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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2007학년도 강원지역의 실업계 고교 신입생 지원자가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28일 강원도교육청에 따르면 도내 45개교 실업계 고교의 신입생 원서접수를 마감한 결과 전체 193학급 6천55명 모집에 6천82명이 지원, 27명이 초과했다. 이는 2006학년도 44개 실업계 고교의 전체 182학급 5천750명 모집에 4천766명이 지원, 984명이 미달한 것에 비해 지원자가 크게 증가했다. 이는 최근 실업계 고교가 동일계열 특례입학 및 내신관리의 장점 등 대학입시에 유리한 면이 있는데다 일부 학교가 애니메이션 등 특성화된 학과를 신설하면서 학생들이 적성에 맞게 학과를 선택할 수 있는 폭이 커졌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그러나 정원을 채우지 못한 학교의 수는 2006학년도 30개교에서 2007학년도 28개로 2개교가 줄어드는데 그쳤다. 실업계 고교 합격자 발표는 30일까지 각 학교별로 실시되며 정원이 미달한 학교는 추가 모집을 통해 정원을 확보할 예정이다.
.교총과 전국공무원노동조합협의회 등 10개 단체로 구성된 공무원연금 등 특수직연금 개악저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28일 오후 2시 정부종합청사 후문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정부 꼭두각시 역할 하는 공무원연금제도발전위원회의 즉각 해체”를 요구하고 베일에 가려져왔던 위원들의 명단을 공개했다. 정부는 발전위원회를 구성하면서 교총 등 교원단체에 위원 추천을 의뢰했다가 이를 철회해 반발을 초래했다. 공무원연금제도발전위원 23명은 ▲위원장, 김상균 서울대 교수 ▲정부위원 6명(교육부, 국방부, 재경부, 보건복지부, 기획예산처, 중앙인사위 관계자) ▲학계 4명(김원식 건국대, 배준호 한신대, 권혁주 성대, 안종범 성대 교수) ▲민간단체 2명(류혜정 참여연대, 서영복 행정개혁시민연합) ▲언론계2명(김세형 매일경제, 배정근 한국일보) ▲공무원 단체 3명(강성연 전국체신노조, 박찬우 행자부, 조재운 행자부직장협의회) ▲연구기관 3명(서원석 한국행정연구원, 최병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문형표 KDI) ▲연금수급자 2명(유영번 전 행자부, 이정희 전 경기교육청) 등이다. 공대위는 “연금제도발전위원회의 특수직 연금제도개편방안이 공적연금제도라는 본질적 특성을 무시한 허구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공무원 연금은 국민연금과 달리 퇴직금이 포함된 후불적 성격의 임금”이라며 “공무원과의 단체 협약을 통해 연금제도를 개편하라”고 밝혔다..
.사립학교 설립ㆍ경영자가 교원노조와 개별적으로 단체교섭을 할 수 없으며 반드시 지역 내 다른 사립학교와 연합해 단체교섭을 하도록 규정한 교원노조법 관련 조항은 합헌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주심 주선회 재판관)는 28일 교섭단 구성에 어려움이 있다는 이유로 전교조 대전지부의 단체교섭 요구에 불응했다 '즉시 교섭단을 구성해 단체교섭에 응하라'는 중앙노동위원회 명령을 받은 A학원 등이 낸 교원노조법 6조 1항에 대한 위헌소원 청구 사건과 관련, 재판관 7대 1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교원노조법 6조 1항은 '노조 대표자는 사립학교 설립ㆍ경영자와 단체협약을 체결할 권한을 가지며 사립학교 설립ㆍ경영자가 전국 또는 시ㆍ도 단위로 연합해 교섭에 응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개별 학교법인이 단체교섭 상대방이 된다면 교원노조가 모든 개별 학교법인과 단체교섭을 해야 하기 때문에 협약 내용이 학교마다 달라져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 해당 법률 조항은 침해의 최소성 요건을 충족한다"고 판시했다. 또 "사립학교가 연합해 교섭에 응하도록 한 해당 법률의 공익은 개별 학교법인이 단체교섭의 상대방이 되지 못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결사의 자유 제한보다 크다고 할 것이므로 법익의 균형성도 충족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교원의 근로관계는 사용자에게 고용돼 직접 근로를 제공하고 임금을 받는 일반 근로관계와는 구조상 차이가 있다. 개별 학교법인이 일반 경영자들과 달리 단체교섭의 상대방이 될 수 없도록 한 것은 합리적 이유가 있는 차별이므로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볼 수도 없다"고 덧붙였다. 다만 조대현 재판관은 "해당 법률 조항은 사립학교별로 설립ㆍ경영자나 근무조건이 다르다는 점을 무시한 것으로 합리성이 없으며 사립학교의 자주성과 자율성도 무시했다. 헌법에 위반된다"는 반대의견을 냈다..
부산시교육청은 내년에 영어교육 전담부서를 신설하는 등 영어교육을 대폭 강화한다고 28일 밝혔다. 시교육청은 이날 영어교육 여건 조성과 원어민교사 확대 등을 골자로 하는 '2007학년도 영어교육 활성화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종합대책에 따르면 교육청은 내년 3월 영어교육을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학교정책과에 영어교육 전담부서인 국제교육팀을 신설하기로 했다. 국제교육팀은 장학관을 팀장으로 초.중등 영어담당장학사, 국제전문관, 원어민 코디네이터 등 5명으로 구성된다. 이와 함께 영어교육 여건 조성을 위해 6개 지역교육청과 초.중등 학교급별로 대학교수, 공무원, 교사 등으로 구성된 영어교육 지원팀을 조직하는 한편 영어교사로 이뤄진 교과교육연구회 30개팀과 학생들로 구성되는 영어심화학습동아리를 만들어 운영할 계획이다. 교육청은 또 교육의 효율성을 높이고 정보교환을 위해 영어교육 포털 사이트를 개설, 각종 영어읽기 자료와 교재를 게재하고 영어전담교사의 실력을 높이기 위해 5년 이상 근무 교사를 대상으로 5년 주기로 60시간 이상의 직무연수를 실시할 계획이다. 교육청은 부산시와의 협력을 통해 2010년까지 모든 중학교에 원어민 영어보조교사를 배치하고 중장기적으로 이를 초등학교로 확대할 계획이다. 또 내년에 공공 도서관 및 사회복지관 11곳에 영어체험 학습코너를 설치하고 영어로 수업하는 '영어몰입교육' 연구학교를 초등 5개교, 중등 1개교를 선정해 운영할 방침이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학교 영어교육의 질이 높아지면 사교육 수요가 공교육으로 흡수돼 사교육비 부담과 조기 해외유학 열풍도 줄어들 것"이라며 "이같은 기대가 단기간에 이뤄지기는 어렵더라도 장기적인 안목에서 추진하면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초ㆍ중ㆍ고등학교 학생들의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 영어 과목에서 대도시와 읍면 지역 간 학업수준 차이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인적자원부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위탁해 지난해 10월19~20일 실시한 2005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결과를 28일 발표했다.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는 국가가 정한 교육과정을 학생들이 제대로 따라오고 있는지 평가하기 위해 매년 실시하는 시험으로 국어, 사회, 수학, 과학, 영어 등 5개 교과로 치러진다. 2005년 시험은 전국 초등학교 6학년의 1%, 중학교 3학년의 1%, 고등학교 1학년의 3% 등 총 3만1천340명(748개교)을 대상으로 실시됐으며 성적에 따라 학생들을 우수학력, 보통학력, 기초학력, 기초미달로 구분했다. 평가결과 전체적으로 대도시 지역 학생들의 학업성취도가 읍면 지역 학생들보다 높게 나타난 가운데 특히 영어 과목에서 대도시와 읍면 지역 학생 간 차이가 크게 벌어졌다. 초등 6학년의 영어 우수학력자 비율이 대도시는 64.7%, 읍면은 47.6%로 대도시가 훨씬 높았고, 반대로 기초학력 및 기초미달자 비율은 대도시 18.1%, 읍면 30.0%로 읍면이 훨씬 높았다. 중학 3학년의 영어 우수학력자 비율은 대도시 22.1%, 읍면 10.3%, 고교 1학년의 영어 우수학력자 비율은 대도시 14.7%, 읍면 9.2%였다. 영어 평균점수 역시 초등 6학년의 경우 대도시 166.86점, 읍면 162.63점, 중3의 경우 대도시 261.73점, 읍면 259.04점, 고1의 경우 대도시 362.57점, 읍면 358.70점으로 특히 초등학생의 영어성적이 도시와 농촌지역 간에 차이가 컸다. 교과별 평균점수는 전년도에 비해 전체적으로 약간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초등 6학년의 경우 사회, 과학, 영어점수가 전년보다 0.12~2.89점, 중학교 3학년은 국어, 수학, 과학점수가 전년보다 0.55~1.21점, 고등학교 1학년의 경우 국어, 수학, 과학, 영어점수가 전년보다 1.05~2.5점(사회는 전년과 동일)씩 올랐다. 학년ㆍ교과별 우수학력자 비율 역시 전체적으로 전년보다 약간 증가하고 기초학력 미달자 비율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성별로 보면 남학생은 주로 사회, 수학, 과학에서 우수학력자 비율이 높았고 여학생은 국어와 영어 과목에서 우수학력자 비율이 높았다. 기초학력 미달자의 경우 초6, 중3, 고1의 모든 교과에서 남학생 비율이 여학생보다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동료 교사 파면에 반발해 수업을 거부하고 시위를 벌인 교사들에게 학생과 학부모의 수업권과 교육권을 침해한 점이 인정된다며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인천지법 민사 12부(부장판사 최정열)는 28일 교사들의 교내 시위와 수업거부로 피해를 봤다며 인천외고 학부모와 학생 400명이 이 학교 교사 20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피고들은 학생에게 각각 1인당 50만원, 학부모에게는 3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인천외고 전교조 교사들은 2004년 1월 동료 교사 2명이 학교측의 차별적 교육방침 등 학사운영에 불만을 토로했다가 파면당하자 이에 반발, 수업을 거부하고 교내에서 피켓시위 등을 벌였다. 이들 중 교사 3명은 '학교 정상화 때까지 시험을 연기해 달라'며 시험지 배부를 거부해 시험 진행을 방해한 혐의(업무방해)로 경찰에 구속되기도 했다. 이 학교 학부모와 학생들은 교사들의 집단행동으로 학습권과 수업권이 침해받았다며 2004년 8월 집단행동에 가담한 교사 20명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인천지법에 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들이 수업거부 등 위법행위로 학생들이 수업을 받지 못하게 하고 평온한 환경에서 학습할 수 없게 해 학생들의 수학권과 학부모들의 교육권을 침해했다"며 "경험상 학생과 학부모의 정신적 고통이 인정되므로 위자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피고들의 수업거부와 단체행동은 학교측의 차별적 교육방침에 반발하는 교사들이 파면된데 대해 항의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지만 교사들이 합법적인 절차나 수단에 의하지 않고 불법적인 방법을 사용한 행위는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학교용지 매입비용의 절반을 지자체에서 부담해야 한다는 교육인적자원부의 유권해석이 내려졌다. 28일 경기도교육청에 따르면 지난 10월 경기도는 시.도가 부담해야할 학교용지 면적 기준과 부담비율 등에 대해 의뢰했으며 이에 교육부는 "개발사업지내 학교용지 실제 매입면적을 기준으로 총 매입비용의 1/2을 부담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지금까지 경기도는 "학교용지의 최소 면적을 기준으로 교육부가 초과 교부한 금액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만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1996년부터 올해까지 도내 신설된 321개 학교의 용지매입 비용 2조7천억여원 중 절반인 1조3천500여원 가운데 경기도는 현재까지 부담액의 26%인 3천600여억원만 교육청에 전입했으며 교육청이 토지공사 등에 상환하지 못한 누적액은 8천600억원에 이른다. 도교육청은 "경기도가 미전입액을 상환하지 않을 경우 2007년 이후 판교.동탄 등 신도시의 학교설립에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광주에 처음으로 고등학교 학력이 인정되는 평생교육시설이 들어선다. 광주시교육청은 28일 "일반 고등학교 학력이 인정되는 2년제 평생교육시설인 광주 대신고등학교를 인가했다"고 밝혔다. 대신고등학교는 내년 3월 서구 매월동에 개교 예정으로 주.야간 11학급에 550명을 모집한다. 1년 3학기로 운영되는 교육 과정은 국어와 영어, 수학, 과학, 한문, 사회, 컴퓨터 중심의 정보화 교육, 영어연극부, 제2외국어, 특별활동 등 다양하다. 졸업후에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며 국민기초생활수급자와 저소득가정 및 농어촌 가정 자녀 등에게는 학비지원과 함께 장학금 혜택도 주어진다. 원서접수는 내년 1월 2일부터 2월 28일까지이며, 자세한 사항은 대신고등학교 행정실(☏062-376-8400)로 문의하면 된다. 학교 관계자는 "그동안 시간적, 경제적 어려움으로 배움의 기회를 놓친 성인과 청소년들을 위한 평생교육시설로 성장시켜 나가겠다"고 말했다.
경기도 교육청은 지난달 22일 등 연가투쟁에 참여한 교사들에 대한 징계 수위를 다음달중 결정할 예정이라고 28일 밝혔다. 도 교육청과 전교조 경기지부에 따르면 지난 2000년 이후 연가투쟁에 참가한 교사는 295명이고 이 가운데 4회 이상 참가한 교사는 초등 7명, 중등 28명 등 모두 35명으로 조사됐다. 도 교육청은 교육인적자원부의 방침에 따라 4회 이상 연가투쟁에 참가한 교사들을 이번에 징계할 방침이다. 초등교육과와 중등교육과 등 각 담당부서에서 1차로 연가투쟁 참여여부를 조사한 도 교육청은 다음달 중순까지 감사담당부서를 통해 2차 사실확인 조사를 벌인 뒤 이르면 같은달 말 해당 교사들에게 통보하고 곧바로 징계위원회를 열어, 징계 수위를 결정할 예정이다. 한편 전교조는 이날 성명서를 통해 "집회 및 결사의 자유는 헌법에 보장돼 있고 교육공무원의 합법적인 노동조합 주최 집회참석은 불법이 아니다"라며 교육부와 도 교육청에 즉각적인 징계 절차 중단을 요구했다.
경기도교육청은 내년 도내 초등학교 학급당 평균 학생수를 지역에 따라 1-2명씩 감축할 계획이라고 28일 밝혔다. 도 교육청은 이날 이같은 계획이 담긴 '2007학년도 공립 초등학교 및 공.사립 중학교 학급편성 지침'을 확정, 발표했다. 지역별 평균 학급당 학생수 감축 내용을 보면 16개 시 지역은 현재 43명에서 41명으로 2명, 11개 도.농복합시는 41명에서 40명으로 1명, 4개 군지역은 41명에서 39명으로 2명 감축된다. 도 교육청은 이를 위해 내년 225억원을 들어 24개 학교 신설을 통해 399학급, 기존 학교 증설을 통해 172학급 등 모두 571학급을 늘릴 계획이다. 도 교육청은 초등학교 학급당 평균 학생수를 2008년 39명, 2009년 38명으로 점차 줄여나갈 방침이다. 그러나 도 교육청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초등학생과 달리 지속적으로 학생이 늘어나고 있는 중학교의 경우 내년 210억원을 투자해 400여학급을 증설할 계획이지만 학급당 평균 학생수는 현재와 같이 시.읍지역 40명, 면지역 35명 수준을 유지하기로 했다. 도 교육청은 초등학교 학급당 평균 학생수 감축과 함께 2개 학년이 한 교실에서 수업을 받는 2복식수업의 편성 기준 인원을 현재 15명에서 10명으로 줄여 2복식 수업 학교 및 학급수를 올해 48개교 113학급에서 내년 40개교 81학급으로 줄이기로 했다. 특히 현재 2개학교 4학급에서 진행되고 있는 3복식 수업(3개 학년이 한 교실에서 공부하는 수업방식)은 완전 폐지하기로 했다. 도 교육청 관계자는 "교육여건 개선을 위해 각급 학교의 학급당 평균 학생수를 지속적으로 감축시켜 나가는 것은 물론 농촌지역의 교육여건 격차 해소를 위해 2-3복식 수업도 계속 없애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제가 근무하고 있는 멀티미디어실이 갑자기 붐비는 걸 보니 드디어 1, 2학년 학생들의 기말고사가 모두 끝났나봅니다. 요 며칠 사이 학생들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던 멀티실에 오늘은 학생들이 몰려들어 왁자지껄 북새통을 이룹니다. 기말고사도 끝나고 또 방학을 앞둔 시점이라 멀티실을 이용하는 학생들은 앞으로 점점 늘어날 것입니다. 몇 몇 학생들은 좀더 빠르고 좋은 자리를 차기하기 위해 친구들끼리 옮겨다니며 소란스러운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초창기보다는 이용자들의 자세가 많이 성숙해졌습니다. 처음에는 주로 컴퓨터게임, 미니홈피에 글 남기기, 쪽지 쓰기, 실시간 채팅 등 오락을 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꾸준히 계도를 한 결과 지금은 그런 학생들은 거의 사라졌답니다. 리포터가 근무하는 멀티실에는 총 25대의 최신형 컴퓨터가 있고 여기에는 초고속 인터넷 전용선이 연결되어 있어 수업 중 궁금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 찾아와 곧바로 의문점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또한 최신형 DVD 영화를 비롯해 각종 영상장치가 구비되어 있어 그야말로 명실상부한 디지털 자료실로써도 손색이 없답니다. 또 한가지 우리 학교 학습지원센터의 디지털 자료실은 학생들뿐만 아니라 지역주민들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어 평생교육의 메카로도 그 입지를 굳혀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학교에서는 앞으로도 계속적인 시설보완과 자료확보를 통해 이용자 중심의 편리한 멀티미디어실이 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눈 오는 날은 동심으로 돌아간다. 던지고 피하고 넘어지면서 깔깔깔 웃다보면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도 저절로 사라진다. 그래서 눈싸움은 싸움이 아니라 즐겁고 행복한 놀이다. 아이들의 신선한 웃음소릴 들을 수 있는 청량음료이다. 그리고 함께 하는 어른도 동심으로 빠져들게 한다.
경남도교육청은 체육관, 급식소, 학교 신축, 개축 등 모두 859억원 상당의 BTL(임대형 민자사업)을 28일 고시했다. 이번에 고시된 BTL사업은 ▲마산 중리초등학교 신축과 김해여고 개축을 비롯한 13개 학교 체육관 건설(365억원 규모) ▲거제 국산초등학교와 진주기계공업고등학교 개축을 비롯한 13개 학교 체육관(494억원 규모) 등 2개의 묶음으로 나뉘어져 있다. 이에 따라 사업자들은 한 개의 단일한 특수목적회사(SPC)를 구성, 15개 학교의 사업을 한꺼번에 발주받아 사업을 추진하게 된다. 경남교육청은 내년 1월4일 사업설명회, 3월 중순께 사업계획서 접수를 거쳐 4월2일에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할 계획이다. BTL(Build-Transfer-Lease)이란 민간사업자가 자금을 투자해 시설을 건설한 후 공공기관에 소유권을 이전한 뒤 관리운영권을 받아 투자비를 회수하는 방식으로, 경남교육청은 2005년부터 BTL방식으로 59개교에 대해 민자사업을 발주했다.
제주특별자치도가 내년도에 친환경 우리농산물 학교급식을 전체 대상학생의 70%까지 대폭 확대한다. 제주도는 지난 2004년 학교급식연대 등 관련 단체들이 요구에 의해 제정된 '친환경 우리농산물 학교급식 사용에 관한 지원 조례'에 따라 2005년 10%, 올해 30%까지 시행하던 친환경농산물 학교급식을 내년에는 35억원을 지원, 전체 대상 학생수의 70%인 7만명까지 확대하겠다고 28일 밝혔다. 지원대상 학교는 지난 10월 도교육청을 통해 초등학교 153개, 중학교 29개, 고등학교 13개, 특수학교 1개교 등 모두 196개교로 확정됐다. 지원대상은 곡류, 서류, 채소류, 과일류, 난(卵)류는 친환경농산물 및 도내산 식재료를 사용하고, 가공식품은 도내산이 부족할 때는 국내산을 사용하도록 했다. 또한 친환경농산물이 없어 일반급식 학교와 동일한 식재료를 사용하고 았는 육류와 수산물은 친환경급식 식재료 지원 대상에서 제외시켜 일반급식 학교와 형평성을 유지키로 했다. 도는 친환경농산물 식재료의 원활한 생산 및 공급을 위해 도교육청, 친환경농업인단체 등과 긴밀히 협의해 학교급식 지원센터를 설치하는 등 다각적인 방안을 강구할 계획이다. 제주도는 당초 내년부터 도내 모든 학교에 대해 친환경농산물 학교급식을 전면 실시계획이었으나 정부의 예산을 확보하지 못해 그 시기를 2010년으로 늦췄다.
앞으로 300 세대 이상 주택사업자는 사업지역이 협소해 사업지역 내에 학교용지를 확보할 수 없는 경우 용지부담금만 부담하고, 관할 교육청이 학교용지를 확보하게 된다. 정부는 28일 한명숙(韓明淑) 총리 주재로 규제개혁장관회의를 열어 이런 내용 등이 담긴 '공동주택 규제개선 방안'을 확정해 발표했다. 개선안은 300세대 이상 주택사업자가 사업지역 내에 학교용지를 확보할 수 없는 경우 현재는 시도교육감과 협의해 인접한 지역에 학교용지를 확보토록 하고 있지만 토지수용권이 없는 사업자가 용지확보를 못하는 바람에 사업계획이 지연되는 점을 감안, 사업자는 용지부담금을 부담하고 관할 교육청이 학교용지 확보의 책임을 맡도록 개선했다. 또 시.도 등 관련 행정기관이 용지 확보에 적극 협조할 수 있도록 개선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정부는 또 개발사업 등을 시행할 경우 자연경관에 미치는 영향 및 보전과 관련해 사전에 검토받고 있는 자연경관영향심의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중대한 보완사항이 아닌 경우 사후보완을 조건으로 심의를 완료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심의절차를 대폭 간소화키로 했다. 이와 함께 현재 단지내 세대수가 500-1천 세대의 경우 12m 이상, 1천 세대 이상은 15m 이상으로 돼있는 아파트 단지내 도로 폭 기준을 지하 주차장의 구조 및 위치 등 주택단지의 실정에 맞게 완화키로 했다. 총리실 관계자는 "이 방안은 법령개정 등 관계부처의 후속조치를 거쳐 내년 상반기 부터 시행될 계획이며, 이것이 시행되면 조경면적 등 녹지공간이 늘어날 수 있을 것"이라며 "다만 소방, 이삿짐 차량 등 비상용 도로는 적정수준으로 확보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현재 건물의 에너지 효율등급 인증과 관련, 건교부의 '주택성능등급 인정'과 산자부의 '건물에너지 효율등급'으로 이원화돼 있는 제도를 일원화하기로 했다.
사람에게 있어 하나의 대상을 보는 관점은 얼마나 자유로운가. 진리라고 믿어왔던 지식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거울에 비친 유럽’에서 필자는 자신의 속한 세계를 보는 관점에 대해서 새로운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그 성찰은 흔히 ‘우월하다’ 고 인식되는 세계에 대해서, 그 세계에 속한 사람이 던지는 질문이기에 더욱 값지고 의미가 있는 듯하다. 저자는 이 책 전체를 통해서 인류는 거울을 통해서 세계를 보아왔음을 말하고 있다. ‘거울’은 자아와 타인과의 인식이며 구별이며, 왜곡이다. 자신과 다른 세계를 접할 때, 그 ‘차이’는 곧 ‘차별’로 바뀌며 스스로의 우월함을 입증하기 위해 차이를 열등함으로 왜곡하고 만다. 그것이 현 유럽중심의 사회를 만드는 기간이 되었으며 필자는 그러한 시각에서 벗어나 진실로 세계를 보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 책은 유럽 문명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가장 근간이 되는 몇 가지 논제를 다른 부분으로 나누어서 이야기한다. 그것은 야만, 기독교, 봉건제, 악마, 촌뜨기, 궁정, 미개와 진보, 그리고 대중이다. 그것들은 유럽이라는 이름 하에 숨겨진 사실들을 좀더 진실되게 볼 수 있는 시각을 제공하고 그 왜곡된 생각들에 의문을 제기한다. 이 책은 분명 유럽의 역사를 재조명하는 책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비유럽인인 우리들에게는 어떠한 의미를 갖고 있을까. 이 글에서는 유럽의 거울로서 보는 우리의 모습에 대해 짧게 논해보고자 한다. 그것은 우리가 지금 있는 그곳을 말해주고 또 우리가 나아갈 곳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유럽이라는 거울에 비친 우리의 모습 유럽은 무엇을 연상시키는가?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유럽은 자유와 평등, 문명, 그리고 높은 삶의 수준 등의 이미지로 다가올 것이다. 지난 한 세기 동안 한국인으로서 우리들은 유럽을 닮기 위해서 노력해왔고, 그 것에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 이제 우리는 그들과 같은 사회체계를 가지고 있고, 그들과 같은 이념을 중요시하며, 그들처럼 생각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우리의 모습은 그들이 보기에 어떤 모습인가. 유럽인들이 他로써 우리들 我를 바라보는 시각은 어떠할 것인가. 그 대답은 ‘개발도상국’이라든가, ‘빠르게 문명화한 나라’ 정도로 예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이 이런 모든 대답에 앞서서 우리를 떠올리는 이미지는 아마 작고, 노란 피부를 가진 아시아인일 것이다. 그것이 그들이 인식하는 우리의 모습이기 때문이며, 그들이 느끼는 스스로와의 가장 큰 차이점이기 때문이다. 황인종이라는 이미지는 우리가 그들을 백인종이라고 생각하는 것과는 상당히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전자가 비문명화와 미개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진보와 자유나 평등과 같은 수준 높은 가치를 의미한다. 이러한 생각이 분명 서구인들에게서 유래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그 생각에 철저히 세뇌되어 있는 듯하다. 사람들은 점차 마치 유럽인들처럼 큰 키와 쌍꺼풀 있는 눈, 뚜렷한 코 등을 선호하고 있으며 그것은 이제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외관상의 변화가 서서히 일어나고 있는 것이라면, 더욱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는 것은 생각의 방식이다. 아시아는 전제주의 국가의 잔재가 남아있는 곳이고, 유럽은 일찍부터 자유주의가 발달한 우수한 문명이라는 생각은 우리 모두에게 급속히 퍼져 나갔으며 그 결과 한 세기만에 우리 삶의 양식을 유럽의 그것과 거의 비슷한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이렇게 유럽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은 그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자신들이 이루어놓은 길을 따라오기 위해 애쓰는 불쌍한, 아니면 기특한 몸부림으로 보일까. 분명한 것은 유럽인들이 만들어 놓은 길은 하나의 선택일 뿐이며,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또 그 길만이 옳은 것은 아니며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왔던 길도 그만큼의 가치를 갖는다는 사실이다. 유럽인들이 만들어놓은 길은, 그들의 시각에서 만들어진 것이니만큼, 우리에게 대해서는 철저한 타자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 타자의식은 그들 스스로를 더 우월한 존재로 만들어야 할 필요성을 가져다주었으며 그들은 그러한 의도를 성공시켰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날, 그 길이 그들의 의도 하에 만들어진 것임을 망각하고 그길을 오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나 역시 유럽인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이 우리를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완전히 객관적인 판단을 내릴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다른, 우리가 생각하는 열등 민족에게 대하는 생각을 돌이켜 본다면 유럽인들이 우리에게 대하는 그것이 되지 않을까 한다. 그것은 일종의 연민이며, 비웃음이며, 자만감이다. 우리가 이제껏 달려온 이 길은 우리가 선택한 길이기 보다는 선택을 강요당한 길이다. 우리가 한 사고라기보다는 강요당한 사고이다. 그 사고를 옳은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데는 유럽이라는 거울이 있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비춰보는 거울은 갖지 못한 채 그들의 거울을 통해서 스스로의 모습을 바라보았으며, 그런 이유로 우리는 그들처럼 되는 것이 발전의 길이라는 잘못된 목표를 설정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어떻게 바라보며 나아가서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우리 스스로의 거울 ‘우리 자신의 거울’은 우리의 정체성이다. 그것은 우리가 설정한 기준이며 길이다. 이제 유럽적인, 서구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우리 스스로의 기준으로 세계와 우리를 바라보는 일이 요구된다고 생각한다. 그 시각을 정립하는 데 앞서서 가장 먼저 요구되는 것은 我와 他의 의식을 명확하게 정립하는 일이라 본다. 이 책에서 언급하는 방법으로 말하자면, 일그러진 거울 대신에 곧은 거울을 통해 스스로를 바라본다거나, 아니면 편협한 거울 대신 창으로 건너편을 볼 수 있는 눈을 키우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몇 가지 개념에 대해서 재정립을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인종, 문화, 그리고 차이이다. 인종은 인류를 구분하는 큰 틀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그 잣대는 분명 일부의 시각을 반영한 것일 뿐 전 인류의 의지를 반영하지는 못하고 있다. 단적인 예로 인류를 구분하는 기준은 어떠한 타당한 근거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아마도 생리학적인 근거가 가장 타당성을 갖는 것이겠지만, 그 역시 이렇다할 보편적 동의를 얻지는 못한다. 이른바 ‘종’이란, 이 책에 따르자면, 서로 교미하는데 있어서 어려움이 없는 집단을 일컫는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사용되고 있는 인종이라는 의미는 다분히 편파적이며 의도적인 표현이라고 하겠다. 그 ‘인종’이라는 구분 안에는 외관상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근거 없는 성정의 차이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종을 구분하고자 하는 시도는 나와 다른 누군가를 임의로 결론짓는 위험한 발상이다. 하물며 누구의 동의도 없이 유럽인들이 스스로 만들어서 세계에 강압적으로 전파시킨 그 개념은 결코 타당성을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인종이 가시적인 차이를 언급한 것이라면, 문화는 내면적인 차이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이른바 ‘서구 문명’과 ‘이슬람 문명’의 충돌을 들지 않더라도 문화는 인종을 넘어서는 비교 기준으로 작용하고 있다. 문화는 환경적이고 역사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는 것이기에 차이를 가질 수밖에 없으며, 그러한 비교 혹 대조는 상당히 가치 있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절대적 가치로 존재해야 할 문화는, 오늘날 상대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 결과 우열과 열등 문화의 구분이 생겨나고 나아가 문화의 몰락마저 조장되고 있다. 인종과 문화. 현 세계에서 가장 큰 문제이자 이슈로 부각되고 있는 이 문제는 ‘차이’라는 한 마디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그 차이는 인류를 사분오열 찢어지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으며, 인류가 서로 몰락의 길로 가고 있는 이유가 되고 있다. 그러면 이러한 차이는 사라져야 하는가. 인류는 하나의 잣대 하에 일반화됨이 옳은 것일까. 물론 그렇지 않다. 바뀌어야 할 것은 이러한 차이가 아니라 차이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차이는 우열과 열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경멸이나 두려움의 대상도 아니다. 차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인정해야 한다. 차이는 우리가 가지고 있던 질서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도 아니고, 우리의 질서와 똑같은 만큼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서, 거울로서 나 스스로만을 바라보고 남과 비교해가기 보다는, 세계를 향해 난 창으로 밖을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 나와 남을 비교하는 것은 결코 진리를 찾을 수 없지만, 남 속의 나로써 나를 판단하는 것은 진리로 한걸음 나아가는 일이다. ‘거울에 비친 유럽’은 세계를 보는 시각에 있어서 의문을 제기하고 그것을 수정할 것을 요구한다. 야만은 ‘타인’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었고, 이단과 악마는 그러한 인식이 증폭된 결과였다. 진보와 미개라는 개념은 서구의 산물이지 진리는 아니며, 촌뜨기 또한 타자의식의 결과라는 것을 이야기한다. 이 책은 쉬운 책은 아니다. 이 책 안에는 수많은 학자들의 지식이 들어있으며, 유럽인으로서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반문과 자기 반성이 요구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비유럽인인 우리에게 여러 교훈을 가져다줄 수 있는 것은, 비단 유럽인에게 국한되지 않은 전인류적인 과제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신과 다른 타자에 대한 관용이며 열린 시각이며,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차이가 곧 위협이나, 스스로의 열등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물론 우월함을 나타내는 것도 아니다. 인종과 문화는 한 생활 방식일 뿐이지, 차별의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유럽적인 사고를 받아들였고, 지금 그 사고는 우리의 사상을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정체성 없는 수용이란 곧 스스로의 망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가. 우리는 유럽적인 잣대에 빠져들어 우리의 정체를 잊어버리고 스스로 그들과 같은 외양과 사상을 자지려는 무의미한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거울은 나를 비춰주는 도구이고 동시에 남과 비교하게 하는 도구이다. 거울에 스스로를 비춰보며 바꿔 나가기 이전에, 다른 사람들을 두루 볼 수 있는 열린 시야를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거울에 비친 유럽’은 유럽인의 진지한 자기 성찰이며 반성이다. 이제 비유럽인으로서 우리들도 올바른 성찰을 할 때가 아닌가 한다.
인간, 문화, 사회 이 세 가지를 연구하는 학문으로서의 인류학은 현재의 생활보다는 과거의 흔적들을, 내가 살아가는 이 공간보다는 내가 모르는 미지의 공간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잘못 인식되어 지루하거나 비실용적인 학문으로 천대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마빈해리스의 “문화의 수수께끼”와 지금 소개하려는 “낯선 곳에서 나를 만나다”를 살펴보면 이러한 일반인들의 고정관념을 깨려는 의도를 충분히 엿볼 수 있다. 책의 제목에서도 느낄 수 있겠지만 ‘문화 속에 무슨 수수께끼가 있다는 것인가?’ 또는 ‘낯선 곳에서 어떻게 나를 만나는가?’ 라는 식으로 독자의 흥미를 유도하기 위한 의도를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타인 또는 타문화를 바라보는데 있어서 그 흥미로운 부분만을 강조하고 홍보하려는 관광책자 종류의 책은 결코 아니다. 앞에서 언급한 인류학의 잘못된 인식을 타파하고 새로운 인류학에 대한 시선을 정립하고자 하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저자의 노력은 충분히 칭찬할만 하다고 할 수 있겠다. 목차를 살펴보면 1장 ‘낯선 곳에서 나를 만난다‘에서 시작하여 마지막 13장 ’새로운 현장들‘을 끝으로 총 1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만약에 독자가 이 책에 대한 사전 정보없이 그 목차만을 살펴보고 책을 고른다면 아마도 이 책은 매우 흥미없는 개론서정도로 인식될 수도 있겠다. 그만큼 목차를 살펴보면 기존의 개론서와는 특별히 다른 점을 발견하기 어려우며 대학강의교재 정도로 인식될 뿐이다. 그러나 그 내용에서 살펴보면 첫 장부터 매우 흥미로운 부분을 느낄 수 있다. 문화 상대주의에 대한 사례 제시가 그것이다. 사람들은 타문화와 자신들의 문화가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옳고 또한 이러한 행동이 충돌없이 살아가는 길이라고 알고 있을 만큼 문화상대주의에 대한 충분한 인식을 하고 있다. 브리지트바르도가 월드컵을 앞두고 우리나라의 개고기 식용문화를 비판했을 때 사람들이 하나같이 문화상대주의도 모르는 여자라고 비판한 것만 보아도 일반인들의 이러한 상대성에 대한 인식의 수준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너무나도 보편화된, 그래서 다시 설명을 하게 될 경우 자칫 지루하게 보일 수 있는 “문화상대주의”라는 용어를 설명하는데 있어서 똑같이 위에서 언급한 개고기문화에 대한 비판이라던가 일본과 우리나라의 식습관에 대한 서로의 인식차이 등을 언급하고 넘어갔다면 그것이야말로 교과서적인 수준에 머무르는 서술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독특하게도 한 인류학자가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티브족에게 이야기해주는 사례 제시를 통해 죽은 사람의 혼과 악령에 대한 시비, 햄릿의 작은 아버지가 햄릿의 어머니와 결혼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보는 것, 복수는 동년배 친구들이 하는 것이라고 나이 많은 친척에게 폭력을 쓰면 안된다는 것 등 여러 부분에서 그 해석에 있어서의 문화적 차이에 따른 이해의 차이를 보여주고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흥미유발에 있어서의 성공은 곧 작가의 의도를 전달하는데 효율성을 높여주고 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이러한 사례 제시를 통해 상대성에 대한 개념은 확실히 전달했을지 몰라도 그 대대(쌍대)적 개념인 제일성에 대한 개념의 전달에는 오히려 실패한 듯 보인다. 어떤 사물의 ‘앞’이라고 말을 하였을 때 그 ‘앞’이라는 단어를 안다면 ‘뒤’라는 단어의 존재또한 알고 있는 것이 된다. 이처럼 ‘앞’과 ‘뒤’라는 단어는 서로 의미는 반대되지만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해주는 개념 속에서 함께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을 대대(쌍대)라고 한다. 이처럼 대대의 개념이 적용되는 사례는 인간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사람은 다 다르다’ 라는 말은 곧 그 대대적 개념인 ‘모든 사람은 결국 다 같다’ 라는 말의 존재를 알려준다. 여기서 ‘모든 사람이 다 다르다’는 말은 문화의 상대성과 결부시킬 수 있으며 모든 사람은 결국 다 같다 라는 말은 문화의 제일성과 결부시킬 수 있는 개념이다. 결국 상대성에 대한 전달이 중요한만큼 그 대대적 개념인 제일성에 대한 언급 또한 필수적인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제일성에 대한 언급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물론 독자에게 ‘서로 다른 문화에 대해서 인정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자’ 라고 서두에서 주장을 하면서 동시에 ‘그래도 사람은 다 같은 것이니 보편적일 수도 있는 것이다‘ 라고 말을 한다면 모순된 주장을 펴는 것처럼 보일 것이고 독자에게 자칫 혼란만을 줄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인류학에 있어서 상대성과 제일성, 그리고 총체성 이 세 가지 기본 개념은 모든 연구의 기본이 되고 있는 만큼 이러한 부분에 대한 적절한 사례제시와 언급을 통해 독자에게 균형 잡힌 시각을 정립해 주는 것도 중요한 것이다. 사실 이 책의 전반적인 사례와 내용에 있어서 그 핵심적인 개념은 상대성이다. 우리가 지금 살고있는 곳과는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의 생활과 풍습을 보여주면서 이런 것도 있다 라고 흥미를 유발시키고 또한 이러한 것에 대한 거부감을 줄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따라서 상대성의 개념이 강조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얌전한 인디언인 주니족과 사나운 야노마모족을 보여주면서 양 극단의 사례를 통해 문화에 따라 각 민족의 인성이 결정된다는 시각으로 결론을 맺는 3장에서 작가는 상대성의 시각을 더욱더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지나친 상대성에 대한 요구는 독자에게 “그들이 그렇게 사는 것을 이해는 하겠는데 그렇다면 나에게는 무슨 의미지? 그냥 아무런 비판도 하지말고 그냥 알고만 있으라는 것인가? 그렇다면 나는 몰라도 되는 사실을 왜 알려고 하는 것인가?”라는 식으로 생각하게 할 수도 있다. 결국 이는 더 이상 책을 읽도록 하는 유인을 줄어들게 할 것이다. 상대적인 시각으로 두 문화를 이해하고 이러한 기본 바탕 위에 제일성에 관한 개념을 설명해 줌으로써 제일성의 시각으로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낯선 곳에서 나를 만나는 일이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상대성의 대대적 개념인 제일성에 관해서 언급을 했고 이러한 일방적인 상대성에 대한 강조가 책의 전반적인 서술의 균형을 흐트러트리는 부분에 대한 비판을 해보았다. 그렇다면 과연 이런 문제점만을 해결한다면 서술에 있어서의 균형을 찾을 수 있을까? 그것은 아니다. 위에서 인류학에 있어서의 세 가지 중요개념을 언급했는데 그 중에 한가지 아직 언급 안한 부분이 있다. 바로 총체성이다. 사실 인류학에서 총체성이라는 말은 인류학자들이 즐겨쓰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작 그들에게 있어서도 과연 총체적이라는 말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의미냐고 묻는 다면 난처해하기도 한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전경수 교수는 ‘총체적 접근’이라는 용어의 답습에 신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만큼 총체적이라는 개념이 언어로 규정하기 힘들고, 어쩌면 인류학에 일반인들의 접근을 막고 자신들의 학문 영역을 고수하기 위한 하나의 진입장벽으로 존재하는 단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총체성에 대한 허무를 핑계로 그 논의를 회피하기에는 서술의 균형이라는 가치가 너무 크게 다가온다. 전경수 교수는 총체성에 관한 이해를 돕기위한 사례로서 전남 완도 남단의 자지도(者只島)의 생태학적인 균형의 파괴현상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러한 생태의 파괴가 단순한 하나의원인때문만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부분, 산림생태적 부분, 조류생태적 부분, 해양생태적 부분 그리고 기후, 토양 등의 부분들이 모두 하나의 전체 체계 속에서 복잡하게 얽혀있으면서 그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처럼 총체성은 ‘부분의 합은 전체와 동일하다’ 라는 사고(andsum)를 부정하고 문화가 내포하고 있는 통합성 자체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데 이 책에서는 '9장 경제 - 좋은 것은 제한되어 있는가' 라는 부분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이 장에서는 농민들이 기본적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한정된 '제황의 이미지(Image of Limited Good)'를 가지고 있다는 것, 티브 사람들의 놋쇠막대 문화 등을 언급하면서 결국 경제발전이 나라마다 다른 이유를 집단의 인지적 성향이 담겨 있는 문화 때문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그 이유로 집단의 규범적 행동이 특정한 인지적 지향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이런 행동이 합리적인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그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어 보이며 이는 인류학 및 문화 연구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사람들이 인류학이나 문화연구를 비실용적이라고 치부해왔던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인 가치창출 능력이 떨어진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러한 면을 잘 알고 있는 듯 보란듯이 문화가 한 국가의 경제발전을 좌지우지할 수 있으며 이는 문화를 연구하는 학문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너무 의욕이 앞선 나머지 인류학의 기본 개념인 총체성의 개념을 무시해 버린 꼴이 되어버렸다. 문화는 경제 발전의 한 축이 될 수 있고 좋은 토양이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 전체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위에서 말한 자지도 섬의 생태파괴를 바라보는 시각처럼 한 나라의 경제 발전도 여러 분야의 총체적인 시각으로 판단하고 분석을 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경제학 서적에서는 경제 발전의 원인을 경제의 효율적인 운용과 가치창출에만 주목해서 서술을 하고 있는데 왜 인류학 책이 경제발전을 인류학에 주목해서 서술한 것을 비판하는가? 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경제학 서적은 그 책의 기본 목적 자체가 경제발전의 방책을 서술하는 것이기에 무리가 없지만, 인류학 책은 그 서술의 목적이 경제발전이 아니기에 문화와 인류 그리고 경제발전을 연계시켜 서술하는데 있어서 좀 더 신중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어떠한 서술이 인류학 서적으로서 경제발전에 대한 적절한 내용을 담아낼 수 있는 것일까? 그 해답 또한 이 책에 담겨 있다. ‘제 13장 새로운 현장들 - 회사에 간 인류학도, 인류학자여, 이제는 위를 보자!’ 를 통해서 작가는 인류학이 경쟁력과 최대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에 적용되는 실용학문으로서 거듭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인류학 전공을 한 수잔이라는 사람이 UTC라는 다국적 기업에서 일하게 되면서 관리자로서 직원들을 대할 때 민족지적 접근방법을 통해 기업의 효율성을 높였다는 구체적 사례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 대목에 작가는 다소 고무된 듯한 인상을 받을 수 있다. 여러 번 언급했지만 학문의 비실용성이나 비현실성(여기서 비현실성이란 지금 자신이 살고 있는 생활에 적용하기 어려운이라는 뜻으로)에 발목을 잡혀 항상 뒷전에만 밀려있던 인류학이 빛을 볼 수 있는 좋은 사례이기 때문이다. 9장에서처럼 문화와 경제발전과의 관계를 서술하면서 자칫 비약적이고 총체성의 개념을 무시했다는 비난을 받기보다는 13장과 같은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사례 제시를 통해 인류학의 새로운 방향과 비젼을 제시하는 것이 더욱더 일반 독자에게 설득적으로 다가온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인류학의 기본개념인 상대성, 제일성, 총체성을 평가의 준거로 상정하여 책 한 권을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책의 모든 부분을 세세히 살펴보고 꼼꼼히 내용정리를 통해서 살펴보는 것 자체도 중요하지만 이 책의 목적이 무엇이고 그 목적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독자에게 전달하고 있는가, 논리전개에 있어서 무리는 없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독자의 한사람으로서 더욱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소 많은 내용적인 부실함이 보일지 몰라도 몇몇 중요 장만을 뽑아서 평가하고 생각해보았다. 전체적인 평가는 일반인의 흥미를 끌고 새로운 인식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는 면에서는 그 작가의 의도를 높이 사고 싶다. 그러나 이러한 의욕이 너무 앞선 나머지 기본 개념에 충실하지 못하고 서술의 균형을 놓친 대목이 부분부분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러한 부분만을 바로잡는다면 마빈해리스의 “문화의 수수께끼” 이후에 새롭게 일반인에게 다가오고 있는 인류학의 입문에 좋은 지침서가 되리라 믿는다.
작년 9.11 테러 사건을 통해 전 세계가 떠들썩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그때 사람들은 그러한 사건의 주범인 테러단체를 비난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러한 사건의 근본적인 원인을 미국의 강압 정책에서 찾기도 하였다. 또한 이러한 관점과는 다르게 사건의 원인을 문명간의 충돌로 바라보는 관점도 있었다. 테러 사건을 문명간 충돌로 이해하려는 이들로 인해서 서점에서는 이슬람관련 서적과 서양사 관련 서적이 많이 팔렸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서양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9.11테러와 같은 사건은 흥미로운 분석의 주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그동안 한국사에 밀려 외면 받아왔던 사람들의 관심을 새롭게 유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지난 7,80년대 군부정권을 거치면서 역사연구에 있어서 한국사는 반공교육 및 정권유지라는 이해관계와 맞물리면서 국가 차원의 연구와 지원이 많았다. 반면에 서양사는 학교교육에서도 구석으로 밀려났다. 이러한 정책 속에서 한국사는 우리나라의 역사니까 꼭 알아두어야 하며 그것이 마치 기본 필수 ‘덕목’인 것처럼 인식되어 온 반면 서양사는 선택과목에 불과하니까 대강 시험 전날에만 공부하면 되는 ‘교양’으로 치부되어왔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사람들의 서양사에 대한 인식은 생소한 인명, 지명, 사건명을 달달 외워야 하는 과목으로 인식되었고, 그 이미지는 어렵고, 힘든 것으로 굳어졌다. 지금도 이러한 이유 때문에 서양사라고 하면 손을 내젓는 사람을 많이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국내 서양사 학자들의 노력이 없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노력이라는 것이 군부 정권 속에서 강압적 통치로 인해 자기 보신주의적 반론을 펼치는데 그쳤으며, 한국사학자들과 역사 해석에 있어서의 논쟁을 통해 학문적 필요성을 설득해 나가는 소극적인 방식을 취함으로써 대중과 오히려 유리되어 버렸다. 결국 지식층들만의 밥그릇 싸움으로 비춰짐으로써 대중들은 서양사에 대해 안 좋은 이미지를 하나 더 추가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의 해결을 위해 이제는 대중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는 주장이 하나씩 제기되기 시작했는데, 지금 소개하려는 “호메로스에서 돈키호테까지”(윌리엄 L.랭어 엮음, 박상익 옮김, 푸른역사)라는 책을 그러한 주장을 근거로 잘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역사 서술에 있어서의 관점, 목적이라는 분석틀을 기준으로 “호메로스에서 돈키호테”라는 책에 대해 분석한 후 나아가 서양사에 대한 이해와 연구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에 관해서 서술하도록 하겠다. 이 책은 윌리엄 랭어가 직접 쓴 것이 아니라 해당 분야의 역사가들이 서양사의 큰 흐름을 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쉬운 말투와 이야기식 진행으로 쓴 역사에세이 17편을 엮은 것이다. 책에서 사용된 용어들은 결코 생소하거나 학문적인 단어가 아니며, 교과서에서 접했던 암기식 단어의 나열에 그치는 재미없는 서술이 아니라 마치 이야기책을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즉, 이 책은 한 마디로 대중의 흥미를 유발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다. 다소 격하게 말한 듯 하지만 엮자 윌리엄 랭어 역시 머리말에서 밝히고 있듯이 책의 목적이 대중에게 좀 더 쉬운 역사를 소개하고 대중의 흥미를 유발하기 위한 것임을 인정하고 있다. 최근 TV프로그램 편성 비율을 보면 시청률을 쉽게 끌어올릴 수 있는 재미 위주의 오락, 예능 프로그램의 편성을 늘리고, 뉴스 등 시사 정보 프로그램의 편성을 줄이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은 역사학계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 점점 감각적이고 단순한 재미를 추구하는 일반 대중에게 어필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딱딱하고 지식전달에 치우친 재미없는 역사책들보다는 이야기 형식의 흥미와 재미를 유발시키는 이러한 책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이렇듯 재미 위주의 서술이 항상 대중에게 절대적으로 유익하다고만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누군가의 흥미를 끌고 재미를 이끌어 낸다는 것은 그 내용에 대한 집중도를 높일 수 있고, 사실 전달의 효율성 또한 높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지나쳐서 내용의 객관성을 저하시킬 수도 있으며 독자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혹자는 “서론에서는 국내 서양학계의 어려움과 안 좋은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가야 한다고 말을 해놓고 이제 와서 이러한 대중과의 친밀성을 높이는 작업이 유익하다고만 볼 수 없다는 주장을 펼친다면 이것은 모순 아닌가?” 라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대중에게 다가가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분명히 위에서 밝혔듯이 국내 서양학계는 점차 대중과 멀어져가는 어려움에 처해있고 이것은 서양학계에 대한 관심과 발전을 위해서라도 대중에게 가까이 가는 작업과 노력은 분명히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지나친 나머지 객관성의 결여로 이어지고 서술의 균형을 잃어버려서 흥미 위주의 스포츠 신문 기사성 추측이 난무하고 심지어는 역사의 왜곡으로까지 이어진다면 안하느니만 못하다는 말이다. 이러한 주장에 대한 근거로 이 책의 내용들을 하나하나 따져보면서 이러한 가능성에 대해 이 책의 단점을 지적하고 개선책을 제시하고자 한다. 지식전달과 흥미유발 중에 무엇에 무게를 둘 것인가? 역사에 대해 서술하는 책이 항상 고민하는 부분일 것이다. 물론 이 책은 단연 흥미유발이라는 부분에 그 무게중심을 두고 있음은 분명하다. “호메로스에서 돈키호테까지” 라는 책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오랜 기간의 역사를 단지 17개의 주제에 한정시켜서 그 주제를 중심으로 책 전체의 내용을 전개하고 있으며, 17개의 주제를 서술하는 데에도 기존의 시각에 의존하지 않고 한편의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줄 정도로 참신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것은 당연히 독자에게 새롭다, 흥미롭다 라는 느낌을 가져다 주며 결국 이는 흥미유발이 서술의 목적임을 밝힌 엮자의 말에 충실히 따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흥미유발에 대한 목적이 지나친 나머지 두 가지 거슬리는 부분이 눈에 띈다. 첫째, 구성상의 연계성이 부족하다. 이 책의 구성은 설명했듯이 17개의 역사에세이를 윌리엄 랭어가 엮은 책이다. 한마디로 각각의 챕터들은 원래 각각의 독립된 글이었다는 뜻이다. 이러한 부분을 각각의 주제들을 자연스럽게 하나의 방향으로 엮어주는 것이 엮자의 할 일일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다보면 각각의 주제들이 도대체 어떠한 방향성을 가지고 하나의 책으로 엮일 수가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단순히 이러한 시각은 기존의 시각과는 많이 다르니까 사람들이 읽으면 재밌어 하겠군. 하는 생각에 억지로 끼워넣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예를 들어 “호메로스 새로 읽는 법”이라는 챕터에서는 호메로스가 실존인물이었는가에 대한 의혹과 그가 서술한 일리아스나 오디세이아와 같은 서사시가 정말 직접 쓴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해결해준다. 그러나 그 후에 소크라테스의 재판, 알렉산드로스가 이룩한 두 세계, 노예상인 티모테오스의 생애 등의 내용이 이어지지만 이러한 각각의 내용들간에 어떠한 연계성도 보이지 않는다. 단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서양사라는 것뿐이다. 이러한 취약한 연계성은 독자로 하여금 원래의 목적인 흥미유발의 효과를 저해시킬 수도 있다. 독자는 읽으면서 왜 자신이 지금 이 책을 읽고 있는지에 대해 항상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각각의 내용들이 하나의 통일된 맥락없이 단편소설 읽듯이 재미난 역사 이야기의 나열에 그친다면 책을 읽는 동기유발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혹자는 방대한 양의 역사와 긴 시간을 단지 17개의 주제로 한정시켜 하나의 책으로 엮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것 아니냐며 그 주제간에 연계성을 갖도록 구성하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방대한 양의 역사와 긴 시간을 다루고 있기에 오히려 풍부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큰 틀을 짜고 그러한 틀에 맞추어 통일된 맥락을 가진 주제를 선정하여 역사를 서술하는 작업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알렉산드로스가 이룩한 두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 알렉산드로스 제국이 남겨놓은 유산은 헬레니즘 세계이며 이 세계는 보편주의, 전 세계인의 결속, 인류의 협력 등의 개념을 역설한 알렉산드로스의 꿈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그러나 이러한 주제는 더 이상 이어지지 못하고 다음 챕터에서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러한 구성보다는 알렉산드로의 헬레니즘에 관한 이야기를 전개한 다음에 보편화라고 하는 철학적 사유를 제시한 바울의 내용을 담은 “위대한 신앙 해석자 바울”이라는 챕터를 제시함으로서 보편성이라는 문화의 원류에 대한 이해와 이러한 문화가 어떻게 후에 기독교라는 보편적 신앙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는 철학적 토대가 될 수 있었는지에 대해 독자에게 자연스럽게 설명해 주는 것이 더욱더 일목요연하게 보일 것이다. 결국 엮자는 이러한 역사 흐름의 연계성을 무시한 채 흥미유발에 급급한 나머지 책 전반의 흐름을 부자연스럽게 만들었다. 역사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술해야 한다는 기존의 고리타분한 고정관념을 버림으로써 오히려 참신성과 흥미성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둘째, 객관성이 결여되어 있다. 객관성이 결여되어있다고 해서 이 책 모두가 거짓이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이 책은 저명한 역사학자들이 쓴 만큼 그들의 주장과 논거에는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두고 논리적 연구에 바탕을 두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만큼 역사적 서술에 있어서 객관성이라는 것은 필수적인 요소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시각의 독특함과 명료함이 지나쳐서 객관성의 영역까지 침범하는 부분이 군데군데 보이는 것이 아쉽다. 소크라테스의 재판과 관련된 내용에서 기존의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명”에서 보여준 소크라테스의 연설문은 플라톤에 의해 후에 각색된 것일 가능성이 크고 오히려 소크라테스는 말더듬이었으며 웅변가보다는 논객에 가까웠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하다. 그 시대에는 모든 재판과정이 구두로 진행되었고 지금과 같은 속기사가 없었기 때문에 이러한 추측이 설득력있게 다가올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러한 추측이 100% 옳다고 증명할 길도 없는 것이다. 즉 추측은 추측에 불과할 뿐 그 어떤 것도 증명해주지 못한다. 그러나 플라톤이 쓴 변명에서는 분명하게 글로써 소크라테스의 입장을 대변해주고 피력하고 있다. 이렇게 분명하게 남아있는 증거인 문서를 부정하고 그 시대의 상황적인 개괄을 통해 이럴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사실인양 역사적 서술을 한다면 과연 그러한 서술에서 객관성을 찾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러한 역사 서술이 스포츠 신문의 ‘OOO군, XXX양 열애설’ 기사의 내용에 등장하는 ‘같은 비행기를 타고 출국하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에 사귀는 것이 분명하다’ 라는 식의 근거제시와 과연 무엇이 다르냐고 묻고 싶다. 역사는 객관적이고 증명할 수 있는 사료에 바탕을 두고 기술을 해야 한다. 물론 문서상의 사료 또한 사람에 의해 윤색되고 각색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당시의 시대상황이나 환경이 기존의 남아있는 명백한 자료를 뒤엎어 버리는 식의 역사연구는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이는 마치 삼국시대 유적에서 치즈나 버터가 나왔다고 해서 기존의 역사 서술 사료의 내용을 부정하고 이 곳이 삼국시대에 미국 땅이었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지나친 흥미위주의 서술과 상황에 충실한 역사 서술은 자칫 역사 서술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객관성의 결여와 설득력 부족으로 빠질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지금까지 역사를 서술하는 데 있어서 ‘지식전달이냐 흥미유발이냐’라는 큰 틀을 바탕으로 흥미위주의 역사서술이 가져다 줄 수 있는 폐해에 관해서 “호메로스에서 돈키호테”라는 책을 통해 알아보았다.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흥미위주의 역사서술과 참신한 역사 해석을 바탕으로 하는 종류의 책을 읽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아니다. 서론에서도 밝혔지만 국내 서양학계가 대중으로부터 점차 멀어져가고 외면당하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이러한 류의 책을 보급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분명히 필요한 작업일 것이다. 그러나 필요하다고 해서 무분별하게 받아들인다면 위에서 제시한 부작용으로 인해 오히려 더욱더 대중으로부터 외면받고 잘못된 역사인식을 심어줄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지나친 흥미위주의 서술을 지양하고 객관적이고 균형잡힌 책을 선정하며, 또한 독자들 스스로도 비판적으로 역사를 바라보고 인식할 수 있는 역사관을 심어주는 교육적인 노력도 필요할 것이다.
2006년에 많이 팔린 책중의 1권을 들라면 한비야의 ‘지도밖으로 행군하라’일 것이다. 이 책이 이렇게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중의 하나는 우리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독후감 숙제를 많이 내어주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백만권 가까이 팔렸다고 한다. 이 책은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 , ‘한비야의 중국견문록’을 쓴 한비야씨가 지난 5년간 국제 NGO 월드비전의 긴급구호 팀장으로 활동한 것을 적은 삶의 보고서이다. 이 책에서는 ‘아프가니스탄, 아프리카는 더 이상 '동물의 왕국'이 아니다 - 말리위 · 잠비아’, ‘당신에게 내 평화를 두고 갑니다 - 이라크’, ‘별을 꿈꾸는 아이들 - 시에라리온 · 라이베리아’, ‘세계의 화약고 - 팔레스타인 · 이스라엘’, ‘쓰나미는 과연 천재였을까? - 남아시아 해일 대참사’, ‘감자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 북한’등의 활동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책은 산문 에세이집 형태로 되어 있어 지구촌화와 전세계의 평화라는 시대적 요청에 맞추어 남들이 하지 못한 자신만의 독특한 경험을 제시하여 독자들에게 간접체험을 하게 하고 있다. 특히 이 책이 갖는 몇 가지 의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지구촌화 시대에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우리 나라가 무역액이 3천억 달라가 넘고 조만간 5천억 달라가 될 것이라고 한다. 외국과 교류가 없는 한국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이때 청소년들에게 해외로 눈을 돌려야 함을 강조하고 있어 적절하다고 본다. 둘째, 더구나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취임하면서 우리 나라가 이제 개발도상국가 사람들을 더 많이 배려하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지금 청소년들은 우리 나라가 갑자기 잘 사는 나라로 알수도 있지만 우리나라가 1900년대까지만 하여도 외국에서 지원을 받았다. 필자도 어릴 때 외국에서 준 옷을 입고, 외국에서 지원하여 학교에서 무료로 주는 빵과 우유를 먹고 큰 기억이 난다. 이제는 우리가 전세계의 못사는 사람들에게 갚아야 할 때이다. 셋째, 생명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단돈 50달러의 빚에 아이를 파는 방글라데시의 가난한 농촌이야기, 배고파서 죽을 아이 독초라도 먹이겠다는 아프가니스탄의 엄마 이야기, 쓰나미에 30여만명이 죽거나 실종되었으며 10만원인 배가 없어 어렵게 사는 스리랑카 아이의 가정 이야기 등을 보면서 정말 생명이 소중한 것임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이들 아이들도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인생인데 왜 이렇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넷째, 청소년들에게 도전의식을 강조하고 있다. 한비야씨가 전세계 93개국을 방문하고 항상 도전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는데 우리 청소년들이 가져야 할 도전의 자세라 보인다. 다섯째, 무슨 일을 하던 가슴을 뛰게 하고 내 피를 끓게 하기 때문이라는 글이 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정말 이런 자세로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이 든다. 한비야의 이 책은 쉽고 이해가 잘 되도록 쓰여 백만권 정도 팔린 것이 이해가 되고 청소년추천도서가 될 가치가 있다고 본다. 또 한비야씨의 열심히 사는 모습, 남을 배려하는 자세, 국제적으로 한국의 위치를 생각하게 하는 점, 여성들에게 바람직한 모습을 보여주는 점에서 이 책이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고 본다. 그런데 이 책자를 독서 지도함에 있어서 충분한 지도가 없이 막연히 독후감을 써서 제출하라는 식이 되면 후진국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줄 수도 있다고 보이며, 인터넷을 통한 독후감 숙제를 구입하여 청소년들이 마지못해 책을 읽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겠지만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다시 한번 전 세계와 우리 주위의 가난한 이웃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전 세계 65억 인구 한명 한명이 소중한 것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월 2만원이면 이들 나라의 한 가족을 가난에서 구한다고 한다. 이런 점을 한번 더 생각하는 기회를 가졌으면 한다. 이제 동계방학이 되면 우리 교사들이 외국에 많이 여행을 한다. 이 책에서 나온 것과 같은 점을 고려하여 개발도상국가에 가서 무엇인가 도움을 주었으면 좋겠다. 또 한비야씨같이 여행한 것을 꼼꼼하게 기록하여 한국교육신문에 리포트로 글도 쓰고 학생들에게 교육적인 지도를 하였으면 한다.
여행은 설렘이다. 가까이 있으면서도 가장 먼 곳이 되어버린 조국의 슬픈 반쪽, 그 곳을 여행하는 일에 대한 기대는 설렘을 넘어선다. 그 중에서도 금강산을 찾아가는 길이라 모두들 들떴다. 형용사로 치장하는 것이 오히려 거추장스러운 신령한 곳, 조물주가 세상 만물을 창조하고 마지막 날 남은 모든 힘을 쏟아 부어 만들었다는 금강산 일만 이천 봉을 만나러 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8월 22일 여섯 대의 버스에 나누어 타고 출발하였다. 교총회원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졌기에 모르는 얼굴이지만 서먹하지는 않았다. 울진에 들러 신선한 회를 먹었다. 설악산 금호리조트에 도착하여 첫날 여장을 풀었다. 여행의 묘미는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에도 있지 않을까. 아이들을 가르치는 같은 인생여정을 걷는 이들이기에 마음을 트기가 수월하였다. 8월 23일 5시에 고성으로 이동하였다. 남북한 한계선 철책을 넘어 좀처럼 열리지 않으리라는 비무장지대를 당당히 넘어 북녘땅을 밟았다. 남측 출입사무소의 위용과 북측 출입사무소의 허술함의 대비가 돋보이기도 하였지만 정작 안타까운 것은 복잡한 입국과 출국 수속을 동족끼리 오랜 시간 치러내야 하는 일이었다. 북측으로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안내조장들로 부터 주의사항을 무척이나 길게 들었는데 주의할 것은 이동 중에 버스차창으로 사진을 촬영하지 말 것과 북한과 남한을 공식적으로 지칭할 때에는 이란 단어를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점심을 먹고서 구룡폭포를 찾아 나섰다. 신계천을 끼고 미인송이 울창한 창터솔밭 사이로 술기넘이 고개를 넘으면 신계사가 나타난다. 산길을 굽이굽이 넘을 때마다 새로운 화첩이 한 폭씩 열린다. 금강산의 물은 녹색을 띤다. 비취빛 물은 명경지수라 깊이를 가늠하기조차 힘이 든다. 보자마자 모두의 마음속에 생명수로 들앉았으나 손 한 번 담글 수 없는 영롱한 물빛이 고왔다. 높이 139m, 너비 4m의 비봉폭포에 다다르니 물 소리가 천둥소리다. 전날부터 내린 비가 지금도 오락가락하니 그 위용이 하늘을 찌를 듯하다. 물안개가 사방을 덮고 구름이 자유자재로 움직여대니 폭포의 모습은 정확히 새길 수 없다. 봉황이 날아갔다면 아무도 볼 수 없었으리라. 휘모리 장단 속에 사뿐사뿐 춤을 추더라도 속인의 눈에 그게 보일 것인가.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다. 옥류동, 연주담을 거쳐 드디어 관폭정에 올랐다. 관폭정은 앞면 3간, 옆면 2간의 합각 건물로 선비의 풍모를 지닌 의젓한 모습이었다. 이런 날씨에는 아홉 마리 용이 모습을 드러낼 법도 하건만. 구룡폭포의 모습조차 뿌연 안개 속에 가늘게 구불거린다. 폭포절벽과 바닥이 한 덩어리의 화강암 암괴로 이루어진 이 폭포 아래 구룡연은 깊이가 13m나 된다고 한다. 단청이 여기저기 벗겨진 모습에서 먼저 왔던 사람들의 자취를 느끼게 하는데 북한 안내원들이 특산물을 판다. 내려오는 길에 구룡폭포 위쪽에 위치한 상팔담으로 오르고 싶었다. 금강의 풍취에 홀려 머뭇거린 시간이 길어 내려갈 시간이 급하였기에 포기하고 말았다. 상팔담의 구슬처럼 동그란 여덟 개의 초록담潭을 다시 보고 싶었다. 나무꾼과 선녀의 전설을 떠올리며 다음을 기약하였다. 신계사는 한국동란 때 파괴되었다. 그것을 남한의 조계종 종단의 협력으로 지금 재건하고 있는 중이었다. 옛 모습을 찾으면 기원들이 모여 번성하던 그 때처럼 한 나라, 한 민족으로 어우러질 수 있을까. 각이 잘려버린 탑을 보며 두 손을 모았다. 앞쪽 문필봉을 사진으로 남겼다. 자식의 학문에 영험을 끼칠 수 있다는 안내원의 설명에 대학입시가 목전에 닥친 아들아이가 생각나서다. 온정각에 돌아와 점심을 먹고 삼일포로 향했다. 관동팔경의 하나인 이곳은 36개의 봉우리가 호수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웅장하면서도 아늑한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솔숲이 우거진 가운데 쭉 뻗은 흙길을 제법 걸어 전망대에 도착했다. 신라시대 때 영랑(永郎)·술랑(述郎)·남석랑(南石郎)·안상랑(安祥郎)의 네 신선이 3일 동안 이 호수에서 놀다갔다 해서 이 같은 이름이 붙여졌다고도 하고 옛날에 어떤 왕이 관동팔경을 하루에 한 군데씩 유람하기로 했는데 이 곳에 와서 삼일을 묵어 삼일포라 한다고도 한다. 백두산의 삼지연, 인근의 시중호와 함께 북한의 3대 호수로 꼽히는데 물이 맑아 마치 선녀가 떨어뜨린 거울과 같다는 말을 듣는 곳이다. 호수 가운데에 소가 누워있는 형용을 한 와우도의 소나무 숲이 멋졌다. 사진 한 장으로 둘레가 8㎞나 되는 호수의 전경을 카메라에 담으려니 앵글이 부담스럽다. 석 장을 찍어 파노라마로 이어 붙였다. 막걸리 한 잔을 맛보며 한량다운 멋을 부려보았다. 주량이 형편없지만 긴장을 적절히 풀어놓는 것이 이런 수려한 자연 속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장군대를 돌아나오다 북한 안내원의 노래를 들었다. 졸랐더니 스스럼없이 노래를 들려주었다. 소박한 노랫소리와 우리들의 손뼉장단이 멋들어지게 어울렸다. 온정각으로 다시 돌아와 평양 모란봉 교예단 공연을 보았다. 세계 최정상급의 묘기를 연출하였는데 가슴이 울컥하였다. 북한에서는 연예인을 대중예술인이라고 한다. 남한의 장관급, 차관급에 해당하는 대단한 지위와 대우를 받는 인민배우와 공훈배우들의 묘기는 손에 땀을 쥐게 하였다. 불가능의 세계를 가능케 하기 위해 그들이 흘린 땀은 어느 정도일지. 교예의 초보 수준인 서커스조차 남한에서는 사라진 지 오래지 않은가. 공연 내내 박수를 치느라 손바닥이 아팠다. 혹시나 잘못될까 마음 조렸기에 가슴이 뻐근하였다. 동포 앞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아름다워 눈이 시렸다. 금강산 온천은 물이 좋기로 유명하다. 온천물이 워낙 깨끗하고 무색투명하여 대중탕 안에 들어가 있는 다른 사람들의 몸이 훤히 비칠 정도였다. 매바위산을 건너다보며 즐기는 노천탕이 단연 백미다. 옥류탕, 연주탕, 폭포탕, 옥돌보행탕, 황토방을 두루 다니며 몸을 금강산 버전으로 정화하였다. 금강산페밀리비치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8월 24일 오늘은 만물상 코스로 도는 날이다. 버스로 굽이굽이 고갯길을 660m 쯤 올라가 주차장에서 내린 뒤 산행을 시작했다. 몇 번을 쉬어가며 망양대에 올랐다. 기암협곡을 타 올라 제1망양대에 올랐다. 외금강의 위용을 내려다보고 먼 동해바다에 눈길을 주었다. 제3망양대까지 두루 둘러보고 비로봉이 어딜까 짐작해 보았다. 갔던 길을 되돌아와 천선대로 오르는 갈림길에 섰다. 육년 전에 아들아이와 어머니의 손을 잡고 올랐던 적이 있다. 여러 가지 제약에도 불구하고 이곳을 다시 찾은 것은 나름의 과제가 있어서이다. 가슴을 울리는 그 아름다움을 글 한 편으로 나타내보려는 것. 육 년 동안 떠올려보았으나 도저히 필설로 표현할 수 없어 안타까웠다. 계속 오르막이라 힘든 편이다. 가파른 오르막을 타 오르니 첩첩 능선들이 바위를 액자 삼아 걸쳐진다. 드디어 수직 벽에 박혀있는 철계단을 올라야 한다. 경사 80도의 계단에 붙어 뒤돌아볼 념도 내지 못하고 한 걸음 한 걸음 힘겹게 오른다. 드디어 천선대에 올랐다. 해발 936m, 국가지정 천연기념물 216호라고 쓰인 표석이 우리를 맞는다. 전에 앉았던 그 자리에 다시 앉았다. 가슴은 가득 차 있으면서도 한 줄의 글조차 쓸 수 없었던 시간이 아득하다. 다시 찾기 위해 그랬던 것일까. 적절한 형용사 낙점에 그토록 망설였던 것은. 문득 자살을 떠올렸다. 세상사 힘들어 죽기를 마음먹는다면, 이 정도의 아름다움 속에서 접는 것은 어떨까. 두 팔을 벌리고 한참을 활강하다보면 활수 같은 구름이 금세 싸안아 안전하게 삼선봉 병풍 두른 너럭바위에 착 앉혀줄 지 누가 알겠는가. 그 순간 신선이 되어,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대기 중에 흩어진들 어떨까 싶었다. 행여 눈물 어려 영롱해진 사리 몇 알 있다면 녹색 옥계에 잠겨 수정으로 굳으리라. 천 년 후에 우연히 세상에 나가 아름다운 여인의 총애를 받는다면 세월만큼 쟁여진 금강산 정기로 인해 그녀도, 수정도 행복하지 않을까. 이곳은 이름 그대로 금강산의 절경에 취해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들이 놀다 갔다는 자리다. 바위로 뒤덮여 서너 명이 서 있으면 꽉 찰 정도로 비좁다. 우리가 가는 곳곳에 북한 안내원이 두 명씩 짝을 지어 우리를 지켜본다. 북한안내원과 인사를 트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조심스러웠지만 대화가 매끄럽게 이어졌다. 우리 일행이 부산교총 회원들이며 나는 부산교육신문 기자 자격으로 왔다고 소개를 했더니 전교조, 한교조, 교총의 특징에 대해 그가 물었다. 남한의 교육이나 교사단체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 것이 의아하였으나 어쩌면 그는 북한에서 남한 관광객들과 많이 접촉하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인 정주영의 고마움을 말하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바로 옆 하늘문바위가 웅장하게 보일 수 있도록 세로컷 사진을 찍고 아쉬운 발길을 돌렸다. 조금 내려오니 망장천忘杖泉에 다다랐다. 이 샘물을 마시면 기운이 솟아 지팡이를 잊고 간다하여 생긴 이름이다. 일찍 집을 나서는 나를 전송하며 아들아이가 내게 원했던 선물은 금강산 물 한 병이었다. 수량이 적었지만 물병을 가득 채워 소중히 간직하였다. 내려오는 길에 귀신의 얼굴을 닮은 귀면암에 놀라고 세 개의 기암으로 형성된 삼선암에서 기념촬영을 한 뒤 온정령 일흔 일곱 구비를 돌아 내려왔다. 우리가 이동하는 지역의 마을 주민들은 우리들과 직접 대면하지 않도록 이동시간에 제약을 받는다. 우리가 지나가기를 멀찍이 모여서서 기다리는 그들을 보며 괜히 미안하였다. 옥류관에서 랭면을 먹었다. 면발이 부드러워 자르지 않아도 되고 맛이 단촐하여 먹을 만하였다. 10분을 걸어 온정각으로 돌아와 간단하게 특산품을 샀다. 금강산이 신의 땅이라면 우리가 지나쳐 온 북측의 산은 배고픈 인간의 땅이었다. 되돌아오는 길에 차창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언제 다시 이 땅에 발을 디딜 수 있을 것인가. 바위산과 민둥산 능선이 남쪽으로 달리고 있었다. 남한 군사분계선을 넘자마자 산하는 변하였다. 무성한 숲, 풍성한 들판, 곡식의 때깔이 달라진 그 모습을 영화처럼 이어 보며 북한 안내원의 말을 떠올렸다. ‘남측 사람들, 운동 좀 하시라요.’ 하나같이 날씬하고 마른 그들에게 잘 먹고 잘 노는 듯한 우리들이 어떻게 비쳤을까. 아마 그 말은 걷기 힘들어하는 우리를 격려하는 말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먹을 것이 없어 허덕이는 북한 동포들의 안타까움을 마음에 실어서 하는 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던 북한 군인들은 하나같이 여위고 키도 작아 큰 군모에 눌린 모습을 한 채 부동자세로 서 있었다. 땡볕에 길에서, 산에서, 건물 뒤편에서. 설악산 금호리조트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었다. 여행의 마지막 밤, 잔디밭에 나가 맥주 한 잔으로 여정을 정리하였다. 부산 교대 15기 팀과 함께 어울려 탁구장에 갔다. 노래방에, 펍에, 어떤 이들은 대포항까지 나가 낭만을 만끽하는 가운데 설악의 밤이 깊어갔다. 8월 25일 고즈넉한 아침이 열렸다. 리조트 옆길로 도는 산길을 산책하고 조깅을 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양 교수님과 최 교육장님을 만났다. 부부가 함께 한 여행이라 더욱 행복하셨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헤어짐은 쓸쓸하다. 가슴속에 추억을 안고 모두들 자신의 보금자리로 향하였다. 여행은 끝났다. 사진이 남고 느낌이 남았다. 일본의 유명작가가 금강산에 오르고는 “아, 아름답다.”는 말밖에 하지 못했다고 한다. 전 세계를 두루 여행하고 피요르드와 파푸아뉴기니까지 여행을 하였다는 어떤 이도 천선대에 올라 ‘아!’하는 짧은 감탄사 밖에 할 말을 찾지 못했다고 전한다. 이번에도 나는 한 편의 수필을 쓸 수 없을지 모른다. 그래서 이 여정을 다시 밟아 천선대에, 관폭정에 한 번 더 오르기를 소원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노력해 볼 것이다. 금강, 너에게 적절한 형용사를 찾아주고 싶다. 원활한 일정을 위해 수고해주신 교총 관계자들 외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