 교감선생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교감선생은 박민경 선생에게 다부동 전투에 대해 할아버지한테 직접 들은 적이 있는가 물었다. “할아버지께서는 참 간도 크세요. 열다섯 살 중학생이, 학도의용군으로 나간다는 게 말이 돼요? 아무튼 다부동 전투에 참여하신 게 할아버지 생애의 방향을 바꾸어 놓았어요. 권투선수가 꿈이었는데, 전투 중에 당한 부상으로 꿈을 접어야 했고, 그 때 소대장의 여동생이 할머니가 되었대요. 그런데 그 소대장이 적군에게 생포되는 바람에....?” 그래서 빨갱이 누명을 쓰고 요시찰인물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박민경 선생은 슬그머니 소주잔을 교감선생 앞에 내밀었다. 갈증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교감선생은 박민경 선생에게 소주를 따라주고, 결론을 내리듯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야기는 시공간적으로 중첩교차하면서 짜여나갑니다. 말하자면, 인간의 행위는 모두가 남과 관계를 맺으며 하게 마련입니다.” 꼭 그럴까, 신천강 선생은 머릿속에 의문부를 그리고 있었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성서에 그렇게 나오는데, 영어로 단어를 뜻하는 워-드는 그 자체가 단독자인 것처럼 되어 있거든요.... 맥락도 주체도 없어요.” 조문 와서 하는 이야기 치고는 자리와는 겉도는 느낌이 들었다. 다른 선생들은 별다른 반응 없이 교감선생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교감선생과 신천강 선생이 마주앉아 이야기를 하는 셈이 되었다. “단어 자체로는 언어수행을 할 수 없어요. 맥락이 부여되고 언어행위에 참여하는 주체들의 상호작용이 있어야 언어수행이 가능해집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그러니까 그 워-드라는 단어에 아예 이야기라는 뜻이 들어 있어요. 그리고 동사로도 쓰이니까, 그 단어는 이야기한다는 뜻도 자연스럽게 포함하지요. 그러니까 태초에 이야기가 있었다. 그렇게 바꿔 읽어도 되는 거 아닐까, 그렇습니다.” 알았다는 듯이 신천강 선생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는 시계가 걸린 옆쪽 벽을 쳐다봤다. 일행이 일어나자 박민경 선생이 어른들 쪽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교감선생이 다시 손을 저어 아니라고 만류했다. “상주 함부로 부르는 거 아니요. 아버지 어머니 잘 위로해 드리시구... 우린 이쯤서 일어납니다. 초상집에서는 배웅 안 나오는 법이니 그대로 계셔.” 일행에게 인사를 하는 박민경 선생의 얼굴이 어느 사이 붉어져 있었다. “교감 선생님, 다부동 전투에서 희생된 분들 이야기는 누가 기록하지요?” 신천강 선생이 물었다. 교감선생이 크음, 하품을 걷어들이면서 말했다. “시인과 작가들의 몫이 그런 거지 않겠어요? 다른 사람들이 다부동 전투를 기억하고 다시 이야기할 수 있도록 틀거리를 만들어주는 게 글쓰는 사람들의 몫이지요.” 신천강 선생은, 돌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라도 제사는 필요하고,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애도의 한 형식이 되지 않겠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박민경 선생 댁에서 추도식이라도 한다면, 조지훈의 시 ‘다부원에서’를 한번 낭송해 주겠다는 생각을 다지고 있었다.
AI를 앞세워 모든 것을 거침없이 해낼 것 같던 인간이 바이러스에 무력한 존재임을 새삼 느끼는 요즘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지 못해 환자 개인의 면역력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은 과거 사회의 모습과 큰 차이가 없다. 현대인들이 과학기술을 활용한 문제해결을 모색한다면 고대인들은 비과학적 방법에 의존해 호전을 바랐던 차이 정도일 것이다. 인간은 생각보다 허약한 존재임을 그리고 인간의 본질이 현대사회라고 해서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이 아님을 다시 한번 절감하게 된다. 모든 일이 잘 이루어지기(Eu Prattein)를 바란다.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로 대표되는 초기 고대 그리스 문학작품은 오늘날 서양문명의 원형인 고대 그리스-로마(Greco-Roman)의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을 가늠할 수 있는 고대 그리스의 고전이자 초등교육 교재였다는 점에서 오늘날 교사들과 교육자들도 눈여겨볼 만한 작품이다. 이들 저작은 고대 사회의 보편적 가치관을 명확하게 드러내면서도 지중해 사회의 독특한 관점과 지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한편으로는 교육의 본질을 탐색하는 데, 다른 하나는 교육의 역할을 고민하는 데 공헌한다. 이번 달부터는 고대 희랍의 대표적인 서사시인 일리아스, 오딧세이아 그리고 서구 최초의 교술(敎述)시인 헤시오도스의 일과 날을 다루도록 하겠다. 헤시오도스는 기원전 7~8세기 보이오티아 지방의 시인이다. 어린 시절 산에서 양을 치던 중 무사 여신들로부터 시인의 지팡이와 목소리를 받아 시인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그가 어떤 연유에서 시인이 되었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입으로 전해진 일리아스, 오딧세이아와는 달리 헤시오도스는 자신의 작품을 글로 남겼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스 신들의 계보를 다룬 신통기와 일과 날 등 그의 대표작에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우라노스, 크로노스 등 그리스 신화와 프로메테우스, 판도라 이야기가 등장한다. 서구 최초의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호메로스와 함께 헤시오도스를 고대 그리스의 대표적 시인으로 평가한다. 인간은 정의(Dikē)를 따라야 한다 일과 날은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경험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형제인 헤시오도스와 페르세스는 부친의 유산을 놓고 대립한다. ‘정의(Dikē)’의 어원은 원래 ‘재판’, ‘소송하다’라는 말에서 출발했고, ‘평등’을 뜻하는 희랍어 ‘이소노미아(Isonomia)’는 땅의 배분을 놓고 등장한 개념이었다. 수백만 원이건 수천억이건 재산 분쟁이 수천 년 전부터 있었다는 사실에 인간사의 비정함을 느낀다. 늘 그렇듯 재산 분쟁은 형제간 합의를 보지 못한 채 법정에서 가려지게 되었지만, 페르세스가 판사들을 매수해 헤시오도스는 패소하였다. 페르세스는 자기가 가져야 할 몫 이상을 받게 되었고 헤시오도스는 억울한 손해를 보게 되었다. 헤시오도스는 분한 마음에 복수를 생각했지만 차마 직접 보복하지는 못한다. 자신의 억울함을 신들에게 호소하며 정의가 승리하기를 희망한다. 헤시오도스는 페르세스의 행위를 ‘히브리스(Hybris)’로 규정한다. ‘폭력’ 또는 ‘오만’으로 번역되는 ‘히브리스(Hybris)’는 내 마음대로 모든 것을 하려는 인간의 속내를 달리 표현하는 말이다. 가장 큰 오만은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전지전능한 신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남의 재산을 함부로 뺏고, 사람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 사람들이야말로 폭력적인 행동으로 가득한 오만한 사람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관습과 도덕, 규칙과 제도 속에서 살아간다면, 폭력적인 사람들은 남들이야 어찌 되었건 내 마음대로 모든 것을 하려는 사람들이다. 시인은 세상의 질서를 깨트리는 오만한 자들은 신들의 노여움을 얻어 징벌(Nemesis)을 받게 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자연 세계에서는 배고픈 매가 꾀꼬리를 사냥한다. 포식자가 먹이를 공격하는 것이 놀라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자연에도 질서가 있고, 용납되지 않는 행위가 있다. 사자는 필요할 때만 사냥한다. 싸움에서 패배를 인정하고 등을 돌리는 상대를 공격하지 않는다. 반면 강력한 영웅들일수록 오만에 빠져 자연의 섭리를 무시하고 멋대로 행동한다. 일리아스의 주인공 아가멤논(Agamemnon)은 트로이 전쟁의 출정을 위해 친딸을 살해해 제물로 바친다. 그는 트로이 전쟁의 총사령관이라는 무의미한 명예를 위해 자식을 죽이는 짐승만도 못한 존재로 전락한다. 시인은 ‘인간이라면 동물과는 달리 정의의 원칙에 따라 생활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페르세스여, 그대는 정의에 귀 기울이고 오만을 늘리지 마시라!”라는 헤시오도스의 호소는 형제뿐만 아니라 사회 모든 구성원을 향한 경고였다. 정의에 대한 헤시오도스의 제안은 단순히 윤리적인 선언에 머무르지 않고 몸가짐과 마음가짐의 변화를 촉구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헤시오도스는 모든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열심히 살 것을 역설한다.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말이지만 일리아스, 오딧세이아와는 달리 신화적 이야기에 바탕을 둔 교훈을 통해 보편적 진리를 전달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경쟁'은 생존 과정에서 나타나는 갈등 일과 날에 등장하는 프로메테우스는 계략을 써 인간들의 삶을 끊임없이 돕는다. 신들이 받는 제사상을 속여 인간이 고기를 마음껏 먹게 하고, 추위에 떠는 인간을 위해 제우스 몰래 불을 훔쳐낸다. 인간을 위했던 프로메테우스의 행동에 격분한 신들은 인간이 먹어야 할 곡식을 모두 숨겨버린다. 그 탓에, 인간은 매일 땀 흘려 일해야 겨우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시인은 마음대로 편하게 살고 싶은 감정과 그렇게 할 수 없는 현실이 갈등하고 있음을 프로메테우스 이야기를 통해 보여준다. 일과 날 초반부에서 헤시오도스는 ‘갈등(Eris)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는 흥미로운 주장을 편다. 한 가지는 매일매일 최선을 다해 먹을 것을 찾으려는 갈등이다. 흔히 사람들이 벌이는 경쟁은 좋은 의미의 갈등이다. 경쟁은 게으른 사람도 일하도록 부추기고 서로 부자가 되도록 노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같은 직종의 사람들이 벌이는 경쟁은 서로에게 유익함을 가져온다. 경쟁은 인간이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갈등이다. 먹고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비난할 필요는 없는 법이다. 하지만 페르세스나 아가멤논처럼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의 이익을 해치는 사람들이 벌이는 갈등, 또는 다른 사람들과 대립하고 반목하는 갈등은 좋은 갈등일 리 없다. (Erga Kai Hemerai, 11~26) 사회 전반에서 경쟁은 나쁜 것으로 간주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는 제반 여건이 충분히 갖춰진다면 각자가 자신의 재능과 노력을 놓고 벌이는 선의의 경쟁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일과 날 속 정의는 경쟁을 가능하게 하는 전제조건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불법과 탈법으로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약탈하는 일을 단죄하지 않는다면 누구도 땀 흘려 일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역으로 정당한 경쟁의 기회를 부여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해당한다. 좋은 갈등에 동참해 부를 늘릴 기회를 박탈당한 사람들은 재능과 노력을 발휘할 동기를 잃고 자연스럽게 퇴보하게 된다. 좋은 경쟁에는 정의로운 규칙과 환경 필요 경쟁에 대한 헤시오도스의 견해는 사소한 것 하나까지 경쟁하고, 경쟁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이라 생각했던 고대 그리스 사회의 인간관을 잘 보여준다. 경쟁이라면 무조건 나쁜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다분해진 오늘날의 교육계 분위기에서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좋은 갈등이 있다는 지적은 흥미롭다. 사실 생각해보면 경쟁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경쟁이 가져오는 역기능이 문제이다. 사회는 경쟁에서 뒤처진 학생들에게 재도전의 기회와 환경을 조성해야 하고 그들의 정신건강에도 신경 쓸 수 있어야 한다. 사건 사고 및 범죄로 인한 사망 대비 자살자 수가 수십 배에 달하는 한국 사회의 모습은 경쟁이 지닌 자기 파멸적 속성을 보여주는 듯하다. 하지만 학생들이 자신의 재능과 노력을 놓고 벌이는 좋은 경쟁을 무조건 막기보다는 정의로운 규칙과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역사적으로 지속되어 온 학구열을 통해 습득한 지식과 기술을 자기 자신과 사회를 위해 사용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훨씬 큰 혜택이기 때문이다. 정의라는 틀에서 헤시오도스의 일과 날을 구분 지어 생각해보면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성실한 삶을, 사회적인 차원에서는 공정한 법과 원칙의 집행을 제안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인간은 끊임없이 몸을 움직여 의식주를 해결해야 하는 운명을 타고났다. 노력한 만큼 얻을 수 있을 뿐 꼼수는 없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겨울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는 힘은 그가 흘려왔던 땀방울의 무게와 같다. 프로메테우스에게 격분한 신들이 보낸 선물 ‘판도라(Pandora)’는 열지 말았어야 할 항아리를 열어버리며 인간세계에는 모든 재앙이 판을 치게 되었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희망은 남았다. 손을 뻗어 희망을 잡을지는 결국 우리가 정의로운 삶을 선택하느냐에 달려 있다. 일과 날은 거의 반반의 비율로 한편에서는 정의로운 생활을 강조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때에 맞는 지혜로운 행동을 제안한다. 농민들은 절기에 맞게 농사를 지어야 하고, 무역상들은 계절의 변화에 순응하며 지중해를 항해해야 한다. 하루하루의 변화에 맞추어 현명하고 유연하게 행동해야 하고 절기에 맞는 노동을 해야 한다. 오늘날의 시대와는 잘 맞지 않아 세세하게 다루지는 않았지만, 삶에 필요한 실천적 교훈을 조목조목 제시했던 탓에 일과 날은 로마 시대 이후에도 농사 비법서로 사용되기도 했다. 헤시오도스의 저작은 호메로스의 저작처럼 영웅들의 화려한 이야기에 기초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메시지는 현대인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게 된다. 영웅들의 무력과 지혜를 갖지 못한 우리 같은 평범한 교육자들도 일상생활 속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을 통해 자아와 세계에 기여하는 숨은 영웅들임을 생각하게 된다.
이순신과 함께 펼쳐보는 임진왜란 3대 대첩 (이광희 지음, 강은경 그림, 그린북 펴냄, 48쪽, 1만5000원) 이순신 장군이 이끈 3대 대첩인 한산대첩과 명량대첩, 노량대첩을 다룬 어린이 역사책이다. 왜군의 침입에 대한 준비 단계부터, 노량 앞바다에서 7년 전쟁의 마침표를 찍던 순간까지 역사적인 장면들을 이순신 장군의 목소리를 빌려 이야기한다.
너도 방귀 뀌니? (닉 카루소·다니 라바이오티 지음, 이혜선 옮김, 알렉스 G. 그리피스 그림, 나무야 펴냄, 48쪽, 1만4000원) 사람이라면 누구나 방귀를 뀐다. 그런데 거미는? 앵무새는? 말은? 개미는? 다른 동물들도 과연 방귀를 뀌는 걸까? 이 책은 이런 사소한 호기심에서 시작된 재밌는 이야기로 독자의 과학적 호기심을 자극한다.
거침없이, 토론! (김범묵·박정란 지음, 북트리거 펴냄, 264쪽, 1만5000원) 우리 사회의 20가지 이슈를 찬반 토론 형식으로 구성했다. 과학, 문화, 사회, 법 등 4개 분야의 이슈를 4~6개씩 다루며 양쪽 주장에 같은 분량을 할애해 비교적 균형감 있게 소개한다. 각 이슈에 대한 기초 지식도 제공하고 있어 사전 지식이 없더라도 접근이 가능하다.
원소노트 (도쿄대학교 사이언스커뮤니케이션 동아리 CAST 지음, 곽범신 옮김, 시그마북스 펴냄, 193쪽, 1만3500원) 주기율표의 원소 118종을 쉽게 설명한다. 원소의 성질과 화합물을 재밌는 일러스트와 짤막한 글, 퀴즈로 보여줘 과학에 전혀 관심 없던 사람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각각의 원소가 1~2페이지 정도로 간략히 소개해 한결 부담이 적다.
사회정서학습 이론과 실제 (김윤경 지음, 다봄교육 펴냄, 272쪽, 1만7000원) 사회정서학습이란 용어는 미국에서 처음 등장하고 발전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하지만 캐나다, 영국 등에서는 이를 통해 아동과 청소년의 문제 행동과 정신건강 문제 해소는 물론, 학업성취도 향상에도 효과를 보고 있다. 이 책에서는 사회정서학습의 개념과 탄생과정, 이론적 토대, 외국 사례 등을 소개한다.
고대에서 도착한 생각들 (전호태 지음, 창비 펴냄, 508쪽, 2만2000원) 구석기시대부터 삼국 시대까지 축적된 고대 한국인의 생각과 신앙을 담았다. 중요한 유물과 유적 등에 대해서 설명하고 동서양의 신화, 미술, 종교를 접목해 우리 고대의 사상을 입체적으로 설명한다. 고대의 유물을 단순히 살펴보는 데 그치지 않고 지금 우리의 삶과 문화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길담서원, 작은 공간의 가능성 (이재성 지음, 궁리 펴냄, 344쪽, 1만7000원) 서울 경복궁 옆 서촌마을에 자리한 길담서원의 12년 역사를 담았다. 길담서원은 작은 책방이자 시민들이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할 수 있는 공간이다. 청소년 인문학 교실, 한뼘 미술관 전시 등 다양한 인문 예술 프로그램을 기획·운영하고 있는 저자를 통해 작은 공간이 지닌 가능성을 살펴본다.
다시 1학년 담임이 된다면 (박진환 지음, 에듀니티 펴냄, 396쪽, 1만6000원) 27년 차 베테랑 교사가 1학년을 처음 가르치거나 1학년 교실이 힘겨운 교사들을 위해 쓴 책이다. 2년 연속으로 1학년 담임을 하며 매일 작성한 교실 일기를 토대로 1학년 수업의 특성과 교과별 지도 요령, 한 해의 흐름 등을 알려 준다.
신숭겸 장군은 신라의 정치가 어지러울 때 궁예가 나라를 세우자 그의 지휘를 받는 장군이 되어 많은 공을 세웠다. 그런데 궁예가 백성들에게 못된 정치를 하자 배현경, 복지겸 등과 함께 그를 몰아내고 왕건을 임금으로 모셨다. 대구 동구 파군재 삼거리에는 왼손에 칼을 집은 늠름한 모습의 신숭겸 동상이 있고 그 뒤로 말을 타고 활시위를 당기는 사안도와 파군재에서 후백제군과 전투를 벌이는 충렬도를 새겼다. 사안도(射雁圖)는 기러기를 향해 활시위를 당기는 모습으로, 고려 태조 임금과 함께 황해도 삼탄으로 사냥을 나갔는데 한낮에 기러기 세 마리가 날았다. “저기 세 번째 기러기 왼쪽 날개를 누가 맞추겠는가?” “전하, 제가 쏘아 보겠습니다.” “와! 살을 맞았다.” “장군의 활 솜씨가 대단하구려.” 신숭겸이 선뜻 나서 명한 대로 맞혔더니 태조가 신(申)씨 성을 내리고 평산 지역을 다스리도록 하였다. 충렬도(忠烈圖)는 서기 927년 9월, 견훤이 신라의 경주를 공격해 경애왕을 죽이고 갖은 행패를 부리며 경순왕을 임금으로 삼고 물러갔다. 이 소식을 들은 고려 태조 임금은 5천여 군사와 함께 빠르게 달려가 대구의 팔공산 동화사 인근에서 견훤의 후백제군과 맞서 싸우다 겹겹이 포위되어 위급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함께 있던 신숭겸 대장군이 임금에게 다급히 말했다. “전하, 견훤의 군사에 포위되어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소?” “전하, 제가 대왕의 갑옷을 입고서 후백제 군사들을 한쪽으로 유인하겠습니다. 그러는 동안 병졸의 옷을 입고 이곳을 빠져나가 후일을 도모하셔야 합니다.” “짐은 신숭겸 대장군의 공을 꼭 보답하리다.” 신숭겸이 태조 왕건의 갑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군사를 지휘하자 후백제군이 집중 공격을 하여 장렬히 전사하였고 그의 머리는 후백제군이 베어갔다. 그러는 사이에 고려 태조 왕건은 병졸의 옷으로 바꿔 입고 숨어 있다가 포위를 뚫고 탈출하였다. 고려 태조 왕건은 전투가 끝난 후 신숭겸의 시신을 찾았으나 머리가 없으므로 이를 안타깝게 여겨 황금으로 머리를 만들어 장례를 치르도록 하였다. 지금도 춘천시 서면 방동리에는 도굴을 막기 위해 봉분을 셋으로 만든 신숭겸의 무덤이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견훤이 고려 태조의 머리가 아닌 것을 알고 버린 것을 장군이 타던 말이 전남 곡성 태안사로 물고 와 스님들이 수습하여 묻었다는 신숭겸 장군 머리무덤이 있다고 한다. 전남 곡성은 신숭겸 장군이 태어난 곳으로 목사동면에 장군의 태를 묻은 태무덤이 있는 용산재가 있고, 이웃한 오곡면에 장군의 제사를 모시는 덕양사가 있다.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에는 신숭겸 장군이 돌아가신 자리에 피 묻은 갑옷과 피를 머금은 흙을 담아 묻고 돌을 사각형으로 쌓아 올리고 옆에 순절비를 세웠다. 조선 현종 임금이 진실한 마음을 드러내 보인다는 뜻으로 ‘표충사(表忠祠)’라는 이름을 내렸다. 이곳 지묘동에서 이웃한 평광동에는 공산전투에서 전사한 장군의 공적을 기리는 비를 세웠고 이 비를 기리는 모영재(慕影齋)가 있다. 신숭겸이 고려 태조 왕건을 대신하여 죽은 ‘위왕대사(爲王代死)’는 한나라 유방을 탈출시킨 한나라 장군 기신(紀信)의 ‘동문일사(東門一死)’에 견주어도 으뜸가는 공적이다. ‘동문일사’는 유방과 항우가 맞섰던 중국 영양의 형양성 이야기이다. 항우의 초나라 군사들이 형양성을 포위하여 공격하자 한나라 유방은 식량이 다 떨어져 항복하려 하였다. 이때, 한나라 장군 기신이 한밤중에 유방의 수레를 타고 형양성 동문으로 나가 초나라 군사들이 공격하도록 유인하였다. 초나라 군사들이 가까이 다가오자 기신은 한나라 유방을 흉내 내어, “식량이 다 떨어져서 항복하겠다. 항복! 항복!” 초나라 군사들이 마음 놓고 기신을 맞이할 때, 한나라 유방은 형양성 서문으로 나갈 수 있었다. 초나라 항우는 기신에게 속아 유방이 형양성을 탈출하게 된 것을 알고 그를 베었는데 이를 동쪽 문에서의 죽음이라는 의미로 ‘동문일사(東門一死)’라 한다. 고려 예종 임금이 평양의 팔관회에 참석하였는데 갑자기 관복을 입은 두 인형이 말을 타고 뛰어다니기에 물었다. “저기 말을 탄 인형은 무엇인고?” “저 인형은 신숭겸 장군과 김락 장군으로 대구 팔공산 전투에서 견훤의 후백제군과 싸우다가 태조 대왕을 대신해서 죽은 장군입니다. 그래서 태조께서 팔관회에서 두 장군을 위로하려고 인형을 만들어 관복을 입히고 앉혔더니 살아있는 것처럼 술도 마시고 춤도 추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팔관회에서는 말을 탄 인형을 만들어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럼 두 장군을 위로하는 노래를 지어야겠다.” 고려 예종은 신숭겸과 김락 장군의 충절을 신하와 백성들이 본받도록 향가와 한시로 도이장가를 지었다. 대구 표충재 忠義明千古 死生惟一時 - 충의명천고 사생유일시 文魁詳籍記 武德煥銘鐫 - 문괴상적기 무덕환명전 一氣貫人天 磅礡山河壯 - 일기관인천 방박산하장 蒼茫海日懸 - 창망해일현 충성과 의로움은 오랜 세월 동안 밝고 삶과 죽음은 한순간의 일이라네. -고려 예종 문과 장원급제 책에 자세히 기록하고 장군의 덕행도 뛰어나 비에 새겼네. 타고난 기질과 마음은 하늘을 꿰뚫고 씩씩한 기상이 산하에 드높으니 바다에 뜬 해는 멀어 아득하구나. -신기성 대구 모영재 忠義明千古 死生惟一時 - 충의명천고 사생유일시 先生節義感人多 頑者廉而隘者和 - 선생절의감인다 완자렴이애자화 假使當季公不死 半千功業迺如何 - 가사당계공불사 반천공업내여하 孤忠貫日壯氣成功 - 고충관일장기성공 충성과 의로움은 오랜 세월 동안 밝고 삶과 죽음은 한순간의 일이라네. - 고려 예종 선생의 꿋꿋한 태도와 도리는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었고 완고한 사람을 청렴하게 하고 편협한 사람을 화목하게 하였네. 그때 신숭겸 장군이 죽지 않았다면 오백 년 고려의 번성이 지금과 같을 수 있을까? 외로운 충성은 해를 뚫고 웅장한 기세는 공적을 세웠네. 곡성 용산재 용산재 存亡係大義 不媿俯仰間 - 존망계대의 불괴부앙간 賢將死一節 聖祖統三韓 - 현장사일절 성조통삼한 若無必殉國 麗遺有誰環 - 약무필순국 려유유수환 삶과 죽음의 순간에 행한 큰 의로움은 굽어보나 우러러보나 부끄럽지 않고 뛰어난 장군은 죽음으로써 사람의 도리를 지켰고 빼어난 조상은 삼한을 통일하셨네. 만일 고려를 위해 목숨을 바치지 않았다면 누가 고려의 문화를 꽃피게 하였을까? 진덕재 見二功臣像 汍瀾有所思 - 견이공신상 환란유소사 公山蹤寂寞 平壤事留遺 - 공산종적막 평양사유유 두 공신의 인형을 보노라니 저절로 눈물이 흘러 넘쳐나네. 팔공산의 옛 자취는 아득하건만 그대들 기리는 풍습 평양에 전하네. -고려 예종 모충재 忠義明千古 死生惟一時 - 충의명천고 사생유일시 爲君躋白刃 從此保王基 - 위군제백인 종차보왕기 충성과 의로움은 오랜 세월 동안 밝고 삶과 죽음은 한순간의 일이라네. 임금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니 이로써 나라의 터전을 보존하였네. -고려 예종
#1. 3분 만에 끊은 코펜하겐 왕복티켓 나의 스칸디나비아 여행은 즉흥적으로 시작되었다. 덴마크 코펜하겐(Copenhagen)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하는 후배가 이번 여름에 덴마크에 올 수 있냐고 물었다. 생각과 말이 잘 통했고, 특히 여행이라는 공통 관심사가 있던 친구라 별다른 고민 없이 바로 항공권을 검색했고, 예약하고 결제하는 데는 3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출발 날짜와 도착 날짜는 여름 방학 기간이고, in과 out은 코펜하겐이다. 그렇게 나의 스칸디나비아 여행은 시작되었다. 6개월 만에 만난 후배는 전보다 더 밝아졌고, 행복의 나라 덴마크에서 살아서 그런지 더 행복해 보였다. 바이킹의 후예이면서 뷔페의 원조 국가에서 뷔페를 먹은 후에 자전거를 타고 뉘하운(Nyhavn)으로 갔다. 뉘하운은 코펜하겐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풍경으로, 가지런한 운하 양옆으로 알록달록한 건물이 촘촘하게 서 있다. 운하 곳곳에는 작거나 크고, 오래되거나 최신의 배와 요트들이 질서정연하게 정박해 있다. 친화력이 좋은 후배는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을 불러 모았다. 대만 친구, 일본 친구, 일본과 한국을 너무 좋아한다는 덴마크 친구, 그리고 덴마크에서 씨앗호떡을 팔며 한국의 음식과 문화를 알리고 있는 한국 친구까지. 15명이 넘는 친구들과 함께 한국의 소울푸드 삼겹살을 구워 먹으면서 바비큐 파티를 벌였다. 물론 내가 가져온 삼겹살의 소울메이트, 소주와 함께! 즉흥적으로 시작된 스칸디나비아 여행의 첫 번째 도시, 코펜하겐에서의 밤은 즐겁게 마무리된다. #2. 베르겐 산 정상에서 소주잔 돌리기 덴마크에서 노르웨이로는 페리로 이동했다. 덴마크의 최북단 히르츠할스(Hirtshals)에서 저녁에 출발한 페리는 피오르 해안선을 따라 항해하여 다음 날 낮에 애니메이션 ‘겨울왕국’ 속 아렌델의 모델이 된 노르웨이 베르겐(Bergen)에 도착한다. 아침에 일어나 갑판에 올라 해안가의 아기자기한 집들과 노르웨이 국기를 펄럭이며 힘차게 항해하는 선박을 보니 피오르의 나라에 온 것이 실감이 났다. 베르겐 항구에 내려 커다란 배낭을 메고 땀을 흘리며 걷고 있는데, 나에게 어떤 여자가 말을 건다. “혹시 베르겐 도서관이 어디야?” 나는 “보다시피 나도 여행자라 베르겐 처음이라서 잘 모르지만, 베르겐 시내가 그렇게 크지 않으니까 그 근처에 있지 않을까?”라고 대답했다. 그녀는 노르웨이 트롬쇠에서 온 안드레아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함께 시내까지 가자고 한다. 그렇게 베르겐에 도착한 지 30분도 되지 않아서 친구가 생겼다. 안드레아는 저녁에 베르겐 산 정상에서 친구들과 바비큐 파티를 할 거니까 나도 함께하자고 한다. 어차피 베르겐 산 정상은 케이블카를 타고 갈 계획이었기 때문에 흔쾌히 수락했다. 베르겐 산 정상에는 전망대가 있고, 여기에서 베르겐 구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베르겐 산 정상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걸려 도착한 캠프장에는 작은 호수가 있었고, 그곳에는 이미 여럿이 캠프를 즐기고 있다. 안드레아는 나를 친구들에게 소개해줬고, 나는 비장의 무기, 한국에서 가져온 소주를 꺼냈다. 맥주만 잔뜩 쌓아놓고 마시고 있는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벨기에, 네덜란드인들은 한국인의 술, 소주를 너무도 신기해했다. 나는 그들에게 소주를 마시는 방법에 대해서 알려주었다. 일명 소주잔 돌리기! 그리고 이것이 한국에서 인사하는 방법이라고 하면서 테이블에 앉아있는 모두에게 한 잔씩 따라주고, 또 한 잔씩 모두 소주잔을 받았다. 다시 돌아온 전망대에서 바라본 베르겐의 구시가지와 이를 둘러싼 북해 바다는 이제 막 노을이 지려 하고 있었다. 이런 은은한 야경도 매력 있고 멋지다. 마지막 케이블카가 도착하기 전까지 베르겐의 야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리고 노을이 보이는 로맨틱한 분위기에 적당히 취한 우리는 속 깊은 이야기를 하며 서로 좀 더 가까워졌다. #3. 피오르에서 만난 투머치토커 베르겐은 송네 피오르(Sognefjord)로 가는 출발점이자 도착점이다. 베르겐역에는 이제 막 피오르 여행을 마치고 오슬로에서 온 사람들과 피오르를 보려고 베르겐을 떠나는 사람들이 섞여 있었다. 베르겐역을 출발한 기차는 순식간에 노르웨이의 울창한 숲으로 파고든다. 기차는 곧 보스(Voss)에 도착했고, 여기서 다시 구드방엔(Gudvangen)까지 가는 버스로 갈아탔다. 보스에서 구드방엔으로 가는 버스는 아찔하게 좁은 도로를 천천히 굽이굽이 돌면서, 거칠지만 아름다운 피오르 협곡을 보여준다. 버스가 왼쪽으로 커브를 돌 때는 오른쪽 창에 타고 있는 사람들이 탄성을 질렀고, 반대로 오른쪽으로 돌 때는 왼쪽의 사람들에게서 감탄이 터져 나온다. 그렇게 좁고 아찔한 도로를 지나서 구드방엔에 도착한 후에는 다시 플롬(Flam)으로 가는 페리를 탔다. 페리에 오르자마자 갑판 맨 앞으로 가서 피오르 가운데를 거침없이 항해하는 기분을 느꼈다. 평소 책에서만 보던 피오르의 모습과 피오르에 걸쳐있는 현곡이 바로 눈에 들어왔다. 플롬역에서 사진을 몇 장 찍으면서 음악을 들으며 미르달(Myrdal)로 가는 산악열차를 기다렸다. 고풍스럽게 생긴 녹색 기차는 천천히 가파른 철길을 오른다. 경사가 가팔라지는 만큼 경치는 더 아름다워졌고, 사람들의 감탄사도 점점 커졌다. 감탄사를 내뱉는 사람 중 유독 한 남자가 눈에 띄었는데, 그는 브라질에서 온 사회학과 교수 알랭이다. 한국에서 온 지리 교사로 나를 소개하며 금세 그와 친해졌다. 우리는 기차 안에서, 기차가 잠시 정차하는 멋진 폭포 앞에서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고, 셀피를 같이 찍었다. 라틴의 피가 흐르는 두 수다쟁이는 십년지기 친구처럼 미르달역에 도착할 때까지 온갖 이야기를 나눴다. 역에 도착하니 오슬로로 가는 도중에 기차에서 테러가 일어나서 기차 운행을 무기한 중단한다는 방송이 나온다. 조그만 역에 발이 묶여버린 많은 사람이 노르웨이 철도청 직원들에게 화를 내며 항의했지만, 긍정적인 두 라틴의 후예들은 이왕에 이렇게 된 거 술이나 마시자고 했다. 알랭은 브라질의 국민 술 까사샤를 꺼냈고, 나 역시 소주를 자랑스럽게 꺼냈다. 종이컵에 각자의 나라에서 가져온 술을 따르고, 무엇을 위한 축하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축배를 들었다. 그렇게 각자의 술을 입이 마르게 칭찬하며 나누어 마시면서 두 남자는 각자 국가의 교육, 경제, 그리고 여행과 사랑에 대해서 끊임없이 이야기했다. 어느새 오슬로로 가는 기차가 곧 운행된다는 방송이 나온다. #4. 오슬로의 청소부와 신자유주의 3시간 연착된 기차는 오전 1시가 훌쩍 넘어서야 오슬로에 도착했다. 베르겐에서와 마찬가지로 오슬로에서의 계획도 별다를 게 없었다. 그냥 무작정 걷다가 예쁜 건물이 있으면 사진을 찍거나 앉거나 혹은 누워서 음악 듣고, 글도 끄적거리고, 그러다가 우연히 친구를 만나면 같이 다니면서 놀고, 이게 계획이라면 계획이다. 우선 오슬로 오페라하우스로 향했다.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는 조개를 형상화한 곡선 형태인 데 반해, 오슬로의 오페라하우스는 기울어진 직선과 전면의 유리로 모던함과 단순함을 강조한 형태이다. 마침 지나가는 사람도 별로 없고, 하늘도 예뻐서 오페라하우스 바로 옆 경사진 바닥에 누웠다. 하늘을 바라보고 음악을 들으며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을 찍었다. 그렇게 한참을 누워있다가 여기 오면서 봤던 자전거 대여가 생각났다. 외국인인 나도 쉽게 빌릴 수 있었다. 그렇게 오슬로판 따릉이를 타고 오슬로 구시가의 골목들과 성벽을 따라 달렸다. Ankersleva강 옆을 따라 강바람을 맞으며 달리다가 마침 그 옆을 지나가는 한 무리의 여행객들에게 사진을 찍어달라 부탁했다. 내가 어색한 포즈로 서 있으니까 좀 생동감 있는 포즈를 취하라면서 파란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다가와 나에게 직접 시범을 보여준다. 그 여자들은 영국 런던에서 노르웨이로 여행 온 친구들이란다. 런던에서 온 대학생 친구들과 사진을 서로 찍어주면서 금세 친해졌고, 오슬로 시내를 함께 다니기로 했다. 그녀들도 별다른 계획이 없다. 계획에 없던 영국의 그녀들과 그렇게 반나절쯤 같이 보낸 후에 숙소로 발길을 돌렸다. 그런데 호스텔에 도착하니 분위기가 너무 차분하다. 내가 바라던 그런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포기하지 않고 호스텔 카페에서 쉬고 있던 UCLA 유학생 크리스틴, 첼리스트 젱을 설득했고, 젱이 오슬로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있는 라우도 데려왔다. 라우가 오슬로를 가이드시켜주겠다면서 우리를 이끌었고, 젱은 자기가 자주 가는 저렴한 피자집이 숙소 근처에 있으니 피자를 테이크아웃해서 가져가자고 한다. 나는 배낭에서 빠질 수 없는 소주를 꺼냈다. 그렇게 넷이서 잔디밭에 앉아 맥주와 소주와 피자를 먹고 있으니까, 공원을 청소하는 아저씨가 우리를 보고 소리친다. 여기서 먹지 말고 바로 옆이 자기 집이라며 그 앞에 앉아서 먹으라고 한다. 곧 일을 끝마치고 아저씨도 우리의 조촐한 파티에 합류했다. 얼떨결에 오슬로 청소부 아저씨 집 앞 바닥에 앉아서 파티를 벌였다. 역시 그 아저씨에게도 소주를 권했고, 역시 술을 좋아하는 바이킹의 후예라서 그런지 결국 아저씨는 소주 한 병을 원 샷 했다. 오슬로 청소부 아저씨는 동아시아, 그중에서도 한국에 대해 궁금한 점이 많았다. 나는 한국은 빠른 속도로 발전했지만 최근 빈부의 격차가 점점 커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크리스틴이 이건 세계적인 추세라면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화두가 제시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길에서 만나는 청소하시는 분의 표정이 밝으면 밝을수록 그 사회가 살기 좋은 나라라고 생각해왔다고 말했다. 그러자 라우가 아저씨의 월급이 어느 정도 되는지 대뜸 물어본다. 아저씨는 노르웨이는 힘든 일일수록 돈을 많이 받는 편이고, 자기는 경력도 꽤 오래되어서 평균 이상은 받는다면서, 그래도 받는 금액의 절반을 세금으로 내니까 그렇게 많지는 않다고 한다. 그렇게 노르웨이 오슬로 청소부 아저씨의 집 앞 바닥에서 시작된 우리의 대화는 몇 시간이 넘도록 계속되었다. #5. 스톡홀름의 편의점에는 맥주를 안 판다고?! 기차가 스톡홀름(Stockholm)역에 도착할 때쯤 피오르에서 만난 일본인 친구 아유미에게서 페이스북 메시지가 왔다. 지금 스톡홀름에 있는데 혹시 나도 스톡홀름에 도착했으면 같이 여행하자는 것이었다. 며칠 전 그냥 지나가는 말로 했던 이야기인데, 그걸 기억하고 메시지를 보내주다니! 고맙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다. 아유미와는 감라스탄(Gamla Stan)이라는 스톡홀름 구시가지에서 만났다. 서유럽이나 동유럽의 구시가의 모습과는 또 다른 매력적인 경관이었다. 구불구불한 좁은 골목을 걷고 있으니 마치 중세시대 유럽의 마을 속에 와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골목들이 이어진 대광장에는 과거 한자동맹의 흔적이 남아있는 증권 거래소 건물을 비롯하여 대성당과 왕궁 건물이 웅장하게 서 있다. 현대적인 도시 스톡홀름에서 과거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감라스탄은 마치 서울 도심 속 창덕궁의 모습과 같았다. 저녁 시간이 되어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비싸기로 유명한 북유럽의 고급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촛불이 켜져 있는 아늑한 식당 내부에 들어서자 능숙한 웨이터가 우리에게 예약했냐고 물었고, 자연스레 음료를 시킬 것인지 물었다. 음료의 기본 가격은 5만 원부터였고, 그것은 스틸 워터. 물이 무료로 제공되는 일본에서 온 여자와 심지어 반찬까지 무제한 리필이 가능한 한국에서 온 남자는 결국 물을 시키지 않기로 했다. 가장 기본적인 청어요리가 15만 원이고, 미트볼이 10만 원이다. 두 메뉴를 각각 시키고, 양이 부족할 것 같아서 감자수프를 하나 추가했다. 청어요리는 청어를 세 가지 방법으로 조리한 것에 치즈가 곁들여진 요리인데, 냄새가 정말 비리기도 했지만, 양이 너무 적었다. 그렇게 물도 없는 목 막히는 식사는 30만 원이 넘는 영수증을 받고 나서야 겨우 끝났다. 물도 없이 식사도 제대로 못 하고 거금을 쓴 우리는 속이 타고 목이 너무 말랐다. 자연스레 맥주가 생각나서 바로 눈앞에 보이는 편의점으로 들어갔지만, 맥주가 없었다. 다른 편의점에 가봐도 상황은 똑같았다. 편의점 직원에게 왜 술이 없냐고 물어보니 스웨덴은 다른 유럽과 다르게 술에 대한 규제가 엄격해서, 미국처럼 정해진 곳에서만 술을 판매한다고 한다. 시원한 맥주 한 캔을 먹기 위해 우리는 걷고 또 걸어서 스톡홀름 중심에 있는 ‘Liqure Store’로 갔고, 드디어 시원한 캔맥주를 획득할 수 있었다. 물도 없이 식사를 끝낸 후에, 1시간 가까이 맥주 하나만을 찾아서 이곳저곳을 걸은 후에 마시는 맥주는 지금까지 마셨던 그 어떤 맥주보다도 짜릿하고 시원했다.
‘코로나 불경기’가 현실이 됐습니다. 영세업종이나 소기업 특히 자영업자분들의 매출이 곤두박질치고 있습니다. 경기를 살리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죽은 경제학자들의 아이디어를 빌려볼까요? 사실은 모든 정부가 쓰는 일반적인 방법들입니다. 케인스의 유효수요이론 정부 재정을 더 공급하는 겁니다. ‘전가의 보도’죠. 다들 쓰는 방법이고, 특히 일본 같은 선진국은 십여 년간 수천조 원의 재정 폭탄을 투입했습니다(그래서 나랏빚이 최고로 심각하죠). 만약 정부가 월 매출이 1천만 원이 넘지 않는 영세 식당주에게 월 100만 원씩의 지원금을 주기로 가정해볼까요? 수원에서 작은 피자가게를 하는 A 씨는 이 100만 원으로 급한 월세를 냅니다. 남은 돈으로 아이 학원비를 내고, 오랜만에 운동화도 하나 샀습니다. 결국 정부가 지급한 돈은 학원 원장과 운동화 가게 주인 그리고 건물주에게 들어갑니다. 이들은 또 이렇게 번 돈을 다른 곳에 소비할 겁니다. 이렇게 소비가 늘어날수록 경기가 좋아집니다. 소비는 누군가의 소득이니까요. 다시 말해 경제가 좋아지려면 소비를 늘려야 합니다. 이 기막힌 방법을 찾아낸 사람은 케인스(John Maynard Keynes)입니다. “우리는 모두 케인스주의자(Now, we are all Keynesian!!)”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중요한 경제학자입니다. 그는 고용 이자와 화폐에 대한 일반이론이라는 위대한 책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정부가 가죽 가방에 돈(황금)을 담아 땅에 묻습니다. 그리고 누구든(기업들에) 찾아가라고 합니다. 사람들(기업)은 가방을 찾아가기 위해 사람을 고용하고 돈을 지급합니다. 고용된 사람들은 그 돈으로 소비를 늘립니다. 소비가 늘면 기업의 형편이 좋아지고 고용이 늘어납니다. 이 작업을 계속 되풀이하면, 사회 전체의 실질소득과 부(富)가 계속 커집니다.” 정부가 어르신들에게 전봇대에 붙은 광고물을 떼는 작업을 시키고 일당을 지급하는 것도 결국 케인스의 아이디어 때문입니다. 광고물 떼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할아버지 주머니에 돈을 넣어주는 게 중요합니다. 29년 대공황을 겪은 지구 경제는 케인스의 이 아이디어로 살아났습니다. 승수효과 그런데 조건이 있습니다. 정부가 지급한 돈이 다시 소비되는 곳으로 가야 합니다. 만약 정부가 지급한 보조금이 실업자 B 씨에게 지급된 뒤, B 씨가 진료를 받아 재산이 100억 원인 병원장 C 씨에게 갔다고 가정해보죠. 주머니가 넉넉한 병원장 C 씨는 그 돈을 저축해버립니다. 그럼 정부가 투입한 재정은 은행에 잠겨버리고 ‘돈의 여행’은 여기서 마감됩니다(물론 기업이 은행에서 대출받아 공장을 세우면 좋겠지만…). 이 경우 더 ‘승수효과’가 발행하지 않고, 정부의 재정투입 효과도 막을 내리는 겁니다. 구축효과 유효한 수요를 만들어야 한다는 케인스의 이론에 반대하는 경제학자가 있습니다. 바로 프리드먼(Milton Friedman)입니다. 정부가 돈을 풀어봤자 별 효과가 없다는 겁니다. 정부가 재정을 더 풀려면, 결국 세금을 더 거둬야 합니다. 그런데 세금을 더 거두면 국민의 주머니가 가벼워집니다. 주머니가 가벼워진 국민이 소비를 줄이니, 정부 재정투입으로 소비를 늘려봤자 효과가 별로라는 겁니다. 이걸 구축효과(Crowding-out Effect)라고 합니다. “특히 정부가 돈을 풀면 물가가 올라가는데, 그럼 다시 금리를 올려야 하니, 경기에 무슨 도움이 된단 말인가?” 그는 중요한 게 시중 통화량이지만, 설령 정부가 재정을 더 풀거나 중앙은행이 기준 금리를 내려도 시장이 알아서 반응하기 때문에 효과는 신통치 않을 거라고 내다봤습니다. 그의 이론은 80년대 이후 선진국에서 케인스의 이론을 꺾으며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하지만 이후 경제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선진국은 마치 응급실을 찾듯이 재정지출을 늘리며 케인스의 넥타이를 다시 찾아 맵니다). 세이의 법칙 결국 해법은 소비를 늘리는 겁니다. 자장면부터 운동화, 승용차까지 누군가 더 소비해주면 누군가의 소득이 늘고, 결국 경기가 살아납니다. 그럼 정부가 매출이 급감한 기업을 지원해줘서 공급을 늘리면 어떨까요? 승용차 100대를 생산하는 S 자동차가 정부 보조금으로 200대를 추가 생산합니다. 만약 승용차들이 다 팔린다면 기업의 매출이 늘고, 기업은 고용을 늘립니다. 고용돼 소득이 생긴 노동자들이 다시 소비하므로 기업은 더 생산할 수 있고, 이는 다시 소비로 이어집니다. 이게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세이의 법칙(Say’s law)입니다. 하지만 이런 선순환은 꼭 맞는 게 아닙니다. 예를 들어 승용차를 더 생산해 매출이 계속 오르던 K 자동차가 더 생산하지 않고 남은 잉여금을 저축합니다. 그럼 매출상승분이 더는 고용과 투자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고용이 늘지 않으면 사람들의 지갑도 두둑해지지 않고, 소비도 늘어나지 않습니다. 소비가 늘어나지 않으면 기업이 생산을 늘리기 쉽지 않습니다. 고전 경제학을 대표하는 ‘세이의 법칙’은 이렇게 무너졌습니다. 유효수요 창출 그러니 진짜 소비를 늘리기 위해서는 (케인스 주장처럼) ‘유효수요’를 창출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중국집 매출을 올리기 위해 회식이 늘어야 하고, 야구장 매출을 늘리기 위해서는 홈런이 많이 나와야 합니다. 서울대공원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을 늘리기 위해 ‘판다’ 한 쌍을 들여오는 것도 방법입니다. 그럼 돈을 쓰려는 사람들의 마음, ‘수요’가 높아집니다. 그런데 이 모든 시도가 사람과 사람과의 접촉을 늘리고, 결국 바이러스 감염 위험을 높입니다. 그러니 코로나19 사태로 인위적인 ‘유효수요’를 늘리기가 몹시 어렵습니다. 하나의 방법으로, 일단 재정이 투입될 겁니다. 임대료를 인하해 준 건물주의 임대소득세를 깎아주는 것도 결국 국민 주머니에 돈을 넣어주는 재정 투입입니다(결국 모든 정부가 돌고 돌아 이 방법밖에 없다). 위기 극복을 위한 추경 투입도 검토되고 있습니다. 추경은 올해 국회로부터 쓰겠다고 허락받은 예산 이외의 추가 예산을 집행하는 겁니다. 그 추경이 효과를 보려면 돈이 계속 돌도록, 간절히 돈이 필요한 곳에 우선 집행돼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소중한 세금으로 만든 재정이 또 은행 창고 안에 잠겨버립니다. 이를 부동자금이라고 합니다. 장부에는 존재하지만, 우리 경제를 살리지 못하는 잠자는 돈입니다. 이미 1천조 원이 넘습니다.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정부의 재정 화살이 과녁을 정확히 겨눠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할미꽃은 이름부터 참 정다운 꽃이다. 4월이면 거의 우리나라 전역에서 볕이 잘 드는 야산의 자락, 특히 묘지 근처에서 볼 수 있다. 키는 한 뼘쯤 자라지만 아주 굵고 깊은 뿌리를 가진 경우가 많다. 고개 숙인 꽃송이를 보면, 꽃잎은 검붉은색이고 그 안에 샛노란 수술들이 박혀 있다. 일제강점기 사학자이자 언론인 문일평은 『화하만필(花下漫筆·‘꽃밭 속의 생각’으로 재출간)』에서 “첫봄 잔디밭에 풀이 파릇파릇 새 생명의 환희를 속삭일 때, 나면서부터 등이 굽은, 할미꽃은 벌써 그 입술에 붉은 웃음이 터지려 하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했다. 다섯 장으로 갈라진 잎도 개성 만점이다. 줄기와 잎은 물론 꽃잎 뒤쪽까지 가득 돋아나는 솜털들은 할미꽃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든다. 할미꽃이란 이름은 꽃이 지고 열매가 익으면 그 열매에 흰털이 가득 달려 마치 하얗게 센 노인 머리와 같다고 붙인 이름이다. 그래서 할미꽃의 한자 이름은 ‘백두옹(白頭翁)’이다. 열매에 붙은 긴 깃털 같은 것은 씨앗을 가볍게 해 바람을 타고 멀리 퍼지게 하는 역할을 맡는다. 박완서 작가는 할미꽃을 좋아한 모양이다. 노년을 보낸 경기도 구리 아치울마을 노란 집에 대한 글을 쓸 때마다 “우리 마당에 있는 나무와 꽃이 백 가지가 넘는다”고 자랑하면서 꽃 목록에 할미꽃을 빠뜨리지 않았다. ‘제비꽃이나 할미꽃, 구절초처럼 심은 바 없이 절로 번식하는 들꽃까지도 계산에 넣긴 했지만’ 하는 식이다. 작가가 제목으로 할미꽃을 쓴 소설이 있는데, 「그 살벌했던 날의 할미꽃」이다. 이 소설은 작가가 1977년 발표한 단편이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1990년대 이후 ‘페미니즘 소설’로 다시 주목을 받아 읽히는 소설이다. 작가가 20년쯤 시대를 앞서 소설을 쓴 셈이다. 이 소설에는 두 노파 이야기가 나온다. 6·25전쟁 중 여자들만 사는 마을에 미군이 찾아오는 위기가 닥치자, 양색시를 자초한 노파, 전쟁터에서 숫총각은 죽는다는 기묘한 풍문에 불안해하는 군인과 관계를 맺어준 노파다. 첫 번째 이야기는 남자들은 국군에 지원하거나 인민군으로 끌려갔고, 남쪽으로 피난 가거나 북쪽으로 끌려가 여자만 남은 마을이 배경이다. 마을에 진주한 미군이 삼삼오오 떼를 지어 집집을 기웃대자 여자들은 무서움을 견딜 수 없어 마을에서 제일 큰 집으로 모여들었다. 이때 마을에서 제일 웃어른뻘인 노파가 나선다. 젊은 여자들에게 피해가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자신이 희생하기로 한 것이다. 다행히 몸을 더럽히지 않고 식량을 얻어 돌아온다. 두 번째 이야기는 한 젊은 병사가 나이 든 여인과 잠자리를 갖는 내용이다. 총각 딱지를 떼지 못하고 전투에 나가면 전사자가 된다는 풍문이 돌아 흉흉하다. 적의 총알은 숫총각을 좋아한다는 거였다. 김 일병은 인근 마을에서 비교적 정정한 노파를 만나 이 얘기를 했고, 노파의 제안으로 숫총각 딱지를 뗐다. 그는 ‘뭔가 당한 것 같은 억울함’과 노파의 욕망에 대한 혐오감을 느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그런 욕망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그 노파의 행위야말로 무의식적인 휴머니즘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이른다. 소설의 마지막 대목은 다음과 같다. 지금도 시골에 가면 차들은 뻔질나게 다니는데 포장은 안 된 황톳길이 있다. 그런 길가에서 허구한 날 먼지를 뒤집어써서 마치 도시의 삼류 왜식 집 베란다에 장식한 퇴색한 비닐 모조품 꼴이 돼 버린 길섶에서 문득 찢어지게 선명한 빛깔로 갓 피어난 들꽃을 본 사람이 있는가. 있다면 알 것이다. 기가 차고 민망한 대로 차마 그게 꽃이 아니라곤 못 할 난감하고 지겨운 심정을. 그런 심정이 되어 그들 노파를 여자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성적인 의미의 여자라도 좋고 (중략) 아기들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제일 먼저 얼굴과 호칭을 익히는 엄마로서의 여자라도 좋다. 아무튼, 그 노파들은 여자였다고, 죽는 날까지 여자임을 못 면했었다고 말해주고 싶다. 소설 안에서는 할미꽃을 거론하지 않고 제목에 할미꽃을 넣는 방식을 택했다. 그렇더라도 이 소설이 두 노파를 할미꽃에 비유한 것을 의심할 여지는 없다. 박완서의 다른 소설 「오동의 숨은 소리여」에서도 소설 속에서는 오동나무라는 글자를 쓰지 않았지만, 제목에 ‘오동(梧桐)’을 넣은 것과 마찬가지 방식이다. 이 소설은 1977년 발표한 것이지만 20년 후인 1997년 여성 작가들이 발표한 페미니즘 소설 11편을 묶은 소설집에 표제작으로 실렸다. 오정희의 「옛 우물」, 신경숙의 「감자 먹는 사람들」, 김형경의 「민둥산에서의 하룻밤」등이 함께 들어 있다. 이 책을 펴낸 경희대 하응백 교수는 「그 살벌했던 날의 할미꽃」에 대해 “전쟁에서 여성 특유의 모성애가 어떻게 공동체를 구원할 수 있는가를 물은 소설”이라며 “페미니즘은 남녀 간 대결이나 헤게모니 쟁탈전이 아니라 모성의 평화적 확대”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할미꽃은 한창 꽃다운 시절엔 허리를 숙이지만, 열매가 익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꽃대를 위로 곧게 세우는 꽃이다. 조금이라도 위에서 씨앗을 날려야 멀리 날아가기 때문이다. 전국 산지에서 자라는 백합과 식물 처녀치마도 이와 비슷하다. 꽃이 필 때는 꽃대가 10cm 정도로 작지만 수정한 다음에는 꽃대가 쑥쑥 자라 50cm 정도까지 훌쩍 크는 특이한 꽃이다. 원주 오크밸리 리조트 뒷산에서 60cm 이상 꽃대를 높인 처녀치마를 본 적도 있다. 그래야 꽃씨를 조금이라도 멀리 퍼트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할미꽃이 요즘 부활하는 꽃이라면 동강할미꽃은 유명한 아이돌급 야생화다. 검붉은색 일색인 할미꽃에 비해 홍자색 등 다양하고 화려한 색깔로 피어 동강 절벽을 장식하는 꽃이다. 필자도 초봄에 동강할미꽃 보러 몇 번 갔는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동강에 여러 번 갔다. 동강할미꽃은 또 허리를 꼿꼿이 편 채로 피기 때문에 할미꽃은 구부정하게 피는 꽃이라는 기존 인식을 무색게 하는 꽃이다. 형태학적으로는 할미꽃과 비교해 암술과 수술 수가 적은 점이 다르다. 이 동강할미꽃을 세상에 처음 알린 사람이 생태사진가 김정명 씨다. 김 씨는 1997년 동강에서 야생화 탐사를 하다 바위 절벽에서 ‘하늘을 향해 피는 할미꽃’을 발견했다. 김 씨는 다음해 자신의 「한국의 야생화」캘린더에 이 꽃 사진을 실었고, 2년 후인 2000년 동강할미꽃은 세계에서 유일한 식물로 학계의 인증을 받았다.
면목고등학교는 서울에서 유일하게 기숙사가 있는 자율형 공립고등학교라는 장점을 살려 ‘인성을 갖춘 창의융합인재 육성’을 목표로 중랑구 지역의 새로운 명문학교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학교 교육에 학생을 최우선에 두고 2018학년도부터 고교학점제 선도학교를 운영하고 있으며,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소프트웨어, 외국어, 독서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SW 선도학교인 면목고는 중학교 코딩교육을 바탕으로 1학년 정보, 2학년 정보처리와 관리, 3학년 컴퓨터 구조, 프로그래밍 등의 과목을 편성해 중·고등학교 간에 단절될 수 있는 SW 교육의 한계를 최소화했다. 특히, 외국어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베트남어’를 개설한 점이 돋보인다. 송현섭 교장은 베트남이 향후 기술·경제적 측면에서 경쟁력 있는 나라로 보고, 학생들이 중국어·일본어와 함께 미래지향적으로 베트남어를 배울 수 있도록 했다. 2020학년도부터 1학급이 개설돼, 베트남 관광청 대사가 1학기 동안 직접 학생들을 가르치게 된다. 면목고의 독서교육은 지난해 서울독서교육 대상을 받았을 정도로 정평이 나 있다. 사제동행 책읽기, 독서 멘토링, 한 학기 한 권 읽기 등은 물론 작가 초청 강연, 서평 쓰기, 토론 등 도서관 독서프로그램도 활성화됐다. 올해는 교육청 공간기획팀의 도움을 받아 도서관을 토론, 독서, 공부, 휴식을 할 수 있는 통합적 교육공간으로 확장 이전할 계획이다. 개방형 선택 교육과정으로 진학지도 만족도 향상 면목고는 2018년 송현섭 교장이 취임한 후부터 학생 선택 중심 교육이 이뤄질 수 있도록 개방형 선택 교육과정을 편성했다. 이에 따라, 2학년은 인문사회·자연과학 등 진로선택 계열별로 필수이수과목을 포함해 최대 4과목을 선택하며, 3학년은 진로선택 과목 위주로 3과목을 선택하도록 했다. 이 같은 교육과정은 서울대를 비롯한 여러 대학의 수능 선택과목 지정, 대입 정시 가산점 운영 등 다양한 대입전형에 대응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한, 특목고·특성화고 등에 개설된 전문교과도 일부 도입해 학습 역량에 맞춰 깊이 있는 학습이 가능하도록 했다. 외국어 계열에서 심화영어, 과학계열은 심화수학Ⅰ, 국제계열에서는 국제정치, 국제경제 등 2과목을 개설했다. 면목고의 교육과정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소인수 선택과목이어도 개설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송 교장은 “교육에 있어서 하향평준화를 시킬 필요는 없다. 개인의 능력에 따라서 학습 능력의 차이는 있다”며 “그 차이를 교육을 통해 개선시켜 주거나, 질적으로 더 높여주는 것이 학교 교육의 본질”이라고 말했다. 올해는 학생들이 학습에 집중할 수 있도록 교실환경 개선에 초점을 맞출 계획이다. 송 교장은 “교과교실과 홈베이스 구성은 물론, 휴식, 독서, 자율학습, 인터넷 학습 등 각각의 목적에 맞는 공간을 새롭게 구성할 계획이며, 올해가 그 완성 단계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면목고의 고교학점제 기반 개방형 선택 교육과정 운영은 수업에 대한 학생들의 집중력과 학습 만족도가 높아지면서 2015 개정 교육과정 운영의 중심에 우뚝 섰다. 교원 업무 부담 줄여 학습지도·연구역량 제고 이 같은 학생 선택중심 교육과정이 성공적으로 운영된 측면에는 교원 업무 부담 감축이 있었다. 신학기에는 가급적 교사가 희망한 대로 부서 배치를 하며, 부장교사 중심의 학교 운영을 지향했다. 부장교사 회의는 일주일에 한 번, 전체 교직원 회의도 한 달에 한 번으로 줄이면서 전문성 향상을 위한 연수 중심으로 진행한다. 그 결과, 학습지도 능력 및 연구역량이 강화되고, 교원 전보에서도 면목고 희망교사가 이전보다 늘어나고 있다. 송 교장은 “교장이 학교 운영에 지나치게 관여하면 피곤한 조직이 되고 성과가 오르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부서나 학년부 중심의 권한 위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부서 중심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은 교장이 나서서 해결한다”고 말했다. 국제 경쟁력을 높이는 베트남어 교육 면목고의 차별성 있는 교육은 ‘베트남어’ 개설에서도 드러난다. 송현섭 교장은 “많은 기업이 베트남을 주목하고 있다. 인적·물적으로 경쟁력 높은 지역이 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베트남은 경제적 측면에서 주목할 만한 나라이며, 인구와 자원이 풍부하고 사람들도 성실한 편이다. 이에 현재 고1 학생들이 10년 후, 활용도가 높은 언어가 무엇인가를 생각해서 개설했다고 설명했다. 올해 1학급이 개설됐지만, 과목의 희소성으로 강사 모집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이에 송 교장은 주한베트남관광청과 논의해 면목고에서 베트남어를 운영하는 동안 강사 초빙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기로 협력했다. 특히 올해는 주한베트남관광청 대표부 리 쓰엉 깐 대사가 직접 학교에 방문해 코티칭(Co-teaching) 형태로 1학기 수업을 진행한다. 송 교장은 “베트남관광청이 흔쾌히 도움을 주셔서 중국어, 일본어에 이어 베트남어까지 다양한 언어를 가르칠 수 있게 됐다”며 “양질의 강사를 구할 수 있도록 교원 자격증이 없어도 해당 전공자가 특정 과목을 가르칠 수 있는 제도가 뒷받침되었으면 한다”고 전했다. 체력과 인성 모두 향상시키는 태권도 면목고는 학생의 학습능력 향상 외에도 올바른 인성을 갖출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올해부터는 남학교의 특성에 맞게 국기원과 협력해 1학년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태권도 교육’을 진행한다. 이를 위해 국기원은 교원 자격이 있는 사범을 학교에 파견하며, 도복도 무료로 기증하기로 했다. 송 교장은 태권도 교육을 토대로 베트남과의 국제 교류도 진행할 예정이다. 베트남어 교육을 담당하는 주한베트남관광청 대사와 연결고리를 형성해, 태권도라는 문화적 교류를 기반으로 국제교육 문화교류의 선도적 모델로 발전시킬 포부를 다짐했다. 또한, 학생들의 올바른 인성 함양을 위해 ‘기초질서 회복’을 목표로, 공식적인 학교 시험 패턴을 수능 시험 체계로 바꾸었다. 시험 시작종이 울림과 동시에 입실이 금지된다. 정해진 시간을 지키면서 바른 인성을 기를 수 있고, 향후 어떠한 조직에서도 인정받는 성실한 인재가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아울러 배움이 느린 학생, 학교적응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대안교실인 ‘넛지 클래스’를 운영하는 등 모든 학생의 행복한 학교생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학교장 대입 상담으로 공교육 신뢰도 높여 면목고 하면 빠질 수 없는 것이 진로진학지도다. 서울시교육청 진학지도장학사 1기인 송 교장은 서울중등진학지도연구회 회장, 서울시교육청 대학진학지도지원단 단장 등으로 활동하며 오랜 기간 진학지도를 위해 노력해 온 전문가다. 송 교장은 3학년 담임교사, 학년별 부장교사, 전직 입학사정관, 진학지도장학사 등과 함께 ‘진로·진학 내비게이션 팀’을 구성해 연중 수시로 학생 맞춤형 진로지도를 하고 있다. 대입전형 시기별로 다양한 진로진학지도 방법을 공유하며, 교육과정의 이해, 대입 전문성 향상 프로그램 등 교사 연수도 활발히 진행된다. 또한, 진학지도의 특성상 3학년 담임교사는 진학지도의 전문성과 대입 정보 연계를 위해 다수를 유임시키고, 기존 교사와 신규 3학년 담당교사가 서로 진학 멘토-멘티가 되어 진학지도의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 그 결과, 지난해 대입에서 서울대, 고려대, 포항공대, 의과대 등 우수 대학에 합격하는 고무적인 성과가 나타나기도 했다. 송 교장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학교장과 함께하는 수시 대입 상담’을 운영할 계획이다. 송 교장은 학업이 우수한 학생부터 진학 목표를 세우지 못한 학생까지 두루 상담하며, 학생 각자의 장점을 살려 진학할 수 있도록 지도할 예정이다. 이 외에도 면목고는 개인별 직업체험, 인포그래픽 진로캠프 등의 맞춤형 진로지도, ‘면목 진로컨설팅 프로그램’으로 1:1 진로컨설팅을 하고 있다. 또한, 올해부터 지난 6~7년간 대입전형 결과를 데이터베이스화해서 학교와 지역사회의 특성에 맞는 대입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아울러, 사교육의 영향력이 큰 진로진학지도를 학교에서 책임지기 위해, 학부모들의 진로진학정보 제공이 가장 시급한 일임을 깨닫고, 올해부터는 전체 학부모를 대상으로 2015 개정 교육과정의 이해와 대입 관련 정보를 집중적으로 안내할 계획이다. 면목고는 정부의 2025년 고교학점제 도입 및 자율고 폐지 정책에 따라, 2021학년도부터 자율형 공립고에서 일반고로 전환된다. 송현섭 교장은 이에 아쉬움을 전하며 “백년대계인 교육의 흐름을 사람이 바뀔 때마다 바꾸면, 코이의 법칙처럼 큰물에서 살아야 할 물고기가 조그만 물에서 살면서 개인의 능력 차이가 오히려 더 벌어질 수 있다”면서 “우리 사회가 능력 차이를 인정하면서, 교육 격차를 어떻게 줄일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것이 맞다”고 교육계에 울림을 전했다.
코로나19로 인해 학교 개학, 개강이 연기되면서 온라인 교육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각 대학은 학습 공백을 줄이기 위해 온라인 강의를 준비하지만 장비와 경험이 부족한 상황이다. 이에 한국방송통신대학교는 요청한 학교를 대상으로 725개의 정규 강의와 강의플랫폼인 ‘U-KNOW(유노) 캠퍼스’를 무료로 개방하는 결정을 내렸다. 류수노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총장은 “코로나19 사태는 조속히 극복해야 할 국가적 비상 상황이다. 공공성의 책무를 가지는 국립대학으로서 사태 해결을 위해 응당 해야 할 조치”라며 “이를 계기로 국가가 4차 산업 도래와 더불어 평생교육 방면에서 그 가능성과 효과를 새롭게 인식하면서 지속적으로 투자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는 1972년 개교 이후부터 48년간 우리나라 최초의 평생교육기관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지속적인 학과 증설·개편은 물론, TV 방송부터 모바일까지 교육의 접근성을 확대하기 위해 인프라 리모델링에도 많은 투자를 했다. 특히, 3년 5개월의 공백기를 깨고, 류수노 총장이 부임한 이후, 학교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대학원, 전문대학원을 설치해 박사 학위를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방통대법)’을 추진했다. 또한, 졸업학점 축소, 형성평가 적용, AI를 활용한 온라인 시험 시스템 구축, 학과 신설 등 시대 변화에 적응한 새로운 방통대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 방통대법은 방통대의 가장 큰 목표인 ‘평생교육 증진’을 더욱 확대하고, 그를 위한 법적인 기준과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방안이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해외 원격 대학과 같이 박사과정을 개설해 운영할 수 있으며, 설립 목적과 정부의 행정·재정지원 의무, 교원·시설 등 운영 기준이 더욱 명확해질 것으로 보인다. 농학과 학생부터 9개 품종의 쌀을 만든 쌀박사, 새로운 방통대를 만들어가는 총장까지 오랜 시간을 동고동락 해 온 류수노 총장을 만나 조각난 인생을 이어준 평생교육과 그 의미는 무엇인지 들어본다. 원격교육에 대한 국가적 인식 전환 필요 Q.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원격교육에 대한 필요성도 커진 상황이다. 우리나라 원격교육이 더 발전하기 위해 어떤 점이 개선되어야 할 것이라고 보는가? “원격교육에 대한 국가적 인식 전환과 지속적 지원이 필요하다. 해외 사례를 보면, 그 중요성을 더욱 절실히 느낄 수 있다. 애리조나주립대학과 미네르바대학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2012년부터 본격 시작된 MOOC가 지속적인 발전을 하는 등 온라인 원격교육에 기반을 두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직 원격교육이 오프라인 수업보다 교육내용 전달에 다소 부족하다고 보는 인식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당국과 각 대학에서도 투자에 소극적이고, 지원도 일반 국립대학과 비교해 부족한 상황이다. 우리 대학이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 강좌를 개방하면서, 교육부에서도 그 중요성을 깨닫고 서버 용량 부족 등의 문제를 해결해주겠다고 했다. 이를 계기로 국가가 평생교육 방면에서 원격교육의 가능성과 효과를 새롭게 인식하면서 지속적으로 투자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Q. 방통대는 온라인 강의 중심으로 운영되지만, 최근에는 학생들이 오프라인 동아리 활동 등을 할 수 있도록 지역별 대학, 강의실 등 공간을 마련하고 있다. 오프라인 모임을 늘리는 이유가 있나? “대학은 학생들을 위해 존재해야 하고, 학생들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가진 서로 다른 장점을 극대화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교육이 접합되었을 때, 교육에 대한 감성을 자극하고 학생들의 창의력 제고에 도움 된다고 본다.” 세계 최초 당뇨억제성분 쌀 품종을 개발한 ‘쌀박사’ Q. 방통대 농학과에서 학사학위 취득을 시작으로 쌀 관련 논문만 139편이 넘는다. 특별히 ‘쌀’에 대해 애착을 가진 이유가 있나? “쌀은 나의 조각난 인생을 연결해 준 도구다. 국민의 주요 먹거리를 넘어 생명 자원으로서 중요성이 커지는 만큼,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이 쌀에 대한 연구라고 생각해 시작했던 것 같다. 연구 과정에서 많은 실패가 있었지만, 실패 뒤에는 새로운 기회가 온다는 것을 알게 됐고, 쌀을 경쟁력 있는 식량 자원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 결과 9개 품종의 쌀을 개발하고, 21개의 국제 및 국내 특허 등 기적 같은 성과가 나타났다. 이처럼 쌀은 내가 살아가는 삶 자체에 커다란 의미를 주었다.” Q. 오랜 연구에도 불구하고, 최근 쌀 소비량이 줄어들고 있다. 이에 대한 대안은 무엇이라고 보는지. “과거에는 산출량이 높은 소품종을 대량 재배했지만, 앞으로는 다양한 기능을 가진 여러 품종을 수요에 맞게 소량 재배하는 것으로 바뀔 것이다. 예를 들면, 노화나 암을 예방하는 쌀, 건강을 지켜주는 쌀과 같이 특화된 기능을 반영한다면 쌀 소비를 촉진시킬 수 있다고 본다. 시대 변화에 따라 쌀 소비량이 일시적으로 줄어들 수는 있지만 쌀의 중요성 자체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미래에는 쌀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이다.” 방통대 48년 숙원 방통대법, 국회의원 175명 동의 Q. 3년 5개월이라는 공백기간을 지나 2018년 방통대 총장으로 임명됐다. 그 공백기가 남다르게 다가왔을텐데, 특별히 학교 운영에 집중하거나 노력한 부분이 있나? “폐목강심(閉目降心)의 심정으로 자아 성찰하면서, 지속 성장을 위한 대학 체질 개선 정책을 찾고자 노력했다. 방통대가 48년 역사에서 ‘못 해본 것’, ‘안 해본 것’을 추진하기 위해 5가지를 변화시켰다. 대표적인 것이 국회의원 175명의 서명을 받아 추진한 방통대법이다.” Q. 방통대법이 지난해 국회에서 발의됐지만 계류 중이다. 평생교육 측면에서의 박사학위 개설이 주 내용이지만, 일부에서는 박사학위 남발, 전문성에 대한 우려를 지적하기도 한다. “방통대법의 가장 큰 목적은 소수 정예의 박사를 양산해 우리 사회에 필요한 희망 사다리를 놓으려 하는 것이다. 대표적 원격대학인 영국의 OU는 물론 미국, 캐나다 등에서도 우수한 박사과정을 운영하고 있으며, 이들 대학의 박사과정 학생들은 자신이 가진 직업적 전문성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 10위 경제 국가에 속하면서도 유독 방통대에 박사학위를 주지 않는 제도적 결함은 안타까운 실정이다. 현재 5,000명의 석사를 배출했음에도 제도적으로 박사학위를 줄 수 없다는 것은 자가당착이기도 하다.” Q. 방통대법과 맞물려 추진되는 것이 ‘온라인 로스쿨 설치’이다. 학비는 물론 입학 문턱이 낮다는 강점이 있지만, 이 역시도 부실한 학사관리 등 질적인 측면이 단점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이를 보완할 방법이 있나? “온라인 로스쿨 설치는 과거 사법시험이 희망 사다리 역할을 했던 것처럼, 이런 희망의 창구가 확장될 때, 건전하고 공평한 사회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추진됐다. 이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도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방통대는 ‘입학은 쉽지만, 졸업이 어려운 학교’라고 정평이 나 있을 정도로 학사관리가 철저하다. 이 외의 풍부한 교수 인력, 학사지원시스템, 원활한 교수-학습 토론 시스템 등의 구축을 위해서는 자체적으로 이루기엔 한계가 있다. 근본적으로 취지에 공감한다면 국가에서 적극적으로 검토했으면 한다.” Q. 지난 2년은 방통대의 내실을 다졌다면, 앞으로의 2년은 어떤 부분에 집중할 계획인가? 방통대의 미래가 궁금하다.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학습내용은 지식 활용 연결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 순서다. 그에 대한 대비로 기존의 전통적 시험방식을 바꿔 온라인 문제은행 방식으로 올해 계절학기부터 시범 적용한다. 원하는 시간에 시험을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졸업학점을 축소해 학습 부담을 줄이고, 문제해결형 학습이 가능하도록 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데이터융합공학 전공, 자유전공학부를 만들어 한 학과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여러 학과를 선택해 다방면을 공부할 수 있도록 추진하고 싶다. 이것이 평생교육을 추구하는 방통대의 진면모가 아닐까 한다. 또한, 올해 안으로 방통대법이 통과된다면, 법안을 발의한 175명의 국회의원은 물론, 동문들과 함께 축제의 장을 열고, 그 기쁨을 공유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