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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즐거움① ‘나’를 찾아가는 ‘행복’의 길

 

‘나’라는 낱낱의 사람들이 찾아가는 행복의 길은 세 개의 바탕 낱말, 곧 ‘나’와 ‘사람’과 ‘행복’을 길잡이로 삼는다. 우리말에서 ‘나’와 ‘사람’과 ‘행복’이라는 말이 어떤 뜻을 갖고 있는지, 깊고 넓게 묻고 따져보게 되면, 행복에 이르는 길이 좀 더 또렷하게 드러난다.  

 

01. 나
우리말에서 ‘나’는 ‘나다’, ‘낳다’, ‘내다’에 바탕을 두고 있는 말이다. ‘나다’는 어떤 것이 나는 것을 말하고, ‘낳다=나+히+다’는 어떤 것이 나게 되는 것을 말하고, ‘내다=나+이+다’는 어떤 것이 나게 하는 것을 말한다. ‘나’는 절로 ‘난 것’이면서, 어버이가 ‘낳은 것’이면서, 해와 달과 물과 불과 흙과 같은 것이 ‘낸 것’을 말한다. 


‘내’가 ‘나’를 절로 난 것으로서 보게 되면, ‘나’는 낱낱이 저마다 따로 하는 것이다. 저마다 따로 하는 낱낱의 ‘나’를 바탕으로 삼아서 ‘나’는 숨을 쉬고, 손발을 놀리고, 생각을 하고,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것과 같은 일을 하면서 살아간다. 사람들은 이러한 낱낱의 ‘나’를 잣대로 삼아서 ‘살아 있는 것’과 ‘죽어 있는 것’을 나눈다.  


그런데 ‘내’가 ‘나’를 어버이가 낳은 것으로서 보게 되면, ‘나’는 언제나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다. ‘나’는 ‘나’를 낳은 어버이와 함께하고, 어버이가 낳은 형제와 함께하고, ‘내’가 어버이로서 낳은 자녀와 함께하고, 어버이와 어버이를 통해서 누리에 이미 있었거나, 지금 있거나, 앞으로 있을 모든 사람과 함께하는 것이다.  


또한 ‘내’가 ‘나’를 해와 달과 물과 불과 흙과 같은 것이 ‘낸 것’으로서 보게 되면, ‘나’는 다른 모든 것들과 언제나 함께하는 것이다. ‘나’는 ‘나’를 낸 해와 달과 물과 불과 흙과 바람 따위와 언제나 함께하는 것이고, 이러한 것에서 비롯한 풀과 나무, 벌과 나비, 개와 돼지 따위와 언제나 함께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나’는 따로 하는 것이면서, 함께하는 것이다. 한국 사람은 낱낱으로서 따로 하는 ‘나’를 ‘저’라고 부르고, 다른 것과 함께 하는 ‘나’를 ‘우리’라고 부른다. 이때 ‘저’는 저마다 따로 하는 닫혀 있는 ‘작은 나’를 말하고, ‘우리’는 다른 것과 더불어서 함께하는 열려 있는 ‘큰 나’를 말한다. 

 

02. 사람
‘나’라는 말은 저마다 따로 하는 ‘나’를 일컫는 말이다. ‘제’가 ‘저’를 일컬을 때만, ‘나’라고 말한다. 이런 까닭으로 수없이 많은 말 가운데서 ‘나’라는 말은 오로지 ‘내’가 ‘나’에게만 쓸 수 있다. 그런데 ‘나’를 일컫는 나의 이름은 ‘나’도 쓸 수 있고, ‘너’도 쓸 수 있고, ‘남’도 쓸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오로지 ‘나’만이 쓸 수 있다. 


누군가 ‘나’라고 말할 때, ‘나’는 사람인 ‘나’를 가리킨다. 사람만이 ‘나’를 ‘나’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으로 ‘내’가 ‘나’를 알아가는 것은 사람인 ‘나’를 알아가는 일로써 이루어진다. ‘내’가 ‘나’를 알기 위해서는, 나의 바탕인 ‘사람’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우리말에서 ‘사람’은 ‘살다’, ‘살리다’에 바탕을 두고 있는 말이다. ‘살다’는 사는 일을 말하고, ‘살리다’는 ‘살+리+다’로서 살도록 하는 일을 말한다. 옛말에서는 ‘사람’을 ‘사’으로 말하고, ‘살리다’를 ‘사다’로 말했다. ‘‘사’과 사다’를 살펴보게 되면, ‘사’=사람’은 ‘사는 일=살리는 일’에 바탕을 둔 말임을 알 수 있다. ‘사람’은 살리는 일을 바탕으로, 살아가는 일을 하는 것을 말한다.  


 풀과 나무, 벌과 나비, 개와 돼지와 같은 것도 사람처럼 살아가는 일을 한다. 그런데 한국 사람은 ‘사람’만 ‘사람’이라고 일컫는다. 그들이 이렇게 하는 것은 사람만이 온갖 것을 살려서 살아가는 일을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물·불·흙·채소·곡식·광물·소리·말과 같은 온갖 것을 살려서 살아가는 일을 한다. 


한국 사람은 온갖 것을 살려서 살아가는 ‘살림살이’의 임자를 ‘나’라고 말한다. 따라서 ‘내’가 ‘나’라는 사람이 되는 일은 ‘내’가 살림살이의 임자로서, 나름의 줏대를 갖추어가는 일을 말한다. 그런데 ‘내’가 살림살이의 임자로서 나름의 줏대를 갖추어가기 위해서는, 먼저 ‘나’는 사람의 잣대가 무엇인지 또렷이 알아야 한다. 


한국 사람은 ‘사람’의 잣대를 ‘사람다움’에 두었다. 이러니 걸핏하면 “사람이면 다 사람이냐, 사람이 사람다워야 사람이지”라고 말한다. 그들은 사람다움을 잣대로, 사람답게 사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나누어서 좋음과 싫음, 옮음과 그름, 맞음과 틀림 따위를 달리한다. 


한국 사람이 사람의 잣대로 삼는 ‘사람다움’은 ‘사람’과 ‘다움’으로 이루어진 말이다. ‘사람다움’에서 ‘다움’은 ‘다 하다’, ‘다 되다’를 뜻하는 말이다. ‘사람다움’은 사람이 사람으로서 가진 본디의 가능성을 ‘다 이룩함으로써’, ‘다 되어진 사람’으로 드러나는 것을 말한다. 

 

03. ‘행’과 ‘복’ 그리고 ‘은’과 ‘덕’
한국 사람은 살려서 살아가는 일이 잘 이루어지면 ‘행복하다’라고 말하고, 그렇지 못하면 ‘불행하다’라고 말한다. 이런 까닭으로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하게 되기를 바란다. 그런데 사람들은 행복하게 되는 일이 무엇을 어떻게 하는 일인지 잘 알지 못한다. 이러니 행복해지기 위해서 도리어 불행으로 내닫는 이들도 생겨나게 된다.


사람들이 살려서 살아가는 일을 잘하려면, 살려서 살아가는 일에 필요한 갖가지 것을 고루 그리고 두루 갖고 쓸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까닭으로 사람들은 좋은 몸, 좋은 머리, 좋은 음식, 좋은 옷, 좋은 연장, 좋은 집, 좋은 이웃, 좋은 나라 따위를 가지고 살고자 한다. 


한국 사람은 살려서 살아가는 일에 필요한 갖가지 것을 갖고 쓰는 것을 바탕으로 행(幸)·복(福)·은(恩)·덕(德)을 말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러한 말이 어떠한 뜻을 갖고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 

 

행(幸)
우리말에서 ‘행(幸)’은 어려움에 놓여 있는 사람이 살리는 힘을 가진 어떤 것을 만나서, 어려움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물에 빠졌는데 다른 사람이 그를 건져내어 목숨을 잃지 않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다행(多幸)’이라고 말한다. 

 

복(福)
우리말에서 ‘복(福)’은 사람이 저를 살리는 힘을 가진 어떤 것을 받아서 누리는 것을 말한다. 사람들은 부모나 조상과 이웃과 같은 사람이 베풀어주는 ‘복’을 받아서 누리기도 하고, 해·달·물·불·흙·풀·나무·개·돼지와 같은 것에서 비롯하는 ‘복’을 받아서 누리기도 한다. 

 

은(恩) 
우리말에서 ‘은(恩)’은 사람이 저를 살리는 힘을 남에게 빚지는 것을 말한다. 사람들은 살려서 살아가는 일이 남에게 ‘은’을 빚지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남에게 ‘덕’을 베푸는 일에 눈을 뜨게 된다. 

 

덕(德) 
우리말에서 ‘덕(德)’은 사람이 살리는 힘을 가진 것을 베풀어서, 남이 받아서 누리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사람이 남에게 ‘덕’을 베풀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갖고 있어야 한다. 먼저 남에게 베풀어 줄 수 있는 어떤 것을 가져야 하고, 다음으로 남에게 베풀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사람들이 아무리 많은 것을 갖고 있더라도, 베풀 수 있는 마음이 없으면, ‘덕’을 베푸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사람들이 아무리 많은 ‘행’을 만나고, 많은 ‘복’을 받고, 많은 ‘은’을 입고, 많은 ‘덕’을 베풀더라도, 그것을 제대로 누릴 수 없으면 어떠한 쓸모도 없다. 이런 까닭으로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려면, 갖가지 것들이 가진 살리는 힘을 잘 살려서, 잘 누릴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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