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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앞으로 300 세대 이상 주택사업자는 사업지역이 협소해 사업지역 내에 학교용지를 확보할 수 없는 경우 용지부담금만 부담하고, 관할 교육청이 학교용지를 확보하게 된다. 정부는 28일 한명숙(韓明淑) 총리 주재로 규제개혁장관회의를 열어 이런 내용 등이 담긴 '공동주택 규제개선 방안'을 확정해 발표했다. 개선안은 300세대 이상 주택사업자가 사업지역 내에 학교용지를 확보할 수 없는 경우 현재는 시도교육감과 협의해 인접한 지역에 학교용지를 확보토록 하고 있지만 토지수용권이 없는 사업자가 용지확보를 못하는 바람에 사업계획이 지연되는 점을 감안, 사업자는 용지부담금을 부담하고 관할 교육청이 학교용지 확보의 책임을 맡도록 개선했다. 또 시.도 등 관련 행정기관이 용지 확보에 적극 협조할 수 있도록 개선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정부는 또 개발사업 등을 시행할 경우 자연경관에 미치는 영향 및 보전과 관련해 사전에 검토받고 있는 자연경관영향심의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중대한 보완사항이 아닌 경우 사후보완을 조건으로 심의를 완료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심의절차를 대폭 간소화키로 했다. 이와 함께 현재 단지내 세대수가 500-1천 세대의 경우 12m 이상, 1천 세대 이상은 15m 이상으로 돼있는 아파트 단지내 도로 폭 기준을 지하 주차장의 구조 및 위치 등 주택단지의 실정에 맞게 완화키로 했다. 총리실 관계자는 "이 방안은 법령개정 등 관계부처의 후속조치를 거쳐 내년 상반기 부터 시행될 계획이며, 이것이 시행되면 조경면적 등 녹지공간이 늘어날 수 있을 것"이라며 "다만 소방, 이삿짐 차량 등 비상용 도로는 적정수준으로 확보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현재 건물의 에너지 효율등급 인증과 관련, 건교부의 '주택성능등급 인정'과 산자부의 '건물에너지 효율등급'으로 이원화돼 있는 제도를 일원화하기로 했다.
사람에게 있어 하나의 대상을 보는 관점은 얼마나 자유로운가. 진리라고 믿어왔던 지식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거울에 비친 유럽’에서 필자는 자신의 속한 세계를 보는 관점에 대해서 새로운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그 성찰은 흔히 ‘우월하다’ 고 인식되는 세계에 대해서, 그 세계에 속한 사람이 던지는 질문이기에 더욱 값지고 의미가 있는 듯하다. 저자는 이 책 전체를 통해서 인류는 거울을 통해서 세계를 보아왔음을 말하고 있다. ‘거울’은 자아와 타인과의 인식이며 구별이며, 왜곡이다. 자신과 다른 세계를 접할 때, 그 ‘차이’는 곧 ‘차별’로 바뀌며 스스로의 우월함을 입증하기 위해 차이를 열등함으로 왜곡하고 만다. 그것이 현 유럽중심의 사회를 만드는 기간이 되었으며 필자는 그러한 시각에서 벗어나 진실로 세계를 보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 책은 유럽 문명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가장 근간이 되는 몇 가지 논제를 다른 부분으로 나누어서 이야기한다. 그것은 야만, 기독교, 봉건제, 악마, 촌뜨기, 궁정, 미개와 진보, 그리고 대중이다. 그것들은 유럽이라는 이름 하에 숨겨진 사실들을 좀더 진실되게 볼 수 있는 시각을 제공하고 그 왜곡된 생각들에 의문을 제기한다. 이 책은 분명 유럽의 역사를 재조명하는 책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비유럽인인 우리들에게는 어떠한 의미를 갖고 있을까. 이 글에서는 유럽의 거울로서 보는 우리의 모습에 대해 짧게 논해보고자 한다. 그것은 우리가 지금 있는 그곳을 말해주고 또 우리가 나아갈 곳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유럽이라는 거울에 비친 우리의 모습 유럽은 무엇을 연상시키는가?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유럽은 자유와 평등, 문명, 그리고 높은 삶의 수준 등의 이미지로 다가올 것이다. 지난 한 세기 동안 한국인으로서 우리들은 유럽을 닮기 위해서 노력해왔고, 그 것에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 이제 우리는 그들과 같은 사회체계를 가지고 있고, 그들과 같은 이념을 중요시하며, 그들처럼 생각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우리의 모습은 그들이 보기에 어떤 모습인가. 유럽인들이 他로써 우리들 我를 바라보는 시각은 어떠할 것인가. 그 대답은 ‘개발도상국’이라든가, ‘빠르게 문명화한 나라’ 정도로 예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이 이런 모든 대답에 앞서서 우리를 떠올리는 이미지는 아마 작고, 노란 피부를 가진 아시아인일 것이다. 그것이 그들이 인식하는 우리의 모습이기 때문이며, 그들이 느끼는 스스로와의 가장 큰 차이점이기 때문이다. 황인종이라는 이미지는 우리가 그들을 백인종이라고 생각하는 것과는 상당히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전자가 비문명화와 미개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진보와 자유나 평등과 같은 수준 높은 가치를 의미한다. 이러한 생각이 분명 서구인들에게서 유래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그 생각에 철저히 세뇌되어 있는 듯하다. 사람들은 점차 마치 유럽인들처럼 큰 키와 쌍꺼풀 있는 눈, 뚜렷한 코 등을 선호하고 있으며 그것은 이제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외관상의 변화가 서서히 일어나고 있는 것이라면, 더욱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는 것은 생각의 방식이다. 아시아는 전제주의 국가의 잔재가 남아있는 곳이고, 유럽은 일찍부터 자유주의가 발달한 우수한 문명이라는 생각은 우리 모두에게 급속히 퍼져 나갔으며 그 결과 한 세기만에 우리 삶의 양식을 유럽의 그것과 거의 비슷한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이렇게 유럽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은 그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자신들이 이루어놓은 길을 따라오기 위해 애쓰는 불쌍한, 아니면 기특한 몸부림으로 보일까. 분명한 것은 유럽인들이 만들어 놓은 길은 하나의 선택일 뿐이며,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또 그 길만이 옳은 것은 아니며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왔던 길도 그만큼의 가치를 갖는다는 사실이다. 유럽인들이 만들어놓은 길은, 그들의 시각에서 만들어진 것이니만큼, 우리에게 대해서는 철저한 타자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 타자의식은 그들 스스로를 더 우월한 존재로 만들어야 할 필요성을 가져다주었으며 그들은 그러한 의도를 성공시켰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날, 그 길이 그들의 의도 하에 만들어진 것임을 망각하고 그길을 오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나 역시 유럽인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이 우리를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완전히 객관적인 판단을 내릴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다른, 우리가 생각하는 열등 민족에게 대하는 생각을 돌이켜 본다면 유럽인들이 우리에게 대하는 그것이 되지 않을까 한다. 그것은 일종의 연민이며, 비웃음이며, 자만감이다. 우리가 이제껏 달려온 이 길은 우리가 선택한 길이기 보다는 선택을 강요당한 길이다. 우리가 한 사고라기보다는 강요당한 사고이다. 그 사고를 옳은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데는 유럽이라는 거울이 있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비춰보는 거울은 갖지 못한 채 그들의 거울을 통해서 스스로의 모습을 바라보았으며, 그런 이유로 우리는 그들처럼 되는 것이 발전의 길이라는 잘못된 목표를 설정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어떻게 바라보며 나아가서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우리 스스로의 거울 ‘우리 자신의 거울’은 우리의 정체성이다. 그것은 우리가 설정한 기준이며 길이다. 이제 유럽적인, 서구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우리 스스로의 기준으로 세계와 우리를 바라보는 일이 요구된다고 생각한다. 그 시각을 정립하는 데 앞서서 가장 먼저 요구되는 것은 我와 他의 의식을 명확하게 정립하는 일이라 본다. 이 책에서 언급하는 방법으로 말하자면, 일그러진 거울 대신에 곧은 거울을 통해 스스로를 바라본다거나, 아니면 편협한 거울 대신 창으로 건너편을 볼 수 있는 눈을 키우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몇 가지 개념에 대해서 재정립을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인종, 문화, 그리고 차이이다. 인종은 인류를 구분하는 큰 틀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그 잣대는 분명 일부의 시각을 반영한 것일 뿐 전 인류의 의지를 반영하지는 못하고 있다. 단적인 예로 인류를 구분하는 기준은 어떠한 타당한 근거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아마도 생리학적인 근거가 가장 타당성을 갖는 것이겠지만, 그 역시 이렇다할 보편적 동의를 얻지는 못한다. 이른바 ‘종’이란, 이 책에 따르자면, 서로 교미하는데 있어서 어려움이 없는 집단을 일컫는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사용되고 있는 인종이라는 의미는 다분히 편파적이며 의도적인 표현이라고 하겠다. 그 ‘인종’이라는 구분 안에는 외관상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근거 없는 성정의 차이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종을 구분하고자 하는 시도는 나와 다른 누군가를 임의로 결론짓는 위험한 발상이다. 하물며 누구의 동의도 없이 유럽인들이 스스로 만들어서 세계에 강압적으로 전파시킨 그 개념은 결코 타당성을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인종이 가시적인 차이를 언급한 것이라면, 문화는 내면적인 차이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이른바 ‘서구 문명’과 ‘이슬람 문명’의 충돌을 들지 않더라도 문화는 인종을 넘어서는 비교 기준으로 작용하고 있다. 문화는 환경적이고 역사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는 것이기에 차이를 가질 수밖에 없으며, 그러한 비교 혹 대조는 상당히 가치 있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절대적 가치로 존재해야 할 문화는, 오늘날 상대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 결과 우열과 열등 문화의 구분이 생겨나고 나아가 문화의 몰락마저 조장되고 있다. 인종과 문화. 현 세계에서 가장 큰 문제이자 이슈로 부각되고 있는 이 문제는 ‘차이’라는 한 마디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그 차이는 인류를 사분오열 찢어지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으며, 인류가 서로 몰락의 길로 가고 있는 이유가 되고 있다. 그러면 이러한 차이는 사라져야 하는가. 인류는 하나의 잣대 하에 일반화됨이 옳은 것일까. 물론 그렇지 않다. 바뀌어야 할 것은 이러한 차이가 아니라 차이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차이는 우열과 열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경멸이나 두려움의 대상도 아니다. 차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인정해야 한다. 차이는 우리가 가지고 있던 질서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도 아니고, 우리의 질서와 똑같은 만큼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서, 거울로서 나 스스로만을 바라보고 남과 비교해가기 보다는, 세계를 향해 난 창으로 밖을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 나와 남을 비교하는 것은 결코 진리를 찾을 수 없지만, 남 속의 나로써 나를 판단하는 것은 진리로 한걸음 나아가는 일이다. ‘거울에 비친 유럽’은 세계를 보는 시각에 있어서 의문을 제기하고 그것을 수정할 것을 요구한다. 야만은 ‘타인’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었고, 이단과 악마는 그러한 인식이 증폭된 결과였다. 진보와 미개라는 개념은 서구의 산물이지 진리는 아니며, 촌뜨기 또한 타자의식의 결과라는 것을 이야기한다. 이 책은 쉬운 책은 아니다. 이 책 안에는 수많은 학자들의 지식이 들어있으며, 유럽인으로서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반문과 자기 반성이 요구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비유럽인인 우리에게 여러 교훈을 가져다줄 수 있는 것은, 비단 유럽인에게 국한되지 않은 전인류적인 과제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신과 다른 타자에 대한 관용이며 열린 시각이며,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차이가 곧 위협이나, 스스로의 열등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물론 우월함을 나타내는 것도 아니다. 인종과 문화는 한 생활 방식일 뿐이지, 차별의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유럽적인 사고를 받아들였고, 지금 그 사고는 우리의 사상을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정체성 없는 수용이란 곧 스스로의 망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가. 우리는 유럽적인 잣대에 빠져들어 우리의 정체를 잊어버리고 스스로 그들과 같은 외양과 사상을 자지려는 무의미한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거울은 나를 비춰주는 도구이고 동시에 남과 비교하게 하는 도구이다. 거울에 스스로를 비춰보며 바꿔 나가기 이전에, 다른 사람들을 두루 볼 수 있는 열린 시야를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거울에 비친 유럽’은 유럽인의 진지한 자기 성찰이며 반성이다. 이제 비유럽인으로서 우리들도 올바른 성찰을 할 때가 아닌가 한다.
인간, 문화, 사회 이 세 가지를 연구하는 학문으로서의 인류학은 현재의 생활보다는 과거의 흔적들을, 내가 살아가는 이 공간보다는 내가 모르는 미지의 공간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잘못 인식되어 지루하거나 비실용적인 학문으로 천대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마빈해리스의 “문화의 수수께끼”와 지금 소개하려는 “낯선 곳에서 나를 만나다”를 살펴보면 이러한 일반인들의 고정관념을 깨려는 의도를 충분히 엿볼 수 있다. 책의 제목에서도 느낄 수 있겠지만 ‘문화 속에 무슨 수수께끼가 있다는 것인가?’ 또는 ‘낯선 곳에서 어떻게 나를 만나는가?’ 라는 식으로 독자의 흥미를 유도하기 위한 의도를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타인 또는 타문화를 바라보는데 있어서 그 흥미로운 부분만을 강조하고 홍보하려는 관광책자 종류의 책은 결코 아니다. 앞에서 언급한 인류학의 잘못된 인식을 타파하고 새로운 인류학에 대한 시선을 정립하고자 하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저자의 노력은 충분히 칭찬할만 하다고 할 수 있겠다. 목차를 살펴보면 1장 ‘낯선 곳에서 나를 만난다‘에서 시작하여 마지막 13장 ’새로운 현장들‘을 끝으로 총 1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만약에 독자가 이 책에 대한 사전 정보없이 그 목차만을 살펴보고 책을 고른다면 아마도 이 책은 매우 흥미없는 개론서정도로 인식될 수도 있겠다. 그만큼 목차를 살펴보면 기존의 개론서와는 특별히 다른 점을 발견하기 어려우며 대학강의교재 정도로 인식될 뿐이다. 그러나 그 내용에서 살펴보면 첫 장부터 매우 흥미로운 부분을 느낄 수 있다. 문화 상대주의에 대한 사례 제시가 그것이다. 사람들은 타문화와 자신들의 문화가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옳고 또한 이러한 행동이 충돌없이 살아가는 길이라고 알고 있을 만큼 문화상대주의에 대한 충분한 인식을 하고 있다. 브리지트바르도가 월드컵을 앞두고 우리나라의 개고기 식용문화를 비판했을 때 사람들이 하나같이 문화상대주의도 모르는 여자라고 비판한 것만 보아도 일반인들의 이러한 상대성에 대한 인식의 수준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너무나도 보편화된, 그래서 다시 설명을 하게 될 경우 자칫 지루하게 보일 수 있는 “문화상대주의”라는 용어를 설명하는데 있어서 똑같이 위에서 언급한 개고기문화에 대한 비판이라던가 일본과 우리나라의 식습관에 대한 서로의 인식차이 등을 언급하고 넘어갔다면 그것이야말로 교과서적인 수준에 머무르는 서술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독특하게도 한 인류학자가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티브족에게 이야기해주는 사례 제시를 통해 죽은 사람의 혼과 악령에 대한 시비, 햄릿의 작은 아버지가 햄릿의 어머니와 결혼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보는 것, 복수는 동년배 친구들이 하는 것이라고 나이 많은 친척에게 폭력을 쓰면 안된다는 것 등 여러 부분에서 그 해석에 있어서의 문화적 차이에 따른 이해의 차이를 보여주고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흥미유발에 있어서의 성공은 곧 작가의 의도를 전달하는데 효율성을 높여주고 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이러한 사례 제시를 통해 상대성에 대한 개념은 확실히 전달했을지 몰라도 그 대대(쌍대)적 개념인 제일성에 대한 개념의 전달에는 오히려 실패한 듯 보인다. 어떤 사물의 ‘앞’이라고 말을 하였을 때 그 ‘앞’이라는 단어를 안다면 ‘뒤’라는 단어의 존재또한 알고 있는 것이 된다. 이처럼 ‘앞’과 ‘뒤’라는 단어는 서로 의미는 반대되지만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해주는 개념 속에서 함께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을 대대(쌍대)라고 한다. 이처럼 대대의 개념이 적용되는 사례는 인간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사람은 다 다르다’ 라는 말은 곧 그 대대적 개념인 ‘모든 사람은 결국 다 같다’ 라는 말의 존재를 알려준다. 여기서 ‘모든 사람이 다 다르다’는 말은 문화의 상대성과 결부시킬 수 있으며 모든 사람은 결국 다 같다 라는 말은 문화의 제일성과 결부시킬 수 있는 개념이다. 결국 상대성에 대한 전달이 중요한만큼 그 대대적 개념인 제일성에 대한 언급 또한 필수적인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제일성에 대한 언급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물론 독자에게 ‘서로 다른 문화에 대해서 인정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자’ 라고 서두에서 주장을 하면서 동시에 ‘그래도 사람은 다 같은 것이니 보편적일 수도 있는 것이다‘ 라고 말을 한다면 모순된 주장을 펴는 것처럼 보일 것이고 독자에게 자칫 혼란만을 줄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인류학에 있어서 상대성과 제일성, 그리고 총체성 이 세 가지 기본 개념은 모든 연구의 기본이 되고 있는 만큼 이러한 부분에 대한 적절한 사례제시와 언급을 통해 독자에게 균형 잡힌 시각을 정립해 주는 것도 중요한 것이다. 사실 이 책의 전반적인 사례와 내용에 있어서 그 핵심적인 개념은 상대성이다. 우리가 지금 살고있는 곳과는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의 생활과 풍습을 보여주면서 이런 것도 있다 라고 흥미를 유발시키고 또한 이러한 것에 대한 거부감을 줄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따라서 상대성의 개념이 강조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얌전한 인디언인 주니족과 사나운 야노마모족을 보여주면서 양 극단의 사례를 통해 문화에 따라 각 민족의 인성이 결정된다는 시각으로 결론을 맺는 3장에서 작가는 상대성의 시각을 더욱더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지나친 상대성에 대한 요구는 독자에게 “그들이 그렇게 사는 것을 이해는 하겠는데 그렇다면 나에게는 무슨 의미지? 그냥 아무런 비판도 하지말고 그냥 알고만 있으라는 것인가? 그렇다면 나는 몰라도 되는 사실을 왜 알려고 하는 것인가?”라는 식으로 생각하게 할 수도 있다. 결국 이는 더 이상 책을 읽도록 하는 유인을 줄어들게 할 것이다. 상대적인 시각으로 두 문화를 이해하고 이러한 기본 바탕 위에 제일성에 관한 개념을 설명해 줌으로써 제일성의 시각으로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낯선 곳에서 나를 만나는 일이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상대성의 대대적 개념인 제일성에 관해서 언급을 했고 이러한 일방적인 상대성에 대한 강조가 책의 전반적인 서술의 균형을 흐트러트리는 부분에 대한 비판을 해보았다. 그렇다면 과연 이런 문제점만을 해결한다면 서술에 있어서의 균형을 찾을 수 있을까? 그것은 아니다. 위에서 인류학에 있어서의 세 가지 중요개념을 언급했는데 그 중에 한가지 아직 언급 안한 부분이 있다. 바로 총체성이다. 사실 인류학에서 총체성이라는 말은 인류학자들이 즐겨쓰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작 그들에게 있어서도 과연 총체적이라는 말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의미냐고 묻는 다면 난처해하기도 한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전경수 교수는 ‘총체적 접근’이라는 용어의 답습에 신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만큼 총체적이라는 개념이 언어로 규정하기 힘들고, 어쩌면 인류학에 일반인들의 접근을 막고 자신들의 학문 영역을 고수하기 위한 하나의 진입장벽으로 존재하는 단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총체성에 대한 허무를 핑계로 그 논의를 회피하기에는 서술의 균형이라는 가치가 너무 크게 다가온다. 전경수 교수는 총체성에 관한 이해를 돕기위한 사례로서 전남 완도 남단의 자지도(者只島)의 생태학적인 균형의 파괴현상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러한 생태의 파괴가 단순한 하나의원인때문만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부분, 산림생태적 부분, 조류생태적 부분, 해양생태적 부분 그리고 기후, 토양 등의 부분들이 모두 하나의 전체 체계 속에서 복잡하게 얽혀있으면서 그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처럼 총체성은 ‘부분의 합은 전체와 동일하다’ 라는 사고(andsum)를 부정하고 문화가 내포하고 있는 통합성 자체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데 이 책에서는 '9장 경제 - 좋은 것은 제한되어 있는가' 라는 부분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이 장에서는 농민들이 기본적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한정된 '제황의 이미지(Image of Limited Good)'를 가지고 있다는 것, 티브 사람들의 놋쇠막대 문화 등을 언급하면서 결국 경제발전이 나라마다 다른 이유를 집단의 인지적 성향이 담겨 있는 문화 때문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그 이유로 집단의 규범적 행동이 특정한 인지적 지향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이런 행동이 합리적인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그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어 보이며 이는 인류학 및 문화 연구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사람들이 인류학이나 문화연구를 비실용적이라고 치부해왔던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인 가치창출 능력이 떨어진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러한 면을 잘 알고 있는 듯 보란듯이 문화가 한 국가의 경제발전을 좌지우지할 수 있으며 이는 문화를 연구하는 학문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너무 의욕이 앞선 나머지 인류학의 기본 개념인 총체성의 개념을 무시해 버린 꼴이 되어버렸다. 문화는 경제 발전의 한 축이 될 수 있고 좋은 토양이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 전체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위에서 말한 자지도 섬의 생태파괴를 바라보는 시각처럼 한 나라의 경제 발전도 여러 분야의 총체적인 시각으로 판단하고 분석을 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경제학 서적에서는 경제 발전의 원인을 경제의 효율적인 운용과 가치창출에만 주목해서 서술을 하고 있는데 왜 인류학 책이 경제발전을 인류학에 주목해서 서술한 것을 비판하는가? 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경제학 서적은 그 책의 기본 목적 자체가 경제발전의 방책을 서술하는 것이기에 무리가 없지만, 인류학 책은 그 서술의 목적이 경제발전이 아니기에 문화와 인류 그리고 경제발전을 연계시켜 서술하는데 있어서 좀 더 신중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어떠한 서술이 인류학 서적으로서 경제발전에 대한 적절한 내용을 담아낼 수 있는 것일까? 그 해답 또한 이 책에 담겨 있다. ‘제 13장 새로운 현장들 - 회사에 간 인류학도, 인류학자여, 이제는 위를 보자!’ 를 통해서 작가는 인류학이 경쟁력과 최대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에 적용되는 실용학문으로서 거듭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인류학 전공을 한 수잔이라는 사람이 UTC라는 다국적 기업에서 일하게 되면서 관리자로서 직원들을 대할 때 민족지적 접근방법을 통해 기업의 효율성을 높였다는 구체적 사례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 대목에 작가는 다소 고무된 듯한 인상을 받을 수 있다. 여러 번 언급했지만 학문의 비실용성이나 비현실성(여기서 비현실성이란 지금 자신이 살고 있는 생활에 적용하기 어려운이라는 뜻으로)에 발목을 잡혀 항상 뒷전에만 밀려있던 인류학이 빛을 볼 수 있는 좋은 사례이기 때문이다. 9장에서처럼 문화와 경제발전과의 관계를 서술하면서 자칫 비약적이고 총체성의 개념을 무시했다는 비난을 받기보다는 13장과 같은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사례 제시를 통해 인류학의 새로운 방향과 비젼을 제시하는 것이 더욱더 일반 독자에게 설득적으로 다가온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인류학의 기본개념인 상대성, 제일성, 총체성을 평가의 준거로 상정하여 책 한 권을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책의 모든 부분을 세세히 살펴보고 꼼꼼히 내용정리를 통해서 살펴보는 것 자체도 중요하지만 이 책의 목적이 무엇이고 그 목적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독자에게 전달하고 있는가, 논리전개에 있어서 무리는 없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독자의 한사람으로서 더욱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소 많은 내용적인 부실함이 보일지 몰라도 몇몇 중요 장만을 뽑아서 평가하고 생각해보았다. 전체적인 평가는 일반인의 흥미를 끌고 새로운 인식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는 면에서는 그 작가의 의도를 높이 사고 싶다. 그러나 이러한 의욕이 너무 앞선 나머지 기본 개념에 충실하지 못하고 서술의 균형을 놓친 대목이 부분부분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러한 부분만을 바로잡는다면 마빈해리스의 “문화의 수수께끼” 이후에 새롭게 일반인에게 다가오고 있는 인류학의 입문에 좋은 지침서가 되리라 믿는다.
작년 9.11 테러 사건을 통해 전 세계가 떠들썩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그때 사람들은 그러한 사건의 주범인 테러단체를 비난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러한 사건의 근본적인 원인을 미국의 강압 정책에서 찾기도 하였다. 또한 이러한 관점과는 다르게 사건의 원인을 문명간의 충돌로 바라보는 관점도 있었다. 테러 사건을 문명간 충돌로 이해하려는 이들로 인해서 서점에서는 이슬람관련 서적과 서양사 관련 서적이 많이 팔렸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서양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9.11테러와 같은 사건은 흥미로운 분석의 주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그동안 한국사에 밀려 외면 받아왔던 사람들의 관심을 새롭게 유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지난 7,80년대 군부정권을 거치면서 역사연구에 있어서 한국사는 반공교육 및 정권유지라는 이해관계와 맞물리면서 국가 차원의 연구와 지원이 많았다. 반면에 서양사는 학교교육에서도 구석으로 밀려났다. 이러한 정책 속에서 한국사는 우리나라의 역사니까 꼭 알아두어야 하며 그것이 마치 기본 필수 ‘덕목’인 것처럼 인식되어 온 반면 서양사는 선택과목에 불과하니까 대강 시험 전날에만 공부하면 되는 ‘교양’으로 치부되어왔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사람들의 서양사에 대한 인식은 생소한 인명, 지명, 사건명을 달달 외워야 하는 과목으로 인식되었고, 그 이미지는 어렵고, 힘든 것으로 굳어졌다. 지금도 이러한 이유 때문에 서양사라고 하면 손을 내젓는 사람을 많이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국내 서양사 학자들의 노력이 없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노력이라는 것이 군부 정권 속에서 강압적 통치로 인해 자기 보신주의적 반론을 펼치는데 그쳤으며, 한국사학자들과 역사 해석에 있어서의 논쟁을 통해 학문적 필요성을 설득해 나가는 소극적인 방식을 취함으로써 대중과 오히려 유리되어 버렸다. 결국 지식층들만의 밥그릇 싸움으로 비춰짐으로써 대중들은 서양사에 대해 안 좋은 이미지를 하나 더 추가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의 해결을 위해 이제는 대중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는 주장이 하나씩 제기되기 시작했는데, 지금 소개하려는 “호메로스에서 돈키호테까지”(윌리엄 L.랭어 엮음, 박상익 옮김, 푸른역사)라는 책을 그러한 주장을 근거로 잘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역사 서술에 있어서의 관점, 목적이라는 분석틀을 기준으로 “호메로스에서 돈키호테”라는 책에 대해 분석한 후 나아가 서양사에 대한 이해와 연구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에 관해서 서술하도록 하겠다. 이 책은 윌리엄 랭어가 직접 쓴 것이 아니라 해당 분야의 역사가들이 서양사의 큰 흐름을 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쉬운 말투와 이야기식 진행으로 쓴 역사에세이 17편을 엮은 것이다. 책에서 사용된 용어들은 결코 생소하거나 학문적인 단어가 아니며, 교과서에서 접했던 암기식 단어의 나열에 그치는 재미없는 서술이 아니라 마치 이야기책을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즉, 이 책은 한 마디로 대중의 흥미를 유발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다. 다소 격하게 말한 듯 하지만 엮자 윌리엄 랭어 역시 머리말에서 밝히고 있듯이 책의 목적이 대중에게 좀 더 쉬운 역사를 소개하고 대중의 흥미를 유발하기 위한 것임을 인정하고 있다. 최근 TV프로그램 편성 비율을 보면 시청률을 쉽게 끌어올릴 수 있는 재미 위주의 오락, 예능 프로그램의 편성을 늘리고, 뉴스 등 시사 정보 프로그램의 편성을 줄이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은 역사학계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 점점 감각적이고 단순한 재미를 추구하는 일반 대중에게 어필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딱딱하고 지식전달에 치우친 재미없는 역사책들보다는 이야기 형식의 흥미와 재미를 유발시키는 이러한 책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이렇듯 재미 위주의 서술이 항상 대중에게 절대적으로 유익하다고만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누군가의 흥미를 끌고 재미를 이끌어 낸다는 것은 그 내용에 대한 집중도를 높일 수 있고, 사실 전달의 효율성 또한 높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지나쳐서 내용의 객관성을 저하시킬 수도 있으며 독자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혹자는 “서론에서는 국내 서양학계의 어려움과 안 좋은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가야 한다고 말을 해놓고 이제 와서 이러한 대중과의 친밀성을 높이는 작업이 유익하다고만 볼 수 없다는 주장을 펼친다면 이것은 모순 아닌가?” 라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대중에게 다가가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분명히 위에서 밝혔듯이 국내 서양학계는 점차 대중과 멀어져가는 어려움에 처해있고 이것은 서양학계에 대한 관심과 발전을 위해서라도 대중에게 가까이 가는 작업과 노력은 분명히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지나친 나머지 객관성의 결여로 이어지고 서술의 균형을 잃어버려서 흥미 위주의 스포츠 신문 기사성 추측이 난무하고 심지어는 역사의 왜곡으로까지 이어진다면 안하느니만 못하다는 말이다. 이러한 주장에 대한 근거로 이 책의 내용들을 하나하나 따져보면서 이러한 가능성에 대해 이 책의 단점을 지적하고 개선책을 제시하고자 한다. 지식전달과 흥미유발 중에 무엇에 무게를 둘 것인가? 역사에 대해 서술하는 책이 항상 고민하는 부분일 것이다. 물론 이 책은 단연 흥미유발이라는 부분에 그 무게중심을 두고 있음은 분명하다. “호메로스에서 돈키호테까지” 라는 책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오랜 기간의 역사를 단지 17개의 주제에 한정시켜서 그 주제를 중심으로 책 전체의 내용을 전개하고 있으며, 17개의 주제를 서술하는 데에도 기존의 시각에 의존하지 않고 한편의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줄 정도로 참신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것은 당연히 독자에게 새롭다, 흥미롭다 라는 느낌을 가져다 주며 결국 이는 흥미유발이 서술의 목적임을 밝힌 엮자의 말에 충실히 따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흥미유발에 대한 목적이 지나친 나머지 두 가지 거슬리는 부분이 눈에 띈다. 첫째, 구성상의 연계성이 부족하다. 이 책의 구성은 설명했듯이 17개의 역사에세이를 윌리엄 랭어가 엮은 책이다. 한마디로 각각의 챕터들은 원래 각각의 독립된 글이었다는 뜻이다. 이러한 부분을 각각의 주제들을 자연스럽게 하나의 방향으로 엮어주는 것이 엮자의 할 일일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다보면 각각의 주제들이 도대체 어떠한 방향성을 가지고 하나의 책으로 엮일 수가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단순히 이러한 시각은 기존의 시각과는 많이 다르니까 사람들이 읽으면 재밌어 하겠군. 하는 생각에 억지로 끼워넣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예를 들어 “호메로스 새로 읽는 법”이라는 챕터에서는 호메로스가 실존인물이었는가에 대한 의혹과 그가 서술한 일리아스나 오디세이아와 같은 서사시가 정말 직접 쓴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해결해준다. 그러나 그 후에 소크라테스의 재판, 알렉산드로스가 이룩한 두 세계, 노예상인 티모테오스의 생애 등의 내용이 이어지지만 이러한 각각의 내용들간에 어떠한 연계성도 보이지 않는다. 단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서양사라는 것뿐이다. 이러한 취약한 연계성은 독자로 하여금 원래의 목적인 흥미유발의 효과를 저해시킬 수도 있다. 독자는 읽으면서 왜 자신이 지금 이 책을 읽고 있는지에 대해 항상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각각의 내용들이 하나의 통일된 맥락없이 단편소설 읽듯이 재미난 역사 이야기의 나열에 그친다면 책을 읽는 동기유발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혹자는 방대한 양의 역사와 긴 시간을 단지 17개의 주제로 한정시켜 하나의 책으로 엮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것 아니냐며 그 주제간에 연계성을 갖도록 구성하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방대한 양의 역사와 긴 시간을 다루고 있기에 오히려 풍부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큰 틀을 짜고 그러한 틀에 맞추어 통일된 맥락을 가진 주제를 선정하여 역사를 서술하는 작업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알렉산드로스가 이룩한 두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 알렉산드로스 제국이 남겨놓은 유산은 헬레니즘 세계이며 이 세계는 보편주의, 전 세계인의 결속, 인류의 협력 등의 개념을 역설한 알렉산드로스의 꿈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그러나 이러한 주제는 더 이상 이어지지 못하고 다음 챕터에서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러한 구성보다는 알렉산드로의 헬레니즘에 관한 이야기를 전개한 다음에 보편화라고 하는 철학적 사유를 제시한 바울의 내용을 담은 “위대한 신앙 해석자 바울”이라는 챕터를 제시함으로서 보편성이라는 문화의 원류에 대한 이해와 이러한 문화가 어떻게 후에 기독교라는 보편적 신앙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는 철학적 토대가 될 수 있었는지에 대해 독자에게 자연스럽게 설명해 주는 것이 더욱더 일목요연하게 보일 것이다. 결국 엮자는 이러한 역사 흐름의 연계성을 무시한 채 흥미유발에 급급한 나머지 책 전반의 흐름을 부자연스럽게 만들었다. 역사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술해야 한다는 기존의 고리타분한 고정관념을 버림으로써 오히려 참신성과 흥미성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둘째, 객관성이 결여되어 있다. 객관성이 결여되어있다고 해서 이 책 모두가 거짓이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이 책은 저명한 역사학자들이 쓴 만큼 그들의 주장과 논거에는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두고 논리적 연구에 바탕을 두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만큼 역사적 서술에 있어서 객관성이라는 것은 필수적인 요소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시각의 독특함과 명료함이 지나쳐서 객관성의 영역까지 침범하는 부분이 군데군데 보이는 것이 아쉽다. 소크라테스의 재판과 관련된 내용에서 기존의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명”에서 보여준 소크라테스의 연설문은 플라톤에 의해 후에 각색된 것일 가능성이 크고 오히려 소크라테스는 말더듬이었으며 웅변가보다는 논객에 가까웠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하다. 그 시대에는 모든 재판과정이 구두로 진행되었고 지금과 같은 속기사가 없었기 때문에 이러한 추측이 설득력있게 다가올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러한 추측이 100% 옳다고 증명할 길도 없는 것이다. 즉 추측은 추측에 불과할 뿐 그 어떤 것도 증명해주지 못한다. 그러나 플라톤이 쓴 변명에서는 분명하게 글로써 소크라테스의 입장을 대변해주고 피력하고 있다. 이렇게 분명하게 남아있는 증거인 문서를 부정하고 그 시대의 상황적인 개괄을 통해 이럴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사실인양 역사적 서술을 한다면 과연 그러한 서술에서 객관성을 찾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러한 역사 서술이 스포츠 신문의 ‘OOO군, XXX양 열애설’ 기사의 내용에 등장하는 ‘같은 비행기를 타고 출국하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에 사귀는 것이 분명하다’ 라는 식의 근거제시와 과연 무엇이 다르냐고 묻고 싶다. 역사는 객관적이고 증명할 수 있는 사료에 바탕을 두고 기술을 해야 한다. 물론 문서상의 사료 또한 사람에 의해 윤색되고 각색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당시의 시대상황이나 환경이 기존의 남아있는 명백한 자료를 뒤엎어 버리는 식의 역사연구는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이는 마치 삼국시대 유적에서 치즈나 버터가 나왔다고 해서 기존의 역사 서술 사료의 내용을 부정하고 이 곳이 삼국시대에 미국 땅이었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지나친 흥미위주의 서술과 상황에 충실한 역사 서술은 자칫 역사 서술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객관성의 결여와 설득력 부족으로 빠질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지금까지 역사를 서술하는 데 있어서 ‘지식전달이냐 흥미유발이냐’라는 큰 틀을 바탕으로 흥미위주의 역사서술이 가져다 줄 수 있는 폐해에 관해서 “호메로스에서 돈키호테”라는 책을 통해 알아보았다.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흥미위주의 역사서술과 참신한 역사 해석을 바탕으로 하는 종류의 책을 읽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아니다. 서론에서도 밝혔지만 국내 서양학계가 대중으로부터 점차 멀어져가고 외면당하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이러한 류의 책을 보급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분명히 필요한 작업일 것이다. 그러나 필요하다고 해서 무분별하게 받아들인다면 위에서 제시한 부작용으로 인해 오히려 더욱더 대중으로부터 외면받고 잘못된 역사인식을 심어줄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지나친 흥미위주의 서술을 지양하고 객관적이고 균형잡힌 책을 선정하며, 또한 독자들 스스로도 비판적으로 역사를 바라보고 인식할 수 있는 역사관을 심어주는 교육적인 노력도 필요할 것이다.
2006년에 많이 팔린 책중의 1권을 들라면 한비야의 ‘지도밖으로 행군하라’일 것이다. 이 책이 이렇게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중의 하나는 우리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독후감 숙제를 많이 내어주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백만권 가까이 팔렸다고 한다. 이 책은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 , ‘한비야의 중국견문록’을 쓴 한비야씨가 지난 5년간 국제 NGO 월드비전의 긴급구호 팀장으로 활동한 것을 적은 삶의 보고서이다. 이 책에서는 ‘아프가니스탄, 아프리카는 더 이상 '동물의 왕국'이 아니다 - 말리위 · 잠비아’, ‘당신에게 내 평화를 두고 갑니다 - 이라크’, ‘별을 꿈꾸는 아이들 - 시에라리온 · 라이베리아’, ‘세계의 화약고 - 팔레스타인 · 이스라엘’, ‘쓰나미는 과연 천재였을까? - 남아시아 해일 대참사’, ‘감자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 북한’등의 활동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책은 산문 에세이집 형태로 되어 있어 지구촌화와 전세계의 평화라는 시대적 요청에 맞추어 남들이 하지 못한 자신만의 독특한 경험을 제시하여 독자들에게 간접체험을 하게 하고 있다. 특히 이 책이 갖는 몇 가지 의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지구촌화 시대에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우리 나라가 무역액이 3천억 달라가 넘고 조만간 5천억 달라가 될 것이라고 한다. 외국과 교류가 없는 한국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이때 청소년들에게 해외로 눈을 돌려야 함을 강조하고 있어 적절하다고 본다. 둘째, 더구나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취임하면서 우리 나라가 이제 개발도상국가 사람들을 더 많이 배려하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지금 청소년들은 우리 나라가 갑자기 잘 사는 나라로 알수도 있지만 우리나라가 1900년대까지만 하여도 외국에서 지원을 받았다. 필자도 어릴 때 외국에서 준 옷을 입고, 외국에서 지원하여 학교에서 무료로 주는 빵과 우유를 먹고 큰 기억이 난다. 이제는 우리가 전세계의 못사는 사람들에게 갚아야 할 때이다. 셋째, 생명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단돈 50달러의 빚에 아이를 파는 방글라데시의 가난한 농촌이야기, 배고파서 죽을 아이 독초라도 먹이겠다는 아프가니스탄의 엄마 이야기, 쓰나미에 30여만명이 죽거나 실종되었으며 10만원인 배가 없어 어렵게 사는 스리랑카 아이의 가정 이야기 등을 보면서 정말 생명이 소중한 것임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이들 아이들도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인생인데 왜 이렇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넷째, 청소년들에게 도전의식을 강조하고 있다. 한비야씨가 전세계 93개국을 방문하고 항상 도전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는데 우리 청소년들이 가져야 할 도전의 자세라 보인다. 다섯째, 무슨 일을 하던 가슴을 뛰게 하고 내 피를 끓게 하기 때문이라는 글이 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정말 이런 자세로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이 든다. 한비야의 이 책은 쉽고 이해가 잘 되도록 쓰여 백만권 정도 팔린 것이 이해가 되고 청소년추천도서가 될 가치가 있다고 본다. 또 한비야씨의 열심히 사는 모습, 남을 배려하는 자세, 국제적으로 한국의 위치를 생각하게 하는 점, 여성들에게 바람직한 모습을 보여주는 점에서 이 책이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고 본다. 그런데 이 책자를 독서 지도함에 있어서 충분한 지도가 없이 막연히 독후감을 써서 제출하라는 식이 되면 후진국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줄 수도 있다고 보이며, 인터넷을 통한 독후감 숙제를 구입하여 청소년들이 마지못해 책을 읽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겠지만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다시 한번 전 세계와 우리 주위의 가난한 이웃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전 세계 65억 인구 한명 한명이 소중한 것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월 2만원이면 이들 나라의 한 가족을 가난에서 구한다고 한다. 이런 점을 한번 더 생각하는 기회를 가졌으면 한다. 이제 동계방학이 되면 우리 교사들이 외국에 많이 여행을 한다. 이 책에서 나온 것과 같은 점을 고려하여 개발도상국가에 가서 무엇인가 도움을 주었으면 좋겠다. 또 한비야씨같이 여행한 것을 꼼꼼하게 기록하여 한국교육신문에 리포트로 글도 쓰고 학생들에게 교육적인 지도를 하였으면 한다.
여행은 설렘이다. 가까이 있으면서도 가장 먼 곳이 되어버린 조국의 슬픈 반쪽, 그 곳을 여행하는 일에 대한 기대는 설렘을 넘어선다. 그 중에서도 금강산을 찾아가는 길이라 모두들 들떴다. 형용사로 치장하는 것이 오히려 거추장스러운 신령한 곳, 조물주가 세상 만물을 창조하고 마지막 날 남은 모든 힘을 쏟아 부어 만들었다는 금강산 일만 이천 봉을 만나러 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8월 22일 여섯 대의 버스에 나누어 타고 출발하였다. 교총회원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졌기에 모르는 얼굴이지만 서먹하지는 않았다. 울진에 들러 신선한 회를 먹었다. 설악산 금호리조트에 도착하여 첫날 여장을 풀었다. 여행의 묘미는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에도 있지 않을까. 아이들을 가르치는 같은 인생여정을 걷는 이들이기에 마음을 트기가 수월하였다. 8월 23일 5시에 고성으로 이동하였다. 남북한 한계선 철책을 넘어 좀처럼 열리지 않으리라는 비무장지대를 당당히 넘어 북녘땅을 밟았다. 남측 출입사무소의 위용과 북측 출입사무소의 허술함의 대비가 돋보이기도 하였지만 정작 안타까운 것은 복잡한 입국과 출국 수속을 동족끼리 오랜 시간 치러내야 하는 일이었다. 북측으로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안내조장들로 부터 주의사항을 무척이나 길게 들었는데 주의할 것은 이동 중에 버스차창으로 사진을 촬영하지 말 것과 북한과 남한을 공식적으로 지칭할 때에는 이란 단어를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점심을 먹고서 구룡폭포를 찾아 나섰다. 신계천을 끼고 미인송이 울창한 창터솔밭 사이로 술기넘이 고개를 넘으면 신계사가 나타난다. 산길을 굽이굽이 넘을 때마다 새로운 화첩이 한 폭씩 열린다. 금강산의 물은 녹색을 띤다. 비취빛 물은 명경지수라 깊이를 가늠하기조차 힘이 든다. 보자마자 모두의 마음속에 생명수로 들앉았으나 손 한 번 담글 수 없는 영롱한 물빛이 고왔다. 높이 139m, 너비 4m의 비봉폭포에 다다르니 물 소리가 천둥소리다. 전날부터 내린 비가 지금도 오락가락하니 그 위용이 하늘을 찌를 듯하다. 물안개가 사방을 덮고 구름이 자유자재로 움직여대니 폭포의 모습은 정확히 새길 수 없다. 봉황이 날아갔다면 아무도 볼 수 없었으리라. 휘모리 장단 속에 사뿐사뿐 춤을 추더라도 속인의 눈에 그게 보일 것인가.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다. 옥류동, 연주담을 거쳐 드디어 관폭정에 올랐다. 관폭정은 앞면 3간, 옆면 2간의 합각 건물로 선비의 풍모를 지닌 의젓한 모습이었다. 이런 날씨에는 아홉 마리 용이 모습을 드러낼 법도 하건만. 구룡폭포의 모습조차 뿌연 안개 속에 가늘게 구불거린다. 폭포절벽과 바닥이 한 덩어리의 화강암 암괴로 이루어진 이 폭포 아래 구룡연은 깊이가 13m나 된다고 한다. 단청이 여기저기 벗겨진 모습에서 먼저 왔던 사람들의 자취를 느끼게 하는데 북한 안내원들이 특산물을 판다. 내려오는 길에 구룡폭포 위쪽에 위치한 상팔담으로 오르고 싶었다. 금강의 풍취에 홀려 머뭇거린 시간이 길어 내려갈 시간이 급하였기에 포기하고 말았다. 상팔담의 구슬처럼 동그란 여덟 개의 초록담潭을 다시 보고 싶었다. 나무꾼과 선녀의 전설을 떠올리며 다음을 기약하였다. 신계사는 한국동란 때 파괴되었다. 그것을 남한의 조계종 종단의 협력으로 지금 재건하고 있는 중이었다. 옛 모습을 찾으면 기원들이 모여 번성하던 그 때처럼 한 나라, 한 민족으로 어우러질 수 있을까. 각이 잘려버린 탑을 보며 두 손을 모았다. 앞쪽 문필봉을 사진으로 남겼다. 자식의 학문에 영험을 끼칠 수 있다는 안내원의 설명에 대학입시가 목전에 닥친 아들아이가 생각나서다. 온정각에 돌아와 점심을 먹고 삼일포로 향했다. 관동팔경의 하나인 이곳은 36개의 봉우리가 호수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웅장하면서도 아늑한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솔숲이 우거진 가운데 쭉 뻗은 흙길을 제법 걸어 전망대에 도착했다. 신라시대 때 영랑(永郎)·술랑(述郎)·남석랑(南石郎)·안상랑(安祥郎)의 네 신선이 3일 동안 이 호수에서 놀다갔다 해서 이 같은 이름이 붙여졌다고도 하고 옛날에 어떤 왕이 관동팔경을 하루에 한 군데씩 유람하기로 했는데 이 곳에 와서 삼일을 묵어 삼일포라 한다고도 한다. 백두산의 삼지연, 인근의 시중호와 함께 북한의 3대 호수로 꼽히는데 물이 맑아 마치 선녀가 떨어뜨린 거울과 같다는 말을 듣는 곳이다. 호수 가운데에 소가 누워있는 형용을 한 와우도의 소나무 숲이 멋졌다. 사진 한 장으로 둘레가 8㎞나 되는 호수의 전경을 카메라에 담으려니 앵글이 부담스럽다. 석 장을 찍어 파노라마로 이어 붙였다. 막걸리 한 잔을 맛보며 한량다운 멋을 부려보았다. 주량이 형편없지만 긴장을 적절히 풀어놓는 것이 이런 수려한 자연 속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장군대를 돌아나오다 북한 안내원의 노래를 들었다. 졸랐더니 스스럼없이 노래를 들려주었다. 소박한 노랫소리와 우리들의 손뼉장단이 멋들어지게 어울렸다. 온정각으로 다시 돌아와 평양 모란봉 교예단 공연을 보았다. 세계 최정상급의 묘기를 연출하였는데 가슴이 울컥하였다. 북한에서는 연예인을 대중예술인이라고 한다. 남한의 장관급, 차관급에 해당하는 대단한 지위와 대우를 받는 인민배우와 공훈배우들의 묘기는 손에 땀을 쥐게 하였다. 불가능의 세계를 가능케 하기 위해 그들이 흘린 땀은 어느 정도일지. 교예의 초보 수준인 서커스조차 남한에서는 사라진 지 오래지 않은가. 공연 내내 박수를 치느라 손바닥이 아팠다. 혹시나 잘못될까 마음 조렸기에 가슴이 뻐근하였다. 동포 앞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아름다워 눈이 시렸다. 금강산 온천은 물이 좋기로 유명하다. 온천물이 워낙 깨끗하고 무색투명하여 대중탕 안에 들어가 있는 다른 사람들의 몸이 훤히 비칠 정도였다. 매바위산을 건너다보며 즐기는 노천탕이 단연 백미다. 옥류탕, 연주탕, 폭포탕, 옥돌보행탕, 황토방을 두루 다니며 몸을 금강산 버전으로 정화하였다. 금강산페밀리비치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8월 24일 오늘은 만물상 코스로 도는 날이다. 버스로 굽이굽이 고갯길을 660m 쯤 올라가 주차장에서 내린 뒤 산행을 시작했다. 몇 번을 쉬어가며 망양대에 올랐다. 기암협곡을 타 올라 제1망양대에 올랐다. 외금강의 위용을 내려다보고 먼 동해바다에 눈길을 주었다. 제3망양대까지 두루 둘러보고 비로봉이 어딜까 짐작해 보았다. 갔던 길을 되돌아와 천선대로 오르는 갈림길에 섰다. 육년 전에 아들아이와 어머니의 손을 잡고 올랐던 적이 있다. 여러 가지 제약에도 불구하고 이곳을 다시 찾은 것은 나름의 과제가 있어서이다. 가슴을 울리는 그 아름다움을 글 한 편으로 나타내보려는 것. 육 년 동안 떠올려보았으나 도저히 필설로 표현할 수 없어 안타까웠다. 계속 오르막이라 힘든 편이다. 가파른 오르막을 타 오르니 첩첩 능선들이 바위를 액자 삼아 걸쳐진다. 드디어 수직 벽에 박혀있는 철계단을 올라야 한다. 경사 80도의 계단에 붙어 뒤돌아볼 념도 내지 못하고 한 걸음 한 걸음 힘겹게 오른다. 드디어 천선대에 올랐다. 해발 936m, 국가지정 천연기념물 216호라고 쓰인 표석이 우리를 맞는다. 전에 앉았던 그 자리에 다시 앉았다. 가슴은 가득 차 있으면서도 한 줄의 글조차 쓸 수 없었던 시간이 아득하다. 다시 찾기 위해 그랬던 것일까. 적절한 형용사 낙점에 그토록 망설였던 것은. 문득 자살을 떠올렸다. 세상사 힘들어 죽기를 마음먹는다면, 이 정도의 아름다움 속에서 접는 것은 어떨까. 두 팔을 벌리고 한참을 활강하다보면 활수 같은 구름이 금세 싸안아 안전하게 삼선봉 병풍 두른 너럭바위에 착 앉혀줄 지 누가 알겠는가. 그 순간 신선이 되어,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대기 중에 흩어진들 어떨까 싶었다. 행여 눈물 어려 영롱해진 사리 몇 알 있다면 녹색 옥계에 잠겨 수정으로 굳으리라. 천 년 후에 우연히 세상에 나가 아름다운 여인의 총애를 받는다면 세월만큼 쟁여진 금강산 정기로 인해 그녀도, 수정도 행복하지 않을까. 이곳은 이름 그대로 금강산의 절경에 취해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들이 놀다 갔다는 자리다. 바위로 뒤덮여 서너 명이 서 있으면 꽉 찰 정도로 비좁다. 우리가 가는 곳곳에 북한 안내원이 두 명씩 짝을 지어 우리를 지켜본다. 북한안내원과 인사를 트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조심스러웠지만 대화가 매끄럽게 이어졌다. 우리 일행이 부산교총 회원들이며 나는 부산교육신문 기자 자격으로 왔다고 소개를 했더니 전교조, 한교조, 교총의 특징에 대해 그가 물었다. 남한의 교육이나 교사단체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 것이 의아하였으나 어쩌면 그는 북한에서 남한 관광객들과 많이 접촉하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인 정주영의 고마움을 말하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바로 옆 하늘문바위가 웅장하게 보일 수 있도록 세로컷 사진을 찍고 아쉬운 발길을 돌렸다. 조금 내려오니 망장천忘杖泉에 다다랐다. 이 샘물을 마시면 기운이 솟아 지팡이를 잊고 간다하여 생긴 이름이다. 일찍 집을 나서는 나를 전송하며 아들아이가 내게 원했던 선물은 금강산 물 한 병이었다. 수량이 적었지만 물병을 가득 채워 소중히 간직하였다. 내려오는 길에 귀신의 얼굴을 닮은 귀면암에 놀라고 세 개의 기암으로 형성된 삼선암에서 기념촬영을 한 뒤 온정령 일흔 일곱 구비를 돌아 내려왔다. 우리가 이동하는 지역의 마을 주민들은 우리들과 직접 대면하지 않도록 이동시간에 제약을 받는다. 우리가 지나가기를 멀찍이 모여서서 기다리는 그들을 보며 괜히 미안하였다. 옥류관에서 랭면을 먹었다. 면발이 부드러워 자르지 않아도 되고 맛이 단촐하여 먹을 만하였다. 10분을 걸어 온정각으로 돌아와 간단하게 특산품을 샀다. 금강산이 신의 땅이라면 우리가 지나쳐 온 북측의 산은 배고픈 인간의 땅이었다. 되돌아오는 길에 차창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언제 다시 이 땅에 발을 디딜 수 있을 것인가. 바위산과 민둥산 능선이 남쪽으로 달리고 있었다. 남한 군사분계선을 넘자마자 산하는 변하였다. 무성한 숲, 풍성한 들판, 곡식의 때깔이 달라진 그 모습을 영화처럼 이어 보며 북한 안내원의 말을 떠올렸다. ‘남측 사람들, 운동 좀 하시라요.’ 하나같이 날씬하고 마른 그들에게 잘 먹고 잘 노는 듯한 우리들이 어떻게 비쳤을까. 아마 그 말은 걷기 힘들어하는 우리를 격려하는 말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먹을 것이 없어 허덕이는 북한 동포들의 안타까움을 마음에 실어서 하는 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던 북한 군인들은 하나같이 여위고 키도 작아 큰 군모에 눌린 모습을 한 채 부동자세로 서 있었다. 땡볕에 길에서, 산에서, 건물 뒤편에서. 설악산 금호리조트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었다. 여행의 마지막 밤, 잔디밭에 나가 맥주 한 잔으로 여정을 정리하였다. 부산 교대 15기 팀과 함께 어울려 탁구장에 갔다. 노래방에, 펍에, 어떤 이들은 대포항까지 나가 낭만을 만끽하는 가운데 설악의 밤이 깊어갔다. 8월 25일 고즈넉한 아침이 열렸다. 리조트 옆길로 도는 산길을 산책하고 조깅을 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양 교수님과 최 교육장님을 만났다. 부부가 함께 한 여행이라 더욱 행복하셨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헤어짐은 쓸쓸하다. 가슴속에 추억을 안고 모두들 자신의 보금자리로 향하였다. 여행은 끝났다. 사진이 남고 느낌이 남았다. 일본의 유명작가가 금강산에 오르고는 “아, 아름답다.”는 말밖에 하지 못했다고 한다. 전 세계를 두루 여행하고 피요르드와 파푸아뉴기니까지 여행을 하였다는 어떤 이도 천선대에 올라 ‘아!’하는 짧은 감탄사 밖에 할 말을 찾지 못했다고 전한다. 이번에도 나는 한 편의 수필을 쓸 수 없을지 모른다. 그래서 이 여정을 다시 밟아 천선대에, 관폭정에 한 번 더 오르기를 소원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노력해 볼 것이다. 금강, 너에게 적절한 형용사를 찾아주고 싶다. 원활한 일정을 위해 수고해주신 교총 관계자들 외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월터 미셸 박사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마시멜로 실험’을 통해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실험에 참가한 네 살배기 아이들에게 달콤한 마시멜로 과자를 하나씩 나누어주며 15분 간 마시멜로 과자를 먹지 않고 참으면, 상으로 한 개를 더 주겠다는 제안을 한다. 그 결과 실험에 참가한 아이들 600명중 3분의 1인 200명은 15분을 참지 못한 채 마시멜로를 먹어치웠고, 3분의 2인 400명은 끝까지 기다림으로써 상을 받았다. 그런데 정작 놀라운 사실은 그로부터 14년 후에 밝혀졌다. 당시 마시멜로의 유혹을 참아낸 아이들은 학업 성적이 뛰어나고, 친구들과의 관계도 훨씬 원만하며, 스트레스도 효과적으로 관리할 줄 아는 뛰어난 청소년들로 성장해 있었다. 반면 눈앞에 마시멜로를 먹어치운 아이들은 쉽게 짜증을 내고 사소한 일에도 곧잘 싸움에 말려들었던 것이다. 10여 년 전의 작은 인내와 기다림이 눈부신 성공을 예비하는 강력한 ‘단서’로 작용한 것이다. 마시멜로 실험결과를 통해 얻은 건 인간의 자유의지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교훈이다. 즉 눈앞의 마시멜로를 바로 먹어치운 것도, 보상을 기다리며 유혹을 물리친 것도 모두 인간의 자유의지에 따른 결과이다. 그 가운데 더 큰 만족과 보상을 위해 당장의 욕구 충족을 미룰 줄 아는 의지가 바로 성공을 견인하는 강력한 지표가 된다. ‘이 책은 그 아이들의 달라진 모습에서 찾아낸 성공과 행복의 비밀에 대한 우리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눈앞에서 나를 유혹하는 마시멜로의 손길을 뿌리칠 수 있다면 얼마 후에 또 하나의 마시멜로를 얻을 수 있는 것처럼 당장의 만족을 유예하는 사람에게는 더 큰 만족감과 성공이 기다리고 있음을 자상하게 일러주고 있다. 필자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주고 있다. 첫째, 눈앞의 마시멜로를 즉시 먹어치우지 마라. 더 많은 마시멜로를 먹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라. 그 적당한 시기가 반드시 온다. 둘째, 눈부신 유혹을 이기면, 눈부신 성공을 맞이한다. 셋째, 장기적인 안목으로 생각하라. 1달러에서부터 시작해 30일 동안 매일 배로 늘려 가면 5억 달러가 넘는다. 넷째, 내가 원하는 것을 남에게서 얻으려면, 그 사람이 나를 돕고자 하는 욕구를 느끼게 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믿게 만들어야 한다. 다섯째, 내가 원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서 얻을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은 감동을 통해 설득하는 것이다. 여섯째,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기꺼이 가는 사람이 성공에 이른다. 일곱째, 성공은 나의 과거나 현재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내일의 성공은 오늘 어떤 준비를 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이상 마시멜로 이야기의 주요 부분을 정리하여 보았는데 우리 교육자들이 꼭 읽어보기를 강추(강력추천)한다. 우리 학생들에게 몇 가지 교훈을 주기 때문이다. 첫째, 아는 것을 실천하여야 힘이다. 결심만 하기 보다는 실천이 중요하다. 우리 주위에 청소년들이 흡연이나 인터넷 중독 상태에 있으면서도 그만두지 못하는 것은 실천의 문제이다. 둘째, 오늘도 중요하지만 내일을 준비하도록 지도하자. 청소년들은 지금 당장보다는 미래의 가능성에 강조를 두어야 한다. 인생의 한번뿐인 학창시절 이것 저것 하고 싶은 것 많이 있겠지만 특별한 내일을 위해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셋째, 당장 눈 앞의 이익에만 몰두 말고 장기적으로 보게 하자. 인생은 긴 마라톤이다. 마라톤을 하자면 지금 당장의 이익보다는 장래를 내다본 계획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여야 하겠다. 넷째, 30초 규칙을 강조하자. 어떤 결정을 하던 30초만 더 생각하자는 것이다. 이 결정이 내 삶과 인생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를 생각하는 기회를 가지게 하자는 것이다. 다섯째, 학생들을 변화하기 위해서는 5단계의 실천이 필요함을 강조하여야 하겠다. 먼저 눈앞의 마시멜로를 먹어치우지 않으려면 무엇을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지 생각해 보게 하자. 다음은 나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자. 궁극적으로 이루려는 목표는 무엇이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계획이 무엇이며 계획을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등이다. 마시멜로 2006년 백만권이상 팔린 밀리언셀러이다. 청소년층을 제외하고 전연령층에서 가장 많이 팔렸다고 한다. 실제로 필요한 연령층은 청소년들인데. 우리 교사들은 이런 상황을 알고 학생들에게 강요하지 않고 마시멜로와 같이 우화를 중심으로 재미있게 아이들을 지도하여 건전한 방향으로 유도하였으면 한다. 호아킴 데 포사다 지음, 마시멜로 이야기/ 한국경제신문사
사실은 좀 늦었거나 소홀했지 싶다. 창간 3주년, 통권 12호까지 신문을 내면서 영화 촬영장 르포는 처음이기 때문이다. 제3호에서 처음으로 김유정문학촌을 다녀온 후 거의 매호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르포이다. 김유정문학촌·지용문학관·아인스월드·‘야인시대’·‘불멸의 이순신’·‘해신’ 촬영장 등이 그동안 다녀온 곳들이다. 모아 놓고 보니 드라마 촬영장이 3곳이나 된다. ‘태극기 휘날리며’의 세트장을 가는 길은 생각보다 멀었다. 경남 합천군 용주면 가호리. 말이 고속도로지 웬만한 국도보다 못한 88고속도로를 달리는 짜증에다가 60km가 최고 속도인 왕복 2차선 도로 주행이 더해진 때문인지도 모르리라. 그러나 한국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자그만치 1,180여 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 세트장을 찾아가는 길이었다. 국민 4명중 1명꼴로 관람한 ‘국민영화’의 위용을 새삼 추억하려는데, 그만것쯤 감내 못하랴 싶었다. ‘전공인’들의 간접체험을 위한 르포를 다닐 때 노상 그랬던 것처럼. 오후 4시 30분 마침내 ‘태극기 휘날리며’ 세트장에 도착했다. 전주 출발 3시간 남짓 지나서였다. 세트장은 마산이 고향인 강제규감독이 합천군으로부터 토지를 무상 지원받아 약 11억원을 들여 지은 것이다. 이곳에서의 촬영기간은 약 5개월, 상영시간으로 따지면 3분의 1에 해당하는 분량이다. 영화세트장 규모는 총 3만여 평. 애초에 68동의 당시 허름한 건물이 지어졌으나 가서 보니 다 있지는 았았다. 진태(장동건)가 구두닦이를 하던 서울 종로거리와 인민군 대좌(최민식)를 생포한 평양병원 건물 등이 스크린에서 볼 때와는 또 다른 감흥을 자아낸다. 징집된 군인을 실어 나르는 증기식 기차와 전투신에 투입된 탱크며 트럭, 끊어진 다리와 페인트칠 벗겨진 상점건물 등이 가을의 따가운 햇살을 받아 고풍스럽게 빛나고 있다. 그 사이로 듬성듬성 관람객들이 보였다. 평일이라 그런지 한국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관객동원의 위용도 한물 간건지 한산하고 조용한 분위기가 오히려 관람에는 제격이다. 한편 ‘태극기 휘날리며’ 세트장에선 ‘태극기휘날리며’만 찍은 것이 아니었다. 영화 ‘바람의 파이터’·‘천군’·‘웰컴 투 동막골’외에도 ‘야인시대’·‘패션70s’ 같은 드라마가 촬영되었다. 또 얼마전 끝난 KBS대하드라마 ‘서울 1945’를 찍기도 했다. 물론 800만 관객을 넘어서며 지난 해 최고의 흥행작 (전체적으로 따져도 ‘태극기 휘날리며’·‘실미도’·‘친구’에 이은 4위의 수치다.) 이 된 ‘웰컴 투 동막골’의 주촬영장은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 율치리다. 인구 150여 명인 그곳은 찾아오는 관광객들로 인해 매일매일 잔칫집 분위기라고 한다. 무엇이 그리도 바쁜지 늦가을 햇살이 벌써 잦아들고 있다. 아무래도 초행길에 헷갈리지 않으려면 해가 있을 때 고속도로로 접어들어야 할 것 같다. 한번쯤 휴게소에서 쉬기야 하겠지만 꼬박 3시간을 달려야 하는 길이니까.
"나랏 말싸미 듕귁에 달아 문자와로 서르 사맛디 아니할쌔 이런 젼차로 어린 백셩이 니르고져 홇배이셔도 마침내 제 뜨들 시러펴디 몯할 노미 하니라 내 이랄 윙하야 어엿비 너겨 새로 스믈 여듧자랄 맹가노니 사람마다 해여 수비 니겨 날로 쑤메 뼌한킈 하고져 할따라미니라" 한글을 창제한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면 열에 열이 세종대왕이라고 말한다. 어릴 때부터 한글은 세종대왕이 만들었다는 것을 들어온 우리는 한글이 세종대왕이 아닌 다른 사람이 지었다는 생각을 해보지도 아니 한 적도 없을 것이다. '세종어제 훈민정음'이란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훈민정음은 세종이 지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헌데 이런 생각에 의문을 품고 써내려간 소설이 있다. 북한에서 평양사범을 졸업하고 교육자로 일하고 있다고 하는 박춘명의 소설 이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훈민정음을 세종대왕이 아닌 집현전의 학자들이 만들었다는 전제하여 글을 진행하고 있다. 거기에 집현전의 학자들 중에서도 성삼문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여 만들었다고 하고 있다. 그렇다면 세종대왕은 무얼 했는가? 소설에서 세종대왕은 우리의 생각과 뜻을 표현할 수 있는 문자를 만들어야겠다는 신념을 집현전의 학자들에게 전달하고 독려하는 역할을 한다. 세종대왕은 나라가 어지럽고, 백성이 억울한 일을 당하고, 민란이 일어나고 하는 것은 모두 배성들의 생각을 글로 표현할 수 없는 문자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최만리 등 과 같은 일부 보수적인 학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집현전의 젊은 학자들에게 백성을 이롭게 하는 문자를 만들라고 특명을 내리는 역할로 한정하고 있다. 그럼 소설 속으로 들어가 보자. 소설은 세종의 명을 받은 성삼문이 수원의 한 농촌마을에 가는 걸로 시작된다. 세종은 그곳에 가서 측우기를 보고 오라고 한다. 거기에 세종의 뜻이 숨겨있기 때문이다. 소설에선 측우기를 발명하게 된 것은 평범한 민초들이 농사를 짓기 위해 만든 것을 좀 더 과학적으로 확대 발전시킨 것으로 나온다. 소설의 시발점은 여기에서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조선 사람들은 이 땅에서 몇 천 년을 살아 왔다. 몇 천 년을 살아오면서 우리 선조들이 과연 자기들이 하는 말을 그대로 적는 글을 못 만들어 냈을까? 아니 그렇지 않다. 물론 이두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두는 한자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그것은 한자가 생겨난 다음에 만든 것이다. 그럼 한자가 생겨나기 전에는 우리의 글이 없었겠는가? 그렇게만 생각할 수가 없다. 우리의 글은 꼭 있었을 것이다. 그 흔적이 지금 어디인가 남아 있겠는데 아직 그것을 찾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성삼문은 몇 천 년을 살아온 이 땅에 분명 선조들이 하는 말을 기록한 문자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여러 자료와 풍문을 근거로 그 문자는 관서지방에 남아 있을 거라는 생각에 성삼문은 관서지방으로 떠나 옛 문자인 '신지문자'를 찾아 떠난다. 그 문자가 고조선 때 사용했다는 신지문자다. 성삼문은 그곳의 한 노인에게서 '신지문자'를 찾아낸다. 노인에 의하면 그 문자는 발음기관의 모양을 본 떠 만든 글자라는 소리를 듣는다. 훈민정음의 제자원리와 신지문자와의 제자 원리가 같음을 의미한다. 새로운 글자를 만들 수 있다는 희망 하에 집현전으로 돌아온 성삼문은 동료 학자들과 함께 치열한 토론과 연구를 하며 한글의 원리를 찾아내고 체계화한다. 동시에 아내에게 배우게 하고, 아내로 하여금 하인들에게 가르치게 하여 그 효용성을 실험케 한다. 그 결과 아무것도 모르는 하인들도 금방 문자를 깨우쳐 읽고 쓰게 됨을 알게 된다. 훈민정음이 완성되어 갈 무렵 최만리는 일부 학자들을 규합하여 새로운 문자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상소문을 준비하고, 세종이 휴양에서 돌아오자 바로 상소문을 울린다. 이에 세종은 자신의 뜻을 꺾으려는 최만리의 행동에 분을 이기지 못하고 그를 따르는 하위지 등 일부 학자를 새 문자를 반포하기 전까지 의금부에 하옥시킨다. 그리고 세종은 온 백성에게 새로운 문자 '훈민정음'이 창제되었음을 널리 알린다. 박춘명의 소설 은 한글을 세종대왕이 직접 만든 문자가 아니라 세종의 명에 의해 집현전의 학자들이 만들었다는 전제하에 쓴 글이다. 그리고 그 한글은 고조선 때부터 우리 선조들이 사용했다는 문자, '신지문자'로부터 비롯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이는 훈민정음창제에 대한 여러 가지 이론이 있음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 본다. 그렇지만 소설은 소설이다. 그런 면에서 소설 속에 남녀 간의 애틋한 사랑이 없으면 그 또한 재미가 없다. 박춘명의 소설에서는 남한의 소설과 같은 노골적인 사랑이야기는 없지만 성삼문과 그 아내와 애틋함이, 하인인 복돌이와 쌍가매의 애절한 사랑이 소설적 재미를 넣어주고 있다. 올해는 세종대왕이 한글을 반포한 지 560돌이 되는 해이다. 우리의 문자를 만들기 위해 세종과 집현전의 학자들이 얼마나 많은 노고를 했는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이는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인 안 된다. 헌데 오늘 날 우리는 우리 한글을 너무 쉽게 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든다. 북쪽의 작가인 박춘명의 소설을 읽으며 우리 글 ‘한글’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인 듯싶다.
전체 교사의 3.5%를 차지하는 기간제교사 자리가 채용비리의 온상이 되고 있다. 또한 학생들로부터 교사로 인정받지 못하고 커피 타기 등 허드렛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기간제교사의 채용과 관리 권한을 해당 학교장이 갖게 돼 있어 당국의 관리 손길은 허술하다.[경향신문 2006-12-27 18:30] 이 기사를 보면서 떠오르는 다섯글자, '정말 그럴까'이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 기사는 특종감이다. 또한 학교현장의 크나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리포터가 보는 최소한의 실체는 '글쎄 올시다.'이다. 주변에서 보았거나 들은 이야기를 종합해 보더라도 결론은 '그럴리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20여년전에 리포터도 기간제교사로 근무한 경험이 있다. 복잡했던 그 시절에도 기간제라고 푸대접 받거나 불이익을 당한 기억이 전혀없다. 그때 기간제로 근무했던 학교에는 리포터를 포함하여 기간제교사가 네명이 있었다. 같은 기간제라고 해서 같이 어울려 지냈던 기억말고는 전혀 부당한 대우를 받은 적이 없다. 담임도 했었다. 도리어 연세많으신 선생님들이 기간제도 정규교사와 다른것이 없다. 도리어 세금을 덜떼니, 월급도 더 많다고 농담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로 교사로 발령을 받았지만 기간제교사에 대한 부당한 대우를 하는 것을 본 기억이 없다. 오늘 이시간까지도...그러기에 경향신문에서 보도한 내용을 믿기 어려운 것이다. 기사에 나온 예가 어디에서 어떤 경로를 통해 입수된 것인지는 몰라도 '기간제교사 자리가 비리의 온상'이라고 표현한 것은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다. 일부 비리가 있는 경우가 있을지는 몰라도, 온상(어떤 현상이나 사상, 세력 따위가 자라나는 바탕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으로 표현한 것은 분명 잘못된 표현이다. 경향신문 기사의 또한가지 의문점, "기간제교사 채용 비리는 교사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서울시교육청은 채용의 투명성을 위해 기간제교사를 인력풀로 운영, 해당 학교가 취사선택하도록 한다. 하지만 이런 시스템도 사립학교에선 소용없다. 서울의 한 사립학교에서 기간제교사로 일한 ㅇ씨(30)는 '사립학교의 경우 금품이 오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공공연한 비밀이 절대 아니다. 사립학교의 경우는 리포터가 정확히 알길이 없지만, 과장되었다는 생각이다. 보통 일선학교에서 기간제교사가 필요하면 해당학교교사 들에게 추천을 의뢰하거나 서울시교육청의 홈페이지(그림참조) 또는 해당학교 홈페이지를 통해 채용공고를 한다. 기간제를 원하는 지원자들이 구직을 할 수 있도록 한 게시판도 있다. 지원자들로부터 연락이 오면 이력서를 받는다. 지원자들 모두로부터 이력서를 받는다. 그 중에서 적절한 교사를 채용한다. 모든것이 오픈된 상태에서 진행된다. 절대로 밀실에서 조용히 진행되는 일은 없다. 공공연한 비밀이 절대 아니다. 요즘 세상이 어느 세상인데 그런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이런 과정은 주로 교감이 맡아서 하는데, 교감의 업무가중에 해당된다. 기간제 교사를 빨리구하느냐 못 구하느냐에 따라 교감의 능력을 평가하기도 한다. 채용 후에 천덕꾸러기로 전락하는 일은 더욱더 없다. 기사에 나왔던 예를 보자. "기간제교사 생활을 시작한 지 며칠 만에 한 학생이 제게 ‘언니’라고 부르더군요”라고 말했다는 부분, 나중에 보니 이렇게 부르는 학생들은 한두명이 아니었다고 했다. ㄱ씨는 '교사 자리를 유지하려면 참아야 한다고 늘 나 자신에게 다짐한다'고 말했다는 부분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다. 그렇게 학생들이 부른 이유는 그 기간제 교사의 문제가 더 크다. 학교에서 의도적으로 학생들에게 기간제 교사임을 밝히는 일은 극히 드문 일이다. 학생들은 그 교사가 기간제인지 정규교사인지 관심이 없을 뿐 아니라 잘 알지도 못한다. 그럼에도 학생들이 그렇게 불렀다면 해당 교사의 문제가 더 클수 있다. 해당교사가 더 경험을 쌓으면 그런일은 자연히 없어질 것이다. 끝으로 전교조의 교원정책실장의 인터뷰내용, '개별 학교 단위로 교사를 채용하기 때문에 비리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며 '지역 교육청에서 일괄 모집 공고를 내서 기본자격을 갖춘 교사들을 배치하면 채용과정이 투명해지고 실무적으로도 효율적일 것'이라고 지적했다는 부분에 대한 의견이다. 뒤에 이야기한 지역교육청에서 일괄모집해서 배치하는 방안에 전적으로 찬성한다. 그렇게 하면 학교에서 교감의 할일이 훨씬 더 줄어든다. 일선교감들이 제일먼저 환영할 것이다. 그런데, 인터뷰 앞부분은 문제가 있다. '비리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는 표현은 잘못된 표현이다. 자신이 직접 보았거나 경험한 것이 아니면서 '가능성'을 이야기한 것은 근거가 없다는 생각이다. 어떤 경우든지 학교에서 비리가 발생한다면 이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일부를 전부로 오인하도록 하는 언론의 행태도 용납할 수 없다. 모든 학교에서 똑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이 아니면 보도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어느정도 보편, 타당한 근거를 가지고 보도를 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2005.1.17 월 날씨가 많이 더워졌다. 오늘도 새벽같이 일어나 마더하우스까지 걸어갔다. 경건한 마음으로 미사 예절에 참례했다. 지난 번과 똑같은 일정이 진행되었다. 다시 깔리 가트 임종의 집으로 갔다. 빨래를 하나씩 체크하여 변이 묻어있는 것은 따로 물에 넣어 헹궈 변을 제거해야 한다. 나머지 빨래는 다른 통에 넣고 비누를 풀어 빨아야 한다. 목욕탕엔 연실 따뜻한 물을 길어다 부어야 한다. 아무리 서둘러도 손이 딸린다. 물 데우는 솥에도 계속 물을 날라다 보충해야한다. 서양인들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헌신적으로 봉사에 몰두했다. 서양의 두 할머니가 매일 중증환자의 환부에 소독을 하고 약을 바르고 다시 붕대로 싸매는 일을 도맡아 했다. 하는 일이 너무 능숙해서 평생을 의사로 살다가 이제 늙어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 아닌가 짐작해볼 뿐이었다. 칠십은 되었을 서양 할아버지도 매일 나와 궂은 일을 도맡다시피 하는 것을 보고 그들의 일상화된 봉사정신을 보는 것 같아 본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시간이 금세 가는 것 같다. 12시쯤 되어 봉사활동을 끝내고 비비디박에 있는 기차 예약 사무소로 가서 바라나시 행 기차를 예약했다. 295루피. 여행사 수수료가 없으니 발품 판 것을 보상받았다고나 할까. 2005.1.18 화 오늘 5일째 봉사활동을 했다. 오늘까지만 할 예정이다. 변을 싸고 뭉개고 있는 환자의 상체와 하체를 한꺼번에 들어 안고서 목욕실로 옮겨 목욕을 시키고 빨래를 하나하나 체크하여 따로 따로 통에 담았다. 약을 타다 먹이고 빈 밥그릇을 나르고 소변을 받아내고 .... 그러는 동안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을 했다. 어머니 병석에 누워계실 때 설마 돌아가실 것을 예상 못하고 어린애처럼 어머니에게 짜증을 내기도 했으니 이 불효를 어떻게 용서받을 수 있을까. 어머니 돌아가시고 이렇게 사무치게 어머니가 그리울 줄을 잠작이나 했었던가. 수녀님께 얘기하고 병실 내부사진을 찍을까 하다가 찍지 않기로 했다. 한국인 봉사자들이 여전히 많다. 오늘은 치악산 자락의 어느 절에 계시다는 비구니 스님도 임종의 집에서 봉사했고 대구의 한 의과대학 여학생은 한 달동안 학교 수업 실습 과정으로 매일 봉사를 하고 있다. 어제는 기차표 예매소에서는 중국과 동남아를 거쳐 들어왔다는 한국의 대학생도 만났다. 저렴한 비용 때문에 한국 학생들이 동남아 여행을 선호하는 것 같다. 오늘 봉사활동을 마치면 바라나시로 출발할 것이다. 바라나시는 가장 인도적인 도시라 하지 않는가. 봉사를 마치고 여관으로 돌아왔다. 오전 내내 바쁘게 움직였더니 피곤했던지 한시쯤 와서 침대에 누었는데 깜빡 잠이 들었다. 2시 30분쯤 게스트 하우스 사장을 만나 이러이러하여 오후 8시까지 하우라 역에 가야한다. 방에서 좀 쉬었다가 5시쯤 출발해도 되겠느냐고 하니까 하루 숙박료 150루피를 더 내야 한단다. 7일이나 묵었는데 몇 시간 머물 수 없느냐고 해도 막무가내다. 12시가 check out 시간이니까 하루치 숙박료를 더 내야 한단다. 한참 말다툼을 하다가 그럼 지금 나가겠다 하니 100루피를 더 내란다. 100루피를 주고 짐을 싸들고 나왔다. 사장이라는 사람은 그동안 한번도 못본 사람이었다. 그동안 종업원들만 낯익었지 사장은 오늘 처음이다. 종종 이렇게 상당히 계산적이고 까다로운 사람들을 만나기도 한다. 인터넷 방에서 한 여자 주인이 빡빡하게 시간 계산을 해서 돈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엄격하게 원리원칙을 적용하는 것이겠으니 내 경험부족이랄밖에 없다. 여관을 나와서 인터넷 방에 들러 시간을 보내다가 생각하니 타올을 여관에 놓고 왔다. 언짢았던 마음도 달랠 겸 다시 여관으로 갔다. 그 고집불통의 사장은 보이지 않았다. 타올을 다시 배낭에 넣고 의자에 앉아서 3명의 종업원들과 한참 애기를 나누었다. 종업원들은 사장더러 Bad man(나쁜 사람)이라며 내 편을 들어주었다. 나는 I can understand him.(나는 사장을 이해해)라며 섭섭했던 마음을 풀었다. 그들과는 여러 장의 사진을 찍기도 했다. Makerbeer라는 아이가 사진을 꼭 보내달라며 주소와 이름을 적어줬다. 나는 사장 때문에 기분이 상했던 것을 종업원들과의 격의없고 유쾌한 대화로 말끔이 씻어내고 오후 6시 30분 바라나시로 떠나기 위해 하우라 역으로 출발했다.
일본 교직원조합의 가입자 수가 2006년 10월 현재 처음으로 30만명에 미달한, 29만 6,345명(전년 동기비7.511명 감소)이라는 사실이 18일, 문부과학성의 조사로 밝혀졌다. 가입자 수는 가입율 28.88%(동0.7%감)로 과거 가장 낮은 수치이다. 신규 채용 교직원의 일본교원조합에의 가입율은 21.9%로 4년 만에 증가하고 있어, 일본교원노동조합의 나카무라 서기장은 「전후 세대의 퇴직에 수반하는 자연감소 등이 있어 감소는 어쩔 수 없다. 신규 채용 교직원의 가입율은 증가하고 있어 젊은 교사들의 이해는 얻고 있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또, 다른 단체도 포함한 교직원 단체 가입율은 31년 연속 감소하여 46.2%(동1.3%감)이었지만, 신규 채용 교직원의 단체에의 가입율은 26.3%(동1.2%증가)로 4년 만에 증가했다.
국회는 27일 새벽 4시 본회의를 통해 2007년도 교육예산을 전해보다 6.6% 인상된 31조 450억 원, 공무원 평균 임금을 2.5% 인상시켰다. 교육예산 31조 450억 원은 정부안보다 1709억 원 줄어든 규모다. 국회가 일부 삭감한 1697억 원에는 ▲내국세 및 교육세 조정분(1511억) ▲깨끗한 학교 만들기(67억) ▲사립유치원기본보조금 시범사업(24억) ▲교육혁신위 운영(1.5억) 등이 포함된다. 또 금강산연수경비(1억) 등 3개 사업 14억 원은 전액 삭감하고 방과후학교운영(407억)예산은 삭감하는 대신 교부금으로 대체해 추진토록 했다. 반면 교대 교사교육센터(45억), 입시사정관제 도입 지원(20억) 등 일부 사업예산은 409억원 증액했다. 아울러 국회는 공무원 임금을 정부안대로 2.5% 인상시켰다. 이는 올해 2.0%보다 0.5%포인트가 올라간 것이다. 내년 보수 2.5% 인상률은 ▲기본급 1.6% 인상에 따른 보수 1.3% 인상 효과 ▲성과 상여금 1.2% 인상을 합한 규모로, 물가상승률(한국은행 전망 3%)을 감안하면 사실상 인하되는 것이다. 공무원 1인당 임금(기본급,상여금 등) 평균 상승률은 1999년 -4.5%, 2000년 9.7%, 2001년 7.9%, 2002년 7.8%, 2003년 6.5%, 2004년 3.9%, 2005년 1.3%, 2006년 2.0% 등이었다.
12월 27일에 보령에서 치러진 제26회 대통령기 국민독서경진대회 시상식에 수상학생들을 데리고 갔었습니다. 행사장 입구에서부터 시상식을 축하는 화환과 새마을기가 장내를 화려하게 장식한 가운데 11시에 드디어 대통령기 국민독서경진대회 우수 독후감 수상자에 대한 시상식이 개최되더군요. 심사위원장의 심사경과 보고를 시작으로 충청남도 도의새마을과장의 축사가 이어지면서 행사는 본격적으로 무르익어 갔습니다. 대회를 진행하던 사회자도 행사장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그만 표정이 굳어졌습니다. 행사 진행 안내장을 꼼꼼히 살펴보는 관객과 축하 꽃다발을 들고 시상식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가족들로 행사장 안은 추운 날씨임에도 후끈후끈 달아올랐습니다. 어머니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한 조문순 씨와 학생부 장려상을 수상한 이주호 군, 어머니부 장려상인 강정임, 노금자 씨 등이 차례로 상장과 상패를 받았습니다. 그들의 환한 웃음을 보니 저까지 행복해졌습니다. 리포터도 자랑스런 수상자들과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기념하기 위해 기꺼이 촬영에 임했습니다. 시상식이 끝난 뒤, 참석자들끼리 보령시내 제일생고기집에 모여 맛있는 갈비탕으로 점심을 들었습니다. 돌아오는 길, 홍성휴게소(상행선 방향)에 들렀죠. 최근에 지어진 휴게소라 그런지 외관과 내부 모두가 놀랍도록 깨끗했습니다. 커피전문점과 식당 차림표 등이 호텔 이상으로 청결해 깜짝 놀랐습니다. 상도 받고 분위기 있는 곳에서 커피도 마시고. 아, 바야흐로 기분은 최고조로 향상된 하루였습니다. 수상자 여러분, 다시 한번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세계일보에 보도된 KDI 분석 결과에 의하면 우리 사회의 신뢰 수준은 선진국에 비해 크게 낮은 것으로 드러났다. ‘다른 사람을 믿습니까?’라는 타인에 대한 신뢰도 조사결과 스웨덴(6.63점), 일본(4.31점), 미국(3.63점)에 비해 우리나라(2.73점)의 신뢰도 수치가 훨씬 낮게 나왔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국가기관의 공정성에 대한 조사에서 법원이 공정하다고 믿는 국민은 22.9%에 불과했으며, 경찰 및 국가기관에 대해선 단 10.1%만이 공정하다고 응답할 만큼 공적제도에 대한 신뢰도가 낮게 나타난 것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여러 가지 사회적인 요건이 ‘나 아니면 아무도 못 믿는 불신사회’를 만들고 있다. 사회구성원들이 서로 불신하면서 같이 힘들어하는 세상을 만든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슬픈 일이다. 정말 끔찍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사실 그런 세상에서 살고 싶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 지위를 악용하고, 돈을 잘못 쓰는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만들어 논 잘못된 세상에 빨려 들어가 같이 허우적대고 있는 꼴이다. 더구나 내 잘못은 없다고, 나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니 힘이 들고 빠져나오기도 어렵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가 건전하게 유지되고 있는 것은 왜일까? 여러 가지 부정적인 요인들을 지그시 누르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장사를 하든, 직장에 다니든 요즘 같은 불경기가 없다고 힘들어한다. 하지만 이번 연말은 각종 매스컴에서 유난히 훈훈한 이야기들을 많이 소개하고 있다. 아무리 힘든 세상이더라도 같이 나누면 행복하다는 것을,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면 더 행복하다는 것을 아는 얼굴 없는 천사들이 많다는 것이다. 불우이웃에게 전달해 달라며 후원금과 생필품을 놓고 가는 익명의 독지가나 남모르게 온정을 전하는 선행들이 추위를 녹이고 있다. 그들의 선행은 해마다 되풀이 되고, 실천하는 방법도 신중해 천사가 따로 없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준다. 그러하기에 대기업에서 몇 백억씩 내는 이웃돕기 성금보다 소중하게 여겨진다. 사경을 헤매는 백혈병 환자의 수술비를 도와주고, 생활이 어려운 청소년들에게 유명 메이커 신발을 선물하고, 종이가방에 차곡차곡 1년 동안 모은 돈을 담아 기부하고, 자선냄비에 돌 반지를 넣은 사람들이 바로 우리 이웃에 살고 있다. 이렇게 훌륭한 사람들과 같이 호흡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에게는 큰 행복이 주어진 것이다. 익명의 독지가들이 했다는 말 ‘좋은 일에는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여유가 좀 있어서 도와주고 있는 것일 뿐 다른 이유가 없다.’와 나눔 실천에 앞장서고 있는 탤런트 정애리씨의 얘기 ‘작은 행동이 그들에게는 전부일수 있거든요. 손을 내밀면 세상이 따뜻해질 거예요.’를 되새겨보자. 이렇게 가슴 따뜻한 이야기들이 많은데 왜 우리 사회가 ‘나 아니면 아무도 못 믿는 불신사회’가 되었을까? 혹 불신의 벽이 빈부격차, 지위고하 , 남녀노소간의 소통을 가로막고 있다면 독지가들이 선행을 베푸는 마음으로 훌훌 털어버리자. 그래야 희망찬 새해를 맞이할 수 있다. 정해년 새해에는 교육계에 존재하는 불신의 벽들을 모두 허물 수 있을까?
'한 학교에 5년 근무하는 동안 한번은 비담임을 할 수 있도록 담임 안식년제를 도입해 주십시오.' 내년도 교육과정을 편성하기위해 교원들을 상대로 의견 조사한 내용 중 건의사항으로 가장 많이 올라온 내용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담임을 15년동안 개근했다는 선생님들이 대다수 있고, 심지어는 20년 교직생활동안 부장교사를 5년했는데도 담임을 개근했다는 선생님들도 간혹 있다. '이제는 정말 단 1년이라도 비담임을 해보는 것이 소원이다. 매너리즘에 빠져 아이들한테 간혹 소홀히 하는 경우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교사들이 많이 있다. 매너리즘(mannerism)이란, '일정한 기법이나 형식 따위가 습관적으로 되풀이되어 독창성과 신선한 맛을 잃는일, 또는 그러한 경향.'으로 정의 되어진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말이 모두 맞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정도 통하는 부분도 있다는 생각이다. 하기야 20년동안 쉬지않고 담임을 해왔으니 그럴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방학을 앞두고 실시된 방학준비 직원연수시간, 내년도 교육과정편성을 위한 설문조사에서 건의사항으로 나온 몇가지를 교장선생님이 설명을 했다. 그 중에서 담임안식년제 도입에 관한 내용을 교장선생님은 다음과 같이 설명을 했다. '담임 안식년제, 정말로 꼭 필요합니다. 쉬지않고 담임을 하다보면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합니다. 저도 교사 시절에 가끔은 비담임을 하고 싶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교장이 되고 보니 그것이 그리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선생님들, 칠판을 보아 주십시오. 비담임을 하고 계신 선생님중에 담임을 해도 되는 선생님을 찾으셨습니까? 여러가지 여건상 도저히 담임을 하기 어려운 선생님들만 보이실 것입니다. 저기 비담임을 맡고 계신 선생님들은 인사자문위원회에서 결정한 선생님들입니다. 인사자문위원회의 의견을 존중했습니다.' '앞으로 어느해가 되던지 담임안식년제를 실시할 수 있는 여건이 되면 꼭 실시하겠습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정말 어렵지 않습니까? 보시는 그대로 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담임안식년제를 할 수 있으면 저도 하고 싶습니다. 꼭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여건이 문제이지요.' 그렇게 많은 교사들이 원했던 담임 안식년제였지만 어느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다. 아니 반론을 제기할 수가 없었다. 교장선생님 말씀대로 학교여건이 눈에 모두 보이는데, 어떻게 반론을 제기할 수 있겠는가. 모두 학교의 여건상 어쩔 수 없이 비담임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부장교사라고 비담임이 된것은 더욱더 아니다. 부장중에서도 상당수가 담임을 맡고 있다. 그럼에도 담임을 할 자원이 부족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학교현장의 현실이다. 교장선생님이라고 교사들의 애로사항을 모를리 없다. 그도 교사출신이고 오랫동안 담임을 해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교사들의 요구를 모두 들어줄 수 없는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은 교장선생님도 교사들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겉으로 표현을 하지 않을 뿐이다. 어떻게 하면 교사들에게 잘 해 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특히 우리학교 교장선생님은 '항상 교사들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해소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교장인 저를 믿어 주십시오. 며칠동안 고민하면서 잠을 설치는 일도 많습니다. 제가 왜 선생님들의 애로사항을 모르겠습니까? 앞으로 더 열심히 노력하는 교장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직원연수를 마치면서 하신 교장선생님의 마무리 말씀이다.
다사다난했던 한해가 저물어 감을 알 수 있는 등나무 아래(군산영광여고 교정) X-MAS 트리가 어김없이 올해도 장식되었다. X-MAS ☆ GLORY! 저녁에 보면 아주 멋있다. 아름다운 자태로 늦게까지 남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는 바라보는 즐거움을 안겨주고 종교적인 입장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임을 알려주는 트리이다. 그저 바라만 보는 기쁨이 아니라 사랑, 나눔, 배품이 있는 한해가 되었으면 하고 소망해본다. 추워지는 이 겨울에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한번쯤 생각해보고 따뜻한 사랑의 손길을 전달해 보았음 한다. 작아도 좋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재능과 능력을 발휘하여 소외되고 힘겨운 우리 이웃들, 복지시설, 독거노인 어르신들, 소년소녀가장, 노숙자들에게 잠시라도 기쁨과 웃음을 줄 수 있는 X-MAS 이벤트가 있었으면 하고 기대해본다.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원인도 있겠지만 복지시설 등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들이 더 소외되고 힘들다는 뉴스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을을 금할 길 없다. 이 해가 가기 전 우리 가족, 우리 학생(학교)들, 우리 친구들과 함께 따뜻한 사랑의 손길 한번 던져 주시죠? 더 좋은 새로운 한해 2007년을 기대해 본다.(사진촬영 : 출근길 사진작가 손성욱/www.pigital.com)
일요일인 어제 충남서북부 지역에 갑자기 폭설이 내렸다. 토요일 밤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은 일요일 아침이 되어서야 그쳤다. 밤새 내린 눈으로 캠퍼스는 어느새 발목이 빠질 정도로 눈이 쌓였다. 올해 들어 가장 많이 내린 적설량인 셈이다. 영하의 날씨로 아침까지 꽁꽁 얼어붙었던 눈이, 점심 시간이 지나 따스한 햇볕이 비치자 서서히 녹기 시작했다. 점심 식사를 마친 아이들은 교실에 들어가기가 아쉬운 듯 친구들과 삼삼오오 눈밭에 모여 눈싸움을 하거나 썰매를 탄다. 한 아이는 루돌프가 되기를 자청해 한 친구를 끌어주기까지 한다. 그런 모습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잊혀졌던 추억이 아련히 되살아난다. 예전에 리포터도 이렇게 눈이 많이 내린 날에는 꼭 비료를 담았던 비닐포대와 왕대를 쪼개어 만든 스키 등을 들고 동생과 함께 야트막한 야산으로 올라갔었다. 산꼭대기에 도착해서는 볏짚을 잔뜩 집어넣은 푹신한 비닐포대 위에 앉은 다음 비탈길을 따라 산 아래로 사정없이 썰매를 지치곤 했다. 윙~ 윙~ 쌩~ 쌩~ 얼굴을 때리던 매서운 겨울바람도, 엉덩이를 찌르던 울퉁불퉁한 돌조각의 통증도 비닐썰매의 스릴과 재미를 멈추게 할 수는 없었다. 모처럼 신나게 눈썰매를 타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잠시 어린 시절의 추억에 잠겨본 하루였다.
우리 학교 도서관에 근무하시는 어여쁜 사서선생님께서 오늘 스물여덟 번째의 생일을 맞으셨답니다. 아침부터 동료 선생님들께서 알록달록하니 예쁘게 포장한 선물을 들고 도서관을 방문하셔서 진한 축하를 해주셨습니다. 케익에 촛불이 밝혀지고 생일을 축하하는 노래가 끝나자 "훅~ " 하고 바람이 일더니 곧 촛불이 꺼졌습니다. 여기저기에서 왁자한 웃음소리와 함께 뜨거운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오늘 생일을 맞은 주인공 선생님께선 감격한 나머지 살짝 눈시울까지 붉히셨습니다. 멀리 고향을 떠나 객지에서 맞는 첫 생일을 외롭고 쓸쓸하게 보낼 뻔했는데, 동료선생님들의 따뜻한 배려로 행복한 하루를 보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일 겁니다. 요즘 어느 직장이든 인간관계가 점점 삭막해져간다고 야단들입니다. 비록 거창하고 화려한 파티는 아니지만 이렇게 작은 것이라도 서로를 챙겨주는 따스한 마음이야말로 가장 바람직한 직장문화를 조성하는 첩경이란 생각이 듭니다. 선생님들 서로가 진심으로 위하고 아끼는 마음으로 근무한다면 그 활력이 고스란히 우리 아이들에게도 전달되어 교육력 제고에도 큰 도움이 되리라 여겨집니다. 또한 동료 교사의 기념일을 다함께 축하해줌으로써 조직구성원간의 화합을 도모하고 동료애 및 소속감도 고취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의 생일파티란 생각이 드는 하루였습니다. "선생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그리고 다음 번에는 제 생일 파티도 부탁합니다."
방학을 앞두고 아이들은 신이 났다. 더구나 우리 반의 귀염둥이 웅찬이 엄마가 아이들 주라고 과자를 사왔다. 담임인 나와 스스럼없이 지내는 아이들 몇이 '선생님도 과자를 사내라'며 응석을 떤다. 돈 2만원을 주자 쏜살같이 달려가 음료수를 사왔다. 우리 학교 학부형인 슈퍼의 주인이 담임 것은 공짜로 보내왔다. 어린 시절에는 잘 먹고 잘 노는 것도 중요하다. 신이 난 아이들을 바라보며 겨울 방학도 저렇게 즐거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사랑한다. 3학년 1반 아이들아! 방학 즐겁게 보내고 내년 2월에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자.