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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민원을 제기하는 방법은 매우 다양하다. 간단한 민원은 유선을 이용하기도 하고 직접 찾아와서 구두로 하거나 내용증명과 같은 서면을 이용할 수도 있다. 학교에 제기한 민원이 해결되지 않으면 상위 기관에 민원을 제기하는데 일반적으로 인터넷 국민신문고를 이용한다.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제기하면 보통 교육지원청 담당자에게 배정이 되고, 며칠 후 담당자가 답변을 한다. 교육지원청의 민원 답변 또는 처리가 만족스럽지 않으면 교육지원청을 기피 기관으로 지정하고 본청에 직접 민원을 제기할 수 있다. 2019년 한 해 동안 국민신문고를 통해 17개 시·도교육청에 제기된 민원이 162,972건이라고 한다. 학생인권조례가 시행 중인 시·도는 조례에 따라 설치된 학생인권교육센터에 별도로 민원을 제기할 수도 있다. 교육청에 민원을 제기해서 해결되지 않으면 교육부·국가인권위원회·감사원에 민원을 제기하기도 하고 청와대 국민청원에 글을 게시하기도 한다. 이렇게 다양하게 민원이 제기될 때마다 학교는 매번 답변서를 제출하는 것은 기본이고, 담당자가 방문을 하는 경우도 있고, 교사가 직접 기관에 출석하여 내용을 설명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학교가 가장 곤혹스러워하는 민원은 사실이 아니거나 왜곡된 일방적인 내용으로 여러 곳에 동일한 민원을 제기하는 것이다. 반복되는 악성민원 때문에 교육력과 행정력을 소진하고, 정신적 스트레스에 고통 받는 교사들에게 받는 가장 많은 질문은 ‘우리도 민원인을 무고나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수 있냐’는 것이다. 결론은 허위 민원이라고 하더라도 일반적으로 무고나 명예훼손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고죄 「형법」 제156조(무고) 타인으로 하여금 형사처분 또는 징계처분을 받게 할 목적으로 공무소 또는 공무원에 대하여 허위의 사실을 신고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무고죄는 타인으로 하여금 형사처분 또는 징계처분을 받게 할 목적으로 공무소 또는 공무원에 대하여 허위의 사실을 신고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이다. ‘징계처분’이란 공법상의 감독관계에서 질서유지를 위하여 과하는 신분적 제재를 말하는 것으로 사립학교 교원에 대한 학교법인 등의 징계처분은「형법」제156조의 ‘징계처분’에 포함되지 않는다. 「형법」 제156조는 타인으로 하여금 형사처분 또는 징계처분을 받게 할 목적으로 공무소 또는 공무원에 대하여 허위의 사실을 신고한 자를 처벌하도록 정하고 있다. 여기서 ‘징계처분’이란 공법상의 감독관계에서 질서유지를 위하여 과하는 신분적 제재를 말한다. 그런데 사립학교 교원은 학교법인 또는 사립학교경영자가 임면하고(「사립학교법」 제53조,, 제53조의2), 그 임면은 사법상 고용계약에 의하며, 사립학교 교원은 학생을 교육하는 대가로 학교법인 등으로부터 임금을 지급받으므로 학교법인 등과 사립학교 교원의 관계는 원칙적으로 사법상 법률관계에 해당한다. 비록 임면자가 사립학교 교원의 임면에 대하여 관할청에 보고하여야 하고, 관할청은 일정한 경우 임면권자에게 해직 또는 징계를 요구할 수 있는 등(「사립학교법」 제54조) 학교법인 등에 대하여 국가 등의 지도·감독과 지원 및 규제가 행해지고, 사립학교 교원의 자격, 복무 및 신분을 공무원인 국·공립학교 교원에 준하여 보장하고 있지만, 이 역시 이들 사이의 법률관계가 사법상 법률관계임을 전제로 신분 등을 교육공무원의 그것과 동일하게 보장한다는 취지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학교법인 등의 사립학교 교원에 대한 인사권의 행사로서 징계 등 불리한 처분은 사법적 법률행위의 성격을 가진다. 한편 형벌법규의 해석은 엄격하여야 하고, 명문의 형벌법규의 의미를 피고인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지나치게 확장해석하거나 유추해석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으로서 허용되지 않는다. 위와 같은 법리를 종합하여 보면, 사립학교 교원에 대한 학교법인 등의 징계처분은 「형법」 제156조의 ‘징계처분’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해석함이 옳다(대법원 2014. 7. 24. 선고 2014도6377 판결). ‘허위의 사실’이란 객관적 진실에 반하는 사실을 말하는데 정황을 다소 과장한 경우에는 허위신고라고는 볼 수 없다. 신고한 사실이 객관적 진실에 반하는 허위사실이라는 요건은 적극적 증명이 있어야 하고, 신고사실의 진실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소극적 증명만으로 곧 그 신고사실이 객관적 진실에 반하는 허위의 사실이라 단정하여 무고죄의 성립을 인정할 수는 없으며, 신고내용에 일부 객관적 진실에 반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더라도 그것이 범죄의 성부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부분이 아니고 단지 신고사실의 정황을 과장하는 데 불과하다면 무고죄는 성립하지 않는다(대법원 2019.7.11. 선고 2018도2614 판결). 수사기관에 신고하는 것 이외에 징계권 또는 감독권을 가진 기관에 민원을 제기하는 것도 무고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한다. 다만 무고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신고한 내용이 허위라는 것과 함께 허위사실을 신고한다는 것에 대한 고의가 인정되어야 한다. 즉, 실제로 신고한 내용이 허위라고 하더라도 신고자가 진실이라고 확신하고 신고한 경우에는 무고죄가 성립하지 않는 것이다. 무고죄에 있어서의 신고는 신고사실이 허위임을 인식하거나 진실하다는 확신 없이 신고함을 말하는 것이므로 객관적 사실과 일치하지 않은 것이라도 신고자가 진실이라고 확신하고 신고하였을 때에는 무고죄가 성립하지 않으며, 여기에서 진실이라고 확신한다 함은 신고사실이 허위일 가능성이 있다는 인식 즉, 미필적 인식도 없음을 말한다(대법원 1988. 9. 27. 선고 88도99 판결). 이상의 사실을 종합하면 민원 제기가 무고죄에 해당하려면 ①사립학교가 아닌 국·공립학교 교원에 대하여, ②신고자가 신고사실이 허위임을 인식한 상태에서, ③일부 사실의 과장이 아닌 중요사실을 허위로 신고하여야 한다. 학교가 어려움을 겪는 민원의 대부분은 사실관계가 상반되는 것이다. 민원인(학부모)은 학생이 인권침해나 학대를 당했다고 주장하고, 교사는 그런 사실이 없고 정당한 교육활동을 하였다고 주장한다. 설령 민원인이 주장하는 내용이 허위라고 하더라도 민원인은 그것을 사실로 인식하고 신고한다면 이는 무고죄에 해당하지 않는 것이다. 명예훼손 「형법」 제307조(명예훼손) ①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②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명예훼손죄는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로서, 적시한 사실이 진실하더라도 성립할 수 있으며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면 가중처벌을 받는다. 명예훼손죄가 성립하려면 공연성을 갖추어야 하는데 공연성이란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법원은 1인에게 사실을 적시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에 의해서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전파할 가능성이 있으면 공연성을 인정한다(전파가능성). 그런데 허위의 악성민원으로 인하여 명예가 훼손되었더라도 민원은 비공개가 원칙이므로 민원 제기로는 전파가능성이 인정되지 않아 명예훼손죄가 성립하지는 않는다. 「민원 처리에 관한 법률」 제7조(정보 보호) 행정기관의 장은 민원 처리와 관련하여 알게 된 민원의 내용과 민원인 및 민원의 내용에 포함되어 있는 특정인의 개인정보 등이 누설되지 아니하도록 필요한 조치를 강구하여야 하며, 수집된 정보가 민원 처리의 목적 외의 용도로 사용되지 아니하도록 하여야 한다. 즉, 악성민원을 제기한 사람이 민원내용을 정보통신망을 이용하여 게시하는 등의 방법으로 제삼자에게 퍼트린다면 민원과 별개로 명예훼손이 성립할 수 있으나 민원을 제기한 것 자체로는 명예훼손은 성립하지 않는 것이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는 말이 있으나, 민원에 시달리는 학교나 교원이 민원인에게 공격을 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다. 반복되는 악의적 민원으로 인하여 학교업무가 마비될 정도라면 형사적으로 공무집행방해(사립의 경우 업무방해)로 고소하거나, 민사적으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할 수 있으나 이 역시 제한적인 요건에서만 인정이 가능하고 무엇보다도 민원인이 학부모인 경우 학교가 학부모를 고소하거나,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안타깝지만 학교는 악성민원에 대하여 사실관계를 일자별로 정리하고 입증자료를 모아서 충실한 답변서를 제출하여 해당 민원이 사실이 아님을 밝히는 것이 최선이다.
희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의 작품 개구리에서 희곡의 신 디오니소스는 더 이상 들을만한 비극작품이 없어 매우 심란해한다. 살아있는 작가들에게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 디오니소스는 고민 끝에 저승에서 아이스퀼로스와 소포클레스 중 한 명을 데려오려 한다. 하지만 저승에서는 갓 죽은 에우리피데스가 아이스퀼로스에게 비극의 왕 자리를 놓고 심한 언쟁을 벌이고 있다. 오랜 논쟁을 지켜본 디오니소스는 아이스킬로스를 다시 이승으로 데려간다. 고대 아테네의 비극작가 3인방으로는 아이스퀼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가 꼽힌다. 지난번 다루었던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3부작이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과 각성하는 자아의 모습을 그려냈다면, 아이스퀼로스의 오레스테이아는 인간 내면에 깊숙이 박혀있는 ‘복수’를 주제로 한다. 아가멤논, 제주를 바치는 여인, 자비로운 여신들로 이어지는 현존하는 유일한 3연작 오레스테이아를 읽어보자. 복수를 주제로 한 막장드라마, 그 속에 담긴 의미 트로이아 전쟁의 총사령관 아가멤논은 10년간의 고초 끝에 고국 미케네로 돌아왔다. 하지만 원한에 사무친 아내 클뤼타임네스트라는 대담한 복수를 준비하고 있었다. 무의미 없는 전쟁을 위해 친딸을 제물로 바치는 남편을 용서할 아내가 얼마나 될까. 클뤼타임네스트라는 아가멤논 집안의 원수 아이기스토스와 간통하고, 그의 도움을 받아 아가멤논을 죽인다. 아가멤논의 부친 아트레우스와 아이기스토스의 부친 티에스테스는 불구대천의 원수관계이다. 이미 형수와 동생의 불륜으로 원한이 잔뜩 쌓여있었던 데다 왕위를 놓고 신들 앞에서 아귀다툼을 벌여야 했던 두 사람은 돌아오지 못할 다리를 건넌다. 아트레우스는 티에스테스의 자식들을 고기로 만들어 티에스테스를 모욕했고, 티에스테스는 복수를 위해 근친상간으로 낳은 아이가 아트레우스의 아들을 죽일 것이라는 신탁을 따른다. 아버지가 자신을 강간했다는 수치심에 자살한 딸의 아들이 바로 아이기스토스였다.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지만 막장 드라마로만 치부해버리면 내면을 읽을 수 없다. 인간의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 있는 본질을 끄집어내 직면하려고 해야 그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 희랍 비극을 일방적으로 숭배하거나 마냥 폄하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들여다보자. 완전한 파멸, 혹은 완전한 화해 복수는 영웅들의 사고방식이다. 지체 높은 신분의 귀족들은 자신의 모욕을 용납하지 않는다. 하지만 복수는 어느 누구도 행복하게 하지 않는다. 원한은 쌓이고 쌓여 더 큰 원한으로 남게 된다. 일단 커진 분노는 더 이상 누구도 억누르지 못하는 분노가 되어 나를 삼킨다.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 극한 대립을 끝장낼 방법은 두 가지뿐이다. 완전한 파멸 아니면 완전한 화해이다. 완전한 파멸은 간단하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도시를 파괴하고 남자는 모두 죽이고 부녀자는 노예로 삼는다. 상대를 흔적도 남기지 않고 제압해야 한다. 시간이 흘러 내가 늙고 힘 없는 상황에서는 상대가 복수할 여지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상상조차 하지 못할 극단적인 해결책이 나오는 것이 바로 그 때문이다. 완전한 파멸이 아니라면 완전한 화해이다. 화해는 극단적인 대립을 멈춘다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너와 내가 대립을 멈추고 이제부터 친하게 지내자는 식의 방식으로 해묵은 대립이 끝날 리 없다. 화해는 나를 강요하는 것이 아닌 나를 내려놓는 데서 출발한다. 화해는 헤겔식의 정반합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새로운 삶의 방식을 만드는 차원은 승패의 이분법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삶의 규칙을 기초부터 다시 세우는 것이다. 많은 경우 이러한 정초(定礎)는 인간이 가늠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겸허하게, 신들의 뜻이 우리와 함께하기를 기대하며 그저 최선을 다할 뿐이다. 화해한 것처럼 몸을 숙이고 머리를 조아리고 있지만, 승패는 항상 고정된 것이 아니다. 패자는 웅크린 채 항상 승자의 허점을 노려 어퍼컷을 날릴 준비를 하고 있다. 굴복시키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각자의 철옹성을 열고 새로운 우리가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 새로운 세계는 더 이상의 승자도 패자도 없다. 시시비비를 명확히 가리는 것은 중요하고 필요하다. 하지만 인간의 감정이 시시비비로 정화(katharsis)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주변의 카산드라, 그 억울함은 누가 위로해주나 아가멤논이 레드카펫에 올라 클뤼타임네스트라가 파놓은 덫으로 향하는 장면은 상징적이다. 클뤼타임네스트라는 신들의 노여움을 두려워하는 아가멤논에게 “당신은 이 정도는 해도 될 사람”이라며 짐짓 안심시킨다. 일리아스에서 아가멤논의 행적을 봤던 사람들은 기억한다. 아킬레우스의 도움 없이는 전쟁에서 이길 수 없었던 그리스 연합군이었지만 총사령관 아가멤논은 아킬레우스에게 돌아갈 미녀를 가로챈다. 전쟁 직후 폭풍으로 많은 병사가 희생당했고 아가멤논은 친동생 메넬라오스의 행방조차 알지 못했다. 그런 주제에 전리품 카산드라를 데려와 잘 모시라고 명한다. 클뤼타임네스트라와 아이기스토스 입장에서는 죽어서 돌아왔어야 할 인간이 첩까지 데리고 돌아와 그들의 복수심을 한껏 자극하고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가장 불쌍한 사람은 예언자 카산드라이다. 트로이 왕가의 공주로 태어난 삶은 자신의 선택이 아니었고, 예언의 능력을 가졌지만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린 탓에 아폴론의 미움을 사게 되었다. 그가 하는 옳은 말은 누구도 듣지 않았고, 카산드라의 바람과는 달리 트로이는 잿더미로 변했다. 기구한 운명은 끝나지 않아서 총사령관 아가멤논의 전리품으로 미케네에 끌려왔다. 이제는 클뤼타임네스트라와 아이기스토스의 칼날과 피냄새를 느끼며 울부짖는다. 카산드라의 억울함은 누가 위로해줘야 했을까. 우리 주변에 숨어있을 카산드라들을 지켜본다. 때로는 가장 정확한 말을 하고 있을, 가슴에 사무쳐 있을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본다. 사회 속의 예언가들은 오이디푸스 왕의 테이레시아스가 그렇고, 아가멤논의 칼카스가 그렇듯 가장 믿을 수 없고, 듣기 싫고, 피하고 싶은 말들을 늘어놓는다. 하지만 예언가들은 어디까지나 진리를 지켜보고 그 진리의 모습을 전달하는 일종의 매체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언가들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피할 수 없고, 없는 사실을 지어내 전달할 능력 또한 갖지 않는다. 예언가들은 자신이 본 것을 정확히 전달해야 한다. 그것이 예언가의 숙명이다. 그리고 예언가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예견할 수는 있지만, 그 운명을 피할 수는 없다. 그 역시 신이 아닌 인간이기 때문이다. 아이기스토스의 힘을 빌리지만, 극을 주도하는 것은 여자인 클뤼타임네스트라이다. 아이기스토스가 겁쟁이처럼 뒤에 숨어있는 반면 클뤼타임네스트라는 모든 상황을 장악하고 아가멤논을 안심시켜 궁궐에 입성시킨다. 레드카펫을 깔아 신들을 분노하게 만들고, 아가멤논이 아무 의심 없이 욕실로 향하게 만든다. 코로스들은 클뤼타임네스트라를 비난한다. 그들의 주군 아가멤논을 계략에 빠트려 죽인 것을 용납할 수 없다. 하지만 사회의 지도자들이자 원로인 코로스들 역시 피에 취해 흥분해 어쩔 줄 모르는 클뤼타임네스트라에게 직접 달려들지 못하고 훈계만 할 뿐이다. 코로스들은 사회의 원로들이지만, 어디까지나 아트레우스 왕가 내부갈등의 당사자가 아니다. 나아가 그들 역시 아가멤논의 전횡에 피해를 봤던 인물들이기도 하다. 아가멤논에서 시민들은 원한 섞인 말로 아가멤논과 아트레우스 왕가를 저주한다(Agamemnon, 466~474). 여자 하나 때문에 자신의 생명을 내놓아야 하고 가장의 죽음을 힘없이 용인해야 하는 사람들의 분노는 차마 말로 다 할 수 없다. 백성들의 저주는 엄청난 힘으로 아가멤논을 쓰러트린다. 아가멤논의 죽음은 클뤼타임네스트라와의 감정싸움 때문만은 아니다. 자신의 왕가에서 조차 스스로 민심을 저버렸던 삶에 대한 악업은 백성들 누구 하나조차 클뤼타임네스트라의 계획을 밀고하지 않았던 데서 명백해진다. 우리 편 아니면 적, 철저한 이분법에 기초한 사회 아이스퀼로스는 무엇을 드러내려 하는가. 고대사회의 윤리적 쟁점은 선명하다. 복수의 세계관이 드러난다. 아트레우스는 티에스테스와 원수지간이고, 아이기스토스와 클뤼타임네스트라는 아가멤논을 죽여야 한다. 아들 오레스테스는 어머니 클뤼타임네스트라를 죽여야 아버지 아가멤논의 원한을 달래야 한다. 친구의 적은 나의 적이고, 원수의 적은 나의 친구이다. 우리 편 아니면 적이라는 철저한 이분법에 기초한 사회이다. 때문에 영웅의 삶은 늘 죽고 죽이는 살육의 삶이다. 내가 남을 죽이지 않으면, 언제 내가 그들에게 희생당할지 모른다. 이러한 자기중심적 윤리관을 극복하는 것이 새로운 시대의 과제이기도 하다. 대립하던 편이 사라지면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니다. 우리 편이었던 사람들이 분리되어 새로운 편 가름이 일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완전한 파멸은 진정한 화해를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내 마음대로 해야 하는 획일적인 삶의 강요일 뿐이다. 결국 모든 사람과 화해는 불가능하다. 사람들은 이익을 이유로 언제든 나를 떠날 준비가 되어 있어 그들과 온전히 하나 될 수 없다. 파멸은 그 본질적인 특성상 어떤 남들과도 화해할 수 없고, 영원한 갈등과 대립의 연속임을 보여준다. 아가멤논은 복수를 목표로 했던 사람들의 삶을 보여준다. 정의로운 복수 역시 피의 보복을 부른다. ‘정의’는 사람들의 한 맺힌 감정을 품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고, 피에 굶주린 사람들은 더 많은 피를 갈구한다.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살육장을 떠나 더 이상 공포에 시달리지 않는 평화로운 일상을 누릴 수 있을까. 고대인들이 복수의 감정을 생각했다면, 현대인들의 오레스테이아는 화해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면서 읽어야 할 것이다.
얼마 전 인천교육청에서 올해 2학기부터 고등학교에서 인공지능(AI)을 가르치기 위해 국내 최초로 인공지능을 담은 교과서 ‘인공지능과 피지컬 컴퓨팅’의 최종 승인을 마쳤다는 소식이 들렸다. 인공지능과 피지컬 컴퓨팅의 목차를 살펴보니 ‘1부 인공지능’에서는 인공지능의 개념과 발전 방향 및 알고리즘, 그리고 지도학습·딥러닝·비지도 학습 등 AI의 학습방법에 대해 다루고 있다. ‘2부 피지컬 컴퓨팅’에서는 다양한 센서를 활용한 예시와 이를 활용한 AI 프로그램 실습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교과서는 보통교과 진로선택과목 인정도서로 채택되어 2학기부터 고등학교에 정식 도입된단다. 이렇게 고등학교부터 시작된 인공지능교육은 곧 중학교, 초등학교로 내려올 예정이다. 인공지능교육을 위한 다양한 AI 도구 이렇게 공교육에서도 인공지능교육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이미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도 SW/AI 교육 선도학교를 중심으로 인공지능교육에 대한 연구와 일반화를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처음 시작되는 교육이다 보니 각 학교급에서 인공지능의 어떤 내용을 어느 범위까지 다뤄야 할지 고민이 적지 않다. 특히 초등학교의 경우 어린 학습자들을 대상으로 어떻게 쉽고 재미있게 인공지능교육을 펼쳐나가야 할지 고민이다. 그 첫 번째 대안으로 지난 칼럼에서 놀이로 시작하는 인공지능에 대해 소개하였고, 이번 칼럼에서는 두 번째 대안으로서 다양한 AI 교육도구를 소개하고자 한다. ● 다양한 AI 교육도구 ❶ _ 티처블머신 먼저 가장 많이 알려진 티처블머신(https://teachable machine.withgoogle.com)이다. 티처블머신은 구글에서 공개한 머신러닝모델을 만들 수 있는 무료서비스로 접근성이 좋고 쉬울 뿐 아니라 비교적 정확도가 높아 처음 머신러닝을 접하는 학습자에게 유용하다. 이미지·음성·동작 데이터를 활용해 머신러닝모델을 만들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이미지 프로젝트의 경우 웹캠으로 촬영하거나 업로드한 이미지들의 데이터 패턴을 인식하고, 인식한 이미지를 해당하는 카테고리에 할당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예를 들어 다음 그림 1처럼 사과와 포도 이미지를 각각 클래스 1과 2에 입력하고 학습시키면 사과와 포도를 구분할 수 있는 머신러닝모델을 완성할 수 있다. ● 다양한 AI 교육도구 ❷ _ 머신러닝포키즈 다음은 머신러닝포키즈(https://machinelearningforkids.co.uk/)다. 머신러닝포키즈는 티처블머신과 마찬가지로 이미지·오디오·텍스트·숫자 데이터를 활용해 머신러닝모델을 만들 수 있는 인공지능교육 플랫폼이다. IBM Watson Developer Cloud의 API를 사용하여 만들다 보니 IBM Cloud에도 회원가입을 해 인증키를 받아야 하는 등 접근성이 다소 떨어지고 무료로 만들 수 있는 프로젝트의 수에 제한이 있지만, 완성한 머신러닝모델을 활용해 스크래치로 소프트웨어를 만들 수 있어 AI 기술을 활용한 프로그램 교육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예를 들어 다음 그림 2처럼 좋은 말 레이블과 나쁜 말 레이블을 만들어 각각 적절한 텍스트를 입력해 좋은 말과 나쁜 말을 구분할 수 있는 머신러닝모델을 완성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활용해 나쁜 말 또는 좋은 말을 입력했을 때 이를 인식하고 좋은 말인지 또는 나쁜 말인지 판단해 그에 알맞은 반응을 하는 소프트웨어를 완성할 수 있는 것이다. 머신러닝 즉, 기계가 데이터를 통해 학습하는 원리를 체험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를 활용한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보는 교육까지 가능하니 SW/AI 교육으로서의 가능성이 충분하다 하겠다. 다만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접근성이 떨어지고, 만들 수 있는 프로젝트의 수에 제한이 없기 위해서는 유료서비스 신청을 해야 하는 한계점을 가지고 있다. ● 다양한 AI 교육도구 ❸ _ 엔트리 마지막으로 국내 SW 교육용 플랫폼으로 널리 알려진 엔트리(https://playentry.org/)다. 엔트리는 최근 인공지능교육과 데이터분석 명령 블록을 추가하여 SW 교육 플랫폼에서 인공지능교육과 데이터과학교육까지도 가능한 플랫폼으로 성장하고 있다. 티처블머신과 머신러닝포키즈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를 모두 제공하면서도 접근성이 좋고, 만들 수 있는 프로젝트의 수에 제한이 없으며 다루기가 쉬워 초등학교에서의 SW/AI 교육에 매우 적합하다. 예를 들어 엔트리의 데이터분석 블록을 활용하면 최근 사회적 문제인 코로나19에 대한 현황을 파악하고 감염병 예방을 위한 프로그램을 직접 만들 수 있다. 다음 그림 3에서처럼 엔트리에서 기본 제공하는 데이터 셋을 활용해 국내 코로나19 일일 현황을 차트로 표현하고 감염병 예방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를 알아보는 SW 교육이 가능한 것이다. 인공지능은 데이터를 통해 학습한다. 데이터의 질과 양에 따라 판단하거나 예측·추론의 정확도가 결정되기 때문에 어떤 데이터를 어떻게 수집하고, 처리할 것인지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또한 데이터를 통해 유의미한 의사결정을 하고 이것이 곧 가치가 되는 빅데이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인 만큼 초등학교에서부터 데이터를 수집·분석·처리하는 경험은 꼭 필요하다 할 수 있다. 이뿐 아니라 엔트리로 인공지능의 음성인식기술을 활용해 목소리로 퀴즈 문제를 맞히는 프로그램, 영상인식기술을 활용해 사람과 사물을 인식해 시각 장애인에게 장애물이 있음을 알려주는 AI 안내견 프로그램은 물론 이미지·음성·텍스트 데이터를 활용한 머신러닝모델을 만들고 이를 활용한 프로그램까지 모두 경험할 수 있다. 미래는 현재 우리가 무엇을 하는가에 달려있다 짧은 지면으로 모두 다 담을 수 없지만 여기서 소개한 인공지능교육 플랫폼 외에도 인공지능교육을 위한 다양한 도구가 있고, 앞으로도 국내외에서 많이 개발되고, 발전할 것으로 보인다. 이 중에서 각자의 교실상황과 학생들의 수준·흥미에 따라 최적의 도구를 선택하고, 필요한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여 교육해 간다면 초등학교에서의 인공지능교육이 어려운 것만은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여러 가지 교육도구들을 탐색하고, 선택하고, 이를 교육에 적용하기까지 교사의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게다가 코로나19라는 굉장히 어려운 교육환경 속에서 하루하루 원격수업과 등교수업을 동시에 준비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는 현시점에 새로운 또 하나의 교육을 준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아이들의 미래교육을 위해 오늘도 앞장서는 현장 교사들이 있기에 느리더라도 하나씩 천천히 준비해 가야겠다. 마하트마 간디의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미래는 현재 우리가 무엇을 하는가에 달려있다.
“TPO에 맞는 옷차림 좀 하세요.” TPO는 때(Time), 장소(Place), 상황(Occasion)의 약자이다. 줄임말이 낯설다 느낄 수도 있지만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초등학교 실과 시간에 배웠을 옷차림의 기본 원칙이다. 실제로 실과 교육과정에는 ‘옷의 기능을 이해하여 때와 장소, 상황에 맞는 옷차림을 적용한다’는 성취기준이 있다. 교사에게 TPO란 ‘수업시간에, 학교에서, 학생들과 만난다’이다. 어린 학생을 만나고 그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특수성이 교사의 옷차림에 영향을 미친다. 해리 왕·로즈메리 왕의 좋은 교사 되기에서는 좋은 교사를 만드는 조건에는 긍정적인 기대가 있으며, 그 기대 요소 중 하나가 교사의 옷차림이라고 했다. ‘성공하는 교사의 옷차림’이라는 챕터에서는 교사는 옷을 잘 입는 만큼 인정받을 수 있으며 학생들에게 ‘옷으로 말하는 효과’가 있으므로 전문적이고 신뢰감 있는 옷차림에 신경 써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교사가 학생들에게 옷으로 말하는 메시지가 있다는 점은 2020년에도 변함없다. 그러나 이 책이 미국에서 The First Days of School: How to be an Effective Teacher이라는 제목으로 발행된 시기가 1991년이었다는 사실은 새로운 의문을 남긴다. 30년 전 미국 교사의 스타일, 한국에 번역되어 나온 2013년 한국 교사의 스타일과 2020년 한국 교사들이 추구하는 스타일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을까? 성공적인 교사의 옷차림에 대한 기준을 묻다 전문성과 신뢰감을 담은 교사의 옷차림이란, 어떤 스타일을 말하는 걸까. 2030 교사들도 여성이라면 블라우스와 슬랙스, 또는 H라인 스커트를 떠올리고 남성이라면 셔츠에 정장바지를 떠올릴까? 2011년 첫 발령을 받았을 때 필자는 매일 정장 투피스나 바지정장에 블라우스를 입고 다녔다. 부모님이 새로 마련해주신 옷 세 벌 정도를 매일 돌려 입었다. 우리 반 학생은 “선생님은 왜 맨날 이런 옷만 입어요?”라고 물었지만, 선배 선생님들은 “신규교사로서 용모 단정하고 자세가 되었다”라고 하셨다. 10년이 다 된 지금, 그때의 나를 솔직하게 돌아보자면 나는 단지 사회초년생으로서 금전적 여유도 없었고, 전문적인 느낌을 주면서도 멋스럽게 꾸밀 만한 패션감각이 없었던 것뿐이다. 그럼에도 다른 패션을 시도하지 않고 신규 1년간은 정장스타일로 입었던 이유는 ‘신규’라는 이유로 ‘비전문적’이라거나 ‘권위가 없다’는 이미지를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 역시 그때는 옷차림이 주는 후광효과를 활용한 셈이다. 일 년 내내 블라우스와 정장의류를 입고 다녔던 나는 조금씩 니트 등 편안한 복장을 입기 시작했다. 6학년 담임을 한 2년 차부터는 검정색 바람막이 점퍼를 교복처럼 입고 다녔다. 안에는 캐릭터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을 때도 많았다. 기억 속 나는 6학년 아이들과 춤추고, 매일같이 체육 등 바깥 활동을 하며, 책상과 사물함 위를 오르락내리락 한 적이 많았다. 복장이 편해야 활동이 편하고, 학생들과 마음 편히 교감할 수 있다는 생각이 강했다. 어쩌면 교사의 권위란 옷차림에 힘을 준다고 생기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옷차림이 편했던 그 시절 나는 그 어느 해보다도 학생들과 가까웠다. 성공적인 교사의 옷차림이란 해에 따라 학급 분위기와 교사와 학생 간 상호작용 방식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는 결론을 조심스럽게 내본다. 인터넷 교사커뮤니티에 종종 ‘출근 복장으로 트레이닝복은 안 되나요?’ 같은 질문이 올라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편하게 입고 싶은데 안 좋게 보이겠냐는 질문이다. 이런 질문은 유난히 많은 조회수와 댓글 수를 기록한다. 댓글의 관점은 매우 다양하다. ‘학교도 직장이니 TPO를 지켜야 한다’는 의견도 있고 ‘학생이랑 생활하는 게 교사의 일이므로 학생과 생활하기에 교사가 편하면 된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이런 질문을 올린 교사가 한 번 더 확인과 인정의 단계를 거치기 위해 글을 썼다는 사실, 수많은 댓글과 좋아요(공감표시)가 ‘교사다운 복장이 갖추어야 할 요건이 있다’는 의견에 동의한다는 점은 시대가 변했다고 해도 많은 교사가 자신의 직업과 복장의 역할을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물론 ‘교사의 복장이 조금 더 자유로워야 할 필요가 있다. 옷부터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반대의견 못지않게 많다. 쌤스타그램과 교단 사이, 자기표현의 욕망이 있다 교사 Y는 교무실에 가기가 무섭다. 자기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길이의 치마를 골라 입는 것뿐이고 실제로 요즘 옷가게에서는 무릎 아래로 내려오는 정장 스커트를 찾기가 힘든데 교감선생님께 옷차림에 대해 지적을 받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교사 H는 히피펌을 했다가 “단정치 못하다, 웬 보헤미안이냐”는 뒷말을 들었다. 교사 J는 밝은 갈색으로 염색하고 파마를 했다가 교감선생님에게 ‘남자가 무슨 파마 염색이냐’는 말을 들었다. 이런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문제는 단정함의 기준이 합의되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이 평소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수준의 복장까지 지적받고 바꾸길 강요당할 때,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도 스트레스라는 점이다. 특히 ‘이 정도가 왜 문제가 되는가’라는 의문이 생길 때는 더욱 내적·외적갈등이 깊어진다. 교사로서 문제가 되지 않는 복장이라는 기준에 차이가 생기는 이유는 쌤스타그램을 보면 알 수 있다. 사진 위주의 SNS인 인스타그램에는 #쌤스타그램 이라는 태그를 단 사진이 많이 올라온다. 쌤스타그램이라는 태그를 꼭 학교 교사만 붙일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교무실 책상, 교실 칠판 앞에서 셀카로 찍은 사진들은 그 중 상당수가 학교 교사들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쌤스타그램 속 교사들은 회색이나 밝은 노란색 머리로 탈색한 경우도 있고 평소 학교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복장보다는 학교 밖에서 노출된 복장을 하고 있기도 하다. 학교에서 레깅스나 조금 편안한 수준의 평상복 같은 트레이닝복을 입은 경우도 많다. 화려한 네일아트도 이제는 익숙한 멋내기 옵션이다. 특히 여행 중인 교사들의 모습은 더 자유롭다. 여성은 짧은 반바지, 끈으로 된 민소매 원피스나 탑 스타일의 상의를 입은 경우도 많고 남성은 민소매 상의에 반바지를 입은 경우도 많다. 이런 스타일은 이미 많은 이들에게 ‘부적절’하지 않은 흔한 패션 스타일이다. 그들은 멋스럽기도 하고 자유로운 느낌까지 주는 ‘힙한’ 패션코드가 자신에게 어울리면 당당하게 취한다. 2030 교사들은 대중문화나 해외 경험 등의 영향으로 선배세대보다는 더 다양하고 개방적인 패션스타일을 접하고 실제로 직접 선택하기도 한다.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글들을 보면 타투 또한 보수적인 시선을 고려하여 교사로서 드러내놓고 하기 힘들 뿐, 관심을 가지고 언젠가 할 계획이 있거나 보이지 않는 곳에 이미 한 교사들도 있다. 다른 직업을 가진 젊은 세대에게 패션코드로 읽힐 수 있는 모든 수단은 2030 교사들에게도 자기표현의 수단이 된다. 교사의 복장에 대하여 사람마다 한계로 설정해놓은 내면의 기준은 있겠지만, 2030 교사 인구 전체를 놓고 본다면 그들이 관심을 갖는 패션에는 사실상 한계가 없다. 그러니 ‘문제 되지 않는 복장’에 대한 생각이나 한계선도 다양하고, 가끔은 그런 개성이 학교 안에서는 무난함과 난해함의 경계에 놓이는 경우도 생기는 것이다. 존중의 기준에 대하여 밀레니얼 세대와 비슷한 개념인 N세대 교사는 최근 10년 이내에 교직에 들어선 세대를 말한다. N세대 교사의 교직생활에 관한 질적 연구결과에 따르면 N세대 교사들은 복장에 대해 ‘구성원으로서의 나’보다는 ‘개인으로서의 나’를 표현하는 일환으로 눈치껏 ‘적당한 수준으로 튀지 않을 정도로만 차려입으려는’ 경향을 보인다. 연구 대상으로 참여한 교사들은 학부모 앞에서나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단정하게 입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지만 너무 파격적이지만 않으면 찢어진 청바지도 입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도 교사로서 학생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려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직장에서 허용되는 수준에 맞추기 위해서라는 점에서 ‘교사다운 복장’을 강조한 선배세대와 다른 판단기준을 가지고 있다고 연구는 밝혔다. 2030 교사들은 학교 안팎의 패션에 대한 온도 차이가 분명 있음을 느끼고 가급적 학교와 사회가 요구하는 ‘교사의 TPO’에 맞는 복장을 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가끔 모호한 기준이 차별적으로 적용된다고 느낄 때는 그들도 저항하고 싶은 마음을 느낀다. 교사 B는 스포츠 브랜드의 갈색 슬리퍼를 교내용 실내화로 신었다. 동학년 선배교사가 어느 날 “디자인이 단정치 못하니 다른 디자인의 검은색 슬리퍼로 바꿔 신으라”고 지적했다. 그런데 교사 B가 분개한 것은 단순히 복장 지적을 받았다는 점이 아니었다. 다른 고경력 교사는 매일 등산복을 입는 데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교사 B는 반감을 느낀다. 2030 교사들의 패션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 실행력은 확실히 선배세대와는 조금 다르다. 단정함이라는 말로 합의되지 않은 기준을 강요하기보다는 차이를 존중하고 인식의 틀을 넓히면 교사가 학생에게 옷차림으로 전할 수 있는 메시지도 더 다양하고 창의적일 수 있다. 다만 경력이나 성별에 따라 다른 기준으로 바라보지는 않는지에 대한 성찰도 필요하다.
만화 한국전래동화 ‘도깨비 이야기’ (곽기혁 지음, 스튜디오 돌곶이 펴냄, 184쪽, 1만2000원) 한국문화를 재밌게 볼 수 있게 그려낸 어린이 만화 시리즈. 1편 호랑이 이야기에 이어 도깨비와 관련된 전래동화 4편을 엮었다. 무섭고도 친근한 도깨비 이야기를 통해 ‘욕심을 부리면 어떻게 될까? 진짜 친구란 어떤 걸까? 먼저 베풀면 어떤 일이 생길까? 싫은 음식을 좋아하게 될 수 없을까?’ 네 가지 교훈을 다룬다.
참새를 따라가면 (김규아 지음, 창비 펴냄, 44쪽, 1만3000원) 고층 빌딩으로 둘러싸인 도시에서 외로운 마음을 달래는 아이와, 이를 누구보다도 잘 알아주는 참새들의 우정 이야기를 그렸다. ‘내가 학교에 있는 동안 참새들은 무엇을 할까?’, ‘내가 참새가 되면 어떨까?’ 하는 아이의 물음에 공원에서 지저귀던 참새들은 같이 놀자고 손짓한다.
인공지능시대, 십대를 위한 미디어 수업 (정재민 지음, 사계절 펴냄, 272쪽, 1만4800원) 유튜브·소셜 미디어·메신저 등 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콘텐츠는 무궁무진해졌지만, 청소년들의 미디어 편식은 오히려 심해지고 있다. 더욱이 청소년들의 콘텐츠 선택은 더욱 편중되고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능력도 떨어지고 있다. 미디어를 주체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담은 미디어 리터러시 입문서.
과학이 어려운 딸에게 (마리 퀴리 · 아자벨 샤반 지음, 최연순 옮김, 자음과모음 펴냄, 160쪽, 1만1500원) 노벨 물리학상 화학상을 수상한 위대한 과학자 마리 퀴리에게 과학수업을 듣고, 이를 기록한 이자벨 샤반의 강의노트를 그대로 옮겼다. 마리 퀴리가 들려주는 과학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당연한 것으로 여기기 쉬운 일상적인 현상 속에서 과학원리가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스프린트 (이재훈 지음, 비엠케이 펴냄, 448쪽, 1만9800원) 21세기의 원유로 비유되는 빅데이터가 비즈니스 원천이 되었고, 데이터의 가치를 찾고 인사이트를 발굴하는 역량이 개인의 미래를 결정하는 세상이다. 변화와 불확실성 시대의 생존방법과 승리 노하우를 제시하는 책이다. 시대 변화에 따라 능동적으로 자신의 학습과 일, 삶과 인생을 주도적으로 설계할 수 있도록 돕는다.
엄마의 사랑법 (장성오 지음, 메이트북스 펴냄, 256쪽, 1만5000원) 내 아이를 사랑한다고 확신하지만, 아이의 눈높이에서 사랑하는 법을 알지 못하는 엄마들을 위한 책. 양육의 기본인 사랑에도 기술이 필요하며, 노력과 정성을 들여야 한다. 특별히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내 아이를 가장 행복한 존재로 만들어주기 위해 엄마가 배워야 할 사랑에 대해 말한다.
0.1%의 비밀 (조세핀 김 · 김경일 지음, EBS BOOKS 펴냄, 264쪽, 1만5000원) EBS 부모특강 ‘0.1%의 비밀’을 통해 화제가 된 강의를 책으로 엮었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경쟁해야 하는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자존감·창의력·자존감의 중요성과 자존감을 키워줄 수 있는 교육법을 알려준다. 또한 인공지능시대에 핵심역량인 창의성에 관해 설명한다.
슬기로운 온라인수업 (김서영, 김재현, 박종필, 홍지연 지음, 뜨인돌출판 펴냄, 236쪽, 1만5000원) 코로나19 이전에 온라인·스마트 원격수업을 도입하고자 노력해온 현직 교사 4인의 노하우와 경험을 담은 책. 새로운 교육환경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일선 교사들에게 효율적인 현장 솔루션을 제공하며, 시스템 개선을 고민 중인 교육당국에 적절한 방향을 제시한다.
로버트 좀머(Robert Sommer)의 연구에 따르면 고밀도 교실은 자극과 스트레스가 높고 긴장을 만든다. 공간은 쉽게 번잡해지고, 상호 간섭을 일으키며, 프라이버시를 침해하고, 교사는 쉽게 통제력을 잃을 수 있다. 효과적인 상호작용은 반경 60cm 내외에서 발생한다. 너무 근접할 경우 상호작용에 문제가 발생한다. 랜디 와이트(Randy White) 연구에 따르면 고밀도 환경에서 어린이는 행동장애를 일으키고 공격성이 높아진다. 보다 경쟁적이게 되고 활동성 수준이 감소한다. 또한 놀이참여도가 낮아진다. 긍정적인 사회적 상호작용도 낮다. 종종 혼자 노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스트레스 수준이 높아진다. 연구에 따르면 유아 교실의 경우 어린이 1명당 4.18~5.01㎡를 필요로 한다. 케네스 테너(Kenneth Tanner)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과밀교실이 학생들에게 해로울 수 있고, 학생들이 학교를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능력과 높은 표준시험 점수와 상관관계가 있다고 한다. 이러한 연구를 참조할 때 더 넓은 교실이나 열린교실은 교사와 학생 간의 적절한 상호작용을 유지할 수 있게 한다. 물론 학생 상호간 상호작용에서도 마찬가지다. 열린교실운동의 확산과 실패 개방된 공간은 반면에 가시성과 접근성이 높다. 닫히지 않은 공간은 활동 기회를 높인다. 또한 열린공간은 독점할 수 없고 기본적으로 공유된다. 열린공간은 지속적으로 변경할 수 있는 유연한 공간을 의미한다. 열린공간은 규제나 권위·통제로부터 자유로운 비위계공간이다. 능력의 차이와 무관하게 모든 학생에게 동등한 기회가 제공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개방된 학습공간은 자연채광이 되고 자연환기가 일어나기 때문에 갇힌 느낌이 들지 않는 공간이다. 이러한 열린공간에 대한 인식과 ‘교육은 어디에서나 가능하다’는 교육철학을 바탕으로 열린교실운동이 일어났다. 영국의 열린교실은 교실배치방법과 학생교육방법을 포함하여 전통과 권위에 의문을 제기한 60년대와 70년대의 사회적·정치적·문화적 변화를 반영한 운동이었다. 영국의 영향을 받아 1970년대 열린교실운동이 미국에서도 빠르게 자리를 잡았지만, 역시 빠르게 사라졌다. 한국에서도 90년대 열린교실이 실험되었지만, 실패했다. 공간의 변화를 뒷받침할 교육과정의 혁신이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계 곳곳에서 열린교실운동의 영향을 받아 수천 곳의 초등학교가 교실 벽을 철거했다. 이동식 칸막이를 배치하고, 대규모 및 소규모그룹 프로젝트를 위해 개방된 학습공간으로 재구성했다. 모든 연령대의 학생들이 같은 공간을 사용했다. 그러나 교육과정의 변화는 물리적 공간의 급격한 재구성을 쫓아가지 못했고, 교사들은 기존 교육관행을 탈피하지 못했다. 많은 교사들이 기존의 교육방법에 집착하여 다양한 매체를 이용하는 능동적이고 자기주도적인 개방형 교육방식을 완전히 수용하지 못했다. 여전히 학생중심보다는 교사가 중심이었다. 한국에서 과거 열린교실의 실험은 물리적인 공간변화도 제대로 시도하지 못했고, 교육과정의 변화 차원에서도 실패했다. 이미 80년대에 미국에서 학교들은 열린교실에 등을 돌렸고, 다시 교실과 복도 사이에 벽을 세우기 시작한 때였기 때문에 지속할 동력도 상실했다. 그러나 이러한 실패는 열린교실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변화를 위한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은 데 있었다. 새로운 21세기 열린교실 유형 21세기 들어와 세계 곳곳의 현대 학교들은 앞에서 소개한 공간이론과 교육관련 연구의 영향으로 다시 개방형 교실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다만 새롭게 부활한 열린교실운동은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했다. 20세기 초반의 두 가지 교육공간 모델의 원형이었던 시골의 원룸 주택형 학교와 1970년대 열린교실을 조합한 형태로 재등장했다. 새로운 열린교실 모델은 구획된 교실과 열린공간을 조합한 학습공간이다. 현대 학교들은 접이식문이나 미서기문이나 미닫이문, 가변 벽체, 커튼, 간이 칸막이, 가구 등을 적극적으로 사용해서 교실을 때로는 분리하고, 때로는 연결하고 확장해서 개방감 있고 유연하게 여닫을 수 있는 구조로 만들고 있다. 21세기 새로운 열린교실 유형의 모델로 스톡홀름의 비트라 텔레폰플란(Vittra Telefonplan) 학교는 밀도가 높지만 개방된 열린 학습환경을 독특한 디자인의 구조물들을 기발하게 활용해서 구획을 나누고 있다. 전통적으로 구획된 공간과 달리 ‘닫힌 듯’, ‘열린 듯’, ‘나뉜 듯’, ‘열결된 듯’한 공간들의 변주를 통해 새롭고 기발한 학습공간을 조성했다. 또 다른 사례는 샌프란시스코의 브라이트웍스(Brightworks) 학교이다. 천장이 높은 넓은 창고였던 곳을 학교의 메이커스페이스로 만든 곳이다. 학교 메이커스페이스 사례로 이미 국내에도 소개된 곳인데, 인테리어 가구나 합판을 이용해서 임시회의 공간, 미술 스튜디오, 과학 실험실, 제작실, 도서관, 실험실, 주방 및 식당과 같은 구역을 나누고 있고, 공간 구획은 지속적으로 바뀐다. 교실의 투명성과 수업 흥미도 부분적으로 구획된 공간에 통창이나 큰 유리창으로 벽체를 구분해서 가시성(투명성)을 높이면 시각적 개방성을 높일 수 있다. HTH(High Tech High) 학교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2001년 로웰 밀켄가족재단과 마크 테이퍼재단, 아만슨재단의 지원금으로 설립된 공공 민간 교육벤처 학교다. 21세기형 학교로도 주목받는 HTH(High Tech High) 학교는 자율적인 비공식 학습을 장려하고, 수업에 대한 흥미를 높이기 위해 다른 학생들이 수업하는 모습을 볼 수 있도록 교실을 온통 투명하게 만들었다. 우리로서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유리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교실 안의 학생들은 다른 학생들이 보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이 때문에 발생하는 약간의 산만함은 오히려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긍정적 효과가 크다. 일반적 선입관과 달리 학습공간의 가시성(투명성)은 학습환경 내에서 흥미로운 자극을 만들어 지루함을 걷어내는 효과가 있다. 교실 외에도 이 학교의 행정실은 내부 창문을 통해 공용공간과 도서관을 볼 수 있고, 아이들은 안을 들여다 볼 수 있어 장점이 많다.
우즈베키스탄에서 가장 동쪽에는 안디잔이라는 도시가 있다. 수도 타슈켄트에서 안디잔까지 기차로 6시간이 걸린다. 험준한 산을 넘고 담수호를 지나 풍경은 설산으로 이어진다.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을 즐기다 보니 6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기차역에서 멀지 않은 숙소에 짐을 풀었다. 역에서 숙소까지 걸어가는데 꽤 많은 사람의 시선이 느껴졌다. ‘여기까지 뭐 하러 외국인이 왔을까?’ 하는 시선이었다. 안디잔에는 대우 자동차 공장이 있어서 자동차 산업과 관련된 한국인이 종종 다닐 텐데, 걸어가던 걸음까지 멈춰가며 내 쪽을 쳐다보는 사람도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궁금해 이유를 알고 싶어 체크인을 서둘러 마치고 도시를 걸었다. 숙소를 나서는데 학생으로 보이는 여자 두 명이 나를 보더니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잠시 팬 미팅이라도 하는 줄 알았다. 그녀들은 사진 몇 장을 찍고 내일 또 온다는 인사를 던지고 어디론가 쏜살같이 사라졌다. 호텔 유리에 비친 내 얼굴을 슬쩍 보았다. 잘 생기지도 않고 여행하느라 꾀죄죄하고 심지어 기차에서 자느라 뒷머리까지 떴는데, 그녀들은 누굴까? 뜬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시장으로 걸었다. 시장 주변이라 노점이 많았고 행인들도 많았다. 과일 천국답게 달콤한 향기가 시장에 가득했다. 인심 좋게 맛보라며 체리·오디·듸냐(커다란 참외)를 내밀었다. 과일을 맛보고 있는데 현지인들이 다가와서는 한국말로 인사를 한다. 한 명 두 명 다가오더니 어느 순간 내 주변을 온통 에워쌌다. 카메라맨이라도 있었더라면 우즈베키스탄 안디잔에서 마치 TV 프로그램 촬영이라도 하는 줄 착각이 들 정도였다. 모두 한국어를 공부한다고 했다. ‘안디잔 대우 자동차 공장에 취직하려는 사람들이 많구나’라고 생각했는데 학생들 대부분은 코리아드림을 꿈꾸고 있었다. 옆구리에 끼고 있던 한국어책을 펼쳐서 대화를 시도하는 청년이 있었다. 밭에서 일하다 와서 나만큼 꼬질꼬질한 얼굴과 손을 하고 있던 청년은 꼭 한국에 가고 싶고, 한국에 가면 꼭 연락을 하겠다고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까지 했다. 나는 그저 안디잔이 보고 싶어 온 여행자일 뿐인데, 학생들은 왜 나에게 와서 다짐을 하고 한국어 배우는 걸 자랑하고 있는 걸까? 한국어 선생님이 꽤나 실력이 있으신 것 같고 학생들도 열의가 대단해 보였다. 배낭에 넣어둔 명함을 학생들에게 건넸다. 한국에 오거든 서울 구경을 시켜주겠다는 지키기 힘든 약속을 했다. 한바탕 소란했던 시장을 빠져나왔다. 안디잔 출신으로 꽤나 유명한 사람으로 ‘바부르’가 있다. 그의 박물관은 시장 뒤쪽으로 있었다. 좁은 골목을 지나 박물관까지 가는데도 사람들이 다가와 말을 걸고 사진을 찍었다. 바부르 박물관에 도착하니 불이 꺼져 있다. 문이 닫힌 줄 알았는데 나무문이 삐걱거리며 열렸다. 안에는 직원들도 있었다. 정전이 된 박물관 구경을 원하면 입장료를 반으로 깎아준다고 하는 말에 솔깃해 안으로 들어섰다. 햇살이라도 좀 들어오는 줄 알았는데 날이 어두워 핸드폰 조명을 켜야 했다. 북적거리던 시장과 너무 다른 텅 빈 박물관을 나왔다. 박물관 앞에는 철물점들이 즐비했다. 그곳에서도 한국어를 하는 안디잔 사람들을 만났다. 코리아드림을 이루고 고향에 돌아와 사업을 하고 있다며 손을 꼭 잡는 사람이 있다. 한국이 좋고 한국인을 사랑한다며 손가락 두 개를 겹쳐 하트까지 만들었다. 그 모습을 몇 발 떨어진 곳에서 보고 있던 삼대가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와 아이들을 데리고 안디잔을 구경하러 온 딜무롯 가족이었다. 한국어를 몰라 러시아어로 이야기를 나눴다. 러시아에서 일하다 열악한 작업장 환경에 폐가 아파서 그만두고 고향에 왔는데 턱없이 적은 월급에 무엇을 해야 할지 망막하기만 하다고 했다. 그럼에도 오늘은 사촌 여동생 결혼식이 있는 날인데 같이 가서 잔치를 함께 즐기자는 제안을 받았다. 잠시 고민을 했다. 이 잔칫상을 받음으로서 한국으로 가는 비자를 만들어줘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마저 들었지만 일단 초대에 응하기로 했다. 결혼식은 조금 조촐하게 열렸다. 약식으로 하는 결혼식이라고 했다. 여기 사람들의 결혼식을 잘 안다. 나흘 동안 먹고 마시고 춤추는 과정 대신 오늘은 가까운 친척만 참석해 서너 시간으로 마무리가 된다고 했다. 배를 좀 채우고 축의금으로 달러를 드리려고 보니 봉투가 없다. 근처에 신문지가 보여 최대한 예쁘게 봉투를 만들어 축의금을 전달했다. 그 길로 숙소로 돌아가나 싶었는데 차로 30여 분 떨어진 자기네 집 구경을 시켜주겠다고 한다. 안디잔 사람들의 호의는 늪 같다. 한 번 담근 발이 빠질 기미가 안 보인다. 집 구경시켜준다는 말에는 식사도 포함이 되어 있던 것. 결혼식에서 먹고 왔다고 해도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은 딜무롯 아내는 식탁이 안 보이게 음식을 내왔다. 안디잔 사람들은 우즈백 사람 중에서 정도 많지만, 자존심도 높은 사람들 같았다. 음식도 기질도 다른 지역과 달리 안디잔스러운 것이 있다고 만나는 사람마다 이야기를 했다. 안디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판단하기엔 짧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한국을 이렇게 사랑해주는 것만으로도 다시 오고 싶은 도시이다.
금리란 뭘까? 시장에 돈이 너무 많이 풀렸으면 중앙은행은 금리를 올립니다. 회사가 어려워지면 회사채 이자율은 올라가고, 회사채 가격은 내려갑니다. 만약 내가 카드값을 제때 갚지 못하면 연체이자율이 적용됩니다. 세상 모든 것의 값을 결정하는 균형자(EQUALIZER)는 바로 이 ‘금리(INTEREST)’입니다. 누군가의 소비는 누군가의 소득이 된다 시장에 돈이 너무 많이 풀렸습니다. 그럼 물가가 오릅니다. 수요보다 넘친 돈의 양만큼 정확하게 인플레이션이 발생합니다. 돈의 양은 그대로인데 돈의 가치가 떨어집니다. 모든 사람의 주머니가 가벼워집니다. 그럼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올리기로 결정합니다. 시장의 돈을 흡수하는 겁니다. 요즘은 이렇게 합니다. 중앙은행이 매주 한 번씩 시중은행에 채권을 파는 시장을 엽니다. 이 채권의 금리를 올립니다. 1%였던 금리를 2%로 올렸다면, 이제 시중은행은 중앙은행으로부터 더 비싼 값으로 돈을 융통해야 합니다(이렇게 중앙은행은 기준금리 목표치에 맞게 조금씩 금리를 조정해 나간다). 더 높은 이자율로 돈을 조달해온 시중은행은 더 높은 이자율로 대출을 해줍니다. 은행에서 대출받기가 쉽지 않아집니다. 반면 이자율이 올라가면 은행에 예금을 하는 사람이 늘어납니다. 돈이 자꾸 은행으로 흡수됩니다. 돈이 부족하면 재화나 서비스의 수요가 줄어듭니다. 손님이 줄어듭니다. 운동화 가격이나 미용실 가격이 떨어집니다. 시중 물가가 내려갑니다. 이렇게 물가를 잡습니다. 이게 원래 중앙은행의 역할입니다. 그런데 자꾸 가라앉습니다. 자꾸 가격이 내려갑니다. 디플레이션 조짐이 보입니다. 그럼 공장은 생산을 줄이고, 직원을 해고합니다. 그럼 중앙은행은 이번엔 금리를 내리고 시장에 돈을 더 공급합니다. (같은 방법으로) 시중은행은 더 싸게 돈을 융통하고, 이제 대출 이자율은 그만큼 낮아집니다. 그럼 오랫동안 치즈핫도그 가게를 계획하고 있던 마이클의 이자부담이 줄어듭니다. 마이클이 결국 치즈핫도그 가게를 오픈합니다. 동네주민들이 월 100만 원어치씩 치즈핫도그를 사 먹습니다. 누군가의 소비는 누군가의 소득이 됩니다. 그렇게 경기가 살아납니다. 아무리 돈을 찍어내도 좀처럼 오르지 않는 물가 마이클이 100만 원 매출을 올리면 대한민국의 GDP가 100만 원 정도 올라갑니다(만약 다른 주변 식당의 매출이 핫도그로 인해 떨어지지 않았다고 가정하면). 소비가 늘면 이렇게 다 같이 부자가 되는 겁니다. 돈을 풀면 은행의 곳간에도 돈이 쌓이고, 은행은 그럼 예금 이자율을 낮춥니다. 순댓국장사로 돈을 많이 번 레이첼은 예금을 하는 대신 그 돈으로 미뤄왔던 피아노를 구입하기로 했습니다. 소비가 더 늘어납니다. 경기가 좋아집니다. 미용실 원장님은 가격을 올립니다. 이렇게 디플레이션을 막아냅니다. 중앙은행의 역할은 원래 ‘파티가 무르익을 무렵 파티 그릇을 치우는 사람(Take away the punch bowl just when the party is getting started/윌리엄 맥체스니/9대 연방준비위 의장)’입니다. 한참 분위기가 좋을 때 ‘이제 집에 갈 시간입니다’며 분위기를 깨는 역할입니다. 경기가 뜨거워지고 물가가 오를 조짐을 보이면, 시중에 금리를 올려 인플레이션을 잡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앙은행은 지난 100여 년 동안 인플레이션 파이터(Inflation Fighter)였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좀처럼 물가가 잘 오르지 않습니다. 양적완화로 중앙은행이 아무리 돈을 찍어내도 물가가 조금 오르다 맙니다. 그러자 각국 정부는 이제 마음 놓고 더 천문학적인 돈을 풀어냅니다. 그래도 경기가 자꾸 가라앉습니다. 그러자 이제 중앙은행은 물가를 올리는 기관으로 변해갑니다. 미 연방준비위(FED)는 급기야 2023년까지 기준금리를 ‘0’으로 유지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돈값을 받지 않을 테니 누구든 돈을 더 빌려 가라고 외치는 겁니다. 모든 재테크의 시작점에 ‘금리’가 있다 수십 년 동안 물가 안정이 정책목표였던 우리 한국은행도 몇 해 전부터는 물가를 끌어올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소방관이 불을 붙이러 다니는 것과 같다). 한국은행은 올해도 물가를 2% 정도 올리는 것을 목표(Inflation Targeting)로 하고 있습니다. 금리는 이렇게 우리 시장을 식히거나 뜨겁게 합니다. 이자를 결정하고 그래서 결국 수익률을 결정합니다. 그러니 모든 재테크의 시작점에 ‘금리’가 있습니다. 금리는 우리 일상 곳곳에서 숨 쉬고 있습니다. 만약 내가 신용이 좋다면 은행은 2%대로 신용대출을 해줍니다. 하지만 신용이 좋지 않은 사람은 대출이자율 10%에도 대출을 해주지 않습니다(은행은 약자에게 큰 이익을 보고 강자에게 조금의 이익을 본다. 아주 약한 사람과는 거래하지 않는다). 은행은 ‘이자율’이라는 장치로 시장의 신용을 평가합니다.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용이 좋은 정부는 아주 낮은 이자율로 국채를 발행하지만, 베네수엘라 같은 나라는 1달러의 국채도 발행하지 못합니다. 지난달 우리 정부는 외환보유고를 더 채워놓기 위해 해외에서 외평채(외국환평형기금채권)를 발행했습니다. 유로채권시장에서 5년 만기로 7억 유로를 발행했습니다. 그런데 ‘마이너스’ 금리로 발행에 성공했습니다. 이자율은 ‘-0.059%’. 한국정부가 돈을 빌리는데, 돈을 빌려주는 채권자가 이자를 냅니다. 더 쉽게 말하면 우리 정부가 7억 2백만 유로를 빌려서 쓴 뒤, 10년 후 7억 유로만 갚으면 됩니다. 참 신기한 세상입니다. 그렇게 인수한 우리 국채의 가격이 시장에서 오르면, 그 투자자는 이윤을 남기고 되팝니다. 투자자들이 마이너스 이자라도 채권을 인수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금리에 빠삭해야 투자로 돈을 번다 회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3월 코로나 위기가 확산될 때 미국의 포드와 델타 등 주요 기업들의 회사채 스프레드(미 국채이자율과 회사채와의 금리차)가 10%를 넘어섰습니다. 돈이 급한 기업들이 시장 평균 이자율보다 10%나 더 높은 이자율을 주고 돈을 빌리려 해도 쉽지 않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10%의 이자율은 정확하게 시장에서 해당 회사가 안고 있는 위기의 크기를 말해줍니다. 위험이 값으로 치환돼 거래되는 것입니다. 우리 IMF 위기 때 대우 회사채는 30%를 넘은 적이 있습니다. 1억짜리 대우 회사채를 보유하면 1년 이자만 3천만 원을 주는 겁니다. 하지만 대우는 부도가 났고 회사채는 종잇조각이 됐습니다(투자자 일부는 보상을 받았다). 이렇게 금리는 우리의 모든 경제활동과 연결됩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전 세계 집값이 오르기 시작한 것은 2001년 미 연준(Fed)이 금리를 크게 내렸기 때문입니다. 지금 정부가 온갖 정책을 다 내놔도 집값이 잘 안 잡히는 것도 근본적으로 금리가 낮기 때문입니다(주택담보대출 이자율이 2.4%라는 것은 10억 원이 없어도 신용만 있으면 연 2천400만 원 내고 그것을 소유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수익률이 2.5%만 넘으면 이 거래는 이익이다). 이렇게 금리는 시장 모든 것의 ‘값’을 결정합니다. 그러니 ‘금리’의 흐름을 알지 못하고 투자에 뛰어드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것은 해가 지는 것을 모르고 산에 오르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게 다수 대중이 투자로 잃은 돈은 대부분 ‘금리’를 잘 이해한 사람들의 주머니로 들어갑니다.
북한산 둘레길 10구간을 걷다가 주택가에서 노란 탱자를 보았다. 담장 위로 절반 이상이 보일 정도로 크게 자란 탱자나무에서 탱자들이 노랗게 익어가고 있었다. 서울에선 보기 힘든 나무라 고향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웠다. 어릴 적 고향 마을에선 과수원이나 집 울타리로 흔히 쓴 나무였다. 요즘은 벽돌 담장에 밀려서 시골에서도 보기 힘든 나무다. 윗동네 큰집 탱자나무 생울타리도 어느 해인가 벽돌 담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5월 하얀 탱자꽃이 필 때 옆을 지나면 꽃향기가 은은하다. 그러나 탱자나무는 꽃이 필 때보다 탁구공만 한 노란 열매가 달려 있을 때가 더 돋보인다. 고향 마을 생울타리에 달리던 탁구공만 한 노란 탱자 열매 어릴 적 가시에 찔려가며 노란 탱자를 따서 갖고 놀거나 간간이 맛본 기억이 있다. 잘 익은 노란 탱자도 상당히 시지만 약간 달짝지근한 맛도 있다. 탱자를 따기 위해 아무리 조심스럽게 손을 집어넣어도 여지없이 가시에 찔렸다. 윤대녕의 소설 탱자를 읽고 오래 여운이 남았다. 소설에서 ‘나’는 늙은 고모로부터 제주도에 보름 정도 머물 생각이니 방을 좀 구해달라는 편지를 받는다. 고모는 중학교 졸업도 하기 전(열여섯에) 절름발이 담임선생과 눈이 맞아 야반도주했다. 그러나 그쪽 집에서 완강히 반대해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5년 후 다시 찾아가 보니 담임선생은 이미 다른 여자와 결혼해 있었다. 담임선생은 고모에게 퍼런 탱자를 몇 개 따주면서 “이것이 노랗게 익을 때 한번 찾아가마”라고 했다. 그는 얼마 있다가 찾아오긴 했지만, 한숨만 내쉬다 돌아갔다. 고모는 스물여덟에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 남편이 일찍 타계하자 생선 장사 등을 하며 자식을 키워냈다. 잘 성장한 아들은 대기업에 취업해 미국으로 떠났다. 이제 나이가 들어 분당의 40평 아파트에 살 정도로 여유가 생겼지만 혼자 사는 게 힘들다며 제주에 들른 것이다. 고모는 간간이 ‘나’에게 자신의 신산(辛酸)스러운 인생을 털어놓는다. 제주에 오기 전 고모는 이제는 늙은 그 담임선생을 다시 찾아갔다. 그리고 “다시 합쳐 살자”는 말을 뿌리치고 대신 탱자를 한 보따리 따온다. 고모는 “내 부질없는 마음엔 탱자를 갖고 물을 건너면 혹시 귤이 되지 않을까 싶어…”라고 말한다. 고모는 이런 얘기를 들려준 다음 집으로 돌아오는 밤길에 배추밭에 들어가 곡을 하듯 운다. ‘배추밭에 와서 급기야 고모는 오랜 세월 울혈 졌던 마음을 힘겹게 풀어’낸 것이다. 고모가 담임선생과 야반도주를 언약한 곳이 배추밭이었다. 고모는 육지로 떠나며 “탱자를 가져왔으니 귤로 바꿔가려는 것”이라며 노지 귤 몇 개만 구해달라고 부탁한다. 고모가 다시 육지로 떠난 지 석 달 후 ‘나’는 아버지로부터 고모의 부음과 함께 고모가 제주도에 오기 전 이미 폐암 선고를 받았다는 사실을 전해 듣는다. 이 소설에서 탱자는 고모의 사랑과 회한을 상징하고 있다. 이 소설이 주는 감동은 고모의 인생에 대한 안쓰러움과 함께, 죽음을 앞두고도 경우를 잃지 않는 고모의 처신에서 오는 것 같다. 고모가 한 말, “누가 만드신 것인지 세상은 참 어여쁜 것이더구나. 눈에 보이는 것들이 이제는 모두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참으로 눈물겹도록 아름답구나”도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 좋은 소설, 수작(秀作)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 소설에서 고모가 말한 귤과 탱자 얘기는 ‘귤화위지(橘化爲枳)’ 즉, 귤이 회수(淮水·중국 황하와 양자강 사이에 있는 강)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고사성어에 기반을 둔 것이다. 춘추시대 제나라의 명재상 안자가 초나라에 찾아갔을 때 이야기다. 초나라 왕은 제나라 출신 도둑을 끌고 온 다음 “왜 제나라 사람들은 도적질만 일삼느냐”고 했다. 이에 안자는 “귤이 회남에서 자라면 귤이 되고, 회북에서 자라면 탱자가 됩니다. 그 까닭은 물과 땅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제나라 사람이 초나라에 오면 도적질하는 것은 초나라 물과 땅이 백성들로 하여금 도적질을 하도록 만들기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왕은 파안대소하며 안자에게 사과했다는 고사성어다. ‘위리안치에 사용한’ 가시 돋친 나무, 탱자 환경의 중요성을 말하는 이야기지만, 과학적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탱자나무는 귤나무의 대목(臺木)으로 많이 쓴다. 그래서 북쪽 지방에 귤을 심었더니 접목한 귤나무는 죽고 대목으로 쓴 탱자나무만 살아남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 가시 돋친 나무에 열리는 탱자는 험한 고모의 삶과 사랑을, 귤은 보다 평탄한 삶과 사랑을 상징하지 않을까 짐작해 보았다. 탱자는 신맛이 나고 귤은 달콤한 맛이 난다는 것까지 감안하면 이같이 해석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탱자나무는 중국이 원산지로 추운 곳에서 자라지 못해 우리나라에서 주로 경기도 이남에서 자란다. 강화도가 북방한계선인데, 강화도 갑곶리와 사기리에 400년 전 병자호란 때 청나라 침입을 막기 위해 성벽을 쌓고 그 아래 심은 탱자나무 중 두 그루가 살아남아 있다. 각각 천연기념물 78·79호다. 그런데 지구 온난화로 서울에서도 탱자나무를 볼 수 있는 것이다. 노랗게 익은 탱자는 독특하고 강한 향기가 오래 가 자동차 같은 곳에 놓아두면 방향제 역할을 할 수 있다. 또 나무가 단단해 명절이나 상갓집에서 윷놀이할 때 흔히 탱자나무를 잘라 윷을 만들었다. 탱자나무 근처에서는 호랑나비를 흔히 볼 수 있는 재미도 있었다. 호랑나비가 탱자나무 잎에 알을 낳고 애벌레는 그 잎을 갉아먹고 살기 때문이다. 탱자나무가 가장 비극적으로 쓰인 것이 위리안치(圍籬安置)였다. 조선시대 왕족이나 고위 관료가 큰 죄를 지었을 때 먼 곳에 유배 보내면서 집 둘레를 탱자나무로 울타리를 만들어 외부와 접촉을 차단한 형벌이 위리안치형이었다. 대표적으로 폐주 연산군과 광해군이 위리안치 형벌을 받았다. 윤대녕은 은어낚시통신 등을 쓴 우리나라 대표 작가 중 한 명이다. 윤대녕 소설을 즐겨 읽는 것은 그의 소설에 자주 나오는 여행 에피소드, 시적인 분위기가 좋기도 하지만 꽃을 상징 또는 주요 소재로 쓴 소설도 많기 때문이다. 대책 없이 도자기에 빠져 아내까지 잃는 남자를 다룬 도자기 박물관에는 사과꽃 향기가 가득하다. 상춘곡은 선운사 벚꽃이 만개하기를 기다리며 10년 전 좋아했던 여인에게 쓰는 편지 형식이다. 꽃은 나오지만, 탱자처럼 그의 소설도 달짝지근하기보다 시큼한 이야기가 많다. 우리 인생이 그렇기 때문일 것이다.
오래된 업무수첩에 담긴 비밀 그의 업무수첩은 화첩(花帖)이다. 반듯하게 써 내려간 울긋불긋 글씨들이 잘 정돈된 교정의 화단을 연상케 한다. 서울가곡초등학교 이태구 교장의 업무수첩은 남다르다. 교장실 책상엔 검정·파랑·빨강·초록색 필기구가 항시 놓여있다. 그날그날 있었던 일들은 4색 펜으로 빼곡히 적는다. 여기엔 원칙이 있다. 학교 내외 행사는 검정색 펜으로 쓴다. 교직원 출장 복무관련은 파랑색이다. 학생·학부모·교사들에게 알려야 할 보고사항은 붉은색. 꼭 강조해야 할 내용은 녹색 형광펜으로 표시해 둔다. 5월 어느 날 업무수첩. ‘열화상 카메라가 온다더니 아직 안 왔다. 내일로 연기된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그 아랫줄엔 오늘 원격수업 준비상황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 얼마 전 결혼한 선생님의 출산휴가 예정일도 붉은 글씨로 쓰여 있다. 교육부와 교육청의 주요 지시사항도 빠뜨리지 않았다. 이뿐 아니다. 인근 학교 코로나 확진자 발생 현황과 대응책도 수첩에 담겨 있다. 업무수첩을 편 순간 오늘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어제 어떤 일이 있었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그는 교감으로 승진한 이후부터 줄 곳 4색 업무수첩을 작성해 왔다. 교장실 책장에는 2014년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써온 두툼하고 낡은 업무수첩이 보관돼 있다. 그에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다. 그는 약속을 잘 지키기위해 업무수첩을 쓴다고 했다. 이렇게 기록을 해 놓으면 학생이든 교사든, 학부모든 그 누군가와 했던 약속들을 잊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충남 청양 산골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교장에 오르기까지 그가 세파를 견디고 이겨낼 수 키워드는 ‘약속과 신뢰’였다. 공모교장 1년 반 만에 꽃단장한 가곡초 이 교장은 지난 2019년 3월 가곡초 공모교장에 임용됐다. 학교가 그를 원했지만, 그 역시 꼭 오고 싶었던 학교였다. 할 일이 많다는 게 가장 큰 매력이었다. 최선을 다한다면 정말 멋진 학교를 만들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다. 취임하자마자 교육환경개선에 소매를 걷어붙였다. 지난 1993년 지어진 가곡초는 일명 노후학교다. 건물이 오래된 탓에 우중충한 외관에 내부 시설들도 많이 낡았다. 마곡지구가 건설되면서 주변 환경은 신도시로 변모했지만, 학교만은 섬처럼 따로 놀았다. 이 교장은 외관부터 손을 댔다.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학교 뒤편 녹슨 컨테이너 박스를 치우고 그 자리에 파란 잔디가 깔린 꽃길을 조성했다. 본관 건물 고장 난 벽시계를 고쳐 달고 외벽엔 학교 이름도 선명하게 새겨 넣었다. 급식실과 식당을 증·개축하고 급식실 옥상엔 텃밭을 조성, 상추·가지·오이 등을 두루 심었다. 초등학교지만 놀이터가 없었던 가곡초. 이 교장은 안전과 재미를 두루 갖춘 놀이터를 새로 만들었다. 과학실과 보건실을 넓혀 쾌적한 환경을 조성하는 한편 체육관 온수시설공사, 방송실 공사 등을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교실 냉난방 시설을 개선하고 석면공사도 마무리했다. 학교 담장은 새로 단장하고 자동화 시설을 갖춘 주차장을 마련했다. 교문 근처에는 이팝나무를 심고 벤치도 만들었다. 자녀 하교를 기다리는 학부모들이 뙤약볕에 서 있어야 하는 고충을 덜어주기 위해서였다. 물론 원격수업에 맞춰 무선 AP시스템과 태블릿PC 환경을 구축, 쌍방향 수업에 완벽히 대비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 교장은 삭막한 도시환경에 젖은 학생들에게 자연을 선물하고 싶었다. 그는 학교 곳곳에 꽃과 나무를 심었다. 실제 가곡초엔 설악초·금계국·매발톱 등 야생화들이 유난히 많다. 일년초를 심을 수도 있었지만 강한 근성의 야생화에 더 매력을 느꼈다고 했다. 학교예산으로 구입하기보다 인근학교들을 수소문해 조금씩 씨앗을 얻어다 심고 가꿨다. 교장실 한켠엔 지난여름 받아 놓은 야생화 씨앗 수십여 종이 소중하게 보관돼 있다. 나무들도 마찬가지. 조경공사를 하면서 버려진 나무들을 가져와 학교에 심었다. 그는 스스로를 짠돌이 교장이라고 했다. 아낄 수만 있다면 한 푼이라고 아껴야하는 것이 학교 예산이라고 했다. 교감으로 근무하던 시절이다. 교장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벼농사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했다. 때마침 모내기 철, 그는 차를 몰고 김포지역 논을 뒤졌다. 그리고 모내기를 마치고 논두렁에 버려진 모들을 얻어와 커다란 고무 물통에 심었다. 그해 가을, 학생들은 교정에서 바람에 일렁이는 벼이삭을 만져볼 수 있었다. 민원 많은 학교에서 민원 없는 학교로 가곡초엔 민원이 없다. 처음부터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가 교장에 부임했을 때만 해도 수십여 건의 민원이 쌓여 있었다. 작년 3월, 민원인들을 모두 교장실로 초대했다. 그리고 직접 담판에 나섰다. 학부모들은 사소한 불만부터 구조적인 문제까지 쏟아냈다. 이 교장은 그들 한마디 한마디를 꼼꼼히 기록한 뒤 하나하나 풀어갔다. 우선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했다.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성의를 보였다. 학교 측에 과실이 있는 것은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했다. 권한과 능력 밖 민원에 대해선 솔직하게 털어놓고 이해를 구했다. 그날 이후 가곡초는 ‘민원 많은 학교에서 민원 없는 학교’로탈바꿈했다. “민원이 들어오면 학교는 일단 방어적이 돼요. 그러면 그럴수록 문제는 더 악화되는 법이죠. 학교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최선을 다하는 성의를 보이고, 할 수 없다면 그 이유를 충분히 그리고 솔직하게 털어놔야 합니다. 그래야 신뢰가 쌓이는 법이죠.” 이 교장은 어려운 일일수록 정면 돌파하는 스타일이다. 단박에 민원을 잠재우듯 학교에 시급한 현안도 미적대지 않는다. 가곡초 앞 사거리엔 접촉사고가 잦았다. 신호등이 없는 데다 사각지대가 있다 보니 크고 작은 사고가 빈발했다. 무엇보다 학생들의 안전이 걱정됐다. 그는 수차례 관계당국에 신호등 설치를 요청했지만, 워낙 여러 기관이 얽혀있는 탓에 쉽지 않았다. 지난해 그는 지역 정치인·구청·경찰서·도시개발공사 등 신호등 설치와 관련 있는 관계자들을 모두 한자리에 불렀다. 따로따로 이야기해서는 부지하세월로 판단, 이날 결판을 지을 생각이었다. 그의 계산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관련 부서와 지역대표들이 모두 참석한 가운에 회의를 열자 일이 술술 풀렸다. 결국 신호등을 설치하기로 결론이 났고 작년 11월 완공됐다. 이후 올 10월까지 접촉사고는 거짓말처럼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참여·소통·나눔 교육 실천 … 학부모 “우리도 최선 다하겠다” 화답 이 교장의 학교경영철학은 참여와 소통, 배려와 나눔으로 압축된다. 그는 함께하는 교육공동체를 중시한다. 학부모회 공모사업 추진, 학부모 연수, 책 읽어주기 명예교사의 보늬샘 활동, 녹색학부모회 교통안전지도, 학교폭력예방활동 등은 모두 학부모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실제 가곡초 학부모총회 때는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참여율이 높다. 단순한 행정사항 전달 연수가 아니라 유명 인사들을 초청, 특강을 실시하면서 학부모 참여를 유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엔 탤런트 이광기 씨를 초대, 성황을 이뤘다. 이 교장은 교사들과 티타임도 즐긴다. 학년별 교사모임을 갖고 자신이 직접 내린 커피를 대접하고 소통의 시간을 갖는다. 커피 한 잔의 비공식 간담회는 관리자와 교직원 간 벽을 허물고 서로를 이해하는 좋은 계기가 된다고 한다. 가곡초는 또 ‘사랑 愛 아름다운 하루’, ‘나눔 바자회’, ‘월드비전 굿 네이버스’, ‘사랑의 열매’ 활동을 통해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학부모들의 호응은 뜨겁다. 지난해 명예교사회장을 맡은 이승진씨는 “책을 통해 마음의 씨앗을 심고 꽃을 피워 책향기 가득한 가곡초가 되도록 열심히 힘을 보태겠다”고 화답했고, 학부모회장 우지현씨는 “학부모회 역할은 우리 아이들 교육에 매우 중요한 만큼 학부모들과 공감대를 형성해 학교를 위한 노력과 봉사로 임하겠다”고 다짐했다. 올해 학부모회장 김현주 씨는 “코로나19로 학교생활이 제한되는 안타까운 상황이지만 가곡초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더 많이 고민하겠다”며 “특별히 지원을 아끼지 않는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올해 교직 34년 차를 맞은 이 교장. 삭막했던 학교를 아름다운 자연친화적 학교로 만든 그에게 바람이 있다면 오직 하나.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고 아끼는 사회를 만드는데 교육이 기여했으면 하는 것이다. 학생들이 교사를 존경하고 학부모가 학교를 신뢰하는 사회가 된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교사에게 가장 큰 보람은 제자들이 찾아오는 것이죠. 그들이 오고 싶은 학교, 만나고 싶은 선생님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제가 할 마지막 소임 아닐까요?”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길. 이 교장이 화단에 심어진 ‘카라’를 가리켰다. 카라의 꽃말은 천년의 사랑, 평생을 교직에 몸담은 그 이지만 아직도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부족하다고 여기나 싶었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 10월 5일 교육부 출입기자들과 가진 정책 간담회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끝나도 원격·대면수업이 혼합된 ‘블렌디드 러닝’을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 부총리는 “등교를 매일 하더라도 대면 토론수업 전 원격수업으로 미리 준비하는 등의 방식으로 블렌디드 러닝을 운영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현재 대부분의 학교에서 진행 중인 원격·대면 병행수업을 코로나19 이후에도 지속하겠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교육부는 오는 2022년 예정된 교육과정 개편에 블렌디드 러닝을 적극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2022년 교육과정 개편을 준비하면서 겪은 코로나19 사태로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었다”며 “코로나19로 인해 새로운 교육과정이 필요해졌고, 이런 내용을 담아 새로운 교육과정 준비에 들어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로 등교수업이 불가능해지자 원격수업 전환을 거쳐 등교와 원격수업 병행이란 블렌디드 러닝이 이제 한국교육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을 태세다. 하지만 블렌디드 러닝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는 것이 사실. 개별 맞춤형 수업에 효과적이란 장점이 있는 반면 교육용 콘텐츠 및 인프라 부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새교육은 초·중·고 교사 3명을 초청, 블렌디드 러닝에 대한 생생한 현장의 소리를 담아봤다. 좌담회에는 강석경 서울 영신초 교사, 전영은 서울 구암중 교사, 고재현 경기 소래고 교사 등이 참석했다. 사회 _ 4월부터 원격수업과 등교수업에 병행돼 고충이 많았을 것 같다. 어떤 생각이 들었나. 강석경 서울영석초 교사 “처음 원격수업이 시작됐을 땐 좀 당황스러웠다. 학교 역할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과 함께 학교무용론까지 나오는 것을 보면서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관계와 소통을 통한 교육공동체 성장’이 학교의 역할이란 사실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코로나19로 촉발된 원격수업은 오히려 평범한 일상에 묻혀있던 ‘학교’란 존재를 다시 한번 성찰하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한다.” 김영은 서울구암중 교사 “지난 3월 신규 임용돼 교직에 첫발을 디뎠다. 그토록 꿈꾸던 발령이었지만 지난 학기 동안 학생들을 만난 시간은 일주일 정도에 불과했다. 속상하고 많이 아쉽다. 게다가 아직 학교라는 조직문화를 잘 몰라 늘 긴장 속에 생활하는 데 원격수업까지 겹쳐 힘든 것이 사실이다.” 고재현 경기 소래고 교사 “전례 없는 원격수업에 처음엔 교사들이 많이 어려워했다. 그래도 지금은 조금씩 안정을 찾는 모습이어서 다행스럽다. 부족한 부분이 있지만, 비판보다는 학교와 교사를 믿고 응원해 줬으면 좋겠다.” 사회 _ 최근 떠오르는 화두가 블렌디드 러닝이다. 일명 온·오프라인 혼합수업이 교육현장에서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고재현 “고등학교는 대학입시라는 특수성이 있어 블렌디드 러닝이 다양하지 못하다. 개인적으로 2·3학년 수업을 들어가는 데 2학년은 줌과 EBS 온라인클래스를 활용하고 있고, 3학년은 EBS 온라인클래스를 주로 이용한다.” 강석경 “우리 학교는 주 1회 등교수업에 e학습터를 이용한 콘텐츠 제공형 수업과 카톡·문자서비스·유선통화를 이용해 학습과제를 제시하고 피드백도 하고 있다.” 전영은 “개인적으로 포털 카페를 플랫폼으로 이용하고 있다. 선생님들에 따라서는 구글클래스룸 등 다양한 플랫폼을 사용하기도 한다. 온라인에서는 교과목의 기초적인 이론이나 지식을 학습하는데 중점을 두고 오프라인은 수행평가나 실습위주 수업을 한다. 담당과목이 가정인데 실습을 거의 못해 안타깝다.” 사회 _ 익숙하지 않은 상황이다 보니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을 것 같다. 강석경 “원격수업엔 금방 적응했는데 오히려 가끔 만나는 등교수업 때 어색했다. 방역을 위해 마스크를 쓰고 종일 생활하다 점심시간에 잠깐 벗으면 아이들 얼굴이 다르게 보이더라. 우리 반 아이를 다른 반 아이로 착각할 정도였다.” 전영은 “포털 카페를 플랫폼으로 이용하다 보니 모든 반의 출석부와 교과게시판이 보여 공개적인 수업이 이뤄지고 있다. 간혹 선생님들이 다른 반 수업에 영상을 올리는 경우도 있고 엉뚱한 반에서 종례를 하기도 했다. 학생들 출결 확인 과정에선 동명이인이 많아 진땀 흘린 기억이 있다.” 고재현 “수업이 시작돼도 침대에 누워 눈만 깜박거리는가 하면 기르는 강아지가 화면에 나와 짖어 댄 적도 있다. 무엇보다 서버에 문제가 많아 중간중간 튕겨 나가는 등 원활하지 못해 아쉬웠다.” 사회 _ 현재 진행 중인 블렌디드 러닝 수준은 어느 정도로 평가하는지 궁금하다. 혹 점수를 매긴다면 몇 점 정도 줄 수 있을까? 전영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수업일정이 수시로 바뀌는 바람에 교사들이 이중 부담에 시달렸다. 급작스레 방역기준이 2단계에서 2.5단계로 격상돼 준비했던 수업을 모두 뒤엎은 적도 있다. 농사를 망쳐 밭을 갈아엎는 농부의 심정으로 일한다는 선배교사도 있었다. 또 영상제작이 익숙지 않아 오프라인 수업은 능숙하지만, 온라인에서는 수업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학부모들 역시 자녀가 수업을 제대로 듣고 있는지 걱정들을 많이 했다. 점수를 매긴다면 65점을 주고 싶다.” 고재현 “교육부는 블렌디드 러닝을 강조하고 있지만, 학교 현실은 녹록지 않다. 아직은 기대만큼 운영되고 있다고는 보기 어려울 것 같다. 내 점수는 70점이다.” 강석경 “점수를 후하게 주고 싶다. 짧은 시간에 이 정도 수준의 원격수업이라면 대단한 것 아닌가. 앞으로 발전 가능성까지 고려한다면 90점은 너끈하다고 본다. 무엇보다 학생 맞춤형 수업이 가능하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다. 또 교사 간 협업을 통해 문제해결력을 높일 수 있어 좋았다. 디지털교과서와 원격플랫폼 활용이 활성화되면 교육의 장이 더 넓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전영은 “발전 가능성 측면에서는 긍정적이다. 블렌디드 러닝의 장점은 뭐니 뭐니해도 학생들 스스로 학습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배움이 느린 아이는 천천히 자기 속도에 맞춰 학습을 진행할 수 있고 배움이 빠른 아이는 심화 학습이 가능해 효과적이다.” 고재현 “약간 다른이야기 인데 원격수업을 하면서 등교수업 땐 알 수 없었던 아이들의 모습을 새롭게 볼 수 있어 좋았다. 평소 조용한 성격이어서 잘 몰랐는데 온라인수업에 적극적으로 댓글을 다는가 하면 말썽꾸러기들도 자신의 잘못엔 죄송하다는 채팅을 보내는 등 의외로 얌전한 모습을 보였다.” 사회 _ 시행 초기다 보니 보완할 부분도 아쉬운 부분도 있을것 같다. 강석경 “블렌디드 러닝을 하기엔 아직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모든 부분에서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컴퓨터 성능부터 마이크·웹캠·AP 등 설비는 물론이고 수업에 적합한 콘텐츠도 빈약하다. 개인적으로 불안한 온라인 시스템 탓에 학생과 소통이 제대로 안 돼 래포형성이 어려웠다. 평가와 피드백에 대한 고민도 컸고 방역 및 수업 관련 메뉴얼이 자주 바뀌면서 피로도가 높았다.” 전영은 “맞는 말이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노트북·프린터 등이 없는 학생이 의외로 많은데 놀랐다. 또 교사들은 출결을 위한 과제 내기에 급급했고 학생들은 영상도 보지 않고 아무 말이나 대충 적어내는 경우도 있었다.” 고재현 “어떤 플랫폼을 이용해야 좋을지, 교육과정과 수업 및 평가와 기록은 어떻게 해야 할지 분명치 않아 혼란스러웠다. 인근 학교는 물론 타시도에 근무하는 친구들한테 매일 전화를 해 자문을 구했던 기억이 난다.” 사회 _ 원격수업 이후 교육격차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는지, 또 어떻게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전영은 “자기주도적 학습능력이 부족한 학생들이 힘들어했다. 교사들의 손이 일일이 미치지 못하는 바람에 학습동기가 급격히 떨어지는 현상을 보였다. 교사들 역시 학생들의 얼굴과 표정을 즉각적으로 볼 수 없다 보니 얼마큼 이해했는지 파악이 힘들었고 피드백도 바로 제공하질 못했다. 학습부진아들의 자기주도 학습능력을 잡아줄 1대1 멘토가 꼭 필요하다.” 고재현 “지금까지 상황만 놓고 본다면 블렌디드 러닝의 가장 큰 단점은 학생과의 상호작용이 어렵다는 점이다. 오랜만에 학교에 나오면 밀린 수행평가 하기 바쁘다. 가정에 디지털 여건이 잘 갖춰져 있거나 케어가 되는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 간 격차가 벌어지지 않도록 학교가 고민해야 한다.” 강석경 “맞춤형 원격수업 프로그램이 충실하고 세심하게 보완돼야 한다. 아울러 교육격차나 학습소외 현상이 학생들의 자존감을 위축시키지 않도록 정서적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 _ 블렌디드 러닝은 앞으로 우리 교육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나. 강석경 “맞춤형 교육콘텐츠 등 교육방법의 다양화가 촉진되지 않을까 싶다. 자연재해나 감염병 발생 등 위기상황에 학교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노하우를 축적할 수 있었던 것도 소득이다.” 전영은 “온라인수업이 도입되면서 다양한 학습도구와 플랫폼들이 등장했다. 교사들도 새로운 학습도구를 받아들이고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런 다양한 시도들은 학생들의 미래역량을 함양하는데 일조할 것으로 믿는다.” 고재현 “학교 공간의 재구성 필요성이 강하게 대두될 것으로 본다. 오프라인에 맞춰져 있는 학교 공간 구조를 원격수업 확대에 대비,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블렌디드 러닝으로 학생들이 수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질 것이고 학부모들의 학교 참여 또한 자연스레 늘어날 전망이다. 컴퓨터나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보기 어렵다며 거실에서 온가족이 TV로 수업을 보았다는 말도 들었다. 솔직히 매일 매일 학부모 공개수업을 하는 기분이어서 부담스런 측면도 있다.” 사회 _ 교육부나 교육청에 대한 학교현장의 불만이 큰 것 같다.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고재현 “줌이나 구글·카톡·밴드 등을 쓰고는 있지만, 사기업에서 언제까지 무료 혜택을 줄지 의문이다. 또 학생과 교사들의 정보를 이렇게 쉽게 넘겨도 되는지 등도 생각해볼 문제다. 학교에서 잘 활용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든다든지(예를 들면 EBS 온라인클래스에 실시간 수업과 출석 점검 등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과 함께 불필요한 업무를 줄이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아울러 모니터 앞에서 50분 수업을 듣는 건 무척 힘든 일이다. 그것도 하루 6~7교시를 듣는 것은 성인에게도 벅차다. 블렌디드 러닝의 성공을 원한다면 교육과정 재구성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전영은 “학생들의 사이버윤리교육이 강화돼야 한다. 교사들이 올린 유튜브 수업영상에 종종 욕설과 성희롱성 댓글이 달린다는 보도를 본 적 있다. 학생들의 미디어 사용이 많아지는 것에 맞춰 디지털시민성 교육도 절실하다.” 강석경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을 어디선가 듣고, 참 좋은 말이라고 감탄한 적이 있다. 요즘 블렌디드 러닝을 운영하면서, ‘가보지 않은 길은 함께 가야 빨리 갈 수 있다’는 말을 절감한다. 다만 학교에 필요한 정책들을 언론을 통해 듣는 사례가 많아 아쉬웠다. ‘네이버 공문’이란 말이 나올 정도였다.” 고재현 “기왕 말이 나온김에 한마디 보태고 싶다. 앞서 잠깐 언급이 있었지만 교육당국이 좀 솔직했으면 좋겠다. 지난 4월 원격수업 시작 이래 교육부나 교육청은 걸핏하면 학교에서 논의해서 결정하라고 했다. 그런데 학사일정부터 교육과정 운영에 이르기까지 정말 재량껏 결정하고 진행할 수 있는 학교가 얼마나 될까? 학교 자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도 좋지만, 필요할 때 적절히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도 교육당국이 해야 할 책무다. 지난 학기는 상황이 워낙 긴박해서 그랬다고 하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행정이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회 _ 과거 정부가 정책을 추진할 때 꼭 우수사례를 널리 알리곤 했는데 막상 현장에서는 잘 안 먹히는 경우가 많았다. 성공적인 케이스도 좋지만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학교들의 사례들을 분석, 반면교사로 삼도록 해야 한다는 말씀에 공감한다. 아울러 블렌디드 러닝·하이브리드 러닝·온라인수업·원격수업·랜선수업·포스트코로나·뉴노멀 등 온갖 용어들이 넘쳐나는 것이 불편하다는 지적에도 많은 교사들이 고개를 끄덕일 것 같다. 긴 시간 좋은 말씀 감사드린다.
“전쟁 중에는 자살과 같은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가 드물어요. 큰 재난이 닥치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생존을 위한 욕구가 강해지는 법이거든요. 그런데 이런 극한상황이 종료되면 오롯이 모든 것을 혼자 감내해야 하는 환멸기가 시작되고, 그때부터 굉장히 힘들어지는 거죠. 코로나도 마찬가지예요. 이제부터 가정과 학교, 사회가 청소년들에게 세심한 관심과 접근이 필요합니다.”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이자 교육부 학생정신건강지원센터를 이끄는 강윤형 센터장(사진)은 ‘코로나 우울’이 본격화해 학생들의 정신건강에 적신호가 켜지는 지금부터가 중요하다고 했다. 강 센터장은 10월 12일 새교육과 인터뷰에서 “경제적 어려움으로 아동학대를 당하는 학생들이 늘고, 교사들 역시 교육·방역·행정업무의 3중고를 겪으면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며 “그들의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격려하며, 지원하는 정책적 배려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비록 힘들고 어려운 위기상황이지만 우리가 슬기롭게 극복한다면 청소년들에게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소중한 교육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14년 출범한 학생정신건강지원센터는 학생들의 정신건강교육과 학생정서·행동특성검사 시행, 학교응급심리지원 프로그램 운영 등을 맡아왔다. 강 센터장은 지난 3월 취임했다. 흔히들 지금 상황을 ‘코로나 블루’라고 하는데 정확히 무슨 뜻인가. “코로나19 초기에는 불안감이 팽배했다. 언제 걸릴지 모른다는 공포가 주를 이뤘다. 일상이 무너진 불규칙한 생활이 장기화하면서 불안과 분노, 심리적 피로와 무력감이 뒤섞였다. 이런 현상을 일컫는 신조어라고 여겨진다. 전문 의학 용어는 아니다.” 코로나19로 원격수업이 8개월가량 진행됐다. 청소년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나. “경제활동이 위축되면서 가정경제가 어려워지고, 아동과 청소년들이 가정폭력과 같은 위기상황에 놓인 경우가 많다. 등교수업에서는 그나마 학교가 보호인자 역할을 했는데 온전히 집에서만 생활하면서 관리 사각지대가 발생했다. 아동학대에 시달리는 사례가 늘었다.” ‘인천 라면형제’와 같은 고통스러운 상황이 많은 것 같다. “이전부터 가족 간 갈등이 있었다면 원격수업 동안 훨씬 증폭되고 강화됐을 것이다. 코로나 발생 초기 대구지역 학생들을 조사한 결과 가족관계가 악화됐다는 응답이 훨씬 많았다. ADHD 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해외 보고서에서도 등교수업 때보다 상태가 안 좋아졌다는 응답이 3분의 1가량 됐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길수록 학생 정신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 경우가 많았다는 결과다. 부모가 학업이나 생활을 케어할 수 있는 가정과 그렇지 못한 가정 아이들 간 정서적 양극화가 원격교육 기간 동안 더 심해졌다고 볼 수 있다.” 학력격차도 커졌다는 지적이다. “학교라는 공동체생활의 장점 중 하나는 또래집단이 주는 격려이다. 본인은 하기 싫지만, 친구들이 하는 것을 보고 따라 하는 동료의 힘은 굉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또 선생님의 관심과 격려 역시 학생들에게 큰 동기부여가 됐다. 원격수업에선 이런 기능이 매우 취약하다 보니 격차가 벌어질 수밖에 없다.” 올 하반기부터 학생들의 정신건강에 심각한 위기가 올 것이라고 경고했는데. “일반적으로 전쟁 등 재난 시기에는 자살률이 줄다가 재난 후 자살률이 급증한다. 그러나 코로나19의 경우 일반적인 재난 경과와 달리 8개월 넘는 장기간 재난상황이 지속하면서 심리적 피로도가 빠르게 쌓이고 있다. 재난상황에서는 생존욕구가 강해지지만,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감당하기 힘든 현실 때문에 환멸과 무력감 증세가 나타난다. 실제 코로나 발병 초기 대구에선 많은 자원봉사자가 찾아와 힘을 보태는 바람에 시민들이 어려움을 잘 견뎠으나 그들이 떠난 후 홀로 남았을 땐 몹시 힘들어했다. 청소년 정신건강도 마찬가지다. 7월까지 통계를 보면 청소년 자살률은 예년보다 줄었다. 그런데 9월부터 늘기 시작했다. 사실 학교 내 청소년보다 학교밖청소년의 자살률이 더 높다. 2학기가 본격 시작된 10월 ~11월이 매우 중요하다.” ‘집콕’ 생활 탓에 스마트폰 중독이나 게임에 빠진 학생들 많다. “외부생활이 제한되다 보니 디지털 기기에 의존하는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문제는 사이버블링이나 인터넷 도박, SNS 과몰입 등이 엄청나게 늘었다는 점이다. 등교수업 이후 학교에서 집중적인 교육이 필요하고 가정에서도 세심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부모들도 걱정이 많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답답하다. “가정에서는 자녀들이 기본적인 생활규칙을 지킬 수 있도록 감독이 필요하다. 자녀들이 규칙적인 식사와 수면습관을 갖도록 지도하고, 부모 스스로 모범을 보이는 생활을 해야 한다.” 학교에서는 어떻게 지도해야 할까? “학생들에게 고립감을 심어주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가 지지하고 챙겨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게 해줘야 한다. 그런 점에서 비대면이지만 쌍방향 소통이 중요하다. 가능하면 줌을 통해 얼굴도 마주하고 단톡방을 이용, 친구들과 끈이 이어져 있음을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 학생들도 힘들지만, 교사들 역시 스트레스가 심하다. “실제로 원격수업 이후 상담센터를 찾는 교사들이 많이 늘었다. 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면 우선 비대면수업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예상외로 컸다. 학생들의 눈빛이나 질문 등 리액션이 있어야 신이 나는데 혼자 떠들다 보면 힘도 빠지고 수업도 힘들다는 것이다. 또 디지털 기기에 적응하지 못해 나이 지긋한 교사 중에는 스트레스받는 경우가 많다. 이뿐 아니다. 유튜브로 수업을 하다 보니 사실상 공개수업이 돼버려 은근 신경이 쓰인다. 학생들은 입에 담기 힘든 댓글을 달기도 하고 혹시 영상을 캡처해 ‘장난’할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다. 게다가 교육은 물론 방역에 행정업무까지 떠안아 3중고에 시달린다. 보건교사들은 사실상 번아웃 상태에 놓여있다. 원격수업으로 ‘놀고 먹는다’는 일부 학부모들의 시선에 교사들은 괴롭다.” 10월 12일 현재 코로나 확진 교직원과 학생은 누적 집계 755명이다. 확진학생과 교직원들을 직접 심리치료를 했는데 어땠나. “메르스 당시 완치자의 70%가 1년 뒤 외상후스트레스나 우울증에 시달렸다는 보고가 있다. 확진 당시 느꼈던 충격과 공포, 사회적 낙인, 주변의 비난과 죄스러움 등이 그들을 괴롭혔다. 따라서 완치가 되고 상황이 종료돼도 다시 공동체 안으로 들어갈 때 심리적 부담이 상상 이상으로 컸다. 코로나19에 확진된 학생이나 교사들도 같은 전철을 밟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확진자들을 따뜻하게 맞아줘 학교가 심리적 안정을 찾는 데 도움을 줘야 한다.” 지난 10월 19일부터 등교수업이 본격화됐다. 일부 학자들은 원격수업 후유증으로 등교거부 등 부작용을 예상하는데. “학생들은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환경변화에 잘 적응한다. 크게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 학생들의 회복탄력성을 믿고 격려한다면 등교수업은 이른 시일 내 안정을 찾을 것으로 본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코로나19는 분명 우리에게 비극이고 시련이지만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어려운 국난의 시기를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지를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보여주는 산교육의 장이기도 하다. 견디기 힘든 공포와 사회적 고립감,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오더라도 공동체가 나를 지켜주고 지지해주고 위로해주는 든든한 버팀목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돈으로 살 수 없는 교육이다. 또 학교가, 선생님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 역시 교육적 의미가 크다. 코로나 사태가 청소년들에게 사회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주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대유행하면서 인류는 또 한번 역사의 변곡점을 지나고 있다. 사회·경제·문화 곳곳에서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고, 너나 할 것 없이 힘겨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교육현장도 예외는 아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대면수업과 등·하교 등 평범한 학교생활이 사라지고, 비대면으로 이루어지는 원격수업이 일상이 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어려운 시기라고 하더라도, 좌절하거나 정상화될 때까지 교육활동을 미룰 수만은 없다. 이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무엇인가를 성취하기 위한 대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교과서 개념과 기능의 변화를 요구하는 시대적 상황 교육의 가장 큰 변화는 교육환경이나 여건이 매우 많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시대·사회적 변화에 따라 교수·학습방법이 다양화되고 있고,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수업이 본격화되었다. 이러한 교육변화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교과서 제도와 교과서 내용 역시 전통적인 개념에서 벗어나 변화를 꾀할 필요가 있다. 교육환경이나 여건이 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교과서 개념과 기능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학생들이 성장하는데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현대적 의미의 교과서 제도는 광복 이후 체계적으로 정비되었다. 교과서 내용은 ‘지식이나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것’으로 이루어져 왔고, 교과서 제도는 ‘국정’과 ‘검정’의 기본 골격을 토대로 하고 있다. 국정과 검정교과서 제도는 교육의 일정 수준을 유지하고, 교육에 제대로 접근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교육기회를 확장하는데 기여했다. 최근 들어서는 인정 교과서 비중이 높아지면서 자유발행 적용 인정교과서까지 도입되는 등 교과서 발행 체제를 다양화하고 있다. 그러나 교과서 발행체제의 다양화라는 교과서 제도 운영 변화에도 불구하고 교과서 내용은 ‘큰 틀’의 변화를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있다. 아무리 제도 운영방식이 변화하더라도 교과서 내용이 기존 형태를 그대로 유지한다면 제도적 변화는 큰 의미를 지니지 못하게 된다. 특히 최근처럼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원격수업이 장기화되는 상황을 고려하면 ‘지식 전달 기능’이라는 전통적인 교과서 기능과 개념에 대한 반성적 고찰은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새로운 형태의 교과서 출현은 시대적 요구 만약 교과서가 시대적 흐름에 따라가지 못하고, 전통적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에 머무른다면 어떻게 될까? 학생들이 성장하는데 제한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교과서는 지식 전달 기능을 탈피하여 기본 개념·원리와 같은 핵심적 사항을 교과서 내용에 제시하되, 이들이 실제 생활에 어떻게 전이되고, 확장되며, 촉진시킬 수 있는지를 제시하는 형태로 만들어져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교과서뿐만 아니라, 다양한 교수·학습자료가 동원되어야 한다. 교과서가 기본 개념과 원리를 중심으로 이뤄진다는 것은 교과서 내용이 핵심적 사항 위주로 적정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개념과 원리가 일상생활에 적용될 때, 다른 교과의 개념·원리와 통합적으로 작용하게 되고, 융합적 형태의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게 될 것이며, 그렇게 되면 새로운 교과의 창출도 가능하게 될 것이다. 또한 원격교육이 이뤄지고 있는 지금, 교육활동이 지식·정보전달에 머무른다면 교육활동을 전개하는 매개체만 변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교사는 학생들에게 더욱 많은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여러 가지 자료를 만들어 보관하고 필요시 활용하게 되는 관리자로서의 역할에 머물게 될 것이다. 대면수업에서 학생들은 교과서 내용을 배우기도 하지만, 교사의 관점과 태도 역시 배우게 된다. 그래서 원격수업에서 동일한 방식으로 교육하더라도 학생들은 그러한 교사의 관점을 배우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교사와의 상호작용을 활성화하기 위한 조치는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이다. 교과서는 더욱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교육활동을 제대로 전개하기 위해서는 교육과정이나 교과서를 정해 놓고 여기에 학생들을 맞추기보다 학생의 소질이나 적성 및 수준에 부합되는 교육과정과 교과서를 동원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교과서는 많은 지식과 정보를 축적해 놓기보다는 핵심적 사항을 제시하고, 보다 많은 교수·학습자료가 동원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풍부한 교수·학습자료를 많은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고 이를 수용하는 의미로 보아서는 안 된다. 그것은 교과서 기본 개념과 원리를 실제적 생활모습에 전이를 촉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확장하기 위한 것에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온라인 교육시대에 전자매체를 적용하여 보다 많은 교수·학습자료를 제공하는 것을 오용하게 되면 학생들에게 부담만 가중시키게 되고, 그 결과 학생의 성장을 저해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교육활동을 온라인으로 대체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교과서는 보다 유연해 질 필요가 있다. 유연한 교과서는 결국 기본 개념과 원리를 제시하고, 이들이 실제 생활의 맥락에서 경험적으로 활성화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하는 것이다. 원격교육이 이루어지는 현시점에서 교과서 활용에 관한 상당한 고충이 따르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교과서에 관한 관점을 변화하는 것 역시 필요한 시점이다. 따라서 교과서는 제도적 측면에서 발행체제를 다양화하고, 내용적 측면에서는 핵심적 사항 위주로 제시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사회변화에 적응하는 자유발행 체제 필요 교과서 발행체제의 다양화에서 국정과 같은 경우는 지진과 같은 재난상황이나 위기상황에서 표준화된 내용을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첨단 분야나 새로운 사회문제 해결 등을 위해서는 사회적 변화에 대응성을 고려하기 위해 자유발행 체제와 같은 교과서 제도의 도입도 필요한 것이다. 올해 초 교육부에서 기존의 인정교과서 이외에 자유발행 적용 인정 교과서 제도를 운영할 수 있는 법적인 근거를 마련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학생 소질과 적성에 따른 교육을 하기 위해 고교학점제를 도입하게 되면 학생의 선택 폭이 넓어지게 되고, 그에 따라 교과서 개발과 운영에서 단위학교의 자율성이 보다 강화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점에서 자유발행 교과서 제도는 교육현장의 교육활동을 보다 효과적으로 이루어지게 할 여지를 만드는 작용을 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원격교육에 따른 다양한 교수·학습자료가 필요한 시기를 고려하더라도 자유발행 체제의 의미가 살아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아직까지 온라인교육·원격교육·원격수업·이러닝 등 다양하게 활용이 되고 있는 여러 가지 용어에 대해 명확하게 정의를 내린 경우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만들어 가는 교과서’ 체제의 새로운 시도 최근 교육부에서 온라인 교과서는 기존의 서책에서 벗어나 다양한 온라인 콘텐츠(e-book·PDF·디지털 교과서 등)를 활용한 온라인 교과서 제작을 추진하고 나선 것은 반가운 일이다. 온라인 교과서는 교육과정 정합성을 충족시키는 넓은 의미의 교수·학습자료를 총칭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교육부는 올해부터 3년간 ‘온라인 콘텐츠 활용 교과서 시범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이러한 시범 사업은 코로나19 이후 원격수업의 경험을 적극 활용해 온라인 기반 다양한 디지털 콘텐츠로 교사가 교육과정을 재구조화하고, 교수·학습자료 등을 직접 개발할 수 있는 ‘만들어 가는 교과서’ 체제의 시사점을 도출하기 위한 것에 있다. 교과서 자유발행제와 연계하여 추진할 계획을 세움으로써 교과서에 대한 제도적 측면과 내용적 측면에 걸쳐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노력은 우리가 현재의 어려운 시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기 위해 교과서에 대한 제도 변화의 모색과 더불어 디지털 매체를 활용한 수업에 대한 개념적 지도와 그 정의를 명확하게 제시하기 위한 것에 있다고 생각된다. 교육부의 이러한 정책이 교육현장에서 학생의 특성에 부합하는 내용을 자율적으로 만들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함과 더불어 그러한 내용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 정비가 체계적으로 진행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