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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초등학교에서 학생을 대상으로 교권보호 연수를 진행한 어떤 강사의 실제 이야기이다. 한창 연수를 진행하던 중에 갑자기 한 학생이 질문이 있다며 손을 번쩍 들었다. 그리고는 불쾌하다는 듯이 강사에게 물었다. “선생님, 매번 저희한테 교권연수를 하시는데, 선생님들에게 학생인권에 대해서도 연수해요?” 강사는 요즘 아이들 참 당돌하다고 느끼면서도 나쁘게만 볼 수 없었다고 한다. 교권과 학생인권은 모두 중요하고, 상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행복한 교육공동체를 위해 학생은 교권을, 교원은 학생인권을 존중해야 한다. 몇 가지 사례를 통해 학교에서의 학생인권문제에 대해 살펴본다. 먼저 교사의 직접체벌 사례이다. 교사의 직접체벌 사례 수업 종이 울렸는데도 학생들이 들어오지 않았다. 늘 수업에 2~3분씩 늦는 학생들이었다. 이번엔 따끔하게 혼을 내야겠다고 생각한 선생님은 늦게 들어온 학생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호통을 치며, 학생들의 팔을 멍이 들 정도로 세게 꼬집었다. 체벌은 교육을 목적으로 학생의 신체에 고통을 주는 것이다. 체벌에는 도구나 신체 등으로 학생의 신체에 직접 고통을 주는 ‘직접체벌’과 벌을 주어 학생의 신체에 고통을 주는 ‘간접체벌’로 나눌 수 있다. ● 법령에 명시적으로 금지된 직접체벌 학교에서의 직접체벌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서 아래와 같이 명시적으로 금하고 있다. ■ 현행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31조(학생의 징계 등) ⑧학교의 장은 법 제18조 제1항 본문에 따라 지도를 할 때에는 학칙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훈육·훈계 등의 방법으로 하되, 도구·신체 등을 이용하여 학생의 신체에 고통을 가하는 방법을 사용해서는 아니 된다. 예전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서는 ‘교육상 불가피한 경우’에 체벌도 가능했다. 그러나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이 2011년 개정되면서 이러한 예외 부분이 삭제되었고, 지금은 예외 없이 직접체벌이 금지되고 있다. ● 직접체벌·욕설 등의 지도행위가 정당행위로 인정되기 위한 요건 금지된 지도행위도 정당행위로 인정될 수 있을까? 과거 대법원은 직접체벌·욕설 등의 지도행위를 정당행위로 인정할 수 있는 경우를 아래와 같이 제시한 바 있다. ■ 대법원 2001도5380 판결 등 학생에 대한 폭행·욕설에 해당하는 지도행위는 ①학생의 잘못된 언행을 교정하려는 목적에서 나온 것이었으며 ②다른 교육적 수단으로는 교정이 불가능하였던 경우로서 ③그 방법과 정도에서 사회통념상 용인될 수 있을 만한 객관적 타당성을 갖추었던 경우에만 법령에 의한 정당행위로 볼 수 있다. 이에 따르면 직접체벌도 위 3가지 요건을 갖춘 경우에는 정당행위로 인정될 수 있다. 그러나 각 요건을 매우 엄격하게 심리하기 때문에 실제 사례에서 정당행위가 인정되는 경우는 드물다. 다음은 교사의 간접체벌 사례이다. 교사의 간접체벌 사례 [사례] 새학년을 맞아 당삼장 선생님은 학생들과 약속을 했다. 과제를 하지 않거나 수업 중 자는 학생은 팔굽혀 펴기를 최초 50회부터 위반 차수에 따라 10회씩 늘려하기로 했다. 모든 학생들이 동의하므로 선생님은 이에 따라 지도행위를 했다. ● 견해가 대립하고 있는 간접체벌 학교에서 팔굽혀 펴기·손들기·오리걸음·엎드려뻗쳐 등과 같은 간접체벌이 허용되는가? 이에 대한 견해가 대립하면서 위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규정에 대해서도 각기 다른 해석을 낳고 있다. 먼저 허용론자들은 위 규정에서 학칙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훈육·훈계 등의 지도행위를 할 수 있지만, 도구·신체 등을 이용한 직접체벌만을 특정하여 금지하고 있으므로 학칙으로 정하는 바에 따른 간접체벌은 허용된 지도행위라고 본다. 반면 금지론자들은 위 규정은 간접체벌의 허용 근거가 될 수 없으며, 우리나라가 비준한 「유엔아동권리협약」에 의하면 간접체벌이 금지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한편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시·도에서는 조례에서 직접·간접 구별 없이 모든 체벌을 금지하고 있다. 이에 대해 허용론자들은 학생인권조례에 간접체벌을 금지하는 부분은 간접체벌을 허용하는 위 법령에 반하므로 규범으로서 효력이 없다고 본다. 반면 금지론자들은 이 부분 역시 법령 안에서의 자치법규로서 그 효력을 인정하고 있다. 논의를 정리하면 먼저 법령상 간접체벌이 명시적으로 금지되고 있지 않다. 하지만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시·도에서는 조례의 효력이 없다고 확인될 때까지는 간접체벌이 금지되어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 반면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지 않은 시·도에서는 학칙에 따라 이뤄지는 간접체벌은 사실상 허용되어왔다. 다만 주의할 것은 이때에도 아동의 신체에 손상을 주거나 신체건강 및 발달을 해치는 간접체벌을 주어서는 안 될 것이며, 만약 그렇게 된다면 아동학대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특히 아동복지권은 아동 본인 내지 법정대리인의 처분 승낙의 대상이 아니라고 본 사례(울산지방법원 2019. 6. 14. 선고 2019노255 판결)가 있으므로 학생이나 보호자가 간접체벌에 동의하였다고 하더라도 학생의 신체에 손상을 주거나 건강·발달을 해치는 과도한 간접체벌을 주어서는 안 될 것이다. ●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양심의 자유 [사례] 선생님의 지도에 화가 난 학생이 선생님 앞에서 의자를 던져 공공기물을 파손시키는 일이 발생했다. 사안이 발생하자 학교는 학생이 선생님 수업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고, 그 시간에 교무실에서 선생님과 반 학생들에게 사과하는 글을 작성토록 강제했다. 모든 국민은 헌법상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 여기서 보호되는 양심은 ‘어떤 일의 옳고 그름을 두고 그렇게 행동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인격적인 존재 가치가 파멸되고 말 것이라는 절박한 마음의 소리’이다. 그것이 다수의 사고나 가치관에 부합하는지, 바람직한 가치체계에 기초하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양심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과하고 싶지 않은 학생에게 사과를 강제한다면 비록 교육적으로 바람직하다 할지라도 양심의 자유에 반할 소지가 크다. 일찍이 헌법재판소도 사죄광고에 대하여 ‘사죄할 의사가 없음에도 사죄를 강요하는 것은 인간 양심의 왜곡·굴절이고 겉과 속이 다른 이중인격 형성을 강요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현행 「학교폭력예방법」 제17조 제11항에서도 ‘피해학생에 대한 서면사과(1호)’조치는 다른 조치와 달리 가해학생이 이를 거부하거나 기피하더라도 추가 선도조치를 할 수 있는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다. 양심의 자유를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구분하여 사과를 강제하지 않고 잘못한 학생에게 사과하는 법을 지도하거나 사과를 권고하는 것은 개인의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다. 양심의 자유 침해는 강제성이 있어서 인간 내면의 윤리적 확신과 이에 반하는 외부적 요구가 서로 회피할 수 없이 충돌하는 경우에 발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과를 지도하고 권고하는데 강제성을 두지 않는다면, 적법한 지도행위에 해당하며 양심의 자유 침해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6월 1일 의병의 날부터 6일 현충일, 25일 6.25전쟁일, 29일 제2연평해전 등 나라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던진 수많은 영웅들 덕분에 지금의 우리가 있다. 다소 형식적이라고 할지라도, 1년에 한 번일지라도 학생들에게 그 의미를 되새겨주는 일은 중요하다. 또한 6월 1일은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일이다. 민주주의의 꽃으로 불리는 선거일을 맞아 4.19혁명, 5.18 민주화운동을 거쳐 민주화 열망이 최고조에 올랐던 6월 민주항쟁과 사실상 군사정권의 항복선언인 6.29선언 등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 ● 의병의 날(6월 1일) 드라마 미스터션샤인에는 의병 활약상이 곳곳에 드러난다. 특히 영국 신문기자 맥켄지의 조선의 비극 속 “우리는 어차피 싸우다가 죽게 되겠지요. 그러나 괜찮습니다. 일본의 노예가 되어 사느니 자유민으로 죽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라는 의병의 외침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쉽지 않은 길을 택했던 의병의 정신을 오롯이 보여주었다. 의병은 임진왜란 당시 처음 일어났으며, 의병을 가장 먼저 일으킨 인물은 곽재우였다. 2010년 의병의 역사적 가치를 일깨워 애국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제정된 ‘의병의 날’이 6월 1일이 된 것도 곽재우가 최초로 의병을 일으킨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 환경의 날(6월 5일) 세계 습지의 날(2월 2일), 물의 날(3월 22일), 지구의 날(4월 22일), 바다의 날(5월 31일), 세계 환경의 날(6월 5일), 사막화 방지의 날(6월 17일), 오존층 보호의 날(9월 16일), 생물종다양성 보존의 날(12월 29일) 등 환경 관련 기념일은 매우 많다. 그중 환경의 날은 1972년, ‘유엔인간환경회의’에서 국제사회가 지구환경보전을 위해 공동노력을 다짐하며 제정한 날이다. 환경의 날에는 전국적으로 다양한 기관에서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지며, 학교에서도 환경보호 실천을 위한 각종 행사가 진행된다. ● 현충일(6월 6일) 현충일은 국경일이 아니다. 경사스러운 날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로기와 차량기는 절대 게양하지 않으며, 태극기의 세로 길이만큼 내려서 ‘조기’로 게양한다. 또한 오전 10시 1분간 애도의 뜻을 담아 묵념을 진행한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잃은 분들은 비단 과거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금도 전국 각지에서 산불을 끄다가, 범인을 검거하다가, 국가를 위한 작전수행을 하며 자신을 희생하시는 분들이 많다. 1년에 하루, 1분만이라도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을 위해 잠깐 시간을 내어 감사함을 표현하도록 지도하는 것은 가장 작지만 값진 나라사랑 실천일 것이다. ● 망종(6월 6일) 하지(6월 21일) 까끄라기가 있는 씨앗들이 영글어 수확을 해도 되는 때가 망종(芒種)이다. 보리·밀뿐 아니라 까끄라기가 있는 잡초들도 씨앗이 익어간다. 매실을 따고, 꽃이 진 자리마다 작은 열매가 매달리는 시기이기도 하다. ‘발등에 오줌 싼다’는 속담이 있을 만큼 일 년 중 가장 바쁜 시기이기도 했다. 하지(夏至)는 일 년 중 낮의 길이가 가장 긴 날이다. 서울에서는 4시 40분쯤부터 밝아져 5시 11분쯤에 해가 뜨고, 오후 7시 57분쯤에 해가 진다. 날이 맑을 경우 8시 20분쯤까지 밝을 정도로 낮 시간은 일 년 중 가장 길어져 무려 14시간 35분이나 된다. 하지가 지나면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되는데, 만약 하지가 지날 때까지 비가 내리지 않으면 기우제(祈雨祭)를 지냈다. ● 6.10민주항쟁(6월 10일) / 6.29선언(6월 29일) 1987년을 거치며 성장한 사람은 안다. 그 해, 얼마나 민주화 열기가 뜨거웠는지. 6.10민주항쟁은 정치·사회·문화적으로 민주주의의 이념과 제도가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는 결정적 계기가 된,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에서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항쟁이다. 박종철 고문치사, 4.13호헌조치, 이한열 열사 사망 사건 등이 중요한 계기로 작용하면서 시작된 6.10민주항쟁은 20일간 매일매일 계속되었고, 마침내 6월 29일 이른바 ‘6.29선언’을 발표하면서 군사 독재정권은 항복하였다. ● 세계아동노동반대의 날(6월 12일) 모든 아동노동이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노동으로 어린이들이 자신의 권리를 잃는다면, 즉 노동으로 인해 학교에서 교육받을 기회와 즐거운 어린 시절을 보낼 기회를 박탈당한다면 문제가 된다.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5세에서 17세의 어린이 중 약 1억 5천만 명의 어린이가 학교가 아닌 일터에 나갈 것으로 추정하며, 그중 서울시 전체 인구의 7배가 훌쩍 넘는 7천3백만 명 정도가 위험한 노동에 종사하며, 매년 약 2만 2천 명의 어린이가 일터에서 사망한다고 발표했다. 아이들의 노동은 카펫을 짜거나 축구공을 만드는 단순노동에서부터 마약밀매, 사금캐기, 매춘, 무력분쟁 등 온갖 노동에 투입된다. 당장 생계를 위해 노동을 그만둘 수 없는 아이들, 이 아이들이 일터에서 벗어나 학교로 돌아갈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보자. ● 노인학대 예방의 날(6월 15일) 노인학대 예방의 날은 올해로 여섯 번째를 맞이하는, 제정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기념일이다. 그만큼 어르신들의 방치와 학대문제가 심각해졌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노인학대 가해자 중 62%는 자녀와 배우자 등 가족이다(보건복지부 통계자료). 때문에 피해자(노인)는 처벌을 원치 않는 경우가 많아 실제로 신고 접수된 사례는 10% 정도밖에 안 된다. ‘노인공경’이라는 말은 교과서 속에나 나오는 말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학생 사이에서 ‘틀딱’이라는 ‘노인혐오’ 신조어가 등장한지도 오래전이다. 세대 간의 갈등은 있을 수 있지만, 이로 인한 혐오문화가 형성되는 것은 위험하다. 노인학대·아동학대·학교폭력·가정폭력·성폭력 등 모든 학대와 폭력은 한 사람의 삶을 서서히 망가뜨린다. 따라서 학생들에게 인권교육의 중점을 ‘나’의 인권중심에서 ‘타인’과 ‘상호’ 인권존중으로 전환하여 계기교육을 할 필요가 있다. ● 세계 사막화 방지의 날(6월 17일) 해마다 약 600만 헥타르(ha)에 달하는 면적의 땅이 메말라가고 있다. 과도한 경작 및 방목, 산림 벌채, 환경오염으로 건조 지역의 숲과 초지가 사라지고, 강과 호수가 마르며 메마른 사막으로 바뀌는 사막화 현상이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다. 사막화가 진행되면 메마른 토양으로 인한 경작지 감소로 농작물 생산량 감소, 물 부족 현상 및 물의 질 하락으로 각종 질병 야기, 모래바람의 양 증가로 황사 발생(각종 호흡기 질환 야기), 대기 불균형으로 인한 생태계 파괴 및 멸종위기종 증가, 환경 난민 증가 등의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 세계 난민의 날(6월 20일) 땅도, 권리도, 희망도 없는 사람들 난민. 난민들은 전쟁과 분쟁, 폭력과 인권 유린, 박해를 피해 고국과 집을 떠나 국경을 넘어야 한다. 난민들에게 국경을 넘는 일은 삶과 죽음의 문제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 2021년 11월 기준, 전 세계 난민은 8천 4백만 명 이상으로 추정되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4월 말 현재 540만 명의 난민이 추가되었다. 난민법 제정 10주년을 맞이하는 2022년은 뜻깊은 해다. 한국은 2012년 2월 10일 난민법이 제정되면서 1951년 유엔에서 채택된 ‘난민 지위에 관한 협약’의 국내 이행법을 만든 첫 아시아 국가가 됐다. 지난 5년간 우리나라의 난민 신청자는 총 5만 592명이였으며, 국민 79%는 정부가 미얀마 및 아프간 난민을 제한적으로라도 받아들이는 데 찬성했다. 학생들의 생각은 어떨까? 세계 난민의 날을 맞이하여 난민을 받아들여야 하는지, 거부해야 하는지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져보자. ● 6.25한국전쟁(6월 25일) 요즘 학생들에게 6.25한국전쟁은 어떤 의미일까? 최근 통일에 반대하는 비율도 늘고 있고, 북한문제에 관심이 없기도 하다. 어쩌면 당연할지 모르겠다. 분단은 너무 길어졌고, 북한 문제는 우리 일상과 괴리감이 커졌으며, 경제적 측면에서도 실익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쟁을 직접 겪은 세대가 아직 존재하고, 전쟁과 분단의 후유증 역시 계속되고 있다. 또한 러시아-우크라이나처럼 전쟁은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다. 따라서 6.25한국전쟁의 현재진행형 후유증을 살펴보며, 전쟁의 참혹함을 통해 평화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 보자. ● 철도의 날(6월 28일) 이 땅에 첫 기차가 달리기 시작한 지 120여 년이 지났다.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는 1899년 9월 18일 노량진에서 제물포를 오가던 경인선이었으며, 이후 오랜 시간 우리 산업과 문화, 역사를 이끄는 주역이자 배경으로 함께했다. 손기정 선수가 부산과 경성을 경유 독일의 베를린까지 이동한 수단이었으며, 한국전쟁 당시 열차지붕과 기관차 옆까지 빼곡히 수많은 피란민을 수송하는 중요임무를 수행하기도 했다. 철도의 날은 원래 최초의 철도가 개통되었던 1899년 9월 18일이었으나, 일제 잔재라는 비판에 따라 철도국이 설립된 1894년 6월 28일로 2018년에 개정되었다.
생활지도는 고통스럽다. ‘힘들다’는 표현으로는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담아낼 수 없다. 대부분 아이들은 상식선에서 행동하며 교사의 지도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만, 상식선을 넘는 몇몇 아이들은 교실분위기를 흐려놓으며, 교사들과 힘겨루기를 한다. ‘일당백’, ‘골칫덩어리’의 아이들은 수업시간에 잠이라도 자주면 고마울 지경이다. 지도를 한다고 말을 듣는 것도 아니고, 혼낸다고 무서워하지도 않는다. 왠지 기분 나쁘게 하는, 말을 먼저 걸기도 싫은, 차라리 학교에 오지 않았으면 좋을, 이 녀석들과 어떻게 일 년을 버텨야 할까? 6월, 서서히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이 녀석들과의 힘겨운 싸움을 시작해보자. 왜 이렇게 까지 되었을까? “나, ○○○ 담임이야.” 한 마디로 상황이 종료되는 반이 있다. 나도 일 년이면 2~3명씩 만난다. 선도위원회가 열리기 전, 상담실에 온 아이들은 잔뜩 날이 선 채 내 앞에 앉는다. ‘귀찮으니까, 빨리 해치웁시다’라는 표정으로 상담실 구석구석을 힐끔거릴 뿐,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는다. 나를 힘겹게 하는 ‘비자발 상담자’. 마음을 굳게 먹고 이야기를 시도한다. “넌, 왜 이렇게 까지 되었니? 언제부터 이랬니?” 다짜고짜 ‘훅’ 들어온 질문에 ‘뭐라는 거야?’라는 경계의 눈빛으로 나를 째려본다. 나 역시 ‘뭐, 어쩌라고’라는 눈빛으로 제압하며 맞선다. “아니, 아무 이유 없이 이렇게 되진 않았을 거잖아. 뭔가 이유가 있겠지. 그 이야기가 듣고 싶어서. 인성지도부에서도 아무 말 못 했잖아. 혼만 나고. 지금 해봐. 네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너의 이야기.” “얘기하면 뭐 달라져요?”라며 귀찮아하는 아이와 한동안 아무 말 없이 마주한다. 먼저 말을 할 때까지. 상담실에는 ‘비자발적’으로 왔지만, 이야기를 하는 것은 ‘자발적’이어야 한다. 그래야 진짜 이야기가 나온다. 정적을 깨고 아이가 묻는다. “상담 안 해요? 끝난 거예요? 가도 돼요?” “끝나긴, 시작도 안 했는데. 나는 네 얘기가 듣고 싶은데, 네가 말을 안 하니까, 기다리는 거지. 너, 나한테 잔소리 들으려고 여기 온 거 아니잖아? 뭐, 잔소리해줘? 그런 거 듣고 싶어?” 어이없다는 듯, 나를 힐끔 보고는 자기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안타깝고 안쓰러운, 외롭고 힘겨웠을, 두렵고 공포스러웠을, 분하고 억울했을 이야기들을. 이런저런 추가질문을 하면서 아이와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언제나 그렇듯, 원인제공자는 대부분 자녀에게 강압적·폭력적이거나 반대로 관심이 없는 부모님이다. 초등학교 3학년까지는 아직 어려서 어쩔 수 없이 집에 있어야 했지만, 초등학교 4학년만 되면 지긋지긋한 집을 떠나 ‘비슷한 상황’의 패거리들과 몰려다니며 놀다 보니, 그냥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다. 크게 죄책감도 없다. 아빠 혹은 엄마만 아니었다면 자기가 이렇게 되지 않았을 테니까. 여전히 자신을 힘들게 하는 부모님과 관계개선할 마음도 없다. 학교생활은 그럭저럭 괜찮다. 집보다 낫다. 적어도 학교에서는 자기를 만만하게 보면서 함부로 대하지는 않으니까. 아무렇게나 행동하고 규칙을 어기며, 마음대로 할 수 있어서 편하고 좋다. 자기보다 힘이 더 센 선생님 수업시간엔 잠을 자면 그만이고, 만만한 선생님 수업시간엔 멋대로 행동한다. 이렇게 사는 자신이 한심할 때도 있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망한 인생이고, 별로 신경 쓰는 사람도 없고, 내가 달라져봤자 나를 둘러싼 환경이 변하지 않는다면 아무 의미가 없으니까. 그래서 괜한 노력을 하기보다 그냥 이렇게 살기를 선택한다. 적어도 지금 현재는 즐겁고 재밌으니까. 아이들의 ‘문제행동’은 크게 기질적 반항행동과 우울성 반항행동 두 가지로 구분된다. 우울성 반항행동은 교육현장에서 지도가 가능하지만, 기질적 반항행동은 교육적 훈육으로 지도하고 상담을 한다고 해도 좋아질 가능성이 별로 없다. 과감하게 병원으로 연계하여 정확한 진단을 받고, 약물치료를 병행해야 또 다른 문제상황을 막을 수 있다. 청소년 비행도 심하면 ‘병’이다 기질적 반항은 뇌신경계의 원인으로 나타난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의 강압적 태도와 정서적 학대(방임 등) 등 고통스러운 상황에 장시간 노출되면 인간의 뇌는 ‘슬프고도 놀랍게도’ 스스로를 변형한다. 감정을 조절하는 뇌(변연계와 해마), 공포반응과 관련된 뇌(편도), 사회적인 인지나 보상과 관련된 뇌(안와전두피질)가 제대로 발달하지 않은 채, 전 생애에 걸쳐 후유증을 남긴다. 감정에 무감각해지고, 충동성이 강해지며, 걸핏하면 화를 내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난폭한 행동을 하는 등 비행으로 치닫는다. 특히 사춘기 시작과 맞물려 남학생은 10세~12세, 즉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시작해서 중학교 때 그 증상이 확연히 드러나며, 여학생은 14~16세에 나타나기 시작해서 고등학교 때까지 이어진다. 문제행동을 일으키는 학생 중엔 행동도 행동이지만, 인격자체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라는 의문을 품게 하는 학생도 있다. 약한 아이를 괴롭히며 즐거워하고, 충동적으로 폭력적 행동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며, 교사를 조롱하듯 대하며 성취감을 느끼는 행동은 사춘기 반항으로 보기에는 선을 넘는 행위이다. 그런 학생들은 이미 뇌기능이 변형된 기질적 반항일 가능성이 크다. 기질적 반항은 교육적 영역이 아니다. 아무리 훈화지도를 해도 별 소용이 없다. 기질적 반항은 적극적 치료를 필요로 한다. 뇌가 완전히 성숙되기 전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않으면 성인이 되었을 때 더 큰 사회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병원연계가 어렵다는 점이다. 본교의 경우, 선도위원회에서 학생의 병원치료 및 상담치료 3회 이상을 사회봉사와 함께 권고한다. 부모는 학생을 졸업시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병원에 가기 때문에 큰 마찰 없이 병원으로 연계시킬 수 있다. ‘선’ 넘는 아이들의 기준 기질적 반항인지 아닌지는 상담과정을 통해 어느 정도 판단할 수 있다. 그 기준을 살펴보자. 우선 초등학교 고학년, 즉 13세 이전부터 친구들과 어울려 놀다가 지각을 하거나 학교를 빼먹는 날도 빈번해진다. 밤늦게 집에 들어가거나, 자주 외박을 한다. 부모의 전화를 의도적으로 받지 않고, 귀가시간을 통제하는 부모와 마찰이 심해진다. 단순히 짜증을 내는 정도가 아니라 부모에게 욕설을 하거나 심한 경우 몸싸움까지 한다. 자해를 하는 등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시작한 나이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무단지각·무단조퇴·무단결석이 잦았고, 가출이 있었다면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두 번째 기준은 음주·거짓말·절도·폭력·성행위·규칙위반 등 공격적 성향의 비행을 반복하는 것이다. 약한 아이를 괴롭히고, 신체적 공격을 자주 하며, 금품을 요구하기도 한다. 어른에게 욕설을 하고, 반항적이며, 적대적이다. 특히 자기보다 작고 약한 사람에게 더욱 난폭하다. 마지막 기준은 충동적·습관적으로 나타내는 분노감정이다. 자신의 의도대로 되지 않거나 사람들이 자신을 무시하는 것 같을 때, 타인이 자신에게 뭔가 잘못했을 때 화를 참을 수 없어 분노를 폭발시킨다. 흔히 다혈질이라고 부르는 성격과 비슷해 보이지만, 완전히 다르다. 다혈질은 빨리빨리 하고 싶어서, 성급하고 인내심이 부족한, 하지만 그 흥분을 자신 혹은 주변 사람의 제지로 가라앉힐 수 있다. 하지만 ‘선’ 넘는 아이들은 통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화를 내며, 주변에 있는 물건을 집어던지거나, 상대방에게 거친 말·폭력을 쓰기도 한다. 통제가 가능하냐,가능하지 않느냐가 핵심이다. ‘마음 둘 곳 없어’ 방황하는 아이들 우울성 반항은 정서적 원인으로 나타난다. 마음속에 쌓인 감정의 응어리가 문제행동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이해받고 싶은 마음, 사랑받고 싶은 마음의 또 다른 형태인 셈이다. 그래서 이 아이들은 우울증을 함께 동반하는 경우가 많으며, 상담과정에서 나타난 부모와의 관계, 환경적 상황, 어린 시절 트라우마 등을 통해 현재 아이의 행동이 이해되곤 한다. 이 아이들은 비록 문제행동을 일으키고 있지만, 인격적 문제까지 나타나지는 않는다. 우울성 반항은 교육적 훈화와 상담으로 좋아질 수 있다(물론 우울 정도에 따라 병원으로 연계해야 할 때도 있다). 상담과정에서 살펴보면 아이들은 여러 이유로 부모와 골이 깊어지고 사이가 나빠지면서 중학교 무렵부터 친구들과 어울리기 시작한다. 부모님이 너무 합리적이고 냉정하거나, 엄격하고 무서운 경우, 부모의 감정과 기분에 따라 이랬다저랬다 일관되지 않게 대하는 경우, 부모가 자주 싸우거나 아이에게 분풀이하는 경우 등 집과 가정에 애착을 느끼지 못하고 멀어지게 된다. 마음 둘 곳이 없어서,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내일은 없는 것’처럼 오늘을 즐긴다. 그렇게라도 해야 그나마 슬프지 않으니까, 그 순간만큼이라도 고통을 잊을 수 있으니까. 안타깝고, 안쓰러운 마음이 생기는 아이들이다. 손 내밀어 줄, 이해하고 품어줄 수 있는 ‘어른’이 있다면, 충분히 성장할 수 있는 아이들이다.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살펴보자. 이탈된 경로를 다시 바로 잡는 방법 경로를 이탈하면 내비게이션이 ‘띵띵띵’하면서 새로운 경로를 찾아준다. 조금 돌아가기는 하지만 크게 문제되지는 않는다. 방황도 마찬가지다. ‘망한 것’이 아니라 ‘헤매고 있을 뿐’이다. 어떤 경우에는 그 경험이 오히려 긍정적 요소로 작용할 때도 있다. 아직 기회는 있다. 학교라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다시 길을 찾으면 된다. ● 지도방법❶ _ 상황을 이해하는 것과 행동을 이해하는 것은 다르다 상담뿐만 아니라 아이와의 대화 첫 시작은 언제나 그렇듯 이해와 인정이다. 지금 눈앞에 펼쳐진 잘못된 행동을 무조건 야단치기보다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왜 이렇게 까지 되었는지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상황이 이해된다고 행동까지 이해해서는 안 된다. 자칫 잘못된 행동을 합리화·정당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에서 무엇을 선택할지 결정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아이의 잘못된 행동 앞에서 부모는 폭력적인 행동을 선택했고, 부모의 잘못된 양육태도에 아이는 문제행동을 선택했을 뿐이다. 다음과 같이 상황과 행동을 따로 분리시켜 아이에게 전달하고, 문제행동 역시 자신이 선택한 하나의 방법이었음을 알려줘야 한다. “애쓰며 사느라 고생했네. 그렇게라도 안 했으면, 어찌 버텼을까? 살기 위해 선택한 너의 방법이었구나.” 행동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보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음을 인정해주는 것만큼 큰 위로는 없다. 위로받은 마음은 빗장을 푸는 훌륭한 열쇠가 된다. ● 지도방법❷ _ 부모를 이해하라고 하지 말자 아이들이 쏟아내는 주된 이야기는 부모님에 대한 원망·서운함·분노감 등이다. 가만히 듣고 있으면 부모님에게도 그럴 만한 사정이 있어 보인다. 먹고사느라 바빴을 것이고, 아이의 버릇을 고쳐야 했을 것이고, 아이가 말을 안 들었을 것이고, 오늘따라 언짢은 일이 많아서 감정주체가 안 되었을 것이고…. 수십, 수백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부모의 잘못된 행동까지 이해해야 할까? 개인적인 생각의 차이가 있겠지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부모님이라고 모든 행동을 이해할 필요는 없어. 이해하는 순간, 너도 그렇게 행동할지도 몰라. 잘못하면 때려도 되고, 기분 나쁘면 욕해도 되고, 그래도 되는 거잖아.” 나를 힘들게 하는 부모님을 이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마음의 짐을 덜게 해준다. 부모를 미워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을 ‘나쁜 아이’로 인식하며, ‘죄책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대신 부모님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알려주는 것은 필요하다. 먹고 사느라 바쁘셔서 널 돌볼 시간이 없으셨구나, 늦게 오고 거짓말하는 너의 버릇을 고치고 싶으셨나 보구나. 그래야 이후 부모와의 관계개선을 시도할 수 있다. ● 지도방법❸ _ 다른 결과를 가져올 다른 선택을 찾아보기 상황은 여전히 똑같더라도, 선택의 폭이 좁았던 ‘어렸을 때의 나’와 고등학생이 된 ‘지금의 나’는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다르다. 충분히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 “그땐 어려서 네가 할 수 있는 행동이 많지 않았겠지. 아마 너의 선택이 최선의 방법이었을 거야. 적어도 친구들과 즐거웠잖아. 지금은 어때?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아직도 부모님 핑계만 대며 너의 행동을 합리화한다면, 너는 앞으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할 거야. 어때? 지금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서둘러 진로상담을 계획한다. 늦지 않았다. 설령 늦었어도 괜찮다. 적어도 지금보다는 성장된 모습일 테니. “늦었지. 하지만 지금이 네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시간이야. 어때? 한번 해볼래?”
궁금해요! 위생학 (미야자키 미사코 지음, 블루무스어린이 펴냄, 192쪽, 1만4,000원) 환기는 왜 하는지, 떡에는 왜 곰팡이가 잘 피는지 등의 상식부터 해마다 유행하는 인플루엔자 등 감염병에 대한 궁금증까지 질문과 답을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인문·과학지식을 바탕으로 일상생활에서 건강을 지키기 위해 꼭 알아두고 실천해야 하는 상식과 실천 등을 배울 수 있다.
내 몸이 신호를 보내요 (나탈리아 맥과이어 지음, 우리학교 펴냄, 88쪽, 1만3,500원) 어떨 때 심장이 내려앉고, 얼굴이 화끈거릴까. 책은 상황에 따라 몸이 보내는 신호를 살펴보고, 정서에 대한 이해와 감정표현을 위한 방법들을 담았다. 아이들이 겪었을 일들을 마치 그림동화 한 편을 읽듯 보여주면서 스스로 표정과 몸짓을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감정을 정확하게 표현하도록 돕는다.
더 나은 내가 되기 (류쉬안 지음, 다연 펴냄, 184쪽, 1만5,000원) 하버드대 출신 심리학박사가 10대 청소년들이 겪는 크고 작은 문제들을 다룬다. 기억력·집중력·습관 등에 관한 심리학 연구결과를 통해 학습·친구 사귀기·부모님 대하기·감정 관리 등의 내용들을 살피고 있다. 또 발달심리학 관점에서 사춘기가 가져올 심리적 변화, 공감능력과 긍정의 중요성에 관해서도 들여다본다.
슬라브, 막이 오른다 (김주연 지음, 파롤앤 펴냄, 224쪽, 1만7,000원)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서 오랜 기간 풍파를 겪은 슬라브 문화권. 피와 눈물로 점철된 세월 속에서 홀로 핀 꽃 같은 이야기의 막이 오른다. 슬라브 지역은 수많은 노벨문학상 수상자와 20세기 연극과 영화계를 주름잡은 거장들을 배출해낸 만큼 이야기와 예술이 발달한 곳이기도 하다. 그 특유의 문화를 경험할 수 있다.
코이의 꿈을 찾아라 (김종갑 지음, 비비투 펴냄, 248쪽, 1만5,800원) 서울 해성국제컨벤션고등학교 교장인 저자가 교사에게 학급경영의 길잡이가 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 30여 년간 겪었던 학교현장의 사례들을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33가지 법칙에 적용했다. 어항 크기에 따라 비례 성장하는 물고기 ‘코이’의 법칙을 들어 교사들의 관심이 학생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 통찰이 담겼다.
압구정에는 다 계획이 있다 (임여정 지음, 살림 펴냄, 284쪽, 1만4,500원) 현직 초등교사이자 서울 강남에 거주하는 두 아이 엄마의 시선이 서로 교차한다. 저자는 교사이자 엄마로서 바라본 ‘압구정의 육아’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최근 영·유아 사교육 관련 정보를 실용적으로 전달하면서, 그 현상에 대한 진단도 잊지 않는다. 아이를 위해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되새기게 해준다.
나는 체육교사입니다 (김정섭·이정석 외 12명 지음, 성안당 펴냄, 432쪽, 2만4,000원) 최근 대세로 떠오른 스포츠예능, 그 돌풍의 진원에는 도전·경쟁·성장의 키워드가 자리하고 있다. 14명의 체육교사들이 청소년에게 그 메시지를 더욱 생생하게 전달하고자 힘을 모았다. 다양한 종목의 경험 속에서 삶의 중요한 행복실현을 위해 ‘작은 실천’부터 하길 바라는 스승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선생님의 권리보호와 책임예방 (임종수 지음, 한국학교법률연구소 펴냄, 430쪽, 1만9,500원) 법학박사이자 학교현장에서 40여 년간 근무해온 교육자가 유·초·중·고 선생님의 교직생활 보호를 위한 지침서를 내놨다. 교직생활 중 겪게 되는 신분상 불이익과 사고 책임 등에 대한 대처방안이 담겼다. 교육을 잘 아는 법조인의 교직관련 법적연구는 현직교사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멀다. 가기가 만만찮다. 인천에서 홍콩까지 4시간, 홍콩에서 요하네스버그까지 다시 13시간을 가야 한다. 케이프타운까지는 요하네스버그에서 국내선을 타고 2시간을 더 가야 한다. 환승 시간까지 감안하면 그럭저럭 하루가 걸린다. 그래서 케이프타운은 아시아와 유럽을 웬만큼 다녀본 이들이 찾는다. 자연이 지구에 준 선물 케이프타운 여행은 운이 따라줘야 한다. 많은 여행이 그렇듯 케이프타운 여행의 가장 큰 변수는 날씨다. 케이프타운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테이블마운틴인데, 악천후가 잦은 탓에 정상에 오르지 못하는 날이 많다. 바람이 심하게 불면 케이블카 운행이 바로 중단된다. 이곳을 찾은 60%의 여행자들이 케이블카 승강장에서 발걸음을 돌린다고 한다. 1주일가량의 일정 동안 테이블마운틴 근처에도 가지 못하는 여행객들도 있다. 1년 중 정상에 오를 수 있는 날은 절반 정도다. 설사 정상에 오르더라도 갑자기 두꺼운 안개가 밀려와 안개만 보고 내려오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이 구름을 두고 현지인들은 ‘예수가 테이블 위에 식탁보를 펼쳤다’고 표현한다. 정상 주변에 12개 정도의 봉우리가 솟아 있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12명 제자를 상징하는 것이고, 구름이 깔린 것은 이들이 만찬을 하는 중이라는 것이다. 어쨌든 테이블마운틴은 케이프타운을 찾은 여행객들이 가장 먼저 해치워야 할 숙제다. 현지 가이드 윌리엄은 “평생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머나먼 남아공까지 와서 테이블마운틴을 못 보고 가는 여행객들은 아무리 좋은 다른 일정으로 대체해도(물론 그보다 더 좋은 일정이 있겠냐만) 컴플레인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날씨가 좋지 않으면 가이드 입장에서 입술이 바짝바짝 타들어 간다”고 했다. 그런데 아뿔싸, 케이프타운에 도착한 첫날부터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CNN과 BBC, 뉴욕타임스 등이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도시’ 등 온갖 찬사를 바친 도시, 여행잡지 론리플래닛이 ‘2017년 도시별 최고의 여행지 베스트 10’에서 2위로 선정한 도시 케이프타운. 하지만 폭우가 쏟아지는 케이프타운의 첫인상은 마냥 우울하기만 했다. 이런 불안과 실망의 기색을 눈치챈 윌리엄이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해가 뜨면 모든 게 달라질 겁니다. 내일은 날씨가 좋다고 하니까 걱정하지 말고 푹 주무세요.” 윌리엄은 이렇게 말하며 손을 흔들었다. 그가 타고 온 밴이 폭우 속으로 서서히 사라져갔다. 다음날 정말로 마법이 일어났다. 거짓말처럼 폭우가 그쳤고 쨍한 해가 떴다. 케이프타운은 모든 게 달라져 있었다. 바다는 황금빛으로 찬란했고 야자수는 기분 좋게 잎사귀를 흔들어댔다. 해변은 조깅하는 사람들과 스케이트 보드를 탄 청년들로 넘쳐났다. 바다에는 서퍼들이 바글댔다. “자, 얼른 숙제부터 해치우자고요.” 윌리엄이 이끈 첫 목적지는 당연 테이블마운틴이었다. 우리는 서둘러 케이블카 승강장으로 향했다. 테이블마운틴 정상까지는 케이블카를 타고 간다. 360도로 회전하는 케이블카를 타면 5분이면 갈 수 있다. 테이블마운틴의 높이는 해발 1,086m. 이름 그대로 커다란 책상처럼 생겼다. 정상 부분이 대패로 밀어낸 듯 평평하다. 길이가 동서로 3.2km에 달한다. 축구장의 15배 크기. 8억 5,000만 년 전 바닷물에 잠겨 있던 모래땅이 용암의 분출력과 대륙판 이동에 따른 압력으로 치솟아 올랐다. 그 뒤 오랜 세월 동안 침식과정을 거치면서 정상부가 평지를 이루게 됐다. 정상 곳곳에는 전망대가 마련되어 있는데 전망대에 서면 ‘아’ 하는 감탄사 밖에는 나오지 않는다. 키 작은 관목 사이로 어디가 끝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아프리카 대륙이 뻗어나간다. 발아래로는 케이프타운 도심이 양탄자처럼 펼쳐진다. 햇빛을 받아 빛나는 대서양은 눈을 뜨기가 힘들 정도로 찬란하다. 도심 왼편으로는 사자 머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라이언스 헤드’, 매일 정오를 알리는 대포로 유명한 ‘시그널 힐’, 악마의 봉우리라는 뜻의 ‘데블스 피크’ 등이 파노라마로 이어진다. 산 위에 쓰인 ‘A gift to the Earth(지구에 준 선물)’라는 문구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대륙의 끝 희망봉 테이블마운틴을 내려와 가는 곳이 ‘희망봉’이다. 테이블마운틴이 케이프타운을 대표하는 명소라면 아프리카 최남단에 자리한 ‘희망봉’은 아프리카 대륙을 대표하는 랜드마크 역할을 한다. 케이프타운을 벗어나 희망봉까지 해안도로를 따라 달린다. 바닷가의 굴곡을 따라 심전도계 눈금처럼 요동치는 ‘채프먼스 피크’는 400여 번의 굴곡으로 유명한 도로다. 오른쪽 차창으로는 영화에서 본 듯한 화려한 부촌이 잇따라 펼쳐진다. 지중해풍의 호화별장들이 언덕을 따라 늘어서 있다. 대부분의 여행자는 희망봉 가기 전 볼더스 비치라는 곳에 잠깐 들른다. 약 3,000마리의 펭귄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펭귄은 추운 남극에만 산다고 하는 편견이 이곳에서는 여지없이 깨진다. 이 펭귄들은 자카스 펭귄으로 10~20℃의 따뜻한 바다에서 살며 30~40cm까지 자란다. 바다 쪽으로 난 나무 데크를 따라가며 귀여운 모습의 펭귄들을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다. 볼더스 비치에서 한 시간 정도 더 가면 희망봉 자연보호구역에 들어선다. 원숭이와 타조 등 야생동물이 서식하는 곳으로 차를 타고 가다 보면 멀뚱멀뚱한 눈으로 차를 바라보는 야생 타조를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1938년 자연보호지구로 지정되었고 1998년에는 케이프반도 국립공원으로 정해지면서 보호받고 있다. 보호구역을 지나면 드디어 희망봉이다. 아프리카의 최남단에 있는 이곳은 15세기 유럽인들이 아시아로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었다. 1488년 처음 이곳에 도착한 포르투갈의 바르톨로뮤 디아스는 험한 날씨와 폭풍 때문에 ‘폭풍의 곶’이라 이름 붙였다. 1497년 포르투갈의 바스코 다가마가 이곳을 통과하면서 ‘희망의 곶’, 희망봉으로 이름을 바꿔 불렀다. 희망봉이 아프리카 대륙의 최남단 대서양과 인도양이 만나는 곳에 자리한다고 믿은 유럽 선원들이 항해를 마치고 돌아가면서 이 봉우리를 보며 고향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희망을 가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리학상 아프리카 대륙의 남쪽 극점은 아굴라스곶이다. 일부러 그곳까지 찾는 사람은 거의 없다. 희망곶에서도 무려 2시간이나 떨어져 있고, 주변에 딱히 달리 볼 것이 없기 때문이다. 신나고 맛있는 케이프타운 케이프타운에는 테이블마운틴과 희망봉만 있는 것이 아니다. 워터프런트에서 즐기는 신나는 저녁도 빼놓을 수 없다. 케이프타운 시내에서 가장 번화한 상업지구로 수십 개의 식당·상점·극장·수족관·박물관 등이 몰려 있다. 정식 명칭은 빅토리아알프레드 워터프런트(the Victoria Alfred Waterfront). 워터프런트는 유럽인들이 케이프타운에 가장 먼저 세운 항구로 쇼핑지역으로 재개발되면서 새로운 명소로 자리 잡았다. 바로 옆에 있는 항구에서 크루즈선을 타고 바다로 나가 일몰도 감상할 수 있다. 가격은 우리나라 돈으로 3만 원 안팎. 1시간 30분 정도 노을 지는 바닷가를 달리며 달콤한 와인을 맛본다. 연인과 함께라면 꼭 해보기를 권한다. 와인 애호가라면 와이너리 탐방도 지나치기 어려운 유혹이다. 남아공은 4,700개의 개인 소유 와인 농장이 존재하는 와인 대국 중 하나다. 와인 역사도 350년이나 됐다. 남아공에서 꼭 맛보아야 할 와인은 피노타지(Pinotage)다. 전 세계에서 오직 남아프리카에서만 존재하는 품종으로 프랑스의 피노누아(Pinot Noir)와 에르미타쥬로 알려진 생소(Cinsault) 품종을 교접해 만들었다. 쉬라즈와 멜롯의 중간 정도 맛을 내며 진한 과일맛과 우아한 기품이 느껴진다. 케이프타운 여행 마지막날 스텔렌보시 지역에 자리한 와이너리 ‘조단’(Jordan)에서 오래오래 와인을 즐겼다. 다양한 와인을 맛볼 수 있는 멋진 테이스팅룸, 맛있는 음식을 내는 레스토랑, 아름다운 자연경관까지 갖춘 완벽한 와이너리다. 남아공 와인 베스트 10을 꼽을 때마다 빠지지 않는 와이너리다. 조단의 야외 테라스에서 와인을 마시다보니 가이드가 “케이프타운에 안 와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온 사람은 없다”고 했는데 그 말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여행정보 한국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을 향하는 직항편은 없다. 홍콩을 거쳐 요하네스버그로 가야한다. 아시아나항공과 남아공항공은 공동운항 협정을 맺었다. 인천~홍콩 3시간 40분, 홍콩~요하네스버그 13시간, 요하네스버그~케이프타운 2시간 10분 소요. 시차는 한국보다 7시간 늦다. 남아공 화폐인 ‘랜드’ 환전은 호텔 등에서 하면 좋지만 미화 달러나 신용카드를 쓰는 게 편하다. 아주 적은 돈이라도 신용카드를 편하게 쓸 수 있다.
스태그플레이션과 인플레이션은 한 끗 차이 ‘요새 증시가 왜 이렇게 안 좋으냐’는 말을 많이 합니다. 인플레이션 시대에는 물가만 오르는 것이 아니라 부동산·주식도 같이 올라야 하는데, 왜 부동산·주식은 오르지 못하고 주춤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물가가 너무 빨리 오르는데 반해 경제성장률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근육이 단단해지는 만큼 역기 무게를 올리면서 운동을 해야 더 건강해집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역기 무게는 빠르게 올리면서 근육은 그 속도를 못 따라가는 것이죠. 그럼 몸을 다칠 가능성이 높습니다. 몸을 다치면 쉬어야 하니 운동도 하지 못하고 근육도 다시 풀어집니다. 지금의 상황이 그런 모습입니다. 물가 오르는 속도를 늦추거나 경제성장률을 더 끌어올리면 되지만, 쉬운 상황이 아닙니다.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리려면 고용과 투자를 장려해야 하는데 결국 돈이 더 풀리면서 물가는 더 오르게 됩니다. 정부가 인위적인 경제부양을 하면 안 되고, 코로나가 끝나고, 공급난이 해소되는 등 외부적인 변화로 경제성장률이 올라가야 합니다. 물가를 낮추는 것도 결국 코로나가 끝나고 공급난이 해소돼야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원래 증시는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무섭습니다. ‘3달만 버티면 됩니다’와 ‘언제 회복될지 모르겠습니다’는 버티는 의지에 큰 차이를 줍니다. 연준의장 파월은 왜 ‘폴 볼커’를 말했을까? 폴 볼커는 1970년대 연준의장으로 엄청난 금리인상을 주도했던 인물입니다. 그런 인물을 언급한 사람이 지금 연준의장인 제롬 파월입니다. 자신을 제갈량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제갈량 같은 계획을 세우고, 조조라고 말하는 사람은 조조 같은 계획을 세웁니다. 파월의 머릿속에 폴 볼커의 정책이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럼 1970년에 어떤 상황이었고, 폴 볼커는 왜 그런 정책을 했는지 알 필요가 있습니다. 1960년대 미국은 베트남전쟁으로 재정적자가 심했고, 돈을 마구 찍어내는 바람에 인플레이션 문제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업률은 최저였고, 임금도 오르면서 소비력이 좋은 시기였죠. 자동차 보급이 확대되면서 부자들은 도시 외곽에 주택을 짓고 살았습니다. 새 집이 늘어나니 가전 같은 소비도 늘면서 나름대로 경제가 좋았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은 과잉투자·과잉생산을 낳게 됩니다. 물가가 치솟자 닉슨대통령은 2년간 물가를 통제했습니다. 그러나 물가는 정부가 누른다고 해도 일시적으로 눌릴 뿐 결국 다시 제자리로 올라가게 됩니다. 이후에 큰 폭탄을 만든 것이죠. 여기에 1차 오일쇼크가 터집니다. 유가가 순식간에 4배나 올라가죠. 여기서 물가통제를 한 번 더 시도했지만, 이미 쌓였던 인플레이션이 터지면서 걷잡을 수 없이 물가가 치솟게 됩니다. 이때 등장한 연준의장이 폴 볼커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하루 만에 기준금리를 4% 올리는 일을 단행합니다. 보통 0.25%가 한 단계라고 보면 16단계를 한 번에 올렸으니 시장에 엄청난 충격을 줬죠. 그 이후에 금리를 더 올립니다. 기준금리가 21.5%까지 올라갔습니다. 기업들이 문을 닫고, 실업자가 늘어나니 불만이 가득했죠. 그래서 폴 볼커는 권총을 차고 다녔습니다. 이후는 해피엔딩? 강하게 금리를 올리자 물가는 서서히 잡혀갑니다. 금리를 예상보다 더 많이 올리는 이유는 기대인플레이션 제거를 위해서입니다. 금리를 올린다고 물가는 바로 내려가지 않습니다. 다시 금리를 내릴 수도 있고, 제품 가격을 낮추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언제든지 임금·재료비가 다시 오를 수도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죠. 그래서 물가가 생각보다 내려오지 않는데 기대인플레이션을 제거해야 물가가 내려갑니다. 실업자가 늘고, 기업이 문을 닫을 때까지 금리를 올려 공포를 심어주는 겁니다. 그 이후에 물가가 잡히면 경기부양을 해서 기업과 고용·소비를 늘려 경기를 살립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피해자들이 나오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스태그플레이션이 무서운 겁니다. 폴 볼커를 언급한 파월 연준의장은 1970년대 악몽을 떠올리게 합니다. 지금은 스태그플레이션이고, 나는 폴 볼커처럼 금리를 많이 올려야 할 수도 있다고 말하면서 시장에 겁을 준 것이죠. 그리고 5월 기준금리를 0.5% 두 단계를 한꺼번에 올립니다. 한번에 2단계를 올리면 우리는 빅스텝이라고 부릅니다. 6월·7월에도 0.5%씩 계속 올릴 계획입니다. 그럼 3달 만에 금리가 1.5%가 오르게 되죠. 대출이자가 크게 늘어날 겁니다. 기업은 부담스러우니 투자를 줄이고, 서민들은 대출이자가 늘어 물건을 안 사게 될 겁니다. 경기침체 가능성이 높아지죠. 하지만 코로나가 끝나고, 공급난이 감소해서 물가는 떨어지고 소비가 늘어나면 고용이 줄어들까요? 경기도 같이 좋아집니다. 스테그플레이션을 생각했는데 인플레이션이 될 수 있죠. 그리고 금리인상을 빠르게 할 필요도 사라집니다. 그래서 지금은 코로나가 빨리 끝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그 다음이 ‘해피엔딩’이 될지 ‘헬피엔딩’이 될지 예상이 가능합니다.
6월부터 저녁에 달이 뜨면 피었다가, 아침에 일어나보면 시들어 있는 꽃이 있다. 밤마다 밝은 노란색으로 피는 이 꽃은 달맞이꽃이다. 밤에만 활짝 피어서 이 꽃의 진면목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낮에 보면 꽃잎이 축 늘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달빛이 은은할 때 보면 꽃잎이 팽팽하게 펼쳐진 것이 정말 아름답고 싱싱한 꽃이다. 박완서의 단편 티타임의 모녀는 안락한 삶에 흔들리는 운동권 남편을 바라보는 여공 출신 아내의 불안한 심리를 절묘하게 달맞이꽃에 담아내고 있다. 작가가 1993년 발표한 단편이다. 주인공은 고등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한 채 공장에서 일하다 최고의 대학에다 부잣집 출신으로 위장취업한 남편을 만났다. 처음 남편이 위장취업자라는 것을 알았을 때 주인공은 도망치려 했다. 그러나 남편은 “내가 꿈꾸는 세상이 서로 무시하거나 억압하지 않는 세상”이라는 말로 설득했다. 아들 지훈이를 낳아 서울 변두리 어느 3층집 옥탑방에 살 때가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 집주인이 여러 야생화를 심어놓은 그 옥상엔 달맞이꽃도 피었다. 어느 날 남편은 어떤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아득하고 먼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그이는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중략)… “가만, 가만 저 소리 안 들려?” 나는 입도 뻥긋 안 했건만, 그이는 한 손으로 내 입을 틀어막는 시늉을 하면서 청각을 곤두세웠다. 나는 아무 소리도 못 들었다. 다만 지훈이의 나스르르한 앞머리가 가볍게 나부끼는 걸 보았다. “아아, 달맞이꽃 터지는 소리였어.” 그이가 비로소 긴장에서 해방된 듯 가뿐한 소리를 냈다. 소설에서 남편은 도감을 찾든 어떻게든 꽃 이름을 알아내 아들 지훈이에게 가르쳤다. 들꽃 지식은 남편이 주인공보다 많이 아는 것 중에서 유일하게 주눅 들게 하지 않는 것이었다. 더구나 남편이 들풀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부터 주인공은 어디 가서 남편과 농사지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미래를 꿈꿀 수 있었다. 그러나 아들 지훈이가 옥상에서 떨어지면서 상황이 완전 달라졌다. 남편은 으리으리한 병원에 아들을 입원시켰고, 뇌수술 최고 권위자가 수술을 했다. 그 병원은 남편 집안이 경영하는 병원이었다. 그런데 남편을 포함한 시댁 식구들은 아들의 용태에만 관심이 있고 자신은 없는 사람 취급하는 것이 참담하다. 아들이 병원에서 퇴원하자마자 가족은 곧바로 옥탑방 대신 대형 아파트에 입주했다. 남편 친구들이 ‘전화위복’이라고 하는 말은 지훈이 회복만을 의미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남편도 ‘어디선가 부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 같다. 한번 안락한 삶으로 돌아온 남편은 흔들리고 있는 것 같다. 그런 남편의 쏠림을 달맞이꽃 필 때 귀 기울이던 모습에 비유하며 주인공의 불안한 심리를 절묘하게 담고 있다. 달뜨면 피었다가, 아침에 시들어 있는 꽃 달맞이꽃은 바늘꽃과의 두해살이풀이다. 여름에 밝은 노란색 꽃이 잎겨드랑이마다 한 개씩 달린다. 꽃잎은 4장인데 끝이 파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꽃은 이름처럼 저녁에 피었다가 아침에 시든다. 저녁에 꽃이 피는 이유는 주로 밤에 활동하는 박각시나 나방 등 야행성 곤충이 꽃가루받이를 도와주기 때문이다. 식물의 꽃은 꽃가루받이를 도와주는 곤충에 맞게 진화한 것을 볼 수 있다. 달맞이꽃 같은 두해살이풀은 가을에 싹이 나서 겨울을 나고 이듬해 꽃을 피우는 생활사를 가졌다. 겨울에 공터 등에 가보면 땅바닥에 잎을 방석 모양으로 둥글게 펴고 바싹 엎드려 있는 식물들을 볼 수 있다. 냉이·민들레·애기똥풀·뽀리뱅이 등이 대표적으로, 그 모양이 마치 장미꽃송이 같다고 로제트(rosette)형이라 부른다. 그중 잎의 가장자리가 붉게 물들어 푸르지도 붉지도 않은 색으로 자라는 식물이 달맞이꽃이다. 이런 형태로 겨울을 견디다 봄이 오자마자 재빨리 새순이 나와 쑥쑥 자라는 식물이다. 달맞이꽃은 어릴 적부터 보아온 아주 친근한 식물이지만 고향이 우리나라가 아니라 남아메리카 칠레인 귀화식물이다. 하지만 일찍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자리 잡고 씨앗을 퍼트려 이제 전국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다. 아주 우거진 숲에는 들어가 살지 못하고 사람들이 파헤쳐 공터를 만들어 놓았거나 길을 만든 가장자리 또는 경사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길쭉한 주머니 같은 열매 속에 까만 씨앗이 들어 있는데, 한때 이 씨앗으로 짠 기름이 성인병에 좋다고 유행을 탄 적이 있다. 요즘에는 낮에 꽃이 피게 개량한 낮달맞이꽃도 주택가 화단 등에 많이 심고 있다. 그냥 달맞이꽃보다 꽃이 좀 더 크다. 낮달맞이꽃은 달맞이꽃과 반대로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닫히기를 반복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또 생긴 것도 낮달맞이꽃 비슷하고, 낮에 피면서 꽃 색깔은 분홍색인 분홍낮달맞이꽃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제주도에 가면 해안가 모래땅에서 꽃이 작은 애기달맞이꽃도 볼 수 있다. 줄기는 땅에 누워 자라는데 끝부분은 위를 향한다. 달맞이꽃은 달이 뜨는 저녁에 꽃이 피어 사진을 예쁘게 담기가 참 어려운 꽃이다. 소설 티타임의 모녀에 나오는 대로 달맞이꽃이 필 때 실제로 소리가 나는지는 과문한 탓인지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어떤 식물책에도 나오지 않는 사실이라 달맞이꽃 피는 밤에 몇 번 확인해보려고 했지만 다 실패했다. 서울 시내여서, 아주 고요한 곳이 아니여서였을까, 아니면 충분히 귀를 기울이지 않아서였을까. 어느 정도 크기의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법정스님 일화에 이 달맞이꽃 피는 소리가 많이 나오고 있다. 다음은 동아일보 2003년 7월 28일자 오명철 문화부장이 쓴 글로, 전남 순천 불일암에서 법정스님과 3박 4일 지낸 이야기를 쓴 글의 일부다. 밤 8시경 달맞이꽃의 개화를 지켜보면서 승속(僧俗)은 일제히 탄성을 터뜨린다. 끝물의 꽃 한 송이가 망울을 터뜨리느라 애쓰는 모습을 애처롭게 보다 못한 스님이 “자, 기운 내거라. 밤새 너만 보고 있을 수는 없지 않느냐”라고 목소리를 높이자 순간적으로 ‘툭’ 하고 꽃망울을 터뜨리는 모습은 그야말로 ‘경이(驚異)’였다. 스님은 불일암에 거처할 때 암자를 찾아온 사람들에게 달맞이꽃 피는 모습을 보여준 것 같다. 이해인 수녀도 생전 법정스님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어느 해 여름, 노란 달맞이꽃이 바람 속에 솨아솨아 소리를 내며 피어나는 모습을 스님과 함께 지켜보던 불일암의 그 고요한 뜰을 그리워하며 무척 오랜만에 인사 올립니다”(사단법인 ‘맑고향기롭게’ 홈페이지)라고 썼다.
서울 양천구 중앙로 양명초등학교는 이르면 올 2학기부터 전교생을 대상으로 에듀테크에 기반한 디지털 교육을 실시한다. 태블릿을 이용하여 디지털교과서로 수업하고, 맞춤형 교육도 이뤄진다. 학생들이 어려워하는 수학이나 과학수업도 3D로 쉽게 이해하고 메타버스 공간에서는 다양한 교육활동이 펼쳐진다. 올 여름방학동안 모든 교실이 AI 중점교실로 새롭게 단장되면 칠판과 분필 대신 전자칠판과 마우스가, 교실중심의 강의식 수업 대신 인터넷공간에서 개별화학습이 선보일 예정이다. 학교 측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디지털 교육을 좀 더 일찍 경험할 수 있도록 해주자는 취지에서 결단을 내렸다. “‘현재가 미래를 선택한다’라는 말이 있잖아요. 아이들에게 어떤 미래가 닥칠지 예측하기 어렵지만, 그 모든 것의 기본은 정보화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우리가 미래교육을 선도해 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김기홍 교장의 결단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고, 코로나19를 맞으면서 진가를 발휘했다. 남들보다 일찍 준비한 디지털 기반 교육 덕에 갑작스러운 원격수업 전환에도 동요 없이 안정적이고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다. 디지털 기술과 문화예술의 만남을 통한 감성교육 그로부터 3년 여가 지난 지금, 양명초는 학년군별 중심의 AI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수업은 학교에 마련된 ‘신나는 AI교실’을 활용해 실습 위주로 실시한다. 정규교과수업 및 방과후수업에 AI 프로그램을 편성하고, 학년별 수준에 맞는 교육이 진행된다. 구체적으로 1~2학년은 언플러그드 코딩, 3~4학년 메타스쿨, 5학년 AI 인공지능 챗봇, 6학년 원탑 사물인터넷 등으로 구성돼 있다. 학교 측은 에듀테크를 활용한 디지털 교육시스템이 구축되면 AI를 활용한 융합교육에도 본격적으로 나설 계획이다. 김 교장은 “이전에도 융합교육이 시도되긴 했지만 좋은 취지와는 달리 정보 인프라 등 기반이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데다 사회적 인식부족과 교사들 역량 또한 아쉬운 부분이 있어 기대한 만큼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이제부터 메타버스 등을 통해 제대로 된 융합교육을 양명에서 실천에 볼 생각”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디지털 기술과 문화예술의 만남을 통한 감성교육도 양명초가 추구하는 교육목표 중 하나다. 실제 이 학교는 문·예·체 교육이 그 어느 학교보다 활발하다. 독서교육과 1인 1악기 교육, 1인 1체육 교육 등이 학년군 중심으로 실시된다. 먼저 인문교육은 독서기반 프로젝트, 토의·토론 글쓰기수업이 중심이다. 학년별 발달단계에 맞는 영역을 선정해 지속적으로 지도하고 학습한 내용을 발표하는 기회도 제공한다. 예컨대 1학년은 독서 기본습관을 기르는데 초점을 맞춘 ‘독서, 참 좋다’를, 2학년은 ‘신나는 독서나라’, 3학년 ‘배우고, 나누고, 성장해요’ 등으로 진행된다. 4학년은 ‘나를 찾아가는 독서여행’, 5학년 ‘다독다독 꿈읽기’, 6학년 ‘독서 만만세’ 등 학생들의 발달단계에 맞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예술교육은 ‘1인 1악기 교육’이 특징이다. 주로 음악수업과 창의적체험활동을 통해 학생들의 다양한 꿈과 끼를 펼치는 교육이 실시된다. 학년말이면 학교 곳곳에서 음악회나 버스킹이 열린다. 버스킹은 특히 학생들 사이에 인기가 많다. 코로나 때문에 중단됐는데 올 2학기부터는 가능할 전망이다. 원하는 학생이면 누구나 학교에 마련된 공간에서 30분간 자신만의 버스킹 무대를 연출할 수 있다. 1인 1악기 교육은 1~2학년 칼림바, 3~4학년 우쿨렐레, 5~6학년 기타를 각각 배우는 것으로 구성돼 있다. 이뿐 아니다. 우리 전통음악을 잊지 않도록 3~6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국악교육도 실시한다. 음악교육에 필요한 악기들은 학교에 모두 비치돼 있다. 학생과 학부모들의 악기 구입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배려다. 졸업할 때쯤이면 대부분 학생들이 능숙하게 연주하는 모습을 기대해도 좋다고 학교 측은 자신했다. 체육교육 역시 학생 누구나 한 가지 운동 종목은 확실히 익히는 ‘1인 1체육’이 목표다. 예술교육처럼 학년군별로 진행되는데 스포츠클럽 및 유관기관과 연계한 스포츠교실 운영이 특징이다. 1~2학년은 몸의 균형감각과 유연성을 기르는데 도움을 주는 발레를, 3~4학년은 방송댄스를 통해 리듬감과 표현력을 기른다. 5학년 체육종목은 펜싱이다. 수업에 지장이 없도록 펜싱 장비 및 도복은 모두 학교에 비치돼 있다. 6학년은 특정 종목을 정하지 않은 종합체육수업을 진행한다. 스포츠클럽활동은 주로 플로어볼이다. 학생들의 체력향상과 협동심을 기르는데 도움을 준다는 이유에서다. 올해 처음 시도된 양명의회 양명초엔 또 ‘양명의회’라고 불리는 어린이국회가 있다. 전교어린이회 대신 실제 국회처럼 조직을 구성, 상임위원회 중심으로 운영하는 게 특징이다. 의장·부의장은 물론 상임위원장도 있다. 상임위원회는 원하는 학생들이면 누구나 참여가 가능하다. 예컨대 홍보위원회는 학교 홍보 유튜브를 만들고, 인권위원회는 학생인권보장을 위해 활동한다. 무엇보다 의미 있는 것은 학생들 스스로 의견을 모으고 그들이 결정하고 직접 실천에 옮긴다는 점이다. 학생회가 의견을 제시하면 학교가 검토해서 반영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실제 어린이날 100주년을 맞아 학교 측이 교문에 플래카드를 내걸 계획이었으나, 양명의회에서 ‘전시성 예산낭비’라며 제동을 거는 바람에 없었던 일이 됐다. 양명의회는 올해 처음 시도됐다. 처음이다 보니 시행착오도 있다. 하지만 그것도 교육이라는 게 학교 측의 생각이다. 최영환 교감은 “시행착오를 경험하고 이를 극복해 나가는 것 자체가 교과서만으로는 배울 수 없는 산 교육”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지난 1982년 개교, 올해로 40년을 맞는 양명초. 하지만 외관부터 교실환경까지 산뜻하고 쾌적하다. 학교 측이 지속적으로 추진한 공간재구조화 사업의 결실이다. 대표적인 게 사각지대 활용. 오래된 건물일수록 활용도가 떨어지는 틈새공간이 많다. 하지만 양명초는 이를 학생들의 흥미와 교육을 동시에 잡는 알짜 공간으로 바꿔가고 있다. 실제로 교실과 교실을 잇는 긴 복도 양옆으로 수생식물들이 놓여있다. 자세히 보니 화분 하나하나에 학년과 이름이 적힌 팻말이 꽂혀 있다. 학생들에게 화분을 분양하고 가꾸도록 한 것이다. 도회적 이미지 물씬한 콘크리트 복도에 늘어선 녹색 수생식물들, 숲길을 걷는 착각이 들 정도다. 이와 더불어 틈새공간엔 사격연습을 할 수 있는 실내 사격장과 게임장은 물론 캠핑공간을 설치할 계획이다. 저학년 학생들이 좋아하는 동굴 체험장도 만들어진다. 학교 외곽으로는 둘레길이 조성되고 있다. 직선의 학교길을 굽이굽이 즐거움이 있는 산책로로 바꾼다는 것이다. 최 교감은 “교정 곳곳에 꽃과 나무를 심어, 꽃 둘레길과 나무 둘레길 등으로 테마형 둘레길을 구상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운동기구인지 놀이기구인지 구분이 불분명한 놀이터 시설은 동화 속 마을처럼 꾸며 상상력과 창의력을 즐기는 공간으로 탈바꿈시킬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학교가 달라지니 학생과 학부모들이 가장 좋아한다. 지난해 학교평가단이 방문했을 때 일이다. 학생들에게 “교장선생님이 왜 좋으냐”라고 물었다. 그러자 “우리가 원하는 것을 다해 주는 교장선생님”이라는 대답이 아이들 입에서 나왔다. 김 교장은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학생들이 마음껏 꿈을 펼치고 생활하는 학교를 만들어 주고 싶었는데 자신의 마음을 알아준 그 한마디가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고 했다. 택배 아저씨로 불리는 교장선생님 김 교장은 학교에서 ‘택배 아저씨’로 불린다. 학교에 도착하는 택배를 교장이 직접 각 교실로 배달한다. 공짜는 아니다. 한 건당 배달료로 500원을 받는다. 그 돈을 모아 교사들에게 커피를 한 잔씩 쏜다.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그렇게라도 해서 교사들과 조금이라도 소통의 시간을 갖고 싶은 마음에서다. 처음엔 교장선생님 택배가 다소 부담스러웠던 교사들도 진심을 이해한 다음부터는 흔쾌히 받아들인다고 한다. 그는 또 자격증 백화점이다. 지금 보유하고 있는 자격증만 147개에 이른다. “무엇이든 배우는 게 즐거워 도전하다 보니 어느 순간 자격증 수집가처럼 돼 버렸다”라고 웃었다. 자격증뿐 아니다. 김 교장은 대학원만 5군데를 다녔다. 전공을 바꿔가며, 대학을 바꿔가며 공부한다. 공부하는 것처럼 즐거운 게 없다고 했다.
“이봐, 한번 해보기는 했어?” 황윤원 중원대 총장이 가장 좋아하는 말 중 하나다. 중원의 개척자답게 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긍정의 의지가 담긴 어록을 즐겨 인용한다. 학령인구 감소로 지역대학들이 어려움에 놓인 지금, 그는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뛰고 또 뛴다. 새교육과 인터뷰가 있던 지난 5월 12일. 그는 이날 오후에만 공식일정 7개를 소화했다. 중원대의 또 다른 이름은 ‘학먼대’이다. ‘학생이 먼저인 대학’의 줄임말이다. 황 총장이 취임과 동시에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오직 학생만을 생각하는 대학, 학생을 위한 대학을 만들겠다는 각오가 담겨있다. 또 학교가 최선을 다해 뒷바라지해야 학생들의 자부심도 커지고, 대학의 발전으로 이어진다는 신념에서 나온 말이다. 사실 중원대는 강점이 많은 대학이다. 취업률은 충청지역 4년제 대학 중 2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학교시설은 우리나라 최고 수준이다. 튼튼한 재단과 넉넉한 장학금은 마음 놓고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준다. 젊고 유능한 교수진과 인성 좋은 학생들이 모여 있는 곳. 황 총장은 “머지않아 놀라운 역사를 만들어 낼 것”이라고 청사진을 펼쳐 보였다. 올해로 개교 13주년이다. 그동안 괄목할 발전을 이뤘는데. “13년이라는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법인의 꾸준한 투자와 대학 구성원 모두의 피나는 노력으로 명실상부 명품대학으로 자리 잡았다. 해원상생(解冤相生)의 건학이념을 구현하면서 시대가 요구하는 창조적 전문인, 진취적 개방인, 실천적 봉사인을 길러 내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 중원대는 작지만 강한 대학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향후 발전구상이 궁금하다. “우리 대학은 중부지방을 대표하는 명문사학이다. 지난 10여 년간 교육부 2주기 대학기관평가인증 획득, 환경부 주관 그린캠퍼스 선정, 중형 국가 RD사업 선정, 취업역량 강화사업 선정, 지역선도대학 육성사업 선정 등 다양한 분야에서 최고의 성과를 거뒀다. 앞으로 항공우주과 보건의료분야 특성화를 더욱 강화하고 인공지능·스마트운행체·반도체 등 첨단학과를 신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비하고자 한다. 아울러 세계 각국의 유수한 대학들과 활발히 교류, 글로벌대학으로서 새로운 면모를 보여줄 것이다.” 자신감이 넘치는 데. “많은 사람들이 대학의 위기를 말한다. 하지만 위기는 기회다. 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이봐, 한번 해보기는 했어’라는 말처럼 긍정과 확신으로 어려움을 극복할 것이다. 남들과 똑같이 보고 똑같이 생각하면 발전할 수 없다.” 중원대의 강점을 꼽는다면. “높은 취업률, 우수한 학생, 탄탄한 재단, 파격적인 장학금, 최고급 학생 편의시설 등은 다른 대학들과 확실히 차별화된다. 또 젊고 유능한 교수진은 산업현장에서 원하는 기술과 직업 트렌드를 정확히 읽고, 신속하게 교과과정에 반영한다. 특히 국내 최초 기숙형대학으로서 ‘생애멘토링교수제(CMP) 등을 통해 교육의 질을 높이고 있다. 머지않아 놀라운 역사가 이뤄질 것이다.” 취업 잘되는 학교로 알려져 있는 데 어느 정도인가. “지난 수년간 충청권 취업률 1위 대학이 우리 학교다. 교육부와 한국교육개발원이 발표한 공시취업률을 보면 지난 2018년 70.7%로 1위를 차지했다. 이듬해에도 69.6%의 취업률을 기록, 2년 연속 1위였다. 우리는 실사구시(實事求是) 정신에 입각한 실용교육, 즉 학생들이 현장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살아있는 지식을 가르친다. 교수들에게도 공허한 이론은 강의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정확하게 현실을 보고 직업인으로서 ‘튼튼한 근육질’을 가진 인재를 만들어야 살아가는데 경쟁력이 있다. 우리 학생들은 인성 좋고 우수한 자질을 갖추고 있다. 동기만 부여해 주면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장학금 혜택도 풍부하다고 들었다. “입학하는 순간부터 졸업할 때까지 학비 걱정 없이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는 학교다. 학생들이 입학하면 기숙사비를 지원한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이 학업을 중단하는 일이 없도록 입학생 전원이 장학 대상자가 된다. 재학생의 경우 30% 이상 장학혜택을 받는다. ▲글로벌인재육성 장학금 ▲중원우수 장학금 ▲외국인 장학금 ▲체육특기자 장학금 ▲대진문화 장학금 ▲교직원 자녀장학금 등이 ‘키다리 아저씨’처럼 든든한 후견인이 되어준다.” 교문에 들어서니까 골프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대학 캠퍼스에 골프장은 처음 본다. “9홀 규모인데 교양필수인 골프과목 실습장으로 활용된다. 수업이 있는 날이면 파란 잔디 위로 멋진 샷을 날리는 학생들 모습이 장관이다. 이뿐 아니다. 인공폭포가 설치된 야외풀장과 국제규격을 갖춘 실내수영장, 호텔급 수준의 학생식당 등 모두 최고급이다. 특히 기숙사는 방 전체가 대리석 세라믹으로 시공됐고, 내부에는 초현대식 스파까지 갖춰져 있다. 중원대 박물관과 사계절 식물원은 충청지역 관광 필수코스로 떠오를 정도로 명소가 됐다.” 중원대 학보를 보니까 ‘학생을 상전으로 모시겠다’고 했던데 무슨 의미인가. “총장 취임 후 줄곧 주장해 온 대원칙은 ‘학생이 먼저인 대학’이다(황 총장은 이를 줄여 ‘학먼대’라고 부른다). 모든 학사행정의 기본원칙은 학생이 먼저다. 대학은 학생의 입장에 서서 학생의 편의를 생각하는 행정을 해야 한다. 수요자 중심의 학생편의주의를 실천, 학생이 만족하는 대학을 만들어 갈 것이다.” 실제로 황 총장은 업무면담 순위도 학생이 먼저다. 학생취업센터나 창업지원센터 등 학생에게 필요한 시설은 가장 접근성이 좋은 곳에 배치했다. 최근엔 취업·창업·상담기능을 수행하는 인재개발원을 신설,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가펴대’ ‘함커대’라는 말도 즐겨 쓴다고 들었다. “‘가펴대’는 자신만만하게 ‘가슴을 펴고 스스로를 굳게 믿고 살아가는 대학’을 만들고자 하는 바람을 담은 말이다. 그렇게 하면 우리 대학의 모든 구성원이 ‘함께 커나가는 대학’, 즉 ‘함커대’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 중 제1원칙은 ‘학먼대’이다. 제 머릿속에는 오직 학생만 있다.” 최근 지역대학들은 학령인구 감소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총장으로서 고민이 많을 것 같다. “위기요인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은 학생수 감소다. 입시와 직결된 고3 학생수가 1989년 76만 7천여 명에서 2021년 44만 5천여 명으로 줄었다. 그런데 90년대 급격하게 늘어난 대학숫자는 거의 변동이 없다. 반면 대학재정은 학생들이 낸 등록금이 전부인데 13년째 동결이다. 게다가 교육부는 학령인구 감소를 이유로 정원을 줄이면서 수도권 대학들은 그대로 두다시피 하고 지방 중소규모 대학에만 초점을 맞췄다. 그러니 지역대학들이 재정난을 겪지 않을 수 있겠는가. 또 하나, 교육부의 대학재정지원사업도 실상은 수도권 유명대학과 지역거점국립대에 편중돼 있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명분으로 프로젝트 중심 재정지원을 하다 보니 벌어진 현상이다. 이런 구조가 지속되는 한 지역대학이 고사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교육부 대학정책이 어떻게 달라져야 한다고 보나. “앞서 말한 것처럼 정원 감축 원칙을 바꿔야 한다. 대학정원을 줄일 거라면 서울대건 지역의 작은 대학이건 모두 일정한 비율로 감축해야 한다. 그래야 지역대학이 살고 지역인재들이 물려 지역경제를 일으키는 생태계가 복원될 것 아닌가. 재정지원사업도 선택과 집중이 아니라 고루 균등하게 지원해 줘야 한다. 그래야 지방대학들이 살 수 있다. 한번 생각해보자. 우리나라 대학진학률이 70%에 이른다. 이 정도면 보편교육이다. 그러면 재정지원도 고루 이뤄져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수도권 대학들이 학생이건 재정지원이건 싹쓸이하는 구조는 지금 당장 바꿔야 한다.” 중원대도 여건이 어려운가. “어렵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우리 대학은 튼튼한 재단이 있다. 비록 4년제 대학 중에서는 가장 늦게 문을 연 막내 대학이지만, 어느 대학보다 탄탄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 학생과 교직원들에게 “지금의 위기가 우리에겐 기회다. 우리는 끝까지 살아남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지금까지 많은 시련을 극복하며 홀로서기를 잘해 왔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지역대학 살리기를 국정과제로 삼았다. 어떻게 평가하나. “아주 고무적이다. 기대가 크다. 이참에 꼭 당부하고 싶은 게 있다. 대학을 영리기업처럼 경쟁 논리로만 바라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학생이 없으면 대학도 없어져야 한다는 단순 논리는 곤란하다. 예컨대 지역에 고등교육기관이 없으면 지역의 지속적인 발전을 도모할 수 없다. 지역의 균형발전을 위한다면 그 지역에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다양한 기반을 조성해야 하고, 그 기반의 중심축은 대학이다. 대학은 최우선적으로 배치되어야 하는 공공재인 것이다. 아시다시피 대학은 지역에서 지역인재를 공급하고, 지역발전의 방향을 제시하며, 지역의 경제적·문화적 구심점 역할을 한다. 지역대학이 무너지면 그 주변지역의 상권이 무너지고, 길게 보면 지역이 피폐해지고 주민들의 자존감에도 큰 상처를 주게 된다. 섣부른 지역소멸론을 논하기 전에 먼저 지역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 100년 대계를 준비해야 한다. 이제라도 광역자치단체는 물론 기초자치단체까지 지역대학 지키기에 발 벗고 나서야 한다.” 하지만 지역에 있는 부실대학까지 국민 세금을 쏟아붓는 것에는 저항이 크지 않을까? “망하게 놔둔다고 능사가 아니다. 대학이 지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퇴로를 열어주고 회생방안을 찾아야 한다. 있는 재산 없는 재산 모아 학교를 세웠는데 부실대학이 됐다고 할 때 설립자가 선택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법인을 해산하면 별도의 정관이 없는 경우 재산은 모두 국고에 귀속된다. 그러니 누가 쉽게 내놓겠는가. 빈 건물이라도 붙잡고 있으려 하지. 대학도 MA를 허용하거나 설립자가 투자했던 자산의 일부를 돌려주는 방안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최근 시집을 낸 것으로 안다. 한 문예지에 ‘가을국화’란 시가 실려 있던데 “가을국화를 좋아한다. 봄 장미는 온실 속에 피는 꽃이다. 제때에 피는 꽃보다는 비바람 다 맞고 피는 가을국화는 지속가능성이 높다. 농익은 세월의 지혜가 담겨있는 꽃이다. 우리 학생들은 일찍 공부에 취미를 붙이지 못했지만, 가을국화처럼 늦게 피는 꽃들이다. 저도 그렇다. 가정형편이 좋지 않아 직업교육을 미리 받았고, 중소기업에서 직공생활을 했다. 말하자면, 남들보다 늦게 핀 꽃이다. 친구들은 이미 퇴직했지만, 저는 아직까지도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우리 학생들도 시련을 이겨낸 가을국화처럼 오래 피는 꽃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지난 5월 10일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했다. 대한민국 교육가족의 한 사람으로 신임 대통령을 통해 교육 때문에 겪었던 재난 수준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되길 진심으로 기대한다. 윤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교육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의지를 밝혔다. “자유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수준의 경제적 기초, 그리고 공정한 교육과 문화의 접근 기회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당당한 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해 공정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시절부터 강조했던 공정과 상식이 취임사에서도 다시 언급된 것이다. ‘미래’와 ‘공정’이 윤석열 대통령의 교육에 대한 핵심 키워드가 아닌가 한다. 그러면 윤석열 정부가 생각하는 공정한 교육이란 과연 무엇일까? 지난 5월 3일 발표된 110대 국정과제에 그 일단이 제시되기도 하였고, 교육부의 교육정책으로 더욱 구체화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구체적인 교육정책으로 실현될 ‘공정한 교육’을 통해 우리 국민이 국가에서 제공하는 교육을 믿고 신뢰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교육을 실천하고 고민한 교육자로서 이번 정부의 교육정책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두 가지를 제언하고자 한다. 공정한 교육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두 가지 제언 우선 공정한 교육이 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은 교육 관련 법과 규정에 들어있는 정신과 가치를 교육기관과 모든 교육자들이 공감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항상 교육문제를 꼬리에서만 찾고 있기 때문에 늘 교육에 대한 변화와 개혁을 실패하게 되는 것이다. 지역마다 또 시기별로 교육의 차이가 생기는 것은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는 교육 관련 법률의 가치와 정신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공교육의 근본이 되는 상위 법체제 안에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정체성과 자유민주주의 사회, 글로벌화된 사회에 필요한 역량을 제시하고 있고, 비교적 충실한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지는 공교육이 어떤 모습으로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최상위 법은 「헌법」 제31조이다. 제31조는 6개 조항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조항 하나하나를 충실하게 준수하려는 노력이 공정한 교육의 첫 걸음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헌법」 제31조 1항은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가진다’ 이다. 지난 정부에서는 「헌법」의 이 조항 중 뒷부분에 있는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에 치우쳐 그 앞에 있는 ‘능력에 따라’의 교육적 가치와 이념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였다. 지난 정부에서 균등한 교육을 이루기 위한 노력에 방점을 두었다고 한다면, 윤석열 정부에서 우선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능력에 따라 자신에게 맞는 교육’의 측면이다. 더욱 글로벌화되고 세계를 선도하는 초(超)선진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능력에 따른 개별화 교육을 통해 창의적인 미래인재를 길러내야 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 우리의 교육과 관련된 법률 중에서 가장 포괄적·전문적으로 교육을 규정하고 있는 법이 「교육기본법」이다. 「교육기본법」 제2조는 다음과 같다. ‘교육은 홍익인간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완성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공민으로서의 자질을 구유하게 하여, 민주국가 발전에 봉사하며 인류공영의 이상 실현에 기여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 대한민국의 공교육기관인 유·초·중·고·대학은 이러한 「교육기본법」에 나타난 정신과 가치를 교육목표에 반영해야 한다. ‘홍익인간(弘益人間)’이라는 위대한 교육적 가치 그리고 민주국가 발전을 위한 봉사, 인류공영의 이상 실현에 기여하려고 하는 미래지향적 글로벌 마인드를 학교현장에서 얼마나 구현하고 있는지 새 정부는 냉정하게 살피고, 함께 이루어갈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공정한 교육을 논할 때 대학입시의 공정성만을 다루어서는 안 되며, 우리나라 교육기관에서 길러내려고 하는 인간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국가와 교육기관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에서 길러 내야할 인재는 선진국이 되기 위한 국가의 국민이 아니라, 선진국이 되어 있고 선진국들을 선도하는 세계 속의 한국인 ‘K 세계인’을 육성해야 한다. 공정한 교육을 위해 구현해야 할 것에는 학생·학부모에 대한 교육기관의 책무성도 빼놓을 수 없다. 공교육기관들은 시행하고 있는 교육과정과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우리나라는 국가의 교육목표 달성을 위해 다른 나라에 비해 엄격한 국가교육과정체제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모든 공교육기관은 유아를 위한 누리교육과정에서부터 시작하여 초·중·고등학교에 적용되는 2022 교육과정이라는 국가교육과정으로 교육활동 하도록 되어 있다. 대한민국의 학교는 교육과정적 차원에서 정의를 내린다면 ‘국가교육과정의 기준에 의거하여 지역과 학교 실정에 맞는 학교교육과정을 편성·운영하는 곳’이다. 국가교육과정체제를 통하여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든 일정 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하는 큰 장점을 갖고 있다. 각급학교에서 그리고 각 학년에서 무엇을 가르치고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에 대해서까지 자세하게 안내되어 있다. 그리고 교육과정 총론과 각론에는 학년별·과목별로 도달해야 할 목표가 명확하게 정해져 있다. 학년별로 가르쳐야할 내용과 평가방법까지 안내되어 있지만, 각 학년별로 제시된 최저기준에 도달했는지를 확인하는 시스템이 없고, 미도달자에 대한 공교육기관에서의 보완 프로그램도 구체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교육부에서도 그리고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에서도 학생들이 교육과정상 도달해야 할 성취목표를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해 누구도 문제 삼지 않는다. 성취수준이 낮은 학생이나 학부모가 당당히 요구할 만한데 오히려 위축이 되어 학교에 그 책임을 제대로 묻지도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학부모는 모자란 공부를 보완하기 위해 또는 더 잘 배우기 위해 학원으로, 개인교습으로, 학교밖에서 그 길을 찾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불공정 중에 가장 큰 불공정이 아닐까 한다.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문화적인 삶의 기회를 누리도록 하기 위해 국가가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여 고등학교까지 무상교육을 실시하고 있는데 국민들은 학교에서 배워야 할 또는 배운 내용을 다시 배우기 위해 많은 예산을 사교육에 투입하는 이중부담을 감내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빨리 해결해야 할 불공정한 교육의 단면이 아닌가 한다. 공교육의 질을 높여야 사교육을 막을 수 있다는 당연한 원리를 외면하고 다른 곳에서 길을 찾으려 하니 해결되지 않고 사교육비는 지속적인 증가 추세를 보인다. 공교육의 질을 높인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가? 공교육의 질을 높인다는 것은 우리의 공교육기관이 학생들에게 시행하는 교육과정과 교육결과에 대한 책무성을 높이는 것이다. 학생들이 한 학기를 보내면서 선생님으로부터 몇 번의 학습상담을 받았는지, 숙제에 대해서 몇 번의 구체적인 피드백을 받았는지, 학교가 학생들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부모와 얼마나 회의와 상담을 했는지, 그리고 학습장애가 있거나 학습목표에 도달하지 못했을 때 어떤 서비스를 제공했는지 등 공교육 교육서비스의 질에 대한 책무성을 꼼꼼히 물어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 고등학교 교육문제는 아주 심각하다. 고등학교 교육은 졸업 후 대학 진학을 하든, 직업생활을 하든, 성인사회로 진입하기 전 마지막 교육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학계 고교든, 직업계 고교든 졸업을 하는 시점에서 성인사회에필요한 역량을 제대로 갖추었는지 반드시 확인하고 성인사회에 진입하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고등학교는 초등학교나 중학교 때와 마찬가지로 2/3 출석만 하면 도달해야 할 최저 수준이 되든 말든 관계없이 진급도 하고, 진학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러한 무책임한 교육시스템이 어떤 제재도 도전받지 않은 채 유지되고 있다. 고등학교에서 배워야 할 내용을 제대로 배우질 않아 대학에서 고교 수준의 교육을 해야 하고, 특성화고에서 배워야 할 기능과 기술을 제대로 배우질 않아 회사에서 다시 가르쳐야하는 비능률·불공정 관행이 이제는 끝나야 할 것이다. 공정한 교육의 출발은 근본이 되는 법 정신 구현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교육을 규정하고 법의 정신과 가치를 충실하게 지켜 교육방향을 바로 세워야 한다. 그리고 무상으로 학교에 다닐 수 있고, 교복도 무상으로 주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제대로 배우고 있는지, 제대로 습득하여 내면화가 되었는지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공정한 교육의 모습이어야 한다. 우리나라 교육문제가 무엇인가 하는 질문, 무엇이 공정한 교육인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 대학입시 등 지엽적인 것에서가 아니라 법의 정신과 가치에서, 우리나라 교육기관의 책무성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그것을 해결하려는 노력이 공정한 교육이 나아가야 할 길이 아닌가 한다. 교육에서도 무지갯빛이 펼쳐지길 새 정부에 기대한다.
들어가며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가 2022년 5월 3일 110대 국정과제를 발표했다. 그중 교육분야 국정과제는 100만 디지털 인재 양성, 모두를 인재로 양성하는 학습혁명, 더 큰 대학자율로 역동적 혁신 허브 구축, 국가교육책임제 강화로 교육격차 해소, 이제는 지방대학 시대 등 5개(81번-85번)이다. 교육분야 국정과제 총평의 준거로는 교육분야 과제의 큰 방향이 옳은지에 대한 방향성, 방향성에 비춰본 구체 과제들의 타당성, 그리고 꼭 포함되어 있어야 할 과제가 포함되어 있는지에 대한 포괄성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준거에 따라 총평을 할 때 총평자의 주관적인 관점에만 의존하면 개인의 철학과 식견에 따라 총평 결과가 크게 달라지고, 총평자의 관점을 정당화할 근거를 찾기가 어려워진다. 다른 하나의 방법은 국정과제를, 시대의 흐름에 비춰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그러면서 국민이 원하는 미래사회의 모습과 미래사회 구현을 위한 미래교육의 모습에 비춰보는 것이다. 국회미래연구원(2021.12)은 2021년 9월, 국민이 원하는 미래사회를 파악하고자 3,000명 대상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아울러 202명이 참여한 숙의토론형 공론조사도 실시했다. 이를 위해 2020년 11월에 국가적 차원의 중장기적 아젠더를 발굴하고, 미래 이슈를 검토할 국가중장기아젠더위원회를 국회의장 직속 자문기구로 설치하였다. 이들의 논의를 바탕으로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 누적된 갈등, 다가올 미래 의제를 바탕으로 13개 분야 설문을 구성하였다. 이 글에서는 집필자의 식견과 동위원회의 조사결과를 총평의 준거로 삼는다. 교육분야 국정과제 분석 교육분야 국정과제는 이해의 편의를 위해 유·초·중등교육 분야와 고등교육 및 평생교육 분야로 나눠 분석한다. 그리고 지면의 한계를 핑계로 핵심적인 것 몇 가지만 짚어보고자 한다. 1. 유·초·중등교육 분야 첫 번째로 제시된 ‘100만 디지털 인재 양성’의 주요내용에는 디지털 인재 양성, 교원 SW·AI역량 제고, 초·중등 SW·AI교육 필수화, 디지털 교육격차 해소, 디지털 인재 양성 인프라 구축, 민관협력 강화 등이 포함되어 있다. 첫 번째 과제에는 인공지능시대를 대비하기 위한 정책들로서 기본방향은 잘 잡혀 있다. 다음으로 제시된 ‘모두를 인재로 양성하는 학습혁명’에는 대입제도 개편, 교육과정 개편, AI기반 기초학력 제고, 융합인재 양성, 사교육 경감 및 학습격차 완화, 학습·경력관리 플랫폼 구축 등 초·중등 부문 교육관련 주요정책이 제시되어 있다. 그러나 첫 번째와 두 번째 과제에서 모두 ‘인재’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교육을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 양성의 수단으로 본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교육분야 국정과제이니 미래사회에 대한 큰 그림, 그러한 큰 그림에 비추어 학교가 길러내야 할 인간상, 그러한 인간상을 전제로 하면서 교육을 통해 길러야 할 디지털역량을 비롯한 다양한 역량을 제시하는 보완작업이 필요해 보인다. 또한 고소득이 아니라 여유를 추구하는 국민의 비중도 45.3%나 되므로(한국행정학회, 2021), 국가가 필요로 하는 인재의 관점만이 아니라 개인의 성장을 중시하는 다원가치의 시대를 염두에 두며, 교육방향을 설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 교육의 블랙홀인 대입과 관련해서는 입시비리전담부서 설치와 더불어 보다 근본적이고 장기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대입제도개선위원회를 국가교육위원회 산하에 설치하는 등의 획기적인 정책제시가 필요해 보인다. 이 위원회는 대입 관련 국민대토론회 개최 및 의견 수렴, 기초자료 조사 및 생성 등의 연구, 미래형 대입제도 제시 등의 역할을 해야 한다. ‘다양한 학교유형을 마련하는 고교체제 개편’과 김병준 인수위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장이 4월 28일에 발표한 학교교육 다양화를 위한 ‘교육자유특구’ 시범운영안 등은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논란이 되는 정책은 다양한 시각을 가진 개인과 단체의 참여를 보장하는 과정을 거쳐 수정·보완해가길 기대한다. ‘국가교육책임제 강화로 교육격차 해소’에는 유보통합, 초등 전일제 교육, 교육 사각지대 해소, 교원업무 경감, 평생학습 기회 보장 등이 제시되어 있다. 여러 정책 중에서 윤석열 정부가 이룰 수 있는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는 유보통합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핵심은 유치원과 보육기관의 교원양성, 사립 유치원의 교사 처우개선 등이 될 것이다. 유보통합에서 나아가 유치원 무상교육 혹은 유치원 공교육화에 대해서도 중장기계획 마련이 필요하다. 이 과제에 포함되어 있는 수석교사제도 확대는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므로, 반드시 이에 대한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교사들이 공감하는 정책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2. 고등교육 및 평생교육 분야 고등교육 분야와 관련해서는 ‘더 큰 대학자율로 역동적 혁신 허브 구축’을 기본방향으로 내걸었다. 핵심과제는 대학규제 개혁, 학사제도 유연화, 대학중심의 창업 생태계 구축, 부실·한계대학 개선 등이다. 인수위의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회(지균특위원회)가 2022년 4월 27일 발표한 ‘지역균형발전 비전’에 따르면 정부 주도의 획일적 평가를 중단하고, 현재의 사업별 대학지원을 포괄적 지원으로 전환한다. 이는 입법이 필요 없는 정책으로, 대학 자율성 강화라는 큰 흐름에도 부합하고, 대학들도 원하던 바여서 대학발전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러한 시도를 기획재정부가 반대해왔으므로, 그 반대를 무마할 책무성 확보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부실·한계대학 개선을 위해서는 자발적 구조개선을 촉진하도록 「사립대학의 구조개선지원 특별법」(가칭)을 제정할 계획이다. 이는 입법이 필요한데 한계 사립대의 퇴로를 열어주기 위한 입법 시도가 야당 반대로 무산되었던 것을 고려할 때, 야당과 사립대교수연합회 및 사립대학교수노동조합 등과의 깊은 논의를 통해 그들이 우려하는 바를 담아낼 수 있어야 이 법의 제정도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거대 야당이 버티고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다양한 집단의 이해가 상충하고, 다양한 관점을 반영해야 하는 국정과제는 야당 및 관련 집단들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여 수정·보완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구현 및 착근이 가능할 것이다. 교육부 관료의 국립대 사무국장 파견제도를 폐지하고, 대신 국립대 총장이 직접 사무국장을 임용토록 하는 정책은 교육부를 제외하고는 모두 찬성할 것이다. 하지만 과거의 제도가 가져왔던 효과를 어떻게 살릴 것인지에 대한 보완책 마련도 동시에 필요하다. 학사제도 유연화 정책으로는 일반대학의 온라인 학사과정, 학·석·박사과정 통합, 학·석사 패스트트랙, 마이크로 디그리(micro degree) 등 학생 수요에 맞춘 교육과정 운영지원 등을 제시하였다.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 의미 있는 정책들이다. ‘창업교육거점대학’과 ‘실험실 특화형 창업선도대학’ 정책은 지역발전에도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상응하는 제대로 된 지원책 마련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지방대 지원과 관련해서는 지방대에 대한 행·재정 권한을 중앙정부에서 지자체로 위임하고, 지자체·지방대·지역산업체 등이 참여하는 ‘지역고등교육위원회’(가칭)를 설치한다는 안이 포함되었다. 그리고 ‘지역인재 투자협약제도’를 도입해 대학·교육청·지역산업과의 연계도 강화할 계획이다. 이 제도를 시행하려면 이 제도로 인해 심화될 수 있는 지역 간 고등교육 격차문제를 완화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안이 함께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회에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중 일부를 지방대에도 지원할 수 있도록 확대할 예정이다. 이 정책은 법을 바꿔야 하는데 거대 야당이 동의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국정과제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중앙정부 차원에서 반드시 논의해야 할 사안으로는 고등교육재정난 해소를 위한 국가 차원의 특별지원책 마련과 고등교육 무상화를 위한 논의, 과잉 고등교육기관 정리에 필요한 특별재원 마련,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고등교육기관 지역 안배 등이 있다. 평생교육과 관련해서는 대학을 중심으로 산학협력과 평생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조기 취업형 계약학과 확대, 순환형 대학 평생교육으로 지역밀착형 평생직업교육 강화, 전문대의 평생직업교육 기능강화 등의 정책이 포함되었다. 또한 전 국민의 평생 역량개발을 위한 혁신방안 수립(2022) 및 평생교육바우처 지원대상을 전 국민까지 단계적 확대 검토(∼2027), 이를 위한 성인의 학습·자격·진로 등 경력관리를 위한 ‘(가칭)온국민평생배움터’ 구축 정책이 제시되었다. 100세 시대 도래를 염두에 둔 체계적인 평생학습지원 중장기계획이 수립되기를 기대한다. 향후 밟아야 할 절차 현행 절차에 따르면, 국정과제가 과연 시대적 흐름에 부합하는 지를 검증할 기간이 충분하지 않고, 참여하는 사람도 집권당과 집권당의 이념을 같이하는 일부 전문가로 국한되다 보니, 비록 의견을 수렴한다고 하지만 많은 한계를 갖게 된다. 독재시절에는 정치권과 엘리트 관료가 과제를 선정하고 추진하더라도 국민들의 저항이 크지 않았다. 하지만 국민의 참여의식이 높아졌고, 계층 간·집단 간 갈등도 심각해진 현재 상황에서는, 반드시 국민들의 관심을 제고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과정을 거칠 필요가 있다. 제시된 국정과제 중 사회적 이견이 크게 표출되는 사안에 대해서는 ‘정당과 행정부처 등 정치적 대표, 노사와 지역 등 사회적 대표, 계층·연령·성별·직업 등에 따른 국민의 대표 등이 참여하고 논의하여 자신의 삶과 관련된 문제로서 열정과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국회미래연구원, 2021: 150). 인도에서는 우리나라와 달리 수상 선출 후 공약에 의거하여, 6개월간 국회에서의 논의를 거쳐 여야 합의 형태의 국가발전5개년계획을 발표한다고 한다. 다양한 주체의 참여를 통해 합의된 사항을 바탕으로 국회는 관련 입법을 추진하고, 행정부는 제도적 기반 및 예산 확보방안을 마련할 때, 야당이나 국민들의 반대 및 갈등을 줄여 보다 효율적인 국정운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교육분야의 경우에는 2022년 7월에 국가교육위원회가 출범하므로, 이견이 표출되고 있는 안건과 추가 안건 등에 대해서는 동 위원회가 주축이 되어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관심을 제고하는 역할을 하도록 절차를 마련해줄 필요가 있다. 윤석열 정부가 제시한 교육분야 국정과제를 이러한 과정을 거쳐 수정·보완하여 집행한다면, 설령 정권이 바뀌어도 그 국정과제는 우리 사회와 교육의 미래를 밝히는 정책으로서의 생명력을 유지하게 될 것이다.
01 나는 ‘선생을 한다’라는 표현이 좋다. 이렇게 말하면 왠지 ‘선생 직분’에 대한 가치가 생기는 듯하다. 옛날 선생님과 요즘 선생님의 근무 생태와 조건도 많이 달라졌다. 어떤 분들은 그래도 옛날에 선생하기가 좋았다고도 하고, 어떤 분들은 옛날의 환경 여건에서는 선생하기가 힘들었다고도 한다. 내 경험상 옛날 선생의 정신적 어려움 가운데 하나는, 학교 공납금을 내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납부를 독려하는 일이었다. 의무교육은 초등학교까지였으므로 중학교부터는 돈을 내야 했다. 독려는 또 그럭저럭한다고 치더라도, 끝내 공납금을 내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너 내일부터는 학교에 나오지 말라고 말해 줘야 하는 일은 참 괴로웠다. 내가 근무한 J 여자중학교는 가난한 아이들이 많았다. 우리 반 70명 중 20여 명 정도는 공납금 내기에 어려움이 늘 있었고, 그중 5~6명 정도는 중도에 학업을 그만두어야 했다. 공납금 독려와 미납자 처리가 학교행정의 한 부분인 것은 맞지만, 그 방법이 참 마뜩하지 않았다. 내 초임지의 교장선생님은 월요일 교직원 조례에서 전교 45개 학급의 공납금 납부 실적표를 막대그래프로 제시하고, 그걸 짚어 가며 실적이 부진한 반을 골라내었다. 공납금 이외에 육성회비라는 것도 있었는데, 그것은 아예 담임이 거두어서 행정실에 가져다 내었다. 그런데 새로 교장선생님이 부임해 오셨다. 최옥려 교장선생님, 그 당시로는 드문, 여자 교장이셨다. 이분은 일단 공납금 납부기한을 넘긴 아이들을 행정실로 보내게 하고, 행정실장이 그 납부를 독려하게 했다. 교사가 그런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마침내 더는 어쩔 수 없는 최종기한이 오면, 즉 너는 내일부터 학교에 올 수 없다는 통고를 해야 하는 날이 오면, 최옥려 교장선생님은 해당 학생들을 교장실로 보내달라고 했다. 내일부터 학교에 나올 수 없다는 통고는 담임의 일이 아니라, 학교행정의 책임자인 교장의 책무라고 했다. 미납 학생들에게 규정을 설명하고 학교에 더는 올 수 없음을 교장으로서 알리는데, 교장선생님인들 어찌 괴롭지 않았겠는가. 망연하고 절망감에 빠진 아이들에게 무어라 교육적 말씀을 하셨을 것이다. 그 말씀에 무언가 새로운 동기를 품게 된 아이들도 있었으리라. 그런 다음, 그래도 정말 학교에 오고 싶은 아이들이 있는지를 확인하고, 그런 학생은 학교도서실로 와서 자습으로 공부하게 했다. 그렇게 하는 아이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런 사태에서도 도서실로 일주일 넘게 나오는 아이들은 어떤 방책으로든 공납금 문제를 해결해 주려고 최 교장선생님은 애를 썼다. 1975년 기준 우리나라 초등학생의 중학교 진학률이 77.2%였으니, 나라의 가난이 얼마나 아이들에게 회색의 우울을 심었는지를 알 수 있다. 02 내가 오래 교유해 온 C 교수의 이야기이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집안 형편이 갑자기 기울었다. 의기가 소침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공납금을 낼 수 없게 되어 학교에 오지 말라는 통고를 받고, 혼자 도서실에서 자습해야 하는 날들도 있었다. 한참 예민한 청소년기를 우울과 절망감 속에서 학업중단 위기를 일상으로 겪으면서, C는 학업동기가 떨어졌다. 총명하고 지적능력이 뛰어났던 C이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과 자포자기의 심정이 생기면서 성적이 금방 바닥으로 떨어졌다. 담임선생님이 C를 불렀다. 선생님은 C의 의지박약과 학업부진을 꾸짖으며 회초리를 들었다. C는 한때 선생님의 진로 질문에 명문 A대학을 가겠노라 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막연한 포부가 아니라, 나름 단단한 각오였었다. 지금 선생님은 꼴찌에 가까운 C의 성적표를 내어놓고는 다시금 C에게 확인한다. 지금도 명문 A대학을 목표로 두고 있느냐? C는 그렇다고 대답하였다. 선생님은 C에게 눈을 맞춘 다음에 이렇게 말한다. “네가 A대학에 들어가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 C는 선생님의 이 말, 한 마디가 회초리보다 더 아팠다. ‘내 손에 장을 지진다’라는 말은 관용어이다. 본인의 주장과 생각이 틀림없다고 호언장담할 때 쓰는 말이다. 손톱에 불을 달아서 그 불로 장을 지지게 될 때의 고통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인데, 그런 고통을 겪더라도 자기 생각이 옳다는 것을 다짐하듯 확언할 때 쓰는 말이다. C는 담임선생님의 이 말이 자신에 대한 믿음을 몽땅 철수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네까짓 게 그러면 그렇지, 이만한 역경도 못 이기는 못난이였구나. 내가 너를 잘못 보았구나. 선생님이 자기를 그렇게만 알 것 같았다. 오기(傲氣)가 생겼다. 선생님 저 그런 사람 아닙니다. 선생님이 저를 잘못 알고 있다는 것을 반드시 확인시켜 드릴 겁니다. 한편으로는 가벼운 복수의 마음도 들었다. 목표하는 대학에 들어가서, 선생님! 이제 손가락으로 장을 지지세요,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C는 분을 내어서 노력했다. 오기가 작동한 것이다. C는 그 후 몇 차례 계속해서 성적 진보상을 받았다. 그리고는 마침내 명문 A대학에 보란 듯이 합격하였다. 선생님은 이렇게 될 결과를 내다보고 “네가 A대학에 들어가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라고 했을까. 아니면 정말 현실적으로 전혀 가능성이 없음을 알고 냉정하게 주제 파악을 하라고 한 말일까. 그 마음에 들어가 보지 않았으므로 알 수는 없다. 그런데 뒷날 나는 EBS에서 근무하면서, 강의 출연차 오시는 그 선생님을 가까이서 느껴볼 기회가 있었다. 나의 직관과 촉을 다 동원하여 판단한다면, 선생님은 C를 수렁에서 건져내기 위해서 이런 극약 처방을 쓴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선생님은 C를 알아도 너무 잘 알았다고나 할까. 이런 판단은 뒤에 내가 대학 선생으로 와서 알게 된 이현복(李賢馥) 교수님의 경험담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한때 고등학교 교사를 했던 이 교수님이 가르친 제자가 있는데, 알고 보니 나의 지인이었다. 이 교수님은 학업을 등한히 하고 크고 작은 일탈을 일삼던 제자(나의 지인)에게 “네가 대학을 가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라고 했단다. 이 말을 들은 나의 지인도 C와 비슷한 심리적 궤적을 겪으면서 동기를 새롭게 만들었다. 담임선생님의 이 비관적 예언으로부터 도망가려고 분발했다. 물론 그는 소망한 A대학에 합격했고, 뒤에 통일교육 전문가가 되었다. 내가 이 교수님에게 물었다. “교수님, 그 친구(나의 지인)가 이 교수님 말씀을 듣고, 낙담했으면 어쩔 뻔했어요?” “내가 알고 있었지. 그 친구 ‘오기’를 역이용했지. 나는 그 녀석 A대학에 합격할 줄 알았어.” 03 ‘동기의 심리학’은 동기의 발생을 여러 관점에서 제시한다. 행동주의적 관점을 중시하는 학자들은 환경이 유인하는 욕망(자극)이 동기를 만든다고 본다. 신경적 관점에서는 인간 뇌에서 신경전달물질이 방출됨으로써, 어떤 동기가 출현한다고 본다. 문화적 관점에서는 집단이나 조직 또는 국가 등이 동기를 생기게 한다고 본다. 진화적 관점은 유전자와 유전적 재능이 동기 생성의 원천이라고 본다. 정신분석적 관점은 무의식 세계에 새겨진 어떤 요인이 동기를 만든다고 본다. 이들과는 좀 다른 차원에서 동기 생성을 보는 관점도 있다2. 즉 자신이 기대하는 목표나 가치가 어떤 기회를 만나 새롭게 환기될 때, 바로 그때 동기가 생성된다고 보는 ‘인지적 관점’도 있다. 기회란 반드시 좋게 작용하는 기회만을 뜻하진 않는다. 가령 “네가 만약 명문대학을 가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라는 담임선생님의 폭언에 가까운 비관적 예언도 C에게는 동기를 만드는 어떤 기회로 작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간 죽어 있었던 나의 기대나 가치가, 나에 대한 신뢰를 접는 듯한 담임선생님의 비관적 예언을 듣는 순간 새로운 동기로 각성이 되는 것이다. 이는 자신을 잘 인지하고, 또 상황과 환경을 인지함으로써 생기는 동기이다. 그래서 ‘앎(인지)’이 중요한 것이다. 또 C는 자신의 인간다운 성장을 조성하는 데에 눈을 뜸으로써 동기를 강화한다. 이처럼 인본주의적 관점에서도 동기는 생성한다. 오기의 사전적인 뜻은 부정적이다. 능력이 안 되는데도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마음, 또는 잘난 체하며 거만을 피우는 기운 등으로 풀이한다. 그러나 인간의 현실 마음에서 ‘오기’는 꼭 그런 작용만 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상황은 불리하지만, 지지 않고 싸우겠다는 마음을 ‘나쁜 오기’로 일괄 재단할 수는 없다. 오기 안에는 동기를 발효시키는 오묘한 힘이 들어 있다. 문제는 누가 이 섬세한 심리기제를 발견하고, 이 ‘오기’를 ‘동기’ 쪽으로 건너오도록 건드려 줄 수 있는가. 학생을 오래 깊이 사랑하는 선생이라야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분이 ‘진짜 선생(Great Teacher)’이다.
2015년부터 학생들과 함께 꾸준히 감정을 돌보는 글을 써왔다. 중학생과 3년, 고등학생과 4년을 썼으니 올해로 7년째이다. 본격적인 ‘감정 글쓰기’ 수업은 수현이라는 친구의 편지로부터 시작되었다. 수현이는 ‘선생님 덕분에 시작한 글쓰기가 자신의 삶을 구해줬다’고 말했다. 말로 표현하려니 하다가 막히고,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던 경험들이 누적되어 점점 혼자 상처를 바라보는 바보가 되어가고 있다고 고백했다. 글로 표현하면서 솔직할 수 있었고, 용기가 생겨났다고 했다. 표현하지 않으면 누구도 알아주지 못한다는 것을, 표현함으로써 깨닫게 되었다고 했다. 인식하지 못하는 감정들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나를 만들어간다. 켜켜이 쌓아 올린 부끄러움·열등·분노·두려움 등을 표현하여 객관화하지 못하면, 그것들은 나를 조종하기 시작한다. 부끄러움은 벽을 쌓고, 열등은 타인에게 모욕으로 되갚아주며, 분노는 세상을 두렵게 만들며, 두려움은 뾰족한 가시로 스스로를 찌르는, 그런 친구들을 목격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학생들과 감정 글쓰기를 꾸준히 했고, 괜찮아, 나도 그래라는 책도 발간했다. 더 많은 친구들이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길 바랐고, 때로는 친구의 감정 표현을 자기와 동일시하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통찰하길 소망했다. 감정 글쓰기란? 감정 글쓰기는 단순히 겪은 일 쓰기와는 조금 다르다. 감정 글쓰기는 자신이 겪은 일을 통해 관계를 조명하고, 생각과 감정을 나눠볼 수 있는 글쓰기이다. 골이 깊은 상처를 오롯이 치유할 수는 없지만, 감정 글쓰기를 통해 마음의 상처가 더 깊어지기 전에 건강하고 튼튼한 마음을 갖게 할 수는 있다. 체력을 기르고 건강한 삶을 위해 운동을 하는 것처럼 심력을 기르고 건강한 삶을 위해 글을 써보는 습관을 만들면 좋겠다. 감정 글쓰기는 그럴듯하게 남들에게 보여주려는 글쓰기가 아니다. 그저 자신의 마음을 생각으로 정리하면서 감정의 언어로 명징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어른들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먼저 본인의 감정이 아닌 그림책을 통해 다른 사람의 감정에 빗대어 표현하는 연습부터 시작했다. 3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연습을 해보기 위해서였다. 학생들에게 글쓰기가 숙제가 아닌, 카타르시스를 느끼길 바라는 마음을 간절히 담아 감정 글쓰기 수업을 설계했다. 본격적인 감정 글쓰기 전에 자기소개를 통해 수업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는 것은 중요하다. 소속이나 나이를 소개하는 것이 아닌, 무엇을 좋아하는지, 행복·슬픔·자신감을 느낄 때가 언제였는지 떠올려보며 글을 쓰는 경험을 통해 글의 형식이나 완성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간접적으로 전달한다. 이후 한 해 동안 30여 가지의 감정을 글로 표현하는 수업을 한다. 학생들에게 ‘감정’이라는 단어와 ‘글쓰기’라는 단어를 설명할 때 아래와 같은 내용으로 이야기하기도 한다.[PART VIEW] 감정은? 생각이 엔진이라면, 감정은 가솔린이다(프로이트). 한때 학생부장을 했습니다. 학교폭력이 있었고, 피해학생 측에서는 치료비 외에도 위자료 500만 원을 요구했습니다. 가해학생은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고, 어머니는 암 3기이지만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두 학생 보호자의 만남은 쉽지 않았습니다. 가해학생 어머니가 아무리 피해학생 어머니를 만나려고 해도 만남이 성사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일주일 뒤, 학폭위가 열렸고, 피해학생은 가해학생이 진정성 있는 사과가 없다며 가중처벌을 원했습니다. 학교는 원칙적으로 중재할 수도 없고, 누구의 편을 들어서도 안 되며 개인정보를 알려줄 수도 없었지요. 피해학생 학부모에게 가해학생 학부모의 연락처를 알려주고 싶어도 동의해주지 않았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가해학생 학부모는 학폭위 아침에 쓰러졌고,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피해학생 측에 30만 원을 입금했습니다. 피해학생 어머니는 30만 원을 저에게 가져와 화를 내며 다시 돌려주라고 했지요. 어쩔 수 없이 가해학생 측 사정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고, 가해학생 어머니의 동의를 구해 직접 만나서 가져다 드리는 방법을 권했습니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후 치료비도 위자료도 없이 일이 진행되었습니다. 두 어머니는 만났고, 아파하는 상대방을 보며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렸습니다. 피해학생 측 어머니의 어머니도 똑같은 병으로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둘은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흘렸고, 서로의 손을 잡았습니다. 감정은 사람을 움직입니다. 사건은 사람에게 생각을 열어주고, 생각은 감정을 움직이게 합니다. 감정은 타고나지 않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며 주위에서 영향을 받기도 하고, 경험을 통해 감정의 문법이 생겨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는 ‘행복’이라는 감정이 상대적으로 낮은 국가에 속하는데, 그런 측면에서 감정은 사회적인 영역이 될 수도 있습니다. 경쟁으로 배제당하며 자존감이 떨어지고, 행복하지 못한 삶을 살아가게 만드는 사회. 그러나 마냥 사회 탓만을 할 수도 없지 않겠습니까? 작은 사회인 학교에서도 감정을 정화하며 무너진 자존감과 행복감을 높일 수 있는 비법을 가진 친구들을 보면 희망이 보입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누군가에게 감정을 공유한다는 것이지요. 글은…? 여러분 이오덕 선생님이라고 우리말연구소 대표를 지내셨던 분이 계십니다. 많은 선생님이 존경했던 분이기도 합니다. 학생들을 존중하고, 위하는 삶을 살아온 이오덕 선생님은 학교의 글쓰기 교육이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지적했어요. 오래전에 말씀하셨지만, 아직도 글쓰기 교육은 갈 길이 멉니다. 이오덕 선생님께서 하셨던 말씀을 옮겨볼게요. 별난 일, 놀라운 일이라야 좋은 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날마다 겪는 평범한 일이 가장 좋은 글감입니다. 날마다 학교에 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보고 듣고 생각하고 겪는 일들, 공부하는 교실에서 일어나는 일들, 동무들과 어울려 놀거나 청소를 하면서 말다툼하고 싸우고 한 일들, 학원에 갔던 일, 꾸중 들은 일…. 이런 일들 가운데서 가장 쓰고 싶은 것을 골라내어 쓰세요. 그때 겪었던 일을 잘 생각해내어서 차근차근 자세하게 쓰면 재미있는 글이 됩니다. _ 이오덕 말꽃 모음 중에서 우리는 감정 글쓰기를 통해서 이오덕 선생님의 말씀을 실천해보려고 합니다. 감정 글쓰기를 함께 하는 친구들을 만들고, 서로의 감정을 공유하며, 동카통(동일시, 카타르시스, 통찰)을 하는 경험을 해보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글솜씨도 늘어납니다. 이건 경험상 98% 보장합니다. 내 마음에서 내는 소리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안다면 훨씬 건강하게 살 수 있을 거예요. 내 마음속 복잡한 감정들을 글로 쓰는 순간 감정들이 명료해지는 것이지요. 그럼 덜 혼란스럽게 될 테니까요. 마음이 편해지는 것만으로도 좋은데, 글쓰기 실력도 향상된다고 말씀드리면 어떨까요? 감정 글쓰기를 어떻게 지도하면 좋을까요? 감정은 사건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똑같은 사건을 겪어도 다른 감정을 가지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고난을 겪는 사람 중 어떤 사람은 그 고난이 자기에게 주어진 마지막 고난이라고 생각하고 더 용기를 내어 일을 극복하며 환희의 감정을 느끼고, 어떤 사람은 왜 만날 나에게만 이런 고난이 오는지 모르겠다며 좌절하고 슬픔과 패배감을 느끼며 산다. 같은 고난이지만 어떤 이는 즐거움으로, 어떤 이는 슬픔과 패배의 감정으로 이어지는 것은 사건에 대한 생각의 차이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감정을 떠올리며 사건을 연결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사건과 감정 사이에 생각이 있는데, 그 생각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이다. 생각의 생략은 감정을 명료화하지 못하고, 감정을 조절하기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예를 들어보자. ● 친구가 약속시간에 늦었습니다. → 사건 ● 저 친구는 집도 가까우면서 왜 늦어? → 생각 ● 친구가 어떤 사정이 있었겠지! → 생각 ● 두 가지 다른 생각은 각기 다른 감정으로 이어진다. 하나의 사건에 꼭 하나의 생각과 감정이 따르는 것은 아니다. 모든 일에는 여러 가지 측면이 있다. 자신이 겪은 일에 대해서도 다양한 생각과 감정이 있다. 내가 약속에 늦었다면 ‘상대방에게 미안하다’, ‘친구끼리 이 정도는 기다려줄 수 있지’, ‘나는 왜 이렇게 자주 늦지’ 등 여러 가지 생각과 감정이 복잡하게 얽힐 수 있다. 감정 글쓰기는 빨래하는 세탁기 여러 가지 생각과 감정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이런 생각과 감정은 맞고, 저런 생각과 감정은 다르다고 판단하는 경우를 종종 목격한다. 생각과 감정의 옳고 그름을 구분 짓는 순간 친구들을 편 가르기 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반대로 그 순간 들었던 나의 생각과 감정이 모두 맞다고 인정해준다면 타인에 대한 인정도 쉬워질 수 있을 것이다. 감정을 명료화하고, 타인의 생각과 감정을 공감하면서 성장하는 글쓰기를 해보려고 한다. 아니, 감정 글쓰기를 함으로써 사건과 감정을 잇는 생각을 찾아 감정을 명료화하고, 타인의 감정에 동일시하며, 공감하는 능력을 키운다는 표현이 적확할 것이다. 최대한 솔직하고 자세하게 감정을 기록하도록 할 것이다. 친구들이 읽어볼 것이라는 마음에 내 감정을 솔직하게 쓰지 못한다면, 고된 글쓰기를 할 필요가 없다. 솔직한 감정의 표현은 마음 나누기를 통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될 것이다. 감정 글쓰기가 빨래하는 세탁기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빨래는 종류별로 분류하고, 뒤집어진 양말들은 바르게 해서 세탁기 속에 집어넣는다. 오염된 곳을 보이지 않게 뒤집어서 세탁기에 집어넣는다면 깨끗하게 빨래하지 못할 것이다. 내 불편한 감정과 긍정적인 감정을 시원하게 보여주면 훨씬 더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 당시의 상황·생각·감정들을 글로 명확하게 표현하면 좋다. ‘그 상황에서 나는 이렇게 생각했었지, 그 생각으로 이런 감정이 들었지.’ 글을 쓰다 보면 그 상황에서 왜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했을까 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사건·생각·감정으로 나눠 블록을 만들고, 글로 쓴 내용을 공유해본다. ● 1단계: 개요표 작성(A 학생의 개요표) _ 파란색: 사건 / 초록색: 생각 / 빨간색: 감정 ● 2단계: 감정 글쓰기_ 개요표 작성한 A 친구와 함께 간 학생의 글 이틀 전 금요일에 방학식을 했다. 나는 친구들이랑 학교에서 화장하고 옷 갈아입고 야구를 보러 광주에 갔다. 버스를 타고 광주터미널에 도착해 총무를 맡은 나는 막차인 11시 10분 차와 그 앞차인 10시 40분 차를 두고 고민하다 10시 40분 표를 끊었다. 앞으로 이 표가 가져올 사건을 모른 채. 닭갈비를 점심으로 먹고 쇼핑을 하다 야구장에 갔다. 사람이 진짜 많았다. 너무 더웠지만 날이 어두워지면서 야구장 안은 경기에 대한 기대로 생동감이 넘쳤고 흥이 올랐다. 비록 기아가 선전하진 못했지만 즐겁게 경기를 관람한 후 10시 20분쯤 택시가 있을 거란 생각에 천천히 야구장을 빠져나왔다. 콜을 두 번이나 불렀지만 택시가 없단다. 우린 버스를 놓칠까 봐 그 자리에서 냅다 뛰었고 야구장에서 유스퀘어까지 계속 뛰었다. ○○이는 차를 탈 수 있었지만, 나를 포함한 다른 친구들이 시간 안에 도착하지 못해 결국 버스를 놓쳤다. 신발 밑창이 찢어지고 발은 엉망진창으로 까지고 팔다리는 무거웠다. 더욱 화가 나는 건 우리가 출발하고 얼마 안 가서 경기가 끝나버렸다는 것이다. 기아가 졌다. 만약 11시 10분 막차 표를 선택했다면, 친구들에게 11시 10분 막차가 있다는 것을 말해줬더라면 경기를 다 보고 조금만 서두르면 되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잃은 건 많고 얻은 건 쇼핑 때 산 옷 한 벌과 허탈감에서 나오는 헛웃음뿐이었다.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친구들과 사진 찍고 웃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