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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오범세 | 전 인천 청천초 교장 양질의 교사, 우수교사의 확보, 공교육의 정상화를 전제로 한 교사평가제도가 교육인적자원부에서 교육개혁 차원으로 논의되고 있다. 그러면 질 높은 교사란 어떤 수준인가? 기본적으로는 교직자로서의 품성과 교육애를 갖추고 여기에 학문적 식견과 탁월한 수업력을 겸비한 교육자라고 말할 수 있다. 앨빈토플러가 《제3의 물결》에서 말한대로 정보화시대, 세계화시대로 국가경쟁력 향상에 기여할 우수교사 확보가 시급해졌다. 교사평가제가 교육철학에 근거하였거나 선진국에서도 성공한 제도라면 더 늦기 전에 과감히 실시되어야 한다. 단, ‘교사평가=우수교사=공교육정상화’라는 등식이 성립된다고 볼 때에만 본 제도의 효율성은 인정될 것이다. 모름지기 교사평가제는 부실교사의 색출이나 줄 세우기가 아니라 교육력을 제고하는 제도로 성공하기 위하여 현행제도의 문제점을 찾아 개선해야 한다. 현행 교사근무평정제에는 약점이 있다. 교사를 평가하고 있는 유일한 제도가 연말에 교장과 교감에 의해 1회 실시되고 있는 교사근무평정이다. 규정을 보면 ‘연공서열 내지 경력에 따라 평정하는 것이 아니고 능력과 실적을 기초로 하는 평정으로, 교사들의 노력을 촉구하는 자극제로 실시하며 인사자료(승진·전보·포상 등)로 활용한다’고 명시하였다. 그러나 상대평가인 관계로 규정을 지키기가 어렵다. 승진대상인 교사에게 후한 점수를 주게 마련인 터에 1등부터 끝등까지 서열을 매기는 관계로, 상대적으로 우수한 신규교사와 연소한 교사는 대개 하위로 평정받게 되는 모순이 발생하는 것이다. 게다가 비공개 자료이기 때문에 승진대상자나 그 해 전보대상자 외에는 관심이 없으며 당사자 본인의 반성자료도 못 된다. 그러므로 절대평가로 바꾸고 결과를 본인에게 통보하여 자기반성자료가 되게 함과 동시에 자기연찬의 자극제가 되게 하여야 한다. 물론 공개하게 될 때 불만의 소지가 없도록 완벽한 객관적 자료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교사평가제의 초점도 수업평가에 비중을 더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사의 수업에 대한 개인차가 분명히 존재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부실교사로 구분짓기 이전에 끊임없는 자기연수와 교내수업연구, 교내장학을 해야 한다. 이에 교사는 자기의 수준을 인식하고 교재연구를 철저히 하여 가르쳐야 할 수업목표와 내용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수업방법의 기술을 향상시키는 데 노력해야 한다. 장학담당자(학교장, 동료교사, 장학사 등)로 하여금 자기가 한 수업을 분석·평가토록 하고, 그 결과를 기꺼이 수용할 때 자기의 수업의 질은 높아질 것이며 우수교사로서 신뢰받게 될 것이다. 중국의 일부 학교에서는 교사들을 주기적으로 평가하고, 성적이 나쁠 경우 120명 중에서 4~5명이 교단을 떠나도록 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2001년부터 학생지도 능력이나 학급경영 능력이 부족한 교사는 연수를 받게 하는 교사평가제를 도입했다. 미국 버지니아 주 페어 팩스 교육청에서는 3년에 한 번씩 모든 교원을 평가하고, 그 결과에 따라 재임용, 조건부 재임용, 재임용 탈락 등으로 구분한다. 이는 결국 퇴출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기보다 연수의 기회로 교사의 자질을 높이는 데 의의가 있는 것이다. 우리 나라의 일부 대학에서도 수강생들이 교수의 강의를 평가하는데, 교수들에게 긴장감을주면서 다음 학기 강의 개선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며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다. 어느 고등학교에서도 학생들이 교사의 수업을 평가하는데, 자기의 문제점을 알게 하고 자기연수를 성실히 수행하게 하는 성과가 있다고 한다. 다만, 이 학교에서는 참고자료로만 사용할 뿐 교사의 인사고과에는 반영하지 않고 있다. 이런 점을 보면서 현행 교사근무평정제를 수정·보완하여 객관적인 절대평가를 시행한다면 합리적인 교사평가로 부작용 없이 실효를 거두리라 기대한다. [PAGE BREAK]현행 교사평가 영역인 교사의 자질 및 태도, 근무실적 및 근무수행 능력에 교사의 적격성 여부를 추가하면서 각 평가내용별로 목표도달점을 두고 부정적 사항을 누가기록 하였다가 일정한 기준에 의한 감점 처리를 한다면, 평가자의 주관성은 배제되고 평가대상자도 수긍하는 절대평가로 신뢰받을 것이다. 특히 수업력의 비중을 높이는 것도 수업의 질을 높이고자 하는 의도에도 합당할 것이다. 평가대상은 교사 전원(보건교사, 영양교사 포함)으로 하고, 평가참여자는 교장·교감·동료교사(상호평가)·학부모(학교장 재량으로 의견 참조)로 한다. 평가방법으로는 평가내용별 감점 처리, 절대평가, 연말 1회 실시(평가자 총점 평균)하고, 평가결과는 본인에게 통보하며 평점 60점 미만자는 근신, 수업력 미숙자는 재교육연수와 수업연구공개, 부적격 교사는 학교장이 교육청에 심사를 의뢰한다. 다만, 이 제도로 하여금 교사들을 시험하거나 교직의 존귀성을 손상시키고 교권이 침해되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 평가결과는 어디까지나 자기반성과 꾸준한 교직성장을 위해 노력하는 풍토(風土)가 조성되도록 해야 한다.
신천호 | 한의사 사람은 누구나 오래 살고 싶은 욕망이 있다. 어쩌면 장수(長壽)는 인간들의 영원한 화두(話頭)일런지 모른다. 현대 의학에서도 유전자 지도를 통해 질병을 예방하여 인간의 평균수명을 연장해 보려는 노력이 한창이다. 개인은 개인대로 운동을 한다거나 건강에 좋다는 음식과 약이 있다면 찾아가 많은 돈을 주고 사 먹기도 한다. 그러나 오래 산다는 것이 질병 예방, 운동, 건강식과 보약 등으로 보장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복잡한 문명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그럼 오래 살기 위해 우리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 답은 의외로 가까이에 있다. 바로 정신적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다. 즉, 자신의 마음을 편안하게 유지하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삶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좋은 생활방식을 유지해야 한다. 이번호에는 장수를 위한 생활방식에 대해 알아본다. 낙관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먼저 낙관적이고 진취적인 태도를 가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걸을 때에는 정신을 차리고, 얼굴에는 항상 웃음을 띠어야 한다. 때때로 자기를 각성시켜서 ‘하늘이 나를 낳은 것은 반드시 쓸 데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생각해야 한다. 낙관적이고 진취적인 태도는 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로부터 나를 편하고 여유롭게 해 준다. 그러면 심장병과 중풍의 발생 가능성이 줄어든다. 둘째 가까운 사람에게는 열정을 표시하도록 하자.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것이 오래 사는 관건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만약 남편이 매일 아침 출근할 때 아내가 현관에서 남편에게 키스를 해 주거나 껴안아주면 이것이 진정으로 그의 목숨을 더하게 할 것이며, 그가 차를 운전할 때에도 교통사고가 덜 날 것이다. 셋째 때때로 웃자. 그것도 큰 소리로 웃으면 더욱 좋다. 웃음은 긴장을 줄여줄 뿐 아니라 오래 살게도 한다고 한다. 만약 기분이 저기압이거나 크나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때는 코미디 영화를 보거나 만화책을 보거나 우스갯소리를 잘 하는 친구를 찾아가 담소를 나누는 게 좋다. 고독을 생활화하지 말자 넷째는 잠을 잘 자야 한다. 충분한 수면은 신경계통과 대뇌를 안정시킨다. 또 스트레스 때문에 생긴 질병을 감소시킨다.[PAGE BREAK]다섯째는 긴장을 없애도록 노력해야 한다. 피로함, 음식을 많이 먹는 습관, 때때로 느끼는 냉감, 두통, 불면증, 건망증 등은 생활방식을 바꾸기만 해도 없어질 수 있다. 예를 들면, 작업중에 시간을 내서 휴식을 취하거나, 새로운 운동을 즐기거나 하면 이러한 긴장증상을 제거하는 데 도움이 된다. 여섯째는 자기에게 있는 작은 질병을 끄집어내지 말자는 것이다. 이것은 작은 질병이 있거든 방법을 찾아서 치료하면 되는 것이지, 그것으로 남의 동정을 구하는 도구로 삼으면 안 된다는 뜻이다. 일곱째는 ‘나도 백 세까지 살 수 있다’는 신념을 항상 가지라는 것이다.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는 생각은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말이다. 자신이 스스로 백 년을 살 수 있다고 믿는다면 힘써서 그 길을 찾을 것이다. 여덟째 마음과 몸을 느긋하게 가져서 활력이 넘치게 하자. 진실로 심신을 단련하고자 한다면 느긋하게 해야 한다. 심호흡을 하면서 눈을 감고 마음속의 근심과 번뇌를 씻어내야 한다. 그리고 즐겁고 아름다운 일들을 생각해보자. 그러면 건강하게 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고독을 생활화하지 말아야 한다. ‘어차피 인간은 고독한 존재다’며 고독을 즐기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고독한 생활은 건강에 해롭다. 왜냐하면 아무도 당신의 즐거움을 나누어 즐길 수 없고, 아무도 당신의 고통을 분담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족이나 지인과 더불어 즐거움을 함께 누리는 사람이나 심신이 유쾌한 사람은 일반적으로 독신자보다 오래 산다.
김영춘 | 한국교총 교권옹호국 Q1. 이번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2주 정도 해외에 나갈까 생각중인데, 제가 2년차이기 때문에 연가를 이용하여 10일밖에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연가를 이용하지 않고 자율연수의 방법으로 해외로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없나요. A1. 교육공무원이 공무외의 국외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교원휴가업무처리요령에 의거 본인 또는 친인척의 경조사 및 본인의 긴급한 질병치료 등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학교교육에 지장이 없는 휴업일 중 휴가 또는 연가기간의 범위 안에서 이뤄져야 합니다. 또한 친지방문, 견문목적, 취미활동, 가족 기념일 여행 등의 경우에도 공무외 국외여행을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선생님의 경우처럼 교육경력이 길지 않아 법정연가일수가 많지 않을 경우에는 국외자율연수를 위한 공무외 국외여행을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교직단체가 주관하는 연수 또는 해외 교육기관의 초청에 의한 연수참가, 개인의 학습자료수집 등의 사유가 있을 때 신청가능 합니다. 기간은 휴업일 중 실시하되 학교교육에 지장이 없는 범위내여야 합니다. 방법은 국외자율연수 신청 계획서를 준비한 뒤 학교장의 사전승인을 얻은 후 실시하고, 그 신청기간이 종료되면 국외자율연수 보고서 등을 제출하면 될 것입니다. 참고로 방학은 교원에게 있어 단지 수업이 없는 휴업일이므로 임의적으로 출국을 할 수 없으며 반드시 소속 기관장에게 보고를 해야 합니다. Q2. 토요일과 일요일 양일에 걸쳐 체육대회 참가를 위해 학생을 인솔하라는 학교장의 출장명령을 받았습니다. 이때 출장비가 지급되는지와 주말근무이므로 초과수당도 지급받을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A2. 선생님의 경우 근무외 시간에 학교장의 출장명령을 받아 학생들을 인솔했다면 출장비가 지급됩니다. 시간외근무수당의 경우에는 출장명령에 따라 국가공무원복무규정에서 정한 근무시간에 대해서는 시간외근무수당을 지급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전에 학교장으로부터 정규 근무시간을 초과하여 근무한다는 승인을 받고 근무했다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수당 지급이 가능할 것입니다.
유병용 | 서울 불암초 교사 꿈꾸는 교육자. 나의 명함 이름 옆에 조그맣게 써 있는 문구이다. 교사가 되고 난 후 나는 줄곧 교사로서의 꿈과 희망에 대해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책을 읽으며 희망을 키워왔다. 그 꿈과 희망은 매년 학급경영에서도 반영되었고 한 해 한 해가 갈수록 그 희망도 조금씩 성장해 간다. 매년 7월이 되면 내가 꿈꾸었던 학급경영이라는 희망의 씨앗이 작은 나무로 자라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어느 해에는 보기 좋게, 어느 해에는 초라한 모습으로 성장해 있는 학급경영의 나무가 나에게 기쁨을 주기도 하고 슬픔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슬픔이 앞설 때조차 희망의 나무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초라한 모습으로 자라있는 학급경영 나무를 바라보며 슬퍼하기에는 아직도 물을 주고 가꾸어야 할 많은 시간과 가능성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내년에 희망의 씨앗을 힘차게 뿌릴 소망도 함께 자라나기 되기 때문이다. 초등교사에게 있어서 학급경영은 참으로 중요하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대부분이기에 학급을 어떻게 운영하고 학급의 분위기를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가 일년의 교육 농사를 좌우 짓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학급경영의 핵심은 교사에 대한 신뢰감이라 여겨진다. 교사에 대한 신뢰감이 없으면 어떠한 교육 프로그램과 좋은 교재를 가지고도 좋은 결실을 이루어내지 못하며, 아이들의 인격적인 변화 또한 이끌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러 선생님들의 생각과 마찬가지로 나 또한 이러한 교사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남다른 노력을 기울이며 여러 가지 시도를 해오고 있다. 먼저, 교사가 신뢰를 확보하기까지는 교사의 모범과 실천이 절대적으로 선행되어야 하리라 여겨진다. 우리 반에서는 정해진 등교시간에 지각을 하면 팔굽혀펴기를 하며 개인 운동을 하는데, 하루는 교사인 내가 교통체증으로 몇 분 늦게 교실에 들어가게 되었다. 아이들은 당연히 선생님이니까 그냥 넘어가리라 여겼는지 늦은 이유에 대해서 묻지 않았다. 그때 나는 일부러 큰 목소리로 “얘들아∼ 선생님이 교통이 막혀서 이렇게 늦어 버렸네!”라고 말하며 아이들이 다 보는 앞에서 팔굽혀펴기를 시작하였다. 이때 아이들의 반응이 참으로 궁금했는데, ‘우리 선생님 지각쟁이’라고 놀리는 아이들이 꽤 있으리라 예상했었다. 그런데, 아이들은 내가 팔굽혀펴기 하는 모습이 놀라웠던지 교실 앞으로 다 몰려와 구경을 하며 같이 개수를 세어 주는 것이 아닌가! 뿐만 아니라 내가 약속한 개수를 다 마쳤을 때 우레와 같은 격려의 박수를 보여 주었다. 참으로 아이들의 넉넉한 격려의 마음이 사랑스럽고 대견스러웠다. 교사가 먼저 모범을 보일 때, 아이들은 오히려 감동하고 교사를 신뢰하게 된다는 사실을 경험하며, 작은 것에서부터 먼저 실천하고 본을 보이는 교사의 태도가 더욱 중요함을 깨닫게 되었다.[PAGE BREAK]우리 반은 급훈의 첫 번째가 “순종하는 사람이 되자”이다.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에서 ‘순종’이라는 낱말이 참으로 어색하게 들릴 법도 한데, 아이들은 아주 진지하게 받아 주었다. 급훈은 교사인 내가 정하는데 순종에 대한 급훈을 말할 때에는 왕이 선포하듯 더욱 자신감 있게 말하곤 한다. 여기에서의 ‘순종’은 하기 싫은데 억지로 따라가는 굴복의 의미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따름’이라는 것을 태도로서 명확하게 전달하기 위해서이다. 현대 사회로 접어들수록 부모님에게 순종하지 않는 분위기가 만연해져가고 선생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태도 또한 점점 희석되어져 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순종의 태도에 대한 자신감 없는 교사의 행동은 배우는 자인 아이들에게는 더욱더 필요 없는 옛 가치로 느껴지게 한다. ‘순종’의 가치를 아이들이 머리와 마음으로 이해하고 공감하였을 때 교사에 대한 신뢰는 더욱 견고해 질 수 있음을 굳게 믿고 있다. 순종의 기초 위에 가르침과 배움을 쌓을 때 기초가 튼튼한 교육이 될 수 있음을 전하고자 한다. 앞서 말한 ‘순종’은 교사가 말로만 강조한다고 해서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교사가 먼저 순종하는 삶의 태도를 보여야 한다. 교사의 말과 행동이 다를 때 그것은 생명력을 잃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이러한 가치관을 가르치면서 나 또한 내 자신의 순종하지 않는 어그러진 마음을 추스르며 부단히도 내 자신과 싸우고 변화됨을 느끼며 ‘제일 좋은 배움은 가르침이다’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교사인 내가 글이나 말로 내뱉은 것은 반드시 행동으로 옮기고자 다짐하니, 아이들에게 말을 할 때에도 신중하게 됨을 보게 되었다. 함부로 약속하는 습관도 사라지게 되었고, 기분과 감정에 따라 내뱉는 말도 점점 줄어들게 됨을 보게 된다. 자연스럽게 학급운영계획을 수립하면서도 한꺼번에 많은 계획을 쏟아내지 않고 실현 가능한 것부터 조금씩 운영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아이들은 하루에 선물을 모두 받는 것보다도 자주 선물을 받을 때 더욱 기뻐하고 즐거워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기회가 되기도 하였다. 선물을 조금씩 자주 주는 것처럼 학급마다의 프로그램이나 일정을 잡을 때에도 이 점을 참고하면 아이들에게 신뢰받는 교사가 되리라 여겨진다. 예전에 아이들에게 좋은 이야기도 많이 해주고, 수업시간에도 재미있게 가르쳐 주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들이 교사인 나에 대해 갖는 신뢰가 적다는 것을 발견한 적이 있었다. 길에서 우리 반 아이를 만나면 나는 너무나 반가워서 달려가 악수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아이들은 나에게 그러한 기회를 주지 않았다.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모르는 사람인양 제 길을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심지어는 나를 피해 다른 길로 가는 아이도 있었다. 그때 나는 그 동안 아이들과의 개인적인 시간을 갖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40여 명의 전체 아이들을 대상으로 수업하고 좋은 이야기는 했을지언정, 한 명 한 명의 아이와는 개인적인 만남과 이야기를 나눈 시간이 거의 없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PAGE BREAK]그 해 이후로 나는 아침에 아이들과 악수를 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아이들이 아침에 교실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선생님에게 악수를 청하며 인사를 한다. 교사인 내가 바빠서 인사를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선생님의 손이라도 만지며 인사를 하게 하였다. 그것은 교사인 나와 아이들과의 최소한의 개인적 만남이기 때문이다. 인사를 할 때는 가급적 모든 아이의 눈을 바라보고 미소를 짓는다. 그것으로 그 아이는 선생님과의 의사소통을 최소한 하루에 한 번 시도했으며, 손과 손의 온기로 마음을 전하게 된다는 사실을 전해 주고 싶었다. 이 보잘 것 없는 시도가 내게는 참으로 큰 힘을 주었다. 요즈음에는 길 가다가 아이들을 만날 때 빙그레 미소를 짓는 아이의 모습에서 아이들과의 개인적인 만남의 기회를 더욱 자주 가지리라 다짐을 하곤 한다. 아이들과의 개인적인 관계를 견고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대화이다. 아이들과의 상담 활동은 교사에게 있어서 무엇보다 아이의 생각과 마음 상태를 파악하고 진단하고 혹시 갖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오히려 상담을 하고 난 후 교사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는 경우가 있음을 고백하게 된다. 아이들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마음 없이 교사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수단으로 활용할 때, 아이들은 금세 눈치를 채고 선생님에게 실망을 하게 된다. 나 또한 이러한 실수를 하며 상담의 올바른 이해와 방법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기회가 되기도 하였다. 의 저자로 알려진 토마스 고든의 이라는 책이 나에게 아이들과 이야기할 때의 태도에 대해 지혜롭고 효과적인 도움을 많이 주었다. 무엇보다 아이의 감정을 공감하고 안타까워하며 슬퍼하는 교사의 마음이 먼저 갖추어지고 성장해야 함을 또다시 깨닫게 되었다. 이러한 대화를 통하여 교사는 아이들에게 진정한 신뢰를 받게 되며, 아이 또한 교사에게 신뢰를 받으며 하나의 인격적인 존재로 건강하게 성장하리라 여겨진다. 신뢰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한들 감사의 표현을 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 우리 삶의 모습인 듯 하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감사’에 대한 말을 강조하곤 한다. “감사란 내가 받은 것을 받았다고 말과 글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아이들에게 외치며, 머리와 가슴과 손과 발이 함께 하는 교육의 꿈과 희망을 가져보게 된다. 아이들로부터 감사의 편지를 받으며 교사인 나 또한 ‘내가 신뢰받고 있다’는 사실에 힘이 나고 용기를 얻게 됨을 부인할 수 없다. ‘하물며 아이들은 교사가 주는 신뢰에 얼마나 큰 용기와 자신감을 얻을까?’ 이러한 생각을 할 때마다 40여 명을 맡고 있는 교사로서의 책임감이 무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솔직히 아이들에게 내가 주는 사랑과 용기의 양에 비해 내가 아이들에게 받는 사랑과 용기의 양이 넘치도록 많음을 생각할 때, 감사할 뿐이다. 7월의 귀한 시간들이 흘러가고 있다. 무엇보다 교사로서의 신뢰가 바탕이 된 학급경영이 되고 있는가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1학기 성적표 종합, 수업 진도의 정리, 여름 방학 준비로 분주하게 다가온 7월의 시간 속에서 잃지 말아야 할 것은 교사로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본분과 그 아이들 각자와의 개인적 만남이며, 그 만남으로 더욱 견고하게 세워질 신뢰 안에서 2학기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고 결실을 바라보며 우리들이 붙잡고 가야 할 교육의 꿈과 희망인 것이다.
윤태정 | 서울 삼선초 교사 책장을 정리하다 해묵은 책 다섯 권을 발견하게 되었다. 조심스레 꺼내보니 ‘七言絶句’, ‘五言絶句’라 쓰여진 두보(杜甫)의 시선(詩選)으로 증조 할아버지께서 생전에 자주 읽으시던 것이다. 누렇게 빛이 바랜 책을 펼치니 메케한 향내가 콧속으로 폴폴 들어온다. 어릴 적 고향의 사랑채에서 맡던 바로 그 냄새가 방안 가득 쏟아져 나온다. 나는 파아란 하늘가에 단풍든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는 산골마을에서 태어났다. 가슴에 묻어나는 어머니의 젖내음마냥 고향은 늘 나를 설레게 한다. 고향의 하늘가에 그리운 얼굴 하나가 맴돈다. 증조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어린 내게 천자문을 가르치셨다. 사랑방에서 동네 또래들과 천자문을 목청 높여 읽었다. 할아버지는 꾀를 내지 않고 열심히 공부를 하면 벽장 깊숙한 곳에서 눈깔사탕을 꺼내주셨고, 놋주발에 담긴 따끈한 약식을 내주기도 하셨다. 천자문을 떼고 책거리를 할 때면 어머니들은 할아버지께 술과 고기를 대접해 드리고, 우리에게는 팥시루떡을 해주셨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떡을 들고 행여 고물이 떨어질세라 조심스럽게 먹던 어린 가슴에는 뿌듯한 기운이 몽실몽실 피어났다. 할아버지는 언제나 한시 읊기를 좋아하셨고, 가끔 구성진 시조창도 하셨다. 식구들은 낭랑한 목소리로 한시를 읊으시는 할아버지의 가르침으로 아침을 열었다. 나는 사랑채의 툇마루에 걸터앉아 뜻 모를 한시에 귀를 기울이곤 하였다. 긴 담뱃대를 화롯가에 탕탕 두드리는 소리도 경건하게만 들려왔다. 할아버지는 특별한 의술도 가지셨던 분이다. 독사에 물려 새파랗게 죽어 가는 사람에게 침 한 방과 약 한 첩으로 핏기를 돌게 하였고, 급체하여 숨이 넘어가는 사람도 침 한 방으로 살려내는 신통함을 보이셨다. 사랑채는 약을 짓거나 침을 맞는 사람들의 도란거리는 말소리로 늘 따뜻하기만 했다. 병이 낫게 된 사람들은 반드시 과일이나 술을 가지고 다시 찾아왔다. 의술이야 동의보감의 허준에 비길 바 아닐지라도 인술을 펼치는 할아버지의 자세만은 일맥상통하리라는 뿌듯함으로 할아버지를 존경했다. 가끔 머리를 감으실 때 망건을 풀어놓으신 모습이 참 신기했다. 여자처럼 길게 풀어진 머리를 위로 틀어 올리기 위해 거울을 보고 단장하실 때면 으레 옆에서 망건을 붙잡아 드려야 했다. 동네 아저씨로부터 할아버지의 상투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는데 단발령이 일어났을 때 마당으로 들이닥친 일본군을 불호령으로 내쫓으셨단다. 일본인이 나타날 적마다 매번 무섭게 호통을 쳐 돌려보내셨다니 과연 할아버지의 위엄은 대단하셨던 것 같다. 할아버지는 대단한 유교 사상을 갖고 계신 분이셨다. 아무리 추워도 곁불은 쬐지 않는다는 양반의 체통을 언제나 지키셨고, 아무리 바빠도 뛰지 않는다는 양반의 철칙을 몸소 그대로 지키셨던 분이다. 여름에도 의관을 바로 갖추고 한결같은 낯빛으로 군자의 도리에 대해 말씀하기를 좋아하셨다. “예로부터 군자는 싫고 좋음을 겉으로 내색하지 않는다고 했느니, 한결같은 낯빛을 지녀야 속 깊은 사람이라 할 수 있느니라.” 진정한 선비 정신이 무엇인지 몸소 실천하고 그것을 자랑으로 여기신 분이다. 하루는 행랑채에서 놀다가 아래채 식솔들의 점심 때가 되어 새참으로 나온 칼국수를 얻어먹게 되었다. 나중에 그 사실이 들통나 눈물이 쏙 빠지도록 종아리를 맞아야 했다. 영문도 모른 채 꾸중을 들었던 것이다. 나는 이제서야 겨우 그 뜻을 깨닫게 되었다. 비록 어린아이일지라도 체면을 소중히 지키면서 넙죽넙죽 함부로 받지 않는 법을 가르치신 것 같다. 어릴 적부터 자기의 분수를 중히 여기고 처지에 맞게 행동하라는 걱정이셨을 것이다. 체면없이 자신의 이익만 탐하여 아무 일에나 덤비는 사람들, 체통을 버리고 자신의 쾌락에만 들떠 있는 사람을 볼 때마다 그 때의 일이 떠오르곤 한다. [PAGE BREAK]약장을 정리하고 골패를 두는 것 외에는 오로지 책 읽기에만 전념하셨던 할아버지! 아흔이 넘어서도 담장을 넘길 정도로 목소리가 우렁차셨던 분이 세월의 섭리 앞에서는 꼼짝을 못하셨다. 언제까지나 꼿꼿한 자세로 살아가실 것만 같던 분께 불어닥친 노환은 혹독한 시련이었고, 매서운 바람이었다. 의관을 단정히 하고 목청 높여 한시를 읊던 분이 걷잡을 수 없이 기억력이 쇠퇴하여 주위 사람들을 안스럽게 하였다. 하루가 다르게 기력이 변해 가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서럽게 바라만 볼 뿐이었다. 할아버지께서 꽃상여를 타고 돌아올 수 없는 먼 길로 가시던 날, 허수아비는 논마다 서성대고 황금들녘도 숨을 죽였다. 커다란 소나무 밑 양지바른 자리에 하관식을 하고 내려오는데 그 맑던 하늘에 갑자기 천둥 번개가 요란했다. 갑자기 주룩주룩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좋은 길 가시는 거라며, 생전에 그렇게 착하게 사셨는데 당연한 일이라며 한 마디씩 거들었다. 생전에 쓰시던 유품들이 안마당으로 수북하게 쌓였다. 수 십 년을 함께 했던 닳아빠진 골패갑과 담뱃대, 겨울밤 훈기를 돌게 하던 화로, 밤늦도록 불 밝히던 등잔, 조그만 놋요강, 따끈한 약식을 담아 두던 놋주발, 셀 수도 없이 많은 한문 책, 때묻은 약장, 얼룩덜룩 찌든 병풍. 그 숱한 것들 중 유독 나의 시선을 잡아끈 것이 바로 이 책이었다. 친지들이 골동품이다 장식품이다 하여 챙겨가고 난 후 책더미를 뒤지다 유난히 낡고 허름한 두보의 시선을 손에 넣게 된 것이다. 할아버지의 기상이 담긴 이 책으로나마 그 분의 추억을 간직할 수 있다니 얼마나 다행한 일이랴. 마음에 우후죽순처럼 자라나는 욕심으로 숨이 차 헐떡이는 지금의 내 모습을 보신다면 뭐라 하실까. 살기에 급급해지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양반 의식을 고집하시던 할아버지를 떠올리며 반성하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케케묵어 얼룩덜룩한 책을 보니 할아버지를 대한 듯 숙연해진다. 쩌렁쩌렁 담장을 넘기시던 그 목소리가 책갈피 사이사이로 들려오는 듯하다. 이 책은 앞만 보고 달려가는 내 삶을 차분하게 다독여 주는 그분의 숨결이다. 살기에 급급하여 정신없이 뛰어가는 나 자신을 향하여 태연한 발걸음 하라는 그 분의 소중한 말씀이다.
천세영 | 충남대 교수·교육학 1. 지방대학 위기의 정체 지방대학 위기는 지방대학경영자의 위기와 지방대학 학생의 위기가 합쳐진 현상이다. 지방대학의 위기가 곧 지방대학생의 위기라고 할 수도 있으나 꼭 그렇지 않은 측면도 있다. 그동안 지방대학의 위기는 오히려 지방대학경영자의 위기 측면이 더 부각되어 온 경향이 많았다. 만약 경영자의 입장이 아니라 정작 지방대학의 주체라고 할 수 있는 지방대학생의 입장에서 지방대학의 위기를 다시 생각해보면 사태는 제법 달라진다. 오히려 지방대학의 위기는 경영자의 입장보다는 학생의 입장을 우선 고려하는 해법이 필요할 것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지방대학의 위기 해소 해법을 찾아나가는 첩경으로서 지방대학생의 입장에서 문제를 먼저 인식하는 일부터 시작하고자 한다. 그것은 ‘서러운 지방대학생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들어보는 일이며, 그 ‘서러움’을 달래주는 방법을 생각해보는 일이다. 2. 서러운 지방대학생 이야기 지방대학생은 서럽다. 여러 가지로 서럽다. 서러운 것을 열거할라치면 이루 헤아릴 수 없겠지만 세 가지만 들어보기로 한다. 지방대학생들은 화가 나고 슬프고 속은 기분이 자꾸만 든다고 한다. 우선 지방대학생들은 화난다. “공부도 못 하던 같은 반 친구들 중에 ‘서울대학(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한 애들을 보면 화가 난다. 나도 서울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성적이 분명히 되었지만 난 서울대학보다는 지방대학을 택했다.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우선 서울대학에 진학하려면 돈이 정말 많이 든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돈이 들 만큼 좋은 대학도 아닌 것이 서울대학이다. 지방대학의 값어치가 돈에 비하면 훨씬 좋은 편이다. 좋은 대학과 나쁜 대학에 가고 못 가는 것은 분명히 공부를 얼마나 열심히 하고 안 했는가에 의해서만 결정된다고 학교선생님들께 들었고 나도 그렇게 믿었다. 그런데 내가 공부할 때 놀기만 하고 성적도 나보단 못한 친구들이 무슨 이유인지 서울대학에 진학을 하고 나면 사정이 달라진다. 어느 새인가 그 친구들은 나에게 와서 뽐내기 시작하고, 뽐내다 지치면 나를 무시하기 시작한다. 어느 새인가 나는 그 친구보다 공부 못한 아이가 되어버린다.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한다. 정말 화가 나는 일이다.”[PAGE BREAK]다음으로 지방대학생들은 슬프다. “가끔 서울에 가보면 정말 슬프다. 서울 대학생들은 대학만 다니는 것이 아니고 시내 영화관과 연극장, 오페라 극장과 멋진 카페를 드나들고 화려한 쇼핑가를 다닌다. 뿐만 아니라 중·고등학교때 공부하느라 한번도 못 가본 연예인 쇼에도 서울 대학생들은 쉽게 가고, 압구정동이나 청담동의 고급 레스토랑과 심지어는 길거리에서도 연예인들의 얼굴을 직접 볼 수 있다. 정말 부럽다. 그리고는 슬퍼진다. 대학에 가면 캠퍼스에서 멋과 낭만을 느끼고 훌륭한 교수님의 명강의를 듣는 일들에 대해 생각했는데 대학생활은 대학밖에 더 큰 것들이 있었던 사실은 몰랐던 것이다. 지방대학에도 훌륭한 교수가 있고 캠퍼스는 더 아름답기까지 한데 지방대학을 품고 있는 지방도시는 정말 서울에 비하면 보잘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왜 이렇게 슬퍼지는 걸까?” 끝으로 지방대학생들은 속았다. “그래 속은거다. 부모님께서 날 속였고 선생님께서 날 속였다. 세상이 날 속인 것이다. 물론 속은 나의 잘못이 가장 크지만 분명한 것은 속았다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라도 서울대학에 갔어야 했다. 엄마 아빠를 졸라서라도 가야 했고 선생님께 우겨서라도 가야 했고 재수를 해서라도 가야했다. 정말 속은 것이고 쉽게도 포기해 버린 나의 잘못이 정말 크다. 더구나 공부도 못하던 그 친구들이 이제 어엿한 서울 대학생들이 되고 4년이 지나 졸업할 때가 되면 어딘지 모르게 나보다 훌쩍 커버린 것을 볼 때 속았다는 생각은 현실이 되어 버린다. 그들은 그렇게 서울에서 풍요롭게 자신있게 대학생활을 보내고 보다 좋은 조건에서 나보다 좋은 직장을 찾아 나갈 것만 같은 나의 불안감은 어느덧 사회에 대한 배신감으로 자라나고 있음을 깨닫는다.” 이들 지방대학생들의 서러움을 어떻게 달래주어야 할까? 어떻게 보면 이야기는 비교적 간단하다. 공부 잘하는 학생들을 속이지 말고 모두 서울대학으로 진학시켜 주어야 한다. 돈이 모자라면 장학금을 지원해야 하고 숙소가 모자라면 기숙사를 지어주어야 한다. 예부터 사람은 나서 서울로 보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면 지방대학들이 다 망한다고 한다. 도대체 지방대학이 망할까 두려워 지방대학생들의 서러움을 보고만 있을 것인가? 그러면 지방대학을 모두 서울대학으로 만들어주어야 한다. 서울에 있는 좋은 연극장과 음악관과 멋진 식당들을 지방대학촌에 건설해 주어야 한다. 그러지도 못하면서 어줍잖은 지방대학살리기 정책들을 잊어 버릴만 하면 내뱉고는 금방 또 감추어버리는 속임수는 더 이상 쓰지 말아야 한다. 이제 꼭 짚어져야 할 몇 가지 정부 차원의 정책 어젠다를 생각해보자. 3. 지방대학들은 왜 서울 대학보다 못한가? 지방대학들은 서울 대학에 비해 정말 못한가? 많은 지방대학생들은 속았다고 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안 그래 보였는데 막상 입학하고 나면 그 차이가 실로 천양지차라는 것이다. 우선 지방대학의 현실부터 좀 짚어볼 필요가 있다.[PAGE BREAK]지방대학이 낙후되는 원인은 뭐니뭐니 해도 재정 능력의 부재에 있다. 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지방대학 위기의 원인은 수도권에 모든 인적·물적 자원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인식이 절대지배적이다. 이외에 교육부의 정책 잘못이나 자구노력 부족 등도 지적되고 있으나 지방의 자원부족이 가장 큰 이유임에는 분명하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지방대학의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수도권에 집중된 인적·물적 자원을 지방으로 이관하는 것이 당연한 논리적 귀결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는 논리적 함정이다. 말하자면 수도권에 집중된 인적·물적 자원이 지방으로 이관되면 자연히 지방대학 문제도 해결될 것이라는 순환론적 오류에 빠져 능동적 대책을 세워서 상황을 바꿔놓기보다는 수동적으로 기다릴 수밖에 없게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이제 논리를 뒤엎어야 한다. 즉, 지방대학의 위기가 인적·물적 자원의 수도권 집중을 야기하는 원인이라는 인식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지방대학을 살리지 않고는 이와 같은 집중은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해야 하며, 보다 적극적으로 지방대학을 살림으로써 새 정부가 지향하고 있는 국가의 균형적 발전을 이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제 생각을 바꾸어서 지방대학의 교육과 연구시설이 미비했기 때문에 지방대학의 위기가 가속되었고 그 결과 다시 수도권집중이라는 모순을 낳았다고 보아야 한다. 다음으로 지방대학의 미비한 교육과 연구여건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에게는 지방대학만이 안고 있는 재정문제에 대한 생생하고 정확한 정보 자체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나라 대학이 안고 있는 재정의 전체적 구조로부터 추정해낼 수밖에 없다. 물론 이와 같이 전체 대학의 상황을 지방대학의 것으로 환원하여 볼 수 있는가의 문제가 남는다. 그런데 이는 두 가지 점에서 반박할 수 있다. 첫째 지방대학의 상황은 전국 평균에 비해 최소한 더 낫지는 않다는 점이다. 민관 연구비 배정이나 각종 정부재정지원금, 특히 최근에 부쩍 늘어난 각종 대학평가에 연계된 재정지원사업들에 있어서도 지방대학은 서울대학에 비해 늘 순위에서 밀려나 있다. 둘째로 수도권의 대학이나 지방대학의 사정이나 다 똑 같은데 새삼스럽게 지방대학만 문제삼을 것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그러나 대학은 외딴 섬이 아니다. 즉 대학의 교육과 연구 여건은 단순히 대학 캠퍼스 내에 국한되지 않고 지역사회의 인적, 물적, 문화적인 여건과 자원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즉 수도권의 대학들은 자체 캠퍼스 내에서 해결되지 못하는 각종 교육 및 여건들을 수도권에 온통 집중된 사회 인프라를 충분히 동원할 수 있으나, 지방의 경우는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따라서 우리 나라 대학의 전체 수준으로부터 훨씬 아래에 놓여 있다고 추정되는 현장이 지방대학이라는 가설은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우선 우리는 우리 나라의 고등교육 재정이 선진제국의 그것에 비해 매우 취약하다는 것을 금방 알아볼 수 있다. 총 GDP 중 고등교육비의 비중은 고작 0.4% 수준으로 OECD 평균 1%의 절반에 불과하고 미국의 1.4%에 비하면 3분의 1에도 못 미친다. 또한 총교육비 중에서 차지하고 있는 고등교육재정의 비중도 OECD 평균이 20%를 상회하고 있지만 우리는 10% 미만에 불과한 수준이다. 결국 한국의 고등교육재정 전체 구조 자체가 원천적으로 취약한 상태에서 국내적으로는 수도권 대학들에 다시 치이는 현상이 우리의 지방대학이 안고 있는 현실이다.[PAGE BREAK]대학의 교육 및 연구 여건을 위한 재정은 어디로부터 와야 하는가? 또 그 동안 우리 나라의 대학들은 이러한 재정을 어떻게 확보하여 왔는가? 그리고 대학들은 돈을 어디에 어떻게 쓰고 있는가? 대학의 재정구조를 형태별·설립별로 살펴 본 결과 약간씩 차이는 있지만 요컨대 대학의 재원은 75% 이상 학생들의 등록금에 의존하고 있으며, 절반 이상의 돈을 교직원 인건비에 지출하고 있다. 물론 국립대학의 경우는 등록금 의존도가 45%로서 비교적 덜한 편이나 사립 비중이 훨씬 큰 전문대학의 경우는 거의 90%를 등록금에 의존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으로부터 추론되는 우리 나라 대학들의 재정구조상의 문제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지나치게 높은 학생등록금 의존도는 대학재원의 불안정성을 의미한다. 참고로 미국의 공립대학들은 학생등록금 의존도가 20% 미만이며 사립대학의 경우도 40% 수준이라고 한다. 나머지는 정부지원금이 약 1/3, 그리고 R&D 재원이 1/3정도로 구성된다. 이렇게 하여 미국대학들은 학생수의 증감에 의해 대학재정이 휘청거리는 일은 없다. 그러나 우리 대학들은 학생수의 감소가 곧바로 대학의 위기로 연결될 수 밖에 없는 구조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 국립대학의 경우 상대적으로 최근의 학생감소 위기를 견뎌내고 있다는 사실이 바로 이를 증명하고 있으며, 학생모집에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고 있는 지방 사립대학들의 상황이 얼마나 심각할지는 불문곡지의 사실인 것이다. 둘째 우리의 지방대학들은 틀림없이 재원의 대부분을 인건비에 쓰고 나면 실제로 교육 및 연구여건의 개선에 쓸 돈은 거의 없게 마련이고, 다시 대학의 경쟁력 악화와 연이은 학생 모집난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에 빠지고 있을 것이다는 점이다. 4. 지방대학생들의 서러움을 달래주는 길 지방대학생들의 서러움은 달래주어야 한다. 다시 한번 지방대학생들이 왜 서러워 했는지 생각해보자. 다른 말로 하면 지방대학들이 왜 죽어가고 있는가 다시 생각해보자. 그것은 이미 앞에서 논의한 바대로 수도권에 집중된 사회적 인프라 때문이다. 지방대학을 졸업해도 취업할 곳이 없는 상황에서 지방대학에게만 자구책을 구하라는 것은 논리 모순인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수도권에 집중된 대학들은 지방의 인재와 교육재원을 다시 수도권으로 빨아들이는 흡착기제로 확립되어 버린 지 오래인 것이다. 만약 이러한 현상이 지속되면 어떻게 될 것인가? 무엇보다도 지방의 가난한 천재들이 갈 곳을 잃게 되고 급기야는 아까운 재능을 썩혀 버림으로써 궁극에는 국가적 자원을 손실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물론 지방대학의 소멸과 수도권에의 종속은 지방의 소멸과 수도권 종속을 그 동안도 초래해 왔듯이 더욱 가속화시킬 것이며 급기야는 수도권의 폭발로 인한 국가적 재난을 초래하고야 말 것이다. 이제야말로 보다 구체적인 방책을 생각해야 할 때다. 듣기 좋은 말의 나열이 아닌 자기 희생을 전제한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몇 가지 대책을 생각해보자.[PAGE BREAK]첫째는 무엇보다도 새 정부가 국민에게 약속한 GDP 6%의 공교육재정을 확보하고 그로 인해 추가로 확보된 재원 중의 최소한 1/3을 지방대학에 투자한다는 정책 방향을 정립하고 국민 앞에 약속해야 할 것이다. 고등교육교부금법의 책정이나 지방대학교부금법의 책정 과제는 이런 측면에서 바로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올해 추진되고 있는 누리(NURI) 사업은 일견 획기적인 지방대학발전의 촉진제가 될 것 같지만 그 내용을 알고 보면 그 전망이 썩 밝아보이지는 않는다. 우선 누리 사업에 대해 심각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필요성에 따라 긴급 진단과제로서 말미에 누리 사업의 기대와 우려에 대해 보론적으로 재검토해 보고자 한다. 둘째는 지방의 국립대학 및 사립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들이 부담하는 등록금은 원칙적으로 현 수준에서 동결하고, 그로 인한 대학의 재정 누실을 정부가 부담하는 방식을 택해야 한다. 이 경우 정부는 대학에 대한 직접 재정지원 방식을 택할 수도 있을 것이며 지방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들에 대한 대폭적인 장학금 지원 방식을 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수도권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지방의 경우 대학의 등록금 인상은 이제는 더 이상 불가능하다. 사립대학의 등록금 부담을 둘러싼 분쟁이 해마다 되풀이되고 있으며, 국민가계의 경제규모를 생각해볼 때 현재의 등록금 규모도 이미 한도를 넘어서고 있다. 셋째로 대학간 통폐합 모델을 신중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미래에는 외국 자본들이 대학 부문으로 들어오고야 말 것이며, 그 대상은 수도권이 아니라 지방이며, 당연히 지방대학들은 또 한번 외국 대학들과의 싸움터에 나서야만 한다. 그러므로 하루 속히 대외적 경쟁력을 갖추어야 할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대학간 협력라인을 구축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방대학간 또는 수도권대학과의 M&A 모델도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넷째는 지방대학생들을 위한 대단위 기숙사 단지를 조성하는 일이다. 지방대학생들의 학비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수도권 학생들 못지 않게 숙식경비이다. 그러므로 정부가 나서서 대단위 기숙사 단지를 조성하고 저렴한 값으로 학생들의 숙식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은 매우 효과적인 대책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기숙사 단지 조성을 위해서는 반드시 정부 재정만 투자하기보다는 민간 재원도 적극적으로 유치하는 방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며, 이러한 투자 사업은 건설투자 부양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5. 누리사업에 대한 보론적 긴급 진단 2004년에 이르러 누리사업이 지방대학생들의 서러움을 일거에 덜어줄 만병통치약처럼 선전이 되고 있다. 과연 그럴까? ‘약장사’의 감언이설에 속지 않기 위해서는 얘기를 잘 들어보아야 한다. 누리사업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당초 참여정부는 지방대학발전을 중요한 선거공약으로 선언하였다. 이 과제는 국가균형발전의 맥락 안에서 취급되었고, 2003~2004년 내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지방대학들은 지역혁신체계(RIS: Regional Innovation System)로 이름 붙여진 지방과 대학의 공동운명체적 발전에 신경을 곤두세워 왔다.[PAGE BREAK]그렇지만 정부 각 부처간에 서로 다른 생각들이 부딪히면서 일년 내내 이렇다 할 성과가 나타나지는 않았고 2004년초에 이르러서야 교육인적자원부가 주도하는 독자적인 사업인 NURI(New University for Regional Innovation)가 탄생하였다. 그리고 최근 각 지방대학들은 총 2200억여 원 규모의 사업비를 나눠 갖기 위해 피나는 경쟁을 하고 있다. 지난 국민의 정부 초기에는 BK21이라는 사업 때문에 온 나라 대학들이 한 바탕 홍역을 치뤘는데 이번에는 누리 사업으로 또 한 번의 홍역을 치루고 있다. 두 사업 모두 우리 나라의 대학경쟁력을 제고하고 나아가 21세기 국가번영의 기틀을 놓는데 기여할 것으로 믿으면서도 어딘지 모를 찜찜함이 자꾸만 뒷꼭지를 잡아챈다. 아마도 bk21사업이 초기부터 있었던 비판들을 겸허히 받아들이지 않았던 일과 이제 5년이 지나가는 마당에 애초의 화려했던 목표들이 조금씩 그 빛을 잃어가는 것을 보면서 갖게 되는 기우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다시 한번 의미를 짚어 보고 만에 하나 있을 또 하나의 국가자원 낭비를 예방하는 데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자 한다. 첫째 누리 사업은 그나마 부족한 정부의 고등교육예산을 매우 비합리적으로 배분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당초 누리 사업은 범정부적인 RIS 틀 내에서 교육예산을 넘어서는 대규모의 재정투자가 기대되었다. 그러나 현재 상태는 교육부가 마련한 2200억원 규모의 재정만 투입되고 있을 뿐이다. 실상 이 재원은 그동안 이러저러한 모습으로 투입되어 오던 고등교육관련 예산들을 한데로 묶고 나서 상징적 수준의 추가 투자만이 합쳐진 것일 뿐이다. 누리 사업은 기존 사업들의 희생을 전제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관점에 따라서는 그 동안 비효율적으로 투자되던 재원을 재배분하는 일이라고 할 수도 있으나 사업이 추진되어 가고 있는 모습을 살펴보면 꼭 그렇지는 않다. 신문지상에 보도되고 있는 누리 사업 신청사례들을 보면 대체로 산업현장과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학문 분야들, 예컨대 생명공학이나 나노공학 등의 공업관련 분야와 벤처경영학 등에 집중되어 있다. 이와 같은 응용학 분야가 인문학이나 기초과학 등으로 배분될 수 있었던 재정을 독식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누리 사업은 지방대학을 직업훈련기관으로 전락시킬 위험성을 안고 있다. 대학은 교육기관이다. 그런데 누리 사업의 최대 강조점은 지역산업현장에 필요한 인력양성이다. 말하자면 대학은 이제 지역 기업들이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인력을 양성하지 않는 한 재정지원도 받지 못하고 경쟁력을 잃어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대학은 교육하는 곳이며 교육은 임시로 써먹을 수 있는 기술자 양성을 목표로 하기보다는 기초가 튼튼한 인재를 기르는 일이다. 물론 기술자양성도 필요하며 우리 나라 대학의 교육프로그램이 일부 기업과 사회에서 요구하는 인재를 길러내는 데 부적합한 측면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일에 필요한 재정은 교육예산으로 지원되기보다는 산업자원부나 재정경제부 등과 같은 보다 직접적인 목적을 가진 정부 부처의 노력과 예산으로 지원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리 사업은 기초학문을 육성하고 폭넓은 안목과 인격을 갖춘 인재를 기르는 일에 쓸 돈을 모두 직업기술훈련에 돌려쓰는 우를 범하고 있다.[PAGE BREAK]누리 사업은 이미 활시위를 떠났다. 그러나 교육인적자원부는 심각하게 재점검해야 한다. 보다 더 큰 재원과 규모로 RIS가 가동되고 그 안에서 교육인적자원부는 지방대학들이 교육기관 고유의 역할을 훼손 받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동참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현재처럼 그나마 작디작은 교육예산을 ‘누리’에 톨톨 털어주고 누리에 참여하지 못한 학문 분야와 대학들은 맨손만 빨아먹게 하는 화를 정말 경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