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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교육감 직선시대…2월 부산부터 교육감 직선을 골자로 한 지방교육자치법이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전국 최초로 부산시교육감 선거가 2월 14일(잠정) 직선으로 치러진다. 내년 2월 28일 임기가 끝나는 설동근 현 교육감은 선거 출마를 위해 이미 혁신위원장 직을 사퇴한 상태다. 시선관위가 잠정 결정한 선거 일정은 내년 1월 25일 선거공고, 1월 26-30일 부재자 신고 및 선거인 명부 작성, 1월 30-31일 후보등록 등이다. 교육자치법 개정으로 3선 도전이 가능해진 현 설동근 교육감과 초등교 교장 출신, 대학 교수 등 5, 6명이 경합할 전망이다. △수석교사제 9월부터 시범운영 수석교사제가 9월 국공립학교에서 처음으로 시범운영된다. 1981년 한국교육개발원이 제안한 이래 25년간 교총과 교육부가 네 번이나 도입을 합의한 이력이 있다. 이미 중동고와 이화여대부속초 등 사립학교에서는 수석교사제를 실시하고 있으나 정부 차원의 도입은 처음이다. 교육부는 상반기 중 구체적인 수석교사 도입방안을 마련, 시범학교를 선정해 9월부터 1년간 시범운영 하고 확대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한편 국회 차원에서는 한나라당 이군현 의원이 지난해 11월 수석교사제 도입을 골자로 한 초중등교육법, 교육공무원법, 유아교육법 개정안을 제출해 현재 국회 교육위에 계류 중이다. △학교급식 사실상 직영 전환 올해부터 계약이 만료되는 위탁급식 학교는 사실상 직영으로 전환해야 한다. 지난해 6월 30일 학교급식법 개정안이 통과된 데 따른 것이다. 법안은 기존 위탁 급식학교의 경우, 해당 계약 방식대로 3년간을 더 운영할 수 있도록 유예기간을 뒀다. 그러나 올해부터 계약 기간이 만료되는 학교들은 직영으로 전환하되, 불가피한 사정이 있을 경우에 학운위나 관할 교육청의 승인을 받아 위탁급식을 할 수 있다. 다만 위탁급식도 식재료 선정․구매․검수 업무는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학교가 하고, 조리․세척․배식 업무만 위탁할 수 있다. 또 올해부터 학교급식에는 수확한 지 1년 이상 된 묵은 쌀은 사용할 수 없다. 학교급식법 시행규칙과 시행령이 개정됨에 따라 농산물은 친환경농산물이나 우수농산물 등 표준규격이’상’이상인 것만 쓸 수 있으며 원산지 등이 표시되지 않은 농산물은 쓸 수 없다. 축산물의 경우 쇠고기는 육질 3등급 이상 한육우, 돼지고기는 C등급 이상, 닭고기는 1등급 이상, 계란은 2등급 이상 사용이 의무화됐다. 이 같은 식재료 품질관리기준 등을 위반한 급식 공급업자에게는 최고 5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되며, 직영급식 학교가 기준을 어길 경우 학교장 등이 처벌 받는다. △육아휴직기간 퇴직수당 반영 지난해 12월 7일 사립학교교직원연금법이 개정됨에 따라 육아나 임신․출산으로 인한 휴직기간 전체가 퇴직수당 산정을 위한 재직기간으로 인정된다. 이전에는 육아, 임신·출산으로 인한 휴직기간의 2분의 1을 감했었다. 법안은 사립학교법 제59조 및 제70조의2의 규정에 따른 자녀의 양육 또는 여성 교직원의 임신 또는 출산으로 인하여 휴직한 기간은 퇴직수당 지급에 있어서의 재직기간 계산 시 당해 휴직기간 전체를 포함하고, 그 적용은 법 공포 후 최초로 신청하는 휴직부터 적용하도록 했다. △해외 파견교사 선발 중지 지난해 말 교육부가 개정한 해외파견교육공무원인사관리규칙에 따르면 올해부터 재외 한국학교와 한국교육원에는 기관장만 선발, 파견하고 교사와 직원은 현지에서 직접 선발토록 했다. 외교관급 대우를 받는 파견교사에 대해 교육부가 예산부담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총은 “재외동포교육을 포기하는 것”이라며 “예산을 더 확보해 파견교사를 늘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재 14개국 26개 재외한국학교에 46명, 14개국 35개 재외한국교육원에 46명의 교원들이 파견돼 있다. △수업료 못내도 출석금지 못해 지난해 12월 7일 초중등교육법이 개정됨에 따라 앞으로 공사립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 수업료 등을 내지 못하더라도 출석정지 등의 교육권 침해는 금지된다. 기존에는 각 시도가 수업료 미납에 대한 제재수단으로 학생의 출석 정지 또는 입학허가 취소를 조례 및 규칙에 담아 운용하면서 수차례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에 법안은 제10조제2항에서 ‘수업료 기타 납부금의 징수 등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을 하위법령으로 정할 때 국민의 교육을 받을 권리를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내용을 정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유치원도 공제회 의무가입 지난해 12월 22일 학교안전사고보상법이 통과됨에 따라 그간 공제회 임의가입 대상기관으로 규정돼 있던 유치원이 의무가입 대상기관으로 변경됐다. 안전사고 발생 위험과 보호자와 교사의 주의의무가 어느 학교급보다 높고, 유아교육에 대한 국가의 책임이 증대되는 시대상황이 작용했다. 실제로 현재도 유치원의 공제회 가입율(학교수 대비)은 72.6%에 달하고 있다. △개방형자율학교 9월 시범운영 개방형 자율학교로 선정된 서울 원묵고, 충북 청원고, 부산남고, 전북 정읍고가 2010년까지 4년간 시범운영된다. 정읍고 교장에 26년 평교사가 발탁되는 등 ‘공모’ 형식 교장은 교장 자격이 필요 없고, 공모교장은 교감, 교사를 초빙하는 등 교원 인사권을 100% 행사할 수 있다. 원칙적으로 순환전보제도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개방형 자율학교는 국민공통기본교육과정 외에는 교육과정 등을 자유롭게 운영할 수 있고 무(無)학년제 운영이 가능하며 정부로부터 연간 1~2억원을 추가로 지원받는다. 예산도 항목별로 지급되지 않고 총액예산제가 도입돼 학교장이 자유롭게 운용할 수 있다. 그러나 당초 학교 운영주체를 대학, 민간단체, 공모교장 등에 개방하려다 무산됐고, 학교선정 시 자치단체의 재정지원을 조건으로 했다가 입시위주 교육을 우려해 삭제했다. 결국 개방형 자율학교는 교육당국의 관리감독으로 ‘대안학교’ 역할만 할 것이라는 지적이 높다. △무자격 교장공모제 9월 시범도입 교육경력 15년 이상인 현직 교원이나 교육공무원을 대상으로 하는 무자격 교장공모제가 자율학교를 대상으로 올 9월부터 시범실시된다. 이에 따라 교장자격증이 없는 평교사나 교수, 전문직도 교장으로 임용될 수 있다. 학운위의 의견을 수렴한 교장이 ‘공모학교’를 신청하면 교육감이 시범학교로 지정하게 되며 공모교장은 큰 학교는 학교단위, 소규모 학교는 지역단위로 선정한다. 공모교장의 선정은 ▲심사위에서 3명 선정 ▲학운위가 교육감에 2명 추천 ▲교육감이 1명 선정해 장관에 임용 추천 ▲장관이 대통령에 임명제청하는 절차를 밟는다. 공모 교장은 교사 30%를 초빙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오늘은 방학선언식을 하는 날입니다. 어제 크리스마스 날씨가 100년 만에 가장 따뜻한 날이라고 하던데 오늘도 역시 날씨가 따뜻합니다. 그래서 방학선언식도 운동장에서 하게 되었습니다. 며칠 전에 있었던 학생회 회장, 부회장에 당선된 학생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했습니다. 그리고는 외부에서 상장을 받아온 학생들에게 전달식도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교장선생님의 훈화말씀이 계셨습니다. 훈화말씀도 날씨만큼 따뜻하고 훈훈했습니다. 아주 짧게 했지만 내용은 아주 알찼습니다. 훈화가 끝나니 학생들은 감탄을 하면서 박수를 쳤습니다. 3학년 학생들에게는 이렇게 격려했습니다. “그 동안 정말 수고했습니다. 역경을 이겨내고 여기 서있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고 좋습니다. 끝까지 여러분과 함께 하겠습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엇보다 끝까지 3학년 학생들과 함께 하겠다고 하시는 말씀이 가슴에 와 닿더군요. 그리고 1,2학년 학생들에게는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제 방학이 되어 24시간을 마음대로 요리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집니다. 공평하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잘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시간을 활용하느냐에 따라 미래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아직 방학계획표를 세우지 않았다면 이제라도 합리적인 계획표를 세워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어느 반의 급훈처럼 먹을 때 열정처럼 열심히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굳은 의지와 노력으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아주 적은 시간이라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가장 귀한 시간이 바로 현재입니다. 가장 소중한 기억을 남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3학년 언니처럼 최후에 웃는 사람이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개학할 때는 좀 더 성숙하고, 건강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정말 교장선생님 말씀처럼 자투리 시간까지 귀한 시간인 줄 알고 소중하게 아끼는 지혜가 필요하리라 봅니다. 먹을 때 열정처럼 열정을 가지고 공부하면 많은 발전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최후에 웃는 자가 될 수 있도록 방학을 보람되게 보냈으면 합니다. 24시간의 시간을 마음대로 요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는데 모두가 다 잘 활용할 수 있도록 했으면 하네요. 그리고 훈화말씀만큼이나 우리를 훈훈하게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 동안 수고하신 선생님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교장선생님께서 학교경비가 아닌 자비로 점심을 대접하셨습니다. 많은 선생님들께서 따뜻하게 드시고 방학을 맞이하게 돼 아마 기쁨이 배가 되었으리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는 오늘 이런 글을 읽었습니다. 물처럼 살라고 하는 말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언제나 물 흐르듯이 살고 계시는 교장선생님처럼 살아야겠다는 도전을 품게 됩니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물처럼 살아야죠. 장애물이 있어 막으면 멈춰야죠. 문이 열리고 길이 열리면 나아가야죠. 물은 자연스럽게 흘러도 결국에는 바다에 도달하지 않습니까? 물처럼 자연스럽게, 무리하지 않고 여유를 가지면서 살았으면 합니다. 두 학생이 쉬는 시간에 와서 저에게 와서 묻더군요. 제 앞자리에 있는 네 마리의 금붕어 물을 무엇으로 갈아주느냐고요. 혹시 정수기로 정제된 물로 갈아주지 않느냐고 하더군요. 그냥 수돗물을 갈아준다고 했습니다. 한 학생의 집에 금붕어를 키우는데 한 마리가 죽어 물 때문이 아닌가 하고 물은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이든 자연스러운 것이 좋다고 했습니다. 그냥 수돗물로 갈아주면 된다고 하였습니다. 방학 동안 무리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물처럼 살았으면 합니다. 물이 자꾸만 자꾸만 낮은 데로 흐르지 않습니까? 그러한 마음 자세가 자신을 안정되게 할 것입니다. 그런 자세가 자신을 편안하게 할 것입니다. 그런 자세가 생활에 여유를 줄 것입니다. 그런 자세가 걱정도 없애주고, 불안도 없애주고, 염려도 사라지게 할 것입니다. 내일부터 방학이라도 보충수업이 계속되니 사실은 평소의 연장입니다. 계속 수고하실 선생님께서는 가벼운 마음으로 보충수업에 임했으면 합니다. 야자도 없고 출퇴근도 자유롭고 부담도 없으니 방학이 즐거워야 합니다. 방학이 내 것이 되어야 합니다. 방학이 보람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살맛이 납니다. 그래야 교직의 보람을 느낍니다. 방학 내내 하루하루 행복한 나날이 되셨으면 합니다.
전북교육청, 전북 김제교육청, 서울지방경찰청, 서울 서초경찰서가 우수 청소년 정책 수행기관으로 선정됐다. 국가청소년위원회는 26일 각급 교육청과 경찰청을 대상으로 학교주변 유해환경 정비.관리, 청소년 선도.보호 사업 추진 등 청소년 관련 정책 수행 결과를 평가해 순위를 공개했다. 교육청 평가항목은 학교주변 유해환경 정비.관리, 학생 생활지도 강화, 학교 성교육 강화 추진 , 학생 상담기능 강화, 학교 부적응 중도탈락 학생 교육.지원, 청소년 관련 특색사업 추진 등 6개 분야 실적이며, 경찰청 평가항목은 청소년 선도.보호 사업, 청소년 유해환경 및 청소년 성매매 단속, 학교폭력 예방.단속, 청소년 업무 관련 특색사업 추진 등 4개 분야다. 평가 결과 시.도 교육청중에는 전북교육청과 충북교육청이 1, 2위로 뽑혔고, 지역교육청 가운데는 전북 김제교육청, 충북 제천교육청이 모범 교육청으로 선정됐다. 또 서울지방경찰청과 전남지방경찰청이 지방경찰청중 1, 2위를 차지했고, 서울 서초경찰서와 강원 원주경찰서는 일선서중 1, 2위를 달렸다. 이번 평가는 위원회가 교육청과 경찰청에 대한 실사를 통해 각 기준별 점수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이뤄졌으나 위원회는 각 기관의 성적은 공개하지 않고 순위만 발표했다.
지방자치교육법을 위반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김신호 대전교육감에 대한 첫 공판이 26일 오후 열렸다. 대전지방법원 제4형사부(박관근 부장판사)는 이날 오후 2시 제232호 법정에서 학교운영위원들을 상대로 사전선거운동을 벌인 혐의로 기소된 김 교육감에 대한 공판을 열어 피고인 신문을 진행했다. 이날 공판에서 김 교육감은 "음식점 등지서 일부 학교 운영위원들을 만나거나 전화를 건 것은 사실이지만 그 자리서 어떤말이 오갔는지 기억이 명확지 않다"며 "그러나 평소 내 행동 패턴을 볼 때 (누군가의 질문에 답했을 뿐) 먼저 지지를 호소하는 등의 오해를 받을 만한 말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혐의를 전면부인했다. 그는 "법이 엄중한 것을 알기에 많이 조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불미스런 일이 생겨 교육가족께 죄송하다"면서도 "의도적으로 (선거운동을) 한 것이 아니므로 (형사처벌은) 억울하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검찰은 "김 교육감이 재선거를 앞두고 교육감선거 투표권자인 학교 운영위원들을 음식점에서 만나 지지를 부탁하고, 전화를 걸어 지지를 호소한 것은 명백한 사전 선거운동"이라고 말했다. 다음 공판은 내달 10일 오후 4시 30분 제203호법정에서 열린다. 김 교육감은 '7.31 교육감 재선거'를 앞둔 지난 7월 3일 대전 서구 도마동 모 식당에서 모 학교 운영위원 6명에게 지지를 부탁하는 등 4차례에 걸쳐 교육감선거 투표권자인 학교 운영위원 18명에게 지지를 부탁하고, 지난 6월 21일부터 한 달간 자신의 휴대전화 등을 이용해 학교 운영위원 8명에게 9차례에 걸쳐 전화를 걸어 지지를 호소하는 등 사전선거 운동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교육공무원승진규정 개정안이 입법예고 됐다. 주요 내용을 보면 현행 연공서열 중심의 승진구조를 능력중심으로 개선하기 위해 경력평정 반영기간을 25년에서 20년으로 축소하는 한편 평정의 만점을 90점에서 70점으로 하향조정했다. 근무성적 평정 방식도 동료교사가 참여하는 다면평가제를 도입하고 평정점수의 만점을 80점에서 100점 만점으로, 반영기간을 2년에서 점차 확대해 10년까지 기간으로 하면서, 평정결과 공개를 통해 객관성, 신뢰성, 투명성을 확보한다는 것이다. 또한 직무연수성적을 환산성적으로 하고 연구실적 요소별 점수를 석사학위 및 전국규모연구대회 1등급을 각각 1.5점으로, 박사학위를 3점으로 상향조정하면서 가산점 항목 및 점수기준을 명부작성권자가 시도교육청 실정에 따라 정하도록 한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이런 내용의 교육공무원승진규정이 입법예고 됐다는 보도에 학교현장은 공무원연금법 개정파문에 이어 또다시 들썩이고 있다. 갈등을 느낀 교사들의 명예퇴직 신청 논의가 활발하다고 한다. 아무리 합리적인 개정안을 제시해도 불만족해 하는 그룹은 있게 마련이지만 금번 개정안은 급격한 경력기간 단축과 근무평정 점수의 확대 및 기간연장 때문에 조기 과열 승진경쟁을 낳고 교사 간에 불화와 갈등을 조장할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이중 조기 승진 과열은 염려할 만하다. 합리적인 승진제도는 조직 내 위계질서를 확립하고 근무의욕과 능력개발을 촉진시켜 업무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으나 잘못된 승진제도는 근무의욕과 사기를 저하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과거 교직경력 상한선은 20년에서 25년으로, 또 30년으로 연장됐다가 이것이 연공서열중심의 승진제도라는 비판을 받아 25년이 됐고, 이번에 다시 20년으로 축소될 조짐이다. 그러나 교직경력 축소는 조기 승진 과열을 부추기는 원인이 된다. 물론 젊고 유능한 교사들은 교직경력 상향선을 더 축소해야 한다는 의견이겠지만 교직사회는 20대부터 60대까지 동일 직장에서 근무한다는 점에서 연공서열을 무시할 수 없는 특수성을 갖고 있다. 그런데 교직경력을 단축한다면 교직사회의 안정을 저해 할 수 있다고 본다. 근무평정 기간 및 점수 확대도 교직원 간의 불화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교장, 교감의 근무평정 비율을 줄이되 동료교사가 참여하는 다면평가제를 도입하고 점차 10년 간의 근무성적 결과를 사용한다는 것은 승진 및 자격연수 대상 선정이 소수점 셋째 자리에서 결정되는 현실을 감안할 때 너무 과중하다. 또한 단위 학교 교사 수에 따라 평정급간이 다르므로 대규모 학교 근무 교사보다 소규모 근무 학교 교사에게 돌아오는 불이익이 너무 크다. 교사의 전보 주기를 대부분 5년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어느 규모 학교에 근무하느냐에 따라 미치는 영향이 상반될 수 있는 모순을 갖고 있다. 10년 간의 평정기간을 축소하거나, 아니면 10년간 평정결과 중 상위점 3회치를 인정하는 방안이 합리적이라고 본다. 10년 간의 근무평정 인정은 교사들의 과다한 경쟁으로 교직원간 불화와 심적 부담의 원인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점의 해결방안은 수석교사제의 조기도입 밖에 없다고 본다. 승진규정 개정논의와 함께 고령 교사들의 처우와 사기를 진작시키는 대안이 반드시 제기 돼야 한다. 그것은 교장, 교감으로 승진하지 않고도 그에 상응하는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정책을 말한다. 즉, 교직사회의 불만을 해소하려면 승진규정도 개정해야겠지만 수석교사제를 전면 도입해 평교사들의 사기를 높여야 한다. 끝으로 현재도 일찍 교장이 된 자들은 1차 중임제도에 묶여 임기 연장을 위한 방편으로 교육전문직 또는 초빙교장 자리를 놓고 과열경쟁을 하고 있다. 승진제도 개정에 대한 논의가 교장 1차 중임문제, 수석교사 도입문제와 함께 진행되지 않는다면 이는 학교현실을 무시한 탁상공론일 뿐이다.
내년 2월14일 실시될 부산시교육감 선거가 지난 23일 예비후보자등록을 시작으로 본격 궤도에 오르면서 후보군이 가시화되고 있다. 26일 부산시선거관리위원회 등에 따르면 현재 출마의사를 밝힌 인사는 현 설동근 부산시교육감, 예비후보등록을 한 임혜경(58.여) 전 용호초등학교 교장과 정용진 전(64) 부산시부교육감, 강정호(63) 경성대 교수, 이병수(49) 고신대 교수, 윤두수 전 부산시교육위원 등 6-7명에 이른다. 설 부산시교육감은 공직선거법상 공직자 사퇴 만료시한을 1주일 가량 앞두고 지난 16일 대통령직속 교육혁신위원장직을 사퇴하면서 초대 직선제 부산시교육감선거에 출마할 의사를 간접적으로 표명했다. 설 교육감은 "출마여부는 많은 선.후배와 교육계 인사들의 의견을 수렴해 차후에 밝히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부산교육계에서는 그의 선거출마가 기정사실화된 지 오래다. 임 용호초등 교장은 '모든 학생이 성공하기까지'를 선거 슬로건으로 내세우고 지난 23일 가장 먼저 예비후보에 등록했다. 임 예비후보는 초등교사 생활 20년을 비롯 특수학교 교사, 장학사, 교감, 장학관 등을 두루 거치면서 부산교육의 문제점과 앞으로 개선해야 할 점을 현장에서 경험하고 체득한 것을 장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26일 예비후보 등록을 한 정용진 전 부산시부교육감은 지난 40여년 동안 교육계에 몸담아온 경력을 내세워 초대 직선제 교육감선거에 출사표를 던졌다. 정 전 부교육감은 출마 배경에 대해 "부산교육이 재정위기로 큰 어려움에 처해 있다"며 "산적한 교육현장 문제들을 풀어가는 데 저의 오랜 현장 경험이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고 교육감선거에 출마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경성대 강정호 교수는 '내실있고 알찬 부산교육'을 기치로 초대 직선제 부산교육감 선거에 나서기로 마음을 굳혔다. 부산사범대와 부산교육대를 연이어 졸업한 강 교수는 한국 교원단체 총연합회 이사와 부산시 교원단체 총연합회 회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 '바른정치를 원하는 시민의 모임' 공동대표와 부산시 교수포럼 회장으로 있는 등 폭넓은 대외 활동이 강점이다. '부산교육에 희망을'이란 선거 슬로건을 내세우고 최근 출사의사를 밝힌 고신대 이병수 교수는 출마의 변에서 "부산교육재정 위기를 해결하고 실업계고교 및 부산교대졸업생 수급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또 "부산교육이 변하면 대한민국 교육도 변할 수 있다는 강한 의지를 갖고 교육혁신운동에 적극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이밖에 윤두수 전 교육위원을 비롯 2-3명이 자천타천으로 거론되고 있다. 한편 출마가 거론되던 김길용 부산정보대 교수는 이날 출마포기 의사를 밝혔다. 김 교수는 "교육감 선거가 지방선거와 동일하게 실시돼 선거비용부담은 물론 교육계에서 가장 우려하는 정당의 입김 없이는 불가능한 현실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고 출마포기 이유를 밝혔다.
교사에게 있어서 모든 아이들은 마음이 쓰이는 존재이면서 마음을 써야 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일본 시마네현립 마쓰에 교육센터가 ‘걱정되는 아이’와의 관계나 대응에 대한 개선을 목적으로 새로운 노력을 기울이고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마쓰에 교육센터는 2002년도부터 초․중학교 현장에 대한 설문 조사를 바탕으로 2004년도에는 ‘교육 상담, 학생 지도의 시점을 살린 워크시트’와 ‘특별지원교육의 시점을 살린 워크시트’를 제작, 활용하고 있다. 또한 몇 번에 걸친 수정과 보완으로 2005년도에는 ‘교육상담’ 워크시트집이 연수 등에서 활용되고 있고 ‘특별지원교육’ 시트는 올 해 핸드북으로도 만들 계획으로 있다. 아이의 장점이나 열심히 하고 있는 부분을 생각하여 기록하는 과정을 통해 교사는 새로운 발견을 하기도 하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교육센터가 제작한 워크시트집은 아이들의 상황이나 교사의 생각에 따라서 선택할 수 있는데, ‘아이에게 중점을 두고 파악하는 9장의 시트’, ‘아이와의 대화 및 접촉이나 기분을 정리하거나 확인하는 11장의 시트’, ‘교사가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4장의 시트’로 총 2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시트는 A4 사이즈로 10-20분 정도로 기록할 수 있다. 예를 들면 ‘그 아이의 장점을 찾아보자’는 시트는 그 아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 지금까지 분발해 온 일을 생각해 내어 네 가지 관점에서 기입하는 것이다. 단지 ‘대책’에만 주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그 때 교사 자신이 느끼고 있는 생각을 쓰는 것으로서 다른 교사의 문제 파악 방법 등을 배우거나 공유할 수 있는 효과도 적지 않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각각의 시트의 마지막에는 짧은 멘트가 있는데 이 시트에서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의 설명이라든지 아이와의 접촉 방법에 대한 힌트 등이 쓰여 있다. 교육센터는 홈페이지에서도 워크시트를 공개함과 아울러 교사가 해보고 싶은 시트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시트 선택 방법으로서는 ‘현재의 기분에 따라 선택하기’, ‘시트명과 주제 목차를 보고 선택하기’, ‘직접 시트를 보면서 선택하기’ 등으로 나누어 놓고 있는데 시트 선택에 까지 연구의 흔적이 보인다 할 수 있다. 어떤 시트를 선택하건 간에 중요한 것은 교사의 긍정적인 생각과 태도이다. ‘뭔가를 기록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압박감 내지 의무감으로 시트를 기록하게 되면 본래의 워크시트 기록의 의미는 퇴색되어 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룹 연수에서 활용할 때에는 2명이 한 조가 되어 워크시트에 기록한 것을 서로 교환하여 감상하는 과정도 효과적이라고 한다. 교사에게 있어서 아동에 대한 다양한 기록은 결국 교육과도 연결되는 중요한 작업의 하나이다. 단지 나쁜 면을 찾아서 지도하는 의미에서가 아닌 걱정되는 아이를 여러 각도에서 심층적으로 파악하여 생각하는 의미에서의 기록은 아이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아이들에 의한 이지메․폭력행위가 끊이지 않는 지금, 학교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좋은 대응책 중의 하나라는 생각이다.
국가청렴위원회가 20개 중앙부처를 대상으로 2006년도 청렴도를 평가한 결과 전년도에 꼴찌를 차지한 교육부가 종합 3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또 지난해와 비교한 청렴 개선도 부문에서는 교육부가 1위를 차지한 것으로 최근 공개됐다. 국가청렴위가 한국갤럽에 의뢰해 ▲국립대학 재정지원 사업 ▲교육청 및 단체 지원 사업 ▲서울대 등 6개 대학의 계약 및 관리업무와 관련한 민원인들의 향응·금품제공 인식 정도에 관해 조사한 결과, 교육부의 부패종합청렴도는 9.14점으로 전체 부처평균 8.77점보다 0.37점 높았다. 교육부 관계자는 올해 ▲전 직원을 대상으로 반부패 청렴 교육을 실시하고 ▲교총등 14개 기관이 참여한 투명사회협약체결 ▲청렴 교육부 실현을 위한 캠페인 등을 전개했다고 밝혔다. 중앙부처 청렴도는 ▲1위 보건복지부 ▲2위 농림부 ▲3위 교육부 ▲4위 중앙인사위 순이며 건설교통부가 20위로 꼴찌다.
학교안전사고보상법의 통과는 사고 당사자에 대한 보상액의 한도가 없어지고 보상범위나 대상이 전국적으로 통일된다는데 가장 큰 의미가 있다. 교육부 장관 산하에 학교안전공제중앙회를 두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간 공제회는 시도별 상호부조 성격으로 운영돼 기금 사정이 나은 서울, 부산, 울산, 경기는 보상 한도액이 없었지만 형편이 열악한 전남은 1인당 7000만원, 충북은 1억 7000만원으로 상한선이 설정돼 있었다. 이에 따라 피해 당사자의 불만을 샀고 이것이 학교와 교사에 대한 소송을 촉발해 결국 교권침해로까지 이어졌다. 학교급식 관련 사고, 등학교시 사고와 학교폭력, 따돌림에 의한 자해․자살도 공제대상으로 하는 등 그 범위를 넓힌 것도 주목할 만하다. 법안에서는 학교안전사고를 ‘교육활동 중에 발생한 사고로 학생, 교직원, 교육활동 참여자의 생명 또는 신체에 피해를 주는 모든 사고…’로 정의했다. 태풍, 홍수 등 천재지변으로 인한 사고의 보상은 법률에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았지만 공제 대상에는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법안은 사고 당사자에 대한 신속하고 합리적인 보상이 이뤄지도록 시도학교안전공제회 임원에 초중등 교원과 학부모 대표가 임명될 수 있도록 근거조항을 마련했다. 또 시도공제회의 공제급여 결정에 불복할 경우, 공제회 내에 설치된 학교안전공제보상심사위원회에 심사를 청구할 수 있게 하고, 심사위의 결정에도 불복할 경우는 학교안전공제보상재심사위원회에 재심사를 청구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이들 심사․재심사위에도 현직 교원 및 학부모 대표를 포함시켰다. 이와 관련 공제회 및 공제회중앙회 임직원과 심사위원회 및 재심사위원회 위원이 업무상 알게 된 비밀의 누설 금지조항이 추가됐고, 이를 어길 경우 처벌을 받도록 했다. 충분한 보상을 위해 법안은 학생, 학부모, 교직원도 공제료를 부담하도록 근거를 마련했다. 법안 제49조에 따르면 공제가입자인 학교장은 피공제자에게 공제료에 충당하기 위한 금액의 전부 또는 일부를 징수할 수 있게 했고, 제14조에서는 피공제자의 범위를 학생, 교직원, 교육활동 참여자로 정의해 놓고 있다. 이 때문에 기금 부족 시 학생, 교직원, 교육활동 참여자에게 부담이 전가될 가능성이 높은 상태다. 새로 통과된 교부금법은 교육계의 바람을 저버린 법안으로 평가된다. 2010년부터 교부율을 20%로 올리겠다는 정부안보다는 2년을 앞당긴 셈이지만 지방사업으로 이전된 방과후 학교정책과 유아교육 지원사업 소요예산을 감안하면 추가 확보 재원은 ‘빚 좋은 개살구’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국회 교육위는 “유아교육과 방과후 학교 사업을 국고 지원사업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결의안까지 냈다. 광역지자체에게 교육경비를 보조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의무가 아닌 임의조항이라 큰 영향은 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법 근거가 마련된 이상 학부모, 시민단체의 요구가 거세질 가능성도 높다. 한편 지방세를 재원으로 하는 기준재정수입액을 100분의 80으로 해 20%를 해당 시도가 자체 재원으로 활용토록 허용한 교부금법 제7조 2항은 100분의 100으로 환원됐다. 이는 그간 20%를 시도 가용재원으로 허용한 결과, 지난해 서울은 4568억 원, 경기는 3031억 원의 여유재원이 발생하는 반면 전남은 204억 원, 제주는 159억 원 등으로 미미해 반발이 컸기 때문이다.
즐거운 성탄절 이브를 맞아 청계천에 모여든 시민들이 저무는 2006년의 아쉬움을 달래며 시간들을 보냈다. 불우한 이웃을 위해 자선냄비에 성금을 내는 고사리의 손에 정겨움이 가득하다.
2005.1.5. 밤 7시 25분 캘커타의 외국인 거리라는 Sudder st.는 외국인들로 붐빈다. 싼 숙소가 몰려 있는 곳인데도 관광철이라 그런지 방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425루피에 겨우 방을 구해 목욕을 하고 일기를 쓴다. 초라한 호텔방이지만 낯익은 느낌이다. 1996년 미국 여행 때 느끼는 것과는 달리 왜 이렇게 낯설지 않고 편안한가. 별로 긴장감이 들지 않는다. 너무나 흔한 가난의 모습, 내게 너무 익숙한 가난의 모습이어서 그럴까. 파크 스트리트에서 만난 자항기르라고 하는 젊은이가 자꾸 영어로 말을 붙여오기에 대꾸를 하다 보니 이젠 내 관광안내원으로 나서려는 것 같다. 캘커타의 뉴 마켓을 구석구석 보여주기도 하고 극장에 가자고 안내하여 그의 친구와 함께 셋이 인도영화를 관람하기도 했다. 1.2층으로 된 대형 영화관이다. 표를 내고 들어가니 안내인이 손전등을 들고 일일이 자리를 안내해 준다. 이상한 것은 1층과 2층으로 좌석이 구분되는 데 앞줄부터 순서대로 열을 맞춰 앉히는 것이다. 인도의 극장엔 카스트제도가 있다는 인도 관광 안내서의 구절이 생각났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 젊은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핸드폰을 가지고 오락을 하거나 문자를 띄우거나 한다. 길거리에 가난이 넘쳐나는 인도이지만 여지없이 현대문명의 산물들은 인도의 중심부를 파고들고 있다는 생각이다. 영화는 6,70년대의 한국 영화와 유사한 순정물인 것 같았다. 멋지게 생긴 미남 미녀 배우가 3각관계로 날카로운 대립을 보여주는 애정과 스릴러물의 종합편이라고 할까. 그런데 장면 장면에서 신나는 노래와 율동이 어우러져 마치 뮤지컬을 보는 것 같았다. 우리 영화와는 확연히 구분되었다. 영화가 끝나자 성인영화관을 또 가자며 손가락으로 성행위 모습을 흉내 내며 깔깔대기도 한다. 아마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환심을 사려고 하는 것 같았다. 저녁에 헤어지며 내일 또 만나자고 한다. 저 아이가 따라다니는 것이 도움도 되고 여러모로 유익한 점도 있지만 예산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Mother House에서는 사랑의 선교회 수녀들이 열심히 봉사를 하고 노점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라도 더 팔려고 아우성이다. 택시기사는 손님을 끄기 위해 눈만 마주치면 손짓이다. 릭샤꾼도 마찬가지. New York의 yellow cab처럼 택시들은 천편일률적으로 노란색이다. 노점식당의 메뉴에 서툰 글씨로 ‘김치 볶음밥’이라고 쓰여 있어서 입맛이 없던 차에 호기심 반 시장기 반으로 들어가 시켰더니 날아갈듯 끊기 없는 밥에 마른 배추를 조금 송송 쓸어 넣고 양념을 넣고 볶았는데 조금 김치냄새가 나는 듯 했지만 우리 김치 맛은 아니다. 집에서 가져간 볶은 고추장을 듬뿍 넣고 다시 비비니 제법 맛있는 요리가 되었다. 값은 12루피 . 우리 돈 300원 정도이니 그 가격엔 푸짐한 식사였다. 식사를 마치고 길을 걷는데 한글 간판도 있는 인터넷 카페가 있어서 혹시 이메일을 보낼 수 있을까 해서 들어갔더니 한국의 한 학생이 싸이월드를 하고 있었다. 주인과 내가 한글 이메일 가능 문제에 관해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도와드릴까요?”하면서 말을 건네 왔다. 그가 한글 화면을 띄워주긴 했지만 자판에 한글이 없어서 메일을 보낼 수가 없었다. 자판을 외우고 있는 사람은 아무런 지장 없이 메일을 주고받을 수 있다. 그는 한 달 동안 Mother House에 봉사하러 왔다고 했다. 캘커타의 낡은 건물들을 이해하려면 캘커타의 역사를 알아야 할 것이다. 웅장한 건물들이 많은 걸로 보아서 한때는 영화에 빛났던 도시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러나 그 건물들이 한결같이 낡아 슬럼가처럼 되어있는 걸 보면 오랫동안 침체의 그늘에 가려져 있었음을 직감할 수 있다. 2005.1.6 목 요란한 까마귀 소리와 함께 캘커타에서의 두 번째 아침이 밝았다. 오늘은 깔리사원과 그 옆의 임종의 집을 방문하기로 했다. 그리고 Zoological Garden(동물원)을 방문하기로 했다. 자항기르와 오전 10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혹시 나를 돈 많은 관광객으로 알고서 다른 욕심이 들지 않도록 경계해야겠다. 어쩌면 제 친구를 데리고 나올지도 모른다. 냉정하게 할 때는 냉정해야 한다. 자항기르만을 데리고 가도록 하자. 경비를 내가 물어야 하니까. 숙소는 어떻게 할까. 오늘 또 오면 300루피에 해주겠다고 했는데.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짐을 싸들고 아침 8시 쯤 식사를 하기 위해서 호텔을 나섰는데 자항기르가 옆에서 Hello하고 다가선다. 나에게 관심이 많은 것 같았다. 나는 순전히 외국관광객에 대한 호의와 호기심에서 나를 반기는 줄로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낌새가 이상하다. 식사를 해야 한다고 하니까 Breakfast, Lunch, Dinner라는 안내 표시가 있는 식당으로 금방 안내했다. 나는 rice(쌀)와 egg(달걀)를 함께 볶은 것을 자항기르는 vegetable(야채)로 만든 요리를 시켰다. 60루피였다. 1500원 돈으로 두 사람의 식사를 해결한 것이다.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깔리사원으로 향했다. 지하철 요금은 4루피. 플래트홈에서 디카를 꺼내어 사진을 찍으려는데 한 승객이 다가오더니 손사래를 쳤다. 여기는 시진촬영 금지구역이라는 것이다. 나는 깜짝 놀라 알았다고 하면서 사진기를 집어넣었다. 힌두교 사원인 깔리사원에서 우리는 한 젊은이의 안내를 받아 여러 가지 기도의식을 행하였는데 가족의 축복을 위한 것이라며 큰돈을 요구해서 당혹스러웠다. 그런데 자항기르가 선뜻 3,000루피를 선뜻 내고 가족의 이름을 적어내며 기도하지 않는가. 나오려는데 어떤 젊은이가 또 flower(꽃)값이라며 80루피를 요구하는 것이다. 손바닥 만한 노란 금송아 꽃을 들고 기도를 하고 시바신상의 목에 그 꽃을 걸어주는 등 여러 의식을 진지하게 안내하고 지도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조그만 수첩에 빼곡히 적힌 donate(헌금) 명부를 보여준다. 거기엔 한국인의 이름도 꽤 있었는데 1,000루피, 2,000루피 로 액수가 큰데 놀랐지만 그들의 행동이 너무 진지하고 천연덕스러워 나도 1,000루피를 헌금했는데 이 부분도 인도 여행 중 내가 바가지를 쓴 사례중에 하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금도 지울 수 없다. 깔리사원을 보고 나오는데 입구에 구걸하는 노인들과 어린이들로 바글거린다. 사원안쪽 마루엔 브라만 계급의 사람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다. 아직도 카스트 제도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음을 그 브라만의 자세에서 읽을 수 있었다. 사원을 나와 여러 가지 제구를 파는 가게가 늘어선 골목을 걷다보니 조그만 강의 지류가 있었다. 캘커타 시내를 가로지르는 후글리강의 지류인 듯싶은데 역시 이 강도 신성시되고 있는 것 같았다. 구역질이 날 것 같은 시궁창 물이었는데 이곳에서도 종교의식으로 얼굴을 씻는 여자들이 있었다. 그리고 깔리 사원 안쪽에도 조그만 연못이 있었는데 이 물 역시 성스러운 강물을 끌어드린 것이라고 했다. 그곳에서도 여러 사람들이 몸을 담그고 종교의식을 행하고 있었다. 깔리사원에 들어갈 때는 양말과 신발을 모두 벗고 맨발로 들어갔으며 축복의 의미로 콧등과 이마에 빨간 점을 찍어주기도 한다. 내가 자항기르에게 물었다. “너는 부자냐? 너는 많은 헌금을 하지 않았느냐?” 하니까 “아버지가 보내주어서 한 것이다. 가족의 행복과 안녕을 위해서 하는 것이며 불쌍한 사람들을 돕는 일이기 때문에 헌금한다.”고 하며 태연하게 얘기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도 그가 낸 3,000루피가 종교의식이 일반화된 인도인들의 일상생활 방식인지 속임수를 써서 관광객들로 하여금 헌금을 많이 하게하고 나중에 제 몫을 챙기는 것인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2005.1.7. 금 호텔을 옮겨 200루피에 묵고 아침 7시 30분 쯤 눈을 떴다. 자항기르가 이제 나의 관광가이들 나서고 싶은 눈치다. 노골적으로 돈을 요구한다. 어떤 미국인은 매일 20$씩을 주었고 어떤 독일인은 매일 7달라씩 주었다는 등, 또 일본사람을 들먹이기도 했다. 공연히 여자 얘기 섹스 얘기도 들먹이며 호감을 사려고 노력하는 것도 같았다. 바라나시에서는 하루에 1,000루피씩 주기도 했다는 얘기를 노골적으로 하는 것이다. 어제 그저께 계속 안내를 했다는 얘기로 생색을 내며 오늘은 돈을 주어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나오는 것이다. 맞긴 맞는 얘기다. 한국이나 미국이라면 하루에 20달라 아니라 50달라라도 주어야 했을 것이다. 20달라래야 20.000정도 아닌가. 1,000루피래야 26,000원이 아닌가. 그의 말이 일리가 있음을 알면서도 내 예산을 감안하면 그것은 터무니 없는 비용이다. 이제 결론은 났다. 그냥 식사와 교통비, 입장료만 제공하고 함께 지내보려고 했었는데 예산상의 부담으로 안되겠다는 결론이 난 것이다. 그의 친절이 고맙고 그의 영어가 다른 사람에 비해 유창해서 여러모로 좋은 점이 있지만 경비문제 때문에 오늘은 그에게 솔직하게 얘기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약속한 대로 오전 8시 30분 쯤에 그가 왔다. 만나 얼마 안되었는데 오늘은 돈을 주어야 한다고 미리부터 다짐을 받으려 한다. 그의 의도가 이제 확연해졌다. 나는 조금뿐이 줄 수 없다. 나는 여행자이고 돈이 떨어지면 큰 문제다. 나는 당신에게 안내해 달라고 요구하지 않았지 않았느냐. 그랬더니 자기는 friendly guide(우정의 안내)를 하는 거란다. 돈이 목적이 아니라 외국인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이라면서 최소한의 수고비를 달라고 하는 것이다. 이해는 하지만 내 예산이 40만 원인데 하루에 그에게 10,000원씩만 더 써도 상당한 비용인 것이다. 외국에 나가니까 그 나라의 물가에 맞춰지게 되는 것 같다. 제 말로 friendly guide라고 하지만 그는 직업삼아 가이드를 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외국의 사정을 잘 알고 당신네 나라에서 돈을 쓰듯이 인도에서도 좀 돈을 쓰라고 무언의 압력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깔리사원에서 그가 3,000루피를 선뜻 냈을 때 나보고도 따라서 하라는 것 같아서 지금도 약간 불쾌하다. 혹시 만에 하나 그들끼리 짜고 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1,000루피래야 26,000원이지만 예상하지 않았던 돈을 내고 후회가 되었던 것이다. 그는 3,000루피를냈는데 그것은 80,000만원정도에 해당되는 것이다. 그정도면 인도의 보통 시민에게는 엄청나게 큰돈이다. 아무리 부모가 잘 살고 부모가 주었다고 했지만 또 그들의 신과 헌금에 대한 관례를 이해한다 해도 그들 형편엔 큰 돈임에 틀림없다. 어떻게 말해야 할까. 무슨 말부터 해야 할 지 몰라 망설여 지기만 했다. 그의 경쾌한 성격과 상당히 유창한 영어, 또 캘커타 지리에 밝은 점은 좋은 데 가까운 거리도 택시를 타려하는 등 나와는 생각이 달랐다. 입장료, 음료수, 식사 모두 2중 부담인 것이다. 일단 Victoria Mrmorial(빅토리아 기념관)으로 가기로 하고 Sudder St,에서 걸어서 20여분 가니 넓은 정원이 나온다. Victoria Garden이다. 예전 여의도 광장보다도 더 넓은 광장에 잔디가 깔려 있고 초중고 학생들이 제식훈련, 크리켓 운동 등을 하고 있다. 여기저기 양떼들이 풀을 뜯기도 했다. 나는 공원을 거닐다가 말문을 열었다. 혼자 여행하고 싶다고 했다.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도 이제 어쩔 수 없다는 눈치다. 그의 태도에도 분명한 데가 있다. 우리는 몇 마디 대화를 주고 받고 약간 아쉬움을 느끼며 혜어졌다. 그 동안 수고비로 100루피를 주겠다 하니 200루피를 달란다. 안된다. 나는 예산이 짜여져 있다며 거절하고 100루피만 주었다. 100루피면 하루 숙박비 아닌가. 그는 다시 기분이 좋으냐 안좋으냐 확인까지 하고 자가 사진은 꼭 붙여달라며 주소가 적힌 명함을 주었다. 그리고 바라나시에 가면 자기 아버지가 하는 Guest House로 가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서운했는지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오던길을 되돌아 갔다. 나는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해서 그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디지털 카메라로 그의 뒷모습을 담기도 했다. 이렇게 홀가분 한 걸. 여행은 역시 혼자 하는 것이 묘미가 아닐까. 빅토리아 메모리얼에 도착하니 앞 뒤 그리고 양 옆으로 큰 정원이 있고 넙은 호수도 펼쳐져 있다. 앞 쪽은 한창 보수공사가 진행중이어서 뒤문으로 출입해야 했다. 건물의 내부엔 영국의 전성기인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회화작품이 주로 전시되어 있었다. 많은 지도자들의 대형 초상화도 전시되어 있었는데 간디의 초상화가 없었다. 영국이 세운 기념관이라서 영국에 저항했던 마하트만 간디의 초상화는 없는 것이라고 내 나름의 해석을 해본다. 입장료가 또 150루피였다. 인도인은 10루피이다. 구경을 마치고 5분 거리에 있는 St. Paul Cathedral로 갔다. 두 번이나 파괴되어 원형은 볼 수없다는데 너무 쓸쓸하기만 하다. 오후 3시에나 입장이 가능하다고 해서 내부는 들어가 보지 못했다. 관광안내서엔 서쪽면의 색유리가 볼만 하다고 했는데 사방을 살펴보아도 정교한 색유리(stained glass)는 없고 회갈색의 평범한 유리로만 둘러싸여 실망스러웠다.뒷마당에서 한 여인이 몇 가지 성물을 놓고 팔고 있을 뿐이었다. 성당을 나와서 조금 걸으니 Rabindra Sadan이 있고 그 옆에 Academy of Fine Art가 있는데 마침 전 인도 미술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입장료가 5루피였다. 많은 인도의 현대미술작품을 관람했으나 미술에 문외한이어서 제대로 감상할 수는 없었다. 미술관을 나와 인근의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25루피짜리 egg fried rice(달걀과 볶은 쌀밥)를 시켰는데 의외로 양이 많아서 포만감을 느낄 정도였다. 식당에서 마주 앉은 젊은이에게 Zoological Garden(동물원)을 물으니 maximum two and half km(최장 2.5km)란다. 다리가 아픈 걸 무릅쓰고 부지런히 걸으니 한참 후에 간판이 보인다. 입구가 엄청 붐빈다. 인도인들의 가족나들이 단골 코스임을 직감한다. 5루피를 내고 들어가니 깔끔한 구석이라곤 없다. 찢기고 뜯겨 페허처럼 방치된 시설들이 수두룩하고 쓰레기와 먼지로 뒤덮인 길, 낡을대로 낡은 동물우리가 지은 지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어쩌면 대부분의 건물이 그렇듯이 캘커타가 식민지 인도의 수도이었을 때 영국에 의해서 지어진 것이 아닐까 짐작을 해본다. 곰, 사자, 호랑이, 낙타, 하마, 사슴 등 여러 가지 동물이 있지만 과천 동물원에 비하면 유치할 정도의 시설이다. 그러나 백호 몇 마리가 위용을 자랑하고 있어서 사진기에 열심히 담았다. 동물원의 후문을 나와 걷다가 노점에서 짜이 한 잔을 시켰더니1.5루피란다. 짜이 값은 장소와 상인에 따라서 1.5푸피, 2루피, 3루피, 4루피, 5루피 등 다 다르다. Indian Museum이 있는 Park Street로 가는 버스를 물으니 77A번을 타란다. 인도 박물관 앞에서 하차하여 호텔이 있는 Free School Street에 있는 Hotel Al-Gaus를 찾는데 그 길 앞으로 여러 번 다녔으면서도 찾지 못하고 헛걸음만 치다가 결국 한 호텔에 들어가 물었더니 한 노인이 앞장 서서 친절하게 알려 준다. 그에게 또 5루피를 주었다. 인도의 길거리엔 가끔 사탕수수의 즙을 내서 파는 사람들이 있다. 사탕수수대를 몇 번이나 압축기로 짜서 즙을 내서 한 컵에 4루피 혹은 5루피를 받는데 자연그대로의 음료수여서 여러 번 사먹었다. 옛날 시골 고향에서 먹던 사탕수수맛을 인도에서 맛보니 별미였다. 동물원에서 환타 비슷한 음료를 15루피에 사서 마시고 호텔 근처에서 콜라 한 병을 18루피에 사서 마셨다. 인도의 물가는 여행 하는데 반드시 알아야 할 중요한 정보다. 인도는 타고르와 간디의 나라가 아닌가. 인도의 모든 화폐엔 마하트마 간디의 초상화가 인쇄되어 있다. 동물원에서 나와 버스를 타고 오다가 파크 스트리트에서 내렸는데 근처에 간디의 동상이 우뚝 서 있었다. 십대 적에 나는 간디의 자서전을 읽으며 그의 무저항주의에 깊이 공감한 적이 있었다. 서점에 들렀더니 타고르가 저술한 서적이 십수 종이 있었다. 길거리에 차린 노점 서점에서도 타고르의 서적은 쉽게 만날 수 있다. 인도가 낳은 세계적 시인, 타고르는 캘커타 출신이다. 간디와 타고르가 인도 국민들에게 어떤 존재인지 길거리의 풍경에서도 감지할 수 있었다. 십대 적에 나는 타고르에게 매료된 적이 있었다. 단지 동양 최초의 노벨상 수상시인이라는 것과 수염이 덥수룩한 그의 모습, 그리고 단편적으로 읽은 그의 작품과 그의 사상을 접하며 나는 그에게 빨려들었었다. 그리고 타고르와 같은 시인이 되고 싶었다. 나는 그때 읽은 타고르의 시 ‘동방의 등불’과 시집 ‘기탄잘리‘ 중의 한 편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동방의 등불 일찌기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인 코리아 그 등불 다시 한번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마음에 두려움이 없고 머리는 높이 쳐들린 곳 지식은 자유롭고 좁다란 담벽으로 세계가 조각조각 갈라지지 않은 곳 진실의 깊은 속에서 말씀이 솟아나는 곳 끊임없는 노력이 완성을 향해 팔을 벌리는 곳 지성의 맑은 흐름이 굳어진 습관의 모래벌판에 길 잃지 않은 곳 무한히 퍼져나가는 생각과 행동으로 우리들의 마음이 인도되는 곳 그러한 자유의 천당으로 나의 마음의 조국 코리아여 깨어나소서. The Lamp of the East In the golden age of Asia Korea was one of its lamp - bearers And that lamp is waiting to be lighted once again For the illumination in the East.” Where the mind is without fear and the head is held high ; Where knowledge is free ; Where the world has not been broken up into fragments by narrow domestic walls ; Where words come out from the depth of truth ; Where tireless striving stretches its arms towards perfection ; Where the clear stream of reason has not lost its way into the dreary desert sand of dead habit ; Where the mind is led forward by thee into ever-widening thought and action -- Into that heaven of freedom, my Father, let my country awake. 19297년 일본을 방문했던 타고르에게 동아일보 기자가 한국방문을 요청했을 때 방문하지못함을 미안하게 생각하여 이 시를 썼다고 하는 데 1929년 4월 2일자 동아일보에 실렸다. 위 시는 당시 일제 치하에 있던 우리 국민들에게 커다란 자긍심을 안겨주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위 시 말고도 ‘끝없는 세계의 바닷가에 아이들이 모여든다‘ 라는 시는 시집 ’기탄잘리‘의 60번 째 시로 내가 10대 적에 애송했었는데 그 평화의 이미지와 함께 아직도 생생하다. 끝없는 세계의 바닷가에 아이들이 모여든다. 무한한 하늘은 머리 위에서 꼼짝도 않고 쉴 줄 모르는 물결은 시끄럽다. 끝없는 세계의 바닷가에 아이들이 소리치며 모여든다. 그들은 모래로 집을 짓고 빈 조개를 가지고 논다. 가랑잎으로 그들은 배를 엮고 방긋 웃으며 허허망망한 바다에 띄운다. 아이들이 세계의 바닷가에 놀고 있다. 그들은 헤엄 칠 줄을 모른다. 그들은 그물을 던질 줄 모른다. 진주 캐는 이는 진주를 캐러 물속데 뛰어들고 상인들은 그들의 배를 타고 항해하나 아이들은 조약돌을모아서는 또 다시 흩뜨린다. 그들은 숨은 보물을 안 찾는다. 그들은 그물을 던질 줄 모른다. 바다는 웃으며 일렁이고 그리고 창백하게 바다 기슭의 미소는 반짝인다. 죽음을 거래하는 물결은 아이들에게 의미없는 노래를 들려준다 마치 애기의 요람을 흔들 때의 어머니 처럼 바다는 아이들과 더불어 논다. 그리고 창백하게 바다기슭의 미소는 반짝인다. 끝없는 세계의 바닷가에 아이들이 모여든다. 폭풍우는 길 없는 하늘을 헤매고 배는 길없는 바다에 난파하여 죽음이 넘치는데 아이들은 장난한다 끝없는 세계의 바닷가에 아이들의 큰 모임이 있다. -‘기탄잘리’의 6번 째 시- On the seashore On the seashore of endless worlds children meet. The infinite sky is motionless overhead and the restless water is boisterous. On the seashore of endless worlds children meet with shouts and dances. They build their houses with sand, and play with empty shells. With withered leaves they weave their boats and smilinglyfloat them on the vast deep. Children have their play on the seashore of worlds. They know not how to swim, they know not how to cast nets. Pearlfishers dive for pearls, merchants sail in their ships, while children gather pebbles and scatter them again. They seek not for hidden treasures, they know not how to cast nets. The sea surge up with laughter, and pale gleams the smile of the seabeach. Deathdealing waves sing meaningless ballads to the children, even like a mother while rocking her baby´s cradle. The sea plays with children, and pale gleams the smile of the seabeach. On the seashore of endless worlds children meet. Tempest roams in the pathless sky, ships are wrecked in the trackless waters, death is aboard and children play. On the seashore of endless worlds in the great meeting of children. 노점에서 나는 타고르의 시집 ‘Stray Birds, Lover`s Gift and Crossing`을 샀다. 100루피를 달라는 걸 50 루피에 사고 뒷 표지를 보니 정가가 60루피가 아닌가. 잠시 싸게 샀다고 생각한 것이 착각이었다. 책의 내용에 비하면 아까울 게 있을 수 없는 것이지만. 하루를 보내고 조용히 캘커타의 인상을 적어본다. 까마귀의 도시, 차선이 있으나 마나한 도시, 소음과 먼지의 도시,길거리에 마구 똥을 싸는 아이들, 빈부격차가 심한 나라, 캘커타의 견공들은 한결같이 얼굴이 닮았다. 사람보다 차가 우선인 도시, 다양한 것이 뭉뚱그려져 있는 도시가 캘커타인 것 같다.
2005.1.8토 밤 9시 45분 오늘은 완전히 혼자 캘커타를 여행했다. 아침에 일찍 깼다가 다시 잠이 들어 9시 30분에 깼다. 제일 먼저 Tagore House엘 가고 싶다. 토요일 Tagore House는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개관이다. 지하철을 타고 Girish Park역에서 내려 20여분 걸어갔더니 Tagre House로 들어가는 Gate가 보였다. 300여년전에 동인도 회사가 캘커타로 옮기면서 발전하기 시작하여 식민지 시절 인도의 수도가 되었던 캘커타는 London 다음가는 번영을 누렸다고 한다. 1772년에서 1912년까지 140년동안 인도의 수도로서 번영을 누렸던 캘커타는 지식인계층이 민족주의적 경향을 띄자 그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영국 정부의 일련의 조치가 취해졌다. 수도는 뉴델리로 옮겨지고 뱅갈주는 분할되었다. 더욱이 인도 독립 후 East Bengal 이 동파키스탄(지금의 방글라데시)으로 편입되는 과정에서 난민사태가 발생하여 부귀영화는 막을 내리고 도시는 급격히 쇠락하였다. 타고르 하우스 인근도 마찬가지다. 길바닥에 쓸어져 잠든 엄마 옆에 두세 명의 젖먹이 아이가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매달려있는 모습은 여기저기에 흔하다. 죽은 듯 먼지를 뒤집어쓰고 길바닥에 누워있는 사람들. 저들은 어떻게 하루의 끼니를 때우며 연명하는 것인가. Tagore House로 들어서니 정원이 있고 저만치 타고르의 흉상이 보인다. 타고르의 흉상 앞에서 사진을 찍고 싶었으나 사진촬영은 금지되어 있다. 50루피를 내고 건물의 내부를 꼼꼼히 살펴보았다. 내부는 타고르기념관으로 꾸며져 많은 자료가 전시되어 있었다. 어린 시절 타고르가 뛰어놀던 거실이 있고 타고르가 임종한 방엔 병석의 79세 타고르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영국 유학시절의 젊은 타고르의 사진엔 콧수염도 없다. 아내 Debi의 사진도 있다. 일본 중국 태국 미국 러시아 독일 싱가포르를 방문했을 때의 사진들이 걸려 있었다. 아내가 1901년 죽고 1903년엔 딸, 1905년엔 둘째 아들, 1907년엔 아버지를 잃는 불운이 닥쳤다. 1912년 자기가 쓴 시를 영국 사람들에게 낭독했을 때 그들이 너무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스스로 번역한 시를 Gitanjali(Song offering)란 시집으로 출간하게 되었고 그 이듬해 타고르는 동양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타고르 하우스에는 시인이 입던 옷 그림을 그리던 이젤, 화구도 전시되었는데 타고르는 작곡도 많이 했고 말년에는 그림에 심취하여 많은 작품을 남기기도 했다. 아내가 쓰던 부채며 화장품도 고스란히 전시되어 있다. 3층엔 아버지인 철학자 Devendranath Tagore의 사진과 유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Tagore House는 타고르의 고향집이다. 이 건물에 Rabindra Bharati University가 붙어 있는데 타고르의 예술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대학이라고 한다. 건물의 상당부분이 페허인채로 남아 있고 일부 건물에서 음악 등 예체능 강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예술을 가르치는 소규모 대학이었다. 마침 토요일이고 이른 시간이어서 학생들을 거의 만나지 못했다. 밖으로 나왔다가 다시 대학건물로 들어갔을 때 학생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건물은 몹시 낡았으나 학생들은 발랄하고 활기에 넘쳤다. 나는 입학 절차와 학비, 커리큘럼 등을 알고 싶었는데 직원들의 영어가 시원치 않아 의사소통이 잘 안되었다. 나는 별 도움이 안되는 한 장 짜리 팜플렛 하나를 얻었는데 5루피를 받으며 영수증을 떼어 주는 것이 아닌가. 홍보책자 하나도 제대로 갖추고 있지 않은 대학 사무실이 인도의 비참한 교육 현실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인도에서 느낀 것 중 하나가 영수증 제도가 철저하다는 것이다. 3루피 4루피를 내고 버스를 타도 영수증은 꼭 끊어주는 것이다. Tagore의 여러 사진을 보고 나는 감동을 느꼈다. 타고르의 생존시에도 캘커타는 이렇게 지저분하고 가난했을까. 캘커타의 번영과 쇠퇴를 모두 체험했던 타고르가 아니었을까. 사진 자료 중엔 거리에 쓸어져 있는 두 빈민을 동정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타고르의 사진도 한 장 있었다. 그는 세계적 영적 스승임에 틀림 없다. 나는 저번에 샀던 책을 들춰봤다. 다음과 같은 구절도 있었다. ⅩⅩⅩ The sunshine greets me with a smile The rain, his sad sister, talks to my heart. 햇빛은 나를 미소로 맞이하고 그의 슬픈 누이동생, 빗방울은 내 마음에 속삭이네. ⅩⅤⅠ I do not ask thee into the house. Come into my infinite loneliness, my lover. 나는 그대에게 나의 집으로 오라하지 않네. 나의 무한한 고독 속으로 그대 오게나, 애인이여. ⅩⅠⅤ The road is lonely in the crowd, for it is not loved. 길은 군중 속에서 외롭네, 사랑받지 못하기 때문에. 참고사항) o 중국 식당의 음식가격: 45루피~ 100루피 o 간이화장실(남자용): 도로를 향해 3면을 벽돌로 쌓아올렸다. o 빅토리아 메모리얼의 정원: 꽃이 많이 낯익다. 사루비아, 백일홍, 국화, 장미, 금송아 등이 우리나라 꽃밭을 보는 것 같았다. 미국의 꽃들은 낯설었다. o 과일이 낯익다: 배, 사과가 맛과 모양이 비슷한데 작고 맛이 덜 좋다.대추는 한결 크고 맛도 좋다. 도마도 바나나는 싼데 도마도는 우리나라보다 작다. 오렌지는 미국산 오렌지와 비슷한데 맛은 제주산 감귤에 가깝다. 파파야, 망고, 파인애플, 찌꾸는 감자처럼 생겼는데 맛은 감맛이다. 포도는 우리나라 캠벨 포도와 같은 것이 있고 길죽 길죽하고 껍질이 더 두꺼운 독특한 맛의 포도가 있는데 비교적 비싸며 검은색 포도와 청포도가 있는데 검은색이 약간 더 비싸다. o 매우 드물게 애완견이 보인다.
2005.1.9 일 맑음 아침 식사 대용으로 바나나를 샀다. 10루피 (260원 정도)에 5개는 주니 배가 부르도록 먹을 수있다. Tram(전철)을 탔는데 어디에서 내려야 할지 정류장 이름도 없고 안내 표시도 없어 난감했다. 시내 구경도 할 겸 무작정 끝까지 갔다. 차장이 어디까지 가느냐고 묻는 것 같은 데 힌두어로 물으니 알 수 가 없다. 영어를 못하는사람도 많아 의사소통이 안 될 때도 자주 있다. 종점에 내려 버스를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저녁식사는 호텔 근처의 중국음식점 howhua에서 mixed noodle soup(짬뽕)을 먹었다. 56루피였는데 맛이 있다. 식사를 마치고 여기저기 LSD라는 간판이 붙은 집으로 가 집으로 전화를 했다. 분당 20루피(520원)란다. 아내가 무척 궁금했었나보다. 162초에 54루피(1400원)를 지불했다. 다시 인터넷 카페에 들러 집으로 메일을 보냈다. 시간당 15루피(390원). 캘커타에서의 인터넷 요금은 싼 편인다. 한글이 지원되어 편리하다. 다만 자판을 외우지 못해 그를 입력하기가 좀 어려워 메일을 영어로 써야 했다. 카페를 나와 길을 걷는다. 거대한 인도인의 행렬에 나는 이방의 나그네, 그러나 미국에서보다는 낯선 느낌이 덜 드는 것 같았다. 비용에 대한 걱정이 덜한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2005.1.10월 맑음 아침 열시쯤에는 Al-Gaus Hotel에서 Continental Guest House로 옮겼다. Continental이 150루피로 50루피가 싸기 때문이다. 그리고 타고르 하우스를 다시 방문하였으나 사진은 찍지 못했다. 건물 내에서는 일체 사진 촬영이 금지되었다. 밖에서 찍으려 하나 사진을 찍을만한 장소가 없었다. 타고르의 집과 한데 붙어있는 Barahati University로 들어가니 학생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여기저기 등교하는 학생들로 교정이 활기에 넘친다. 건물은 몹시 낡았지만 학생들의 발랄한 모습을 보니 인도의 희망을, 인도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보는 것 같다. 타고르 하우스를 다시 방문하고 나오는데 디지털 카메라에 용량이 부족하다는 메시지가 뜬다. 할 수 없이 다시 Park Street에 돌아와 걷고 있는 데 어디서 왔는지 또 한 사람이 따라오며 말을 건다. 카메라 가게가 어디 있는냐고 묻자 그는 능숙한 몸놀림으로 카메라 수리점으로 안내했다. 그러나 거기에는 메모리 카드가 없었다. 그는 다시 카메라 판매점으로 안내해 주었다. 이런 안내인을 자꾸 만나니 걱정이 된다. 나중에는 꼭 돈을 요구하고 자기네 가게를 소개하는 등 관광객을 난처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돈을 안 받는다면서 그냥 friendly guide(우정의 안내) 혹은 인도에 온 guest(소님)니까 안내한다고 말은 하지만 속셈은 그게 아닌 것이다. 직업삼아 하는 것이다. 얼마동안 함께 다니며 이것저것 소개하고 나중엔 몇 분 동안 도와줬다며 돈을 요구한다. 가게 주인들 하고 계약을 맺고 얼마의 수당을 받고 있는 것 같다. 공식절차를 밟아 안내인으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길거리에서 외국인이면 누구에게나 접근하여 즉흥적으로 상가 안내 등을 한다. 안내인이 카메라 가게까지 안내해 주었다. 카메라점 점원은 메모리 카드를 새로 구입해야 한다며 가장 싼 것이 3,650루피짜리와 1,900루피 짜리가 있다고 한다. 사긴 사야하지만 비용이 문제다. 나중에 사기로 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안내를 해준 사람에겐 그냥 고맙다고만 하고 헤어졌다. 헤어지니 너무 많이 걸어서 그런가. 피로감이 몰려왔다. 20루피에 릭샤를 타고 Free School Street에 돌아와 Hong Kong Chinese Restaurant에서 44루피에 chicken soup를 먹었다. 닭죽이었다. 식사 후 오후엔 봉사활동 신청을 위해 마더 하우스로 갔다. 월, 수, 금 3시부터 신청을 받는데 도착하니 2시쯤 되었다. 나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 테레사 수녀님의 무덤도 보고 성당 내부도 둘러보았다. 수녀님이 세운 이 봉사단체 건물을 캘커타 시민들은 마더 하우스라고 부른다. 수녀님의 동상과 사진엔 성스러운 빛이 감돌고 자비로움이 흘러넘쳤다. 2층 성당에선 수녀님들 여럿이 기도하고 있었다. 1층의 수도가에서는 선교회 복장을 한 여러 수녀님들이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다. 1층 한 쪽에 테레사 수녀님 동상이 있었는데 자비롭게 손을 앞으로 내밀고 계신 모습이다. 수녀님들은 이 동상 앞을 지나갈 때면 수녀님의 손을 한 번씩 잡아보고는 지나가는 것이다. 복도에서 성당 앞을 지나갈 때도 무릎을 꿇고 머리가 땅에 닿도록 몸을 숙여 절을 하고 지나가는 것이다. 키도 작고 몸집이 작은 인도의 수녀들이 제일 많은데 벽안의 수녀님들도 상당수 있었고 동아시아 수녀님들도 있었는데 한국 수녀님들 같았다. Volunteer(봉사자) 담당 수녀님은 서양 수녀님이었다. 3시가 되니까 담당 수녀님이 앞장서서 150m 정도 떨어진 House of charity(자선의 집) 건물로 옮겨 그곳에 마련된 여러 개의 간이 벤취에 앉았는데 자연스럽게 서양인은 서양인끼리 동양인은 동양인끼리 앉게 되었다. 곧 담당봉사자가 와서 여러 가지 봉사활동에 대한 안내를 해 주었다. 2005년 1월 10일 오늘 한국인 신청자는 5명이었다. 여자 대학생 2명 젊은 부부 한 쌍 그리고 나였다. 서양인까지 포함하면 오늘 15명 정도가 봉사활동을 새로 신청했다. 아까부터 수녀님과 의논을 하며 직원처럼 열심히 일하는 동양인이 있었는데 저 분은 뭐하는 분일까 하고 궁금했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분은 1년 동안 이곳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한국이이었다. 이 분이 우리 5명에게 자세한 안내를 해주었다. 먼저 손바닥만한 신청서에 이름, 한국 주소, 캘커타 도착일, 캘커타 출발 예정일을 적어서 제출했다. 다음 자세한 안내가 이어졌다. 인도에서는 물을 조심하라. 길거리에 쓸어져 있는 사람이나 아이들에게 돈을 주지 마라. 아기들도 자기 아기들이 아닐뿐더러 기업적으로 그들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엔 씁쓰레한 생각이 들기도 하고 한편으론 그들이 그대로 방치된 것이 아니지 않는가 하는 안도의 느낌이 들기도 했다. 안내는 계속 이어졌다. 6시에 아침 미사가 있다. 7시쯤 빵과 바나나 커피로 간단한 아침 식사 7시 30분 쯤 각 봉사활동 장소로 출발 8시부터 12시까지 오전 봉사활동 저녁에는 6시 30분에 묵상의 시간이 있는데 목, 토, 일요일엔 6시에 있다. 목요일엔 봉사활동을 하지 않는다. 봉사는 오전과 오후 구분해서 하는데 오후에도 하겠다고 하면 할 수 있는데 여행임을 감안하여 오전만 하는 것도 괜찮다. 봉사장소는 일곱 군데가 있는데 오전 오후 모두 하는 곳이 있고 오전만 하는 곳이 있다. 여자 봉사자만 필요한 곳이 있고 남녀 봉사자 모두 필요한 곳이 있다. 각자 식사하고 각자 호텔에서 자고 아침 6시 전까지 Mother House로 오면 된다. 일곱 군데가 다 따로 떨어져 있는데 같이 가는 사람들끼리 가는 것이 좋다. 끝나면 각자 자기 숙소로 돌아간다. 이것 저것 시키는 사람이 있거나 일과표가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 하는 것을 보면서 알아서 열심히 하면 된다. 사진 촬영은 봉사 마지막 날 수녀님의 허락을 받고 찍을 수 있다. 일곱 군데 봉사기관은 다음과 같다. 1.쉬쉬바반(신청서 받던 건물) : 오전 오후 봉사 가능. 여자 봉사자만 필요. 갓난아기 돌보는 곳. 장애아 비장애아 다 있다. 5세 이하의 갓난아기들을 돌본다. 2.쉬쉬바반 하우라 : 남녀봉사자 모두필요. 오전봉사만 가능. 유치원이나 학교 같은 분위기에서 조금 큰 아이들을 돌보는 곳. 3.다야단 : 장애 어린이를 돌보는 곳. 남녀봉사자 모두필요. 오전 오후 봉사 가능. 4프렘담 : 장애 있는 어른들 씻기고 청소하고 면도, 시트 까는 일 등을 한다. 남녀봉사자 모두 필요. 5.깔리 가트 : 임종의 집. 중환자 보호. 남녀 봉사자 모두 필요. 오전 오후 봉사 가능 6.싼티간 : 학대받는 여성들 보호. 파키스탄에서 넘어온 불법 난민 여성들 심신의 안정을 목표로 함. 여자 봉사자만 필요. 오전봉사만 가능. 7.니보디보 : 남자수사가 관리. 장애 남자 아이들, 길거리의 아이들을 돌봄. 일요일엔 많은 봉사자 필요. 거리가 좀 먼 편이며 점심식사 제공. 이와 같은 설명을 듣고 나서 수녀님 면담이 있었다. 어디서 하고 싶으냐고 해서 깔리 가트라고 했다. 수녀님은 조그만 메달과 영수증을 주었다. 메달에는 성모님의 모습이 있다. 언제부터 언제까지라 날짜도 적혀 있지 않았다. 기간은 임의로 하면 되는가보다. 하루도 좋고 한 달도 좋고 1년도 좋을 것이다.
마더하우스를 나와서 기차표 예매소로 갔다. Shantiniketan 가는 오전 11시 10분 기차표를 예매했다. 130루피. 30루피는 수수료였다. 하우라역 출발이다. 하우라역까지는 택시로 70루피 정도란다. 3루피면 버스로 갈 수도있다. 내일(화요일) 쌴티네케탄에 갔다가 모래(수요일)에 와야겠다. 샨티네케탄엔 타고르가 세운 대학이 있기 때문에 꼭 가고 싶었다. 그 다음 목요일 하루 쉬고 금요일부터 봉사활동을 하자. 아침에 일찍 미사에 참여하려면 alarm clock(자명시계)이 있어야 할 거 같다. 시계점에 들렀더니 작은 것은 70루피(1800원정도), 조금 큰 것은 110(2800원정도)루피란다. 봉사를 신청한 두 여대생 중 하나는 인하대 경영학과 3학년 마치고 휴학중이라 했고, 또 한 학생은 한양대학교 중국어과 3학년이라고 했다. 서인천고등학교 1년 선후배 사이며 인하대 학생은 만수 3동 성당 신자라고 했다. 지금은 옮겼지만 나도 전에 만수3동 성당에 적을 두기도 했었다. 나의 집도 만수동인데 인도에서 동네 학생들을 만난 것이다. 40여일 전 델리로 들어와 여러 곳을 들르며 캘커타 까지 왔다고 한다. 1월 19일 켈커타공항을 떠나 태국으로 가서 열흘 정도 있을 예정이란다. 그들은 내 숙소에서 30여 m 떨어진 Ashok G.H에 머문다고 했다. 봉사활동 신청을 마치고 Mother House에서 Shudder St.까지 같이 걸어 왔다. Shantiniketan에 다녀와서 한번 숙소로 들리겠다고 하고 헤어졌다. 내 숙소 내 방 옆에 온갖 것이 마구 버려진 헛간 같은 곳이 있어서 살펴보니 별 것이 다 있었다. 찟어진 배낭, Train at a glance라는 인도 철도국이 발행한 낡은 기차 시간 안내 책자, 중앙 M.B에서 발행한 반 쪽 짜리 ‘인도 백배로 즐기기’, 영문으로 된 농업관련 서적 ‘Agriculture`, 독일어 소설 나부랭이 등등이 어지럽게 쳐박혀 있는데 Charles Dickens의 Oliver Twist와 L.M Montgomery의 `Emily of New Moon`이 있었다. Oliver Twist는 기차나 비행기에서 읽으면 심심풀이가 될 것 같아서 낡아서 바스러질 것 같은 책을 쓰레기통에서 건져놓았다. 디킨스의 문체가 무척 끌렸기 때문이다. 숙소에서 쉬다가 밤 10시는 되어서 밖으로 나와 Internet Cafe에 들러 메일을 확인하고 인천 남동구 문인회인 남동문학 카페를 방문했다. 내가 어제 보낸 메일은 아내는 아직도 확인하지 않고있었다. 남동문학에 내가 지금 인도 여행중이라는 사실을 알렸다. 그리고 김묘진 회장이 연재하는 인도 여행기에 꼬리글을 달았다. 1시간 쯤 인터넷을 했는데, 마감시간이란다. 요금은 10루피였다. 밖으로 나오니 제법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더니 점점 강해진다. 겨울철엔 비가 많이 오지 않는다는데 제법 많은 양이다. 이젠 먼지가 좀 씻겨내려갔을까. 먼지와 소음의 도시라고 느꼈던 캘커타. 저 빗줄기가 나뭇잎, 지붕, 공기 중의 먼지를 깨끗하게 씻어내렸으면 좋겠다. 숙소로 다시 돌아오는데 밤 거리의 개들이 열심히 쓰레기통을 뒤져 부지런히 먹을 것을 찾는다. 낮에는 죽은 듯이 길바닥에 누워있다가 밤이 되면 쓰레기통을 뒤져 먹을 것을 찾나보다. 인도의 최대 청소부가 저 개와 까마귀와 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아무데나 마구 버린다. 그러면 까마귀, 개, 쥐가 웬만한 것은 다 먹이로 취하는것 같다. 이를테면 생태적인 도시인지도 모른다. 캘커타에 소는 그리 많지 않다. 바라나시 같이 길거리에 소와 양이 많은 도시는 소와 양이 거리의 청소부 역할을 다 할 터이다. 농작물의 무농약 재배처럼 캘커타가 친환경적으로 돌아가는 지도 모를 일이다. 썩기도 전에 모든 찌꺼기가 다 먹이로 취해질 테니까. 밤 12시가 임박한 지금도 까마귀 소리가 계속 들린다. 비가 오기 때문일까. 비가 오기 때문에 까마귀들도 잠이 들지 못하는 것일까. 길거리에 아무렇게나 담요한 장 뒤집어 쓰고 자던 집 없는 사람들은 갑자기 내리는 비에 어디로 피신했을까. 죽은 쥐를 까마귀가 열심히 뜯어먹는 것을 보았다. 캘커타의 저 더러운 거리가 그래도 위생적으로 별로 문제가 없는 것은 까마귀와 개와 쥐가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도심의 작은 공원이나 건물 옆의 공터를 잘 보면 수십 개의 구멍속으로 쉴새 없이 쥐들이 들락날락하는 것을 볼 수있다. 삐죽삐죽 대가리를 내밀고 있다가 인기척이 들리면 구멍속으로 재빨리 몸을 숨기는 쥐들. 이 대도시에 거대한 쥐의 군단이 진을 치고 있는 것이다. 썩기 전에 모든 음식 찌꺼기를 거두어가면서. 개들은 또 누가 기르는 것 같지도 않다. 주인도 없이 길거리에서 자고 길거리의 쓰레기통을 뒤지며 길거리를 집 삼아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주인이 따로 있어 챙겨주거나 돌보는 것 같지도 않았다. 불룩하게 새끼를 밴 개도 있고 주렁주렁 새끼를 달고 있는 개도 있다. 길거리에서 살며 발정기가 되면 저희들끼리 야생개처럼 교미하고 새끼낳고 거리에서 새끼를 키우며 또 그렇게 세대를 이어가며 살고 있는가보다. 전통과 현대, 과거와 미래가 한통 속으로 뭉퉁그려져 있는 도시, 새와 개와 쥐가 어울어져 살아가는 도시. 그래서 타고르와 같은 위대한 인물이 나온 것이 아닐까. 또 Mother Teresa 같은 성인이 있게 된 것이 아닐까. 아직은 인도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다. 다만 과일도 꽃도 우리나라의 것과 많이 닮았다는 것을 느낄 뿐이다. 길거리에서 파는 꽈리, 무우, 오이까지도 우리나라와 너무 닮았다.
11시 10분 기차를 예약해놓았기 때문에 8시 30분 G,H 를 나왔다. 밤새도록 비는 내리고 까마귀는 밤에도 계속 울어대 잠을 한 숨도 못잤다. 호텔 옆에 큰 나무가 몇 그루 있는데 그것이 까마귀들의 잠자리라 여간 시끄러운 것이 아니다. 아마 어제밤은 비가 내려서 까마귀들도 잠자리가 뒤숭숭했었던 것 같다. 담요가 다른 호텔보다 얇아서 그런지 추워서 밤새 뒤척이다가 잠 한 숨 제대로 못자고 새벽에 일어나 세수하고 양치질 하고 소설 Oliver Twist를 읽다가 8시 30분 여관을 나왔다. Park Street로 가서 하우라역 가는 버스를 탔다. 3루피면 금방 오는 걸 택시를 탔으면 70루피는 주었어야 했을 것이다. 기차역에 도착하니 9시 정도 되었다. 두 시간을 여기서 기다려야 하나? 인터넷 카페에나 가려고 해도 근처에는 없는 것 같았다. 예매한 열차시간표를 확인하고 이리저리 역내를 돌아다니며 구경하는 일도 지루하다. 까마귀는 역 구내까지 들어와 이리저리 천장 주변을 날아다닌다. 귤 3개를 18루피에(470원) 사서 아침 식사 대용으로 먹었다. 귤과 포도는 인도에서 비교적 비싼 과일에 속한다. 대기실 한 쪽에 있는 안내소에 예매표를 보여주고 플래트홈 번호를 물어보니 어딘가로 전화를 하더니만 7번 Platform이란다. 다시 대기실 벤치로 와서 기다리기를 1시간. 배낭을 메고 천천히 7번 플래트홈으로 가니 마침 211번 기차가 구내로 들어왔다. 예매표의 coach(객차)번호는 S1(sleeper)이었는데 sleeper라고 써있는 객차가 있어서 곧 탈수 있었다. seat no(좌석번호) 13번. 안내책자엔 캘카타에서 샨티네케탄까지 2시간 30분이 걸린다고 했으나 그것은 express train(급행열차)다. 내가 탄 차는 local train(완행열차)이어서 역마다 다 서면서 오느라고 뽈뿌르역까지 오는데 4시간이 넘게 걸렸다. 샨티네케탄으로 가려면 뽈뿌르역에 내려 릭샤로 20분정도 가면 된다. 내가 굳이 샨티네케탄에 가고 싶었던 것은 그곳이 타고르가 세운 대학이 있는 대학도시이기 때문이다. 그 대학 내에 있는 타고르 박물관을꼭 보고 싶었다. 뿔뿌르역에 내려서 싸이클 릭샤왈라가 안내해주는 대로 갔는데 첫 번째 여관엔 빈 방이 없다고 했다. 다시 찾은 곳이 샨티네케탄 호텔이었다. 250루피에 방을 예약했다. 250루피래야 우리돈으로 6500원으로 큰돈이 아니지만 인도에서 생활을 하다보니까 인도의 생활습성에 젖어서 그런지 그 돈도 큰돈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호텔에 배낭을 두고 거리로 나와 걸어다니는데 한적한 시골 분위기가 느껴지는 고요하고 아늑한 도시였다. 거대한 규모의 캠퍼스가 있었는데 캠퍼스 구경은 나중에 하기로 하고 길가에 늘어선 가게집을 살펴보았다. 각종 기념품들을 팔고 있었는데 가방, 옷, 수건, 기타 공에품 등이 다채로웠다. 역시 흙으로 구워낸 타고르의 인물상이 가게마다 있고 타고르의 사진도 많았다. 역시 타고르가 이 지역에서 어떤 존재인지 짐작케 하는 부분이다. 여기저기 거리 구경하다가 인터넷 카폐에 들러 메일을 확인하고 승현, 승우에게 메일을 썼다. 날은 이미 어두어져 있었다. 11루피에 egg toast로 간단히 저녁을 때우고 구슬 목걸이 3개를 30루피에 사고 타고르가 세운 대학으로 갔다. Vishwa Bharati University대학이었다. 나는 캠퍼스를 둘러봤는데 밤늦게까지 노래하며 신입생 환영회를 하고 있는 학과도 있었다. 또 여기저기 어두어진 교정에서 데이트하는 학생들도 눈에 띄었다. 다시 여관으로 오는데 한 시간 이상 헤매도 여관의 위치를 찾을 수가 없었다. 나중에 그 대학 의과 대학생이라는 학생을 만나 친절하게 호텔까지 안내를 받았다. 친절한 학생이었다. 우리는 이메일 주소를 주고 받았다. 캘커타에서 뽈뿌르까지 오는 동안 계속 밖을 내다보며 왔다. 소떼, 염소떼가 많이 보였고 벼를 벤 논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여기저기 새로 모를 심기 위해 조성해놓은 못자리도 보였다. 또 모를 심는 광경도 볼 수 있었다. 일렬로 줄을 서서 모를 심는 모습이 우리의 모내기 모습과 똑 같았다. 그러나 못줄을 옮겨가며 심지는 않았다. 여기 저기 주택가나 길가에 돼지의 모습이 보였는데 주둥이가 긴 멧돼지 모습이었다. 저 돼지들의 주인이 있는 것인지 지금도 궁금하다. 전기줄에 제비와 흡사한 새가 앉아 있어서 제비인 줄 알았는데 덩치가 더 크고 온몸이 까만 것이 우리나라에 찾아오는 제비와는 모습이 달랐다. 꼬리가 V자 모양으로 갈라진 것이 흡사하기는 했다. 2005.1.12 수 8시 30분에 기상. 세수하고 check out. 밖으로 나와서 걷는데 자전거를 세우고 서 있는 여학생이 꼭 우리나라 사람같이 생겼다. 서로 바라보다가 Hello, Korean? 하고 물으니 아니란다. 분명하게 Indian이라고 하지 않는가. 아마도 인도 북부 네팔이나 티벳 근처 출신일 거라고 짐작을 했는데 무척 친절하게 길 안내를 해주는 것이다. 안도사람도 무척 친절하다. 이 여자 대학생도 예외는 아니었다. Kollkata에서 만난 안내인들은 가게를 소개하고 구경이나 하자고 하는 것이 보통인데 이 대학생은 그런 것 없이 순수하게 안내를 해주는 것이다. 자전거를 끌기도 하고 내가 앞에 타며 여학생을 태워주기도 하며 한 시간 정도 함께 하였다. 내가 중국 사람을 닮았다고 하니까 조상이 중국에서 왔을지도 모른다며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자기는 그냥 인도사람이라는 반응이다. computer science를 전공하는 학생으로 대학원 석사과정 일년 차란다. 자기도 온지 얼마 안 되어 이곳을 잘 모른다며 black tea를 시켜주고 인도의 전통식사인 뿌리를 시켜주어서 맛있게 먹었다. 자기는 인도의 동북부 시킴주가 고향이라고 했다. 그리고 기숙사를 알려주며 이곳에 한국유학생들도 있다고 곁들였다. 똑똑해보이는 학생이었다. 자전거포에서 20루피에 자전거를 빌려1시간 이상을 이리저리 타고 다녔다. 대학구내도 다 돌아보았다. 中國學院(중국학원)이라는 한자가 걸려있는 커다란 건물이 인상적이었다. 이 학교의 중국학부는 유명하다는 얘기를 들은 일이 있다. 학교 구내에 있는 타고르 박물관은 꼭 보고 싶었는데 그날이 마침 휴관일이란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대학 캠퍼스가 무척 넓기는 한데 현대적 건물은 하나도 없었다. 나도 여기에 와서 공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정년 퇴직후 일이년 기간으로 이곳에 와서 타고르 연구라도 했으면 하는 막연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샨티네케탄은 자동차는 붐비지 않는데 자전거는 매우 많은 도시다. 말하자면 공해가 없는 청정도시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을 국제적으로 키우려면 이런 곳으로 유학을 보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쉬운대로 샨티네케탄은 대충 둘러보았다. 피상적이나마 대학 캠퍼스도 다 보았고 자전거가 중요 교통수단인 한적한 대학도시의 쾌적한 분위기에도 젖어보았다. 하루 더 묵을까 생각도 해보았는데 특별하게 더 볼 것도 없을 거 같아 다시 캘커타로 돌아가기로 했다. 뽈뿌르에서 오후 1시10분 기차를 탔는데 샨티네케탄으로 갈 때는 4시간이 걸렸는데 올 때는 3시간이 걸렸다. 표도 갈 때는 여행사 수수료 포함 130루피를 주었는데 올 때는 48루피였다. 예매도 필요 없었다. 역으로 와서 바로 표를 사서 그냥 타면 되었다. 나라마다 관습이 다르고 모든 체제가 다르기 때문에 자꾸 시행착오를 겪는 것이다. 비교적 단거리라 그런지 기차내에서도 표 검열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렇지만 그 후에 기차를 탔을 때는 엄격하게 표검사를 하는 승무원들을 볼 수 있었다. 말하자면 그 어마어마한 국토의 모든 기차에서 검표를 할 수는 없는 것인지 모른다. 모든 구간에서 검표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구간에서만 검표가 이루어지는 것 같았다. 저녁 무렵 캘커타에 도착하여 ATM(현금자동인출기)을 시험적으로 사용해보았다. 달라가 나올 줄 알았는데 루피가 인출된다. 3천루피를 인출하여 Camera memory card를 2000루피에 사고 선글라스를 125루피에 샀다. 노점에서 소형 탁상시계도 하나 샀다. 35루피였다. Mother House에서 봉사활동을 하려면 5시에 일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카메라 때문에 신경이 많이 쓰였는데 100장까지 촬영 저장할 수 있다고 하니 안심이 되었다. 그런데 이 카드로 해상도를 조절하여 500장을 찍어가지고 귀국할 수 있었다. 다시 continental Guest House에 1일 150루피에 예약을 하고 나오니 바로 옆 건물에 JoJo Restaurant이 있었다. 인도 안내책자에 소개된 바로 그 식당이라 호기심 반 식사도 할 겸해서 가 보았더니 동서양의 많은 사람들이 식사도 하고 음료수도 마시며 대화를 하고 있었다. 나도 메뉴를 한참 보다가 양이 적은 닭도리탕 정도겠지 하고 clear chicken soup를 시켰더니 밥공기 만한 그릇에 말간 닭국물이 나오지 않는가. 국물만 나와서 clear(맑은)라는 말이 들어간 것 같다. 우리의 삼계탕 국물 비슷한데 양이 하도 적어서 당황할 정도였다. 맛은 삼계탕 국물맛인데 양이 너무 작았다. 다른 것을 하나 더 시킬까 하다가 그냥 35루피를 지불하고 나와버렸다. 이제 어제 Mother House에서 만난 인천 만수동에 산다는 대학생에게 가봐야지. 샨티니케탄에 다녀와서 들른다고 했는데.... Ashok G.H 4층으로 올라가서 한국에서 온 여학생을 찾아왔다고 하니 She is sick.이란다. 방으로 가봤더니 선배라는 학생이 토하고 난리다. 약봉지를 여러 개 들고 의사가 와 있었다. 물과 음식과 날씨(전날밤 비도 오고 해서) 때문에 몸살이 난 것 같았다. 결국 왕진온 의사의 의견에 따라 Royd Nursery Home and Health Care(종합병원)으로 모두 함께 가서 linger주사를 맞는 걸 보고서야 여관으로 돌아왔다. 주사 맞는데만 12시간이 걸린다고 하니 잠은 거기서 자야 할 것이다. 나는 여행자 보험에 가입했으면 영수증을 챙겨놓아보라고 얘기했다. 내가 병이 났다면 얼마나 난처하겠는가. 배낭여행의 기본은 저렴하게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여행효과를 보려는 것 아닌가. 생각하지도 않던 경비가 들어간다면 속상할 터.... 그래 “ 병원비 때문에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건강이 제일이지 않는가. Mother House에서 하루 봉사활동을 하고 오늘은 못했다고 했다. 빨리 건강해져서 같이 봉사활동을 했으면 좋겠다. 인도의 과일을 맛보고 싶어서 포도 1Kg을 샀다. 검은 포도와 청포도를 섞어서 샀다. 우리나라 포도와는 생김새도 맛도 다르다. 모양은 타원형이고 맛이 더 좋다. 청포도보다는 검은 색 포도가 맛도 더 좋고 가격도 조금 더 비쌌다. 우리 나라 포도처럼 알맹이가 쏙 빠져나오는 것이 아니라 단감처럼 껍질과 속살이 붙어있어서 껍질 채 그대로 먹어야 한다. 속살이 팍팍하고 새콤달콤하여 입맛에 맞았다. 독특한 맛으로 우리나라 어떤 과일보다 맛이 잇었다. 1Kg에 60루피로 다른 과일에 비해 비싼편이다. 인도에서 가장 싼 과일은 바나나다. 작은 것은 1루피 큰것은 1개에 2루피 52원정도다. 100원어치만 먹으면 시장기를 면하기에 충분하다. 그 다음이 찌꾸라는 과일인데 옛날 시골에서 먹던 돼지감자와 비슷하다. 혹시 그 찌꾸라는 과일이 돼지감자가 아닐까 하고 생각해보았다. 값도 싸 1kg에 6루피(156원)다. 이것도 150원 어치만 먹어도 시장기를 달랠 수 있다. * 타고르가 세운 대학건물과 샨티네케탄 도시 사진이 모두 분실되어 아쉬움이 남는다.
2005.1.13 목 맑음 비가 온 다음이라 그럴까, 오늘은 햇빛이 제일 밝게 빛나는 날이다. 11시쯤 외출하여 길을 알아놓을 겸 Mother House까지 가보기로 했다. 가는 길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버스를 타고 가면 두번 타야 하는 등 오히려 번거롭다. 걸어서 가는 것이 더 편하다. 내일부터 새벽마다 가야되는데 걸어다니기로 했다. Mother House에서 깔리가트 임종의 집까지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할지 걱정이 되었다. 내일 아침 5시 30분까지 Mother Hose에 가 아침 미사에 참석하고 다시 임종의 집까지 가서 봉사활동을 하기로 신청해 놓은 상태. 모든 것이 처음이라 조금 걱정도 되었다. 봉사활동을 잘 해서 좋은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다시 Sudder St.에 와서 점심식사를 했다. 유명식당이 아니더라도 여행자거리 골목골목에는 간이 음식점들이 즐비하다. 값도 저렴하여 일반 식당의 3분지 2수준인데 양도 맛도 손색이 없다. 경비를 아끼는 한 방법이 될 것 같다. Mixed noodle Soup은 짬뽕보다 더 잔맛이 있는 것 같았다. Chicken Soup도 맛이 있었다. 돼지고기 음식도 한번 맛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병이 났던 여학생이 궁금했다. 몸이 나아 병원에서 나왔을까. 빨리 나아서 나머지 여행 일정을 잘 소화해야 할텐데. 학생들이 착해보이고 모범학생들 같았다. 이제 나의 관심사는 내일 새벽부터 시작되는 봉사활동. 다섯 시에 일어나서 준비해야 한다. 자명종 시계도 준비했으니 걱정 없겠지. 그 여학생들은 내일 봉사활동에 갈 수 있을까. 저녁 6시쯤 들렀더니 둘다 외출중. 다행이다. 몸은 다시 회복되었나보다. 2005. 1. 14. 금 맑음 어제 밤에는 잠을 자지 못했다. 8시에 잠을 청했으나 잠은 오지 않고 엎치락 뒤치락거리다가 시간을 보니 11시 30분쯤 되었다. 잠이 안 올 것 같아서 Oliver Twist를 두 시까지 읽다가 잠자리에 다시 들었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혹시라도 아침에 늦잠자면 어쩌나 조바심이 나서 그런지 어제 아침 늦게까지 잠을 자서 그런지 모르겠다. 얼마쯤 뒤척이다가 잠깐 잠이 든 사이 꿈을 꾸었다. 막내딸 승우가 어떤 시합에서 두 번을 우승하고 세 번째의 결과를 기다리는 꿈을 꾸다가 따르릉따르릉 자명종 울리는 소리가 울려 잠을 깼다. 4시 20분 쯤 되었다. 자명시계가 20분쯤 빨리 울린 것 같았다. 40분에 울리도록 맞춰놓았었다. 양치질을 하고 세수를 하고 옷을 차려 입고 났는데도 시간은 5시도 안되었다. Oliver Twist를 조금 더 읽다가 5시 10분 쯤 Mother House를 향해 출발했다. 걸어가기로 했다. Kolkata의 새벽거리가 상쾌하다. 청소하는 사람,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식당이 벌써부터 분주하다. 여기저기 쭈그려 앉아 소변을 보는 사람들도 자주 눈에 띈다. 남자들도 발뒤굼치를 들고 쪼그려 앉아 소변을 본다. 사람들에게 Mother House를 물으니 친절하게 가르쳐준다. Mother House를 모르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Continental G.H에서 Algaus Hotel 쪽으로 걸어가다가 첫번째 만나는 왼쪽 길로 계속 걸어가면 바로 Mother House였다. 길을 확실히 알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가는 길에 담요 한 장을 뒤집어 쓰고 여기저기 길가에 잠자는 사람이 많았다. 아직 바깥공기가 차가운데 말이다. 저 사람들은 어떻게 먹고 사는지 모르겠다. Mother House에서 보살피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도착하니 나보다 조금 앞서 초로의 서양할머니와 젊은 동양인 남자가 출입문으로 들어간다. 5시 30분 쯤 되었다. 미사는 6시에 시작된다. 나는 낯설기만 해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서성이는데 수녀님 한분이 뭐라고 묻기에 I came for Mass. (미사보러 왔는데요)했더니 2층으로 올라가라고 손으로 가리킨다. 신발을 벗어놓고 올라갔더니 성당 입구에서 왼쪽에 100여명의 수녀님들이 벌써 열을 맞춰 앉아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오른쪽으로는 20여명의 volunteers(봉사자)들이 미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20여분 지나자 자원봉사자들이 100여명으로 늘었다. 그 중에 50여명 정도는 일제히 하얀 유니폼을 입은 호주의 봉사단이었다. 6시 미사가 시작되었다. 5명의 사제단이 입장하여 미사를 집전했다. 미사는 영어로 진행되었다. 나도 영성체를 모셨다. 미사가 끝나자 빵 한 쪽, 짜이 한잔, 바나나 하나씩이 아침 식사로 제공되었다. 그것을 먹고나서 깔리가트로 어떻게 가야할지 걱정이 되었다. 등록할 때 안내하던 한국 분이 있어 다시 물어봤더니 한국사람이 많이 있으니 같이 가라고 한다. 안으로 다시 들어가서 동양인에게 한국 사람이냐고 물으니 그렇다며 저쪽의 한국 남자분이 그곳으로 갈 것이니 같이 가라고 한다. 그분이 인솔자가 되어 호주사람들 포함 20여명은 길 건너편에서 204번 버스르 타고 바로 깔리가트 임종의 집으로 갔다. 교통편을 알고 나니 이제 혼자라도 갈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인솔하던 분에게 봉사활동 한 지 오래 되었느냐고 물으니 가톨릭대학교 학생인데 가톨릭 대학교 학생들이 계속해서 릴레이 식으로 봉사활동을 한다고 했다. 나중에 간식시간에 그분이 신학생인 걸 알았다. 등록 때 안내를 하시던 분도 신학생이라고 했다. 몇 분 더 있는 것 같았다. 깔리가트 임종의 집에 도착하니 `Mother teresa`s Home for the Sick and Dying Destitutes`(병들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한 마더 테레사의 집)이라는 영문 글귀가 입구 위쪽에 쓰여져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마자 앞치마 같은 간편복으로 갈아입고 사물함에 짐을 두고 곧바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봉사는 타올 담요 빨기, 환자복 베갯닛 빨기, 목욕시키기, 소변 받아내기, 식사나르기, 식사 시중들기, 약 타다 먹이기, 목욕 시키기, 설거지 하기, 빨래 널기. 마른 빨래 걷기, 목욕실에 더운물 나르기, 환자복을 일일이 점검하여 오물 묻은 빨래 가려내기, 욕창및 각종 상처 약바르고 거즈 붙이기 등 눈코 뜰 새가 없다. 약 처방하기와 욕창및 상처소독은 따로 맡아서 하는 분들이 있었다. 남자환자실엔 150여 분이 있었는데 임종의 집이라 해서 상태가 심한 분들만 있는 줄 알았는데 몇몇 욕창과 상처가 심한 분이 있을 뿐 당장 임종을 앞둔 것 같은 의식불명환자는없었다. 나는 약을 타다 먹이고, 밥을 나르고, 목욕을 시키고, 환자복을 갈아입히고, 더운 물을 받아다 목욕실로 옮기는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손짓하는 환자에게 가면 물을 달라, 옷을 갈아 입혀 달라, 오줌통을 갖다달라던지 짜이를 더 달라는 등 여러 가지를 요구하는 것이다. 화장실로 데려가 달라고도 하고 목욕을 시켜달라고도 했다. 이렇게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다가 11시쯤 간식을 먹고 다시 한 시간 쯤 더 활동을 하다보면 오전 봉사가 끝난다. 우리는 옷을 갈아입고 사물을 챙겨 임종의 집을 나왔다. 첫날의 일과가 끝난 것이다. 열심히 봉사활동을 하는 젊은이가 있었다. 옷도 인도 사람처럼 차려 입고 세탁을 도맡아 하다시피 열심히 일을 했다. 간식시간에 대학생이냐고 하니까. 회사에 다니다가 회사를 그만두고 4개월째 인도 여행을 하고 있다고 했다. 머리를 짧게 깎아 나이가 들어 보이지 않았는데 33살이라고 했다. 작년에도 6개월 인도 여행을 했다며 남인도가 북인도보다 좋다며 경험담을 풀어놓기도 했다. 이제 네팔을 거쳐서 귀국할 거라고 한다. 남인도가 음식도 맛있고 도시간 이동도 단거리고 비용도 북인도의 절반 정도면 충분하다고 했다. 해변가엔 겨울철에도 피서 인파가 있겠다는 나의 말에 “ 이번 해일로 쑥대밭이 됐지요 뭐.”해서 머쓱해지기도 했다. 서양인들도 정말 열심히 봉사활동을 했다. 임종의 집 벽에는 여러 곳에 수녀님의 사진과 함께 어록이 붙어있었다. 한 가지 소개하면 다음과 같은 말씀이다. Let Every Action of Mine Be Something Beautiful for God Mother 1948 (내 모든 행동이 하느님을 위해 아름다운 것이 되게 해주소서)
깔리 가트 임종의 집에서 오전 봉사활동을 마치고 여관에 도착하자마자 침대에 누웠더니 그대로 잠이 들었다. 피곤했던 모양이다. 두시간 정도 자고 일어났다. 아직도 햇볕이 쨍쨍한 한낮이다. 병이 났던 Ashok Hotel의 두 여대생은 지금 어떤가. 봉사활동에도 나오지 않았던데.... 저녁 때 한번 들러보아야겠다. 4시쯤 다시 외출하여 internet방에 갔다. 한글지원이 확실하게 된다. 좌판 외우지 못해서 좀 힘이 들긴하다. 오늘은 인터넷으로 National Geographic(영문잡지 이름)에 실린 서방 기자의 cast제도에 대한 장문의 글을 두시간 가까이 다 읽었다. 물론 번역본이다. 한 편의 완벽한 논문 분량이다. 기원전부터 존재했던 제도가 카스트 제도이며 2,000여개의 세분화된 신분이 존재한다고 했다. 이 제도에 억매어 있는 사람 3/4이 농촌에 살고 있는데 도시의 익명성과 여러 요소로 도시보다는 농촌에서 카스트 제도의 폐해가 심하다는 것을 여러 실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간디를 비롯해(간디는 바이샤 출신, 부처는 크샤트리아 출신))여러 탁월한 지도자가 나타나 카스트 제도의 폐해를 철폐하기 위한 운동을 전개하기도 했으나 인구의 80%가 힌두교도인 인도에서 사회적 관습은 법률적 효력보다도 강하다. 법적으로 차별이 금지돼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아직도 국민들의 생활을 지배하는 것이 카스트 제도다. 인도 내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 관심이 필요한 문제라고 할 것이다. 인도의 저 역동적인 힘의 발목을 잡고 있는 있는 것이 카스트 제도라는 생각이다. 서방기자의 눈에 비친 저 적나라한 불가촉천민(untouchable)에 대한 차별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최고의 지도자가 불교로 개종하자 수십만 명이 따라갔던 일도 있었지만 힌두교도가 국정을 좌지우지하는 인도 사회에서 그 개선책을 찾기란 그리 쉬워보이지 않는다. 카스트 제도로 인한 폐해는 엄청나며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과제다. 소설 Oliver Twist가 너무 재미 있어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한국에서도 매우 인기있는 소설중의 하나, 어린이용 소설로도 나와 있었다. 인터넷 방을 나와 식사를 하려고 저번에 보았던 닭죽집을 찾다가 못 찾고 인도 음식점에 들어가 탄도리를 시켰더니 부풀어오른 빵 두 쪽과 beef 한 접시가 나오지 않는가. 탄도리를 인도의 인기있는 음식이라고 들었는데 내가 잘못 이해한 것 같았다. 15R였다. 내가 방금 먹은 것이 탄도리가 아닌게 분명했따. 식사가 시원찮아서 골목길의 소규모 식당 `모모식당`으로 찾아가 닭죽을 35R에 또 먹었다. 고향에서 먹던 닭죽과 거의 비슷해서 맛있게 먹었다. 거기에선 항공대 4학년 ROTC생 두 명을 만나 즐겁게 얘기를 나누었다. 그들도 내가 권하자 닭죽을 시켜먹었다. 오늘 캘커타에 도착했는데 모래 중부지방으로 떠난다고. 그들은 졸업을 앞두고 짬을 내 여행을 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바라나시엔 이미 다녀왔다고 한다. 바라나시에 한국식당이 있는데 라면이 130루피(3400원), 김치찌개가 180루피(5,700원) 등 비싸긴 해도 고향의 맛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동안 한번도 한국음식을먹어보지 못했다. 캘커타에 한국음식점은 없다. 바라나시에 가면 꼭 그 식당에 들러 라면도 먹고 김치찌개도 먹어야겠다. 소주도 한잔 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소주는 또 얼마나 비쌀까. 전에 미국을 여행할 때 소주값이 꼭 한국의 10배였던 걸 기억한다. 그런데 내가 먹고 싶었던 음식이 탄도리가 아니라 탄도리 치킨인데 음식점에서 탄도리를 찾으니 엉뚱한 음식을 내 놓았던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내 발음을 잘못 들은 모양이다. 왠지 메뉴판에도 없었는데 그들은 있다고 했으니까. 다음에 탄도리 치킨을 다시 한번 먹어보자. 인도 안내책자엔 탄도릭 치킨이 인도가 자랑하는 세계적 음식이라고 소개되어 있었다. 기회가 있으면 한 번 먹어봐야겠다. 디지털 카메라의 메모리가 왜 42장에서 멈춰섰는지 모르겠다. 새로 2.000루피를 주고 메모리 카드를 새로 끼웠지만 해상도를 조절하면 사진의 장 수를 더 늘릴 수 있다는 얘기는 또 무엇인지. 왜 150장 정도는 찍을 수 있다더니 42장에서 멈춰 서서는 계속 라는 message만 뜨는지 모르겠다. 분명히 조작 미숙일 것이다. 출국할 때 카메라를 구입, 조작법을 제대로 익히지도 않고 왔으니 자꾸 시행착오를 겪는 것이다. 2005.1.15 토 맑음 비가 온 후라 그런가. 어제 오늘 갑자기 날씨가 더워졌다. 4시 20분 자명종이 울린다. 일어나 세수하고 화장실 다녀오고 옷을 차려 입으니 다섯 시가 다 되었다. 어제 오후 내내 설사 때문에 고생을 해서 아침에 걱정이 되었다. 화장실을 다녀왔는데도 또 다녀와야 할 것 같다. 화장실을 두 번씩이나 들렀다가 Mother House로 향한다. 새벽공기가 신선하다. 벌써부터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가다가 길거리에서 새벽 짜이 한 잔을 사 먹고 도착하니 voluteerㄴ(봉사자)는 3명이 와 있고 수녀님들은 모두 모여 미사를 기다리며 기도하고 있었다. 나도 조용히 성당에 앉아 묵상하며 속으로 기도를 한다. 어머니 생각이 난다. 아버지 생각이 난다. 우리 가정에 평화가 오기를 기도한다. 테레사 수녀님 생존시부터 나는 인도에 한번 와서 마더하우스에 들르고 싶었다. 20세기가 끝나갈 무렵 매스컴은 여러가지 재미있는 사실들을 발표하고 기사화하곤 했다. 20세기에 가장 인기있었던 노래는 비틀즈의 Let It Be 라든가 20세기 가장 위대한 인물은 테레사 수녀님이라는 말도 들렸다. 테레사 수녀님은 1997년 돌아가시기 전까지 살아 있는 성녀로 추앙받은 분이고 돌아가시자마자 바로 성녀품에 올리려는 절차가 진행되어 현재 복자품에 올라계시지 않는가. 수녀님이 돌아가셨을 때 나는 인천에 있는 사랑의 선교회 인천 분원에 찾아가 조문하고 헌금을 하고 온 일이 있다. 인도에 가도 수녀님을 뵐 수 없다는 것이 얼마나 안타까웠는지 모른다. 늦은 감이 있지만 캘커타에 찾아가서 그분의 뜻에 따라 조금이라도 봉사할 수 있기를 나는 오랫동안 기다려 온 것이다. 몇 분의 신부님이 와서 미사를 집전하고 갔다. 오늘도 영성체를 모셨다. 호주의 단체손님은 빠지고 오늘도 자원봉사자가 60여 명 정도 되었다. 오늘은 아침부터 굶기로 했다. 어제 설사로 너무 고생을 해서 조심을 해야겠다. 미사가 끝나고 간단하게 아침 간식을 먹은 후 일행은 깔리가트 임종의 집으로 가려는데 어제 봤던 아기 안은 엄마들이 또 따라온다. FIVE 루피! FIVE루피를 계속 외쳐대며 따라오는 데 정말 떼어놓기 힘들었다. 어제 5루피를 주었기 때문에 오늘도 5루피를 요구하는 것이다. 기업적으로 구걸을 한다는 얘기를 듣고나니 기분이 개운치 않았다. 줄 수도 없고 안 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매일 주면 매일 그럴 것이 뻔하다. 오늘은 결단코 주지 않기로 한다. 차도까지 따라 건너며 따라왔지만 단호하게 거절했다. 거의 필사적이다. 두세번 5루피씩을 줬더니 그걸 기억하고 나에게 특히 더 매달렸지만 거절했다. 깔리가트에 가자마자 바지를 갈아입고 웃옷과 간편 가방과 전대를 보관함에 넣고 활동에 들어갔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밥 나르고, 물 나르고, 화장실 데리고 가 똥 오줌 뉘고, 밥 먹이고, 빈 밥그릇 부엌으로 나르고, 빨래 빨래터로 나르고, 약타다 먹이고, 목욕시키며 정신없이 바쁘게 움직이다 보니 또 12시가 다 되었다. 짜이 한 잔만 먹고 아무 것도 먹지 않았다. 매일 그렇게 누워서 지내는 150여 명의 환자들 방에서 환자 냄새 하나도 안 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매일 매일 세탁하고 목욕시키고 쓸고 닦으니 전혀 환자특유의 퀴퀴한 냄새가 하나도 안 나는 것이다. 봉사활동을 마치고 임종의 집을 나와서 지하철을 타기 위해 걸어가는 데 골목에 여자들이 서성이는 것이 보였다. 대로에까지 나와서 서성이며 지나가는 남자들에게 알로! 알로!하며 다가서는 것이다. 대낮 길거리까지 나와 호객하는 윤락녀들이었다. 깔리가트에서 멀지 않은 골목길에 윤락촌이 있는 것 같았다. 이 낯선 풍경에 의아해 하며 나는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지하철에서 내려 게스트 하우스까지 걸어갔다. 게스트 하우스 근처에서 다시 그 여학생들을 만났다. 선후배 사이라는 인하대생과 한양대 학생말이다. 우리는 음료수를 마시고 같이 쇼핑을 하러갔다. 이곳 저곳 둘러보다가 Himalaya 대리점으로 갔다. 그들은 이미 그 가게에 대한 정보를 이미 다 갖고 있는 듯했다. 곧장 가서 물건을 고르지 않는가. 히말라야는 화장품, 기능성 식품 등 다양한 제품을 생산 판매하는 인도의 유명 기업체란 걸 알았다. 그들은 1,200 ~1,300루피 어치 제품을 샀다. 나는 나중에 여행이 끝날 무렵 사기로 하고 조그만 샴푸 하나만 샀다. 우리는 함께 김치국밥을 판다는 곳으로 갔다. 노점 식당이었다. 나는 김치국밥, 선배언니는 김치볶음밥, 정옥이라는 후배는 라면을 시켜먹었다. 거리를 걷다보면 마더 하우스에서 같이 봉사활동을 하는 분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우리나라 사람 뿐 만 아니라 외국사람도 만나게 된다. 외국분을 만날 때 하이! 하고 아는 체를 하면 그 사람도 미소를 보내며 반갑게 인사를 하곤 한다. 김치볶음밥 집에서 같이 봉사하던 사람을 만났다. 4개월 째 인도 여행을 한다는 젊은 사람인데 Mother House에서 열심히 봉사하고 있는 젊은이다. 머리를 깎고 인도사람 처럼 복장을 하고 다니는 사람이다. 나는 20대의 대학생인 줄 알았는데 30대란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을 하고 있다고 했다. 가끔 이렇게 인도 매니아들을 만나곤 한다. 또 Ashok 호텔에서 만낫던 부탄 학생 세 명도 이 길거리 식당에서 또 만났다. 그들은 오늘 자기 나라로 돌아간다고 했다. 인도로 유학하기 위해 대학 입학시험 때문에 왔었다고 한다. 둘은 부탄에 살고 하나는 시킴주에 살고 있다고 한다. 그들과 헤어져 Continental G.H로 돌아오면서 20루피에 화장지 하나를 샀다. 여관에서 일하는 영어를 곧잘 구사하는 아이가 초코릿을 사달라고 하여 10루피를 주고 사주었다. 그리고 저녁식사로는 한번 먹어보려고 했던 치킨 탄도리를 55루피에 먹었는데 안내책자의 소개보다는 그저 구운 치킨에 불과했다. 그리고 약국에 들러 설사약을 사가지고 왔다. 대충 하루에 화장실을 몇 번 다녀왔다, 잠을 제대로 못잤다 하고 설명하니 금방 알아차리고 약을 지어주었다. 놀랍게도 약값이 122루피였다. 3끼 식사값이었다. 약효는 즉시 나타났다. 설사가 나았다.
겨울방학을 15여일 앞둔 12월 22일(금) 서령중학교 체육관에서는 '자녀의 올바른 인터넷 사용 및 건강한 겨울방학 나기'를 주제로 특강이 있었다. 이 자리에는 서령중·고등학교 학부모 300여명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뤘다. 요즘 학생들은 과도한 인터넷게임으로 학업과 건강, 대인관계 등 일상생활 전반에 걸쳐 큰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게임 중독은 당사자인 본인도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주위의 세심한 관심만이 최고의 예방책이 된다고 한다. 특히 여가시간이 늘어나는 겨울방학 중에 이러한 게임 중독에 빠지는 학생들이 많으므로 학부모님들의 각별한 지도가 요청된다. 따라서 본교에서는 자녀들이 건강한 겨울방학을 보낼 수 있도록 학부모님들을 대상으로 전종천 인터넷 교육 전문강사를 초빙, 특강을 실시하였다. 강연을 다 듣고 난 한 학부모는 "앞으로는 아이들의 게임방출입을 자제시키겠으며, 인터넷을 게임보다는 다양한 지식을 접할 수 있는 보물창고로 이용할 수 있도록 지도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국교총이 20년간 제정을 추진해 온 ‘학교안전사고 예방 및 보상에 관한 법’(수정안, 이하 안전사고보상법)이 지난달 2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로써 교육활동 중 학교안전사고를 당한 학생, 교직원 및 교육활동 참여자가 신속, 충분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이에 따르면 교육감 산하에 시도학교안전공제회가 설립됨은 물론 장관 산하에 학교안전공제중앙회가 설치돼 시도 간 들쭉날쭉했던 보상범위, 대상, 금액 등이 통일된다. 공제회 의무가입 대상에 초중고는 물론 종전에 임의가입 대상이던 유치원과 평생교육시설이 포함됐다. 또 당초 공제급여를 제한했던 자해․자살에 대해서도 ‘학교안전사고’가 원인이 된 경우에는 전부를 지급하기로 했다. 아울러 학교급식 등으로 인한 질병, 등하교 시 발생한 사고 등도 공제대상에 포함시켰다. 공제기금은 국가와 지자체뿐만 아니라 학생, 학부모, 교직원도 일정 부분 부담토록 조항을 명시했다. 현재는 초중고교의 공제료를 국가가 부담하고 있다. 1987년부터 민법에 따라 16개 시도별로 비영리법인 단체로 운영하고 있는 학교안전공제회는 2005년 말 현재 1만 7000여 학교, 815만명의 학생이 피공제자로 가입돼 있고, 기금규모는 892억원이며 매년 160억원 정도가 지급되고 있다. 한편 국회는 이날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의 내국세분 교부금 교부율을 현행 19.4%에서 2008년부터 20%로 올리는 내용의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개정안(교육위 대안)도 통과시켰다. 2006년 내국세 규모 기준에서 보면 약 6430억원의 추가재정이 확보될 전망이다. 지자체의 교육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 법안에는 지자체가 법정 전출금 외에 별도의 경비를 교육비 특별회계에 전출할 수 있는 근거를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또 광역자치단체도 기초자치단체처럼 고교 이하 각급학교의 교육 경비를 직접 보조할 수 있는 근거를 뒀다. 이밖에 기준재정수입액을 종전처럼 지방세 수입액의 전액으로 산정하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